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씨 측근, 공적 읊으며 추어 올리기도

민정기, "이순자 5·18 대한 사과 아니다”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렸다. 유족을 비롯한 5공화국 인사 등이 참석한 영결식에서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사과의 대상을 밝히지는 않았으며, 전씨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5·18과 관련한 사과가 아니라고 말했다.

 

영결식은 이날 아침 7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층 영결식장에서 40분 동안 진행됐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영결식장 내에는 48개의 좌석이 마련됐고, 이순자씨를 비롯한 유족과 종교계 인사 등이 참여했다. ‘2인자’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전씨 사자명예훼손 재판 법률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민정기 전 비서관, 박철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5공 인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를 제외한 정치인은 보이지 않았다.

 

영결식 시작 5분 전, 전씨의 장남 전재국씨의 아들이 전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뒤이어 이순자씨와 전씨의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재용씨 부인 박상아씨 등이 영결식장에 들어섰다. 장례 내내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빚은 전씨 지지자와 유튜버 등 시민 수십명은 이날도 몰려들었다.

 

영결식에서는 전씨 부인 이순자씨가 유족 대표로 소회를 밝혔다. 그는 “돌이켜보니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나시고 저희는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하며 전씨의 과오를 대신 사과했다.

 

이씨가 3분20초가량 읽은 추도사에서 ‘대리사과’는 15초 분량, 한 문장에 그쳤다. 전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비통한 심정을 밝히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는 “남편은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기억 장애와 인지 장애로 고생하던 중 금년 8월에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암 선고까지 받게 됐다”며 “힘겹게 투병 생활을 인내하고 계시던 11월23일 아침 제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갑자기 쓰러져 저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6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부로서 함께했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하직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이씨는 남편의 유언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편은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또 화장해서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뿌려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닥친 일이라 경황이 없던 중 여러분의 격려와 도움에 힘입어 장례를 무사히 치르게 됐다”며 “이제 남은 절차에 대해서는 우선 정신을 가다듬은 후 장성한 자녀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눠 남편의 유지를 정확하게 받들겠다”고 밝혔다.

 

전씨 측근들은 영결식에서 전씨를 추어올렸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전씨의 약력을 읊으며 “경제성장의 토대를 구축하고 서울 올림픽을 유치해 올림픽 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평화적 정부 이양의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전씨의 퇴임 이후를 “모진 핍박의 시대”라고 표현하며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청와대를 죽어서 나오지도 않고, 임기 도중에 나오지도 않고, 임기를 마친 뒤 스스로 제 발로 걸어온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은 추도사에서 “전두환 대통령님은 나라 사랑과 선진조국 창조라는 국가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해오셨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아침 8시14분, 전씨의 주검이 장례식장 밖에 세워진 검은 리무진 차량으로 옮겨졌다. 운구차 주변에 몰린 전씨 지지자들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사랑합니다”, “편안히 영면하세요”, “전두환은 발포 명령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함성을 외쳤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40분 동안 화장이 진행됐다.

 

장지가 정해지지 않은 전씨의 유해는 오후 1시1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유가족과 도후스님 등이 들어간 자택에서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유해는 장지를 정할 때까지 자택에 임시 안치될 예정이다.

 

한편 전씨 측근은 이씨의 사과의 대상에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화장장인 서울추모공원에서 기자들에게 “기사를 보니까 5·18 단체들이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데 재임 중이라고 (추도사에) 썼다. 5·18에 대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5·18이 전씨가 취임한 1980년 9월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므로 ‘재임 중’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재임 중 벌어진 일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시위하던 학생들이 고초를 겪고, 경찰 고문 사건도 있고 여러 가지”라며 “직접 책임은 없지만 대통령이니까”라고 말했다. 또한 “처음 사죄했다는건 젊은 기자들이 몰라서 그렇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다”며 전씨 쪽의 사과가 처음이 아니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우연 고병찬 기자

 

뇌물에 “우국충정” 전두환…빈소 채운 재벌 2 · 3세의 조화

보수야당 정치인도 잘 찾지 않는 전두환 빈소에

이재용 · 최태원 · 정의선 · 김승연 등 조화 보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옆에 놓인 재계 인사들의 근조화환. 왼쪽부터 최태원 대한 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기업인들이 돈을 낸 것은 기업인들의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96년 2월26일 대통령 재임 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서울지법(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앉은 전두환씨가 김성호 당시 서울지검(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검사의 신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씨는 1982년부터 대통령에서 물러난 1987년까지 삼성과 현대, 에스케이(당시 선경)와 한화(당시 한국화약) 등 43개 기업으로부터 2259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다.

 

25년 뒤인 2021년 11월26일, 사망한 전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는 당시 뇌물을 준 재벌 총수 2·3세들의 근조화환이 차례로 놓였다. 현직 정치인들 대부분 조문을 꺼리고, 조화를 보내지 않는 빈소에 기업인들이 보낸 조화는 도드라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재벌을 키우고, 재벌은 대가로 돈을 건넸던 과거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조화에 드리운다.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권력형 부정 축재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보면, 전씨는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1983년 12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8차례에 걸쳐 2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금융·세제 운용 등 기업 경영과 관련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삼성그룹을 선처해달라는 취지였다. 전씨는 마찬가지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1982년 12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220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이외에도 최종현 선경 회장으로부터 150억원, 김승연 한국화약 회장으로부터 70억원을 챙겼다. 다만 기업 총수들은 5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2면

 

전씨는 1996년 열린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전씨는 검찰 신문에 “(대통령) 취임 당시에는 기업인들을 잘 몰라 돈을 주겠다고 하면 돌려보냈는데 기업인들이 오히려 밤잠을 못 잘 정도로 불안해했다”며 “이렇게 되니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경제 부작용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있는 곳에 정치자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문 도중 재벌 총수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다.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4면(‘전씨 공판정 채벌총수 인물평’)을 보면 정주영 전 회장에 대해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찾아와 나랏일에 쓰라고 돈을 줄지언정 개별적인 청탁을 하면서 돈을 주겠는가. 정 회장은 그렇게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병철 전 회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도 만나기 힘들었다.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고 주로 일본에 가 있어서 재임 중 몇 번 만나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속문제로 다투던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교육 차원으로 부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에스케이의 뿌리인 선경은 전두환 정권에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부풀렸던 기업이다.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최종건 전 회장이 창립한 선경직물회사는 1980년 11월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매출액 10배에 달하는 유공을 인수한 선경은 재계 순위 10권 밖에서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라는 전씨의 회고를 전하기도 했다. 전씨는 앞선 뇌물 사건 공판에서 최종현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분이 (노태우씨와) 사돈 관계이기 때문에 선거자금하라고 정치자금조로 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엠앤엠 (M&M) 사장은 25일 빈소를 방문해 조문한 뒤 전씨에 대해 “훌륭한 일도 많이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유족에게 상 잘 치르시라고, 기운내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에도 전날 귀국한 전씨의 삼남 재만씨를 만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최 사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알던 사이인 전재만씨를 못 만나서 오늘 얼굴 보고 손 한번이라도 잡아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전씨 빈소에 조화를 보낸 한 그룹의 관계자는 “(기업에서)전직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들에게 의례적으로 조화를 보내는데, 이번에도 그 차원일 뿐이다”고 말했다. 이우연 장현은 이승준 기자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4면

국립 5·18묘지 시민들 추모 행렬 이어져

 

지난 24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전남 영암 삼호고 학생들이 5·18 항쟁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사무소 제공

 

‘사과받지 못한 분함 위로드립니다.’

 

26일 오전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5·18묘지) 들머리에 놓인 방명록에 장아무개씨가 적은 추모의 글이다. 같은 날 서울에서 온 박아무개씨는 “80년 5월 5세였던 아이가 그 시절을 잊지 않습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23일 전두환 사망 이후 5·18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은 방명록에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등을 남겼다. 시민들이 쓴 추모의 글엔 아무런 반성도 없이 사망한 전씨의 잘못을 꾸짖는 듯 오월 영령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가득했다.

 

80년 5월, 5살이던 아이가 그 시절을 잊지 않습니다

 

이날 이른 아침인데도 추모객 세 팀이 5·18묘지를 찾았다. 전씨 사후 5·18묘지가 궁금해 친구 4명과 함께 온 김용주씨는 “아유, 사과 한마디 없이 죽었으니 참…. 한 나라를 통치했다는 사람의 마지막 몰골이 뭐요? 노태우처럼 사과 한마디라도 했어야지요”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박아무개씨 부부도 이날 10대 두 아들과 여행을 하던 중 5·18묘지를 처음 찾았다고 했다.

 

지난 25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들머리에 놓인 방명록에 적힌 추모의 글. 장아무개씨가 ‘사과받지 못한 분함 위로드립니다’라고 적은 글이 눈길을 모은다.

 

전씨 사후 학생들이나 단체로 찾는 추모객들이 늘고 있다. 지난 24일 이후 이날까지 영암 삼호고(130명), 홍농서초등학교(80명), 숭의과학기술고(30명) 등 학생들이 다녀갔고, 제주협동조합(40명), 우성지역아동센터(80명), 한국교수발전연구원(30명), 경기기자협회(15명) 등이 방문했다.

 

추모객들 “전두환 비석 어디 있습니까?”

 

특히 추모객들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밟아 화제가 된 ‘전두환 비석’에 관심을 보였다. 이 비석은 원래 광주 인근 담양군의 한 마을에서 세운 전씨 부부 민박 기념비였다. 광주·전남민주동우회가 1989년 1월13일 망월동 5·18 옛 묘역 들머리로 옮겨와 “5월 영령의 영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짓밟아달라”(표지판)는 취지로 묻은 것이다. 국승진 국립5·18민주묘지 의전계장은 “참배객들이 5·18묘지를 둘러본 뒤 요즘 화제가 됐던 ‘비석’을 찾아 인근에 있는 5·18 옛 묘역으로 이동하는 분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김태훈(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 열사의 묘지.

 

5·18묘지엔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 918명이 안장돼 있다. 이날도 5·18 유공자 3명이 새로 묻혔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간다”며 떠난 이광영(68)씨, 군부독재로부터 강제해직 고통을 겪은 노희관(87) 전 전남대 명예교수, 그리고 강대웅(61)씨 등이다. 4묘역에 들어섰다.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친 뒤 도서관에서 투신한 김태훈 열사 묘지에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비석의 날짜는 1981년 5월27일이다. 망월동 5·18 옛 묘역에도 58명의 넋이 묻혀 있다. ‘전두환’ 비석을 지나 1986년 4월 반외세·반독재 시위 중 숨진 이재호 열사의 묘지 앞에 섰다. 전두환·노태우 집권기인 1980~92년에 분신하거나 투신한 이만 47명으로 알려져 있다. 정대하 기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녀와 가족을 잃은 시민들이 설립한 사단법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제공

 26일 아침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들머리에서 추모객들이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쓰고 있다.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 들머리에 박혀 있는 전두환 비석.

 

영화에서도 실패한 ‘전두환 단죄’…광주 관객들 “쏴, 당겨”

 

전두환 본격 다룬 영화 적어

‘26년’  ‘남산의 부장들’ 정도

이젠 새로운 전두환 영화 나올 때

 

    영화 <26년> 속 전두환 모습. 청어람 제공

 

지난 40년간 한국영화가 전두환을 다룬 방식은 정면의 역사가 아니었다. 일종의 측면의 역사였으며 굴곡을 넘어 어느 정도는 굴종의 역사 서술방식이었다. 한 번도 전두환의 범죄 행위를, 그 극악한 반역과 반동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건 이 정치군인의 범죄가 역사적으로 정리가 돼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현실 생활 속에 아직도 이들 무리를 지지하는 극우 집단들이 뿌리 깊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후 세대인, 반공교육으로 세뇌된 일베 집단들의 난동과 방해, 협박이 일상 속에서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투자 제작자의 입장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여론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린치 행위다. 광주 학살이 사실은 북한군의 침투 해서 이들을 소탕하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식의 주장이 여전히 버젓이 방송과 언론을 타고 있는 한 ‘용기 있는’ 영화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5.18 당시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태다. ‘본격’ 전두환 영화는 좀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어떻게 보면 독재자 박정희의 본색을 그린 영화 역시 아직 제대로 나온 것이 없다. 예컨대 그의 만군 시절의 얘기 같은 것은 그려진 것이 없다.

 

    영화 <택시운전사>. 더램프 제공

 

만약 전두환과 그의 1980년 12.12쿠데타를 제대로 다뤘다면 한국에도 진작에 <다운 폴>같은 독일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다운 폴>은 전쟁에서 패하기 직전 지하벙커에서 작전 회의를 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통해 파시즘의 광기가 얼마나 극악한 것인가를 웅변하는 작품이다. 브루노 간츠의 명연기로도 유명하며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그의 연기 모습이 많이 패러디되기도 했다.

 

지금껏 전두환을 비교적 정면에서든, 아니면 우회적으로든 묘사한 작품들이 있다면 그것은 대개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이다.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변호인> <1987> 등이지만 이들 영화에서 전두환은 묘사만 될 뿐 그 모습을 직접 드러내게 하지는 않는다. 전두환의 모습을 거의 처음, 희화시킨 영화는 <26년>이다. 1980년에서 26년이 지난 2006년 세명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독재자 전두환을 처단하려 한다는 얘기다.(정작 영화는 2012년에 개봉됐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간절히 원하고는 있지만 현실 세상은 결코 그럴 수 없게 하는 이야기, 곧 전두환 처단이 영화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 <변호인>. 위더스필름 제공

 

이 영화가 상영됐던 당시 광주의 한 극장에서는 영화 속 저격수(한혜진)가 멈칫멈칫 사격을 망설이는 장면에서 관객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쏴! 당겨!’라고 외치기도 했다. 영화의 열린 결말을 두고는 감독 조근현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전두환을 연기한 장광의 대사 만큼은 리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철통 경비를 뚫고 자신의 아방궁에 침투한 호남 조폭 곽진배(진구)에게 전두환은 결코 뉘우침이 없다.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너희들이 무엇을 아느냐는 식이다. 장광은 그런 식의 비아냥거리는 어투의 연기에 능하다. 원한을 품고 일차적으로 전두환을 암살하려 하는 김갑세(이경영)도 속절없이 그와 경호원들에게 당하고 만다. 지금 생각하면 거들먹거리는 영화 속 전두환의 모습은 실제로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26년>은 그런 인물 묘사의 리얼함만으로도 평가되고 기억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 전두환(오른쪽).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두환의 저열한 인간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영화는 우민호 감독의 2020년작 <남산의 부장들>이다. 여기서 배우 서현우는 전두환의 대머리를 표현하기 위해 앞머리를 삭발하고 나온다. 영화 속에서 전두환은 거의 대사가 없는데, 10.26 직후의 밤을 묘사한 마지막 장면에서 전두환에 대한 인물평에 있어 영화는 화룡정점을 찍는다. 거기서 전두환은 박정희의 집무실 비밀 금고에서 돈을 훔친다. 카메라는 금고를 열면서 흘깃 눈치를 보는 전두환의 비열한 얼굴 표정을 담는다. 결국 전두환은 도둑놈이었음을, 저열한 절도범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박정희의 비자금은 물론이고 정권과 정부까지 훔친 장본인 전두환의 모습이 가장 적극적으로 그려진 셈이다.

 

어찌 보면 폭도의 우두머리 전두환과 그 일당들에 대한 영화는 아직 시작도 못 한 셈이다. 아직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많다. 영화가 스스럼없이, 아무런 제약과 방해 없이 나올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1980년이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늘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게 한다. 전두환의 사망을 계기로 새로운 전두환 영화들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결국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등 916명, 국가 상대 940억원대 소송

 

지난 25일 오전 전두환씨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5공 피해자 11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과 없이 죽음을 맞이한 전씨를 규탄하고, 재산을 피해자와 사회에 환원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와 가족 등 5·18 관련자 916명이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943억여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5·18구속부상자회는 회원 916명이 국가를 상대로 약 943억원의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26일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소송은 모두 3건이다. △5·18유공자 본인과 유공자의 생존부모 등 882명이 913억여원을 구하는 소송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옥중 단식투쟁을 벌이다 숨진 고 박관현 열사 가족 9명이 제기한 17억원 규모 위자료 청구소송 △5·18민주유공자 유족 25명이 12억5천만원을 구하는 소송이다.

 

원고들은 “기존의 손해배상은 유공자와 가족 등의 정신적 손해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5‧18 관련자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는데, 여기에 정신적 손해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이에 관련 조항을 심리한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5·18 보상법에 근거해 보상금을 받았어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보상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원고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엘케이비(LKB)는 “5‧18 생존자 대부분이 장래 사회생활을 한창 준비해야 할 청년기였음에도 국가에 의한 부정적 낙인과 감시‧사찰로 현재까지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유공자 등에 대한 소송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5·18 당시 무력 진압으로 사망하거나 다치고,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가족 70여명을 대리해 지난 24일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조영선 변호사는 “그동안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 또한 지나치게 낮거나 모욕적이었다.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그 죄를 국가에 묻고자 한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손 전 의원 “진실이 밝혀지는 데에 꼬박 3년”

 

손혜원 전 의원이 2019년 1월23일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목포시의 도시재생 사업 계획을 미리 파악해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손혜원 전 의원이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변성환)는 25일 부패방지법 위반,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손 전 의원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패방지법 위반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부동산실명법에 대해서만 유죄 판단을 내렸다.

 

손 전 의원은 2017년 5월18일 전남 목포시청 관계자에게 ‘도시재생사업 계획’ 자료를 받은 뒤, 같은 해 6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조카 등의 명의로 사업구역에 포함된 토지와 건물을 취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토지와 건물을 지인과 재단에 매입하게 한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도시재생사업 계획 자료의 비밀성을 인정하면서도 손 전 의원이 해당 자료를 근거로 부동산을 취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손 전 의원이 자료를 보기 전 부터 해당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그 자료를 보기 전부터 이미 창성장(게스트하우스)에 관심을 갖고 매수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기밀을 이용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밝혔다.

 

또 손 전 의원이 해당 자료를 보기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목포 구도심 관련된 게시물을 올리고, 목포 구도심 부동산 3곳을 매수한 점도 비밀 자료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손 전 의원이 팟캐스트 방송 등에서 목포 목조주택 구입을 권유했는데, 재판부는 이같이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부동산을 매수하거나 제삼자에게 매수를 권유할 때 비밀을 이용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손 전 의원의 조카 명의로 거래한 혐의(부동산실명법 위반) 대해서 재판부는 1심의 유죄판단을 유지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손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진실이 밝혀지는 데에 꼬박 3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글을 올렸다. 이승준 기자

 

딸을 부정채용시켜 뇌물 혐의로 재판 중... "직능본부장" 채용

 

케이티(KT)에 딸을 부정채용시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019년 7월2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 발언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딸의 케이티(KT) 특혜 채용 뇌물 혐의로 재판 중인 김성태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회 직능총괄본부장으로 선임하자 ‘윤 후보가 강조하는 ‘공정’에 배치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용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25일 논평을 내어 “선택적 공정과 선택적 분노, 케이티 딸 특혜 채용에 관대한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말한 공정은 무엇이었냐”며 “무지한 것인가. 청년을 우롱하는 것인가. ‘유체이탈’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전 대변인은 “국민의힘의 습관성 위선과 거짓말에 국민의 분노도 아깝다”며 “당시 케이티 정규직 공채 경쟁률은 81대 1이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권력을 악용한 취업 청탁은 ‘성실한 노력’을 조롱하는 악질 범죄”라고도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였던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석채 당시 케이티 회장 증인 채택을 무마하는 대가로 자신의 딸을 케이티 그룹에 채용하게 한 혐의(뇌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의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11월 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고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김병민 국민의힘 선대위 대변인은 26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직 대법원 최종 확정판결이 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