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재난피해자 연대’ 방안 논의 합의
사고 수습·진상 조사·피해 구제 등 ‘실질적 권리 보장 법제화’ 추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프랑스의 재난 피해자들과 손잡고 세계의 대형참사 피해자들이 연대하는 국제회의를 이르면 오는 10월 서울에서 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성사될 경우 세계 최초의 재난피해자 연대 모임이 꾸려질 전망이다.

지난 3일부터 유럽 순회 방문에 나선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독일·바티칸·벨기에·영국에 이어 14일(현지시각) 마지막 방문지인 프랑스 파리의 테러참사피해단체연합(FENVAC:이하 펜박) 사무실에서 프랑스 참사 피해단체들과 만나 아픔을 나누고 공동대응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재난 피해자들의 국제적 연대 방안을 논의하고 향후 세 가지의 구체적인 목표에 합의했다. 첫째, 유엔산하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항공기 운항의 안전 규정을 만들고 각국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처럼 선박 운항 분야에도 비슷한 기능의 국제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둘째는 세계의 모든 재난과 테러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사고 수습과 진상 조사, 피해 구제 등의 과정에서 실질적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각국이 그에 걸맞은 법제를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두 나라 참석자들은 이를 논의하기 위해 올해 10월 서울에서 세계 대형참사 피해단체들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를 열자는 데에도 뜻을 같이 했다. 서울 개최 방안은 4·16가족협의회가 먼저 제안했고, 스테판 지쿠엘 펜박 사무총장은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4·16가족협의회 쪽은 이번 유럽 방문에서 만났던 에스토니아호 참사 피해단체와 영국 힐즈버러 참사 피해자단체, 그리고 그동안 유대를 맺어왔던 일본 후쿠시마 피해단체가 이런 연대회의에 함께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의 피해가족들로 구성된 ‘11·13 박애와 진실’, 펜박, 그리고 ‘재난긴급구조’(SOS Catastrophes) 등 프랑스 재해 피해자 단체들은 세월호 가족들과 만나기 2주 전부터 이번 뜻깊은 만남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를 논의해왔다고 밝혔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이번 유럽 방문에서 앞으로 10년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며 “파리에서의 일정은 앞서 독일, 바티칸, 벨기에, 영국 방문에서 쌓아온 성과들을 한데 엮어내는 화룡점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 안산의 4·16가족협의회 집행부 관계자는 16일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귀국한 뒤 17일 집행부 회의에서 더 구체적인 논의를 할 예정”이라며 “얼마 전 그런 얘기가 나와 공감대를 갖고 논의한 적은 있으나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프랑스 테러참사피해단체연합(펜박)과 파리 테러 피해자 가족 협회인 ‘박애와 진실’의 집행부 임원들의 기념사진. (사진 정유진)


한편, 펜박이 참사 피해자 국제 공조와 연대에 적극적인 것은 펜박 자체가 연대의 힘을 입증하는 구체적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1994년 열차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는 각각의 대형사고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외롭게 각자의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연대의 필요성을 느꼈고, 당시 8개 대형참사 피해단체들을 모은 전국참사피해단체 연합을 만들었다.

이듬해, 그들은 의회를 압박해 공공장소나 대중교통 수단 내에서 발생한 집단사고 희생자 협회가 직접 수사와 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냈다. 2002년에는 주거공간이나 직업공간에서의 대형참사 피해단체에도 이 권리를 확대 적용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피해자 가족들이 협회를 만들고, 최근 테러 피해자단체 역시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되도록 지원해준 단체 역시 펜박이었다. 11월 테러 피해 가족단체 ‘박애와 진실’은 현재 70개에 이르는 펜박의 회원 단체이기도 하다.

세월호 가족 대표들은 앞서 13일에는 소르본 대학에서 영화 <나쁜 나라> 상영과 유족 강연회를 열었다. 행사장은 좌석이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50여명이 밖에서 기다렸을 만큼 성황이었다. 유족 대표단은 세월호 유족들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자신들의 활동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한 프랑스 시민은 자신이 만일 한국의 청년이었다면 기성세대에 커다란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며, 이 사건이 한국의 젊은층에 가져온 변화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지난 4·13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이 급등한 것이 (가족 활동의) 구체적 결실이며 여소야대라는 정치지형 변동의 실질적인 동력이었다고 답했다.

앞서 오전에 세월호 가족과 펜박이 합의한 성과를 전하자 장내에는 우렁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리를 가득 메운 한국인과 프랑스인들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잇따라 부르며 서로를 다독였다.
<목수정/재불 작가>



서거 7주기 맞아 한달간 주말에 일반 공개… 손녀 낙서도 그대로

“중국 진시황이 살던 아방궁처럼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더니, 어디를 아방궁이라 하는지 모르겠네요. 실제 둘러보니 소박한 모습까지도 생전에 노 대통령을 그대로 빼닮았는뎄E 빼닮았는데….”

1일 오전 11시 부인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특별관람한 신양식(49·경남 창원시)씨는 이렇게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집을 지어, 퇴임 직후인 2008년 2월25일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9년 5월23일까지 살았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5월23일)를 맞아, 5월 한달 동안 토·일요일마다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다.

노 전 대통령 사저는 “지붕 때문에 뒷산 풍광이 가려서는 안된다”는 그의 뜻에 따라 나즈막하게 지어졌다. 대문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는 중문을 지나면 가로·세로 7m의 사각형 마당과 마주친다. 마당 건너편은 서재, 오른쪽은 거실·침실·식당·사랑채 등 개인공간, 왼쪽은 경호시설이 배치돼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 집에 혼자 살던 부인 권양숙씨가 지난해 11월 인근에 집을 지어 거처를 옮기면서, 경호시설은 비어있다. 마당 둘레에는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회랑처럼 지붕 덮힌 복도가 있다.

서재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읽던 책 1000여권이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다. 식당엔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식사했던 4인용 식탁이 놓여있다. 거실 책상엔 컴퓨터가 놓여있는데,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5월23일 새벽 5시20분께부터 5시40분께까지 이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사저 내 사랑채를 둘러보고 있다.


사랑채에선 네쪽의 넓은 창문을 통해 인근 봉화산을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창문 너머 경치를 “마치 병풍 그림을 보는 것 같다”며 즐겼다고 한다. 벽에는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글 ‘사람사는 세상’이 액자에 걸려 있는데, 액자 아래 벽면에는 연필 낙서가 남아있다. 한유진 노무현재단 기획관리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손자가 낙서한 것인데, 그는 손님들에게 ‘우리 손녀가 그린 거예요’라며 자랑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건물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뜰에는 경복궁 정원을 본뜬 계단식 정원이 있다. 많은 나무가 있지만, 기념식수는 2008년 11월16일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가 기증한 산딸나무 1그루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서재를 둘러보고 있다.


사저를 지을 당시 보수언론들은 집이 크고 화려하다며 비판을 쏟아냈고, 일부 정치인들도 ‘아방궁’이라며 가세했다. 이날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둘러본 시민들은 그런 주장을 했던 언론과 정치인들을 오히려 비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온 김시은(62)씨는 “아방궁이 아니라 그저 일반주택일 뿐이었다. 재벌들 주택보다도 훨씬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경남 김해시 장유동에서 온 설상근(54)씨도 “언론에서 아방궁이라고 하도 떠들어서 집이 무척 크고 화려할줄 알았는데, 한마디로 소박했다. 사랑채에 손녀의 낙서를 지우고 않고 놔둔 것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은 23일 오후 2시 사저 인근 묘역에서 열린다. 이와 별도로 5월 한달 동안 봉하마을에서는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란 주제로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노무현재단은 5월21·22·28·29일 노 전 대통령 사저 특별관람 신청을 오는 9일 오전 10시 재단 누리집(knowhow.or.kr)을 통해 받는다. 5월15일까지는 이미 신청마감됐다.

오상호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은 “특별관람 기간에 발견되는 문제점을 보완해 노 전 대통령 사저를 가능한 빨리 일반에 완전히 공개할 계획인데, 공개시점은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14일 오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 참배단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광주·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이개호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 당선자가 홀로 묵념하고 있다.


“선거철만 호남, 호남…이곳이 야당표의 화수분인가요?”


“아이고, 말할 것도 없이 심판한 것이지요.”

14일 오후 2시께 광주시 서구 치평동 무각사 인근 주차장에서 승용차 문을 열고 있던 정성철(45·회사원)씨에게 “총선 결과를 본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정씨는 “(수도권에선)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했고, 우리는 더민주를 심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 과거와 달리 더불어민주당을 응징하려고 한 것일까? “선거 때마다 밀어줬는데, 해준 것이 뭐 있어요? 뭔 말을 하더라도 선거철만 호남, 호남했잖아요. ”


많은 시민들은 광주에서 더민주의 참패를 “예고된 결과”로 받아들였다. 광산구 수완동에 사는 김수지(46·공인중개사)씨는 “여기가 (더민주의) 표가 솟아나오는 화수분인가요? 김종인 셀프공천을 보고 ‘아, 더 이상 기대할 것 없구나’ 했지요. 문재인은 ‘커버력’(정치력)이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지지격차가 벌어졌던 더민주가 호남 공천을 둘러싼 불협화음을 내자 유권자들이 조금 열었던 마음을 완전히 닫았다는 분석이 많다. 무각사 숲길에서 만난 김선미(45·보험회사)씨도 “더민주가 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총선 전 “광주가 국민의당을 지지하면 ‘호남 자민련’이 될 것”이라는 경고에 내심 찜찜해하던 시민들은 총선 결과에 대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으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한 것이 가장 시원하고, 그 다음으로 더민주 혼낸 것이 후련하지요.” 광주 남구 양림동에 사는 박상현(52·자영업)씨는 “하지만 국민의당 광주 후보 면면이 이뻐서 찍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기사에 꼭 써 달라”고 말했다. 이상갑(49·변호사)씨는 “이번 총선은 기성정치를 심판한 것에선 일관성이 있다. 수도권에선 그 대상이 새누리당이었고, 호남에선 더민주였다. 광주에선 더민주 지도부가 당을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한 무능을 국민의당 현역의원 심판보다 더 우선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혼낸 것 마음 후련”

“국민의당 예뻐 찍은 거 아냐”

일부 “이렇게 표 쏠릴지 몰랐다”

문재인 거취엔 ‘관망’ 많아


그러나 일각에선 호남의 ‘나 홀로 선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아침 광주 동구에서 만난 정아무개(52)씨는 “나는 소신껏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한 쪽으로 쏠리니까, 조금 머쓱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광주지역 한 시민단체 운영회의에서 만난 노경수(54) 광주대 교수(부동산건축학과)는 “광주가 더민주에 대해 칼을 살짝 보여주기만 해야 하는데, 칼을 다 빼 들어 버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이제 광주에 빚진 느낌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 교수의 말을 듣던 최민석(54) 신부는 “더민주에 대해 영금(따끔한 곤욕)을 보인 것은 좋은데, 가치를 보고 투표해온 광주가 이젠 정치1번지라고 말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 싹쓸이를 곧바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에 대한 지지로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광주시 공무원 송아무개(56)씨는 “지역구는 국민의당을 찍고, 정당투표는 더민주에 줬다”고 했다. 김원영(54)씨는 “더민주의 무능과 선거전략이 주요 원인이다. 안철수가 좋아서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당장 두 당이 기계적으로 통합하는 것보다 서로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다. 앞으로 정치적 쟁점을 대하는 입장 한 두 가지만 보면 다시 여론은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던 문재인 전 대표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흐림’이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40대 남성은 “문재인이 크게 거시기(던져) 해부러야지. 약속했응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더라도…”라고 말했다. 무각사 앞 벤치에 앉아 있던 허아무개(75)씨는 “호남에선 패했는디, 딴디(수도권)서 승리한 것을 빙자해 나올 것 같던디…”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각국 정상, 국제기구 대표들이 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핵안보정상회의 본회의를 마친 뒤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 단체사진 해프닝
박 대통령 세면장 간 사이에 ‘찰칵’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 4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52개국 정상 및 4개 국제기구 대표가 함께하는 단체 사진촬영에 참석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휴식시간에 세면장에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진촬영이 진행된 탓이다.

단체 촬영은 핵안보정상회의 본회의 직후에 본회의장 옆 행사장에서 이뤄졌다. 애초 일정은 본회의(오전 11시~오후 12시45분) 뒤 15분간 정상들이 휴식시간을 갖고, 이어 오후 1시부터 단체촬영을 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본회의가 예정보다 늦게 끝나고 휴식시간마저 줄어들어, 사실상 본회의 직후 곧바로 사진촬영이 진행됐다. 박 대통령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세면장에 들른 사이, 단체 사진촬영이 진행된 것이다.


이날 박 대통령과 함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단체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불참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박 대통령은 단체촬영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와 기념 촬영을 했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이번이 마지막이어서, 핵안보정상회의 주최국인 미국(1, 4회), 한국(2회), 네덜란드(3회) 정상이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최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