깜찍한 ‘God Star’‥ 화음·율동에 박수


토론토 한인장로교회(담임 손명수 목사)의 갓스타(God Star) 어린이 합창단(지휘 서소선 사모)이 18일 오후 제4회 발표회를 갖고 깜찍한 노래와 화음, 재치있는 율동과 춤으로 박수를 받았다.
부모와 교회 성도 등이 참석한 이날 발표회에서 어린이 합창단은 ‘사랑의 하나님’을 시작으로 10여곡의 찬양곡과 동요 등을 불렀다. 노래 가운데는 올해 처음 열린 동요축제에서 대상을 받은 ‘뚱보새(Chubby Bird)’를 비롯한 최우수상 등 입상곡들을 다시 선사하며 실력을 과시했고, 화려한 부채춤도 선보였다. 이날 마지막 순서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란 티셔츠로 단장한 부모들도 함께 무대에 올라 ’Oh, Happy Day’를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 앵콜을 받았다.

손명수 담임목사는 합창단 어린이들의 열심을 다한 모습과 솜씨를 칭송하고 지휘자 서소선 (원인섭 목사) 사모의 노고를 격려, 합창단과 부모, 성도들이 함께 축복송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아난 사람~’을 부른 뒤 손 목사 축도로 발표회를 마쳤다. 어린이합창단은 이날 헌금을 남아공 엄영흠 선교사 교회건축 선교기금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 문의: 416-447-5963 >

언젠가 여름 휴가 중에 있었던 일이다. 고속도로에서 연료 게이지를 보았더니 바늘이 Zero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비스 센터가 곧 나올 줄 알았는데 30 Km 를 가도 감감 소식이었고, 계기판에 벌써부터 들어온 빨간 경고 불은 나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부채질하였다. 다음 주유소에서 급유를 할 때까지 20여분 동안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 경험을 한 후, 나는 우리의 영적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유사한 경험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의 우리는 거의 언제나 빈 탱크로 달리려고 한다. 우리의 영적 삶은 자동차와 같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연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종종 영적 연료의 필요를 신호해주는 우리 삶의 영적 게이지를 무시하거나 혹은 우리의 영적 게이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이 갑자기 멈출 때까지 우리의 영적 필요를 깨닫지 못한다. 두 경우에 있어서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 허탈, 좌절, 그리고 실패.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연료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영적 삶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경건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공부로부터 오는 에너지 없이 우리의 ‘영적 자동차’는 꼼짝 달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아는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운가?
우리의 경건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는 ‘바쁜’ 삶이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사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그렇다고 큰일 하는 것도, 큰돈 버는 것도 아니면서…. 속도를 좀 늦추어야 하겠다. 기도를 좀 더 자주하고, 성경도 좀 더 많이 읽고, 그리고 바쁜 삶 보다 인생을 더 메마르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가 말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배울 때까지, 우리는 경건생활을 시작할 수 없다.
“운명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 정해진다”라고 어느 분이 말했듯이 경건생활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선택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 10:38-42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에 심취해 있었다. 몇 번씩 마르다는 부엌문 사이로 내다 보면서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는 것에 분개해 했다. 참다 못해 마르다는 예수께 나와 왜 자기는 일해야 되고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되는지를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인생은 선택인데 마리아는 최상의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마르다는 섬기기를 선택했고, 반면에 마리아는 보다 좋은 것, 곧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섬김을 받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여러 면에 있어서, 우리 모두 안에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마리아이기 보다는 마르다와 같다. 언제나 이런 일 저런 일로 분주하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를 편안해 하지를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가 경건생활의 자세인 것이다. 마리아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경건생활을 통하여 우리를 섬기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르다와 마리아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끊임 없이 언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마르다가 항상 마리아를 이길 것이다.
자동차에 비교를 한다면, 마르다는 우리의 엔진이며, 마리아는 우리의 연료이다. 둘 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올바른 우선순위이다. 날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로 하여금 그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곧 마르다와 같이 될 것이다. 분주하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는 - 이것은 마치 빈 탱크로 달리고자 하는 무모한 운전사와 같은 것이다.

<전인희 사관 - 구세군 토론토 한인교회 담임사관>

▶동부신학교 졸업생들과 정관일 분교장,문경환 학감, 교수진 및 노회 목사들.


“평생 기도, 하나님 의지하는 사역자로”


동부 개혁장로회 신학교 캐나다분교(분교장 정관일 박사)는 12일 주일 오후 제4회 졸업식 및 감사예배를 가든교회에서 드렸다. 졸업식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김동현·최병옥·박숙인 학생이 목회학 석사(M.Div), 홍진화 학생은 선교학 석사(M.Miss) 학위를 받았고, 학부과정을 졸업한 김명자·김민경 학생은 신학사(B.Th) 학위를 받았다.
감사예배는 박웅희 교무처장(새빛교회 담임목사) 사회로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캐나다노회 서기인 박원철 목사(늘사랑교회 담임) 기도와 신학교후원회 이사장인 허헌 장로(가든교회)의 성경(시 116:1~12) 봉독, 신학교의 칼빈합창단 특송에 이어 뉴욕본교 학감인 문경환 박사가 말씀을 선포했다.
문 목사는 ‘이렇게 살겠습니다’는 제목의 설교에서 “이제 사역에 나설 졸업생들에게 다윗처럼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동역하기를 바란다”면서 △평생 기도하며 살고, △여호와 앞에서 살고, △주님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다윗의 결심과 삶의 목표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사역을 감당해 나가라고 말씀을 주었다.

박웅희 처장이 2005년 분교 개교 이래 목회학석사 15명을 포함한 졸업생 총28명 배출 등의 학사를 보고한 후 정관일 분교장은 졸업장을 수여하고 박숙인·김명자 졸업생에게 성적우수 패를 주었다. 또 부설 비전대학을 수료한 6명에게도 졸업증서를 전했다. 정 분교장은 졸업생들에게 훈시를 통해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과 물질을 보지말고, 언제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나가는 사명자들이 되라”고 당부했다.
KAPC 전 노회장 유윤호 목사(성산교회 담임)가 졸업생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 뒤, 노회장 유충식 목사(중앙교회 담임)는 축사에서 “부르시고 학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남은 생애도 붙드시고 계획대로 인도하심으로 맺어질 열매를 기대하며 축하드린다”면서 4회 졸업생을 낸 신학교에도 축하를 보냈다.
김동현 졸업생은 답사를 통해 감사와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로 선한 싸움을 하게 된 저희들을 격려하고 기도해달라”고 인사했다. 이 자리에서 졸업생들은 학교에, 재학생은 졸업생들에게 기념품을 전했다. 이어 신학교 발자취를 담은 영상 관람과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찬송을 부른 후 정관일 분교장 축도로 마쳤다.

< 문의: 416-910-8795, 416-554-7495 >

70년대 초반 시각 장애를 가진 한 가수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히트곡 가운데 ‘어머니는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 그는 정상인으로 태어났지만 성장과정에서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그의 외침은 부모에 대한 푸념 혹은 원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설사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었다 할지라도, 혹은 내 부모가 엉터리로 살다가 나를 사생아처럼 낳았다고 할지라도 내 부모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아무리 폭군이라 할지라도 자식은 아버지를 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마약, 알코올 중독 등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그 자식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끊고 싶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 버리고 싶다고 해도 버려지지 않는 관계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이런 관계라는 것을, 즉 하나님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태 속에서 만드신 분,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분』이십니다(욥 31:15; 엡 2:10).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정확히 알려면 나를 만드신 그 분을 제대로 알아야 되겠지요? 그 분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창1:1; 엡3:9). 창조하실 때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생각도 없이 그냥 창조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리 다 계획하고 준비하신 다음에 창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분이십니다(창2:7). 그래서 그 분은 나의 토기장이 이시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따라서 하나님과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즉 내가 그 분으로부터 태어낳고, 그 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분 없이는 ‘나’라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그 분과 ‘어쩔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끊는다고 끊어지는 관계가 아니며, 버린다고 버려지는 관계도 아니며, 우리가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나는 …이다”(I am …)라고 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7가지가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I am the bread of life. 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I am the light of the world. 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I am the door of the sheep. 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I am the good shepherd. 요11:11-1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요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요14:6), “나는 참 포도나무요”(I am the true vine. 요15:1). 이 모든 것이 ‘함께’ 또는 ‘어쩔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로 나타내 주는 표현들입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나왔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만든 것이 아니고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게서 가지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가지는 스스로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태어났기 때문에 나 혼자서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자신 속에 있기를 원하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주님 안에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 안에 딱 달라붙어 있으라. 절대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끊는다고 끊어지는, 버린다고 버려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싫어도 끝까지 붙어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 안에 우리의 참된 평강과 미래가 있습니다.

<유제시 목사 - 토론토 서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