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정을 부탁해!

● 칼럼 2012. 3. 23. 20:36 Posted by SisaHan
제주도는 나의 제2의 고향이다. 나는 1970년대에 해녀 사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혜롭고 당당한 여인들과 ‘불턱’에 둘러앉아 지낸 시간 속에서 나는 노동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육지의 공기가 답답해지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제주 길을 걷는 올레꾼이 된다.
3월20일에 해군기지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국토해양부 소관이던 공유수면 매립공사 허가·취소권이 지난해 9월 제주특별자치도로 넘어갔기 때문에 자치도가 매립공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일에 매립공사 정지 처분 예고에 대한 해군의 답변을 들은 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최종 처분을 내릴 방침이었다. 그 절차를 하루 앞두고 해군기지 시공사 쪽은 구럼비 노출암 발파를 감행했다. 그들은 누구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가? 한국 개발독재 군사주의의 망령과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밀어붙이기식 군사작전’이 더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강정 주민과 강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돈으로 일부 주민들을 현혹해 마을을 분열시킨 후, 빈집을 철거해 위협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개발을 밀어붙였던 1970년대식 재개발 각본을 국민들도 이미 알고 있다. 세계 주민들의 시선 또한 강정에 집중되고 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노엄 촘스키, 로버트 레드퍼드 등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의 인터뷰들이 이어지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미국 의회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제주해군기지가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부로서 중국과 대결 구도를 강화시킬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도 구럼비 지킴이 송강호 박사에 관한 특집을 통해 이 사건의 전모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한국이 평화로운 글로벌 시대의 주체가 되길 원한다면 이 문제는 당연히 세계 주민들의 존경을 받는 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가 세계 관광객들을 초대하여 평화와 관광의 섬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려 한다면 더더욱 제주의 이미지를 폭력과 군사주의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강정 상황에 신경을 쓰는 것은 ‘프랙털’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 강정의 문제를 풀면 다른 무수한 문제도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의 문제가 풀리면 핵무기와 원전 문제도, 뉴타운과 재개발의 문제도, 청년실업 문제도 풀리게 되어 있다. 한 개의 고원이 만들어지면 천 개의 고원이 만들어진다.
제주의 지인에게 비장한 마음으로 전화를 했더니 구럼비 바위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450년 된 강정마을 주민들은 그보다 더 단단하니 걱정 놓으라고 했다. 기지 장소를 그곳으로 선정한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라면서 올여름에도 그곳에서 찬란한 태양 아래 바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의 씩씩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30년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른 뒤 고대 그리스가 문화의 꽃을 피웠듯, 모진 갈등 끝에 제주가 평화와 생명의 꽃을 피울 것이라 믿게 되었다.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을 때 공동체의 비극은 불가피하다. 나는 ‘무기와 돈’으로 ‘신’을 죽이려는 불경한 이들을 용서해야 할지 고민하며 강정마을에 갈 것이다.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이 대림이나 삼성 등의 재벌 시공사인지, 해군 총수인지, 현직 대통령인지, 애초에 이를 기획했던 김영삼 정권인지, 강정을 지목했던 노무현 정권의 주역들인지, 아니면 미국과 관련된 세력인지 진상을 가려내기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그곳에 갈 것이다. 함께 난감한 상황을 나누기 위해 나는 그곳에 갈 것이다.
나는 당장의 이익에 목말라 언 발에 오줌을 지려대는 못난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갈 것이다. 강정마을 어귀에서 아이들과 함께 ‘붉은발말똥게’ 모빌도 만들고 ‘남방큰돌고래’ 인형을 만드는 바느질도 할 것이다. 폭파는 며칠이지만 강정의 바닷가를 만든 것은 수만년의 시간이다. 장구한 자연과 선조들과 앞으로 태어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한다. 봄이 오고 있다.

<조한 혜 정 - 연세대 교수, 문화인류학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증거인멸을 지시한 “몸통”이라면서도 불법사찰에 대해선 “청와대와 나는 무관하다”고 방어막을 쳤다. 유죄가 확실해진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선 책임지고 총대를 메되, 불법사찰과 자금문제 등으로 청와대로 불똥이 튀는 것은 막겠다는 취지가 강하게 읽힌다. 그러나 그동안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이 공개한 녹음과 인터뷰 내용 등에 비춰보면 소가 웃을 일이다.
그의 주장처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증거인멸이나 은폐조작과 무관하다면 장석명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왜 장 전 주무관에게 5000만원을 제공하면서까지 입막음을 하려 했는지 설명이 안 된다. 2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게 줬다가 최근 돌려받은 데 대해서도 “선의로 준 것이지 입막음용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정황에 비춰보면 사실로 믿기 어렵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 민주통합당에 “정치공작”이라는 등 적반하장의 정치공세를 퍼붓는 걸 보면 정권 핵심부와 상당한 조율을 거친 인상이 짙다.
 
그의 주장과 달리 그동안 드러난 사실을 되짚어보면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손쉽게 동원하고 거액을 조달해가며 사건의 실체를 은폐조작하려 했던 거대한 힘의 존재가 느껴진다. 은폐조작 혐의를 받는 청와대와 검찰에 이어 어제는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의 부탁으로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됐다는 5000만원은 국세청 간부가 조달한 돈이라는 <서울신문> 보도가 나왔다. 엊그제는 노동부 공무원이 최종석 전 행정관의 지시로 장 전 주무관에게 변호사 비용 4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지금까지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됐거나 시도된 자금만 해도, 지난해 4월 2심 공판 직후 장 비서관이 만들어줬다는 5000만원, 진경락 전 총리실 과장이 제안했던 2000만원, 이 전 비서관이 건넸다 돌려받은 2000만원, 최 전 행정관이 조성한 변호사 비용 4000만원(2500만원 반환) 등 1억3000만원 규모다. 공무원들이 합법적으로 이런 거액을 만들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자기 사재를 털었을 리도 없다.
 
의혹은 청와대를 향해 번져가는데 검찰 수사는 게걸음이다. 이 전 비서관의 회견을 보니 정권 핵심부는 아직도 청와대 비서관 수준에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하리라고 판단하는 모양이지만 착각이다. 검찰 수사에 이어 국정조사든 특검수사든 후속 조처가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제부터는 공직자들의 은폐 시도 하나하나가 범죄행위다. 더 이상 죗값을 벌지 말기 바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 비례대표 공천자 명단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로써 총선에 나설 주요 정당의 후보자 진용이 거의 윤곽을 드러냈다. 여야는 곧 당을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총선은 20년 주기로 대선과 같은 해에 치른다는 점, 국내외적으로 경제·안보 환경의 틀이 크게 바뀌는 시기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2013 체제’를 이끌 핵심 인물군이 될 수밖에 없는 총선 후보들에 대한 기대치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구 공천에 이은 여야의 비례대표 공천을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여야가 최소한 비례 공천에선 지역 공천 때 나온 ‘친박 공천’, ‘친노 부활’이라는 비판을 의식해서라도 제대로 된 공천을 하겠지 하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비례대표는 훌륭한 자질이 있으나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힘든 직능·계층·세대 대표를 의회에 진출시켜 의정활동에 다양한 이해를 고루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다. 또 당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실현할 인물이 지역구에 당선되기 어려운 사정이라면 그런 인물을 발탁하는 통로가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공천 후보를 보면, 무늬는 직능·지역을 배려한 듯하나 속살은 대선용 ‘박근혜 치어리더’임을 알 수 있다. 언론계 대표로 뽑힌 이상일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불과 10여일 전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초청 관훈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고, 바로 전날까지 그 신문의 정치 사설을 쓰던 언론인이다. 정강·정책까지 뜯어고치며 강조했던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후보가 전혀 없는 것도 그 구호가 총선·대선 승리를 위한 미끼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쌀 직불금 문제로 낙마한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을 보건계의 대표인 양 등용한 것도 박 위원장이 내세우는 도덕성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병욱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이 밝힌 계파 안배 배제 원칙과 개혁성, 도덕성 등 5가지 기준이 최고위원회에서 훼손되고 뒤죽박죽이 됐다. 공심위에서 교육개혁 진영의 대표로 당선권에 추천된 것으로 알려진 정대화 교수가 밀려나고, 유종일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은 공천에서 아예 배제됐다. 이는 제사보다 젯밥에 더 신경을 쓰는 최고위원들의 계파 이익 챙기기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러려면 왜 외부 인사를 끌어들여 공심위를 구성했느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마당] 민중을 배반하는 권력

● 칼럼 2012. 3. 23. 20:12 Posted by SisaHan
정치권력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치인이라는 인간들은 우리 이웃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하기는커녕 자신이나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루 평균 48명이나 자살할 정도로 생계의 위험에 노출된 사회라면, 대통령을 포함해서 국민을 대변한다고 자임하는 모든 대표자들은 할복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설상가상! 오히려 그들은 우리 이웃들의 신음소리와 피냄새를 가리려고 했다. 자신들은 자신 이외에 누구도 대변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 폭로될까봐 두려웠던 것일까. 
당연히 언론에 재갈을 물릴 일이다. 지금까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정점으로 현 정권은 집요하게 언론에 재갈을 물려 자신들의 치부를 애써 가려왔다. 
지금 우리는 해방 이후 유례가 없었던 일을 경험하고 있다. 공정언론을 요구하는 언론인들의 파업이 MBC, KBS, 그리고 YTN으로 들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세 언론사가 공동 조직을 만들어 연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 각각, 그리고 각 언론사의 언론인 각각이 자발적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현 정권의 언론탄압이 모든 언론사에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언론인 개개인의 내면 차원에까지 이루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해직의 위험에 노출되면서까지 언론인들이 차가운 방송사 로비에 앉아 언론의 공정성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이 우리 이웃들의 삶을 대변하기는커녕 왜곡할 때, 언론인은 이웃들의 척박한 삶의 이야기와 그 울분을 대신 말해주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사랑 때문이다.
너무나 힘든 일, 그래서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을 할 때만큼 뿌듯한 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 언론인들은 제대로 알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우리 이웃들을 사랑할 수도, 그들로부터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고라는 칼날이 무서워 권력과 사장의 나팔수가 되는 순간, 언론인들은 우리 이웃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얻을 수가 없다.
마마보이를 아는가? 스스로 주인으로 살기보다 어머니의 손님인 것처럼 살아가는 남자를 말한다. 과연 마마보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어느 여인이 마마보이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사실 그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결혼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남편의 모든 결정은 그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할 테니까.
사랑하는 여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기에, 마마보이는 자신을 결코 사랑할 수가 없다. 
아직도 마마보이 신세를 면하지 못한 몇몇 사장들에게 너무 쫄 필요는 없다. 아니 측은하게 생각해야 한다. 권력이란 엄마를 믿고 설쳐대는 모습에 무얼 그리 일희일비하는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있지만, 그리고 해고의 협박이 비수처럼 날아다니지만, 공정언론을 외치는 언론인들, 당신들은 지금 그 자체로도 당당한 어른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제 당신들은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당당해지자. 조금만 있으면 이웃들을 제대로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환하게 웃으며 권력에게 그리고 사장에게 그리고 동료에게 우아하게 외쳤으면 한다. “나는 언론인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들도 그대 언론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이다.

<강신주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