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무시 적극 의사,  국회 탄핵소추권 정단,  선거관리 독립성 침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일대에서 연 ‘100만 시민 총집중의 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즉각 파면을 촉구하며 종로3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 선고가 늦어지며 이런저런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헌법학계에서는 최근 헌재가 먼저 내놓은 다른 사건 결정문을 찬찬히 읽어보라고 권한다. 헌법재판관 8명 의중과 이미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① 헌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 의사

 

헌재는 13일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을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기각하며 “일부 직무집행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으나, 법질서를 무시하거나 이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도로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위헌·위법 행위의 고의성이 크지 않은 만큼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탄핵심판에서 ‘적극적 의도’, 즉 고의성에 대한 판단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제시된 판례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주도한 탄핵소추 근거는 대통령 기자회견 발언(여당 지지)과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 입장 발표(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유감 표명)였다.

 

헌재는 ‘법 위반의 중대성 판단’을 하며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 위반 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현행법에 대한 적극적인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소극적·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 위반 행위이다. 물론, 이러한 발언이 결과적으로 현행법에 대한 경시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에 위반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으나, 위의 발언이 행해진 구체적인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다거나 법치국가원리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중대한 위반행위라 할 수 없다.”(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문)

 

헌법연구관을 지낸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재해 감사원장 결정문에 담긴 “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 의도”는 노무현 대통령 결정문의 “헌법질서에 역행하려는 적극적 의사”에 기초해 나온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주의나 과실 등으로 위헌·위법한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무조건 파면 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국회의 위임에 따라 선한 의도로 만든 대통령령이 결과적으로 위헌 판단을 받는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경우에는 고의성이 뚜렷하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평의 중인 재판관들이 ‘적극적 의사’ 파면 기준을 감사원장 탄핵심판 결정에 먼저 포함시킨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위헌·위법 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밀고 나가는 적극적 의사와 고의성이 있어야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데,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 △12·12 대국민 담화 △헌재 탄핵심판 변론 등에서 계엄 선포와 국회·중앙선관위 군병력 투입 등 반복적인 위헌·위법 행위에 본인의 적극적 의사와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이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로 판단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② 국회 탄핵소추권 남용 아니다

 

헌재가 13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기각하자,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야당의 탄핵 남발에 경종을 울렸다”고 주장했다. 헌재 결정문은 그와는 반대였다. 헌재는 “탄핵소추권이 남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필요한 법정 절차가 준수되고 피소추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 행위가 일정한 수준 이상 소명되었다. 이 사건 탄핵소추 주요 목적은 헌법 위반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동종의 위반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설령 부수적으로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탄핵소추권이 남용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 기각 결정문)

 

야당이 주도한 탄핵소추가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주장처럼 아무 근거 없는 정치 공세가 아니며, 일부 그런 성격이 있더라도 위법을 의심할 만한 행위가 있었고 필요한 국회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탄핵 남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헌재 판단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직접 연결돼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의회독재를 하는 거대야당의 줄탄핵’을 12·3 비상계엄 선포 주요 근거로 든다. 특히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서 검사 탄핵소추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야당이 탄핵을 남발해 국정 마비·국가 위기상황을 초래했고, 이를 계엄으로 바로잡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헌재 변론에서도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헌재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이창수 결정문에 담긴 셈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 농성장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도보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③ 선거관리에 대통령 영향력 차단은 헌법적 결단

 

헌재는 지난달 27일 감사원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무감찰은 선관위 독립성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중앙선관위에 대한 대통령 또는 행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결단이라고 판단했다. “독립적‧중립적 선거관리라는 헌법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권력기관, 특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중앙선관위 장악을 지시했다. 국군정보사령부 산하 특수부대인 에이치아이디(HID) 요원 등이 투입됐고, 현직 대법관인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에 대한 체포 계획까지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헌재에서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중앙선관위에 병력을 보냈다”고 발뺌했는데, 이런 주장조차도 헌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헌 행위라는 것이 헌재의 중앙선관위 권한침해 결정문에 반영된 셈이다.  < 김남일 기자 >

 

전원일치 여부 몇 초면 알 수 있다…윤 탄핵 심판 선고 ‘관전법’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담장에 철조망이 설치돼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지난달 25일 변론이 종결된 뒤 3주째 선고가 나오지 않고 심리가 길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선고 결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일 당일의 헌법재판소 심판정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헌재는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까. 두 전직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통해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일 감상법을 정리했다.

 

이전처럼 생중계? 현장에서 결과 듣는 윤석열?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는 당일 생중계로 방송됐다. 헌법재판소 심판 규칙은 ‘재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선고를 방송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생중계 여부는 재판관 평의를 통해 결정되고, 선고기일과 함께 공지됐다. 두 전직 대통령 탄핵 선고를 생중계하기로 한 결정에는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의미가 고려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선고일인 지난 2017년 3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재판관이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제이티비시(JTBC)화면갈무리

 

이런 이유로 윤 대통령 선고도 생중계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민 여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태라 헌재가 생중계를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선고기일을 먼저 정한 뒤, 생중계 여부를 재판부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고 때는 변론기일과 달리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다. 두 전직 대통령도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변론기일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변론에 참여했고, 지난 7일에는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됐다. 선고기일에도 헌재에 출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회 소추인단과 대리인단도 선고 당일 심판정에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원일치 의견이면 ‘선고요지’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선고요지와 주문 낭독에 21분39초가 걸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25분36초에 걸쳐 결정문을 낭독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때는 낭독에 걸리는 시간도 재판관들이 논의를 해서 정했다고 한다. 당시엔 선고 당일 헌법연구관들이 새벽 3시까지 남아 선고 요지를 다듬고, 낭독에 걸리는 시간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 비슷하게 20~30분간 선고를 진행하기로 재판관들이 정했기 때문에 이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문장을 밤새 정리한 것이다.

                         2004년 5월14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번에는 선고의 순서도 주목해볼 만하다. 재판부가 선고를 하는 방식은 주문을 읽은 뒤 그 이유가 담긴 선고요지를 읽거나, 선고요지를 먼저 읽고 주문을 마지막에 읽는 방식 두가지다. 주문을 먼저 읽을지, 나중에 읽을지는 재판부 재량이긴 하지만, 대체로 반대·별개의견이 있을 때는 주문을 먼저 읽는다고 한다. 이때는 재판장이 주문을 먼저 읽고, 다수의견을 쓴 주심 재판관이 다수의견을 읽은 뒤, 소수의견을 쓴 재판관이 그 의견을 읽는 순서다.

 

전원일치 의견일 경우에는 재판장이 선고요지를 먼저 읽고 주문을 마지막에 읽는다. 만약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일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요지를 먼저 읽으면 윤 대통령 파면 여부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됐음을 미리 알 수 있는 셈이다.

 

두 전직 대통령 사건은 모두 선고요지를 밝히고 주문을 맨마지막에 읽었다. 박 전 대통령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이 인용됐고, 노 전 대통령 때는 당시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밝히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전원일치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부터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진행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문 읽을 때부터 효력…효력은 전원일치 아닐 때가 더 빨라

 

탄핵에 이르게 된 경위부터 판단 이유까지 적는 결정문은 두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의 분량이 거의 비슷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1쪽, 박근혜 전 대통령은 70쪽 분량이었다.

 

결정문에는 재판장이 주문을 읽는 시각도 정확하게 표기된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부터 이런 방침을 유지해왔는데, 박 전 대통령 결정문을 보면 결정문 초반부에 ‘선고일시 2017. 03. 10. 11:21’이라고 분 단위까지 적혔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기 시작한 시각이다.

 

탄핵 사건은 주문을 읽기 시작한 시점부터 기각이든 인용이든 즉시 효력이 생긴다. 선고 즉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각을 적어놓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결정문에 시각까지 적혀 있는지 확인한 뒤 전자결재로 결정문에 서명한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윤 대통령은 곧바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다. 반대로 기각·각하 결정이 나오면 직무정지 상태가 해제돼 즉시 대통령직에 복귀한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이 아니면 주문을 먼저 읽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은 더 빨리 효력을 얻게 된다. 또 결정문에는 반대의견(소수의견)도 적힌다.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반대의견이 적힌 적은 없었다. 탄핵이 기각됐던 노 전 대통령 때는 헌재법상 소수의견 적시가 불가능했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전원일치 인용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 사건에서 전원일치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 사건 결정문에 헌정사상 최초로 소수의견이 적히게 된다.  < 한겨레 오연서 기자 >

 

결정문 초안 작성해 평의를 거치면서 수정 작업 진행관측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울타리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이번 주 선고를 목표로 막바지 평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주 후반인 오는 20일이나 21일 선고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헌재는 17일에도 재판관 평의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뒤 수차례 평의가 순조롭게 진행됐고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논점을 정리하는 작업에 상당 부분 진척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돌발변수가 없다면 이번주 후반에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앞서 10여명의 헌법연구관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는 인용·기각의 결정문 초안을 작성했고 평의를 거치면서 수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의가 끝나면 재판관들이 각자 의견을 밝히는 평결을 하고, 평결 결과가 나오면 헌재는 선고기일을 지정해 국회와 윤 대통령 쪽에 통지한다. 이어 최종 결정문을 쓰는데, 이 과정에서 반대의견 등의 소수의견이 있으면 해당 재판관이 직접 쓰게 된다. 결정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재판관들은 문구 조정 등 세밀한 결정을 위한 평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뒤 4주째로 접어들고 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은 변론 종결로부터 14일 만에 결과가 나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11일 만에 파면 결정이 나왔다. 탄핵소추안 통과부터 최종 선고까지도 노 전 대통령은 63일, 박 전 대통령은 91일이 걸렸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은 16일로 93일째를 맞이하면서 역대 대통령 탄핵 재판 중 최장 심리를 기록하게 됐다.

 

법조계에선 결정의 정당성 측면에서도 헌재가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석열 지지자들의 분위기가 과열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헌재가 충분한 평의를 거친 것으로 보고, 이제 졸속 판결이라고 비난할 여지는 없어진 상황”이라며 “앞선 대통령 탄핵심판 선례와 같이 금요일 등 주 후반부에 선고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 한겨레  김지은  오연서 기자 >

김성훈, 대기발령 이어 징계위 회부 전횡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이 지난 1월19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군 골프장 이용 당시 경호 활동에 대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법원이 발부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무력으로 저지하라는 지시에 반대했던 대통령경호처 간부의 해임이 경호처 징계위에서 의결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지시한 김성훈 경호처 차장의 구속영장이 검찰에서 기각되고 김 차장의 경호처 장악이 유지되면서 ‘불법적인 윤 대통령 옹위’에 저항했던 경호처 간부에 대한 보복인사가 현실이 된 것이다.

 

경호처는 지난 13일 징계위를 열어 경호처 간부 ㄱ씨에 대한 해임 징계를 결정했다. 해임은 최고 수위 징계인 파면 아래 단계로 공무원을 강제로 퇴직시키는 중징계 처분이다. 앞서 김 차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 전인 지난 1월12일 간부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또 다시 물리력을 동원해 막으라고 지시했다. ㄱ씨는 회의에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 집행을 막는 것은 위법 소지가 크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또 회의에서 김 차장의 책임론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차장은 그 자리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에 비밀을 유출했다’며 ㄱ씨를 대기발령 조처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ㄱ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ㄱ씨는 ‘1차 체포영장 집행 불발 이후 경찰과 경호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일 뿐’이라고 소명했지만 해임 의결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에 대해 경호처 쪽은 “관련 절차가 진행 중으로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세부 내용은 보안사항”이라고 밝혔다. < 배지현  정환봉 기자 >

 

“김성훈 경호처 차장, ‘알박기 인사’하려 근무평정 조작 지시”

민주 윤건영 의원, 제보 공개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에 출석하고 있다. 김 차장은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도를 저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이 자기쪽 사람을 경호처 요직에 끼워넣기 위해 근무평정을 조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제보가 공개됐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김성훈 차장이 자기 사람을 ‘알박기’하기 위해서 인사를 빨리하자고 닦달을 하고 있다고 한다”며 “김성훈 라인을 요직에 앉히려는 건데, 문제는 이들을 승진시키기 위해 근무평정을 조작하라는 지시를 실무자들한테 내렸다고 한다(는 제보를 접수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자기가 잡혀간 이후를 대비해서 그런 것”이라며 “자기 사람들을 요직에 심어놔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윤 의원은 김 차장이 ‘근무평정 수정’을 요청한 ‘김성훈 라인’ 서너명의 명단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근무평정 수정 대상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있다. 저한테도 그 명단이 들어왔다”며 “서너 명이던데 (근무평정 조작으로 승진이 이뤄진다면) 본부장, 처장 이렇게 (요직으로 승진해서) 갈 것”이라고 했다.

 

윤 의원은 “실무진은 일단 부당한 지시이기 때문에 일단 이행을 안 하고 있다”고 전했지만, 김 차장의 구속영장이 세 차례나 기각되면서 경호처 직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비화폰 데이터 서버를 삭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무진들한테 (근무평정 조작을) 이야기를 했더니 실무진들이 ‘이거 못한다. 이건 범죄다’라고 지금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가 저한테 들어왔다”면서도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김성훈 차장은 언터처블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아버렸다. 급격하게 얼어붙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 고한솔 기자 >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 앞…경찰, 김성훈 영장 재신청 시기 ‘저울질’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과 심우정 검찰총장의 석방 지휘로 지난 8일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풀려날 때 윤 대통령을 수행하는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의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김 차장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 결정 이후의 풍경이었다. 경찰은 윤 대통령 탄핵 선고 일정 등 모든 변수를 고려해 김 차장의 네번째 구속영장을 곧 신청할 계획이다.

 

지난 6일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에서 김 차장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뒤 열흘이 흐른 16일까지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은 김 차장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서울서부지검의 ‘김성훈 봐주기’ 논란이 커진 상황에서 검찰 외부위원들이 경찰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경찰 특수단이 빠르게 구속영장 재신청에 나설 것이라던 기존 전망과 다른 모습이다.

 

김 차장 구속영장 신청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윤 대통령 석방이 꼽힌다. 김 차장이 윤 대통령 경호 필요성을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주장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현재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며 24시간 경호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파면을 결정한다면 경호 변수는 해소될 수 있다. 다만 경찰 특수단은 윤 대통령 탄핵 결과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에, 선고일이 이번주 후반 이후로 넘어갈 경우에 대비해 김 차장 구속영장 신청을 서두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제로 경찰의 구속영장 작성은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심의위 결정에 강제성이 없는 만큼, 검찰이 거듭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경찰은 김 차장 구속영장 신청 서류를 보완하고 있다. 구속영장에는 김 차장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특수공무집행방해)하고 비화폰 데이터 삭제를 지시(대통령경호법의 직권남용)했을 뿐 아니라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한 경호처 간부를 해임하는 등의 보복 정황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경찰 특수단 관계자는 “그동안 사정 변경이 조금 생겨 구속영장 신청 서류를 보완하는 중”이라며 “구속영장 신청 서류에 완결성을 기하고 있다. 신중하게 준비하며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도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겨레 이지혜 기자 >

"한국이 불쾌해 할 거라는 것과 결국 공론화될 거라는 것을 알고도 조치"

 

 
 
미국 워싱턴 디시(D.C.)에 위치한 에너지부 본부. 지난달 18일 촬영했다. 워싱턴/UPI 연합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월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올린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확장억제를 위한 협력을 다지는 등 한미 간 신뢰가 업그레이드됐던 시기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핵무장론과 계엄 선포’를 이 결정의 배경으로 꼽으면서 ‘한국에 모욕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 군사 전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15일(현지시각)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핵무장론’을 꼽았다. 베넷 연구원은 “이 조치는 정보 공유 ‘금지’가 아니라 정보 공유 전 ‘검토’ 단계를 추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윤 대통령은 ‘한국의 핵 기술을 고려할 때 1년 정도 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토’ 절차를 추가해 ‘핵무장을 용이하게 만드는 논의를 피하자’는 의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베넷 연구원은 “미국이 한국을 특정한 정보의 이전을 금하는 다른 리스트에 올릴 수도 있었지만 단순히 검토 리스트에 올렸다. 양국간 협력에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엔 모욕적인 조치이며 이 리스트에서 빠지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이 알게 되면 상당히 불쾌해할 거라는 것과 결국 공론화될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왜 이런 조치를 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트로이 스탕가론 윌슨센터 한국역사 및 공공정책센터 센터장도 이날 한겨레와 서면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핵협의그룹 설립을 추진했고, 소형 모듈 원자로 개발에 관해서도 협력했다. 한국전력공사와 웨스팅하우스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라며 “당황스러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결정 배경에 대해선 “한국 정치인들이 지속해서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거로 보인다”라며 “이 조치를 통해 미국은 한국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반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말에 이런 조치가 이뤄진 것에 대해 트로이 센터장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그가 이전에 핵무장 옵션을 지지했었다는 점, 정치적 불안정성 등이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넷 연구원은 “(한국 핵무장에 대한) 우려는 이전부터 있었는데 왜 행정부 말까지 기다렸다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상하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관여된 것인지, 누가 이 결정을 내렸는지도 불분명하다. 에너지부의 누군가가 신중을 기하려다 보니 (늦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약간의 장애물을 놓으려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명단에서 삭제할 가능성에 대해 베넷 연구원은 “핵협의그룹(NCG)을 예로 들어보면, 차관보 직무대행 또는 부차관보 정도가 다뤘다. 아직 그 정도 급의 인사들이 임명되지 않았다”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다뤄야 할 중요 업무가 너무 많기 때문에 다음 달 15일에 그냥 발효되게 둔다 해도 큰 의미를 갖는 행위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미 민감국가’ 지정에 야권 “한미동맹 균열 우려…윤 즉각 파면해야”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인근에서 열린 ‘야5당 공동 비상시국 대응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앞줄 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은 15일 미국이 지난 1월 원자력,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도 있는 ‘민감 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추가한 것과 관련,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통한 국가 정상화와 한미동맹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회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고 수준의 한미동맹이라더니, 민감 국가 지정인가. 내란도 모자라 한미동맹도 흔드는 위험한 정권을 하루빨리 파면해 끝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안보의 큰 기둥인 한미동맹에 실금이 가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민감 국가 지정 이유가 윤석열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자체 핵무장, 핵잠재력 확보 발언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을 정상화해 국가 안보를 다시 챙기는 일은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직 무게를 망각하고 미국에 가서 ‘자체 핵무장 능력’ 운운한 아둔한 자의 신속한 파면에서 시작된다”며 “헌법재판소는 이 점을 깊이 고려해 신속한 심판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도 이날 광화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되는 동안 대체 정부는 무엇을 했나. 정보당국과 외교부가 제 역할을 못한 것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행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총력을 기울여 민감 국가 지정 철회를 얻어내야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도 힘을 보탤 것”이라며 “이 모든 혼란의 원흉인 윤석열을 즉각 탄핵해 대한민국을 정상 국가로 되돌려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에너지부는 14일(현지시각) 연합뉴스의 확인 요청에 “에너지부는 광범위한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을 유지하고 있으며, 2025년 1월 초 한국을 에스씨엘 내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 국가’ 명단에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최종훈 기자 >

 

미, 한국 ‘민감국가’ 지정 공식 확인…후폭풍 밀려온다

 

 
 
                     미국 원자력과 핵무기, 핵물질 등을 담당하는 에너지부 청사. 워싱턴/UPI 연합

 

미국이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국가’ 명단에 동맹국인 한국을 추가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정치·외교, 기술 협력 등에서 상당한 후폭풍이 우려된다.

 

미국 에너지부는 14일(현지시각) 연합뉴스의 확인 요청에 “에너지부는 광범위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전 정부(바이든 행정부)가 2025년 1월 초 한국을 에스씨엘 내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는 정보방첩국이라는 정보기구가 별도로 있는데 정부 내 17개 정보기관, 국가핵안보청(NNSA)과 협업해 민감국가를 지정하고 관리한다. 민감국가는 단계에 따라 ‘기타 지정국가’ ‘위험국가(중국·러시아 등)’ ‘테러지원 국가’(북한, 시리아, 이란 등)로 구분된다. 민감국가 명단은 정식으로 공개되지는 않고 매년 수정되는데,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왜? 한국 핵무장론이 도화선

 

미국 에너지부는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어떤 이유로 한국을 리스트에 추가했는지는 이번에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핵무장론에 대한 미국의 경계감이 이유라고 지적한다.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이후 미국 정부에서는 한국 핵무장론을 계속 주시해왔다.

게다가 2024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것’이라며 보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핵무장론, 핵자강론 목소리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핵무장 여론을 고조시키고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불확실하다고 판단한 에너지부 산하 정보기구의 판단,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실망감과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은 “지금 국제적으로 한국은 핵확산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로 지목되고 있고, 그런 상황을 고려해 에너지부 산하 정보기구를 비롯한 여러 기구들이 핵확산 우려 때문에 한국을 리스트에 추가했을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미국 행정부와 다른 점이 있더라도 핵확산을 허용할 것이라는 한국 일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지정 조치를 취했다면 그것은 한국의 핵무기 능력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도 “이번에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는 한국에서 확산되는 핵무장론에 대한 미국 당국의 경고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핵무장론을 정조준했다기보다는 한국 원전 수출을 둘러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식으로도 설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부의 정보기구의 결정에 기업의 이해관계가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되돌릴 수 있나, 기술 협력에 어떤 영향 미칠까?

 

일정대로 오는 4월15일부터 한국을 ‘민감국가’로 추가한 명단이 시행되면 한미간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에 제한이 생기고, 한미 동맹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부 대변인은 이번 답변에서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정국 가운데는 에너지, 과학, 기술, 테러방지, 비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들도 포함돼 있다”며 한국의 우려를 달래려 했다.

하지만 에너지부 규정에 따르면 민감국가 연구자들은 에너지부 소속 연구소 등 시설이나 프로그램, 정보에 접근하려면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하고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되어 있다. 내부 검토를 거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한국과 미국의 과학기술 협력이 제한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명단은 미국이 ‘한국의 핵확산 우려가 있다’는 분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약한 단계의 제약이 시작된 것도 심각한 문제다. 동맹을 명단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는 큰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짚었다. 위 의원은 “미국 당국자들에 확인해 보니, 이 민감국가 명단은 미국 정보당국이 수개월 동안 검토해서 취한 조치이고 되돌리기 어렵다고 한다”며 “에너지부가 ‘낮은 단계이고 문제가 크지 않다’고 강조하면서도 이에 대한 협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명단에서 한국을 빼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의원은 1년에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 방문하는 한국 과학자가 2천~3천명 정도인데, 4월15일 이후에는 일일히 사전에 서류를 제출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게 되고, 승인이 거부될 수 있으며, 최첨단 기술이나 민감 기술에 대해서는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미 명단은 연구 현장에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연구소의 한 연구자는 “4월15일에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명단이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현재 확정된 상태이고, 국립연구소들 외에 협업하는 대학 연구자들에게도 이미 공유되었다”며 “여름에 한국을 방문해야 할 연구자의 방문 절차가 까다로워져서 그에 따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뒤늦게 파악, 한미동맹 영향은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명단이 다음달 15일부터 그대로 시행되면 한미간 원자력·첨단기술 협력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동맹의 신뢰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등급에서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에너지부 ‘민감국가’ 명단에 테러지원국이자 불법 핵무기 개발 국가인 북한과 한국이 유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핵보유국)로 반복적으로 지칭하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과의 원자력 협력을 제약하는 모습이 연출될 경우 안보적 차원에서도 북한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정부가 두 달 가까이 관련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1월 초 바이든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했는데도 정부는 최근까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답변에서 최근에 비공식 경로로 관련 동향을 알게 됐으며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한 뒤 에너지부가 내부에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소통이 없었고, 정부도 자체적으로 이런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 장관이 국회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은 어떤 요인 때문에 생기는 일회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말했는데, 상황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4월15일까지 명단을 되돌릴 수 있다고 강조해온 만큼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외교 역량을 발휘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한겨레 박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