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어제 대법관 후보 추천 접수를 마감함에 따라 후보 선정 작업이 본격화했다. 6월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면 의견수렴과 검증작업을 거쳐 3배수 이상의 후보를 추려 대법원장에게 추천하게 된다. 7월10일 임기가 끝나는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의 후임이니 모두 12명 정도의 후보를 추천해서 이 가운데 4명을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현 대법원이 보수성향 대법관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제청권자인 대법원장과 후보추천위원들은 이번 기회에 이런 우려를 불식하지 않으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 심각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부분적으로나마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시도함으로써 법원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다. 참여연대가 당시 판례를 분석한 결과 전원합의체 판결 건수가 대폭 늘어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 보호, 기본권 관련 사건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담은 판결도 많이 나온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서울대 출신 보수성향 남성’ 위주의 과거식 인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여성인 박보영 대법관을 기용하는 등 일부 변화를 모색하긴 했으나 전체적인 다양화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판결과 법원행정 면에서도 최근의 전교조 시국선언 전원합의체 유죄 판결이나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 등에서 보듯 보수적·권위적이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양화한다면서 출신 대학과 지역을 안배하는 식의 ‘무늬만 다양화’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보수 일변도의 불균형을 깨고 보수와 진보를 안배하는 가치의 다양화가 이뤄져야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노동·환경·여성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대법관도 필요하다. 또 내부에서 발탁하는 경우에도 사법시험 성적 꼬리표 그대로, 법원행정처에서 키워온 엘리트 판사 일변도의 인사는 지양해야 한다.
 
검찰 출신 인사를 1명씩 포함해온 관행에 대해서도 이제는 한번쯤 평가해봐야 한다. 모양 갖추기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면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외부 인사를 판검사 출신 중에서만 발탁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의 검토가 필요하다.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심사 과정과 기준을 공개하고 공청회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제안도 숙고해보기 바란다.


새누리당이 어제 당명 개정 후 첫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다섯달가량의 비상대책위 체제를 마감했다. 하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뽑힌 새 지도부가 ‘친박’ 일색이어서 앞으로도 박근혜 의원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공식적으로 박 의원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신임 황우여 대표부터 친박계로 분류된다. 최근 박 의원의 최측근으로 떠오른 황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도 친박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선출된 최고위원들도 이혜훈 의원 등을 비롯해 대부분 친박 쪽이며, 친이계로는 고작 심재철 의원 한 명이 포함됐을 뿐이다. 이미 원내대표(이한구), 정책위의장(진영) 등이 친박인데다, 당내에서 떠도는 전망처럼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마저 친박계로 채워지면 새누리당은 명실상부한 ‘박근혜당’이 된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이런 쏠림 현상은 여러모로 우려를 자아낸다. 새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하나는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일인데 공평무사한 경선 관리가 되겠는가 하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당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경선규칙 개정 문제부터 그렇다. 황 대표는 다른 대선주자들이 주장하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 “심층적으로 생각을 해야지 함부로 하기는 어렵다” “시기가 촉박하다”는 등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새 지도부가 경선규칙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공정한 중재자 노릇을 하기보다는 ‘박심’을 살피고 그 뜻을 충실히 따를 것이라는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엿보인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사실상 박근혜 의원의 ‘대선 캠프’ 노릇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만이 나오게 돼 있다.
 
새누리당의 ‘맥 빠진 선거’의 폐해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충분히 증명됐다. 전당대회 기간 동안 새누리당에서는 당의 미래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나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과가 뻔한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냉담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소통 부재의 지적을 받아온 새누리당이 날이 갈수록 박 의원의 일인정당으로 굳어져 가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어쨌든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체제를 갖춘 새누리당은 방송사 동시파업 사태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산적한 현안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황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가 원내 제1당에 걸맞은 책임감과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한마당] ‘무한도전’보다 소중한 것

● 칼럼 2012. 5. 20. 17:41 Posted by SisaHan
오늘 <한겨레>가 창간 24돌을 맞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24년을 견디며 민주언론의 길을 걸어온 우리 스스로를 격려하고 축하해야 할 날이건만, 묵직한 통증이 가슴을 짓누른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언론자유 투쟁을 벌인 선배 언론인들과 그들을 지지해준 국민들 덕에 한겨레가 태어난 뒤 4반세기 가까이 흘렀음에도, 언론 현실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의 공기인 언론을 사유화하려는 권력과 자본의 행태는 오히려 더 뻔뻔해졌다. 특히 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는 이명박 정권한텐 언론의 공공성 따윈 애초부터 안중에 없었다. 언론정책의 유일한 목표는 언론을 정권 안보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정권을 등에 업고 제 뱃속만 불려온 것으로 드러난 최시중·신재민 같은 사람이 언론정책 담당자로 중용되고,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들이 공영방송 사장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은 이런 인식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중 압권은 ‘청와대 조인트설’이나 특정 무용인과의 부적절한 유착 의혹 등으로, 도덕 불감증, 공공성 불감증 정권의 아바타가 된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다. <문화방송> <한국방송> <연합뉴스> <와이티엔> 등 공영(성)언론들의 파업은 이런 몰염치한 정권과 그 지킴이로 나선 낙하산 사장들의 전횡에 대한 분노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19대 국회를 이끌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번 파업을 ‘불법 정치파업’이자 각 언론사 내부문제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공정성과 객관성은 공영매체의 알파와 오메가다. 하지만 낙하산 사장이 들어선 이래 공영(성) 매체에선 그 알파와 오메가가 다 흔들렸다. 지난 주말 문화방송 노조가 연 방송대학에 나온 김태호 피디는 ‘무한도전’을 못 봐 아쉽다는 시민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면서도 “7년 동안 첫 시청자로서 즐기고 사랑했던 무한도전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기에”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했다. ‘무한도전보다 더 소중한 것’은 물론 공정방송이다. 이 정권에 의한 공정방송 훼손은 여당 관계자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4대강 사업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공영방송의 보도를 보면 정권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언론을 통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인정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 대표의 발언이 새누리당의 실세인 박근혜 의원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박 의원은 지금까지 언론파업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언론파업으로 쏟아져 나온 이 정권의 비리에 대한 보도가 부실해졌던 덕분에 총선에서 예상외의 압승을 거뒀으니, 파업을 방치하는 게 대선에 유리할 것이라고 주판알을 튀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이 근심걱정 없이 살면서 생업에 즐겁게 종사하는 안거낙업(安居樂業)을 이루는 것을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밝힌 박 의원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아버지(박정희) 때 못 이룬 이 나라 민주정치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치인의 자세도 아니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지도자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는 박 의원의 민주적 지도자 자질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의 측근인 김무성 의원조차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실정이다. 박 의원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가 낮은 것은 이런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언론파업은 민주주의에 대한 박 의원의 진정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호기다. 자유언론을 실천한 언론인들을 거리로 내몬 아버지 박정희와 달리 진정 이 나라 민주정치를 꽃피울 뜻이 있다면, 새 국회 개원 전에 새누리당이 주도적으로 파업 해결에 나서게 해야 한다. 박 의원이 힘을 쏟아 김태호 피디가, 서수민 피디가 ‘안거낙업’할 수 있다면, 젊은 시청자들도 박 의원을 다시 보지 않을까.
 
<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


[1500자 칼럼] 참으로 어려운 것

● 칼럼 2012. 5. 14. 10:03 Posted by SisaHan
이 세상에는 쉬운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어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또는 어떤 논리에 따라 이렇다 저렇다 하고 정의를 내리며 말씀들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 어렵다고 이야기하면 단연 인간관계가 아닐까? 모두에게 나라는 자아와 그 자존심 때문에 이리저리 부닥치고 그래서 우정도 의리도 사라지고 백년해로하겠다고 했던 부부 사이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충성을 약속하면서도 어느 날 교회를 떠나고 불신앙의 길에 들어서는 게 오늘의 우리들이 아닌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부부라고 할 수 있다. 부부란 무엇인가? 결혼하기 전의 자신과 함께 했던 가족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나면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대화를 나눈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갈라설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면서 결국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에는 거기에 자신이 문제의 핵이라는 결론을 내려 보면서 자신이 분명히 알고 지켜야 할 어떤 룰 또는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중국의 고사에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자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 있고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반드시 잊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잠시 이 글을 읽는 것을 멈추시고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있겠는가? 과연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에 각각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이미 위에서 이야기한 그대로 인간관계에서만 생각해 보자.
머뭇거리며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상대를 향해 그는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다.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고 반면에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게 베푼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고 내가 남에게 베푼 은혜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가졌던 답과 비교하면 어떨까? 사람이 나를 미워할 때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것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조심하자는 말과 함께 자신이 남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진정으로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길 때 남에게 이런저런 소문을 냄으로 사람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은혜를 베풀었을 때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은 어쩌면 고맙다는 소리를 듣기 원하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겠고 나 자신 역시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일들에 감사한 마음이 없고 당연한 듯이 생각하면 그의 인간관계는 뻔하다. 또한 내가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때는 속히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 대해 바램도 없어지고 보상이 없어도 섭섭하지 않는 것이다.
어렵다고 말하는 인간관계, 그것이 부부 사이든 형제 사이든 같은 교회의 성도끼리든 한 번 적용해 볼 만하지 않는가? 이민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교회 내의 갈등 또는 한인 단체간의 문제들이 모두 어디서 생길까? 우리 한 번 이 룰을 적용해서 자신을 추스르면 어떨까? 그런데 이 룰을 적용하면서 살아가기는 어떨까? 적용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고 말해 보는 것이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