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뜬금없이 검찰의 특수활동비(특활비)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검찰 특활비가 매년 법무부에 건네졌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수사를 요구했다. 23일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불러 이 문제로 현안질의를 벌인다고 한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의 본질을 덮고 쟁점을 흐리게 하려는 ‘물타기’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론, 검찰의 특활비 가운데 일부가 법무부로 반환돼 사용됐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검찰 몫으로 배정된 특활비 가운데 일부가 관행적으로 법무부에 반환돼 장관과 검찰국장 등에게 전달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액수가 얼마인지, 누가 어디에 썼는지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런 잘못된 관행은 뿌리 뽑는 게 옳다. 특활비가 더 필요하다면 떳떳하게 예산을 편성해 국회 심의를 받아서 써야 한다.


하지만 명백한 불법행위인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검찰의 특활비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청와대에 건네진 국정원 특활비는 ‘검은돈’이다. 5만원권 현금 뭉치가 007가방에 담겨 몰래 청와대에 전달됐다. 조금이라도 떳떳한 돈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했겠는가 싶다. 대통령과 몇몇 측근들이 마음대로 쓰고 요령껏 나눠 가졌다.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돈을 썼는지 알 수 없고, 개인적 용도로 유용된 돈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법무부가 검찰 몫으로 책정된 특활비 285억원 가운데 106억원을 썼는데, 이는 ‘횡령’이자 ‘국고손실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본적 사실관계부터 잘못돼 있다. 검찰에 배정된 올해 특활비는 179억원이며, 법무부가 쓴 특활비 106억원은 원래부터 출입국관리사무소, 교정본부, 감찰관실 등 법무부 산하기관에 배정된 것이다. 예산 편성 때부터 법무부 몫이니 ‘눈먼 돈’도 아니요, ‘검은돈’과도 거리가 멀다.


국정원 특활비가 국회 쪽으로도 일부 흘러들어갔다는 검찰 수사 내용이 흘러나오자, ‘물귀신 작전’을 하듯 검찰 특활비 문제를 들고나온 점도 석연치 않다. 검찰은 20일 오전 국정원 특활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시각,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 특활비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의심을 살 만하다.


[칼럼] 보수들의 골방 정신승리

● 칼럼 2017. 11. 29. 12:38 Posted by SisaHan

대한민국 보수는 지금 사상 최대 위기를 겪는 중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적폐청산에 대해 보이는 그들의 태도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한 것도 모자라, 발각된 뒤에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세금으로 대통령에게 뇌물 좀 줬다고 전 정권의 국가정보원장을 한꺼번에 세명씩이나 구속하겠다는 건 심하지 않냐고, 지금 혁명 중이냐고 투정 부린다. 나라 지키라고 만들어놓은 국정원과 군대가 국민을 편 갈라 이간질하고 심지어 선거에까지 개입했다가 걸렸는데 이런 위헌적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권의 하명수사이며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한다. 이게 과연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국가를) ‘보전하여 지킨다’는 보수가 할 짓인가. ‘피디수첩’이나 ‘미네르바’ 사건처럼 ‘없는 죄’도 만들어내던 사람들이 ‘있는 죄’를 모른 척하라고 강변하는 꼴이다.


‘하명수사’ 프레임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사고방식의 전형이다. 그런 식의 하명수사가 이 정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걸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일까. 현직 청와대 정무수석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법무부나 청와대에 사전 통보 없이 시작할 정도로 검찰의 중립성은 잘 지켜지고 있다. 전병헌 전 수석 본인은 억울하다고 하는데도 면직부터 시킬 정도로 지금 청와대는 결벽증이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자신에 대한 내사를 벌였다는 이유로 국정원을 동원해 사찰하고 내쫓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청와대와는 판이한 대응이다. 이제 우 전 수석 같은 독재적 발상은 꿈도 꾸지 못할 시스템이라는 걸 하명수사를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정치보복’ 주장도 마찬가지다. 정치보복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처럼 일부러 먼지를 털기 위해 국세청이나 감사원 등을 동원해 벌이는 표적 수사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국정원의 천인공노할 불법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걸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전 정권과 전전 정권의 비리를 흐름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누굴 타깃으로 하는 보복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한심한 것은 변창훈 검사의 죽음을 이용하는 이들의 행태다. 고작 한다는 얘기가 ‘같은 식구끼리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리인데, 그럼 검사라고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검찰이 전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던 이유가 바로 ‘제 식구 감싸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는지 의문이다. 변 검사의 선택은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국정원이 법을 준수하는지 지켜보라고 파견한 검사가, 오히려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는 검찰을 속이고 따돌리는 불법행위에 앞장섰는데 그걸 봐주란 말인가.


보수세력이 여전히 잘 모르는 게 하나 더 있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거의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세력이 집권을 위해 불법과 탈법을 동원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런 무리수를 동원해 지켜야 할 정권이 고작 박근혜 정권 수준이라면 더이상 지지하지 않겠다는 보수층이 생겨난 것이다. 촛불집회의 성격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었지만, ‘이게 나라냐’는 물음에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지키려는 보수적 가치가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수의 토양이 바뀐 것이다. 적폐청산을 지지하는 국민이 여전히 3분의 2나 되는 건 적지 않은 보수층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골방에서 정신승리에 열중하는 한 자칭 ‘보수’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 이재성 - 한겨레신문 사회에디터 >


[1500자 칼럼]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칼럼 2017. 11. 29. 12:37 Posted by SisaHan

잠깐 반짝했던 날씨가 다시 비구름을 몰고 왔다. 짙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리기를 기대하지만 조만간 그럴 기색은 없어 보인다. 가을도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애매한 십일월, 모호한 계절답게 눈, 비, 진눈개비를 연일 뿌리니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출렁이는 듯하다. 때문인지 기쁜 소식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더 많은 요즘 며늘아기 미나가 근심거리 하나를 더 보탠다. 다름 아닌 자신이 보살피고 있던 아이들을 몇 주째 만날 수 없다며 불안해 한다. 부모들의 끊임없는 불화로 인해 마음의 병이 깊었던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져 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매주 수요일 오전이면 미나는 동네 카페에서 제시카, 캐런 자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그들의 카운슬러 역할을 한다. 부모의 불화로 힘겨운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사고사로 엄마까지 잃어 이모 슬하에서 자라고 있다. 아직 십대인 이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학교마저 거부하니 가족들은 물론 마을 전체의 걱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자매의 딱한 사연이 우리 가족에게 전해졌고 아들 내외가 선뜻 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외부 사람들을 극도로 경계하던 아이들이 다행히 거부감 없이 아들내외의 뜻을 받아들였고 서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소통을 시작했다.
수업을 시작한 지 몇 주 지난 어느 날, 미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을 넘길 때 마다 검정 싸인 펜으로 그린 온갖 무서운 형상들이 스케치북에서 난무하고 있었다. 십대들이 그렸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출중한 실력이었지만 그들의 내면은 우리가 상상한 것 보다 더한 암흑 속에 있는 듯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들이 다투는 살얼음판 같은 환경도 모자라 어미까지 잃었으니 아이들의 탈출구는 오로지 그림 그리기가 아니었나 싶다. 두려움, 불안함, 무서움 등 매 순간 느꼈을 아이들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아픈 그림에서 벗어날 때는 언제쯤일까. 한창 맑은 기운으로 충만 해야 할 꿈나무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요소들을 어떻게 와해 시켜야 할 지, 긴 세월 인내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듯싶었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미나의 시름이 깊어져갔다. 아이들의 생김새나 성품은 넉넉한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으나 속으론 그렇지 않으니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다양한 교재 준비와 갖은 지혜를 짜내어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열성적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 마음을 조금씩 열기도 하고 그림도 미미하게나마 순화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비록 더디긴 해도 가능성이 엿보여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니 안타까웠다.

착잡한 마음으로 겨울 색이 완연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토록 선망했던 고적하고 한가로운 강마을엔 내 발자국 소리만 또박또박 들릴 뿐이다. 사람 사는 마을이 이토록 조용해도 되는 걸까. 가끔은 싸우는 소리도, 아이 우는 소리도, 하다못해 개 짖는 소리라도 들려야지. 나무 타는 냄새 사이로 아들의 푸념이 들려왔다.
‘엄마, 이 동네 아이들은 꿈이 없어요.’ 평소 청소년들과 수시 대화하며 그들의 안목을 넓혀주려 애써보다 지치면 하는 말이다. ‘꿈이 없는 청소년’, 서글픈 일이다. 허황된 꿈일지라도 자주 꾸다보면 목표도 생기고 의욕도 뒤 따를 텐데, 제한된 생활환경이 그들을 무력하게 하는가 보다.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제시카, 캐런 자매는 평소 앓아왔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 신세를 졌다는 소식이 왔다. 켜켜이 앉은 마음의 상처가 이젠 떠나야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모양이다. 앞으로 그들에겐 아픔에 대한 치유 못지않게 꿈과 희망도 함께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긴 겨울 지나 봄이 오면 건강한 모습으로 등하교 하는 자매들을 떠올리며 찬바람 부는 저녁 심란한 마음을 잠재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1500자 칼럼] 팟 캐스트

● 칼럼 2017. 11. 22. 14:26 Posted by SisaHan

요즘 한국에서 자주 쓰는 단어 중의 하나다. 이 단어도 동포들에게는 생소한 단어 일 것이다. 아예 처음 들어보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나도 솔직히 단어의 정확한 뜻과 의미를 모른다. 영어에서 온 단어이므로 pod 과 cast의 합성어로 생각하고, 사전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뜻을 헤아릴 수 없다. 새로 생긴 신조어라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그러니까 한 마디로 쉽게 풀이하면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라고 한다.

새삼스럽게 이 단어를 꺼내는 이유는, 요즘 한국에서 많은 인기가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라디오와 인터넷, 스마트 폰 그리고 유튜브가 있어 가능하다고 한다. 그들은 TV보다 이 라디오를 들으며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여기 캐나다에도 이런 방송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방송이 여론을 형성할 만큼 큰 영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유독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지… 사실 나는 오래 전에 라디오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이미 TV가 등장함으로, 듣는 시대가 아닌 눈으로 보는 시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상당히 거부감을 가졌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서너 명이 나와 하는 경우에는 서로 누가 웃기는 말을 많이 하고 웃는가 경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방송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이 웃기 위하여 방송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말하는 소재가 한국의 현 정국의 심각한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은 계속 웃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그들의 그런 면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해학과 풍자에 견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곳의 유머감각과는 또 달랐다. 여기 방송 출연자들의 유머는 딱닥한 분위기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자는 의도이지 정치나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논의 할 때는 그렇게 가볍게 웃지 않는다. 다른 면에서 그들의 말투가 상당히 거칠고 때로는 쌍 욕도 거침없이 해댔다. 주로 20대를 주축으로 젊은 세대들이 듣는다고 하던데, 내가 나이든 세대에 속해 그런지 언어순화 정서순화를 생각하면 교육상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가지 감탄한 점은 그들의 당당함이었다. 유명 정치인을 초대해놓고 그들을 대하는 당당함이었다. 상대방이 어려워하는 질문도 서슴없이 던졌다.

중요한 특징은 언제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으며 시간 맞추어 들을 수 없던 것을 나중에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라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긴 캐나다에 사는 나도 종종 듣고 있다. 참 세월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로 우리 동포들은 모국의 소식에 눈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특정 미디어가 전해주는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라디오와 컴퓨터 인터넷의 결합인 동시에 한국적인 현실 때문이다. 한 팟캐스트의 진행자가 자신의 방송이 놀랍게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최순실 과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들의 궁금한 점이 너무 많은데도 공영방송은 침묵을 하기에 그들의 과감한 폭로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진실을 알려 했기 때문이라 했다. 결국 신문과 방송이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들이 더욱 성장하여 많은 청취자와 지지자를 가졌을 때, 또 다른 언론권력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다만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바로 잡아야 할 역사를 위해 대다수가 침묵할 때 이들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다스가 누구 겁니까?” 이 사실만 해도, 권력의 최고 책임자가 포함된 일이기에, 신문이나 방송은 보도하지 않았고, 검찰마저 무혐의로 처리한 사실을 이들은 꾸준히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는 감옥까지 갔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진리는 언젠가 밝혀진다 믿으며….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