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화상 상담, 약 처방 가능…보건의료단체 “의료체계 훼손”
정부가 현행 의료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의료진-환자 간 원격의료를 재외국민에 한해 2년간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교민, 유학생 등의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보건의료단체들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의료를 ‘규제 샌드박스’ 제도라는 우회로를 활용해 허용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2020년도 제2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 사업 2개에 임시허가를 내줬다. 허가받은 사업은 각각 인하대병원과 ㈜라이프시맨틱스가 신청한 사업이다. 라이프시맨틱스는 비대면 진료 관련 온라인 플랫폼 운영 기업으로, 분당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3개 병원과 협력해 사업할 예정이다. 규제특례심의위에서 임시허가를 받은 사업자는 현행법 위반 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일단 시장에 진출해 정해진 기간 사업을 해볼 수 있게 된다.
임시허가를 받음에 따라 이들 병원은 전화·화상 등을 통해 재외국민에게 의료상담·진료를 할 수 있고, 환자가 요청하면 처방전도 발급할 수 있다. 해당 의료기관들이 국외에 진출해 의료기관을 운영 중이라면, 전화·화상으로 상담을 해주다가 현지 의료기관 내원을 권유하거나 약 처방을 받길 권하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번 규제 특례는 지난 1월 발표된 ‘규제 샌드박스 발전방안’에 따라 민간 전담기구로 지정된 대한상의가 1호로 상정한 과제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안전성과 환자 편익은 검증되지 않은 반면에, 사업 활로를 얻은 플랫폼 운영사와 대형병원들이 원격의료 사업성 검증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이날 성명을 내어 “더욱이 그동안 정부는 원격의료를 추진하더라도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없도록 1차 의료기관의 만성질환 관리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사업에 참가하는 것은 대형병원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 최하얀 기자 >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스마트 글러브 등 8건 의결
AI 주류판매기· 공유 미용실· 펫 택시 등에도 '기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에 어려움을 겪는 재외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25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2020년도 제2차 산업융합 규제 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첫 민간 샌드박스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등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샌드박스(Sandbox)’란 신기술과 신서비스의 원활한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혁신성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시장 진출의 기회를 주거나, 시간과 장소, 규모에 제한을 두고 실증 테스트를 허용하는 ‘혁신의 실험장’을 뜻한다. 국민의 생명·안전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마음껏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의 하나다.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만든 모래놀이터(sandbox)에서 유래했다.
이날 위원회에서 승인된 과제는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2건) ▲ 자동차 소프트웨어 무선업데이트 ▲ 홈 재활 치료 기기 스마트 글러브 ▲ 공유미용실 ▲ AI 주류판매기 ▲ 렌터카 활용 펫 택시 ▲ 드론 활용 도심 시설물 점검 서비스 등 8건이다.
이 중 6건은 비대면 서비스 관련 과제였으며 임시허가 3건, 실증특례 5건이었다. 실증특례는 일정 기간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면제해 검증되지 않은 제품 및 서비스를 시험하도록 하는 제도다.
인하대병원과 라이프시맨틱스가 진행하는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는 대한상의가 1호 샌드박스로 신청한 사업으로 2년간 임시허가를 받았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회의장에는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돼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해외에서 병원 접근이 배제되거나 언어 문제로 의료서비스 이용에 애로를 겪는 국민들이 많다"며 "특히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중동 근로자들로부터 SOS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부와 복지부도 '대한민국 국민은 끝까지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적극적이었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빠른 사업 진행을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임시허가로 재외국민은 앱에 증상을 입력해 국내 의사의 화상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아 현지병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복지부는 추후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 서비스 제도화에도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스마트 글러브
소아마비, 뇌졸중 환자의 '홈 재활'을 돕는 스마트 글러브(네오펙트)도 국내 시장에 출시할 수 있게 됐다.
현행법상 ICT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는 단순 모니터링과 내원 안내까지만 가능했지만, 심의위는 실증특례를 통해 최초 처방 범위 내의 비대면 상담과 조언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전 성인인증을 통해 주류를 자동결제하는 인공지능(AI) 주류판매기(도시공유플랫폼)도 소상공인 영업장에서 테스트를 시작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무인 편의점으로 사업을 확대하게 된다.
대한상의는 "소상공인이 미성년자의 고의적 주류 구매로 송사에 휩싸이거나 영업정지 등으로 폐업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AI 주류판매기로 분쟁 시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가 가능하도록 하는 현대차의 서비스(OTA·Over-The-Air)도 임시허가를 받았다. 국토부는 임시허가 기간 자동차 전자제어 장치 무선 업데이트 서비스를 정비업 제외사항에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순찰드론 구조
이 밖에 미용실 하나에 여러 명의 미용사가 입주하는 공유미용실(제로그라운드), 자율비행으로 도시 시설을 점검하는 순찰 드론(무지개연구소), 승차 거부 없는 반려동물 택시(나투스핀) 등도 기회를 얻었다.
이들 사업은 미용업의 설비·사업장 공동사용 제한, 군 관할공역 드론 비행 1개월 단위 승인과 카메라 촬영 제한, 렌터카 유상 운송 금지 등으로 막혀있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국무조정실, 산업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민간 샌드박스가 첫발을 내디뎠다"며 "앞으로도 신사업 효시가 될 혁신제품과 기술 출시를 지속해서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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