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길원옥 할머니 걱정 식사 잘하십니다

정의연 이사장 손 소장 문자공개에 참여 시민 등 곳곳 울음 터져나와

참담하고 비통, 지키지 못해 죄송 위안부운동 폄훼에 끝까지 맞설것

 

이사장님, 수고가 많으셔서 어쩌나요? 할머니 식사 잘하시고 잘 계십니다.”

문자메시지를 읽어내려가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쉼터를 16년 동안 지켜온 고 손영미(60) ‘평화의 우리집소장의 장례가 마무리된 10, 수요시위에 선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손 소장이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마지막 메시지에서도 손 소장이 쉼터의 마지막 생존자인 길원옥(92) 할머니와 정의연 활동가들을 걱정했다는 사실을 전하자 시위 현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날 아침 정의연 활동가들은 손 소장의 발인 절차를 엄수하고 수요시위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수요시위는 손 소장을 추모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100여명의 시민들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손 소장을 기렸다.

장례의 상주를 맡은 이 이사장은 발언에 나서 당신을 잃은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며 벼락같은 비보와 가족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오히려 저희를 위로하며 함께해주신 유가족 여러분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언론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이사장은 고인의 죽음 뒤에도 각종 예단과 억측, 무분별한 의혹 제기, 책임 전가와 신상털이, 유가족과 활동가들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과 불법촬영까지 언론의 여전한 취재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참담하고 비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수요시위의 주관을 맡은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이은선 실행위원은 “30년 동안 수요시위를 이어왔지만, 그 어느 날보다 비통하고 엄중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지난 한 달 동안 갖가지 왜곡과 거짓, 폭력이 수요시위와 정의연의 활동을 왜곡, 폄하, 비방하던 와중에 위안부 운동의 토대인 할머니들을 보살피고 온갖 뒷바라지를 하신 손 소장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공동 설립자 중 한명인 김혜원 정의연 고문도 시위에 참여해 “1992년 처음 수요시위를 감행했을 때 정부는 부정적 눈초리로 봤고 시민들은 싸늘했다. 용기를 다해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그 외로운 싸움이 여성 인권과 세계 평화를 주장하는 운동의 중심이 됐다고 했다. 김 고문은 이 공든 탑을 무너뜨리려는 불순한 반대 세력이 우리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일본이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전쟁범죄를 사죄하는 그날까지 씩씩하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수요시위가 시작되자 시위대를 둘러싼 보수단체들은 확성기로 소음을 내며 시위를 방해했다. 경찰이 충돌을 막기 위해 보수단체들을 둘러싸고 소리를 줄일 것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왜 우리만 가둬놓느냐. 시위 신고를 했다. 우리도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다며 항의했다. 양쪽에서 들리는 소음에도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내내 엄숙한 분위기에서 손 소장을 추모했다. < 채윤태 기자 >

 

 


지시대로 증거인멸한 삼성 임직원 사안 중대하다구속 수감

오너 치부 충분한 심리와 공방 필요감춰준 직원은 회사에서 축출

        

202069일 새벽 2.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 1시간쯤 지난 새벽 3시께 이 부회장의 변호인 일동은 입장문을 냈다. “법원의 기각 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법관 0순위’, ‘전설의 특수통등 최고의 법률가들이 모여 호화롭다는 말도 부족한 변호인단이 내놓은 해석이라 그런지 은근한 권위가 묻어났다. 이 부회장 영장이 기각되면서 서초동에서는 천문학적인 돈벼락이 쏟아졌다는 소문이 돈다. 재벌과 검찰·법원 전관이 연합팀으로 참전한 건곤일척의 승부가 이렇게 끝났다.

201958일 밤 1150.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직원이 구속됐다. 법원은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했다. 보안 업무를 담당했던 이 직원은 삼성바이오의 공장 마룻바닥을 뜯어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 노트북 수십대를 숨긴 죄로 구속됐다. 이에 앞서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상무와 부장은 직원들의 노트북에서 이 부회장을 지칭하는 ‘JY’합병’, ‘미전실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문건들을 삭제하도록 해서 역시 구속됐다.

이들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은 죗값을 치른 뒤에 감사 대상이 됐고 직급이 강등되거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 반면, 증거인멸을 주도해 구속됐던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상무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다시 계열사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에피스의 그 직원들은 누구보다 창설 단계에서 회사에 기여한 개국공신들인데, 시킨 일을 실행한 것 때문에 갑자기 모든 책임이 전가되고 회사가 의도적으로 문제 인력으로 낙인찍는 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오너의 치부에 대해선 재판에서 충분한 심리와 공방이 필요하지만, 그 치부를 숨긴 죄는 중대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증거인멸을 주도했던 사업지원티에프 상무가 슬그머니 현업으로 복귀한 일에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준법감시위원회에 나와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며칠 뒤 이 부회장의 초호화 변호인단은 승계 작업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승계 작업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묻기에 앞서, 직원들이 왜 ‘JY·미전실·합병이란 낱말을 삭제해야 했는지, 삼성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보상할 건지 궁금하다. 부끄러움과 참담함의 주어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 임재우 기자 >

[칼럼] ‘이재용의 시간이 말하는 것

경상남도 의령 태생 이병철이 마산에 협동정미소간판을 내건 때가 1936, 나이 스물여섯 되던 해다. 22녀의 막내아들에게 부모는 사업 종잣돈으로 토지 6만평을 대줬다. 2년 뒤엔 청과물과 건어물을 중국에 내다 파는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문을 열었다. 삼성이란 이름의 대하드라마가 시작된 순간이다.

동북아시아 질서를 뒤흔든 중일전쟁(1937) 전후의 격변기 세상은 1910년생 청년 사업가 이병철의 더듬이를 건드린 자극제였다. 한국 경제에 한 획을 그은 기업들의 역사가 유독 이 시기 비슷한 또래 인물에게서 시작된 건 우연이 아니다. 경남 함안의 조홍제(1906년생·효성), 경남 진양의 구인회(1907년생·LG), 강원도 통천의 정주영(1915년생·현대)이 대표적이다. 두산그룹의 씨앗을 뿌린 박승직상점의 박승직(1864년생)이나 전라북도 고창 대지주의 아들로 경성방직을 세운 김성수(1891년생연수(1896년생) 형제 정도가 조금 앞선 세대다.

이병철로 상징되는 창업자 세대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다른 나라, 특히 서구의 후발 산업화 국가의 경험과는 조금 다른 공통된 궤적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단순화하자면 기술보다는 영업, 제조(콘텐츠)보다는 장사(마케팅)에 좀 더 무게가 실린 행보다.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원시적 축적 과정은 말하자면 기술자본주의(발명가·개발자)가 아니라 상인자본주의(장돌뱅이)에 가깝다. 합리성과 규범은 애초부터 들어서기 어려웠다. 그 빈자리는 인맥과 수완, 변칙과 같은 비시장적 요소가 채웠다. 장사로 불어난 돈은 그제야 기술 투자와 제조업 진출의 밑거름이 됐고, 군사정권의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며 기업은 날개 단 듯 무한 팽창했다. 하지만 창업자 세대에 뿌리내린 한국식 자본주의의 원형은 마치 문신과도 같이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우리 경제에 새겨져 있다.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적용된 혐의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구속영장은 일단 기각됐으나 불법행위에 면죄부가 내려진 건 아니다. 법원은 두 회사의 불공정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등 기본적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처음 몸담은 건 나이 스물셋 때. 눈여겨봐야 할 건 아버지를 회장으로 둔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는 시샘 어린 시선이 아니다. 그의 시대는 창업자 할아버지 때와도 회장 아버지 때와도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우리 사회는 법과 원칙, 시장 규범을 지키고 따르는 행동만이 기업과 국가 경제 모두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르고 있었다. 부정거래와 분식회계는 시장 규범을 무너뜨리고 시장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새로운 토양에서 옛 씨앗을 버젓이 싹틔운 셈이다.

정미소(협동정미소)와 자동차(삼성자동차), 기술벤처(e삼성). 이병철과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진 삼성 3세대가 본인의 판단으로 가장 먼저 뛰어든 사업 분야다. 이 부회장이 보여준 퇴행적 행태는 삼성을 둘러싼 세상은 천지개벽하듯 변했으되, 여전히 낡은 울타리 안에서 숨 쉬는 무리들의 몸부림이다. 우리 모두가 발 딛고 선 건강한 시장과 사회를 무참히 파괴하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삼성을 이끌어온 총수이 부회장의 6년 세월이 불법 승계를 위한 고뇌와 준비의 나날이었다는 사실은 허탈하기 그지없다. 나라 잃은 세상에 살던 할아버지는 기업을 일으켜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지구촌 변방의 사업가 아버지는 우리 기업을 글로벌 무대의 중심으로 올려 세웠다 치자. 21세기 최첨단 세상을 사는 최고경영자 아들이 가장 기초적인 시장 규범조차 짓밟아버리는 기괴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제가 그 역할을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달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은 말했다. 창업자 세대부터 질기게도 이어져온 한국식 자본주의의 악습의 고리를 끊어내고 문신을 지워낼 적임자이자 책임자가 아니라, 외려 상징이자 계승자임을, ‘이재용의 시간은 스스로 증명한 게 아닐까.

< 최우성 한겨레신문 산업부장 >

민갑룡 경찰청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열린 고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행사 시작 전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갑룡 청장 9일 연세대 추모식 참석해 참회합니다

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씨에경찰 수장의 사과는 처음

             

너무 늦었습니다. 참회합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9일 이한열 열사 33주기를 맞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에게 사과했다. 경찰청장이 이 열사의 유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정복 차림으로 추모식을 찾은 민 청장은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에게 다가가 너무 늦었습니다. 저희도 참회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 청장은 저희가 죄스러움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마음을 풀어주시니 저희가 마음 깊이 새기고 더 성찰하면서 더 좋은 경찰이 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 열사는 198769일 민주화시위 중 경찰이 직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숨져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앞서 이철성 전 경찰청장이 2017616일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 자리에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언급하며 사과한 적이 있다. 이 전 청장은 당시 그간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신 박종철 님, 이한열 님 등 희생자분들과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집회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열사 추모식은 사단법인 이한열기념사업회 주관으로 해마다 69일 열려왔다. 지난해부터는 연세대 공식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 오연서 기자 >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비난하는 가운데 각지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항의하는 청년학생들의 시위 행진이 벌어졌다고 <조선중앙통신>9일 보도했다.

                     

[, 남쪽에 강경책 왜?]

작년 10, 올해 3회 대북전단 살포 판문점 선언 위반적대행위 간주

코로나 방역 무력화 의도 강한 경계내부 기강 잡아 경제난 극복 의지

              

남북관계가 2018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몰렸다. 북쪽이 9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교류 중단 차원을 넘어 군사 갈등·충돌로 번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북쪽의 추가 조처와 우리 정부의 대응에 따라 남북관계의 변화 폭과 진로가 달라질 여지는 있다.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4일 담화부터 9<노동신문>에 실린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중통> 보도)에 이르기까지 북쪽의 행보엔 몇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첫째, 대북전단을 최고존엄과 전체 조선인민에 대한 모독이라 규정했다. 둘째, 최근의 대북전단 살포를 북남관계 파국의 도화선이자 남조선 당국의 은폐된 동족 적대시 정책의 발현으로 규정하며, 그 책임을 남쪽 당국에 물었다. 9보도에선 그렇지 않아도 계산할 것이 많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누적된 불만이 터졌음을 숨기지 않았다. 대북전단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셋째,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 총괄책임자로 전면에 나섰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리인으로 2018~2019년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깊이 관여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했다. 넷째, 4김여정 담화부터 9‘<중통> 보도까지 빠짐없이 <노동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노동신문>은 노동당 중앙위 기관지로 북쪽에서 공식성이 가장 강한 인민 필독 매체. 이번 국면엔 대남 압박·조처뿐만 아니라 내부 수요도 있다는 방증이다.

북쪽이 대남사업 부서들의 사업 총화 회의의 공식 결정을 <노동신문>에 보도한 만큼, ‘을 넘어 실행을 전제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의 상징인 조선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 통신 연락선 완전 차단조처는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조차 위태롭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다만 아직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는 않아 기회의 창을 완전히 닫은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대응 기조와 방향, 속도가 관건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전에 없던 일은 아니다. 북쪽도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5)에서 지난해에도 10차례, 올해에는 3차례 삐라를 뿌렸는데라고 했다. 그런데 왜 이번엔 이렇게 강하게 문제 삼을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북전단 살포는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명시한 4·27 판문점선언 위반이다. 둘째, 코로나19 확산 두려움이다. 북쪽은 128국가비상방역체제로 전환해 국경을 폐쇄하고 정식 수입 물품도 “10일간 자연방치 뒤 24시간 간격 세차례 사흘간 소독방역지침을 시행한다. 대북전단은 수거·방역이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3월 초 일부 탈북민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에 북한 지역 코로나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며 코로나 환자들이 사용하던 물품을 구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삭제된 일이 있다. 남쪽이 4·27 판문점선언 두해가 지나도록 대북전단 문제를 방치한다는 불만에 대북전단을 매개로 한 코로나19 외부 유입 공포까지 겹쳐 불만이 폭발했을 수 있다. 통전부 담화의 남측의 더러운 오물을 계속 수거하며 피로에 시달려온 우리라는 언급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이 대북 전단을 고리로 한 대남 강경 기조를 사회 기강 다잡기와 자력갱생식 정면돌파전독려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조짐도 보인다. “탈북자 쓰레기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판이 내걸린 항의군중집회, 평양종합병원 건설 노동자들이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치열한 철야전을 더욱 드세게펼치고 있다는 <노동신문> 9일치 1면 기사가 한 사례다.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는 북쪽이 9일 남북 사이 모든 통신선 차단에 이어 취할 대남 조처는 사실상 이미 예고된 상태다. 첫 후속 표적은 통전부 담화로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 공언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일 가능성이 높다. ‘김여정 담화에선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개성) 북남공동연락사무소 폐쇄“(9·19) 북남군사합의 파기를 열거했다. 북쪽은 남조선 당국과 더는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9<중통> 보도), “남쪽에서 법안이 채택돼 실행될 때까지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 아파할 일판”(5일 통전부 담화)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판문점선언 이행 차원에서 대북전단에 원칙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하며 관련 입법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묶인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높일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는 북쪽의 불만 표출이 남쪽을 넘어 미국을 향해 번질 수 있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시한폭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한 셈이다.

화해 물꼬 튼 김여정·김영철, 이번엔 대남 강경 대응 주도

통전부장배제, 평창·정상회담 등 관여한 둘 전면에

실패규정한 2년 책임 맡긴 듯김영철 통전부장 복귀 가능성도

20184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됐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남쪽의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과 북쪽의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북한 <노동신문>“8일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북남 사이 모든 통신연락선 완전 차단조처를 지시한 주체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철 동지와 당중앙위 제1부부장 김여정 동지라고 9일 보도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대북전단 문제를 고리로 한, 최근 북쪽의 대남 몰아붙이기의 기폭제가 된 4일 담화의 주체다. 여기에 1989~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부터 30년 넘게 대남사업에 깊이 관여해온 김영철 부위원장까지 다시 전면에 나선 셈이다.

김여정+김영철 조합은 짚어볼 대목이 많다. ‘조국통일을 국시로 내세운 북한에서 대남사업의 최고책임자는 유일무이한 최고존엄이자 경애하는 최고영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고, 실무 책임자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다. 따라서 대남사업부서 총화회의는 통전부장이 주재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통일부가 9통일전선부장은 장금철이라고 파악하고 있다고 한 장금철<노동신문> 보도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남사업을 총괄”(5일 통전부 대변인 담화)하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실질적으로 대남 대응을 주도하더라도 권력구조상 회의 주재는 통전부장 또는 직책상 그 위 급이 해야 한다는 게 북한 권력구조에 정통한 전직 고위관계자의 지적이다. <노동신문>이 회의 주재자이자 지시자로 김여정 제1부부장 앞에 김영철 부위원장을 거명한 이유로 보인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통전부장으로 복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쪽의 대남 강경 기조 전환의 주도자로 김여정+김영철 조합이 전면에 나선 사실을 다른 맥락에서 짚어볼 수도 있다. ‘김여정+김영철 조합20182월 평창겨울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남쪽에 와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하며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다. 2018427, 526, 918~20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세차례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2018년 이후 남북 화해협력 기류에 깊이 관여한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이다.

북쪽으로선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정도로 지난 2년을 실패로 규정한 만큼, 북쪽 체제 특성에 비춰 이 사태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김여정+김영철 조합이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면에 나선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험이 풍부한 한 원로 인사는 김정은 위원장 리더십의 큰 특징은 성과주의라 통상적으론 김여정·김영철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나, 김여정한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김여정+김영철 조합이 남쪽을 향한 강력한 비방과 행동에 나서리라는 어두운 전망으로 이어진다.

다른 해석도 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김여정이 충성 경쟁을 하려고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결단을 내린다면 길이 열릴 여지가 없지 않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이제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