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김대중 내란음모’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 COREA 2020. 5. 16. 03:0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최후진술 사료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여태 살아있어 죄송하다. () 가슴 아프게 무수한 사람이 죽어갔다. 그런데 구차하게 이 자리에서 징역을 구걸하겠는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이 열렸던 1980912. 28살의 젊은 민주 투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후진술입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김대중과 재야인사들이 내란을 꾀하며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고 꾸며낸 역사적인사기극이지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내린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지난 14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사료를 공개했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재판 중 김대중, 이해찬, 설훈, 문익환 등 민주 투사들의 최후진술문입니다.

당시 법정에는 녹음기나 필기도구를 가져갈 수 없었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사료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를 비롯한 민주 투사의 가족들이 진술 내용을 달달 외워 복기한 자료입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정리된 최후진술문을 읽어내려가기만 해도 충격적인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이해찬 최후진술 사료.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제공

이제는 177석의 슈퍼 여당을 이끄는 원로 정치인이 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당시 28살의 서울대학교 복학생협의회장이었습니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돼 내란음모·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지요. 이미 1974민청학련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것에 이어 두번째였습니다.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여태 살아있어 죄송하다는 첫마디로 최후진술을 시작한 이 대표의 착잡한 심정이 짐작됩니다. 이 최후진술이 있고 닷새 뒤 이 대표는 징역 10년을 받았습니다.

시퍼렇게 젊은 놈이 여태 살아있어 죄송하다. () 가슴 아프게 무수한 사람이 죽어갔다. 그런데 구차하게 이 자리에서 징역을 구걸하겠는가?

최근 옥중에서 1958년 진보당 사건의 조봉암 외 21명의 피고인에 대한 재판 내용을 읽었다. () 이 재판을 받으며 그때와의 유사점 발견한다. 한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합법을 가장하여 정적을 살해하려 하고 있는 점이다.

나는 김대중씨를 존경하지도, 개인적으로 알지도, 그의 정치노선이나 생각에 따르지도 않았지만, 또 다시 합법을 위장하여 한 정적이, 한 가정의 아버지가, 남편이 무참히 죽어가게 되었다. (중략)

반공법·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단된 시대를 산다는 데 있다. () 이 민족은 언젠가 통일을 이루어 갈 것이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이러한 불상사는 시정이 될 것이다. 구차하게 징역을 구걸하지 않겠다. 민중적 지혜의 힘에 감사드린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이해찬 최후진술-

이 자리에서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을 폭로하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제자이자 민주화 운동 동지였던 이해동 목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목사는 계엄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나흘씩 잠도 못 자고 수차례 발가벗겨진 채로 온갖 수모를 받았다며 고문의 참상을 전했습니다. 연이은 구타로 이 목사의 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나면 고문관들이 피멍을 빼기 위해 날고기를 몸에 붙여줬다는 대목에서는 중앙정보부의 잔인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당시 법정에는 이 목사를 시작으로 고문 폭로가 이어지자 오열하는 피고인과 방청객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나약한지 죽지 못해 몹시 부끄럽다. 512일 장기표가 각목, 화염병 준비얘기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라고 해서 그것만은 못한다. 나를 죽여달라고 했다. (가족석에서 가족들 눈물 흘리기 시작)

시인 요구 전에도 다른 곳으로 끌려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었다. () 뉘어 놓고는 무수히 구타했다. 그래 결국 죽지 못하고 시인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앞으로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지금까지 설교 때마다 , 아니오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해놓고는 내가 그것을 못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교인 앞에 나설 수가 있다는 말인가? (중략)

지도곤히 때리고 나서는 엎드리게 하고, 소고기(날고기)를 썰어 맨살에 붙이고는 비니루로 동여매 놓고 3일을 있었다. () 내가 한 시인 때문에 다른 분들께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고 김대중 선생님에게는 사형까지 구형하게 되어 죄송하다. (후략)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이해동 최후진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설훈 최후진술 사료.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제공

이제 5선 의원으로 민주당 중진인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 현장에 있었습니다. 내란음모·계엄법 위반 혐의였습니다. 당시 27살의 고려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설 위원의 최후진술에서는 성미가 괄괄하고 입심 좋은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기록에는 그가 거의 고함에 가까운 고성을 질렀다고 적혀있습니다.

설 위원은 고문 폭로에 충격을 받아 흐느끼는 가족들에게도 호통을 쳤습니다. “광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느냐고 따져 물으며 고문당한걸 가지고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당시 설 위원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후부터는 거의 고함에 가까운 고성) 현재 나가고 있는 길은 멸망의 길이다.

517일 이전에는 솔직히 평화 시위를 계획했는데 광주 사태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 구차한 목숨 바칠 각오를 했다. 지금 몇몇 분들이 눈물을 보이셨는데 고문당한걸 가지고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광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가? 이 눈물은 그 사람들에게 보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에 총을 줄 때는 국민을, 국가를 지키라는 것이지 국민을 죽이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계엄군은 시민을 패고, 밟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았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것으로 안다. 시체를 자동차에 매달고 달린 것으로 안다. 이게 어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나 하나 죽더라도 이 나라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 이 난국을 수습하는 길은 군은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7회 공판(1980912)에서 설훈 최후진술-.

다음날인 1980913, 오전 10시부터 18회 공판이 열려 피고 김대중의 최후진술이 이어졌습니다. 공판 개시 전 분위기는 의외로 화기애애합니다. 기록에는 가족들이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김종완 전 민주당 의원에게 돼지가 새끼 9마리를 낳았대요라고 말하자 김 전 의원이 나는 (감옥) 들어와 밥도 안 축내고 밖에서는 돼지 길러 돈 벌고 안팎으로 버는 거야라며 농담을 해서 다들 웃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은 오전 1145분까지 이어져 거의 2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진술 마지막에 말했듯 일종의 유언이었습니다.

()

검찰에서는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어 학생 데모를 통해 집권하려 했다고 공소장에서 말하고 있으나, 나는 총 한 방 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바랐던 것은 선거였으며, 선거만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집권할 수 있거나 적어도 4년 후에 대비한 튼튼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란이 오면 집권은커녕 지극히 곤란한 상태에 처하게 되며, 사실은 오늘날 같은 사태가 올 것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비폭력 주의자다. 그렇다고 무저항주의는 아니므로 나는 비폭력저항주의자다.

()

당국이 나의 형을 집행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것이 과연 법의 정의에 합당하며 민주국가로서 옳은 일인가 심사숙고해주기 바란다. 나는 나에 대한 관대한 처분보다는 다른 피고들에 대한 관용을 바란다. 결국 이분들에 대한 혐의의 책임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

나는 그제 (사형) 구형을 받았을 때 의외로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은 물론 공판정에 나왔었기 때문도 있겠으나 평소보다 더욱 잘 잤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 신자로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이 재판부를 통하여 나를 죽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 재판부를 통하여 나를 살릴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계신 피고들께 부탁드린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의 18회 공판(1980913)에서 김대중 최후진술-.

진술이 끝나자 가족들의 박수가 이어졌고 법정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기록에는 문익환 목사의 배우자인 박용길 장로의 선창으로 피고의 가족들이 우리 승리하리라를 합창하자 장내 정리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강제 퇴정시켰다고 적혀있습니다. “조작극이다!” “민주주의 만세!” 등의 고함이 터지고 심한 몸싸움도 이어졌습니다. 가족들은 법정 밖으로 끌려 나오는 와중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고요. 처절한 한국 근현대사의 한 장면입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980917.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대대적인 김대중 구명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에게 김 전 대통령의 선처를 당부했지요. 결국 198212월 김 전 대통령은 형 집행정지로 출소해 미국으로 사실상의 망명을 떠났습니다. < 이지혜 기자 >


진압 안하면 공산화미국에 5·18 실상 감춘 신군부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건 43건 제공

 12·12 반란 뒤 전두환 만난 미 대사 ,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잇속만 차려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전두환·이희성 등 신군부 인사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본국 정부에 보고한 기밀문서가 15일 공개됐다. 미 국무부가 우리 외교부에 최근 보내온 비밀해제 외교문서 43건 중 일부로, 1980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전문이 대부분이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신군부 반란 수괴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잘 나타나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이 12·12 반란을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변한 데 대해 길고 상세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자기 잇속만 차리는 설명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서에는 전두환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세력의 반격을 막기 위해 미국한테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적시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문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고 적었다.

1980518일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는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이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시위 대학생을 진압하지 않으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대목도 눈에 띈다. 신군부가 당시 학생운동을 반미 공산주의자 세력으로 왜곡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찬탈 행위를 정당화한 것이다.

비상계엄 확대 직후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난 뒤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해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지 최 실장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시위) 대학생들한테 유화 전술을 쓰는 것에 군부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198012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미대사관과 본국 정부가 김대중 구명을 위해 주고받은 문서들도 포함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1996년 미 국무부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 제공한 것이다. 당시엔 문서의 상당 부분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공개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정부는 5·18 전후 6개월의 맥락을 따지기 위해 12·12 사태부터 1년 동안의 자료를 (미 정부에) 요청했다진상규명위원회 등 단체와 협력해 미국이 자료를 더 공개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전두환이 광주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의 최종 책임자였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없다. 5·18 진상규명 단체 등은 집단 발포 등 유혈 진압과 관련된 내용은 한미연합사 등 군사 채널을 통해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노지원 기자 >


                             

 [단독 인터뷰] 힐링센터 매입 관련 의혹 해명

 구매과정은?

공동모금회와 협의해 경기도로매각 통한 시세차익 고려 안해

활용 안됐다는 지적?

시민단체 등 이용펜션아니었다, 믿고 맡길 이 없어 아버지에 부탁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17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한 경기도 안성 치유와 평화가 만나는 집’(힐링센터)을 둘러싼 고가매입 의혹 등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힐링센터 부지를 위해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예산의 한계로 적절한 곳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다가 해당 주택을 구매했다부동산 차익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 교육과 피해자 치유에 가장 좋은 장소를 구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되돌아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며 사과를 하면서 다만 지난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려 한 적은 없다는 진심 만큼에는 귀를 기울여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경기도 안성 힐링센터 구매 과정은?

=처음에는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근처에 힐링센터를 마련하려고 했다. 할머니들의 거처 역할 뿐 아니라 박물관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힐링센터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염두에 둔 주택도 있었다. 당시 여러 협의 끝에 현대중공업이 1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10억원으로 애초 염두에 둔 곳은 물론 서울에서 마땅한 곳을 구매하기 어려웠다. 건물을 구매해야 10억원이 지급되는 구조라 추가 모금으로 장소를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동모금회 쪽에 사정을 설명하니 담당자가 공동모금회에서도 이렇게 큰 금액이 지정 기부된 적이 없으며, 사업이 추진되지 않을 땐 감사에서 지적될 수도 있어서 꼭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을 사야 사업비가 지급될 수 있다. 부지는 꼭 서울이 아니라 외곽이어도 무관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경기도 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업 추진 단계마다 현대중공업·공동모금회와 협의해 일을 진행했다.

-힐링센터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적당한 곳을 구하기 위해 경기도에 안 가 본 곳이 없다. 경기 이천, 안양, 수원, 강화까지 갔다. 괜찮은 곳은 대부분 10억원이 넘었다. 그래서 나와 당시 사정을 잘 알던 남편이 주변에 추천을 부탁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규민 안성신문 대표(더불어민주당 당선자)도 그중 하나였고 이 대표 소개로 김아무개씨를 만나서 주택을 구입하게 됐다. 김씨는 그날 처음 봤다. 실제 가 보니 주변이 산이고 조용하고 집도 좋았다. 김씨가 자신과 부모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이라 벽돌과 벽지 등을 모두 좋은 재료로 튼튼하게 지어 건축비가 많이 들었다는 설명을 했고, 자재 등을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었다. 최초 그쪽에서 제시한 액수에서 더 깎아줄 수 있다고도 했다. 기존에 우리가 봤던 곳이나 사용 목적을 고려했을 때 비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 논란이 되듯 시세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는 있겠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계속 활용할 것이었기 때문에 매각을 통한 시세차익을 고려하지 않았다. 힐링센터 목적에 적합하고 예산 내에서 집행이 가능하냐가 중요했다.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개소 이후 한동안은 할머니들과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할머니들과 청년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됐다. 그러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문제 합의가 발표됐고, 여기에 반대하는 싸움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힐링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활동가가 없었다. 그렇다고 비워둘 수만은 없으니 수요시위등에 연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논의가 됐다. 평화를 위한 연대 강화 목적으로 힐링센터를 유지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다. 다만 그 횟수가 많진 않았다. 펜션처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연대하는 시민단체 회원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했을 땐 허락하지 않았다.

-부친이 힐링센터를 관리하고 한 달에 120만원가량을 받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활동가들이 직접 관리할 수 없으니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는데 정대협 운영위원회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당시 경기도 화성의 한 식품공장에서 공장장을 하고 있었다. 처음 부탁을 하니, ‘그럼 거기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물으면서 주저하더라. 그래서 대안이 없다고 말을 하니 알겠다고 하고 일을 맡으셨다. 처음엔 인건비가 120만원이었지만, 매각이 구체화한 2018년 이후부터는 관리비 50만원만 지급됐다.

-가족이 맡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건비를 제대로 책정해 정식 관리자를 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정이 뻔한 시민단체 형편에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는 곳에 인건비를 많이 쓸 순 없다고 생각했다. 120만원이었는데, 액수를 봐도 알겠지만 사익을 챙기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점만 부디 알아주면 좋겠다. 수원에서 일요일 출근해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지내는 환경도 열악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힐링센터 방 하나를 거주용으로 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창고로 사용하던 컨테이너에서 머무시게 했다. 아버지에게는 못할 짓을 한 셈이다. 아버지는 힐링센터에서 일한 지 1년 만에 위암을 얻어 수술했다. 그 전해 건강검진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자식으로선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따로 맡을 사람도 없어 그 뒤에도 계속 관리를 해왔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되돌아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희생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더 철저했어야 했다. 이렇게 큰 논란이 된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다만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 한 적은 없었다는 진심 만큼에는 귀 기울여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 정환봉 기자 >

힘내세요편지에 빵이나 떡도 택배로 보내

정의연 관계자 후원과 응원 계속 늘고 있어

 수많은 억측과 오해로 얼마나 힘드실지 짐작됩니다. 정의기억연대를 위해 애쓰시는 직원분들 하나씩 드시고 힘내시라고 보냅니다.” 목포에 사는 김수혜씨는 이런 내용의 손편지와 함께 한약인 경옥고를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무실에 보냈다.

김씨는 편지에 저는 그저 작은 금액을 후원하는 회원이지만 너무 안타깝고 걱정스러워 조금이나마 응원의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의연의 후원금 사용처 문제 등을 놓고 보수진영의 공세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바라는 시민들이 정의연에 응원의 선물이나 기부금으로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빵이나 떡 등을 택배로 보내고 있다.

광주에 사는 한 시민은 오월주먹빵을 보냈다. 앞서 13일 아침엔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서울 마포구 정의연 사무실을 두드렸다. 그는 설명도 없이 활동가에게 봉투를 건넸다. 후원금이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려는 실무자에게 그는 당신들을 믿으니 기부금 영수증은 필요 없다. 다음엔 찾아와서 식사도 사드리겠다고 말하고 바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일주일여를 긴장 속에 보낸 실무자들은 그가 떠난 뒤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신규 후원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정의연 후원계좌에는 힘내세요”, “쫄지마세요”, “응원합니다등의 송금 메시지를 적은 기부금이 답지하고 있다.

14일 정의연 관계자는 빠져나가는 후원자도 있고 새로 가입한 후원자도 있지만, 논란 이후에도 후원금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열린 수요집회에서도 인터넷 후원방법을 모르니 직접 후원하겠다며 현금을 건네려고 한 고령의 시민들도 있었다. 같은 날 정의연이 주최하는 수요집회 유튜브 생중계에도 기부하겠다는 댓글이 여럿 올라왔다. 여러 커뮤니티에도 정의연 후원 인증 글이 이어지는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일본 시민단체도 연대 성명을 내어 정의연에 힘을 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전국행동)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내용을 언급하며 “30년간 피해 인정과 진심 어린 사죄, 그에 기초한 배상, 꾸준한 진상규명과 교육 등 재발방지책을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목소리에 답하고 있지 않은 일본 정부야말로 피해자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 배지현, 도쿄/조기원 기자 >

일본 시민단체 정의연 논란 책임은 일본 정부와 사회에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성명

일본군 위안부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일본 시민단체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사회에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전국행동)13일 성명을 내어, “피해자를 몰아붙인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언급했다. 이어 “30년간 피해 인정과 진심어린 사죄, 그에 기초한 배상, 꾸준한 진상규명과 교육 등 재발방지책을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목소리에 답하고 있지 않은 일본 정부야말로 피해자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가 201512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서도 할머니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쪽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전국행동은 일부 내용만 윤 전 대표에게 알린 것이 (한국) 외교부가 말하는 사전 협의의 전부임은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공유했던 우리도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재일동포인 양징자씨가 대표를 맡은 이 단체는 정대협 시절부터 정의연과 연대하면서,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전국행동은 성폭력 근절과 평화 추구의 길을 함께 걸어온 정의연의 운동은 정의연만의 것은 아니다라며 정의연의 운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끝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이행이라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아직 실현하지 못한 일본 시민으로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각국의 피해자, 사망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용수 할머니의 동지로서 함께 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 도쿄/조기원 특파원 >

한일 학생모임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 지울까 두렵다

 한일학생·청년 80여명 정의연 지지성명 “현 상황이 운동 뒤흔드는 것 유감

 일본군 위안부문제해결을 바라는 한일 학생 청년 모임이 후원금 사용처 문제 등의 의혹을 받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지지 성명을 냈다.

정의기억연대를 지지하는 한일 학생 청년 모임(한일청년모임)15일 오전 ‘81인의 한일 학생·청년 정의연지지 성명을 내어 한국과 일본에서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는 정의연을 둘러싼 억측과 힐난이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30년의 역사를 지울까 두렵다고 밝혔다. 최근 정의연은 후원금 사용처 등을 두고 부실 회계처리의혹을 받고 있다.

한일청년모임은 정의연이 즉각 모든 모금은 전부 집회를 위해 사용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미디어에 의해 정의연 활동 전반에 대한 모욕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그런 억측이 마치 사실인양 퍼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본 성명을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정의연은 우리에게 영감과 자극, 귀감이 되었다. 정의연의 발자취를 좇지 않았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며 “(왜곡보도 등은) 위안부 운동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낳은 왜곡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이런 보도들이 운동의 존재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저했고, 일본에서는 가해국의 국민이 나서도 될지 두려웠다. 그러나 수요집회에서 하나돼 외친 구호가 우리들을 여기까지 이끌었다. 우리 활동의 원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정의연을 지지하고 함께하겠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 배지현 기자 >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방송 특집 프로그램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다시 개헌이 논의된다면 5·18 정신이 반드시 헌법 전문에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14문 대통령이 오는 17일 방송하는 광주 <문화방송>(MBC)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의 오일팔에 출연한다문 대통령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관련해 다시 개헌이 논의된다면 반드시 그 취지가 되살아 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20183월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는 헌법 전문에 부마 항쟁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추가했다. 이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문 대통령은 “3·1운동과 4·19혁명까지 수록된 헌법 전문을 보면 4·19 이후 장기간의 군사독재가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라며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이 헌법에 담겨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고 국민적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5·18을 처음 접한 사연도 언급할 예정이다. 그는 “40년 전 경희대 복학생 신분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 전두환 신군부에 예비검속돼 경찰에 구속된 상태로 5.18 소식을 경찰로부터 들었다라며 수감된 상태에서 경찰로부터 들었던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과 시민군의 무장 저항 사실이 정작 언론을 통해서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게다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 프로그램 인터뷰를 했다. < 성연철 기자 >

통일부, '북한인물정보' 발간"·80% 이상 교체, 김정은 체제 공고화"

"김여정 소속부서 불명개성특별시·선박공업성 신설"

 

대남·해외 공작 활동을 총괄하는 북한 정찰총국장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호부대를 지휘하는 호위사령관이 모두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132019년 이후 북한의 주요 인물 활동 및 신규인물(23) 등을 추가한 '2020 북한 인물정보''2020 북한 기관별 인명록'을 발간했다.

이 가운데 군부 인사로는 림광일(정찰총국장)과 곽창식(호위사령관), 김정관(인민무력상), 위성일(1부총참모장) 4명이 기재됐다.

정찰총국장은 지난 2016년 김영철 당시 총국장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이후 장길성(상장)이 맡아왔다.

통일부는 장길성에 대해 "2019년 해임(추정)"으로 표기했다.

림광일은 지난 20161월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을 맡았던 인물로, 지난해 12월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를 계기로 상장 진급과 함께 당중앙위 위원으로 승진했다.

곽창식은 이력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림광일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를 계기로 상장 계급장을 달았고 당 중앙위 위원으로 올라섰다.

통일부는 호위사령관 교체가 지난해 4월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호위사령관으로 발탁된 윤정린의 거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82세의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선에서 물러났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에 새로 이름을 올린 당 주요 인사는 김영환(평양시당 위원장), 김조국(당 제1부부장), 리호림(당 부장), 장금철(통일전선부장), 허철만(당부장·간부부장 추정), 현송월(당 부부장) 등이다. 내각 주요 인사는 김일철·양승호(내각 부총리), 김정호(인민보안상), 오춘복(보건상), 전학철(석탄공업상) 등이 새롭게 반영됐다.

왼쪽부터 림광일 정찰총국장, 곽창식 호위사령관, 김정관 인민무력상, 위성일 제1부총참모장.

북한에서 국방사업 전반을 지도하는 기구인 당중앙군사위의 최근 재편 결과도 이번 자료에 반영됐다.

중앙군사위원은 기존 13명에서 12명으로 1명 줄고 7명이 교체됐는데, 최룡해 국무위 제1부위원장, 박봉주 전 내각 총리, 김영철 당 부위원장, 황병서(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제외되고, 김재룡 내각 총리와 김조국, 김정관, 박정천(인민군 총참모장), 위성일, 림광일 등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년 사이) 당 정치국의 교체비율은 80% 가까이 되고 국무위원회 11명 중 9명이 교체돼 변동률은 82%"라며 "최근 들어 계속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고 실용주의 인사 패턴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친정체제가 공고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통일부는 선전선동부에서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 김여정 당 제1부부장에 대해서는 '소속 불명'으로 분류하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는 김조국과 조용원을 명시했다.

김여정에 대해서는 '1988년생 평양(출생)'으로 파악했고, 그동안 40대로 알려져 온 현송월 나이에 대해서는 '1977년생(평양시)'으로 기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여정의 소속 부서와 관련, 조직지도부나 선전선동부 혹은 확인되지 않은 지위 등 세 방향으로 보고 있다면서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당국 간 공식채널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도 공석으로 남겨뒀다. 조평통 위원장은 리선권 전 위원장이 외무상으로 이동한 뒤 후임자 임명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통일부는 이 밖에도 북한이 기존 공업성을 더욱 세분화한 선박공업성과 개성특별시를 신설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