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여당이 단독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의 ‘후폭풍’이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에 불어닥쳤다.
국민의힘은 24일 권익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비례대표인 한무경 의원은 제명하기로 했다. 이들 6명 가운데 이철규·정찬민·한무경 의원이 윤석열 캠프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이철규 의원은 윤석열 캠프의 조직본부장, 정찬민 의원은 국민소통위원장, 한무경 의원은 산업정책본부장이다. 캠프 인사가 이번 징계 명단에 오른 경우는 윤 전 총장 캠프가 유일하다.
윤석열 캠프의 김병민 대변인은 “정찬민·한무경 의원은 캠프 관련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철규 의원의 경우 “관련 의혹에 대해 당에 추가 해명 기회를 요청했기에 소명 절차를 지켜본 뒤 판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애초 권익위가 국민의힘에 통보한 12명 명단에는 이들 외에도 윤석열 캠프 소속 송석준 의원과 안병길 의원이 포함됐다. 12명 가운데 5명이 윤석열 캠프 소속이었던 셈이다. 당 차원 조사에서 이 두 의원은 ‘구제 대상’으로 분류됐으나, 안병길 의원은 “캠프에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며 홍보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캠프 내 주요 인사들이 부동산 문제에 연루되면서 윤석열 캠프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조직 재정비도 불가피해졌다. 한 캠프 관계자는 “명단에 오른 것 자체가 후보와 캠프에 누를 끼친 것”이라며 “(명단에 오른 의원들과 캠프가) 같이 가긴 어렵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열린민주당 “김의겸 해명, 사실에 부합…별도 조처 없다”
“권익위, 새로운 사실 없이 무책임한 조사” 비판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 ‘업무상 비밀’ 이용 의혹을 받은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과 관련해 열린민주당이 24일 “김 의원의 해명이 사실에 부합한다”며 징계 등 당 차원의 조처는 없다고 밝혔다.
열린민주당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권익위 내용을 확인한 결과 새로운 내용 없이 기존의 주장을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며 “열린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권익위 발표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점과 김의겸 의원의 해명이 사실에 부합하는 바, 김의겸 의원에 대한 별도의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열린민주당은 2020년 후보 선정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김의겸 후보의 해명을 검증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후보로 선정했으며 유권자와 당원들도 그 결과를 알고 김의겸 후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열린민주당은 이어 “아무런 추가 정황이나 근거 없이 기존의 문제제기가 있었으니 조사해야 한다는 식의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조사결과를 보내온 권익위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인 2018년 7월, 은행대출을 받아 25억7천만원짜리 서울 흑석동 상가주택 건물을 사들여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는 23일 권익위 발표에 대해 “(흑석동 재개발 내용은)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에 모두 상세하게 나와 있으며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며 업무상 비밀 이용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송채경화 기자
권익위, 국민의힘 의원 12명 ‘부동산 투기 등 의혹’ 확인
명의신탁 · 편법 증여 등 세금탈루 의혹 포함…특수본에 송부
김태응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의힘과 비교섭단체 5당 소속 국회의원 및 그 가족의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익위는 국민의힘과 비교섭단체 5당의 의뢰로 지난 6월 말부터 이들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등 총 507명의 최근 7년간 부동산 거래를 조사해왔다. 연합뉴스
국민권익위원회가 23일 국민의힘 소속 의원 12명과 열린민주당 소속 의원 1명의 부동산거래·보유 과정에서 본인 또는 가족의 법령 위반 의혹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권익위는 조사 자료를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송부하고, 해당 정당에도 결과를 전달했다.
권익위는 국민의힘 의원 12명(13건)이 각각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1건) △편법 증여 등 세금탈루 의혹(2건) △토지보상법·건축법·공공주택특별법 등 위반 의혹(4건) △농지법 위반 의혹(6건)이 있다고 판단했다. 열린민주당 의원 1명은 업무상 비밀이용 의혹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소속 의원은 법령 위반 의혹 사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웅 권익위 조사단장은 “국민의힘 13건의 경우 본인 관련 8건, 배우자 관련 1건, 부모 관련 2건, 자녀 관련 2건이며, 열린민주당 1건은 본인 관련”이라고 말했다. 권익위는 조사 자료를 특수본에 송부하고 국민의힘·열린민주당에도 조사 결과를 통보했다. 다만,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조사 결과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해당 의원의 실명과 구체적인 의혹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2019년 3월 흑석동 상가 건물 구입 건으로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난 김의겸 의원(열린민주당)은 ‘업무상 비밀이용 의혹’ 건으로 지목된 게 자신이라며 “흑석 재개발 9구역에 관한 내용은 서울시 ‘클린업 시스템’에 모두 상세하게 나와 있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특수본의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난달 29일부터 국민의힘 의원 102명과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 437명을 포함해, 정의당과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 비교섭단체 5개 야당 의원 116명과 그 가족 507명의 지난 7년간 부동산 거래 내역을 조사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지난 5일 복당한 윤상현 의원과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른 신변보호 대상인 태영호 의원, 무소속 8명 등은 조사를 받지 않았다.
아울러 이날 권익위 전원위원회는 개인정보제공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일부 의원(더불어민주당 2명, 국민의힘 2명) 가족들의 소명 사유가 적절한지를 심의해 “관계두절·연락두절 등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돼 종결하고 수사기관에 송부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다.
김 단장은 “조사 절차·범위 등에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야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한편, 조그마한 의혹이라도 법령 위반 소지가 있는 경우 수사기관에 송부하는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지난 4월부터 진행해온 일련의 조사가 부동산 투기 행태를 획기적으로 근절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권익위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74명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 12명이 법령 위반 의혹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이들에게 탈당 권유 조처를 내렸으나, 우상호 의원 등 5명은 탈당계 제출을 거부한 상태다. 김양진 기자
흑석동 상가 ‘업무상 비밀 의혹’ 김의겸 “어떤 비밀 이용했다는 건가”
“흑석 9구역, 2018년 5월 시공사 선정..부동산 구입 시기 두 달 뒤인 7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된 내용…무슨 의혹인지 권익위가 공개하라”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국민권익위원회가 23일 발표한 야당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에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흑석동 건물 매입 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김 의원이 업무상 비밀이용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흑석 재개발 9구역은 2017년 6월 사업시행인가가 났고, 2018년 5월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제가 부동산을 구입한 날은 두 달 뒤인 7월이다. 해당 내용은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에 모두 상세하게 나와 있으며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며 “청와대 대변인으로 일을 하면서 어떤 비밀을 얻었고 거기에 어떤 의혹이 있다는 건지 권익위원회는 공개해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인 2018년 7월, 은행대출을 받아 25억7천만원짜리 서울 흑석동 상가주택 건물을 사들여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의원은 그러나 “공직자가 무리하게 빚내서 집을 샀다는 비판은 감수할 수 있다”며 “그러나 공직을 토대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김 의원은 총선 직전인 지난해 1월 “해당 지역 재개발 계획은 이미 공개된 것으로 불법 취득한 정보 활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낸 ‘2020 더불어민주당 공직후보검증위 현장조사팀 조사결과보고서’를 공개했다. 김 의원은 “수사본부의 철저하고 조속한 수사를 기대한다”며 “당적 문제는 제가 거론할 문제는 아니다. 전적으로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권익위가 당에 해당 내용을 공식 통보해오면 이를 살펴본 뒤 당의 공식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민주당, 국민의힘 부동산 거래 의혹에 “엄중 조처” 압박
민주당-국민의힘 12명 동수 “권익위 여야 균형 맞췄나 의심”
‘탈당 권유’ 여당 지역구 10명 수용-거부 갈려 당적 보유 중
국민권익위원회가 23일 국민의힘 의원 12명의 부동산 거래 과정에 법령 위반 의혹이 있다는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과 여권 대선주자 캠프는 일제히 “엄정한 조처”를 촉구하며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민주당 현역의원 수가 국민의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권익위가 지목한 국민의힘 ‘문제 의원’이 여야 동수로 집계되자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민의힘이 예상 밖의 강도 높은 후속조처를 들고 나올 경우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지도부의 탈당 권유를 뭉개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저녁 이재명 경기지사와 저녁식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공무원의 부동산 투기를 비판·감시할 국회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의원 스스로 깨끗해야 한다”며 “그동안 이준석 대표가 민주당보다 강하게 원칙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 왔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보겠다”고 말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서면브리핑을 통해 “이제 국민의힘의 결단이 남았다. 이번 만큼은 민심을 역행해 적당히 눈치 보며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여당 대선주자 쪽도 철저한 대응을 요구했다. 이재명 캠프 홍정민 선임대변인은 “국민의힘에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의혹에 엄정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고, 이낙연 캠프 배재정 대변인은 “국민적 공분이 사그라들었다고 판단한다면 오판”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권익위가) 여야 균형을 맞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기엔 부족한 발표였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을 포함해 비교섭단체 야 5당의 전수조사가 모두 마무리되면서 부동산 거래 의혹이 제기된 여당 의원들의 거취에도 거듭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6월 권익위 전수조사 직후 민주당은 의원 12명에게 탈당을 권유했지만 의원총회를 통해 제명된 양이원영·윤미향 의원 2명을 제외한 지역구 의원 10명은 여전히 당적을 갖고 있다.
탈당 권유를 거부한 의원들(김수흥·김한정·김회재·오영훈·우상호)과 탈당계를 제출한 나머지 의원들(김주영·문진석·서영석·윤재갑·임종성) 간의 형평을 맞추기 위해 탈당 처리를 미룬 결과다. 이중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수사로 서영석·윤재갑·우상호 의원은 혐의를 벗었다.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에 멈춰선 민주당은 국수본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후속조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그동안 당이 징계한 것이 아니라 정무적 판단 아래 탈당을 권유한 것 아니냐”며 “수사 결과 문제가 있다고 나오면 징계 단위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권익위 전수조사 직후 지도부의 전격적인 후속조처로 민주당이 박수를 받았지만 비례대표 외에 실질적 불이익을 받은 의원이 없다는 점에서 ‘읍참마속’ 탈당 권유가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심우삼 기자
“탈레반이 (약속과 달리 공항 안으로)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한국으로 오려는 조력자들이) 버스에 14~15시간을 갇혀 있었어요. 창문을 다 가린 버스 안에서, 에어컨도 없어 덥고, 아이들은 울고…하룻밤을 꼬박 새고 25일 새벽 동이 틀 무렵에야 버스가 공항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얼굴이 사색이 돼서 (버스에서) 내려오는데…”
줌 화면 너머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공참)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27일 오전 1시간 넘게 진행된 외교부 출입 기자단을 상대로 한 화상 회견에서 김일응 공참은 절체절명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지 여러 차례 ‘울컥’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각), 한국행을 꿈꾸며 아프간 조력자들이 통과한 공항 출입구 근처에서 대형 ‘자살폭탄 공격’으로 미군 등 다수가 죽거나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하루 차이가 운명을 갈랐다.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이 27일 오전 외교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줌’을 활용한 회견을 통해 아프간인 조력자 390명을 한국으로 무사히 데려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줌’ 화면.
‘15시간 버스 감금’ 사태는, 공항 밖을 장악한 탈레반이 조력자들이 갖고 있던 여행증명서가 원본이 아닌 사본이라며 공항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옥신각신 끝에 김 공참이 여행증명서 원본을 들고 공항 밖으로 나가겠다고 한 뒤에야 탈레반은 버스를 통과시켰다.
아프간인 조력자 390명을 한국으로 무사히 데려온 ‘기적 작전‘(Operation Miracle)은 아프간조력자-한국-미국-탈레반으로 엮인 소통 사슬의 한곳만 문제를 일으켜도 실패의 벼랑으로 떨어질 운명이었다. ‘살얼음판 걷기’가 아닌 과정이 없었다. 7개조로 나뉜 긴밀한 소통으로 조력자들을 미리 카불로 불러모았다. 공항 밖은 탈레반이 장악해 안전한 곳이 없었다.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버스 탑승 지점을 알렸다. ‘늦으면 안 되지만, (30분 이상) 너무 빨리 오지도 마라’가 지침. 탈레반 눈에 띄면 위험하니까.
카불 공항은 “시스템이 없었다”. 비행기만 뜨고 내릴 뿐, 상점도 아무것도 가동되지 않았다. 조력자들도, 이들을 도우려 카불에 다시 들어간 김 공참 등 한국인들도 먹지 못했다. “(모두들) 계속 굶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모든 걸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
지난 15일 대사관 철수 ‘명령’을 받고 김 공참은 “순간 막막해졌다”. ‘우린 어떡하냐’는 조력자들의 물음에 “한국으로 데려갈 거고, 방법을 생각해서 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카불을 떠났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다짐대로 다시 카불로 들어갔다. “(외교부) 본부로서는 (우리를 카불에 재진입시켰을 때 발생할지도 모를) 한국인 (인명) 피해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데 결심해줘 다행이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김 공참은 ‘사지’로 돌아갈 수 있게 승인한 외교부 등 한국 정부의 결정을 ‘다행’이라고 묘사했다.
김 공참은 카불로 다시 들어간다는 사실을 가족한테 알리지 않았다. “걱정할까 봐”. 한국에 들어와 전화통화 할 때 두 딸이 “아빠 뉴스에 나오던데 카불 갔다온 거야? 아빠는 참…”이라며 살짝 질책을 했다고 전할 때 김 공참의 낯빛이 아주 환해졌다.
“모든 이를 데리고 올 수 있어 기분이 좋고, 이번 일로 ’아 우리가 선진국이 됐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김 공참은 “(이른바 선진국이 갖춰야 할) 국격과 책임”을 강조하며 “이번에 그걸 보여준 거 같아 가장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는 “옛 사람들이 왜 ‘생거진천’(진천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라고 했는지 이번에 느꼈다”며 “(조력자들의 초기 체류를 받아들여준) 진천분들한테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어 “더 높아진 시민의식”을 짚고는, “이게 끝은 아니지 않나. 이분들이 잘 정착해서 한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27일 낮 1시께 아프간 조력자 13명이 인천공항으로 추가 입국했다. ’미라클 작전’을 통해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한국에 온 아프카니스탄인은 모두 390명이다. 외교부는 “애초 발표는 391명이었는데, 명단에 없던 1명을 발견해 신원 확인을 담당하는 카불 미군에 신병을 인계해 실제 입국자는 모두 390명”이라고 설명했다. 이제훈 기자
아픔을 안아준 진천…‘기적같은’ 여정 푼 아프간인 377명 환영 펼침막
아프간 탈출 기여자 차량 14대 나눠타고 도착
진천·음성 주민 환영, 길목 곳곳에 환영 펼침막
현지서 집계 혼선 378→377명…추가 입국자 13명도 진천으로
미성년자 61%, 6살 이하 어린이 110명…임시 보육시설 운영
코로나 검사 360명 ‘음성’, 경계선 17명 재검, 퇴소 전 2차례 추가 검사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을 도운 아프간 가족 377명이 탄 버스가 27일 충북 진천 혁신도시 안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으로 향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한국정부 활동을 도왔던 아프간인과 가족 377명이 충북 진천 혁신도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국가 인재원)에 여장을 풀고 ‘기적같은’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아프간인 377명을 태운 버스가 27일 낮 12시8분께 비 내리는 국가 인재원에 도착했다. 이들은 전날 오후 4시24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김포에서 첫날밤을 보낸 뒤 이날 오전 9시20분께 버스 14대에 나눠 타고 인재원으로 향했다. 교통 여건 등으로 애초 예정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경찰·군 호송차를 앞세우고 5대가 먼저 도착했으며, 30분 뒤 다시 5대, 마지막 4대는 오후 1시55분께 도착했다. 아프간인들은 이시종 충북지사, 송기섭(진천)·조병옥(음성) 군수와 진천·음성군청 공무원·주민 등 100여명의 환영 속에 인재원에 내렸다. 이날 오후 1시7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프간 추가 입국자 13명도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고 인재원에 합류한다. 이들은 앞으로 6~8주일 동안 이곳에 임시 체류할 예정이다.
이들을 태운 버스가 통과한 국가 인재원 앞길에는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 합니다’(덕산읍 기업체협의회),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가시길 바랍니다’(덕산읍 발전협의회) 등 환영 펼침막이 걸렸다. ‘따뜻한 마음으로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을 맞아주신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이들의 임시 체류를 받아들인 진천·음성 군민들의 결정을 칭찬하는 펼침막도 더러 보였다.
이날 환영 펼침막을 들고 아프간인들을 맞은 진천 주민 박요한(65)씨는 “정치·종교적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다 한국으로 온 이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나왔다. 편안한 마음으로 잘 지내다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프간 기여자들이 6~8주일 동안 임시 체류할 국가 인재원 앞길에 걸린 환영 펼침막.
이날 국가 인재원에는 애초 알려진 378명이 아닌 377명이 도착했다. 이는 긴박한 현지 상황 속에서 인원 집계에 혼선을 빚었기 때문에 생긴 착오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76가구로 남성이 194명(51%), 여성 183명(49%)이다. 미성년자가 5분의 3가량인 231명(61%)이며, 6살 이하 어린이도 110명(29%)이었다.
정부는 국가 인재원 안에 이들 어린이가 이용하는 임시 보육시설을 설치·운영할 계획이다. 주은주 국제라이온스클럽 음성지역 부총재는 “아이들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크레파스·스케치북·학용품 등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27일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앞에서 아프간 기여자들의 임시 체류 생활 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도착 뒤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았으며, 17명을 뺀 360명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17명은 재검을 받을 예정이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은 이들이 입소한 뒤 국가 인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 검사에서 17명은 경계선상으로 판정돼 24시간 뒤 재검을 한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2주간 격리 생활을 하고, 7일째 2차, 입소 해제 직전 3차 코로나 진단검사를 진행하는 등 면밀하게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가족 단위로 배정된 방에서 생활하고, 인재원 직원 등 외부 접촉 우려를 고려해 식사는 도시락으로 방에서 한다. 아프간인 가운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이를 통역으로 선발해 정부 대책반 등과 소통하게 할 참이다. 강 법무부 차관은 “진천·음성 주민 등 국민의 이해·포용으로 이들을 맞을 수 있었다. 경찰 3개 중대와 법무부 직원 등을 상주시켜 주민들의 치안 불안을 해소하겠다. 필요하면 추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충북도 등은 진천군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아프간 기여자들의 생활 등을 지원할 참이다.
최용우 진천군 행정지원과 주무관은 “법무부 등 정부 대책반과 협의·소통하면서 아프간인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할랄 음식이나 기호품 등 공급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윤 진천군 이장단 연합회장은 “이들이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주변 사회단체 등과 협의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해볼 계획이다. 지난해 중국 우한 교민이 왔을 때처럼 성금·물품 전달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우리도 한국과 인연…도와주세요” 아프간서 온 ‘미라클 SOS’
한-아프간 직업훈련원 교사 호소
2002년 코이카 설립·운영했으나
2006년부턴 아프간 정부에 위탁
직업 훈련원 근무자 모두 33명
아프간인 ㅎ씨가 코이카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쪽으로부터 받은 직업훈련 교사 연수 수료증. ㅎ씨 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간인 390명이 무사히 탈출한 가운데, 한국과 인연을 맺었지만 이송 대상에 속하지 못한 아프간인 수십명이 여전히 애타게 한국 정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26일 <한겨레>와 연락이 닿은 33살의 아프간 남성 ㅎ씨는 “한국 정부에 우리는 매우 두렵고 (우리를) 뒤에 남겨진 느낌(left behind)이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2004년 아프간 지원 사업으로 설립한 ‘한-아프간 직업훈련원’에서 컴퓨터 교사로 12년간 일했다. 자동차정비, 컴퓨터, 건축 등 7개 분야의 과정을 운영하는 이 훈련원을 거쳐간 아프간인은 7000여명에 달한다.
ㅎ씨가 <한겨레>에 메신저로 제공한 자료를 종합하면, 그는 지난 5일 주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여러 차례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택한 방법이었다. 자신들을 한-아프간 직업훈련원에서 5~16년씩 일한 교사들이라고 소개한 그는 교사 대표 4명과 대사의 면담을 요청했다. 미국 정부의 경우 자신들과 직·간접적으로 일한 아프간인들의 철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ㅎ씨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인 만큼 자신들은 고국에 있는 것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고 썼다. 아프간 상황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데 한국 쪽 사업에 관여했던 자신들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대사관은 직업훈련원에서 근무했다는 증빙 서류를 보내면 검토 뒤 연락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에 ㅎ씨는 자신이 포함된 33명의 이름과 신원 정보가 명기된 직업훈련원 증명서를 발급받아 14일 대사관에 보냈다. 하지만 이때는 탈레반의 수도 카불 진입이 임박한 시점이었고 대사관은 15일 잠정 폐쇄됐다. ㅎ씨는 이후 대사관 쪽과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26일 처음 이들의 소식을 <한겨레>에 전한 국제인권활동가 김여정씨는 “하루 이틀 내로 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난다. 제발 이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말했다. 26일 저녁 7시께까지 현지에 남아 있던 한국군 수송기 2대에 이들을 태우는 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그는 이날 하루 종일 외교부와 취재진, 현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이들의 사연을 알렸다.
김씨는 26일 오후 3시 넘어 외교부로부터 공식 입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부는) 이들이 한국 정부와 근로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근무한 직업훈련원은) 아프간 정부에 위탁해서 운영한 것”이어서 “(이들의 경우 국내 이송) 대상에서 배제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ㅎ씨 등이 일했던 직업훈련원은 코이카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1236만여달러(약 144억원)를 들여 설립·운영한 곳이다. 문을 연 2004년부터 이듬해까지는 코이카에서 직접 운영했지만, 2006년에는 아프간 정부로 사업을 이관해 지금껏 아프간 정부에서 운영해오고 있다. ㅎ씨와 동료 교사들은 아프간 정부에 고용됐던 것이다. 그간 정부에서 밝힌 국내 이송 대상은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을 지원해온 이들로, 대사관 및 한국 정부가 현지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직업훈련원 등에 직접 고용됐던 아프간인들이었다.
하지만 ㅎ씨가 <한겨레>에 보낸 직업훈련원 증명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교사 22명이 많게는 세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ㅎ씨의 2013년 ‘코이카-산업인력공단 연수’ 수료증 및 한국방문 비자와 함께 놓고 보면 이들도 같은 연수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설립하고 지원하는 시설에서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이들에겐 한국과 인연이 혼돈에 빠진 아프간을 탈출할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김씨는 “(직업훈련원은) 초기 2년 한국이 운영할 때 훈련시켰던 직원들이 이양받아서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훈련원 졸업식에는 항상 (한국) 대사가 참석하고 코이카로부터 펀딩”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현대차 직원만 데려오고 사내하청 직원은 안 데려오는 꼴”이라며 한국 정부의 이송 대상 선정 기준을 비판했다.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김씨에 따르면 한국 대학에 각종 장학금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대학생 수십명도 9월 새 학기를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들 역시 대사관에 전자우편을 보내 현지에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는 사정을 알리며 자신들도 함께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26일(현지시각) 저녁 카불국제공항 인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100여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들이 기대하던 ‘기적’(현지 조력자 국내 이송 군 작전명)은 더 요원해진 분위기다.
김씨는 27일 “혹시나 한국에서 (자신들을 태우러) 또 올까봐 (직업훈련원) 교사들이 기다리다가 새벽부터 모두 이웃 나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파키스탄 국경도 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국경을 넘기 위해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파악한 직업훈련원 교사 등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한국행을 희망하는 아프간인만 수십명이다.
앞서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만일 이후에 추가로 한국행을 희망하는 아프간인이 있을 경우에는 과거의 고용관계, 신원 등을 감안해서 지원 여부 및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은 기자
'마침내 희망의 땅으로'…한국 도운 아프간인 378명 입국
한국군 수송기 타고 인천공항 도착…나머지 13명도 조만간 들어올 듯
코로나 음성이면 진천 인재개발원으로 이동…장기체류 자격 부여 예정
[아프간 협력자 이송] 창밖 내다보는 아프간 협력자들=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탑승한 우리 공군의 KC-330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가 26일 오후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와 그 가족 378명이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마침내 탈레반 위협에서 벗어나 '희망의 땅'에 발을 디뎠다.
정부가 분쟁 지역의 외국인을 이처럼 대규모로 국내 이송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을 태운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은 26일 오후 4시24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53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출발해 약 11시간을 비행했다.
전체 입국 대상인 391명 가운데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남아있는 13명은 다른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조만간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 KOICA(한국국제협력단),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 등에서 의사와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 강사 등으로 일한 전문인력과 그들의 가족이다.
아프간 협력자 한국 도착=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2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가족 중에는 신생아를 포함해 5세 미만의 영유아도 상당수 포함됐다.
상황 점검을 위해 인천공항을 찾은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현지 대사관 보고에 의하면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된 신생아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항 내 별도 장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 등 방역 절차를 거친 뒤 공항 근처 임시시설에서 대기하다 음성이 확인되면 27일 오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들은 인재개발원에서 6∼8주간 머물며 2주 격리 뒤 정착 교육을 받을 예정이며, 그 이후엔 정부가 마련한 다른 시설로 옮겨질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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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이번 입국자들에게 우선 최장 90일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단기비자(C-3)를 발급하고, 이후에 장기체류 비자로 일괄 전환할 예정이다. 인재개발원에서 임시생활 단계를 마치면 취업이 자유로운 거주(F-2) 비자가 발급된다.
정부는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진 8월 초부터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한국을 도운 아프간인들의 국내 이송을 준비했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지난 23일 한국군 수송기 3대를 현지에 보냈다.
한편 파키스탄에 있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 13명이 탑승한 군 수송기(C-130J)가 26일 오후 6시 58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한국으로 출발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수송기는 27일 오후 1시2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가 아프간 카불에서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으로 데려온 협력자와 가족 391명 중 378명은 공간이 더 넓은 공중급유수송기(KC-330)를 타고 이날 오후 한국에 도착했다.
나머지 13명은 탑승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급유기에 타지 않고 다른 수송기를 타기 위해 쉬고 있었다.
정부는 협력자 이송을 위해 지난 23일 새벽 KC-330과 C-130J 2대 등 수송기 총 3대를 현지로 투입했다.
작전요원이 탑승한 마지막 수송기(C-130J) 1대도 곧 이륙할 예정이다.
C-130J 2대가 한국에 도착하면 정부가 이달 초부터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준비한 이송 작전이 마무리된다.
법무부 "아프간 협력자들 장기체류 자격 부여"
단기방문비자 발급후 장기체류로 전환… 출입국법 시행령 개정
박범계 장관 "생계비·정착지원금·교육 등 난민보다 배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프간 현지 조력자 및 가족들 한국 이송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법무부는 탈레반을 피해 국내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와 그 가족들에게 난민 인정자에 준하는 장기체류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법무부가 한국 정부와 기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난민 인정자에 준하는 장기체류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6일 오후 아프간 협력자와 가족들이 입국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브리핑을 열어 "정부는 수차례의 토론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특별입국을 수용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며 "아프간인 특별입국자들에게 단계별로 국내 체류 지위를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번에 들어오는 분들은 아프간에서 (우리 정부에) 기여했던 조력자들"이라며 "난민보다는 생계비나 정착지원금, 교육 등 측면에서 더 배려가 있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우선 이날 한국 땅을 밟은 아프간인들에게 공항에서 단기방문(C-3) 도착비자를 발급해 입국시켰다.
입국 후 곧이어 장기체류가 허용되는 체류자격(F-1)으로 신분을 변경해 안정적인 체류 지위를 허용하고,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임시생활 단계를 마치면 취업이 자유로운 거주(F-2) 비자를 발급해 자립을 지원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현행 법령상 아프간 협력자와 가족들에게 거주비자를 발급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이날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대한민국에 특별한 기여가 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거주비자를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난민 심사를 통과한 난민 인정자를 비롯해 우수 외국인·한국인의 미성년 외국인 자녀·외국인 투자자 등에게 발급되는 거주비자는, 1회 체류기간이 5년으로 계속 연장이 가능하고 취업·학업에 제한이 없다. 심사를 거쳐 영주권(F-5)도 받을 수 있다.
[그래픽] 국내 이송 아프간 협력자 입국 절차 및 수용시설= 26일 법무부가 한국 정부와 기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난민 인정자에 준하는 장기체류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법령 개정에 대해 "대한민국에 협력했던 분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개정 작업임은 틀림없으나, 추후 아프간 국익 기여자들 외에도 다양한 사례의 좋은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 정착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아프간인들에 대해 입국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실시하고, 입국 후에도 격리기간 중 2차례 더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입국한 아프간인들이 임시로 생활하는 공무원인재개발원에는 의료진이 상주하고 외국인 업무에 전문성이 있는 법무부 직원 40명이 파견된다.
법무부는 관계기관을 통해 입국자들에 대한 신원 검증을 이미 철저히 했고 이후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시생활 시설에서는 아프간인들이 원활하게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 등 적응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프간 협력자들의 수용 절차와 구체적인 처우 등에 대해서는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27일 브리핑을 통해 추가로 설명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이분들은 모두 우리 대사관, KOICA(한국국제협력단), 한국병원, 한국직업훈련원, 한국 기지에서 일하며 우리 정부의 아프간 재건 사업에 협조했던 분들"이라며 "거리상으로만 먼 나라에 살았을 뿐 실제로는 우리와 함께 생활했던 이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한때 우리도 전쟁으로 피난하던 때가 있었고,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가 도움을 줄 때"라며 "이로써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옹호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국제 대열의 한 축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를 도와준 이들을 저버리지 않는 포용적이고 의리감 넘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깊은 이해와 지원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한국 도운 아프간인 391명 전원, 파키스탄 무사 도착…곧 한국행
이송 지원하던 대사관 직원도 모두 철수
공군 수송기 탑승 기다리는 아프간 협력자들=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4일(현지시간)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과거 한국을 도운 적이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데려오려는 협력자와 가족 전원이 탈레반 점령지를 벗어났다.
외교부는 한국으로 입국 예정인 아프간 인사 및 가족 365명이 한국시간 25일 오후 6시 10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밝혔다.
전날 먼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26명까지 한국행을 희망한 협력자 총 391명 전원이 안전지대로 빠져나온 것이다.
이들은 중간 경유지인 이곳에서 이르면 이날 저녁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아프간인들의 한국 이송 지원을 위해 카불에 입국해있던 주아프간 대사관 선발대 직원들도 함께 수송기를 타고 전원 철수했다.
'카불의 미라클' 난리통에도 희망자 전원 데려와
탈레반 검문소· 혼란 공항 진입 어려워…아프간인 탈출 금지 발표도
미국 '버스 모델'로 돌파…협력자도 연락망 유지하며 일사불란 이동
우리군 수송기로 이동하는 아프간 협력자들=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로 이동하고 있다.
탈레반이 이미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과 협력한 현지인과 가족을 국내로 데려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러 국가가 아프간 협력자는 물론 자국민 구조에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부는 군 수송기까지 투입한 치밀한 계획과 미국의 협력 덕분에 한국행을 희망한 협력자를 한 명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25일 외교부에 따르면 그간 아프간에서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과 그들의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총 391명이 26일 중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당초 정부가 계획했던 이송 인원 427명보다 36명이 적다.
이에 따라 일부가 탈레반의 방해와 카불공항 주변 혼란 등으로 탈출길이 막힌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들은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화상 브리핑에서 "원하는 사람은 100% 나왔다"며 "36명 중에는 국내 잔류나 제3국행을 결정한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위당국자는 "지금처럼 비행기를 보내는 작전은 이번으로 마감하지만 36명 중 나중에 '도저히 안 되겠다, 한국 가야겠다'는 경우 개별적으로 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공군 수송기 탑승 기다리는 아프간 협력자들=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신원확인을 마친 뒤 한국 공군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100% 이송'은 현재 카불공항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이송 작전명 '미라클'이 떠오를만큼 매우 의미 있다.
협력자들은 군 수송기 도착에 맞춰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탈레반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피란민이 몰리면서 공항 진입 자체가 힘들다.
이 때문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도 자국민과 협력자 이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몇 국가가 미국에 호송차량(convoy)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불가하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 17일 수천 명을 공수할 계획으로 항공기를 보냈지만, 혼란 상태에서 겨우 7명만 탑승한 채 출발하기도 했다. 벨기에는 군용기에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고 한다.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는 20여 개국 외교차관 회의에서 이런 상황을 공유받은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저희가 낙담을 넘어 황당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공군 수송기에 오르는 아프간 협력자들=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4일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해결책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22일 열린 이 회의에서 제시했다고 한다.
미국이 거래하는 아프간 버스회사에 협력자들을 태운 뒤 버스가 미군과 탈레반이 함께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하게 하는 것으로 한국행 협력자들은 버스 6대에 나눠 탔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이 이날 오전 11시 협력자 이송에 대해 언론발표를 할 당시에도 버스 몇 대가 공항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고 고위당국자는 설명했다.
협력자들이 대사관, 병원, 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 자신이 속했던 기관별로 탄탄한 연락망을 유지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점도 이송에 도움이 됐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늦게 움직였다면 이송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은 주요 7개국(G7) 등의 만류에도 8월 31일까지 아프간에서 외국 군대를 철수하고 민간인 대피를 끝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정부가 협력자들을 태우기로 한 24일 밤 돌연 협력자의 공항 진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31일 자국민과 아프간 협력자 대피를 종료하고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했다.
공항의 안전을 보장하는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 정부 단독으로 이송 작전을 추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카불로 돌아간 대사관 직원들, 한국식 ‘비상연락망’ 풀가동
탈출영화 같았던 ‘작전명 미라클’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밖에서 한국 외교관과 우방국 병사들이 ‘KOREA’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한국으로 갈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길게는 7~8년씩 한국 정부를 도와 일을 했던 현지인과 그 가족 391명이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까지는 전쟁 영화 속 탈출 작전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애초 한국행을 희망했던 아프간인은 427명이다. 24일 이들 가운데 26명만 카불을 빠져나왔다는 소식에 작전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지만 25일 이달에 태어난 아기 3명 등 영유아 100여명까지 무사히 카불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국방부가 붙인 이번 이송 작전 이름은 ‘미라클’(miracle·기적)이었다.
외교부의 설명에 따르면 365명이 버스 6대에 나눠 타고 24일 카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 모두가 개별적으로 카불 공항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전날 공항에 도착한 26명은 탈레반의 검문검색과 공항 주변 인파를 뚫고 걸어 들어온 이들이었다.
다행히 22일 미국 정부가 우방국들에 제안한 ‘버스 모델’이 가시화했고, 정부는 이튿날 미국 정부와 탈레반 간 합의로 공항으로 진입이 가능한 버스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 뒤 카타르로 철수했다가 아프간인들의 국내 이송을 지원하기 위해 22일 카불로 돌아온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발 빠른 조처였다.
한국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 가능했던 ‘한국식 피라미드 연락망’도 이들의 탈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대사관과 코이카, 바그람 한국병원 등 근무지별로 대표를 뽑아 신속히 연락했다. 이들은 집결 장소와 시간을 공유해 정확히 모였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연락망이 굉장히 끈끈하고 탄탄”해 “원하는 사람은 100% 가깝게 집결했고 오늘 새벽 무사히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버스에 나눠 타고도 공항 진입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생아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봐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다행히 공항 주변은 총소리가 난무했던 대사관 직원들 철수 때보다 안정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시각 오후 6시께 무사히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애초 한국행을 희망했던 427명 가운데 36명은 개인 사정으로 아프간에 남거나 제3국 이송을 택했다. 이에 따라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이들은 대사관(21가구 81명), 병원(35가구 199명), 직업훈련원(14가구 74명), 차리카르기지 지방재건팀(5가구 33명), 코이카(1가구 4명) 근무자 등 391명이다.
이들은 대형 군수송기 KC-330(공중급유기)과 C-130을 타고 26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도착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이들의 경우 3개월 단기비자로 입국한 뒤 장기체류비자로 일괄 변경 조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원을 둘러싼 일각의 우려에 대해 외교부는 “여러차례 검토 및 확인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근무했던 공덕수 전 바그람 직업훈련원 원장은 “탈레반 통치하에 한국병원, 직업훈련원 조력자들을 그냥 두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된다는 건 거의 확실시된다”며 “(이들을) 구출하는 것은 인도주의 측면뿐 아니라 결코 친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신의와 의지를 국제사회에 다시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라고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한편 외교부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아프간인 3명과의 대화 내용을 이날 기자단에 제공했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최근 안보 환경 변화로 인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우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난시켜주었다”며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8월로 들어서며 “(아프간 내)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카불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를 피난시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3년부터 2년4개월 한국 대사관에서 일했다는 여성도 “(아프간을 떠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가족과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결심했다. 대사관으로 가 나와 가족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했다”며 “(탈출 계획은) 한달 전부터 시작됐고, 1주일 전에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는 매일 이메일로 상황을 업데이트했다”고 말했다. 30대로 보이는 또 다른 남성도 “2년 동안 한국인들과 일했는데 매우 친절하고 좋은 이들이었다. 그들 모두와 한국 정부에 매우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지은 길윤형 기자
문대통령 "한국 도운 아프간인에 도의적 책임 다해야"
"국민들 이해·협조 감사"…"불편함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 만전"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과거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국내로 이송하기로 것과 관련해 "우리를 도운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아프가니스탄 현지 조력인의 국내 이송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이같이 말한 뒤 "우리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가니스탄 직원과 가족들을 치밀한 준비 끝에 무사히 국내로 이송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나아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면밀히 챙기라"며 "국내 도착 후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정부와 군에 지시했다.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 391명은 오는 26일 한국군 수송기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하며,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머물 예정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정부는 이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 등을 감안해 국내 이송을 결정했다.
아프간인 국내이송 브리핑하는 박경미 대변인=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국 조력 아프간인 국내 이송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한국 고맙다…가족 목숨 구하려 카불 떠날 수밖에"
한국대사관서 근무한 여성 · 남성 감사 표시
"탈레반이 외국기관서 일한 사람 찾고 있어"
공군 수송기 타고 파키스탄으로 이송된 아프간인=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이 한국 공군 수송기에 탑승해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탈레반으로부터) 가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카불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한국 정부 지원으로 카불에서 탈출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A씨는 경유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뒤 이뤄져 25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는 외교부 기자단 요청으로 전날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성사됐다.
그는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2013년 9월부터 2년 4개월간 근무한 인연으로, 원하면 한국행을 택할 수 있는 427명의 '아프간 협력자'에 포함됐다.
A씨는 한국 군 수송기를 타고 가장 먼저 카불을 탈출한 26명 중 한 명으로, 남편 및 두 아들과 함께 26일 한국에 도착한다.
그는 한국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유를 묻는 말에 "쉬운 결정이었다. 내 가족을 구하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다"고 말했다.
카불에서 비교적 먼 지역에서 살았다면서 공항까지 가는 과정도 소개했다.
A씨는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 공항으로 향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탈레반 검문소는 접하지 못했다"면서 "공항으로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으로 널리 알려진 길이나 고속도로는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주 전에 한국행이 결정됐다는 그는 "1주일 간 매일 (대사관측과) 이메일로 소통하며 상황을 체크했다"며 "대사관 측에서 언제, 어디까지 와야 한다고 알려줬다. 여행증명서를 받은 3∼4일 후 여기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저 '고맙다'라는 말 이외에 더할 말은 없다"고 했다.
아프간에서 한국인들과 3년간 일을 했다는 남성 B씨도 고향을 떠나기로 한 이유는 A씨와 비슷하다.
역시 한국대사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B씨는 "탈레반은 외국 기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으려 하고 있다"며 "탈레반은 나와 내 가족에게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카불공항은 여권 소지 여부와 관계없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인파로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면서 "한국 팀은 우리를 공항 내부로 들여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고 한국 정부에 감사를 전했다.
“도와줘” 아프간 동료 아우성에 잠 못 이룬 밤…“이제 한숨 놨다”
아프간 바그람 기지서 한국병원장 근무
손문준 인제대 일산백병원 신경과 교수
손문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교수(신경외과). 인제대백병원 누리집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의 한국병원장으로 일했던 손문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교수(신경외과)는 최근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며칠을 보냈다. 현지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아프간 동료들로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중 몇 명이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했어”, “도와줘”라는 조각난 메시지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2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잠을 못 이루고 초조해하기도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연락을 나누던 동료들이 외교부 등의 도움으로 전부 탈출에 성공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아프간 카불공항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391명. 이 가운데 35가구 199명은 손 교수가 지난 2010년부터 1년 반 동안 병원장으로 일했던 한국병원 동료와 가족들이다. 이 병원 건립과 운영은 한국이 아프간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부터 현지에서 민관 합동으로 운영한 지방재건팀(PRT)이 총책임을 맡았다. 지방재건팀은 직업 훈련원 등 여러 사업을 꾸렸고, 인제대 산학협력단이 병원을 위탁받아 관리했다. 전체면적 3천㎡ 규모의 2층 콘트리트 건물 안에 2개의 수술실과 30개의 병상 등을 갖췄는데, 2015년 6월30일까지 운영됐다.
손 교수는 “한국 의료진 인원이 25명, 현지 직원이 한국 인원의 2.5배 규모로 채용돼 같이 일했다”며 “수술과 입원실 운영이 가능한 2차 병원급을 운영하기엔 적은 인력이었고 당장 환자식도 구하기 어려운 악조건이었다. 하지만 외교부, 한국군, 한국 경찰단,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미군 병원단과 제62의무여단, 이집트 군병원단 등이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병원을 꾸려갔다”고 말했다.
손문준 교수가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일하던 당시 모습. 손문준 교수 제공
손 교수는 아프간에서 귀국한 이후 현지 동료들과 연락을 위해 페이스북을 꾸준히 쓰게 됐다고 했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바그람에서 현지 동료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문화교류 행사를 한 기억도 많이 난다.
손 교수는 현지 상황과 관련해 “탈레반 집권 전에도 아프간 사람들은 해가 지면 언제든 탈레반을 마주쳐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며 “그런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비행기에 매달리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정말 저곳에 남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구나, 탈출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동료는 아프간을 탈출하지 못하면 부인은 탈레반과 결혼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현지 체류 경험을 돌이키며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거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소수민족 중에 하자라족이라고 있는데, 이들은 몽골이 정복 전쟁에 나섰을 때 아프간에 남은 몽골인 후손으로 우리 시골 할아버지들과 똑같이 생겼다”면서 “아프간엔 정말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관심을 가져보면 우리랑 멀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우리가 터키나 이집트에 스스럼없이 여행도 가고, 터키 사람들과는 언어가 비슷해 더 친근하게 느끼는데 그 나라들도 이슬람권”이라며 “이번에 한국으로 오는 아프간인들은 정말 수년간 우리와 재건사업을 함께 한 ‘특별공로자’이니,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사회가 맞아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하얀 기자
국내 아프간인 434명 특별체류 허가
법무부 “상황 안정까지 인도적 조처”
재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 한 어머니가 23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들의 구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아이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내에 머무는 아프가니스탄인 434명에게 특별체류를 허가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위기 상황을 고려한 인도적 조처다.
법무부는 25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탈레반에 의한 아프간 정국 혼란으로 아프간인들의 탈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체류 중인 아프간인을 대상으로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 조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체류 대상자들은 장·단기 국내 체류 아프간인 434명이다. 대체로 외교, 공무, 유학, 기업투자 등의 목적으로 한국에 머문 이들로, 체류 기간을 넘긴 불법체류자 72명도 이번 특별체류 대상자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체류 기간 연장이 어려워 기한 만료를 앞두고 출국해야 하는 아프간인들 가운데서도 국내 체류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국내 거주지와 연락처 등 신원을 파악해 특별 체류자격을 부여할 방침이다. 이 경우 별도의 심사를 거쳐 취업도 가능하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이재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기간 연장이 가능한 이들에게는 기존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조건이 맞지 않는 이들에 대해선 기타 자격으로 체류를 허가할 방침”이라며 “체류 기간을 넘겼지만 신원보증인이 있는 체류자의 경우, 강제 출국을 지양하고 아프간 정세가 안정된 뒤 자진 출국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원보증인 등 국내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형사 범죄자 등은 외국인보호소 등에 구금하는 보호조처를 할 예정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아프간인 특별체류 허가가 인도적인 배려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국민의 염려를 반영해 이들의 특별체류 허가 때 실태조사를 강화하는 등 국민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을 지원한 현지인 직원과 가족 약 400명이 국내로 이송된 뒤 장기 체류할 수 있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다. 옥기원 기자
탈레반 위협받는 아프간인 400여명 군용기 3대로 데려온다
아프간 재건에 협력한 대사관 · 병원 · 직업훈련원 직원 및 가족
피란민 수용 두고 찬반 여론…정부 "국익·인권 관점서 적극 검토"
정부가 탈레반을 피해 자국을 탈출하려는 아프가니스탄인 중 과거 한국 정부와 협력한 이들에 국내 피란처를 제공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24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 및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우리 군 수송기 3대를 아프가니스탄과 인근국에 보내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분들은 수년간 대사관, 한국병원, 직업 훈련원 등에서 근무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작전 수행시 보안 상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한국 도착이 임박해 보인다.
한국 정부는 2001년 테러와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한 미국의 지원 요청에 비전투부대를 파병했다.
군부대는 2007년 12월 철수했지만, 정부는 최근 정권이 탈레반에 넘어가기 전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아프간 재건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인을 다수 고용했다.
특히 정부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지방재건팀(PRT)을 보내 현지 병원과 직업훈련원을 운영하면서 다수 현지인과 협력했다.
이들은 과거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했다며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탈레반이 최근 외국 정부와 일한 아프간인에 대해 사면령을 발표했지만, 미군 통역 등을 상대로 보복이 이뤄진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우리한테 도움을 주었던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문제가 시급하다"며 "짧게는 1년, 길게는 7∼8년을 우리 공관과 병원 등에서 근무한 분들인데, 탈레반 정권이 들어오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그분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해 드려야 하는 국가적 문제의식과 책무를 갖고 있다"며 "이분들의 국내 이송 문제를 포함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송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22일 정부가 아프간 현지에서 벌인 재건사업에 참여했던 아프간인 400여명에 대해선 국내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로이터통신도 한국이 조력자 400여명을 국내로 대피시키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한국에 도착한 이후의 처우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이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나온다.
아프간 조력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 이유가 한국의 개입에서 비롯된 만큼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아프간 재건에 참여한 다수 선진국도 아프간 조력자들에 피란처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2018년 예멘인 500여명이 제주도로 입국했을 때와 비슷하게 피란민 수용에 대해 거센 반대 여론이 일 수도 있다.
정부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인권 측면 등을 고려해 이들의 처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아프간 난민 수용에 대해 "인권으로 대표되는 인도주의적 입장과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난민·이민 정책을 포괄해 검토해야 한다"며 "여러 논쟁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국익과 인권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 아프간 난민 주한 미군기지 수용 계획 철회”
로이터 보도…정의용 장관도 23일 “진행없다” 밝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공군 기지에 도착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임시 수용하는 방안을 더이상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서울발로 보도했다.
24일 이 통신은 사안을 잘 아는 관계자가 “미국은 더 나은 곳을 찾은 곳으로 보인다. 수송과 지리적 이유 등으로 (아프간 난민 수용국가) 목록에서 한국과 일본이 제외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관계자들은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아프간 난민을 수용하는 방안을 처음 꺼냈을 때 한국 정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미국 국무부는 입장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앞서 우리 정부도 23일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3일 국회에서 아프간 난민을 주한미군 기지에 수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가 초기 단계에 아주 초보적인 가능성을 논의한 건 사실”이라며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았고 관련 협의도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서훈 "한국 도운 아프간인 국내이송 검토"…외교부 "우방국과 추진
"미, 중동 · 유럽 미군기지에 아프간 난민 임시체류"
정의용 "안전하게 우리나라로 이동하는 방법 고민 중"
업무보고 하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23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을 도운 현지인의 국내 이송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한 아프간인 이송 등과 관련한 방안을 우방국들과 협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서 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현지에서 우리한테 도움을 주었던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문제가 시급하다"며 "짧게는 1년, 길게는 7∼8년을 우리 공관과 병원 등에서 근무한 분들인데, 탈레반 정권이 들어오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그분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해 드려야 하는 국가적 문제의식과 책무를 갖고 있다"며 "이분들의 국내 이송 문제를 포함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또 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미군기지에 아프가니스탄 피란민을 임시체류시키는 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와 관련, "최종적으로 정리된 것은, 지리적 여건이나 편의성에 따라 미국은 중동이나 유럽 지역에 있는 미군기지를 활용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새벽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설했는데 거기서도 그런 언급이 있었다"며 "중동의 2∼3개 나라, 유럽의 2∼3개 나라를 거명하면서 그 나라에 체류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혀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신중히 검토돼야 할 사안"이라며 "국민적인 수용성을 고려해 종합적 판단을 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하고 신중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서 실장은 "현재 국내 체류 중인 아프가니스탄인은 40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 가운데 체류 연장이 안 되는 분들이 문제다. 인도적 차원에서 법적 조치가 가능한지를 법무부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이날 오후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아프간에서의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한 현지인 직원 및 가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내 이송을 포함하여 검토했다"며 "우방국들과 추진 방안을 다각도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그동안 정부가 20여년 간 상당한 금액의 원조도 하고, 종합병원이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그 과정에 참여하거나 도움을 준 아프간인이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한국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이 안전하게 우리나라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부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일본 정부, 미쓰비시중공업에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법원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쪽의 국내 거래대금을 압류·추심하라고 명령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현금화가 어려운 특허권·상표권 등의 압류 때와 달리, 이번 추심명령은 전범기업의 거래대금을 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즉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걸림돌이 적지 않아 실제 배상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지난 12일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 기업 엘에스(LS)그룹의 계열사 엘에스엠트론으로부터 받아야 할 8억5천여만원 상당의 물품대금에 대한 채권압류와 추심명령을 내렸다. 압류된 돈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에게 지급돼야 할 손해배상금과 지연손해금 등을 합친 금액이다.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각각 8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확정판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은 지금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피해자와 가족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엘에스엠트론과 거래해온 사실을 확인해 물품대금 채권을 압류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현금자산인 물품대금에 채권압류·추심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019년 1월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포스코의 합작회사인 피엔아르(PNR)의 주식을, 대전지법은 같은 해 3월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등록한 특허·상표권을 각각 압류했다.
그러나 주식과 특허·상품권은 곧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데다, 법원의 압류명령에 불복한 미쓰비시중공업이 항소와 상고를 하며 ‘시간 끌기’에 들어가면서 실제 배상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법원의 첫 현금자산 압류명령으로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배상을 받을 길이 열린 셈이지만,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외교적 상황이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법원의 결정을 두고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엘에스엠트론의 거래대상도 논란거리다. 엘에스엠트론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니라 그 자회사인 미쓰비시중공업 엔진시스템과 거래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압류·추심 명령이 내려진 돈이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니라, 법인이 다른 미쓰비시중공업 엔진시스템으로 가야 할 돈이라는 주장이다.
트랙터 엔진 등을 생산·판매하는 미쓰비시중공업 엔진시스템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이들 두 회사를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압류·추심 집행 취소 분쟁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는 “엘에스엠트론은 압류결정문 송달 이전까지 미쓰비시중공업과의 거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했지만, 압류결정문 송달 이후 거래 대상 기업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엘에스엠트론의 채권자가 미쓰비시중공업인지, 엔진시스템인지 확인되는 대로 후속 절차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