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용마의 생명, 김장겸의 생명

● 칼럼 2017. 9. 12. 20:00 Posted by SisaHan

#이용마 문화방송 해직기자가 복막암 선고를 받은 것은 지난해 9월 초였다. 그를 진단한 의사는 “12~1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암 투병을 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수술도, 항암치료도 받지 않고 오직 자연요법으로 견뎌내고 있다.
지난해 겨울 촛불시위 때 광화문 광장에서 이 기자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12개월 정도를 무사히 넘기면 살아날 수 있다’는 뜻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이제 조금만 버티면 희망이 엿보이는구나, 조금만 잘 견뎌달라고 기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확인해보니 꼭 그런 말은 아니었다. “의사의 말은 12~16개월 정도를 생존 연한으로 본다는 뜻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여전히 그는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이 기자는 그동안 몸무게는 20㎏ 정도가 빠졌고, 복수도 계속 차오르고 있다. 상태가 악화하면서 한 달 전쯤부터는 아예 관을 몸에 차고 집에서 복수를 빼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는 안 된 상태다. 그런데 이 기자는 그 대목에서도 담담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 역시 의사들의 추정이에요.” 그는 마치 남의 말 하듯 말했다.
이 기자는 요즘 매일 새벽 1시간 정도씩 명상을 한다. ‘화두’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무념무상이 되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온갖 잡념이 쉬지 않고 떠올라요.” 그에게 ‘삶과 죽음, 생명 등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별로 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운명이지요. 주변을 봐도 곧 죽을 것 같던 사람이 오래 살기도 하고, 오래오래 살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하잖아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생각해요.” 놀라울 정도로 의연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며 가슴 한쪽에 빗물이 흐른다.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 쪽에서는 얼마 전 국민의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안철수 대표에게 ‘엠비시가 뭘 도와드릴 게 없느냐’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안 대표는 이 문자에 응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인이 결코 해서는 안 될 노골적인 정치개입이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그의 집착 앞에서 그런 원칙론 따위는 무용지물이다. 그 생명은 고결한 생명이 아니다. 권력한테서 하사받은 문화방송 사장 생명이라는, 어찌 보면 더럽고 유치한 생명이다.
그의 사장 수명 유지 전략은 탄압받는 언론인, 핍박받는 방송인이라는 적반하장식 궤변이다. 자유한국당은 여기에 맞장구를 치는 최대의 조력자다. 김 사장이 자유한국당 정치인들, 특히 언론계 출신 국회의원들과 끈끈한 ‘특수관계’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김 사장이 바른정당과 국민의당까지 손길을 뻗치는 것은 정치권의 우군을 확대해 방송법 개정안 국회 통과 등을 저지하고, 문화방송 정상화 문제를 ‘정쟁’으로 몰아가려는 가증스러운 의도다.


김 사장의 야심은 단지 현재의 문화방송 사장 수명 연장 정도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권에 맞서는 투사,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신을 포장해 정계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주변에서는 관측한다. 그것은 이미 전임자인 김재철 사장도 시도했던 정치 행로다.
김 사장의 생명 유지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암과 사투를 벌이는 이 기자의 생명에 비하면 김 사장의 생명은 너무나 보잘것없고 허접한 생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허접한 생명을 위해 진짜 고귀한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는 김 사장의 행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용마 기자는 몇 달 전부터 글을 차곡차곡 써왔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쌍둥이에게 줄 글인데 벌써 책 한권 분량이 됐다. “애들이 스무살이 되면 볼 수 있도록 하려고요. 그 나이가 되면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을 할 때인데, 아빠가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알면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애들이 스무살 때까지 제가 살아 있으면 말로 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삶과 인생, 사람이 올바로 산다는 것의 의미 등을 다시금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는 오늘이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편집인 >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벌어졌다. 북한은 3일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6차 핵실험이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핵실험이다. 또 규모 5.7로, 북한 역대 핵실험 중 최대 규모다. 이번 수소탄 핵실험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의도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이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압박해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핵실험이 기술적 측면에서 상당히 고도화된 수준까지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확고한 재진입 기술을 보이는 것이다. 경제 제재를 비웃듯 거듭된 미사일 실험에 이어 1년 만에 핵실험까지 감행하고 나섰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청이나 제재는 아랑곳 않은 채 자신들의 ‘핵 시간표’ 일정에 따라 차근차근 핵능력을 쌓아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 방법이 정권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붕괴에 대한 불안감과 핵무기를 통해 이를 타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기묘하고 비합리적으로 결합한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핵무기 개발을 유일 자구책으로 삼고, 정권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특히 김정은 정권 들어 가속도가 붙는 흐름이어서 더욱 우려스럽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 당시인 지난 2006년과 2009년 1, 2차 핵실험을 했는데,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2013년 이후 4년 만에 4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 고도화로 매진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이 ‘군사적 옵션’은 절대 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또 하나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도 ‘전쟁=파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해주고 있는 덕도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핵능력이 국제사회가 감내할 수준을 점점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북한의 이런 통상적 계산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이번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는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더욱 강도 높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군사적 옵션’, ‘전략자산 전개’ 등의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이다. 정부 안에서‘북한 완전고립’ 등을 언급하는 등 강경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대화’의 손짓을 계속 보내왔던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정권 지배층의 안위를 위해 북한 주민은 물론 한반도 전체를 볼모로 잡고, 최악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토론이 불가능한 북한 체제 속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더욱 우려스럽다. 김정은은 지금이라도 핵무기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오판을 거두기 바란다.


[1500자 칼럼] 이열치열 민어탕

● 칼럼 2017. 8. 30. 12:57 Posted by SisaHan

팔월도 하순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여름은 푹푹 쪄야 제 맛이건만 올해는 유난히 잦은 비와 초가을 같은 선선한 날씨에 폭염의 계절이 꼬리를 내리는 듯하다. 올 들어 기껏 두어 차례 덮은 인조견 이불을 한직으로 돌려놓고 차렵이불로 삼복을 났더니 서걱거리는 인견의 차가운 감촉이 아쉬워 곁눈질만 하게 된다. 계절은 어쩌다 부족한 듯 다녀가도 우리의 생체 리듬은 그에 상관없이 예년과 똑 같은 반응을 보인다. 평소에는 음식 투정이라곤 않는 남편이 이것저것 색다른 메뉴를 들먹이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더 지쳐 보이는 가족들, 활동량에 비해 식욕이 부진한 계절이다. 문득 여름 보양식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다. 대한민국 3대 여름 보양식은 민어탕, 도미탕, 보신탕 순 이라고 한다. 이곳 캐나다에선 이름뿐인 식자재들이다. 자칫하다간 가족의 건강까지 우려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달아난 입맛을 찾아 올 예전의 그 복달임 음식이 부쩍 그립다. 늘 이맘때면 더욱 생각나는 여름 보양식, 시어머니의 구수하고 담백한 민어탕 생각이 간절하다.


 초복이 가까워지면 시어머니는 수산시장과 연이 닿은 이웃집에 전화를 하여 싱싱하고 큼직한 민어를 미리 수소문 하게했다. 민어는 무엇보다 커야 맛이 달다며 가격에 상관없이 큰 놈을 구해달라고 재차 신신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백성의 고기라하여 민어(民魚)라는 이름이 붙은 생선이건만 결혼 초기인 그 옛날에도 여간 귀하지 않아 배달 전화가 오기까지 시어머니는 며칠 동안 노심초사 하셨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이면 늘 고생이 심하셨던 시어머니는 민어 배달이 오면 가족들 불러들이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서울에서 대대로 살아온 시댁의 복 달임은 민어탕이었는데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이마저 생소한 풍경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어머니의 뒷시중을 드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림잡아 열 댓 명이 모이게 될 답답한 집안에서 고작 생선 한 마리로 어떻게 한여름 더위를 다스릴까. 그리곤 내 어린 날 남해안 바닷가에서의 편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온가족이 조그만 통통배를 타고 댓섬으로 해수욕 가던 때의 설렘,
아버지의 낚시 다래끼에서 펄떡이는 생선을 꺼내어 손질하시던 어머니 모습,
큰언니가 밀어주는 까만 튜브를 타고 처음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갔던 아찔한 순간,
진종일 물속에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씩 던져 주던 시고 짠 풋사과의 아련한 맛, 등
삼복 더위하면 떠오르는 짙푸른 기억 위로 이열치열 민어 매운탕이 어떤 형태로 자리매김 될 지 궁금했다.
기본적인 손질을 마친 민어가 부엌으로 들여지면 시어머니는 부위별 해체를 서두르셨다. 살집이 가장 깊은 부분은 양념구이 용으로, 담백하고 차진 등살은 횟감으로 그리고 남은 살과 부레 껍질은 분리하여 따로 준비해 두셨다. 나머지 부산물은 토막을 쳐 미리 끓여 놓은 육수에 켜켜이 앉힌 다음 불을 켜고 나서야 겨우 한시름 놓는 과정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어머니의 수작업을 지켜보는 내내 민어를 얼마나 신령스럽게 다루는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식구가 둘러앉은 후끈한 열기 속에서 잘 끓인 민어탕을 한 사발씩 받으면 젓가락은 우선 민어회부터 집어 들었다. 싱싱하다 못해 은은한 무지갯빛 까지 감도는 흰 살 한 점을 겨자 장에 찍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한 식감, 고소함까지 겸비한 맛은 제주 앞바다 푸른 물이 입안에서 출렁이게 했다.
민어의 모든 것이 농축된 걸쭉한 국물에 기름기까지 어우러진 탕은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하여 넋 놓고 먹다 보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언뜻 시어머니를 뵈니 윤기 흐르는 모습으로 탕에 밥을 말고 계셨다. 평소 생선 비린내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당신이셨는데… 그리곤 그 여름은 온 집안이 평온했다.
‘밥이 곧 보약’ 이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새삼 상기하며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입 맛 돌아 올 먹거리 마련에 힘써야 하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마당] 순백의 양심과 훼절의 번민

● 칼럼 2017. 8. 30. 12:56 Posted by SisaHan

인생의 수많은 고민과 갈등 가운데 정의와 불의 사이의 줄타기가 아마 가장 힘들고 심각한 부분일 것이다. 타협을 할까 말까, 원칙과 소신을 고수할 것인가, 굽히고 훼절할 것인가 하는 양심의 기로가 때로는 생사를 가름하는 선택이 되기도 할 뿐더러, 양심과 도덕에 그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명예가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한 때문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요 역적이 된 이완용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조국을 배반했을까? 물론 국운에 가망이 없다는 판단과 확신 하에 변절한 것일 테지만, 한때 독립협회장까지 지낸 그가 일본의 앞잡이로 변신하기까지는 그 나름 수없이 고심했을 것이다. 망국의 충신으로 남느냐, 강국에 부역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느냐… 결과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추한 인간의 반열에 오르고 말았지만.
망해가는 고려왕조에 충성을 다한 최영 장군, 그리고 정몽주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번민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조카 단종을 폐한 세조의 역모에 동참을 강요당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기까지 사육신의 충과 불충, 정의와 불의 사이의 심적 갈등이 없었다면 그 또한 거짓일 것이다. 목숨을 내건 엄청난 번뇌의 늪에서 ‘의로움’을 꺾지않은 그들의 이름과 행적은 충신의 기록으로 영원히 남았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역시 위화도 회군을 결단하며 ‘역사의 대역죄인 아니냐’는 심경의 고뇌가 깊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국권의 영속성보다는 개인적 야망을 대의로 삼아 역성혁명을 감행한다. 불충과 반역자의 대명사로 남을 일이지만 거사의 성공과 5백년 왕조를 이루는 바람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의 원조격 선례를 만들었다.
1995년 7월 한국검찰은 전두환을 내란죄 등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국민이 들끓자 5개월 뒤 헌법재판소가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로 그를 법정에 세웠지만, ‘성공한 쿠데타’논리는 사회 구석구석과 사람들 심리에 이미 폭넓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불의가 통용될 수 있다는 것, 정의와 선함과 진실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양심의 타협과 합리화였고,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편의주의와 성공 제일주의로 발전해 있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겪으면서 늘 뇌리를 맴돌았던 것도 바로 그 ‘성공한 쿠데타’식 발상과 행태의 만연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되면 그만’인 탈법 선거와 포장의 정치, 기회가 왔을 때 저지르고, 한탕 해먹고 나면 그만인 공직풍토가 그랬다. 당시의 온갖 부패와 불법들이 드러나는 요즘 국정원 적폐청산 작업을 보면 그 일단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른바 ‘사자방’이라는 4대강과 자원외교·방산비리도 그렇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공영방송, 문화예술인을 차별한 블랙리스트와 공직사회 이너서클의 국정농단 등등 그런 한탕주의가 지배했다. 그 와중에 양심세력들과 정의를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곤경에 처하고 핍박을 받았다. 사퇴에 내몰린 문화체육부 공무원들, 제대로 수사하려다 한직으로 밀려난 검사들, 본업에서 쫓겨난 언론인들… 방송정상화를 걸고 싸우다 암에 걸려 사투를 벌이는 한 기자는 가슴 아픈 징표가 되고 있다. 그들인들 타협하고 단념해서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즐기고픈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렇게 양심과 정의로움과 진리의 길은 험난하고 고통스럽다. 착한 사람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악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좋은 게 좋다’. ‘대나무 보다 버드나무로 살라’ 는 말은 아주 편리한 처세의 방편으로 쓰인다. ‘뭘 그렇게 고지식하게 하느냐?’는 속뜻이 담겨있다.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라’는 물타기 전략으로도 들린다. 이른바 중도와 중용으로 미화되는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성경에 나오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수 1:7)는 구절도 인용된다. 좌고우면이나 편집에 빠지지 말고 소신을 견지하라는 뜻일 텐데, 그저 ‘중립’이나 ‘적당히’로 이해한다. 중국의 공자가어(孔子家語)도 ‘수청무어’(水淸無漁), 즉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사람이 너무 살피면 동지가 없다.’(水至淸則無漁 人至擦則無徒)라는 훈계가 강조된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방식의 처세가 현명한 생활철학으로 받아들여진다. 너무 까다롭거나 원칙만을 고집하지도 말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진실하며, 적당히 눈감아주는, 대쪽이 아닌 갈대의 길, 순백이 아닌 회색의 삶이 영악하다는 솔깃한 이야기다.


다시 성경을 떠올려 보자. 적당히 타협하며 ‘좋은 게 좋다’는 교훈이던가. 예수는 현실과 적당히 물타기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예수의 의로움과 선함은 전혀 훼절이 없었다. 그래서 성경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 8)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라고 마음이 청결하여 눈처럼 깨끗해야 함을 수없이 강조한다. 찬송에도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마음이, 눈 보다도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423장) 라고 순백의 마음, 맑고 깨끗한 사람의 지조를 가르친다.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화형 당한 스데반, 어떤 상황에서도 바울사도의 선하고 꿋꿋한 신념은 후일의 영광으로 기록되고 있다. 끝까지 불의에 굴종하지 않은 손양원·주기철 목사가 추앙받는 것도 같은 연유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