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재단 6월 미 경매서 매입해 국내 환수

18일부터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일반 공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6월 미국 경매에서 매입한 해시계 앙부일구’. 조선 4대 임금 세종 치세기의 발명품이지만, 환수된 앙부일구는 18~19세기 제품이다.

       

500여 년 전인 143410, 서울 거리에 사상 최초로 공중용 해시계가 등장했다. 종묘 앞과 종로 1가 중학천에 걸친 다리인 혜정교 앞에 각각 설치된 해시계의 이름은 앙부일구’(仰釜日晷). 당시 재위 16년째를 맞은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1450)이 과학자 장영실과 이천, 김조 등에 명령해 처음 만든 이 해시계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오목한 금속제 구형 그릇 안 쪽에 뾰족한 시침 막대를 놓고, 여기에 비치는 햇살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지게 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발명품이었다.

영침 둘레에는 하루의 시각선이 표시됐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단번에 보고 알게끔 각 시각을 상징하는 쥐와 소, 호랑이, 토끼 등 십이지 동물상을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종 16102일조에는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앙부일구로 시간을 잰 뒤 보고한 내용이 전한다. “()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과 분()이 빛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해 백성을 위한 애민의 마음으로 십이지상이 그려진 해시계를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의 발명품인 앙부일구는 그 뒤 조선 시대 말까지 공중용 시계는 물론 도자기나 목제 등의 휴대시계 등 여러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져 퍼지게 된다.

1446년 창제한 한글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이 구현된 중요 발명품으로 꼽히는 앙부일구’(仰釜日晷) 완형품이 최근 미국에서 고국으로 되돌아왔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지난 6월 미국 경매에서 매입한 18~19세기 제작품 앙부일구17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한다.

재단 쪽은 지난 1월 이 유물이 현지 경매에 출품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유물에 대한 조사와 국내 소장 유물과의 비교분석 등을 진행했다. 경매는 원래 3월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확산사태로 수차례 취소되고 연기되는 곡절을 겪었다. 결국 6월 경매에서 낙찰받아 입수한 뒤, 지난 8월 국내로 들여왔다.

<국조역상고> 1에 기록된 앙부일구의 북극고도 관련 기록(붉은 선으로 친부분). ‘숙종 39년인 1713년 청 사신 하국주가 한양 종로에서 북극고도를 측정해 373915초의 값을 얻었다는 내용으로 이 측정값을 명문에 표기한 앙부일구 환수품의 제작 시기가 1713년 이후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앙부일구는 직역하면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란 뜻이다. 조선 시대 과학 기술 수준과 백성을 위한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이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지름 24.1, 높이 11.7, 4.5의 동합금 유물이다. 몸체에 1713(숙종 39) 한양 위도 측정치인 북극고 373915(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란 명문이 새겨져 1713~19세기 초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솥뚜껑을 엎은 전형적인 앙부일구 형태를 띠고 있지만,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구형용기에 시각선과 계절선, 24절기의 명칭을 은입사 기법으로 새겨넣었고, 받침 다리엔 화려한 구름과 용 문양까지 장식해 조형성까지 지닌 최상급 앙부일구로 평가된다. 박물관 쪽은 환수된 앙부일구는 서울 위도에서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라며 고국의 하늘 아래로 돌아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환수의 의미가 더욱 깊다고 밝혔다.

환수된 앙부일구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뾰족한 모양으로 해 그림자를 드리우며 시간을 알려주는 영침(影針)과 그 둘레에 시각을 가리키는 시각선이 그려져 있다.

현재 앙부일구는 세종 당시의 원본은 사라졌고, 조선 후기 제작품만 남아있다. 동합금 금속·대리석·도자기 등 재료별로 여러 크기의 유물이 있는데, 앙부일구를 대표하는 동합금 제품은 환수품 외에 모두 7점이 국내에 전한다. 보물 2점을 포함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3점을 비롯해 고려대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이 각각 1점씩 소장 중이다. 국외에는 영국 옥스퍼드과학사박물관, 일본 세이코박물관 등에 3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궐 권역인 덕수궁 석조전과 창덕궁 대조전·주합루, 창경궁 풍기대·옛 장서각 터 앞에는 왕실에서 앙부일구를 설치했던 대도 남아있다.

돌아온 앙부일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하면서 자격루, 혼천의 등의 다른 과학 문화재와 함께 연구·전시 등에 활용된다. 문화재청은 18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환수한 앙부일구를 공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1954년 선교사로 파견돼 인천 정착, 20여년 산업선교 활동 보급에 진력

1974인혁당 피해자기도 모임박정희 정권 강제 추방으로 출국

미 의회 박 정권 인권 실태증언전미 순회 한국 민주화강연 활동

 

197412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 당했던 조지 오글(왼쪽) 목사는 20년 만인 1994년 민청학련운동 계승사업회 초청으로 부인 도로시 오글(오른쪽)과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오글 목사의 왼쪽 약지에 추방 직전 인혁당 조작 사건사형수 우홍선의 부인이 여비로 건네준 금반지가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박정희 독재정권의 인혁당 조작사건을 폭로해 강제 추방 당하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조지 오글(한국 이름 오명걸) 목사가 지난 15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별세했다. 향년 9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7일 오글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외국인이자 종교인으로서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오글 목사의 업적과 뜻을 정리하고 기릴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오글 목사는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서 1954년 부인 도로시와 함께 한국땅을 처음 밟은 뒤 20년간 산업선교 활동을 펼쳤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해 노동자의 권리 노동법에 기반한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인권옹호에 앞장섰다. 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미국·캐나다 선교사들 모임인 월요모임에 소속돼 선교사로 활동했다.

조지 오글(뒷줄 오른쪽) 목사는 부인 도로시 오글(뒷줄 왼쪽)과 함께 1954년 한국에 파견되어 12녀를 두고 1974년 강제추방 당할 때까지 20년 동안 산업선교와 민주화 지원 활동을 펼쳤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정희 정권의 감시대상이 된 오글 목사는 197411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들을 위해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사건이 조작된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인혁당 피해자 부인들의 요청을 받아 기도를 했을 뿐이었으나 그는 곧바로 중앙정보부에 붙잡혀가 심문을 당하고 빨갱이라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런 사실이 <뉴욕타임즈>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지자 박 정권은 오글 목사에게 강제 추방 명령을 내렸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인권회복기도회에 가다가 체포된 그는 1214일 아침 출입국관리소로 끌려가 다시한번 조사를 받은 뒤 그날 저녁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19741214일 조지 오글 목사가 강제 추방 명령으로 김포공항에서 대한한공 비행기에 오르며 주먹을 높이 들어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과 함께!”를 외치고 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듬해 49일 새벽 박 정권은 인혁당 사건 선고공판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8명을 사형시키는 사법 살인을 감행했고, 그 가족들마저 빨갱이낙인으로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시켰다. 이에 오글 목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운동에 앞장섰다.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관련 증언을 하고, 한인 민주화단체와 함께 강연 등을 통해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다.

197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지 오글 목사 강연회 소식이 사진과 함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기관지 한민신보에 실렸다.

1994년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초청으로 20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던 오글 목사는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는 등 와병 이전까지 여러 차례 더 다녀갔다. 지난 2002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외국 민주인사 초청 행사에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께 참석한 그는 김포공항에서 강제로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기 직전 한 인혁당 피해자의 부인이 자신의 손가락에 있던 금반지를 빼서 건네줬고, 비행기에 타자 한 승무원이 익명의 한국 젊은이가 쓴 응원의 편지를 전해줘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때까지 30년 가까이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다녔다는 그는 민주화의 상징물로 그 반지를 한국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인혁당 유족들은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철저히 통제가 된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조지 오글 목사의 이런 희생과 노력은 그야말로 한줄기 구원의 빛이 아닐 수 없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20021015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외국 민주인사초청으로 방문한 조지 오글(맨왼쪽) 목사가 제임스 시노트(왼쪽 둘째) 신부와 함께 인혁당 조작 사건' 유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는 2002년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인권문제연구소로부터 제5회 한국인권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인혁당 사건 등 자신이 겪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20세기 한국의 이야기>(신앙과지성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20184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표단이 미국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한 요양원에 있던 조지 오글(왼쪽 둘째) 목사와 부인 도로시(가운데)를 위문 방문했다. 오글 목사 부부는 유창한 한국말로 여전히 한국의 민주화와 발전을 기원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0184월 정진우 상임부이사장과 기독교민주화운동 상임이사인 김영주 목사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노환으로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던 오글 목사를 위문 방문했다. 김 목사는 “89살의 고령에도 여전히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시고, 조화순 목사 등 인천에서 산업선교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을 기억하며 안부를 전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 6월 제33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오글 목사에게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국민포장을 전달했다. 김경애, 장필수 기자


서울고법 원심 타당 결정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지난 9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변호인단, 8·15 광화문집회 비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법원의 보석취소 결정에 불복하며 항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20(재판장 강영수)17일 전 목사 쪽이 낸 보석취소 인용결정에 대한 항고 신청을 기각했다. 전 목사는 올해 4·15 총선 전 서울 광화문집회 등에서 자유한국당 지지를 호소하며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구속됐다가 56일 만인 지난 420일 풀려났다. 보석조건은 위법한 일체의 집회·시위 참여 금지였지만 전 목사는 8·15 광화문집회에 나갔고 검찰의 보석취소 청구로 지난 97일 다시 수감됐다. 이에 전 목사 쪽은 보석취소는 부당하다며 항고했다.

그러나 항고심 재판부는 전 목사가 8·15 광화문집회에 참석해 다수의 참가자를 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이념적 성향에 관한 발언을 한 것은 이 사건 지정조건에서 금지하는 행위로 당해 사건과 관련될 수 있는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원심이 전 목사에 대해 보석취소 사유로 법원이 정한 조건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것은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법원은 전 목사가 재수감 뒤 3일 만에 보석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곧바로 항고한 건도 또 다시 기각했다. 재판부는 그간 알려진 전 목사의 활동이나 상황을 종합하면 원심이 보석취소 결정을 한 뒤 보석조건 부과만으로는 전 목사의 법정 출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보석청구를 기각한 것이 부당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윤영 기자

'휴대전화 비번 공개법' 논란엔 "디지털시대 대비 연구"

 

법사위 전체회의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6"검찰총장의 쌈짓돈으로 돼 있는 것이 거의 5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하고 "그것이 너무 자의적으로, 임의로 쓰이고 한 번도 법무부에 보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활동비 94억원을 내려보낸 것의 절반 정도를 총장 주머닛돈처럼 쓰는 상황의 실태를"이라며 "임의로 쓴 부분이 있는지 지금 점검하는 중이고, 점검 이후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추 장관은 "기획재정부에서 201812월 특활비 사용지침을 내린 적이 있는데, 대검은 그에 따르지 않은 것 같다""특정한 사건 수사에 개입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용도를 세분화하는 등 지침에 맞게 쓰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조직법상 예산을 지도·점검하는 책임은 법무부 장관이 지는 것"이라며 "예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특활비 점검의 정확한 절차에 대해 '감찰이라는 보도도 있는데, 일종의 회계 검사가 맞느냐'는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질문에 "그렇다. 수시로 하게 돼 있다"고 답했다.

추 장관은 법무부 검찰국에서 특수활동비를 '봉투'에 담아 집행했다는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자꾸 '봉투에 담아서 줬다'를 문제삼는데, 현금 지급을 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추 장관은 "돈 봉투 만찬 사건의 회식비처럼 빗대 말하면 유감"이라며 "정확히 이야기하면 현금을 그냥 줍니까? 봉투에 담아서 주지"라고 설명했다.

조 의원은 이날 법무부 내부적으로 특활비를 나눠준 것에 심재철 검찰국장이 "상사가 부하직원의 특수활동을 위해 봉투에 넣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자 추 장관의 발언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법안'에 대해서는 "법안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디지털 로'(Law)를 연구해야 하지 않느냐"며 연구 단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대권도전 질문에 "검찰개혁 전까지 정치 야망 안갖기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6"검찰개혁을 하기 전까지는 정치적 욕망, 야망을 갖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서울시장이나 대선 출마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법무부 장관으로서 오직 검찰 개혁에 사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그 일이 마쳐지기 전까지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전 의원이 "장관직에 있는 동안에는 표명하지 않겠다는 뜻이냐"고 묻자 추 장관은 "표명하지 않는 게 아니고 의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장관직을 그만둔 다음에는 할 수 있다는 말이냐는 질문에는 "그거야 알 수 없고, 검찰개혁이 완수될 때까지는(안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 거취론에 방어막'#우리가 추미애다' 등장

 

더불어민주당이 1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거취 논란에 방어막을 쳤다.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과 맞물려 추 장관의 대응에 대해선 쓴소리가 나오지만, 그렇다고 거취 문제까지 몰고 갈 사안은 아니라는 기류다.

정청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추미애 장관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추 장관은 검찰개혁 저항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고 있다""그를 공격하는 것은 마치 200년 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왜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핀잔과 같은 성격"이라고 옹호했다.

또한 '검찰개혁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추미애 장관 응원합니다'란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링크도 걸었다.

이 밖에 박범계 의원, 박성민 최고위원 등도 추 장관 거취 문제에 대해 "검찰개혁을 잘 하고 있다. 지금 인사를 하면 문재인표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친여 네티즌들은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추 장관 지키기에 나섰다.

이날 오전 민주당 공식 유튜브로 생중계된 최고위원회의 채팅창에는 '#우리가추미애다', '#추미애힘내세요' 등의 해시태그가 등장했고, '민주당은 추미애 법무장관을 지켜야 한다', '민주당은 내부 총질하는 박용진과 정성호를 탈당시켜라'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