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벌어졌다. 북한은 3일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6차 핵실험이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핵실험이다. 또 규모 5.7로, 북한 역대 핵실험 중 최대 규모다. 이번 수소탄 핵실험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의도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이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압박해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핵실험이 기술적 측면에서 상당히 고도화된 수준까지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확고한 재진입 기술을 보이는 것이다. 경제 제재를 비웃듯 거듭된 미사일 실험에 이어 1년 만에 핵실험까지 감행하고 나섰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청이나 제재는 아랑곳 않은 채 자신들의 ‘핵 시간표’ 일정에 따라 차근차근 핵능력을 쌓아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 방법이 정권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붕괴에 대한 불안감과 핵무기를 통해 이를 타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기묘하고 비합리적으로 결합한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핵무기 개발을 유일 자구책으로 삼고, 정권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특히 김정은 정권 들어 가속도가 붙는 흐름이어서 더욱 우려스럽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 당시인 지난 2006년과 2009년 1, 2차 핵실험을 했는데,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2013년 이후 4년 만에 4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 고도화로 매진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이 ‘군사적 옵션’은 절대 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또 하나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도 ‘전쟁=파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해주고 있는 덕도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핵능력이 국제사회가 감내할 수준을 점점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북한의 이런 통상적 계산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이번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는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더욱 강도 높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군사적 옵션’, ‘전략자산 전개’ 등의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이다. 정부 안에서‘북한 완전고립’ 등을 언급하는 등 강경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대화’의 손짓을 계속 보내왔던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정권 지배층의 안위를 위해 북한 주민은 물론 한반도 전체를 볼모로 잡고, 최악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토론이 불가능한 북한 체제 속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더욱 우려스럽다. 김정은은 지금이라도 핵무기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오판을 거두기 바란다.


[1500자 칼럼] 이열치열 민어탕

● 칼럼 2017. 8. 30. 12:57 Posted by SisaHan

팔월도 하순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여름은 푹푹 쪄야 제 맛이건만 올해는 유난히 잦은 비와 초가을 같은 선선한 날씨에 폭염의 계절이 꼬리를 내리는 듯하다. 올 들어 기껏 두어 차례 덮은 인조견 이불을 한직으로 돌려놓고 차렵이불로 삼복을 났더니 서걱거리는 인견의 차가운 감촉이 아쉬워 곁눈질만 하게 된다. 계절은 어쩌다 부족한 듯 다녀가도 우리의 생체 리듬은 그에 상관없이 예년과 똑 같은 반응을 보인다. 평소에는 음식 투정이라곤 않는 남편이 이것저것 색다른 메뉴를 들먹이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더 지쳐 보이는 가족들, 활동량에 비해 식욕이 부진한 계절이다. 문득 여름 보양식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다. 대한민국 3대 여름 보양식은 민어탕, 도미탕, 보신탕 순 이라고 한다. 이곳 캐나다에선 이름뿐인 식자재들이다. 자칫하다간 가족의 건강까지 우려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달아난 입맛을 찾아 올 예전의 그 복달임 음식이 부쩍 그립다. 늘 이맘때면 더욱 생각나는 여름 보양식, 시어머니의 구수하고 담백한 민어탕 생각이 간절하다.


 초복이 가까워지면 시어머니는 수산시장과 연이 닿은 이웃집에 전화를 하여 싱싱하고 큼직한 민어를 미리 수소문 하게했다. 민어는 무엇보다 커야 맛이 달다며 가격에 상관없이 큰 놈을 구해달라고 재차 신신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백성의 고기라하여 민어(民魚)라는 이름이 붙은 생선이건만 결혼 초기인 그 옛날에도 여간 귀하지 않아 배달 전화가 오기까지 시어머니는 며칠 동안 노심초사 하셨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이면 늘 고생이 심하셨던 시어머니는 민어 배달이 오면 가족들 불러들이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서울에서 대대로 살아온 시댁의 복 달임은 민어탕이었는데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이마저 생소한 풍경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어머니의 뒷시중을 드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림잡아 열 댓 명이 모이게 될 답답한 집안에서 고작 생선 한 마리로 어떻게 한여름 더위를 다스릴까. 그리곤 내 어린 날 남해안 바닷가에서의 편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온가족이 조그만 통통배를 타고 댓섬으로 해수욕 가던 때의 설렘,
아버지의 낚시 다래끼에서 펄떡이는 생선을 꺼내어 손질하시던 어머니 모습,
큰언니가 밀어주는 까만 튜브를 타고 처음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갔던 아찔한 순간,
진종일 물속에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씩 던져 주던 시고 짠 풋사과의 아련한 맛, 등
삼복 더위하면 떠오르는 짙푸른 기억 위로 이열치열 민어 매운탕이 어떤 형태로 자리매김 될 지 궁금했다.
기본적인 손질을 마친 민어가 부엌으로 들여지면 시어머니는 부위별 해체를 서두르셨다. 살집이 가장 깊은 부분은 양념구이 용으로, 담백하고 차진 등살은 횟감으로 그리고 남은 살과 부레 껍질은 분리하여 따로 준비해 두셨다. 나머지 부산물은 토막을 쳐 미리 끓여 놓은 육수에 켜켜이 앉힌 다음 불을 켜고 나서야 겨우 한시름 놓는 과정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어머니의 수작업을 지켜보는 내내 민어를 얼마나 신령스럽게 다루는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식구가 둘러앉은 후끈한 열기 속에서 잘 끓인 민어탕을 한 사발씩 받으면 젓가락은 우선 민어회부터 집어 들었다. 싱싱하다 못해 은은한 무지갯빛 까지 감도는 흰 살 한 점을 겨자 장에 찍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한 식감, 고소함까지 겸비한 맛은 제주 앞바다 푸른 물이 입안에서 출렁이게 했다.
민어의 모든 것이 농축된 걸쭉한 국물에 기름기까지 어우러진 탕은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하여 넋 놓고 먹다 보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언뜻 시어머니를 뵈니 윤기 흐르는 모습으로 탕에 밥을 말고 계셨다. 평소 생선 비린내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당신이셨는데… 그리곤 그 여름은 온 집안이 평온했다.
‘밥이 곧 보약’ 이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새삼 상기하며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입 맛 돌아 올 먹거리 마련에 힘써야 하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마당] 순백의 양심과 훼절의 번민

● 칼럼 2017. 8. 30. 12:56 Posted by SisaHan

인생의 수많은 고민과 갈등 가운데 정의와 불의 사이의 줄타기가 아마 가장 힘들고 심각한 부분일 것이다. 타협을 할까 말까, 원칙과 소신을 고수할 것인가, 굽히고 훼절할 것인가 하는 양심의 기로가 때로는 생사를 가름하는 선택이 되기도 할 뿐더러, 양심과 도덕에 그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명예가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한 때문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요 역적이 된 이완용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조국을 배반했을까? 물론 국운에 가망이 없다는 판단과 확신 하에 변절한 것일 테지만, 한때 독립협회장까지 지낸 그가 일본의 앞잡이로 변신하기까지는 그 나름 수없이 고심했을 것이다. 망국의 충신으로 남느냐, 강국에 부역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느냐… 결과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추한 인간의 반열에 오르고 말았지만.
망해가는 고려왕조에 충성을 다한 최영 장군, 그리고 정몽주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번민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조카 단종을 폐한 세조의 역모에 동참을 강요당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기까지 사육신의 충과 불충, 정의와 불의 사이의 심적 갈등이 없었다면 그 또한 거짓일 것이다. 목숨을 내건 엄청난 번뇌의 늪에서 ‘의로움’을 꺾지않은 그들의 이름과 행적은 충신의 기록으로 영원히 남았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역시 위화도 회군을 결단하며 ‘역사의 대역죄인 아니냐’는 심경의 고뇌가 깊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국권의 영속성보다는 개인적 야망을 대의로 삼아 역성혁명을 감행한다. 불충과 반역자의 대명사로 남을 일이지만 거사의 성공과 5백년 왕조를 이루는 바람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의 원조격 선례를 만들었다.
1995년 7월 한국검찰은 전두환을 내란죄 등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국민이 들끓자 5개월 뒤 헌법재판소가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로 그를 법정에 세웠지만, ‘성공한 쿠데타’논리는 사회 구석구석과 사람들 심리에 이미 폭넓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불의가 통용될 수 있다는 것, 정의와 선함과 진실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양심의 타협과 합리화였고,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편의주의와 성공 제일주의로 발전해 있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겪으면서 늘 뇌리를 맴돌았던 것도 바로 그 ‘성공한 쿠데타’식 발상과 행태의 만연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되면 그만’인 탈법 선거와 포장의 정치, 기회가 왔을 때 저지르고, 한탕 해먹고 나면 그만인 공직풍토가 그랬다. 당시의 온갖 부패와 불법들이 드러나는 요즘 국정원 적폐청산 작업을 보면 그 일단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른바 ‘사자방’이라는 4대강과 자원외교·방산비리도 그렇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공영방송, 문화예술인을 차별한 블랙리스트와 공직사회 이너서클의 국정농단 등등 그런 한탕주의가 지배했다. 그 와중에 양심세력들과 정의를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곤경에 처하고 핍박을 받았다. 사퇴에 내몰린 문화체육부 공무원들, 제대로 수사하려다 한직으로 밀려난 검사들, 본업에서 쫓겨난 언론인들… 방송정상화를 걸고 싸우다 암에 걸려 사투를 벌이는 한 기자는 가슴 아픈 징표가 되고 있다. 그들인들 타협하고 단념해서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즐기고픈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렇게 양심과 정의로움과 진리의 길은 험난하고 고통스럽다. 착한 사람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악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좋은 게 좋다’. ‘대나무 보다 버드나무로 살라’ 는 말은 아주 편리한 처세의 방편으로 쓰인다. ‘뭘 그렇게 고지식하게 하느냐?’는 속뜻이 담겨있다.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라’는 물타기 전략으로도 들린다. 이른바 중도와 중용으로 미화되는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성경에 나오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수 1:7)는 구절도 인용된다. 좌고우면이나 편집에 빠지지 말고 소신을 견지하라는 뜻일 텐데, 그저 ‘중립’이나 ‘적당히’로 이해한다. 중국의 공자가어(孔子家語)도 ‘수청무어’(水淸無漁), 즉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사람이 너무 살피면 동지가 없다.’(水至淸則無漁 人至擦則無徒)라는 훈계가 강조된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방식의 처세가 현명한 생활철학으로 받아들여진다. 너무 까다롭거나 원칙만을 고집하지도 말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진실하며, 적당히 눈감아주는, 대쪽이 아닌 갈대의 길, 순백이 아닌 회색의 삶이 영악하다는 솔깃한 이야기다.


다시 성경을 떠올려 보자. 적당히 타협하며 ‘좋은 게 좋다’는 교훈이던가. 예수는 현실과 적당히 물타기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예수의 의로움과 선함은 전혀 훼절이 없었다. 그래서 성경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 8)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라고 마음이 청결하여 눈처럼 깨끗해야 함을 수없이 강조한다. 찬송에도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마음이, 눈 보다도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423장) 라고 순백의 마음, 맑고 깨끗한 사람의 지조를 가르친다.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화형 당한 스데반, 어떤 상황에서도 바울사도의 선하고 꿋꿋한 신념은 후일의 영광으로 기록되고 있다. 끝까지 불의에 굴종하지 않은 손양원·주기철 목사가 추앙받는 것도 같은 연유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DJ라면 지금

● 칼럼 2017. 8. 30. 12:54 Posted by SisaHan

남북 간, 북-미 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DJ(김대중 전 대통령)라면 지금의 상황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궁금해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존재가 새삼 그리워진다.
DJ는 생전 북한에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대화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그는, 핵무기는 북한 국민을 먹여 살리는 수단이 못 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의 핵무기 개발을 유혹하고, 그 결과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를 핵 화약고로 만들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DJ는 미국에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1990년대 초 소련과 중국이 남한과 국교를 맺고 교류를 강화할 때 미국도 북한을 승인하고 국제사회로 나오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경영 실패에 덧붙여, 미·중·소 등 주변 강대국들의 북한 외면 정책이 김정은 가문으로 하여금 핵개발이라는 최후의 도박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DJ의 생각이었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DJ가 내놓은 북핵 위기의 해법은 ‘일괄타결론’이었다. 그의 일괄타결론은 곧 북한이 핵개발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생존·번영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그 구체적 내용으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미국은 북한과 수교하고, 남한은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DJ의 일괄타결론은 지금도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이 공존공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올바른 해법이라고 본다.
일부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제타격론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잘하면 통일까지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은근히 기대를 거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나 무력에 의한 통일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고, 미국이 중국과 전면전을 각오하고 통일전쟁을 감행할 리도 없다. 북한 선제타격은 결국 수백만명의 사상자와 한반도 전체의 폐허만 가져온 채 그냥 어정쩡하게 봉합되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북한은 지금 남한, 미국, 중국 가리지 않고 모든 주변 국가들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다. 이런 나라를 상대할 때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DJ는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열기까지 연금, 투옥, 생명의 위협을 반복하여 당하면서도 무려 30여년 동안 일관되게 평화통일론을 펼쳤다. 기업인 정주영 회장의 소떼몰이 발상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 베를린 선언의 성과에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량을 뛰어넘는 주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은 문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힘이 달리면, 마음이 흔들리면 촛불 국민에 의지하라. 우리 국민은 평화를 위해 제2의 촛불을 들 준비가 되어 있는 위대한 국민이다. 그래도 흔들리면 DJ처럼 역사를 믿어라. 역사는 반드시 전쟁을 막으려 한 대통령의 노력을 평가할 것이다.
DJ의 롤모델 역할을 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동-서독이 교류하고 협력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보존·발전시켜 나가면 절반의 통일은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DJ의 생각도 똑같았다. 우리 시대의 당면과제는 남북한이 평화 속에서 인적·물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공존공영하고, 그러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젠가 통일의 날이 오지 않겠는가.
DJ 서거 8주기 주간을 맞이하여 그의 햇볕정책과 일괄타결론의 힘찬 부활을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