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탈북자의 신상이 언론에 구체적으로 보도되는 바람에 북한의 가족이 우리의 국가정보원 격인 보위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관련 정보를 공개한 국정원 쪽은 “사업 범위 안의 공개”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해당 기자도 “그 기사 때문에 그런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 신상 공개로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게 새삼스런 얘기가 아닌데도 여전히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탈북자 문제는 가족들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달 26일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회담 이후 베이징 영사관에 머무르던 탈북자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등 경색국면이 풀릴 조짐도 있었으나 여전히 근본적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국정원에서 탈북자 ㄱ씨에 대한 1차 신상조사가 시작된 지 7일과 15일 만에 한 언론에 탈북 소식이 보도돼, 실종으로 돼 있던 그의 탈북 사실이 확인되는 바람에 가족들이 조사를 받은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ㄱ씨는 거액을 주고 북의 가족과 통화하면서 이 사실을 알았고, 가족들이 교화소나 수용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각한 심적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 문제를 알림으로써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운동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1999년에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는 전원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대신 탈북을 유도하거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함께 천명한 바 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중국과 물밑 접촉을 통해 수많은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남북관계도 경색되면서 탈북자의 귀국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시민들이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나 단식 등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은 그만큼 정부가 자기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더구나 모든 것을 걸고 탈북을 감행한 북한 주민들이 당국의 무신경한 업무처리로 고통을 겪는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 몫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철저한 경위 조사를 해야 한다. 더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처함은 물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방통대군, 전천후 폭격기 등 온갖 화려한 별명 속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정권 최고 실세의 초라한 말로다. “물이 넘치면 (이 대통령의) 제방이 되고, 바람이 불면 병풍이 되겠다”던 말과는 정반대로 그는 스스로 정권의 제방을 무너뜨린 거대한 탁류의 진원지가 됐다.
최 전 위원장의 구속은 태생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정권의 비참한 행로를 잘 보여준다. 음습한 돈은 이미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부터 비정상적인 통로를 따라 밀실로 흘러들어갔다. 검은돈에 대한 도덕적 경각심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돈을 먹이고 돈을 먹는 추악한 관계 속에서 정권은 병들어갔다.
 
최 전 위원장의 구속은 이 정권이 저지른 온갖 부정비리에 대한 진상규명의 시작일 뿐이다. 검은돈을 뿌린 곳이 파이시티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것임은 상식에 속한다. 실제로 최 전 위원장 보좌관 박배수씨가 이국철 에스엘에스(SLS)그룹 회장한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됐고, 그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씨는 교육방송(EBS) 이사 선임 로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해외도피중이다. 이런 돈의 종착지가 최 전 위원장이 아닌지를 차근차근 밝혀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최 전 위원장의 개인비리 차원을 떠나 이명박 후보 캠프의 불법자금 조성이 아니었는지를 밝히는 것도 검찰의 책무다.
25일 검찰에 소환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운명도 최 전 위원장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의 ‘자금줄’로 지목되는 제이엔테크의 이아무개 회장이 박 전 차관의 돈을 세탁해준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이 자금세탁 경로를 집중수사하면 박 전 차관이 파이시티 이외에 다른 기업 등에서 받은 불법자금도 속속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차관-제이엔테크-포스코의 유착관계, 정권 주변 인사들의 포스코 이권 챙기기 의혹도 명백히 밝힐 문제다.
 
박 전 차관의 혐의는 단순한 뇌물수수나 이권개입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국무총리실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의 ‘총사령탑’ 의혹은 어떤 면에서는 불법자금 수수보다 더 진실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검찰이 최근 박 전 차관의 집과 선거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한 만큼 민간인 사찰에 대한 그의 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를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이제 더 머뭇거리지 말고 사찰의 몸통 밝히기 수사에 마침표를 찍기 바란다.


고등학생 10명 중 9명이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며, 10명 중 7명은 법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렇지 않다고, 오해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 참담함과 무력감이 든다. 성인을 대상으로 같은 설문조사를 한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까? 대기업 회장이나 정치인들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형량을 적게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사면된다. 경제발전에 공헌을 했다거나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청소년들은 숱하게 보고 자랐다. 
청소년 10명 중 6명은 ‘나를 때리면 나도 때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답했다. 정당방위의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나보다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이라면? 나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법이란 있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법을 가장 안 지키는 집단으로 청소년의 79%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5%가 법조인을 꼽았다. 법을 가장 안 지키는 집단으로 법을 만드는 자들과 법을 집행하는 자들을 꼽다니! 청소년의 눈은 너무 정확해서 징그럽고,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든다. 
십대부터 노년층까지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들 안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바로 ‘돈’일 것이다. 청소년들은 돈이 많든 적든 돈 때문에 걱정하고 짜증내고 억울해하는 어른들을 보고 자랐고, 재력과 힘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선거철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준다. 죽은 경제가 백설공주처럼 되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키스 한 방으로! 하지만 백설공주가 살아난다고 해서 일곱 난쟁이의 삶이 윤택해지진 않는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건 백설공주와 왕자뿐이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 말이다.
위장전입 하나만으로도 국가 고위직에서 물러나던 시대는 지나갔다. 현 정권 정치인들의 불법과 탈법을 보고 많은 이들이 혀를 내둘렀지만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버젓이 권력을 휘둘렀다. 앞서 언급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청소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돈과 권력을 얻으려면 법을 어길 수밖에 없고, 돈과 권력을 얻은 뒤에는 법 위에 군림하는 사회. 청소년이 파악하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이 한창 수사 중이다. 그는 대통령의 멘토이자 최측근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검찰은 그의 죄를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밝혀낼 것이며, 그에게 어떤 벌을 내릴 것인가. 관련 인물을 어느 선까지 추적할 것이며, 만약 최 전 위원장이 형을 받게 된다면 얼마 만에 사면될까. 그리고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얼마나 믿을 것인가. 수사 대상은 고위 공직자였던 자이고, 수사를 하는 자는 법조인이다. 청소년이, 법을 가장 안 지키는 대상으로 꼽은 자들 말이다. 
돈과 권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90%의 청소년들은 곧 성인이 될 것이고, 그들 중에서 법조인도, 공무원도, 일반 직장인도 나올 것이다. 
그들 역시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며, 유권자가 될 것이다. 한번 새겨진 인식이 뒤바뀌기란 쉽지 않고, 사회는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청소년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너희들은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에 영향을 주는 사회를 정당하고 옳은 사회라 생각하느냐고. 아니라는 대답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짐작 혹은 희망해 본다.

< 최진영 소설가 >


[한마당] 지도자의 자격과 공공의식

● 칼럼 2012. 4. 27. 17:57 Posted by SisaHan
김문수 경기지사가 엊그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새누리당에선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도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고, 민주통합당에서도 문재인 국회의원 당선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속속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여기에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재야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감안한다면, 올해 대선 후보군은 벌써 1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사람들은 적어도 나라 전체를 염두에 두고 비전을 가꿔왔을 터이니. 하지만 후보군 가운데 정말 우리의 삶을 맡겨도 좋겠다는 확신을 주는 이는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앞으로 검증과정에서 나라를 이끌 훌륭한 경륜을 갖춘 분이 드러나길 바랄 뿐이다.
대통령책임제 나라에서 대통령을 잘 뽑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올해 대선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떤 점에선 여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새 대통령이 단순히 이명박 정권이 지난 4년간 저질러놓은 난장판을 뒷설거지하는 일을 넘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평화·복지·공정에 바탕한 새로운 ‘2013 체제’를 만들어갈 책무를 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질은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적 품성,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해결능력,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소통능력 등 다양한 자질과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선에 나선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자질을 갖추는 것에 더해 정치에 관한 공자의 말씀을 경청해봤으면 좋겠다. 공자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자공에게 “먹을 것을 충족시키고, 군사를 충분히 갖추며,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공이 그 가운데 부득이 뭔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가장 먼저 버릴 것은 군사이고 그다음은 먹을 것이며 마지막까지 저버려선 안 될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고 했다. 국방정책이나 경제정책 등 개별 정책을 잘하는 능력이 있어도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국민의 믿음을 얻는 일은 그다지 녹록한 일이 아닌 듯하다. 정부 수립 이래 역대 대통령을 돌아봐도 그들 가운데 누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승만·박정희는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해 여러 차례 약속을 뒤엎었고, 전두환은 민주·정의 등 정권의 속성에 반하는 기치를 내세움으로써 국민을 우롱했다. 그 이후의 대통령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얻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부족도 그 중요한 원인 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 역대 대통령의 상당수는 그것을 사적 이익에 동원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 대표적 예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고소영’이니 ‘만사형통’이니 하는 말들이 회자되고,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단죄를 받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것,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사에 자신의 특보를 앉힌 것이나, 자신한테 비판적인 민간인을 사찰하는 데 공무원을 동원한 것은 그의 공공의식 결여의 증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대통령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회의원 당선인 문대성·김형태 씨를 보자. 그들의 공공의식 수준은 국회의원이란 공적 책임을 맡겠다면서 복사 수준의 표절을 하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제수 성폭행 미수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제시돼도 이를 부인하며, 오로지 ‘박근혜 위원장과 새누리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탈당한다고 할 정도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공직추구자의 도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차기 대통령에겐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만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