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앞두고 남북 실무접촉이 진행중이다. 그런데 남북 공동입장 때 한반도기를 드는 문제를 비롯해 벌써부터 야당과 보수언론의 사사건건 트집 잡기가 심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은 한반도기 드는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만 한다. 도대체 북한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란 건지 묻고 싶을 정도다.


국제스포츠대회에서 남북이 공동입장한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7년 창춘 겨울아시아경기대회까지 모두 9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남북은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입장했다. 국내에서 열린 국제대회인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도 한반도기를 사용했다. 국제대회에서 ‘한반도기’는 남북화해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그것이 어찌 태극기를 홀대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대규모 예술단 참가를 놓고도 벌써 시비다. 북한 공연이 체제 선전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북한은 그러고 싶어 할 것이다. 북한은 이번 기회를 통해 남한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이미지를 제고하고, 대북 제재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공연을 통해 ‘체제’를 선전한다 해서 우리나라 국민 중 혹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아직도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그렇게 없는 것일까. 공동입장, 단일팀, 예술단 참가 등에서 확정도 안 된 세부안을 놓고 사사건건 시빗거리 찾느라 혈안이 된 듯한 속 좁은 자세가 보기 딱하다.


남북이 만나면 조금은 큰 소리도 나고 불편함도 생기는 게 사실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갈등만 키워왔으니 더욱 그렇다. 이젠 그런 걸 겪어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평화와 공존’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자세일 것이다. 조금의 불편함이나 양보 없이, 어떻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개최국답게 너그럽고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시사 한겨레가 캐나다 땅에 첫 선을 보인지 어언 열 두 해가 됐습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지나 온 발걸음들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습니까. 초창기 다소 생경한 신문논조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 이들도 있었고, 거북한 말투로 걸려 온 전화도 귀에 생생합니다. 모처럼 제대로 된 기사들을 본다며 반가워하고 힘내라고 격려 해준 분들도 물론 많았습니다. 그렇게 비판이든 응원이든 모두가 관심과 배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려니, 돌아보면 정말 고맙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제 12살 연륜을 쌓은 오늘의 시사 한겨레는 바로 그런 모든 분들의 은덕으로 풍랑을 헤치고 눈비 속에 담금질 해왔다고 믿어,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처음 닻을 올리면서부터 저희가 간직해 온 소망이 있습니다. 여건이 녹록치 않고 체구는 작을지 몰라도 본령에 충실한 참 언론의 모습입니다. 바르고 정의로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당돌한 꿈입니다.
우리 주변은 언론과 정보가 넘쳐납니다. 매섭고 값진 기사가 있는 반면에, 눈속임의 달콤한 독성뉴스, 치우친 보도로 판단을 흐리고 여론을 호도하는 신문들, 이념과 권력에 경도된 관변언론까지, 독자들을 오도하고 마비시키는 언론 홍수가 가치판단과 분별의 지혜를 요구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 치열한 보수와 진보의 논전만 보아도, 한 쪽만 비대하고 자기들만 선(善)을 주장하는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양 날개가 조화롭게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라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날아오를 텐데 말입니다. 기울어지고 홍수난 운동장에는 바로 잡고 일깨울 파수꾼의 외침이 절실합니다. 진정성 있는 외침이라면 비록 작은 목청일지라도 귓전을 때려 호응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지, 저희의 꿈이 바로 그런 겨자씨 같은 역할이었으면 하는 비전에 다름 아닙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민 1세대는 애국 향수와 독재 시대에 익숙했던 사고의 경향이 강합니다. 정통성 없는 역대 정권들의 공공연한 작용도 무관치는 않습니다. 그렇게 소위 보수 편향의 풍토에, 종래와는 결이 다른 논조의 신문으로 변화의 씨를 뿌려보겠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모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 날개론’의 관점은 물론이려니와, 의식의 다변화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들 사고 수준의 ‘업그레이드’라는 기대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정말 의미있는 도전이 아니겠습니까?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저희 신문의 지난 면면들을 살펴보면 우리네 발자취가 시사 한겨레라는 소박한 거울에 투영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떨지 자못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시사 한겨레에 익숙해져서 친근감을 느끼고, 양호하다 평가하신다면, 기울어진 언론지형에 긍정적 변화의 조짐은 아니겠는지요. 신문에 비친 사회상에 눈을 돌려 봅니다. 최근 한국의 격동 정국에서 정권이 세월호 은폐에 몰두할 때 이 곳에서 규탄과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탄핵을 외치며 해외 어느 지역보다 뜨겁게 타오른 촛불의 열기에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을 읽는다면 ‘아전인수’의 시각일 뿐인지…,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말입니다.

1700만 촛불혁명으로 한국은 이제 정상화의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는 지난 정권들의 적폐는 상상 이상입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 헌신했어야 할 지도자와 그 정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습니다. 공적 시스템과 국민세금을 사적 이익추구의 방편으로 사용하며 불법과 편법을 남발했습니다. 그러고도 뭘 잘못했느냐는 적반하장입니다. 저들의 그런 불법과 편법,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까요? 그 키워드가 바로 ‘언론장악’임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권력의 일탈에 눈감고, 나팔수에만 충실했던 방송과 신문들. 그 훼절과 굴종의 모습들은 “이게 나라냐”는 질타를 빼닮은 “그게 언론이냐”라는 말에 압축됩니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고 권력에 야합하면서 감시와 비판은 사라졌고, 권력의 폭주에 편승해 소수의 가진 자와 누리는 자들만의 편리한 도구로 전락한 폐해는 해외 한인사회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문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 것은 지면에 사회상을 담기도 하지만, 사회에 ‘빛’을 비춘다는 뜻도 있을 겁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은 기득권과 권력중심, 가진 자 위주의 기사들로 편향된 시야만을 보이면서 자기들만의 세상에 화려한 빛을 비췄습니다. 그러나 바른 언론의 모습은 그게 아닙니다. 그래선 안될 것입니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풀뿌리 민초들의 소리를 담아내며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설파해야 합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고 합니다. 옳고 바르게, 선하고 정의로운 기사로 어두움에 빛을, 후패하는 곳에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요즘 모국의 사정이 말해 주듯이, 모든 것이 정상화되고 파사현정(破邪顯正) 하려면, 적폐 세력과의 철저하고 중단없는 싸움이 불가피 합니다. 참된 언론의 길도 가시밭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과 행동하는 정의감으로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할 명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바른 언론의 소임이 시대나 지역, 사세가 크고 작음에 좌우될 리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언론과 언론인의 최우선 덕목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되새기는 저희의 다짐도 ‘빛과 소금’의 덕목입니다. 지금까지 간직해 온 참 언론의 소담한 꿈을 더 키우며 한걸음씩 묵묵히 나아가고자 합니다. 열악한 여건에서 멀고 험한 길이지만,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나아가려 합니다.
옷깃을 다시 여미는 시사 한겨레에 변함없는 편달과 성원을 당부드립니다.

< 김종천(金鍾天) 발행인 겸 편집인 >


영화 <1987>은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해 열사의 죽음으로 끝난다. 1987년 1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숨진 박종철과 그해 6월 최루탄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이한열은 독재의 잔혹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열사’들이 무수히 출현하던 5공화국의 마지막 시기를 영화는 담고 있다. 꽃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 분노가 철옹성 같던 군부독재를 무너뜨렸다. 경찰에 쫓기는 시위학생을 숨겨주는 신발가게 아줌마, 그리고 연희(김태리)가 버스 위에 올라서 바라본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은, 그 시기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민주 진영의 힘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토록 뜨거웠던 국민 열망에도 민주화는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직선제 개헌에도 불구하고 그해 12월16일 대선에선 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 몇달 전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는 전태일부터 이한열까지 26명의 민주열사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문 목사는 열사의 호명이 마지막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 뒤로도 훨씬 더 많은 ‘열사’들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었다.
87년보다 더 참혹했던 시기는 1991년이었다. 1991년에만 15명이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숨을 거뒀다. 그중 명지대생 강경대는 경찰 폭력에 의해 숨졌고, 성균관대생 김귀정은 시위 도중 경찰에 쫓기다 사망했다. 국가 폭력에 의한 죽음은 87년이나 91년이나 크게 다를 게 없었다. <1987>이 보여주는 감동스러운 장면의 뒤편엔, 그 이후에도 길고 길게 이어진 폭압과 고통의 역사가 소환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1987년 6월의 ‘짧은 승리’는 더욱 가슴 아프고, 마음을 시리게 한다.


‘열사’라는 단어가 신문 사회면에서 사라진 건 1999년 들어와서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반세기 만에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일 터이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민주정부 탄생’이란 열매를 맺는 데 꼭 10년이 걸린 셈이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직후 이재경씨는 창간 준비 중이던 한겨레신문을 찾아와 “한판의 선거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고 토로했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라는 한겨레 창간준비위원회의 유명한 신문광고 카피는 그로부터 탄생했다. 맞다. ‘한판의 대통령선거’로 민주주의를 이룰 수는 없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민주화가 ‘한판 승부’가 아닌 건, 1987년이나 2017년이나 다르지 않다. 광장을 밝힌 수백만 촛불의 힘으로 무도한 권력자를 내쫓고 다시 ‘민주정부’를 탄생시켰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2017년 대선의 압도적 승리가 정치·사회개혁 과제의 성공을 담보하진 못한다. 박종철 이한열 이후의 수많은 죽음을 떠올린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87년엔 정치적 자유 확대에 주력했다면, 지금은 그때 놓쳤던 사회경제적 평등과 분배의 가치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촛불이 외친 건 단지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라,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정의의 실종과 부의 대물림, 양극화의 심화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였기 때문이다. 과제는 산적해 있고 저항은 훨씬 더 거세다. 검찰개혁 핵심으로 꼽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은 국회 법사위에 묶여 한발짝도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는 ‘좌파의 국가안보 포기 선언’이라는 야당과 극우보수 진영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87년 개정한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문구를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 실현’으로 바꾼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초안을 두고, 어느 보수신문은 ‘국가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개념을 빼거나 수정한 좌편향 개헌안’이라 공격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란 표현이 국기를 흔든다는 엉터리 주장은 ‘빨갱이 잡는 걸 방해하면 모두 빨갱이’라는 <1987>의 박처원 치안감(김윤석) 시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흘렀어도 민주주의 가치를 핵심에 둔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30년 전의 신문광고 카피를 다시 꺼내 읽는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운동화 끈을 바싹 조일 때다.

< 박찬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


[칼럼] 어디다 대고 좌파 타령인가

● 칼럼 2018. 1. 16. 20:45 Posted by SisaHan

깜짝 놀랐다. 리영희 교수 책 제목을 자유한국당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1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성중 홍보본부장은 “새는 좌우 날개가 균형점이 맞아야 오래 날 수 있다. 정치도 좌파와 우파가 균형되어야 한다. 너무 좌파로 기울어진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교수가 1994년에 내놓은 평론집 제목이다. ‘전환시대의 논리―그 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머리말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좌·우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날조·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하였다. 광적인 반공·냉전·전쟁애호·반통일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특히 그러했다.”


박성중 홍보본부장의 좌우 균형 논리는 리영희 교수의 인식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좌파 과잉’으로 보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주장하는 ‘좌파 광풍’의 연장이다. ‘좌파 광풍’은 2017년 2월 홍준표 경남지사가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말했다. “지금은 탄핵 국면 속의 좌파 광풍 시대다. 우파가 맘 둘 곳이 없다. 남미와 유럽 등 세계 좌파는 다 몰락했고, 우리를 둘러싼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은 모두 국수주의자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 한국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하면 한국이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주사파로부터 전향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홍준표 대표는 자신이 국적법, 반값아파트 등 좌파 정책을 쓴 일이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할 수도 있다고 말해도 트럼프 대통령을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좌파라는 단어의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는 좌파 딱지를 서슴없이 붙인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아마도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 5년 임기 동안의 목표인가 보다”라고 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초안을 ‘헌법도 좌향좌’로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논평이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색깔론은 분단체제에 편승해 집권한 친일 독재 기득권 세력의 오래된 무기다. 이승만 정권은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나 국제공산당으로 몰았다. 1958년 진보당 사건을 조작해 조봉암 당수를 사형시켰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정권도 부실한 정통성을 메우려고 ‘빨갱이 사냥’을 일삼았다. 박정희 정권은 재일 유학생과 납북 어부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1975년 4월9일 8명을 사형시켰다. 전두환 정권은 아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발판으로 출범했다.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엮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좌파-우파, 보수-진보라는 이념이나 노선 갈등과 관련이 없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을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쫓아냈다. 대통령 궐위에 의한 조기 대선에서 후임 대통령을 선출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대선 투표장에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한 사람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좌파는커녕 중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중도우파 노선 정치세력이 극우세력으로부터 종북좌파로 몰리는 건, 한국만의 후진적 정치 현실일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3년 12월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 쓴 대목이다. 현실 정치를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다. 지금 진보 정당은 정의당과 민중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도쯤 되는 정당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를 좌파나 진보로 몰아붙이는 집단이나 세력은 어떤 사람들일까? 독재에 법통이 닿아 있는 정당이다. 친일파의 후손이다. 이유가 뭘까? 독재와 친일의 피를 물타기 하기 위해서다. 아무나 멱살을 붙잡고 “이 새끼 너 빨갱이지”라고 흔들던 그 못된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긴 오른쪽 끝에 서 있으면 세상이 온통 좌파로 보인다.

< 성한용 - 한겨레신문 정치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