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이 임박하면서 경선판이 혼탁해지고 있다. 막판에 불거진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고소 사건으로 비화하는 등 당내에서는 경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캠프와 홍준표 캠프는 4일 ‘국민의힘 사칭 윤석열 지지 권유’ 사건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홍준표 캠프가 지난 3일 공개한 녹취록에는, 자신을 ‘국민의힘 성북지부’라고 소개한 사람이 책임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총장을 꼭 좀 선택해달라”고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책임당원이 “왜 성북지부에서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전화를 돌리나. 고발하겠다”고 따지자,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윤 전 총장 캠프” 소속이라고 정정했다. 윤석열 캠프가 ‘국민의힘 중앙당 지부’를 사칭해 당원들에게 윤 전 총장 지지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이에 윤석열 캠프의 윤희석 공보특보는 이날 <TBS>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을 지지해달라는 게) 국민의힘 지도부의 결정이라든지 이런 말을 하면서 뭔가 거대한 결정이 있었던 것처럼 얘기했다면 모르겠지만, 성북지부는 실제 없고 그런 단어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당을 사칭하고 당원을 기망했다”는 홍준표 캠프의 공세를 방어한 것이다.
윤석열 캠프가 일부 당협위원장에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협박’을 했다는 의혹은 감정싸움을 넘어 고소전으로 번졌다. 지난달 30일 홍준표 캠프 여명 대변인은 “공천을 미끼로 한 조직 선거 협박”이라며 서울대 동문 게시판에 협박 당사자로 거론된 윤석열 캠프 소속 권성동·주호영 의원의 당적 박탈을 요구했다. 그러자 권 의원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여 대변인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 감정싸움까지 격화하면서 홍준표 캠프는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대상 ‘윤석열 지지’ 연판장 서명 강요 의혹 △대리투표 유도 의혹 △박사모 거짓 지지 선언 등을 거론하면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양쪽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경선 뒤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영남권 의원은 <한겨레>에 “막판 경선이 두 양강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어 우려가 크다”며 “‘명-낙(이재명-이낙연) 대전’처럼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원팀은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느 경선보다 치열했고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은 경선인데 선거 후가 더 중요하다. 화학적 결합은커녕 결속력이 저하하는 민주당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원팀’을 강조했다. 장나래 기자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 곽아무개씨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서 퇴직금 명목 등으로 받은 50억원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추징보전한 검찰이 이 자산의 가압류 집행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가압류는 추후 강제집행을 위해 피의자나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 또는 처분하지 못하도록 동결해 놓는 절차로 검찰은 이 돈을 여전히 곽 의원에 대한 뇌물로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은 지난 2일 법원에 가압류 집행절차 신청을 했다. 법원은 이튿날 아들 곽씨 계좌가 개설된 은행에 집행명령 및 추징보전청구 인용 결정문을 발송했다. 앞서 검찰은 2015년 6월 곽 의원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대장동 사업 관련 인허가 절차 해결 등을 도와주면 개발이익금을 나누기로 약속했다고 보고 지난달 5일 곽씨 계좌의 추징보전을 청구했다. 같은달 8일 법원은 “곽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및 곽씨와 공모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행위로 불법 재산을 얻었고, 이를 추징해야 할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다”며 검찰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곽 의원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지난달 29일 항고장을 제출했지만, 법원은 가압류 집행을 중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상 항고를 하더라도 즉시항고를 제외하고는 재판 집행을 정지하는 효력이 없다. 항고는 법원의 결정이나 명령에 불복해 당사자나 제3자가 상급 법원에 하급 법원의 결정 등의 취소나 변경을 구하는 절차다. 다만, ‘상급 법원 등이 항고에 대한 결론을 다시 내릴 때까지 집행을 정지하겠다’고 법원이 결정할 때만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 즉시항고는 통상 법원 결정이 전달된 날을 기준으로 7일 안에 해야 하는데, 곽씨 쪽은 지난달 12일 법원의 추징보전 인용 결정을 받은 뒤 17일 뒤에 항고했다.
한편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본격적으로 곽 의원 뇌물 수수 의혹 관련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1일과 28일 아들 곽씨를 불러 피의자 조사를 한 바 있다. 강재구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1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이 3일 다시 본격화했다. 지난 2월 마지막 증인신문이 이뤄진 뒤로 9개월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형사재판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정석대로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지켜지기 어려운 모습이 많아 ‘황제 재판’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35-1형사부(재판장 임정택)는 3일 오전부터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고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1심 재판 증인신문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 지난달 22일까지 무려 7개월 동안 이전 공판 내용 녹취파일만 재생한 터라, 이날 공판 시작 전 재판 관계자들은 9개월 만의 증인신문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2019년 2월 시작된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2년8개월째 계속되는 중이다. 최근 7개월 동안 녹취파일만 재생하게 된 이유는 양 전 대법원장 쪽이 형사소송법 및 규칙에 따른 절차를 정석대로 밟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법관 정기 인사로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 3명이 모두 바뀌었는데, 양 전 대법원장 쪽은 앞선 증거조사 공판 녹취파일을 모두 재생하는 방식으로 새 재판부가 공판갱신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했고 새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선 보통 앞선 절차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언급하는 방식으로 공판을 갱신한다. ‘사법정석’을 훼손한 당사자가 사법정석을 주장하는 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수용함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는 증거조사 녹취파일을 일일이 재생하는 방식으로 공판절차를 갱신했고 여기에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날 9개월 만에 재개된 증인신문에는 법원행정처 윤리감사심의관이었던 최두호 수원지법 여주지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였던 신재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에게는 2015년 불거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비위 의혹과 관련해 감사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던 경위에 대해 물었고, 신 부장판사에게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로 재직하던 당시 수행했던 각종 업무와 관련한 신문이 이뤄졌다. 최민영 기자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 창구로 지목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3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핵심 인물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피의자로 나와 조사받았다. 검찰 출신인 김 의원은 ‘고발장 제보를 받았지만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검찰은 아니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이날도 되풀이했다. 전날 공수처에 출석한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 역시 ‘제보를 받았는데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고발장 송수신 당사자로 지목된 두 사람이 서로 말이라도 맞춘 듯 실체도 불분명한 ‘성명불상 제보자’를 들고 나온 것이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공수처 조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4월3일 고발장을 전달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제보자와 제보 경위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고발장을) 누구에게 줬는지 제보자가 누구인지도 전혀 기억 안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발장을 이 사건 제보자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통화 녹취파일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손준성 검사도 김 의원과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손 검사는 이 사건이 불거진 지난 9월 초부터 ‘고발장 전달 및 작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이어 2일 공수처 조사에서 ‘반송’ 논리를 꺼내든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정보를 담당하는 자신에게 누군가 텔레그램 메시지로 고발장을 제보해왔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되돌려 보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김웅 의원에게 전달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혀 모르는 일’에서 ‘제보 받은 고발장을 돌려 보냈을 수 있다’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손준성 검사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두 사람이 직접 통화하거나 만나진 못했겠지만 그간 보도된 내용이나 상대방 주장을 살펴가며 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 수사 과정에서 추가 물증이 나오면 이에 맞춰 또 진술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공수처는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최초 고발장 전달자가 손준성 검사란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지난 9월30일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며 ‘손준성 보냄’으로 표시된 텔레그램 메시지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공수처는 김 의원과 조성은씨 통화 녹취파일을 근거로 김 의원이 언급한 “저희”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4월3일 조씨와 통화하며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등의 말을 했다. 공수처는 지난 9월 압수한 김 의원 스마트폰을 포렌식했지만 유의미한 자료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 의원은 6개월 간격으로 휴대전화를 바꾼다고 밝힌 바 있다. 전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