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또 인사독선... 야당 “독선·불통” “인사 참사 부메랑 될 것”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왼쪽), 김용현 국방부 장관.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6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회 인사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이로써 29명으로 늘었다. 야당에서는 ‘부적격 인사라는 국민과 국회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독선과 불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이 김 장관과 안 위원장 두 사람의 임명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국회는 지난 2일과 3일 각각 김 장관과 안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했으나, 견해가 엇갈리며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전날 국회에 두 사람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재요청했고, 국회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다음날 곧장 임명을 강행했다. 국회에서 기한 내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경우 대통령은 10일 이내로 기간을 정해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을 당일 하루로 정해 국회 재논의 가능성마저 닫아버린 것이다.

 김용현 국방장관은 윤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 1년 선배로, 윤 대통령과는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야당에서는 그가 경호처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이른바 ‘입틀막’ 사건 등 과잉 경호 논란을 빚은데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후보자 지명 때부터 지명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가 특전사령관과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등 충암고 출신 핵심 사령관들을 불러 모임을 갖는 등 ‘계엄 준비’를 모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임명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낸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경우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항문암, 에이(A)형 간염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고,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야당으로부터 인권위원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이날 두 사람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회의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모두 29명으로 늘었다. 특히 4·10 총선 참패 뒤에도 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임명했던 윤 대통령은 이날 김용현 장관과 안창호 인권위원장을 임명하면서 5명째 임명 강행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야당 "대한민국 후퇴의 악순환 고리"

야당 쪽에서는 반복되는 ‘국회 패싱’ 인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부적격 인사가 임명되고 국정이 마비되는, 대한민국 후퇴의 악순환 고리가 또 이어지게 됐다”며 “인사는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인데, 그 거울에서 독선과 불통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윤 정부 인사 참사의 특징은 정부 주요 요직에 임명해서는 안 되는 자, 혹은 해당 기관이 목적하는 바와는 정반대인 자들을 그 자리에 앉힌다는 점”이라며 “국민 뜻에 반하는 인사 참사,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 고한솔 장나래 기자 >

뉴라이트와 윤석열의 공생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로 무장, 시장 맹신하며 ‘승자의 역사관’ 전파
강제동원·위안부 등 역사 피해자에 공감 안해…교과서 왜곡 시도까지
사회 곳곳서 뉴라이트 진지전 벌여…“내년 광복80돌 맞아 전면전 우려”

 
 
2005년 11월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중심이 된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이날 “올드라이트가 만들어낸 성공 신화 속에 가려진 잘못된 유산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뉴라이트’ 전성시대다. 윤석열 정부 들어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속속 임명되면서 뉴라이트가 어떤 인물인지, 그들은 왜 친일·반민족적인 주장을 펴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8일 취임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이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광복회가 “김 관장이 뉴라이트 친일파”라고 비판하며 광복절 기념식을 따로 열면서다. 김 관장 임명 전에도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은 역사 관련 기관뿐만 아니라 교육·인권 기관 등 정부 기구 곳곳에 자리를 틀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전면에 등장하는 뉴라이트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우파 정부와 뉴라이트는 결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보수 진영은 우파 민족주의를 강력히 내세운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그 반대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민족주의보다 일관적인 친미와 친일 등 사대주의를 드러낸다.

그동안 우파들은 친일에 비판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 대통령, 심지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씨까지 일본에 경제적인 실리를 취했지만, 대외적으론 반일 노선을 내세웠다. 전두환씨는 히로히토 일왕의 유감 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또 다른 뉴라이트의 특징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며 숭상하는 점이다. 정통 한국의 우파들은 이승만을 독재자로 평가절하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역시 자신들의 정통성을 이승만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았다. 기존 우파의 평가가 이런데도, 뉴라이트는 왜 다른 특징을 보일까?

1948년 8월15일, 광복 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기념식이 중앙청 건물과 광장에서 열린 모습. 이승만 대통령 등 초대 정부 각료들과 연합국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를 비롯한 미군 고위 지휘관들이 참석했다. 중앙청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본부인 조선총독부 건물이었으며, 해방 뒤 정부 청사와 국회 건물로 쓰이다가 1995년 8월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철거를 시작해 이듬해 11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뉴라이트는 어떻게 나왔나?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에 기용된 뉴라이트 인사들과 이들에게 이념적 근거를 제공한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봉규 윤운식 선임기자, 신소영 김명진 김태형 기자, 연합뉴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라이트’(New Right)는 ‘신보수주의 우파’라는 뜻이다. 기존의 ‘올드라이트’(Old Right, 낡은 우파)와 차별화하려 이런 이름을 썼다. 한국 사회에서 ‘뉴라이트’라는 말은 2004년 11월 동아일보의 기획 시리즈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에서 공식화했다. 이들은 기존 보수층인 올드라이트가 구시대적 반공주의를 유일한 이념으로 내걸고 있다고 비판하며 등장했다. 그러면서 뉴라이트는 정치적으론 신보수주의, 경제적으론 신자유주의를 내걸었다.

당시 뉴라이트는 미국의 신보수주의 흐름인 네오콘의 정책을 많이 차용했다. ‘네오컨서버티브’(Neoconservative)의 줄임말인 네오콘은 자유의 가치를 우선시했다. 북한과 이란 등 적대국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독재 정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강경 외교 노선을 주창했다. 미국의 네오콘은 2001년 조지 더블유(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정권의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거의 몰락했다.

반면 한국의 뉴라이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며 교과서 국정화까지 시도했다가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일견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뿐, 경제·문화·언론 등 사회 전반에서 세력을 다지고 영향력을 키웠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의 확산, 한국자유회의 창립, ‘반일 종족주의’ 발간 등이 이 시기에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로 뉴라이트는 노골적으로 정부 기구들의 중요 직책을 차지하고 국민을 상대로 이념 전쟁을 펼치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 인물들의 뿌리는 ‘전향한 운동권’이다.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주사파도 다수 포함됐다. 이들은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와 1991년 소련 붕괴 뒤 이론적 구심점을 잃고 새 활로를 찾았다. 대안으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내걸고 진보정당을 창당했으나 선거에서 평가받지 못했고,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해 정치세력화를 모색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차명진·신지호·임해규 전 국회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이념적 근거를 마련해준 사람은 1987년 낙성대경제연구소를 만든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다. 안 교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경제 사관에 남미에서 유행한 종속이론을 접목해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창했다. 이 이론은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수탈로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발전이 늦어져 근대적 경제 체제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안 교수는 1986~1987년 일본 도쿄대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자신의 이론을 폐기 처분한다. 대신 들고나온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이 이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유입된 기술과 자본 등으로 한반도의 근대화가 이뤄졌으며 해방 뒤에는 이를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게 뼈대다. ‘식민지 반봉건사회론’과는 정반대 논리다.

안병직 교수의 제자로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9년 식민지 근대화론을 다룬 ‘반일 종족주의’를 내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뉴라이트의 이념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들의 특징은,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나 정치학자가 다수라는 점이다. 이들은 실증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일제강점기의 부실한 산업 통계를 곡해하고 그 구조적 의미를 무시해 친일 사관으로 치달았으며, 학문적으로도 실증적이거나 엄정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국뽕’ 아닌 ‘왜뽕’인 이유

올해 1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취임했다. 그의 전공은 한국사가 아닌 영국사다. 그가 이사장 자리에 오른 재단은 2006년 중국과 일본의 동북아시아 역사 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앞서 박 교수는 2006년 친일 성향 책으로 비판받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공저했다.

지난 5월엔 허동현 경희대 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에 올랐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작업을 맡았다. 그는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포럼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어 7월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됐다. 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다. 2020년부터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아왔다.

뉴라이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이들의 역사관은 이해하기 힘들게 다가온다. 일반적인 보수 우파와 달리, 그들은 조선과 한국을 낮추지만 일본은 추어올리기 때문이다. 이영훈·김낙년 교수 등이 낸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 강점 당시 일본은 조선에서 식량을 수탈하지 않았고,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으며, 독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일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일까? 뉴라이트 역사관은 시장주의가 합리적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에서 시작한 ‘합리적 시장 가설’을 역사에도 적용한다. 시장이라는 경쟁의 장소에서 승리하면 비판 없이 미화한다. 즉 뉴라이트는 ‘승자의 역사관’을 전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열강이 겨루던 시기에 일본은 승자였고 조선은 패배자였다.

문제는 이런 역사관으로 세계를 보니 피해자를 향한 공감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피해자를 실패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강제 동원과 일본군 위안부를 향한 시선에서 이들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역사사회학)는 먼저 “노무현·문재인 등 진보 정부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서훈을 확대하고 친일 반민족 행위를 진상 규명하고 단죄하자, 친일과 친미를 기반으로 한 전통 보수세력은 처음엔 자신들이 ‘친일이라는 과오도 있지만 건국과 한국전쟁에서 공이 있다’는 식으로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런 올드라이트의 태도를 비판하며 나온 뉴라이트는 반일을 주장하는 쪽을 반미·친공, 심지어 ‘반일 종족주의자’로 싸잡아 비판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고 짚었다.

 헌법·광복절 부정하고 "이승만·건국절"

2008년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식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라이트 영향을 받은 이명박 정부는 이날 행사에서 광복절보다 건국절에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지난달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45년에 광복됐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관장 자격으로 이야기해달라”고 묻자, “관장 자격으로 얘기하라면 멘트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나온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 부모님, 후보자 부모님은 일제 치하 국적이 다 일본이냐”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일본이지, 그걸 모르십니까”라고 비꼬았다. 그는 “일제시대 때 국적이 한국이냐. 상식적인 얘기를 해야지,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역공세를 퍼부었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전문에 명시했다. 그러나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은 이처럼 헌법이 선언한 국가 정체성을 무시하고, 1945년 8월15일을 광복절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영훈 교수는 2006년 7월31일치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을 썼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제가 무리하게 (…) 미국과 충돌하여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뤄진 것”이라며 광복절을 평가절하한 뒤, 남한 단독정부가 들어선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하자고 주장했다.

기업 경영자 출신으로 정치 기반이 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런 경제 논리로 무장한 뉴라이트 성향 인사와 이념을 받아들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건국 60년 기념식을 열며 뉴라이트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건국절을 신설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이에 학계와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비판이 이어지자, 한나라당은 개정안을 철회했다.

뉴라이트는 국민·영토·주권이라는 국가의 3요소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임시정부와 광복절을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정작 뉴라이트가 숭상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쓰며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된 해가 건국의 뿌리임을 분명히 했다. 또 뉴라이트는 반일 민족주의를 혐오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강경한 반일 민족주의자였다. 뉴라이트가 그런 이승만 대통령을 숭상하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인 셈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승만이 내세운 북진 통일, 한-미 동맹을 뉴라이트가 재활용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분단 정부 반대, 통일의 상징인 김구가 걸림돌이 됐고 김구 폄훼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사실 뉴라이트가 친일 정책을 펴는 것은, 일본보다 미국 눈치를 살피기 위해서라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대결하지 말고 북한과 중국을 포위하길 원한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뜻을 받들려면 일본과의 과거사를 지워야 하고, 대신 중국·러시아 같은 미국의 적대국들과 대립각을 세워야 하며, 남북 관계 역시 대결 국면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역사 전쟁

지난달 30일 공개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이 교과서는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을 실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이 제일 앞에 나온다. 연합
 

우리나라는 유신독재 이전까지 민간이 만든 역사 교과서가 검정 기준을 통과하면 인정하는 검정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었다. 정권 비판을 원천 봉쇄하고 유신독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제로 되돌렸다.

이에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은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냈다. 2019년 강의실에서 “위안부는 매춘”이라고 망언했던 류석춘 연세대 교수와 ‘반일 종족주의’ 대표 필자 이영훈 교수 등이 중심이 됐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과 국부 역할 등을 집중적으로 서술했다. 다만 이 교과서는 검정받지 못했다.

끝이 아니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모여 만든 한국현대사학회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를 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였다. 이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며 거센 논란이 일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교과서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왜곡하고,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친일·반공·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했지만, 뉴라이트는 그런 주장이 반일·친북·좌편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률은 0%대에 그쳤다.

2015년 10월 박근혜 정권은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제2의 교학사 사태가 일어날 뻔한 상황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는 동력을 상실하며 국정화는 물거품이 됐다. 방학진 기획실장은 “현재 검인정 제도에선 집필 기준만 만족하면 교과서 시장 진입이 쉬워 정권의 요구를 반영할 여지가 상존한다”며 “뉴라이트는 이를 이용해 자신들 성향에 맞춘 교과서로 교과서 시장에 진입한 뒤 차차 그 채택률을 높이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교육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도 교과서포럼의 고문이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16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 주위에 이상한 역사의식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주변의 뉴라이트에 휘둘리고 있다고 여기는 듯한 발언이다. 이 교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이자 대통령의 오랜 친구기도 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달 2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도 뉴라이트 아니냐”고 묻자 “대통령께서는 뉴라이트라는 의미를 정확히 모를 정도로 무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 성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의 두 축인 ‘친일 반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관한 발언을 자주 해왔다. 윤석열 정부에 뉴라이트 인물들이 중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와 뉴라이트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리가 독립전쟁을 해서 해방을 맞이하고 광복을 얻게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와 독립을 얻게 됐다”라고 했다. 국민방송(KTV) 갈무리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제적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은 대북정책 방향을 묻는 기자 질문에 정부의 통일관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독립전쟁을 해서 해방을 맞이하고 광복을 얻게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와 독립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주인인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결국 그러한 결과(건국)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건국절을 앞세우는 뉴라이트와 결을 같이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1년 7월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검사 시절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에 감명받았다며 “없는 사람들은 그(불량식품 단속 기준)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거 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같은 인터뷰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신자유주의 마인드를 장착한 발언이었다. 약자와 공동체를 위한 배려는 찾기 힘들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뉴라이트가 다시 발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정치 기반이 약해 뉴라이트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뉴라이트 세력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앞으로는 어떨까? 강성현 교수는 “뉴라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의 좌파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장한 진지전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들은 언론·학계·교육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같은 성향의 인사를 심어놓고 이들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2025년인 내년은 광복 80돌, 한-일 협정 60돌을 맞는 해다. 이를 기점으로 뉴라이트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언론·사상·문화·교과서 전쟁을 전면적으로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 한겨레 정혁준 기자 >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9종 비교
첫 출간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위안부’ 비중도 상대적으로 작아

 
 
새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연합]
 

최근 역사 논쟁으로 집필 방향에 대해 관심이 쏠린 새 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교과서 가운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처음 출간한 한국학력평가원(평가원) 교과서가 필수 학습 요소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설명이 부실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 정권이 아닌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는 중학교 역사 7종, 고등학교 한국사 9종으로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인다. 30일 한겨레는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전 종을 입수해 평가원 교과서와 비교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중·고등 역사 교과서 검정 기준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설명은 한국사 교과서에 필수로 들어가야 할 ‘성취기준별 학습 요소’ 가운데 하나다.

평가원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 “젊은 여성들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고 가 끔찍한 삶을 살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참고 자료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는 등의 연습문제를 제시했지만, 두쪽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의 개념, 관련된 주요 인물,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와 역사 부정의 세계화 등을 다룬 동아출판사 교과서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 리베르스쿨은 ‘강제 동원의 실상’ 활동 자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대 일본 총리들의 역사 왜곡 발언 등을 담고 성명서를 작성해보자고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 고등학교의 ㄱ 역사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 다른 책들도 대체로 성 착취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하진 않지만, 활동 자료 등 ‘위안부’에 대해 다룬 분량이 비교적 적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선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이 전 대통령 사진을 제일 앞에 실었다. 여기에서 이 교과서는 “광복 후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신탁 통치 반대와 남한 단독 임시 정부 수립을 주장했다”고 했다. 또한 주제 탐구라는 이름으로 이승만의 ‘정읍 발언’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서술해, “만약 이승만이 남한 단독 정부론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승만이 통일 정부가 아닌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유를 알아본다” 등의 질문과 지시문을 넣었다. 또한 이승만 정부에 대해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했으나, ‘독재 정권’(해냄에듀), ‘독재 권력 구축’(미래엔), ‘장기 독재 체제’(씨마스)라고 쓴 다른 교과서와 차이가 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관련된 서술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쓴 것은 다른 교과서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마련된 2022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당시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연구진은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동의 없이 추가하자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다양성과 포용적 가치를 좁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며 반발했다.

평가원 교과서에 대해 한 고등학교의 ㄴ 역사 교사는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주제 탐구’, ‘역사 탐구’ 등 활동 자료로 넣었다. 해당 내용을 역사 교사가 어떻게 활용하고, 유도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신소윤 이우연 기자 >

‘뉴라이트 논란’ 한국사 교과서 필진, 2022년부터 ‘밑작업’

2년 전부터 뉴라이트 교과서 준비
“일본 악하고 조선 선하다는 서술은 소설”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 제공한 직업 여성”

 

친일·이승만 독재 등을 옹호한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 등이 과거 학술세미나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해 학교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교과서 집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교수와 이병철 문명고 교사는 세미나에서 기존 역사 교과서 등에 대해 “편파적”, “민주화 세력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었다” 등을 주장했다.

1일 한겨레가 입수한 (사)역사연구원의 5·6·7·8·11·12차 세미나 자료를 살펴보면, ‘교과서에 나타난 역사 왜곡’을 주제로 한 세차례 세미나에서는 물론 다른 세미나에서도 기존 역사 교과서를 줄곧 비판하는 주장이 많았다. 역사연구원은 뉴라이트전국연합 전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가 이사장이며,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2~23년 10번 넘게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한국학력평가원 집필진인 이병철 문명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2022년 8월26일 (사)역사연구원 제7차 학술세미나에서 발제한 자료 가운데 일부.
 

구체적으로 이병철 교사는 2022년 8월26일 열린 7차 세미나에서 “민주화 세력이 방송 미디어를 통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어 대한민국의 국가관과 자유 시장 체제를 뒤엎고 좌파 중심의 국가 주도 체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티브이(TV)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을 통한 역사 지식의 전달·소비 실태와 문제점’을 발표해 이런 인식을 나타냈다. 김진홍 목사는 이날 ‘초대 말씀’을 통해 “역사 교사 제언대로 권토중래하여 다음 번 검정에는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검정교과서를 서너 종 출원했으면 한다”며 “혹 불합격하더라도 대안학교에서 그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를 준비해왔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저자인 배 교수(당시 숭의여고 교사)는 같은 해 9월23일 열린 세미나에 기존 역사 교과서를 “자유당 정부와 군인 정부 시절의 정책에 의해 민간인이 다치거나 죽게 된 아픈 과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한국사 교과서”라고 표현했다. 또 “일본은 강자이자 악한 나라이며 조선은 약하고 선한 나라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으로 한국사 교과서 서술은 역사 서술이라기보다 자기 연민의 소설”이라며 “이를 편파적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무엇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학력평가원 집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교수가 2022년 9월23일 (사)역사연구원 제7차 학술세미나에서 발제한 자료 가운데 일부.
 

역사연구원의 수차례 세미나에선 이번 논란 대상인 한국사 교과서 저자뿐만 아니라 다른 토론자들도 문제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역사 왜곡 비판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였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학)는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일본 식민통치가 한민족의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소녀상 철거활동을 펼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은 “교과서에 수록된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삭제해야 할 주제”라며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 직업여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교과서 전시본을 확인한 경기도의 한 고교 역사 교사는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보면 본문에는 그렇게 비판해온 기존 교과서와 비슷한 서술을 하고, (탐구 활동 등) 일부분에서 자신들의 역사관이 녹아 있는 모습”이라며 “(이 교과서로는)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를 포함한 교과서들은 2일부터 전시 및 선정 과정을 거친 뒤 각 학교의 채택 상황에 따라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인다.   < 신소윤 기자 >

역사교과서 필진에 교육부 공무원? 결과 발표 앞두고 저자서 빠져

발표 9일 전까지 집필진에 청년보좌역 포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검정 부실’ 의혹 지적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1 교사용 교과서 집필진 명단.
 

친일 미화, 이승만 독재 옹호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이 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에 교육부 청년보좌역이 검정 신청 당시부터 검정결과 발표 즈음인 지난달 21일까지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공무원이 검정교과서 저자명단에 포함됐던 것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건호 교육부 청년보좌역(별정직 6급 공무원)은 최근까지 해당 교과서 집필진으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달 21일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김 보좌역이 해당 교과서 저자에서 자진 사퇴한 것으로 알려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역사교사 출신인 김 보좌역은 자신의 교과서 집필 참여가 논란이 되자,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고를 쓴 바는 있는데, 지난해 11월7일 임용된 이후에는 일체 어떠한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저자에서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사퇴 처리가 된 것은 검정결과 발표(8월30일)와 근접한 시점으로, 이때까지 저자의 자격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일부 학교에 배포된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1 ‘교육부 검정 선생님 연구용 도서’에 김 보좌역의 이름이 집필진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용 도서는 일반적으로 전시본이 배포된 뒤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배포되는데, 이 책은 출판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먼저 제작해 일부 학교에 배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학교에 배포된 새 한국사 교과서 전시본 집필진 명단에는 김 보좌역은 빠져 있다.

애초에 김 보좌역이 ‘집필진’에 포함될 수 있는지도 논란이다. 교과서 검정업무를 대행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10월 발행한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정 신청 안내’ 자료집을 보면, “검정 신청일 현재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닌 자”를 저작자 요건으로 두고 있다.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정신청 기간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14일까지로, ‘검정 신청일 현재’ 김 보좌역은 ‘교육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저작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 쪽은 “검정 실시 공고에는 ‘교육부 소속이 아닌 자’를 저작자 요건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전직 교사는 “교과서 검정 전에 저자 이력을 검증할 수 있는 여러 단계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저자가 검정 신청 전에 출판사에 신상 정보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은건지, 평가원이 검증을 부실하게 한 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신소윤 기자 >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박근혜 탄핵 부결시 ‘야당 의원 체포’ 내용 담겨

한동훈 “불체포 특권 포기” 준비된 발언에
이재명, ‘야당 의원 선택적 체포’ 가능성 짚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대통령실에 이어 국민의힘 지도부가 ‘계엄령 준비 의혹’을 거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국기 문란”이라며 전면 공세를 시작했다.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으로 용산을 긴장시켰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악수하고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이재명 때리기’ 선봉에 서며 대통령실과 보폭을 맞췄다.

하루 만에 공세 전환한 한동훈

한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을 향해 “대통령이 저희 모르게 계엄을 준비한다는 것인가. (그 말이) 맞는다면 심각한 일 아닌가. 근거를 제시해달라. 이 정도 거짓말이면 국기 문란”이라고 맹공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 머리발언에서 이 대표는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고 했지만, 한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반면 대통령실은 여야 대표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상식적이지 않은 거짓 정치 공세”라며 이 대표를 비난했다.

그랬던 한 대표가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추경호 원내대표,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까지 이 대표의 계엄 발언을 줄줄이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 대표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이 ‘윤석열 탄핵소추-군부 친위 계엄 의혹’을 공식화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의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김 후보자가 군내 ‘충암파’ 라인을 통해 계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의가 이어졌다.

앞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교체하고, 대통령은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을 했다. 이런 정권의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것이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설 정보를 입수해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이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계엄 발언 왜 나왔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계엄 발언을 비판하며 “이런 차원에서 제가 면책특권 남용 제한 문제를 법률로써 하자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전날 여야 대표회담에서 “남용되고 있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범위를 (판례가 아닌) 법률로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을 복기해 보면, 이 대표가 계엄을 언급한 맥락은 한 대표의 ‘준비된 발언’에 대한 ‘돌발적 대응’ 성격이 짙다. 한 대표는 미리 써온 머리발언 자료를 보며 국회의원 불체포·면책특권 포기 등을 정치개혁안으로 제안한 뒤 갑자기 이 대표의 재판 불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준비된 도발’인 셈이다.

반면 사전에 준비한 자료 없이 머리발언을 한 이 대표는 “국회의원 특권에 상응하는 대통령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정적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한 대표 도발을 맞받았다. 검찰을 앞세운 차별적 법 적용 논란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특권만 내려놓으면 야당에 대한 선택적 표적 수사와 체포·구속으로 대통령에 대한 국회 견제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며 이 대표는 “종전 만들어진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완벽한 독재 국가 아니냐”고 덧붙였다.

용산은 왜 발끈했을까

이 대표가 말한 “종전 계엄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이다. 지난 2월 검찰은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국민의힘 등 여권에서는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또다시 터무니없는 ‘계엄 준비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작성된 계엄령 검토 문건 내용은 △계엄 선포 △단계별 조치 △계엄 시행 준비 착수일까지 자세히 담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등을 진압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는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담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 일부 내용.

· 현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의결 정족수 충족, 계엄 해제 가능.

- 국회의원 총 299명 중 진보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성향 의원 130여명

·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 계엄사령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등 엄중처리 관련 경고문 발표

- 합수단,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점거 후 사법처리

 

군이 치안유지 등을 담당하는 계엄은 중대한 기본권 침해를 수반한다. 따라서 헌법과 법률 등으로 선포 요건과 절차, 해제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는 야당 국회의원을 각종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해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도록 막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2017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2023년 3월, 조 전 사령관은 5년여 만에 갑자기 귀국했다. 야권은 귀국 배경을 두고 정권교체 뒤 사법처리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기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2월 조 전 사령관의 내란예비·음모 등은 무혐의 처분하고 직권남용 혐의만 기소했다.

두 차례의 경비계엄, 모두 비상계엄으로 이어져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군이 치안을 맡는 ‘경비계엄’ 정도를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계엄법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을 규정하고 있는데, 경비계엄은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돼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9일간, 10·26 사건 이튿날인 1979년 10월27일부터 1981년 1월24일까지 439일간 전국(제주 제외)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게 마지막이었다. 경비계엄은 1960년 4·19혁명 때와 1961년 5·16 군사반란 때 선포됐는데, 두 차례 모두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즉 경비계엄만 독자적으로 발동된 경우는 없는 셈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청와대와 달리 사방이 트여있어 경찰력만으로는 대규모 시위·소요 등을 막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군이 내부적으로 경비계엄 수준의 계엄 계획을 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인 셈이다. 경비계엄이 비상계엄으로 확대되면 치안 외에도 행정·사법 전 영역을 군이 관장하게 된다. 2017년 기무사가 작성했던 계엄령 검토 문건 역시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순으로 격상한다.

지난달 윤 대통령은 국방·안보라인을 전격 교체했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보수언론에서도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인사였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때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는 해체 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 김남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