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제3자 추천’ 방식 수용하되 야당이 비토권 행사할 수 있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은 3일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되 야당에 ‘비토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를 미루자 ‘민주당판’ 법안을 발의해 다른 야당들과 함께 추진하겠다며 압박에 나선 것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일 국회에서 ‘민주당판’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애초 오늘 법안을 발의하려고 했으나 손을 더 보고 내일(3일) 아침에 하려 한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9일 의원 워크숍에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직접 발의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이날 원내대표단 쪽에서 논의해 결론을 내리기로 한 바 있다.

민주당판 제3자 추천 특검법은 한동훈 대표의 ‘제3자 추천’ 방식을 수용하되, 추천된 특검 후보에 대해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비교섭단체를 포함한 야당이 이 가운데 2명을 추천하고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다. 대신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 4명 모두가 부적격하다고 판단될 경우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 대표는 야당에 특검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고 있는 기존 민주당의 특검법안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대법원장 등 제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당내 의견 수렴 등을 이유로 법안 발의를 미루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야권이 함께 제3자 특검법을 발의하는 방식으로, 한 대표와 국민의힘에 수용을 압박하려고 준비를 해왔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7가지 제3자 특검법안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대법원장의 추천권까지만 규정한 한 대표 안의 경우, 민주당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반대가 많아 사실상 추진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회의장에게 비토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으나, 자칫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장의 추천권을 부여하되 야당이 특검 후보 추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은 법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대법원장이) 영 아닌 사람들을 추천했을 경우에 대한 마지막 조치로 비토권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민도 엄지원 기자 >

22대 국회, 95일 만에 개원... 윤석열 대통령 '비정상'주장 외면

 
 
제22대 국회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개원식을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
 

임기 시작 95일 만인 2일,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늦게 개원식을 치른 제22대 국회는 정기국회 들어서도 날카로운 여야 대치가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식 ‘특검 후보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하겠다며 국민의힘 압박 강도를 올리는 등 양보 없는 공세를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당내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에 끌려다니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두 당은 전날 대표 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고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쟁점이 산적해 강 대 강 국면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장 ‘지각 개원’에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유일하게 불참한 이날 ‘반쪽 개원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애초 개원식은 지난 7월5일로 예정됐었으나,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면서 무산돼, 이전까지 가장 늦었던 21대 국회 개원식(7월16일)보다 48일 더 밀렸다. 이날 개원식은 정기국회 개회식을 겸해 열렸다.

어렵게 개원식은 열었지만, 100일간의 정기국회 레이스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우선 채 상병 특검법을 고리로 정부·여당을 겨냥한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고 야당이 그중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최종 1명을 지명하는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한다. 대법원장의 추천에 야당이 동의·재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권한이 없어, (한 대표가 공언한 방식의) 특검법을 발의하라는 더 이상의 설득도 불가하다는 점이 어제 두 당 대표 회담으로 확실해졌다. 민주당 시계대로 가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발의된 법안을 본 뒤 판단하겠다면서도, 내부적으론 이 법안은 받기 어렵다는 기류다. 친한동훈계 한 의원은 “그건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 아니냐”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한 대표는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아닌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채 상병 특검법이 필요하며, 당내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시기에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윤석열계의 특검법 거부 의사가 완강해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 밖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4국조(채 상병 사건, 방송 장악, 양평고속도로 의혹, 동해 유전 개발 관련 국정조사) 카드도 여전히 손에 쥐고 있다. 오는 26일 본회의에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방송 4법, 노란봉투법 등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6개 법안 재표결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전날 여야 대표 회담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함께 논의됐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오는 4~5일 교섭단체 연설, 9~12일 대정부 질문, 다음달 7~25일 국정감사와 이후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서도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무혐의 처리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 직접 수사 등 뇌관이 산재한 탓이다. 연금개혁이나 금융투자소득세 의제와 관련해서도 여야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전망된다.

한편, 우원식 의장은 이날 개원식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세월호·이태원·오송 등 사회적 참사 유가족,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고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 김정륙씨,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 종사자 등 외빈 148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개원식이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 2층 방청석을 지켰다.  < 고한솔  고경주  전광준 기자 >

도쿄도지사,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외면
아베 신조식 회피 “학살 여부 규명은 역사가 몫”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다수의 학살 증거자료들
조선인 학살과 지진 피해자 구분없이 얼버무려

“일본정부와 도쿄도지사, 학살 역사 말소 행위”
한일 정부, 과거사 왜곡·날조 속에 ‘준동맹’ 유착

 

재일교포 음악가인 양방언이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2024.9.1. [연합]
 

일본 ‘관동(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1년이 된 1일, 지진 당시 도쿄에서 일본 군경과 민간인 자경단원들 손에 희생당한 6000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여전히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침묵했다.

도쿄도지사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외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2017년부터 8년째다. 이전의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학살당한 사람들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냈으며, 우익 이시하라 신타로도 지사 재임 시절 추도문을 보냈다. 2016년에 단 한 번 추도문을 보냈을 때 고이케 지사는 추도사에서 “불행한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고, 누구나 안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세대를 넘어 계속 얘기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새로운 증거 문서들이 다수 발굴돼 공표됐음에도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것은, 이른바 ‘우경화’한 일본에서 그것이 표를 얻는데 유리했기 때문일까. 그는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1일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 인근 료고쿠역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 송부를 거부하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비판하는 글이 게시돼 있다. 이 종이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역사를 말살하지 말라"는 글이 적혔다. 2024.9.1. [연합]
 

조선인 학살과 지진 피해자 구분없이 얼버무려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추도식과 같은 날에 열리는 지진 희생자들 추도 대법요식에서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는 이제까지의 설명을 되풀이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의 희생자와 ‘우물에 독을 넣었다더라’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현장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학살당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에도 도쿄도 지사와 일본정부는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희생자 일반에 대한 추도로 책임을 얼버무려 왔다. 군함도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 등재 때도 일본 정부와 관할 지자체 당국은 일제 때 동원당해 차별받다 희생당한 조선인들과 일본인 피해자들을 구분해서 기록, 전시하라는 한국정부와 유네스코의 요구를 무시하고 희생자 일반에 대해서만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피해갔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스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2024.9.1. [연합]
 

아베 신조식 회피 “학살 여부 규명은 역사가의 몫”

학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고이케 지사는 “무엇이 사실인지는 역사가가 살필 것”이라고 말해 왔으나, 그날도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말만 했다.

이는 지난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문’에서 군국 일본의 이웃나라 침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침략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가의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일제의 침략 사실을 사실상 부정한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아베는 그때 일본의 야만적인 아시아 침략과 식민 수탈을, 서양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아시아 민족을 구출하기 위한 ‘민족해방투쟁’인양 자화자찬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학살에 대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관동계엄사령부 상보’나 도쿄도의 ‘도쿄 백년사’ 등 당시의 조신인 학살 사실을 기록한 증거 문서들을 외면해 왔다. 지난해 여름에도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관방장관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해 문제가 된 적이 있으며, 하야시 요시마사 현 관방장관도 30일의 기자회견에서 “(그와 같은) 인식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미야가와 야스히코 추도식 실행위원장이 조선인 희생자를 위해 별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비판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다수의 학살 증거자료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중앙방재회의가 2009년에 작성한 보고서는 “관헌이나 주변 주민들에 의한 살상행위가 다수 발생했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들이 많았다”거나 “대상은 조선인들이 가장 많았다”는 기록들을 담고 있다. 거기에는 233명의 조선인들이 살해당했으며, 367명이 기소된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기록한 사법성의 당시 기록 등을 근거 자료로 제시한 사실들이 정리돼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유식자가 집필한 것”이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2015년 2월에 “조사를 해 본 결과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답변서를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재확인했다. 일본정부 각료들은 이런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학살에 관한 문서가 국립공문서관이나 방위연구소 전사연구센터 사료실 등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마음먹고 확인하면 금방 드러날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 확인 자체를 피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생존자나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도 여러 가지 이유로 부정하거나, 적극적인 발굴 노력을 하지 않다가, 그들이 사망할 경우 입증할 증거나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식의 뻔한 왜곡과 날조를 해왔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점점 더 목청을 높이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 주장에서 보듯, 윤석열 정부 이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그런 대응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일본정부와 고이케 지사의 자세는 학살 역사 말소 행위”

이것이 일본정부나 관할 당국이 감추려는 범죄사실을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본의 학살 부정론을 검증하는 논픽션 작가 가토 나오키는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 정도 꼭같은 답변을 계속해 왔으나, 최근 1년 그 모순이 드러났다.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역설적이게도 일반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이 주목을 받게 된 면도 있다”고 했다.(<아사히신문> 8월 31일)

새로운 증거 자료들도 다수 발굴됐다.

“(조선인들이) 밤이 되면 모두 살기 등등해지는 군중들 때문에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이는 일본 육군의 지방조직인 사이타마 현 구마가야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관동지방 지진관계 업무 상보’에 나오는 기술 내용이다. 육군성이 지진 활동내용을 보고하도록 요구해 지진이 일어난 지 3개월 여가 지난 1923 12월 15일에 제출된 보고서다. 여기에는 지진 발생 사흘 뒤 밤에 군중의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송 중이던 조선인 40여 명이 지금의 구마가야 시내에서 학살당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 소장돼 있는 <관동 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이라는 저서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런 내용을 확인해서 지난해 가을에 발표했다.

소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조선인 희생자 조사와 추도회를 요코하마 시에서 계속해 온 야마모토 스미코(85) 등은 지난해 9월 가나카와 현에서 작성한 기록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가나카와 현 지사가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1923년 11월 보고서인데, 거기에 현 내에서 살해당한 조선인 1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현 내에서 일어난 조선인 살상사건 59건의 범죄사실과 살해당한 145명 중 14명의 성명’) 야마모토 씨 등은 자료에 나오는 살해 현장을 고지도로 확인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923년 11월에 작성된 가나카와 현의 ‘지진에 따른 조선인 및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도 남아 있다.

“정부와 고이케 도쿄도 지사의 자세는 학살 사실을 역사에서 말소하는 행위와 같다.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살았고 어디에서 일을 했는지 역사에 새겨 놓아야 한다.” 이들은 올해 추도식에서는 새로 확인된 희생자들 이름을 하나 하나 낭독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 참가자가 영어로 '간토대학살 잊지 말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망각의 담합 위에서 진행되는 한일 유착

<역사 수정주의>라는 책을 쓴 가쿠슈인여자대학 다케이 아야카 교수는 말했다.

“학살 등의 중대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뒤 세월이 지나 생존자가 사망하면 발생 당시는 당연한 듯 공유되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언설들이 생겨나기 쉽다. 역사적 사실은 의식적으로 계승하지 않으면 간단히 매몰된다. 홀로코스트조차 부정론이 나오고 있을 정도여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는 전쟁범죄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에 대한 부정을 금지하는 것을 법제화하고 있다. 법규제의 타당성에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본은 최소한의 사실 공유도 불충분해 그런 논의 이전 단계에 있다.”

‘준동맹’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급속한 ‘한일 유착’은 진실 규명을 토대로 한 제대로 된 청산이 아니라 이처럼 과거사 왜곡과 날조를 통한 망각의 담합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민들레한승동 기자 >

‘기후 헌법소원’ 결론…탄소중립기본법 일부 ‘헌법불합치’
청구인들 “기후변화가 기본권 문제란 걸 확인” 반겨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현재 정부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만 세워두고 있는데, 이번 결정에 따라 2050년 이전까지의 감축 목표가 제시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오후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감축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1항이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에 반하여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2050년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시점이다.

다만 이미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해둔 정부의 계획과 그 근거인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대해서만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고, 적어도 정부가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2031~204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내용을 반영해 탄소중립기본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
 

이번 결정은 ‘청소년기후소송’(2020년)과 ‘시민기후소송’(2021년), ‘아기기후소송’(2022년)에 이어 제기된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등 네 건의 청구를 병합해 내린 것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기후소송’이라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대리인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결정을 반겼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오늘 판결로 우리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기본권의 문제이고 누구나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권리가 지켜질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이제 정부와 국회의 차례”라고 밝혔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국장은 “2031년 이후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것이 헌법 불합치라는 내용이 선고 됐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판결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위헌 결정 내용 중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독일 기후 소송처럼 국회의 후속 법 개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실질적인 강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아기기후소송’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한제아(12)양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당연히 기후위기에서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며 “이번 판결은 저희에게 주어진 책임도 알려주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헌법소원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번 판결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대해 환경부는 이날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 박기용 윤연정 기자 >

 

'미래세대 기본권' 다룬 아시아 첫 기후소송…일부 인정 결실

청구 4년 만에 "2031년 이후 공백, 미래에 과중한 부담" 헌법불합치

일부 기각됐지만 유럽·미국 판결 발맞춘 첫걸음…일본 등 영향 줄 듯

 

착석하는 헌재재판관들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8.29

 

 

어린이·청소년에 태아까지, 대한민국 미래 세대들이 주축이 돼 아시아 최초로 제기한 기후소송이 4년간의 심리 끝에 일정 부분 열매를 맺었다.

2031∼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공백은 정부가 환경권을 침해한 것으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끌어낸 점에서다.

다만 가장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던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까지 전향적 판단이 나오지는 않아 첫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기후 위기 헌법소원은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첫발을 뗐다.

이들은 당시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소극적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생명권·환경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이었다.

2021년 10월에는 같은 문제의식으로 시민단체와 정당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22년 6월에는 당시 태명이 '딱따구리'인 20주 차 태아(이후 같은 해 10월 출생)를 비롯해 2017년 이후 출생한 아기 39명과 6∼10세 어린이 22명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첫 청구 후 4년 만인 올해 4월 이같은 소송을 병합해 첫 공개변론을 열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이 역시 아시아 최초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청구인 측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설정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같은 정부의 대응은 충실하지 못해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온실가스 40% 감축 자체가 기존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계·산업계에서 느낄 부담이 크다고 반박했다.

마지막까지 최종진술 연습하는 한제아 어린이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내 첫 기후소송 2차 변론 시작에 앞서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인 한제아 어린이가 최종 진술문을 확인하고 있다.
헌재는 20년부터 23년까지 제기된 기후 소송 4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9월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2024.5.21

 

 

5월 열린 두 번째 공개 변론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12) 학생이 청구인 대표로 직접 출석해 미래세대 당사자로서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며 어른들의 전향적인 결정을 촉구했다.

결정권을 쥔 재판관들은 2030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감축 목표량이 없으며, 정부 발표상 감축 목표연도와 목표점이 계속 변경되면서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시선을 끌기도 했다.

결국 헌재는 이날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환경권을 침해했으므로 2031년 이후 기간에 대해서도 법률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만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비록 전면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다른 국가의 선행 판결에 일부 발맞춘 '첫걸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네덜란드 환경 단체는 정부의 기후 변화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2013년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네덜란드 법원은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는 이른바 '위르헨다 판결'을 했다. 기후소송의 시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이라는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는 법을 개정해 2030년 감축 목표를 55%에서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8%로 신설했다. 탄소중립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당겼다.

이밖에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 몬태나주 법원,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기후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기후 대책에 대한 정부 정책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우리 헌재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부라도 인정하면서,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대만·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소송 판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연합 이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