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코로나19 관련 일일 확진자 수가 다시 열 명대로 떨어진 것과 관련 우리의 우수한 방역체계가 다시 한 번 발휘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민들이 최근 유흥시설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이 추가 집단 감염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가 많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내 감염자는 최근 이틀 연속 한 자릿수로 크게 줄었고, 신속한 접촉자 파악과 진단검사에 의해 추가 확산의 가능성도 크게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국민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되고 있다이번 확진자 중에는 교회 예배 참석자와 콜센터 직원도 있었지만, 집단 감염의 확산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가 완전 종식될 때까지는 유사한 일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체계를 갖추고 있고, 위기 앞에서 힘을 모으는 세계 최고의 국민이 있다대한민국의 자긍심을 계속 이어나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 서영지 기자 >


5·18 4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16일 오후 광주 동구 상무관 앞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이 깔려 시민들이 밟으며 지나고 있다. 상무관은 19805·18 당시 희생자 시신을 임시 안치하던 장소였다.

 5월 영령들 형상화한 시민행렬18일엔 옛 전남도청 앞에서 기념식

 "여기서 5·18 행사하나요? 나도 동참하고 싶어서 마스크 쓰고 나왔소."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는 추모 열기가 고조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야제를 비롯한 40주년 행사가 대부분 취소·축소됐지만 5·18 정신을 기리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법원이 자유연대 구성원이 광주시장을 상대로 낸 집회 금지 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이들이 이날 예고한 광주 집회가 모두 취소됐다.

5·18을 폄훼·왜곡하는 세력의 '자극'을 받은 시민들의 참여로 추모 열기는 고조됐다.

5·18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임시 안치됐던 상무관 앞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이 빼곡히 깔렸고, 시민들은 전 씨를 묘사한 작품을 발로 밟으며 상무관 내부를 관람했다.

그 앞에서 5·18을 왜곡한 이들을 풍자·비판하는 체험 행사장이 마련돼 풍자 작품에 신발을 던지는 등 시민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40주년 기념식 무대 설치가 한창인 광장 뒤편 옛 전남도청은 임시 개방돼 관람객들을 맞았다.

5·18 40주년 기념식이 열릴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문자 센터에서 등록 후 출입 팔찌를 수령해야 하고, 본관·별관 등을 거치며 발열 검사와 손 소독 등을 거쳐야 했지만, 시민들의 방문 행렬은 온종일 이어졌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개장한 전일빌딩 245 건물에도 내부 전시 시설을 둘러보고 옥상에 올라 옛 전남도청의 전경을 눈에 담으려는 추모객들이 잇따라 찾았다.

예술인들과 시민들은 5월 영령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수십 개 대형 인형을 쓰거나 들고 행진했다.

대형 태극기와 풍물패를 앞세운 시민대열은 상무관 앞에서 시작해 전남여고, 원각사, 금남로를 거쳐 5·18 광장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5·18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행진을 지켜보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거나 멀리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광주 시민 최모(38)씨는 "자유연대 등이 5·18을 왜곡하는 집회를 연다는 소식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마스크를 쓰고 역사적인 현장을 찾아왔다""왜곡 세력의 집회가 취소되고 떠들썩한 행사는 없지만, 조용히 40년 전 역사를 되돌아보고 돌아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오는 17일엔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추모제가 펼쳐진다. 전야제는 취소됐지만 5·18 민주광장에서는 소규모 문화 행사가 진행된다.

1840주년 당일에는 옛 전남도청 앞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전두환 자택 인근서 5·18 40주년 드라이브스루 집회 사죄하라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이틀 앞둔 165·18관련 단체들이 전두환(89)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촉구하는 차량 행진을 벌였다.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추진위)16일 오후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전씨 자택이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향하는 차량행진과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진행했다.

추진위는 "우리는 사죄조차 하지 않는 학살자 전두환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도 참회하지 않는 책임자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투쟁이자 광주항쟁의 순수함을 훼손하는 세력에 대한 오월 세대의 경고"라고 행진 취지를 설명했다.

주최 측 추산 70여대의 차량은 무릎을 꿇은 전씨 모습의 조형물을 실은 트럭을 필두로 '오월정신 계승, 촛불혁명 완수' 등 문구가 적힌 선전물과 태극기를 차에 달고 줄지어 이동했다.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모이자 연희동으로! 전두환은 사죄하라!'' 5·18 드라이브스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차량을 타고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전씨 자택 인근인 궁말어린이공원에 도착한 뒤 경적을 울리며 항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원 인근에 정차해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열고 "살인마 전두환이 광주항쟁을 폄훼하고 알츠하이머 핑계를 대며 재판을 연기하면서도 골프를 치러 다니는 등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광주항쟁을 부정하는 적폐 세력들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살 주범인 전두환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5·18 진상 규명과 전두환 사죄 촉구를 시작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을 대한민국의 역사에 굳건히 세우고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진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를 고려해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남대 전두환·노태우 동상 설치 5년 만에 결국 '창고행'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재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에는 역대 대통령의 동상·유품·사진·역사 기록화 등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 있는 10명의 전직 대통령 동상 중 5·18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책임자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동상과 각종 기념물이 사라진다.

이들의 흔적 지우기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1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14일 이시종 충북지사 주재로 열린 도내 시민단체 관계자 회의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 철거 방침이 정해졌다.

각각 250높이의 동상은 두 사람 이름을 붙인 산책로 '전두환 대통령길'(1.5)'노태우 대통령길'(2)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애초 청남대 대통령광장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청남대 관리권을 충북도에 넘겨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는 9명의 대통령 동상이 설치돼 있었다. 다소 조잡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들 동상은 지난달 청남대 정비사업 과정에서 철거돼 현재 창고에 보관 중이다.

지금 있는 동상은 충북도가 2013년부터 2년여간 20억원을 들여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청남대를 이용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동상은 대통령길 앞에, 자신의 이름 붙인 산책로가 없는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 동상은 역사교육관 앞 양어장 주변에 설치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은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다른 예우를 받지 못한다.

충북도는 이를 근거해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통령길 앞 동상을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단순히 동상만 철거하는 게 아니라 해당 대통령길의 명칭도 변경하기로 했다.

새로운 명칭은 도민 공모나 설문을 통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철거 경위 등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청와대 본관 모습을 60% 크기로 본떠 20156월 준공한 대통령기념관 안에 있는 두 전직 대통령 기록화 역시 철거된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전시물은 그대로 둔다.

청남대관리사무소 측은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이냐, 아니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것이냐가 철거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상과 기록화 등 철거한 전시물은 일단 창고로 옮겨진다.

동상만 하더라도 개당 2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기 때문에 폐기할 경우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청남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세부적인 작업은 여론 수렴을 통해 도민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진행할 방침"이라며 "도민 자존심과 결부되는 문제인 만큼 한두 달 이내에 서둘러 마무리 하겠다"고 말했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는 제5공화국 시절인 1983년 건설됐다.

이후 역대 대통령의 여름 휴가 장소로 이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일반에 개방돼 관리권이 충북도로 넘어왔다.

앞서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국민 휴양지에 군사 반란자의 동상과 길을 두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 철거 및 대통령길 폐지를 촉구해 왔다.

주호영 당 일각 5·18 폄훼·모욕 발언 죄송사과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16"이유를 막론하고 다시 한번 5·18 희생자와 유가족, 상심하셨던 모든 국민 여러분께 매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배포한 입장문에서 "당 일각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모욕하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있어 왔고, 아물어가던 상처를 덧나게 했던 일들도 또렷이 기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개인의 일탈이 당 전체의 생각인 양 확대·재생산돼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일으키는 일을 다시 반복해선 안 된다""5·18을 기리는 국민 보통의 시선과마음가짐에 눈높이를 맞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 민주화운동유공자유족회', '5·18 민주화운동공로자회'를 법정 단체화해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5·18 민주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을 처리에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5·18 민주묘역을 조성한 것도, 5·18 특별법을 제정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한 것도, 모두 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시작됐다""통합당은YS 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예정이다.

통합당은 자유한국당 시절인 지난해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등의 '5·18 망언''솜방망이 징계'하는 데 그쳐 관련 단체 등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최후진술 사료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여태 살아있어 죄송하다. () 가슴 아프게 무수한 사람이 죽어갔다. 그런데 구차하게 이 자리에서 징역을 구걸하겠는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이 열렸던 1980912. 28살의 젊은 민주 투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후진술입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김대중과 재야인사들이 내란을 꾀하며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고 꾸며낸 역사적인사기극이지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내린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지난 14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사료를 공개했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재판 중 김대중, 이해찬, 설훈, 문익환 등 민주 투사들의 최후진술문입니다.

당시 법정에는 녹음기나 필기도구를 가져갈 수 없었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사료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를 비롯한 민주 투사의 가족들이 진술 내용을 달달 외워 복기한 자료입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정리된 최후진술문을 읽어내려가기만 해도 충격적인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이해찬 최후진술 사료.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제공

이제는 177석의 슈퍼 여당을 이끄는 원로 정치인이 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당시 28살의 서울대학교 복학생협의회장이었습니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돼 내란음모·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지요. 이미 1974민청학련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것에 이어 두번째였습니다.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여태 살아있어 죄송하다는 첫마디로 최후진술을 시작한 이 대표의 착잡한 심정이 짐작됩니다. 이 최후진술이 있고 닷새 뒤 이 대표는 징역 10년을 받았습니다.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여태 살아있어 죄송하다. () 가슴 아프게 무수한 사람이 죽어갔다. 그런데 구차하게 이 자리에서 징역을 구걸하겠는가?

최근 옥중에서 1958년 진보당 사건의 조봉암 외 21명의 피고인에 대한 재판 내용을 읽었다. () 이 재판을 받으며 그때와의 유사점 발견한다. 한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합법을 가장하여 정적을 살해하려 하고 있는 점이다.

나는 김대중씨를 존경하지도, 개인적으로 알지도, 그의 정치노선이나 생각에 따르지도 않았지만, 또 다시 합법을 위장하여 한 정적이, 한 가정의 아버지가, 남편이 무참히 죽어가게 되었다. (중략)

반공법·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단된 시대를 산다는 데 있다. () 이 민족은 언젠가 통일을 이루어 갈 것이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이러한 불상사는 시정이 될 것이다. 구차하게 징역을 구걸하지 않겠다. 민중적 지혜의 힘에 감사드린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이해찬 최후진술-

이 자리에서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을 폭로하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제자이자 민주화 운동 동지였던 이해동 목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목사는 계엄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나흘씩 잠도 못 자고 수차례 발가벗겨진 채로 온갖 수모를 받았다며 고문의 참상을 전했습니다. 연이은 구타로 이 목사의 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나면 고문관들이 피멍을 빼기 위해 날고기를 몸에 붙여줬다는 대목에서는 중앙정보부의 잔인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당시 법정에는 이 목사를 시작으로 고문 폭로가 이어지자 오열하는 피고인과 방청객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나약한지 죽지 못해 몹시 부끄럽다. 512일 장기표가 각목, 화염병 준비얘기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라고 해서 그것만은 못한다. 나를 죽여달라고 했다. (가족석에서 가족들 눈물 흘리기 시작)

시인 요구 전에도 다른 곳으로 끌려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었다. () 뉘어 놓고는 무수히 구타했다. 그래 결국 죽지 못하고 시인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앞으로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지금까지 설교 때마다 , 아니오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해놓고는 내가 그것을 못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교인 앞에 나설 수가 있다는 말인가? (중략)

지도곤히 때리고 나서는 엎드리게 하고, 소고기(날고기)를 썰어 맨살에 붙이고는 비니루로 동여매 놓고 3일을 있었다. () 내가 한 시인 때문에 다른 분들께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고 김대중 선생님에게는 사형까지 구형하게 되어 죄송하다. (후략)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이해동 최후진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설훈 최후진술 사료.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제공

이제 5선 의원으로 민주당 중진인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 현장에 있었습니다. 내란음모·계엄법 위반 혐의였습니다. 당시 27살의 고려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설 위원의 최후진술에서는 성미가 괄괄하고 입심 좋은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기록에는 그가 거의 고함에 가까운 고성을 질렀다고 적혀있습니다.

설 위원은 고문 폭로에 충격을 받아 흐느끼는 가족들에게도 호통을 쳤습니다. “광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느냐고 따져 물으며 고문당한걸 가지고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당시 설 위원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후부터는 거의 고함에 가까운 고성) 현재 나가고 있는 길은 멸망의 길이다.

517일 이전에는 솔직히 평화 시위를 계획했는데 광주 사태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 구차한 목숨 바칠 각오를 했다. 지금 몇몇 분들이 눈물을 보이셨는데 고문당한걸 가지고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광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가? 이 눈물은 그 사람들에게 보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에 총을 줄 때는 국민을, 국가를 지키라는 것이지 국민을 죽이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계엄군은 시민을 패고, 밟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았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것으로 안다. 시체를 자동차에 매달고 달린 것으로 안다. 이게 어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나 하나 죽더라도 이 나라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 이 난국을 수습하는 길은 군은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설훈 최후진술-.

다음날인 1980913, 오전 10시부터 18회 공판이 열려 피고 김대중의 최후진술이 이어졌습니다. 공판 개시 전 분위기는 의외로 화기애애합니다. 기록에는 가족들이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김종완 전 민주당 의원에게 돼지가 새끼 9마리를 낳았대요라고 말하자 김 전 의원이 나는 (감옥) 들어와 밥도 안 축내고 밖에서는 돼지 길러 돈 벌고 안팎으로 버는 거야라며 농담을 해서 다들 웃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은 오전 1145분까지 이어져 거의 2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진술 마지막에 말했듯 일종의 유언이었습니다.

()

검찰에서는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어 학생 데모를 통해 집권하려 했다고 공소장에서 말하고 있으나, 나는 총 한 방 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바랐던 것은 선거였으며, 선거만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집권할 수 있거나 적어도 4년 후에 대비한 튼튼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란이 오면 집권은커녕 지극히 곤란한 상태에 처하게 되며, 사실은 오늘날 같은 사태가 올 것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비폭력 주의자다. 그렇다고 무저항주의는 아니므로 나는 비폭력저항주의자다.

()

당국이 나의 형을 집행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것이 과연 법의 정의에 합당하며 민주국가로서 옳은 일인가 심사숙고해주기 바란다. 나는 나에 대한 관대한 처분보다는 다른 피고들에 대한 관용을 바란다. 결국 이분들에 대한 혐의의 책임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

나는 그제 (사형) 구형을 받았을 때 의외로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은 물론 공판정에 나왔었기 때문도 있겠으나 평소보다 더욱 잘 잤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 신자로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이 재판부를 통하여 나를 죽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 재판부를 통하여 나를 살릴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계신 피고들께 부탁드린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8회 공판(1980913)에서 김대중 최후진술-.

진술이 끝나자 가족들의 박수가 이어졌고 법정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기록에는 문익환 목사의 배우자인 박용길 장로의 선창으로 피고의 가족들이 우리 승리하리라를 합창하자 장내 정리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강제 퇴정시켰다고 적혀있습니다. “조작극이다!” “민주주의 만세!” 등의 고함이 터지고 심한 몸싸움도 이어졌습니다. 가족들은 법정 밖으로 끌려 나오는 와중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고요. 처절한 한국 근현대사의 한 장면입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980917.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대대적인 김대중 구명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에게 김 전 대통령의 선처를 당부했지요. 결국 198212월 김 전 대통령은 형 집행정지로 출소해 미국으로 사실상의 망명을 떠났습니다. < 이지혜 기자 >


진압 안하면 공산화미국에 5·18 실상 감춘 신군부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건 43건 제공

 12·12 반란 뒤 전두환 만난 미 대사 ,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잇속만 차려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전두환·이희성 등 신군부 인사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본국 정부에 보고한 기밀문서가 15일 공개됐다. 미 국무부가 우리 외교부에 최근 보내온 비밀해제 외교문서 43건 중 일부로, 1980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전문이 대부분이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신군부 반란 수괴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잘 나타나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이 12·12 반란을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변한 데 대해 길고 상세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자기 잇속만 차리는 설명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서에는 전두환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세력의 반격을 막기 위해 미국한테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적시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문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고 적었다.

1980518일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는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이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시위 대학생을 진압하지 않으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대목도 눈에 띈다. 신군부가 당시 학생운동을 반미 공산주의자 세력으로 왜곡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찬탈 행위를 정당화한 것이다.

비상계엄 확대 직후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난 뒤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해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지 최 실장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시위) 대학생들한테 유화 전술을 쓰는 것에 군부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198012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미대사관과 본국 정부가 김대중 구명을 위해 주고받은 문서들도 포함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1996년 미 국무부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 제공한 것이다. 당시엔 문서의 상당 부분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공개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정부는 5·18 전후 6개월의 맥락을 따지기 위해 12·12 사태부터 1년 동안의 자료를 (미 정부에) 요청했다진상규명위원회 등 단체와 협력해 미국이 자료를 더 공개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전두환이 광주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의 최종 책임자였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없다. 5·18 진상규명 단체 등은 집단 발포 등 유혈 진압과 관련된 내용은 한미연합사 등 군사 채널을 통해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노지원 기자 >


                             

 [단독 인터뷰] 힐링센터 매입 관련 의혹 해명

 구매과정은?

공동모금회와 협의해 경기도로매각 통한 시세차익 고려 안해

활용 안됐다는 지적?

시민단체 등 이용펜션아니었다, 믿고 맡길 이 없어 아버지에 부탁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17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한 경기도 안성 치유와 평화가 만나는 집’(힐링센터)을 둘러싼 고가매입 의혹 등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힐링센터 부지를 위해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예산의 한계로 적절한 곳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다가 해당 주택을 구매했다부동산 차익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 교육과 피해자 치유에 가장 좋은 장소를 구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되돌아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며 사과를 하면서 다만 지난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려 한 적은 없다는 진심 만큼에는 귀를 기울여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경기도 안성 힐링센터 구매 과정은?

=처음에는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근처에 힐링센터를 마련하려고 했다. 할머니들의 거처 역할 뿐 아니라 박물관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힐링센터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염두에 둔 주택도 있었다. 당시 여러 협의 끝에 현대중공업이 1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10억원으로 애초 염두에 둔 곳은 물론 서울에서 마땅한 곳을 구매하기 어려웠다. 건물을 구매해야 10억원이 지급되는 구조라 추가 모금으로 장소를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동모금회 쪽에 사정을 설명하니 담당자가 공동모금회에서도 이렇게 큰 금액이 지정 기부된 적이 없으며, 사업이 추진되지 않을 땐 감사에서 지적될 수도 있어서 꼭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을 사야 사업비가 지급될 수 있다. 부지는 꼭 서울이 아니라 외곽이어도 무관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경기도 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업 추진 단계마다 현대중공업·공동모금회와 협의해 일을 진행했다.

-힐링센터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적당한 곳을 구하기 위해 경기도에 안 가 본 곳이 없다. 경기 이천, 안양, 수원, 강화까지 갔다. 괜찮은 곳은 대부분 10억원이 넘었다. 그래서 나와 당시 사정을 잘 알던 남편이 주변에 추천을 부탁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규민 안성신문 대표(더불어민주당 당선자)도 그중 하나였고 이 대표 소개로 김아무개씨를 만나서 주택을 구입하게 됐다. 김씨는 그날 처음 봤다. 실제 가 보니 주변이 산이고 조용하고 집도 좋았다. 김씨가 자신과 부모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이라 벽돌과 벽지 등을 모두 좋은 재료로 튼튼하게 지어 건축비가 많이 들었다는 설명을 했고, 자재 등을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었다. 최초 그쪽에서 제시한 액수에서 더 깎아줄 수 있다고도 했다. 기존에 우리가 봤던 곳이나 사용 목적을 고려했을 때 비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 논란이 되듯 시세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는 있겠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계속 활용할 것이었기 때문에 매각을 통한 시세차익을 고려하지 않았다. 힐링센터 목적에 적합하고 예산 내에서 집행이 가능하냐가 중요했다.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개소 이후 한동안은 할머니들과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할머니들과 청년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됐다. 그러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문제 합의가 발표됐고, 여기에 반대하는 싸움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힐링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활동가가 없었다. 그렇다고 비워둘 수만은 없으니 수요시위등에 연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논의가 됐다. 평화를 위한 연대 강화 목적으로 힐링센터를 유지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다. 다만 그 횟수가 많진 않았다. 펜션처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연대하는 시민단체 회원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했을 땐 허락하지 않았다.

-부친이 힐링센터를 관리하고 한 달에 120만원가량을 받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활동가들이 직접 관리할 수 없으니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는데 정대협 운영위원회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당시 경기도 화성의 한 식품공장에서 공장장을 하고 있었다. 처음 부탁을 하니, ‘그럼 거기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물으면서 주저하더라. 그래서 대안이 없다고 말을 하니 알겠다고 하고 일을 맡으셨다. 처음엔 인건비가 120만원이었지만, 매각이 구체화한 2018년 이후부터는 관리비 50만원만 지급됐다.

-가족이 맡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건비를 제대로 책정해 정식 관리자를 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정이 뻔한 시민단체 형편에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는 곳에 인건비를 많이 쓸 순 없다고 생각했다. 120만원이었는데, 액수를 봐도 알겠지만 사익을 챙기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점만 부디 알아주면 좋겠다. 수원에서 일요일 출근해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지내는 환경도 열악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힐링센터 방 하나를 거주용으로 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창고로 사용하던 컨테이너에서 머무시게 했다. 아버지에게는 못할 짓을 한 셈이다. 아버지는 힐링센터에서 일한 지 1년 만에 위암을 얻어 수술했다. 그 전해 건강검진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자식으로선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따로 맡을 사람도 없어 그 뒤에도 계속 관리를 해왔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되돌아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희생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더 철저했어야 했다. 이렇게 큰 논란이 된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다만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 한 적은 없었다는 진심 만큼에는 귀 기울여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 정환봉 기자 >

힘내세요편지에 빵이나 떡도 택배로 보내

정의연 관계자 후원과 응원 계속 늘고 있어

 수많은 억측과 오해로 얼마나 힘드실지 짐작됩니다. 정의기억연대를 위해 애쓰시는 직원분들 하나씩 드시고 힘내시라고 보냅니다.” 목포에 사는 김수혜씨는 이런 내용의 손편지와 함께 한약인 경옥고를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무실에 보냈다.

김씨는 편지에 저는 그저 작은 금액을 후원하는 회원이지만 너무 안타깝고 걱정스러워 조금이나마 응원의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의연의 후원금 사용처 문제 등을 놓고 보수진영의 공세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바라는 시민들이 정의연에 응원의 선물이나 기부금으로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빵이나 떡 등을 택배로 보내고 있다.

광주에 사는 한 시민은 오월주먹빵을 보냈다. 앞서 13일 아침엔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서울 마포구 정의연 사무실을 두드렸다. 그는 설명도 없이 활동가에게 봉투를 건넸다. 후원금이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려는 실무자에게 그는 당신들을 믿으니 기부금 영수증은 필요 없다. 다음엔 찾아와서 식사도 사드리겠다고 말하고 바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일주일여를 긴장 속에 보낸 실무자들은 그가 떠난 뒤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신규 후원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정의연 후원계좌에는 힘내세요”, “쫄지마세요”, “응원합니다등의 송금 메시지를 적은 기부금이 답지하고 있다.

14일 정의연 관계자는 빠져나가는 후원자도 있고 새로 가입한 후원자도 있지만, 논란 이후에도 후원금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열린 수요집회에서도 인터넷 후원방법을 모르니 직접 후원하겠다며 현금을 건네려고 한 고령의 시민들도 있었다. 같은 날 정의연이 주최하는 수요집회 유튜브 생중계에도 기부하겠다는 댓글이 여럿 올라왔다. 여러 커뮤니티에도 정의연 후원 인증 글이 이어지는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일본 시민단체도 연대 성명을 내어 정의연에 힘을 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전국행동)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내용을 언급하며 “30년간 피해 인정과 진심 어린 사죄, 그에 기초한 배상, 꾸준한 진상규명과 교육 등 재발방지책을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목소리에 답하고 있지 않은 일본 정부야말로 피해자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 배지현, 도쿄/조기원 기자 >

일본 시민단체 정의연 논란 책임은 일본 정부와 사회에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성명

일본군 위안부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일본 시민단체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사회에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전국행동)13일 성명을 내어, “피해자를 몰아붙인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언급했다. 이어 “30년간 피해 인정과 진심어린 사죄, 그에 기초한 배상, 꾸준한 진상규명과 교육 등 재발방지책을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목소리에 답하고 있지 않은 일본 정부야말로 피해자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가 201512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서도 할머니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쪽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전국행동은 일부 내용만 윤 전 대표에게 알린 것이 (한국) 외교부가 말하는 사전 협의의 전부임은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공유했던 우리도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재일동포인 양징자씨가 대표를 맡은 이 단체는 정대협 시절부터 정의연과 연대하면서,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전국행동은 성폭력 근절과 평화 추구의 길을 함께 걸어온 정의연의 운동은 정의연만의 것은 아니다라며 정의연의 운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끝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이행이라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아직 실현하지 못한 일본 시민으로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각국의 피해자, 사망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용수 할머니의 동지로서 함께 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 도쿄/조기원 특파원 >

한일 학생모임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 지울까 두렵다

 한일학생·청년 80여명 정의연 지지성명 “현 상황이 운동 뒤흔드는 것 유감

 일본군 위안부문제해결을 바라는 한일 학생 청년 모임이 후원금 사용처 문제 등의 의혹을 받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지지 성명을 냈다.

정의기억연대를 지지하는 한일 학생 청년 모임(한일청년모임)15일 오전 ‘81인의 한일 학생·청년 정의연지지 성명을 내어 한국과 일본에서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는 정의연을 둘러싼 억측과 힐난이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30년의 역사를 지울까 두렵다고 밝혔다. 최근 정의연은 후원금 사용처 등을 두고 부실 회계처리의혹을 받고 있다.

한일청년모임은 정의연이 즉각 모든 모금은 전부 집회를 위해 사용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미디어에 의해 정의연 활동 전반에 대한 모욕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그런 억측이 마치 사실인양 퍼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본 성명을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정의연은 우리에게 영감과 자극, 귀감이 되었다. 정의연의 발자취를 좇지 않았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며 “(왜곡보도 등은) 위안부 운동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낳은 왜곡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이런 보도들이 운동의 존재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저했고, 일본에서는 가해국의 국민이 나서도 될지 두려웠다. 그러나 수요집회에서 하나돼 외친 구호가 우리들을 여기까지 이끌었다. 우리 활동의 원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정의연을 지지하고 함께하겠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 배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