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기자들이 일제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제작거부에 들어간다. 편파·불공정 보도의 책임자를 퇴진시키라는 기자들의 일치된 요구를 사쪽이 거부하자 ‘최후의 선택’으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기자들의 제작거부로 뉴스 등에서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지만, 이런 파행의 근본적 책임은 일손을 놓은 기자들이 아니라 잘못된 방송을 바로잡을 생각이 전혀 없는 문화방송 경영진에 있음이 자명하다. 
문화방송 기자들은 지난 18~19일 전영배 보도본부장 등의 퇴진과 보도부문 인사 쇄신을 요구하는 제작거부 찬반투표를 벌였고, 투표에 참여한 137명 가운데 84%인 115명의 찬성으로 제작거부를 결정했다. 투표 참여율도 92%로 대단히 높았다. 이런 압도적인 제작거부 결정은 문화방송 보도가 침묵과 왜곡, 불공정으로 얼룩진 데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앞서 문화방송 기자회는 4.27 재보선과 10.26 재보선, 장관 인사청문회, KBS도청 의혹,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등의 보도에서 국민 눈높이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 결과는 <SBS>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추락한 뉴스 시청률에서 쉽게 확인된다.
<한국방송>(KBS) 역시 문화방송 못지않은 강한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방송의 기존 노조와 새노조가 지난 12~18일 실시한 신임투표 결과, 고대영 보도본부장에 대해 보도본부 재적 조합원의 3분의 2가 넘는 70.7%가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한국방송 새노조는 높은 불신임률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 체제에 대해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항의이며, 그동안의 온갖 불공정·편파 보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밝혔다.
 
두 공영방송에 대한 불신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식 사장 임명과 연관이 깊다. 두 방송 구성원들의 움직임을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 확보 차원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할 두 방송의 최고 경영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은 제작거부를 이끌고 있는 박성호 기자회장 등에 대한 징계를 강행중이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두 방송의 사장은 당장 구성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뉴스를 제자리로 돌리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더 이상의 신뢰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검찰 수사가 멈칫거리고 있다고 한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 직후 한나라당이 수사를 의뢰한 지 20일이 지나도록 검찰이 사건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의 수사 경과를 둘러싼 내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검찰이 여전히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적 고려를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그동안 고 의원이 폭로한 300만원 건과 서울지역 당원협의회 사무국장들에게 전달하려던 2000만원 건 등 두갈래로 수사를 벌여왔다. 후자의 경우 안병용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을 구속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으나 전자에 대해선 박희태 국회의장 주변 인물들의 부인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굼뜨다는 데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고 의원을 소환 조사해 2008년 전당대회 경선에 나선 박희태 후보 캠프의 조직 구성을 파악해놓고도 박 의장의 핵심 측근인 조정만 정책수석과 이봉건 정무수석, 함아무개 보좌관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11일이나 지난 뒤에 벌였다. 이들 거주지에 당시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뒷북을 친 것이다. 특히 고 의원이 돈봉투를 돌려준 뒤 전화를 해왔다는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의 집은 압수수색 검토 대상에서도 제외하는 등 적극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둘러싸고,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공천에서 탈락시켰던 인사를 억지로 당 대표로 만들려다 보니 승산이 희박하자 막판에 돈봉투 살포라는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금 출처가 총선자금이니 대선잔금이니 하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사건임에도 검찰 수사는 박 의장이 주변에 쳐놓은 방어막도 뚫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 돈봉투 고발 사건에서 참고인 진술과 폐쇄회로텔레비전 동영상까지 이미 확보하는 등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수사를 벌이는 것과도 비교된다. 
검찰은 그동안 총리실 민간인사찰 사건이나 디도스 사건 등 권력 핵심부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아온 사건에서 꼬리자르기 수사를 벌여온 게 한두번이 아니다. 임기 말인 지금까지도 정치검찰 소리가 나온다면 정말로 참담한 일이다.


[기고] 제주를 변방의 섬으로 놔두나

● 칼럼 2012. 2. 5. 16:32 Posted by SisaHan
설 명절이 지났다. 마을의 촌로들과 청장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덕담을 나누고 서로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았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사진전시회에서 마을의 옛 합동세배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던 한 주민은 “(해군기지 찬반 주민들이) 같이 모여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주민들의 갈등은 깊었다. 
2007년 4월 불과 80여명이 모인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됐고, 이를 안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긴 싸움이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4·3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육지경찰’이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왔고 무더기 연행사태가 일어났다. 풍요롭고 살기가 좋아 제주 사람들이 ‘일강정’(제일강정)이라고 불렀던 마을에서 5명 중 1명이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일강정’ 주민들을 누가 투사로 내몰았는가. 

정부와 해군은 해군기지 후보지 결정 이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국토해양부·제주도는 2009년 4월 제주 해군기지를 15만t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일 제주도와 국방부, 해군 관계자들이 참여한 실무협의회에서 2척은커녕 1척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도록 설계됐음이 드러났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항만 설계에 ‘오류’가 있다는 것도 제주도의 발표다. 

지난해 연말 국회가 올해 해군기지 예산을 96%나 삭감했는데도, 정부와 해군은 공사 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내놓을 획기적인 지원책도 없어 보인다. 국가안보사업이니까 무조건 추진해야 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만 말할 뿐이다. 

제주도의 행보도 문제다. 오류가 확인되면 공사 중단 및 항만설계 변경 요구가 먼저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해군기지 유치에 따른 지역발전계획 예산을 확보해야 주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며 정부에 예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정부로부터는 무시를 당하고, 주민들과는 갈등만 더욱 쌓였다. 

기지 건설이 강행될수록 각계의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작가들은 해군기지 백지화를 요구하며 25박26일 동안 온 나라를 걸었다. 천주교 사제들은 강정마을에서 매일 생명평화미사를 열고 있다. 31일에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지난 10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던 수녀들이 경찰에 무더기 연행된 데 항의하는 시국기도회가 열린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 열강들의 관심을 받아온 섬이다. 오죽하면 해방 직후 미군이 제주도를 ‘지극히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을까. 태평양전쟁 때는 일제의 중국 폭격기지, 4·3 때는 미국의 봉쇄전략 시험무대가 됐다. 1948년 3월 이승만은 미국 육군차관에게 미 해군기지 사용을 제안했다. 1969년 9월에는 정일권 총리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철수할 경우 군사기지로 제공할 의사를 밝히기도 하는 등 제주도의 전략적 요충지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은 모른 채 잊혀질 만하면 거론된다. 

하지만 섬의 숙명을 받아들이기에는 제주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항만설계 오류를 확인한 이상 일단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해군기지 공사장 외벽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제주도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합니다’라는 문구는 지금 주민들에게 공허하게 들리고 있다. 주민 갈등을 치유하고 제주도를 더는 변방의 섬으로 놔두지 않으려면, 정부와 해군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허호준 - 한겨레 신문 사회2부 기자>


[한마당] 두 개의 중국,두 개의 한국

● 칼럼 2012. 1. 30. 18:25 Posted by SisaHan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둔 지난 12일 밤, 타이베이 뒷골목의 소박한 선술집에서 친구들이 마주앉았다. 국민당 마잉주 총통과 도전자인 민진당 차이잉원 주석의 정책에 대해 열띤 토론이 오가고, 누가 이길지에 대해 장난삼아 내기를 걸기도 했다. 화제는 중국 대륙으로 옮겨가 후진타오 주석의 대만 정책에 대한 평가, 올해 말 등장할 시진핑 체제가 어떤 난제를 맞이하고 있는지에 대한 난상토론도 벌어졌다. 빈 술병과 안주 접시가 계속 늘어가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토론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들 4명의 친구는 대만의 젊은 학자와 정치 평론가, 중국과 홍콩의 언론인이었다. 대만과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민진당의 경계를 모두 넘어 자유로운 말들이 오갔다.

지난주 대만 대선 취재차 간 타이베이에서 본 중국과 대만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베이징에서 비행기가 날아오른 뒤 3시간 만에 타이베이에 도착해 곧장 휴대전화를 켜니 자동 로밍으로 대만의 통신망에 접속했다. 곳곳에서 위안화를 타이베이달러로 환전할 수 있었다. 고궁박물관이나 타이베이101 빌딩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184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대만을 여행했다. 
서울과 평양을 직항 항공편으로 오가고, 한국 휴대전화가 북한에서 자동 로밍되고, 한국과 북한 젊은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자유롭게 남북한의 고민을 토론하는 날은 언제나 오게 될까? 남북한의 교류를 전면 금지한 5.24 조처만이라도 언제 풀리게 될까? 엉겁결에 양안 지식인들의 대화에 끼어 앉은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반분열법이나 미사일로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위협하던 중국은 경제 관계와 인적 교류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2008년 ‘양안 화해’를 내건 마잉주 대만 총통의 집권이 계기가 됐다. 현재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중국과의 통일을 원치 않지만, 사람과 경제의 교류를 통해 양안의 동포들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서서히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나의 중국’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두 개의 중국’도 뚜렷이 보였다. 베이징을 출발해 대만에 도착하자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같은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지만,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됐다. 
마잉주 총통은 선거 전 직접 외신기자들 앞에 나와 즉석에서 질문에 답했다. 모든 기자들이 원하는 질문을 자유롭게 던질 수 있었다. 후보들의 모든 일정은 기자들에게 20~30분 단위로 공개됐다. 중국에서 지도자들의 일정이나 가족 관련 뉴스는 ‘국가기밀’이다. 
선거 전날 밤 타이베이 교외의 체육관에서 열린 차이잉원 후보의 집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축제 같은 정치 참여 열기에 놀랐다. 길거리에선 어떤 시민에게 말을 걸어도 선거와 대만의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공무원들의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는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대만 민주주의 효과’는 대만해협 건너 중국인들을 술렁이게 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선거가 중국의 대만 정책의 승리임을 강조하려 했으나, 중국 누리꾼들의 관심은 대만 동포들이 누리는 민주와 자유에 집중됐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내가 죽기 전에 지도자를 선거로 뽑을 수 있으려나’ ‘해협 저편의 열띤 총통 선거를 보니, 질투가 파도처럼 일어난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중국의 유명 부동산회사 완커의 왕스 회장은 직접 대만 선거를 지켜본 감동을 웨이보에 올렸다. 대만에 머물고 있는 중국 친구는 선거날 아침 일찍부터 투표소에 가서 난생처음 국민들이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보고 왔다고 했다. 
중국이 경제와 돈으로 대만을 바꾸고 있다면, 대만은 민주주의와 투명한 사회의 힘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 한겨레신문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