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체포 전후해 대통령경호처를 강하게 압박한 사실 드러나

 
지난해 6월15일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에 앞서 출국 전 인사 중인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전후해 대통령경호처를 강하게 압박한 사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비판과 반발이 거세다.

 

서울서부지검에 제출된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의 구속영장 신청서에 담긴, 김 차장이 김 여사와 나눈 메시지가 지난 20일 보도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들이 나눈 대화로 추정되는 텔레그램 대화 갈무리에는 김 여사가 “브이(V·윤석열 대통령)가 염려한다” “특검법 때문에 영장 집행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김 차장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압수영장이니 체포영장이니 다 막겠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지난해 12월9일 더불어민주당 등이 국회에서 발의한 ‘내란 특검법’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압수수색이 들어올 것을 염려해 나눈 대화로 보인다. 이 메시지는 김 차장이 경호처 공식 지휘 체계에 없는 김 여사의 지시를 사실상 받으면서 영장 집행을 막으려 했다는 증거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각종 커뮤니티에 관련 글을 올리며 반발하고 있다. 보배드림 등에서 누리꾼들은 “모든 사건은 결국 김건희” “경호처가 근데 윤석열 김건희 사병이야? 몸종이냐 뭐냐” “경호를 하라고 했지 사법권까지 무시하란 소린 아닌데?” 등 반응을 보였다.

 

앞서 김 여사가 경호처에 한 발언에 대한 비판도 이틀째 이어졌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이 체포된 뒤 경호처 가족부 직원들에게 “총 가지고 있으면 뭐 하냐. 총 안 쏘고 뭐 했느냐” “이재명도 쏘고 나도 자결하겠다”라며 압박했다고 20일 알려졌다.

 

이에 강유정 민주당 국회의원은 20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발언을 “이재명 쏘고 내가 죽겠다는 미래 시제가 아니라, 왜 지금 당장 이재명 못 쏘냐? 나 죽겠다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김건희는) 권력을 잡으면 자기가 과정과 절차, 법을 활용해서 누군가 하나 죽이는 건 아주 쉬울 거라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20일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케이비시(KBC) ‘여의도초대석’에서 “영부인이 할 얘기냐”며 “왕조 시대 같으면 사약을 받을 일”이라고 비판했고,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긴급 구속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김 차장의 구속영장엔 피의자로 가장 먼저 윤석열의 이름이 올랐고 ‘주요 공범’이란 표현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런 자가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김 차장과 윤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했다.    < 신윤동욱 기자 >

 

계엄은 남편이 했는데…김건희는 왜 이재명을 쏘고 싶다 했나

 
지난해 9월10일 김건희 여사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각각 방문해 현장 근무자를 격려했다. 대통령실 제공

 

‘마음 같아서는 이재명 대표도 쏘고 나도 자결하고 싶은 심정이다.’

김건희 여사는 왜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 대한 분노를 야당 대표에게 쏟아냈을까. 부정선거와 의회독재를 막겠다는 남편의 비상계엄 선포 이유에 동조한 탓일까,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줄곧 자신의 비리 의혹을 들추는 자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일까. 무엇이 됐든 민간인인 대통령 부인이 제1 야당 대표를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여기는 비정상적 상황임은 분명해졌다.

 

1월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윤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된 직후 김 여사는 경호처 가족경호부 경호관들에게 ‘이재명을 죽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20일 “과장됐다”고 했지만, 경찰은 ‘총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건데’ 등 김 여사의 분노에 찬 발언들이 경호처 윗선에 보고된 사실을 확인해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 구속영장 신청서에 추가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경호처에 총기 사용을 지시했다는 간접 증거인 셈이다.

 

정치인이 아닌 김 여사가 남편 체포 직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 명을 구체적으로 찍어 분노를 쏟아낸 것은 여러 해석을 낳는다. 현직 대통령인 남편이 눈 앞에서 체포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 부정 수준을 넘어선 정치적 발언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체포된 일차적 책임은 이 대표의 것이 아니었다. 탄핵소추와 내란죄 수사를 자초한 비상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이 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장기간 모의를 통해 군부를 동원하는 역할은 남편의 충암고 선배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맡았다. 그가 남편의 망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검찰 시절 김 여사와 수백통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 탄핵소추 문턱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비상계엄 선포 진짜 이유라는 의심을 사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떠받든 것은 김 여사 자신이다.

 

그런데 김 여사는 이재명 대표를 극단적 적개심의 표적으로 삼았다. 이유가 뭘까.

 

지난해 7월11일 김건희 여사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의실에서 북한 억류 피해자와 유족, 북한인권 개선 활동 중인 탈북민, 북한 전문가 등을 만나 북한의 인권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① 이번 정권을 ‘나의 정권’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다.

 

‘김건희 V1, 윤석열 V2’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 여사의 국정개입 의혹은 상식선을 뛰어넘는다. 김 여사는 그간 “내가 정권 잡으면”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남북문제에 좀 나설 생각” “선제적으로 대응” 등 언행으로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샀다.

 

명태균 게이트를 통해 집권여당 공천에도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여사가 ‘목숨을 거는’ 대상은 이 대표 말고 또 있다. 조선일보다.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다”라고 말하는 김 여사 육성 녹음이 최근 공개됐다. 명태균씨가 제기한 윤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 관련 통화 녹음을 조선일보가 입수했다는 사실을 알자 ‘목숨 걸고 폐간’을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2인 공동정권 체제에서 남편의 위기는 자신의 위기이고, 남편의 정적은 곧 자신의 정적이 되는 셈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광주방송(KBC) ‘여의도초대석’에 나와 “김건희는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와 모든 국정 파탄에 책임을 지고 이 사회와 격리돼야 된다”고 했다.

 

② 형사처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김 여사는 자신의 허위 이력 논란으로 남편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돋보이고 싶었다”는 굴욕적 사과를 해야 했다. 이후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내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명품백 수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대통령 관저 이전 공사 특혜 △명태균 게이트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등 김 여사가 연루됐거나 연루 의혹이 불거진 사건들로 대통령 부부를 압박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 주도로 ‘김건희 특검법’이 4차례 발의됐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덮기 위해 ‘김건희 리스크’로 맞불을 놓는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3차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차례 거부권을 행사하며 일단 틀어막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 결과에 따라 이런 버팀목이 사라질 수 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이 대표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다. 남편에 이어 자신도 처벌될 수 있다는 두려움, 이를 주도하는 이 대표에 대한 증오가 클 수밖에 없다. 당장 20일 오후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김건희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이날 아침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주가조작 문제부터 논문까지 자기를 향해 계속해서 민주당이 공격했던 것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유로 들었던 줄탄핵·예산삭감 같은 “고차원 판단이 아닌 말초적, 인간적 복수심”이라는 것이다.

 

③ 남편의 12·3 비상계엄 선포 주장에 동조했을 가능성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해 이 대표 체포를 지시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아직은 김 여사가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았거나 모의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나의 정권’이라는 정치적 자의식, 그간 알려진 남편 장악력 등에 비춰볼 때 장기간 이뤄진 비상계엄 모의를 김 여사가 몰랐을 리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여기에 170석 거대 야당의 ‘김건희 특검법’ 압박은, 김 여사에겐 ‘이재명이 이끄는 거대 야당의 의회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대통령 부부를 잘 아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두 사람 관계를 안다면 비상계엄 모의 과정에 김 여사 개입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정치인 수사 경험이 많은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 여사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내란 특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 한겨레 김남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0월9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

 

 

“윤, 비법리적 주장…헌재 만장일치 파면 확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당시 모습을 돌이키며 ‘처음에 드러냈던 자신감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을 보니 현타(현실자각)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21일 말했다. 이 의원은 윤 대통령의 ‘30년 검찰 동기’다.

 

이 의원은 이날 와이티엔(YTN)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에 출연해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기일이 11번 열렸는데 모두 참석해서 현장을 다 지켜봤다”며 “갈 때마다 눈도 마주치고 피소추인으로서 윤 대통령이 답하는 것도 봤는데, ‘어떻게 검찰 출신으로 이렇게 비법리적인 주장을 할까’,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 구성된 윤 대통령 탄핵소추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의원은 “윤 대통령과 저와 30년 동기로서 30년간 같이 검찰에서 근무했지 않느냐 “며 “무엇보다도 처음에 자신감을 보이다가 갈수록 이렇게 얼굴에 약간 자신감이 떨어지는 걸 봤다. (파면에 대한) 현타가 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윤 대통령의) 파면을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첫째, 국민들의 파면 여론이 거의 60% 정도 된다. 둘째, 헌법재판관들 대부분 판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기각 의견을 쓸 수 없다. 셋째, 만일 1억분의 1이라고 기각한다면 계엄 면허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파면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 한겨레 고한솔 기자 >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거부, 내란 동조 등 적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5당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한다고 21일 밝혔다. 민주당 공보국은 이날 “오후2시 야5당이 국회 본청 의안과에 최 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탄핵안에는 최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을 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 준수 의무를 어긴 것이란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헌재는 지난달 2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일부 인용하면서,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행위라고 밝혔다.

 

탄핵안에는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던 회의장에서 국가비상입법기구라 적힌 쪽지를 건네 받는 등 당시 비상계엄에 동조한 정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민주당 법률위원회로부터 뇌물 및 공갈 혐의로 고발됐다. 법률위는 최 대행이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미르재단 설립과 관련된 범죄에 적극 가담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 고한솔 기자 >

 

민주 “최상목, 최순실 게이트 가담…뇌물·공갈 혐의 고발”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1일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 앞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고발장 제출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이 2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뇌물죄와 공갈죄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에 이런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하며 공수처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법률위 소속인 박균택·박희승·이성윤 의원 등은 고발장 접수 전 기자회견을 열어 “최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적극 가담하였던 자로서 행정부의 책임자로서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최 권한대행의 뇌물죄와 공갈죄 혐의를 국민의 이름으로 고발하고자 한다”고 혐의와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최 권한대행이 2015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관여한 미르재단 설립 관련 범죄에 적극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법률위가 구체적으로 명시한 혐의는 △최 권한대행이 미르재단 설립을 목적으로 박근혜 및 당시 청와대 수석 안종범과 공모해 16개 그룹으로부터 총 486억원의 출연금 공여를 받은 사실 △최 권한대행이 미르재단 설립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에게 ‘아직까지도 출연 약정을 하지 않은 그룹이 있느냐. 그 명단을 달라’고 화를 내며 출연금 모집을 독촉했다는 점 등이다.

 

법률위는 “이렇듯 최상목의 범죄 혐의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윤석열 검사 등은 자의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해 최상목을 기소하지 않았다. 최상목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있었다는 의혹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검팀에서 수사팀장을 맡았다. < 기민도 기자 >

 

최상목 “헌재 결정 존중해달라”…본인은 20일째 무시하며

‘마은혁 임명 안 한 건 국회 권한 침해’
헌법재판소 결정 20일째 뭉개
야당·누리꾼 “유체이탈” “후안무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국민 메시지’가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작 최 권한대행 자신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는 등 위헌적 행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 권한대행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헌재의 중요 결정을 앞두고 탄핵 찬반 양측 간 갈등이 격화하며, 돌발 사고와 물리적 충돌 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어떠한 결정에도 결과를 존중하고 수용해 주실 것을 국민들께 다시 한번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뒤 있을 극단적 혼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승복을 당부한 것이다.

 

문제는 헌재 결정을 거부하고 있는 당사자인 최 권한대행이 과연 국민을 상대로 헌재 결정에 따르라고 당부할 자격이 있느냐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국회가 선출한 마 후보자를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는 것은 국회 권한 침해’라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최 권한대행은 20일째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헌재법은 권한쟁의심판·헌법소원 사건 등의 헌재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에 기속(강제 적용)된다”고 규정하며 “피청구인은 결정 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도 헌법상 원칙과 위헌성을 강조했다.

 

야당에서는 ‘후안무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다른 사람에게 호소할 때는 본인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본인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결과를 따를 것을 요청하는 것이 호소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며 “최 권한대행은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더 이상 국민감정을 해치지 말고 즉시 마 후보자 임명부터 하라”고 밝혔다.

 

강유정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재 결정을 수용해 마 후보자나 빨리 임명하라”고 촉구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관련 기사 링크와 함께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당신은?”이라 되물으며 “걸어 다니는 위헌, 살아 있는 위헌이 할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비판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한 누리꾼은 “내로남불 일타강사”라고 비꼬았고, 또 다른 누리꾼은 “헌재 결정을 존중 안 하는 사람이 누구인데, 유체이탈 화법을 하느냐”고 지적했다. “자기 일은 남의 일처럼, 남의 일은 자기 일처럼, 대단히 뻔뻔하다”, “어이가 없음이 하늘을 찌른다”는 등의 반응도 나왔다.   < 한겨레  심우삼 기자 > 

 

경찰 헌재 주변 ‘범죄 테러 위험 큰 구역’ 도보 점거·시위 원천차단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대통령 파면’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윤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계란 투척’에 봉변을 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경찰이 헌법재판소 주변을 ‘범죄와 테러 위험이 큰 구역’이라고 판단하고, 헌재 앞 점거와 위협적 시위 행위를 사실상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 심리가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야당 의원들에 대한 물리적 폭행이 가해지는 등 헌재 주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위협도 극에 달하는 모습이다.

 

20일 서울경찰청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경찰은 이날부터 윤 대통령 탄핵 선고로 인한 갈등이 잦아드는 시점까지 안국역~헌법재판소 인도와 도로에서 벌어지는 점거와 과격한 시위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헌재 주변을 점거하고 있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강제 해산한 뒤, 경찰 울타리를 쳐 재진입을 막는 식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탄핵 선고와 관련된)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점거나 사실상의 집회 행위를 막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탄핵 선고 전후로 헌재 주변 100m를 집회·시위 ‘진공 상태’로 만들 계획을 밝혔는데, 이날부터 실제 윤 대통령 지지자 이동을 통제하는 등 적극적인 제지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경찰이 헌재 앞 보도를 통제하고 나선 건 범죄·테러 위험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탄핵 재판 심리가 길어지면서 헌재 주변에는 ‘탄핵 찬성 쪽에 자리를 빼앗겨선 안 된다’며 소위 ‘알박기 시위’를 벌이는 지지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탄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방해하거나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욕설을 하는 등 헌재를 압박해왔다. 재판관 살해 위협과 분신 등을 언급해 수사 대상이 된 유튜버가 헌재 앞에서 버젓이 방송을 이어가는 일도 벌어졌다.

 

특히 이날 아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기자회견 도중 백혜련 의원에게 가해진 ‘계란 투척’ 사건은 경찰이 헌재 주변 통제에 나선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날 저녁엔 지지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재정 민주당 의원을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의원들을 상대로 사실상 테러 행위가 벌어졌다”며 “테러 방지를 위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위험 발생 방지 범죄 예방을 위한 조처를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범죄행위가 눈앞에서 벌어지려고 할 때’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 때 이를 예방하기 위한 통행 제한·금지 조처를 허용한다. 헌재 앞을 범죄 행위나 테러 위험이 매우 큰 지역으로 판단하고 시위 제한 조처에 나섰다는 의미다.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늦어지는 헌재 판단이 낳는 사회 갈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법학 교수·변호사·연구자 등 총 1358명의 법률가는 이날 시국선언문을 내어 “분열과 혼란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란범죄자의 파면 결정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 한겨레 정봉비 고경주 기자 >

 

디플로매트 "윤 극단 발언, 폭력 지점까지 지지자 자극"

"한국 경제 붕괴, 외교 고장, 민주주의 위험"
"최악은 윤의 헌재 결정 승복 거부"
"검찰, 윤석열에 유리하게 편파적"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신속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2025.3.20 연합

 

"한국의 리더십에 관한 불확실성이 계속됨에 따라 한국의 경제는 부서지고 있고, 외교는 고장 난 상태다. 다른 견해를 지닌 민간인을 향해 폭력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훼손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위험에 처해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헌재의 윤석열 탄핵 평결 지연 이유'란 19일 자 기사에서 불법 계엄령 선포를 통한 12·3 내란 사태에도 탄핵을 반대하는 윤석열의 극렬 지지 세력의 폭력, 난동 행위와 장기화하는 국가 리더십 부재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그런 만큼 헌법재판소는 가능한 한 신속히 윤석열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부대표단의 윤석열 대통령 신속 파면 촉구 기자회견 도중 얼굴에 계란을 맞아 닦아내고 있다. 2025.3.20 연합

 

"윤 극렬 지지자, 폭력 주저 안 해"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 위험 처해

 

실제로 윤석열의 극렬 지지 세력은 1월 19일 새벽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해 서울서부지방법원 건물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으며, 헌재 게시판과 각종 극우 커뮤니티, SNS 등에 일부 헌재 재판관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에 대한 암살, 헌재 폭파 위협 등을 지속해왔다.

 

20일에는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도중 윤의 극렬 지지자들이 던진 달걀에 백혜련, 이건태 의원이 맞았으며, 오후에는 헌재 인근에서 길을 가던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발로 허벅지를 차여 부상하기도 했다.

 

디플로매트는 "한국(의 정치)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고, 윤석열 자신이 극단주의 발언들을 통해 분열을 부추기고 폭력의 지점까지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경호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오른쪽)이 윤 대통령을 경호하며 이동하고 있다. 2025.3.8. 연합

 

윤 석방, 지귀연·심우정 공모?

"검찰, 윤에 유리하게 편파적"

 

기사에서 디플로매트는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구속됐던 윤석열이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의 구속취소 결정과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 항고 포기가 맞물리면서 지난 8일 석방되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그 결정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윤석열 석방은 사실상 지 부장판사와 심 총장이 '공모'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윤석열 석방 이후 극렬 윤 지지자들은 헌재가 탄핵을 각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디플로매트는 "많은 사람이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에 유리하게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고 비난한다"라고 전했다. 디플로매트는 "한국의 검찰은 윤의 부인(김건희)과 2002년 대선 경쟁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및 다른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부패 혐의 수사와 관련해 현격하게 다른 접근법을 취해왔다"며 "이런 맥락에서 검사들이 윤석열과 친윤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철저하게 하지 않을 거란 우려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내란수괴 '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2025.3.20 연합

 

윤 탄핵 선고, 26일 또는 28일

"최악 문제는 윤의 승복 거부"

 

한편, 헌재는 윤석열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 기일을 정하지 않은 채 먼저 24일 오전 10시 대심판정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하기로 했다.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는 이르면 26일, 늦으면 28일에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디플로매트는 "윤석열이 결국 탄핵 되든 (대통령직에) 복귀하든, 한국은 혼란을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은 극심하게 분열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디플로매트는 윤에 대한 파면 여부가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라면서 "최악의 문제는 윤석열이 공개적으로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의사를 밝히지 않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