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협상 며칠 내로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서 열기로"

 

회담하는 러·우크라 대표단 (벨라루스 리아노보스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벨라루스에서 28일(현지시간) 열린 러·우크라이나 간의 협상이 약 5시간 만에 끝났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회담에 참여한 한 인사는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주(州)에서 열린 양측 회담이 이날 오후 7시(한국시간 29일 새벽 1시)께 끝났다고 전했다.

 

구체적 회담 결과에 대해선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음 회담 일정이 잡힌 점으로 볼 때 최소한 파탄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양국 대표단이 귀국해 협의를 거친 뒤 다음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대표단 단장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보좌관 블라디미르 메딘스키는 회담 뒤 "우리가 합의를 기대할 수 있는 사안들을 찾았다"며 "다음 회담이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 벨타 통신은 다음 러·우크라이나 협상이 며칠 내로 열릴 것이라고 러시아 대표단을 인용해 전했다.

 

이날 메딘스키 보좌관이 이끈 러시아 대표단에는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차관, 레오니트 슬추츠키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대통령실 고문 포돌랴크, 국방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 집권당 '국민의 종' 당 대표 다비드 하라하미야, 외무부 인사 등으로 구성됐다.

 

 

앞서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이날 오후 폴란드를 경유해 헬기로 회담장에 왔고 곧이어 회담이 시작됐다.

 

회담은 당초 전날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안전을 이유로 러시아군이 장악한 자국 북부 국경을 통해 곧바로 벨라루스로 오지 않고 폴란드를 경유해 오기로 하면서 몇 차례 연기됐다.

 

러시아 측은 앞서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회담 주요 의제가 즉각적 휴전과 러시아군 철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맞섰다.

 

푸틴의 핵위협 앞에서…러시아와 마주앉은 우크라 “즉각 철군을”

 

전쟁 닷새만에 첫 고위급 협상.. 양쪽 입장 차 커 성과는 없을 수도

벨라루스, 러 핵무기 반입 허용, 미 “오판 마라” 러 핵위협에 경고

 

28일(현지시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협상 장소인 벨라루스의 고멜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있다. 고멜/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닷새째인 28일 사태 수습을 위한 첫 협상을 벌였다. 만남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62년 쿠바 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서구에 핵 위협을 가했다. 침공의 전진기지가 된 벨라루스는 자국에 러시아 핵무기를 들여올 수 있도록 헌법을 바꿨다. 큰 충격을 받은 독일은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해온 외교안보정책을 전환해 무력 증강에 나서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의 침공이 신냉전으로 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형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협상단은 28일 낮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접경 지역에서 만나, 24일 러시아의 침공 개시 이후 처음으로 대화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협상에 앞서 러시아에 즉각적인 휴전과 철군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대화의 핵심 이슈는 즉각적인 휴전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군대의 철수”라고 밝혔다. 러시아 협상단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실 보좌관도 협상에 앞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합의에 도달하는 데 관심 있다”고 말했다.

 

즉각 철군을 요구한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공개하진 않았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중립화를 요구해왔고, 개전 후엔 사실상 항복을 뜻하는 ‘무기를 내려놓을 것’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의 제거를 뜻하는 ‘비나치화’를 내걸었다. 결사항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이다.

 

양쪽의 큰 견해차를 반영하듯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밤 연설에서 “이 만남의 결과를 믿진 않지만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도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영토의 단 1인치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핵 위협에 미국은 강경한 반응을 쏟아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2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 부대에 특수 경계 태세를 지시한 것에 대해 “추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위협을 지어내는” 패턴의 반복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도 “(러시아가) 오판할 경우 사태를 매우 위험하게 할 수 있다”며 “미국은 국토, 동맹, 파트너를 지켜낼 능력이 있다. 이는 전략적 억지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전략적 억지란 핵 사용을 뜻하는 것으로, ‘핵에는 핵으로 맞서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서구와 러시아의 골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동맹인 벨라루스는 27일 개헌 국민투표에서 “영토를 비핵화하고 중립국가화를 목표로 한다”(18조)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위협에 맞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이 독일의 방위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우크라 “핵시설 2곳 러 공격으로 피해”…방사능 유출 확인 안돼

국제원자력기구 “건물 파손, 방사성 물질 유출 보고 없어”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방사성 물질 경고 표지판.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핵시설 2곳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피해를 봤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했다. 피해 시설에서 건물 파손이나 방사성 물질 유출 등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7일 자료를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도 키예프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위치한 핵폐기물 저장소에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들 핵시설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주요 건물이 파손되거나 방사성 물질 유출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방사성 물질이 있는 시설이 훼손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들 시설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는 원자력 발전소 4곳에서 15개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24일 침공한 러시아군은 1986년 폭발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서 우크라이나와 교전을 벌여 위험이 가중되기도 했다. 러시아는 체르노빌 원전 시설 통제권을 장악한 상태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오는 2일 우크라이나 핵시설 안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우크라 침공 전진기지’ 벨라루스, 핵무기 배치 가능 개헌안 통과

 

“영토 비핵화 중립국가 목표” 조항 삭제, 러 핵무기 배치 현실화될 수도

 루카셴코 2020년 시위 뒤 러에 밀착  러시아-서방 대립 격화 우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7일 수도 민스크에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한 뒤 발언하고 있다. 민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진기지로 이용되고 있는 벨라루스에서 핵무기 배치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이 통과됐다. 벨라루스로 러시아 핵무기 배치가 전진 배치되면, 서구와 러시아의 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 전세계가 ‘신냉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로 읽힌다.

 

벨라루스 선거관리위원회는 28일 전날 이뤄진 개헌 국민투표(투표율 78.63%)에서 65.16%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가 관심을 모은 것은 개헌안에 “영토를 비핵화하고 중립국가화를 목표로 한다”(18조)는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러시아의 핵무기가 서유럽을 더 노골적으로 위협할 수 있도록 벨라루스로 전진 배치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도 이런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투표 당일 방문한 투표소 앞에서 “당신들(서구)이 우리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핵무기를 들여온다면, 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가서 조건 없이 줬던 핵무기를 돌려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에는 소련 시절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뒤인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과 함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약속받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이번 개헌을 이끈 루카셴코는 소련 집단농장 관리자 출신으로 1994년부터 28년간 집권 중이다. 2020년 1월엔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합병하려고 한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날을 세운 적도 있다. 하지만 그해 8월 6번째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전국적인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일어나고 서방이 제재를 가하자 급격히 러시아에 밀착했다. 유일한 ‘비빌 언덕’인 푸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생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번 개헌안에는 루카셴코의 장기 집권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대거 들어 있다.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이 있긴 하지만, 2025년 대선에서 선출되는 새 대통령의 임기부터 적용된다. 그로 인해 루카셴코는 2035년까지 대통령으로 머물 수 있다. 러시아가 2020년 푸틴 대통령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내용의 개헌을 통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한 것을 참고한 듯한 내용이다. 또 최고 국정자문기구인 ‘전 벨라루스 국민회의’의 권한을 강화해 퇴임 뒤에도 상왕처럼 군림할 수 있게 했다. 평생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벨라루스인들 상당수가 이번 국민투표도 부정선거로 보고 있으며 26일에도 반전 시위가 일어나 1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4일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벨라루스엔 연합훈련을 명목으로 러시아군 3만여명이 파병돼 있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을 넘어 키예프를 포위 공격하고 있는 러시아의 주력이다. 벨라루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인 리투아니아·라트비아·폴란드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토는 벨라루스를 경계하며 이 지역에 전력을 강화하는 중이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25일 벨라루스 개헌을 비판하며 “나토의 방어 태세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어 자일스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선임연구원도 최근 <포린 폴리시>에 “러시아군의 벨라루스 영구 주둔은 사실상 정해졌다. 그들은 러시아의 공격용 전초기지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기원 기자

 

[우크라 침공] "'젤렌스키 암살조' 러 용병 400명 키예프 대기 중"

영 매체 "살생부에 총 24명…'복싱영웅'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도 포함"

영 정부가 첩보 입수해 우크라이나에 통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러시아 연계 용병 400명 이상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정부 요인을 암살하라는 크렘린궁의 명령을 받고 키예프에서 대기 중이라고 영국 언론 더타임스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 등 해외 분쟁지에서 용병을 동원하는 사기업 와그너그룹은 이런 '특명'을 받고 5주 전 아프리카에서 우크라이나로 용병들을 침투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요리사 출신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대가로 두둑한 상여금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26일 오전 이런 정보를 입수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전달했다.

 

더타임스는 몇 시간 뒤 수도 키예프시에 36시간 동안 엄격한 통행금지령이 발효됐는데 러시아 공작원들을 색출할 목적이었다고 전했다.

 

키예프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러시아 공작원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면서 통금 시간에 바깥출입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와그너그룹의 활동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지닌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 모두 합쳐 용병 2천∼4천명이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친러 분리주의 조직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배치됐고 다른 용병 400명은 벨라루스에서 키예프로 잠입했다고 밝혔다.

 

와그너 그룹의 고위 관계자들과 가까운 또 다른 소식통은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상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잠깐의 휴지기를 원하지만 협상은 결국 결렬될 것이라는 내용이 이들 용병에게 사전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8일 벨라루스의 국경 도시 고멜에서 협상할 예정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타임스는 용병단이 푸틴에게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이들이 향후 며칠 동안 '살생부'를 처리한 뒤 사례금을 챙겨 이번 주말 전에 우크라이나를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전했다.

 

헤비급 세계챔피언 출신인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 [AP 연합뉴스]

 

이 살생부에는 젤렌스키 대통령 외에 총리와 내각 장관 등 23명의 이름이 올랐고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과 러시아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그의 동생 블라디미르도 포함돼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들 용병은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측근들이 키예프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고 떠벌렸으며 휴대전화 통해 암살 대상자의 위치를 추적할 능력을 확실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더 타임스는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후 한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 특수부대가 자신을 '1호 표적'으로 겨냥해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와그너그룹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분열을 조성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지목된다.

 

더 타임스는 이 조직이 러시아 정규군보다 푸틴 대통령의 신뢰를 더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것은 러시아 군대보다 훨씬 이른 작년 12월이라는 소문도 전했다.

 

리처드 배런즈 전 영국 합동군사령관은 "와그너그룹은 색출하기 매우 어려운 까닭에 아주 효과적"이라며 "어둠 속에서 슬며시 나타나 아주 심한 폭력을 저지르고 다시 사라져 누가 책임이 있는지 확실치 않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러시아 정부와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쉽게 책임을 부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한러시아 대사관 앞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집회

“가족들은 위험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대구서 올라와”

“절박한 마음으로 지원 호소”…정부에 ‘독자 제재’ 촉구도

 

27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집회를 열어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무력침공을 규탄한 뒤 러시아 대사관 앞으로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도와주세요” “푸틴은 우리 가족 우리 친구 죽이고 있다”.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근처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과 연대 목소리를 낸 한국인들과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한국의 지원을 호소했다.

 

300여명이 참여한 집회에서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 발언문’을 대표로 읽은 올레나 쉐겔(Olena Shchegel) 한국외대 교수(우크라이나어과)는 “1941년 나치 독일이 공격한 이래 키예프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만행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더욱 더 대담해지고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줄 것을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한다. 러시아에 대한 대한민국의 적극적인 경제 제재를 신속하게 부과해준다면 우크라이나에 많은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마스크에 국기 색깔인 노란색과 파란색을 칠한 집회 참석자들은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든 채 1시간여 동안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러시아는 침공을 멈춰라”(Stop Russian aggression)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We want to live in peace) “푸틴 전쟁을 멈춰라” “우리 국민 살인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한국어, 우크라이나어, 영어로 번갈아 외쳤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집회를 열어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무력침공을 규탄한 뒤 러시아대사관 방향으로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고국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걱정하며, 한국 정부에 적극적인 러시아 제재 참여를 촉구했다. 고려인 김마리나(22)는 “친구랑 가족들이 사는 니콜라예프에서도 폭탄이 터지는 등 아주 위험한 상태라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은 위험한데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대구에서 오늘 아침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유학생 아나 이반셴코(25)는 “한국 정부가 대러 수출 제재에 참여하기로 한 것을 알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인 제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까지 매주 주말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날 집회에는 우크라이나인뿐 아니라 한국에 체류 중인 다른 나라 외국인과 한국인도 참여했다. 익명을 요구한 벨라루스인(25)은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벨라루스인들은 전쟁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로 진격했다. 이달 대학을 졸업한 김보경(25)씨는 “학교에서 친해진 우크라이나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집회라도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도 따로 집회를 열어 전쟁 반대와 우크라이나와 연대 뜻을 밝혔다.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모인 재한 러시아인 등 40여명은 “우리는 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러시아 군대는 멈춰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 손에는 “푸틴은 전쟁을 멈춰라” “우크라이나와 함께 하겠다” “푸틴은 암덩어리” 등의 팻말이 들렸다. 이 집회에는 몇몇 우크라이나인들도 참여해 ‘반전쟁·반푸틴 연대’를 보여줬다.

 

한편, 국제민주연대, 공익법센터 어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회진보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는 28일 오전 11시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들 단체는 온라인을 통해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적은 성명서를 러시아대사관에 전달할 예정이다. 서혜미 기자

 

러 시민들 수천명 체포에도…모스크바 등 도심서 ‘반전’ 시위

 

러, 우크라 침공뒤 반전시위로 3천여명 체포…각계각층 동조 성명

러 유명 미술관 “비극에 전시 중단”…미·유럽·일 등 세계곳곳 반전시위

 

러시아 경찰이 지난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쟁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던 여성을 연행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쟁을 중단해야 합니다. 제발!”

 

24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러시아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 시민들은 거리 시위로 수천여 명이 체포됐지만 ‘전쟁 중단’을 요구하며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영국·스위스·브라질·일본·이란 등 세계 곳곳에서도 러시아를 비난하는 집회, 서명 등 ‘반러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26일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러시아 비정부기구(NGO) ‘OVD-인포’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 동안 ‘전쟁 반대’ 집회에 나섰다가 체포된 사람이 3039명에 달했다. 러시아 시민들은 아랑곳없이 수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전쟁 반대’ 피켓,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드는 방식으로 반전 시위를 이어갔다. 미국 <에이피>(AP) 통신은 “정부의 탄압에도 러시아에서 반전여론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각계 성명도 쏟아지고 있다. 6천여명이 넘는 의료계 종사자들이 26일 성명을 냈고, 건축가·엔지니어 3400여명, 교사 500명도 동참했다. 언론인, 지방의회 의원, 문화계 인사들도 전쟁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유명 현대 미술관인 ‘개러지’는 이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시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 중단될까지 전시회를 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분열과 고립을 만드는 모든 행동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는 서명에 현재 78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러시아 정부의 언론 통제가 강화되는 속에서 <노바야 가제타> 등 러시아 독립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과 러시아 반전 집회 등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노바야 가제타> 누리집 갈무리

 

러시아 정부의 언론 통제가 강화되는 속에서 <노바야 가제타> 등 러시아 독립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과 러시아 반전 집회 등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은 “전쟁 관련 소식을 정부 발표대로만 전하라는 준칙은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26일 <노바야 가제타> 등 일부 언론이 “군사 작전을 ‘공격’, ‘침공’,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등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누리집 접근 제한, 벌금 등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러시아에 대한 비난은 세계 곳곳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프랑스·독일·그리스·스위스·이란·멕시코·일본·한국 등에서 러시아의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는 26일 주최측 추산으로 2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도쿄 신주쿠에서는 일본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 100여명 모여 “우리는 러시아인이지만 전쟁에 반대한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했다. 전 세계 집회 참가자들은 ‘#stop War’(전쟁 중단) 등의 해시태그를 달며 온라인에 시위 상황을 담은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핵무기 다루는 억지력 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 명령

러시아-우크라는 개전 나흘만에 첫 회담 나서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7일 서구의 강력한 제재 조처에 불만을 터뜨리며 핵무기를 다루는 ‘억지력 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명령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인 27일(현지시각) 핵무기를 다루는 억지력 부대의 경계 태세 강화를 명령하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초강수 경제 제재를 꺼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편으로 대화 개시에 합의하는 등 전쟁이 강온 양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공개한 영상을 통해 “나는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에게 육군의 억지력 부대를 특수 경계 태세로 둘 것을 명령한다”고 밝혔다. ‘억지력 부대’는 핵 무기를 운용하는 부대다. 푸틴 대통령은 “서구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불법적 제재라는 경제적 차원의 비우호적 조처를 취했을 뿐 아니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요국의 최고 관리들은 우리나라에 관한 공격적 발언을 했다”고 이번 조처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린다-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시비에스>(CBS)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전쟁을 계속 확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규탄하면서 핵심 제재 수단으로 꼽혀온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의 러시아 주요 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 개인과 러시아의 주요 은행, 귀족층 등의 자산 동결 등 조처에 이은 것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도 강화했다.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독일이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또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고,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는 등 공세를 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인종학살(제노사이드)을 벌이고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평화 협상을 위한 대화를 위해 만나기로 합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궁은 이날 성명을 내어 “우리는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러시아 대표단과 전제조건 없이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접경의 프라피야티 강 인근에서 만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양쪽이 협상 장소 등을 놓고 티격태격한 끝에 결정된 것이다. 앞서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러시아 대표단이 벨라루스 남동부 호멜에 도착했고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벨라루스가 러시아군의 침공 거점이라는 점을 들어 벨라루스가 아닌 곳에서 하자고 요구했다.

 

한편, 미국은 26일 현재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필사적 저항에 의외로 고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러시아가 지난 24시간 동안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키예프를 사수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며 항전을 독려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총을 지급받고 화염병을 만드는 등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황준범 정의길 기자

 

‘침공 나흘째’ 러시아, 제2도시 하르키우 진입…우크라 “결사항전”

 

러, 키예프에 미사일 쏘는 등 공세 강화

우크라 제노사이드 이유로 러 ICJ 제소

젤렌스키, 러 “유럽·민주주의 겨냥 전쟁”

미국·유럽 “국제 결제망서 러 은행 배제”

 

 우크라이나의 한 병사가 26일 수도 키예프에서 불타는 군용 트럭 옆을 걸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해 키예프에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등 우크라이나 동·남·북부에서 진격을 이어가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침공 나흘째인 27일(현지시각) 수도 키예프에 이어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진입하는 등 공세를 강화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초강수 경제 제재를 꺼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결사항전하겠다는 태도를 꺾지 않으며, 전쟁의 초반 전개 양상이 러시아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27일 새벽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인근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며 나흘째 공세를 이어갔다. 공세는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져 러시아군은 동북부의 하르키우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였다. 올레흐 시네후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러시아군 차량이 하르키우 도심까지 들어왔다”며 “우크라이나군이 적을 부수고 있다. 민간인은 외출하지 마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인종학살(제노사이드)을 벌이고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두 나라는 사태 수습을 위한 협상 개최 여부를 놓고도 티격태격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27일 “러시아 대표단이 벨라루스 남동부 호멜에 도착했고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와 평화 협상은 기꺼이 하겠다”면서도 이곳이 러시아군의 침공 거점이라는 점을 들어 “벨라루스(에서의 대화)는 거부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한 보좌관은 러시아가 협상 대표단을 보낸 것은 “선전전”이라고 말했다.

 

개전 나흘째인 27일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에 대항하기 위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결사 항전할 뜻을 꺾지 않으면서, 시민들도 똘똘 뭉쳐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하는 모습이다. 키예프/AP 연합뉴스

 

26일 현재까지,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필사적 저항에 의외로 고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러시아가 지난 24시간 동안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키예프를 사수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며 항전을 독려했고, 27일엔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과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평화적 공존을 상대로 한 전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총을 지급받고 화염병을 만드는 등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키예프의 전황이 고착될수록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와 국제사회의 반전 열기가 커지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점점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 때문에 러시아군이 키예프 상황을 속히 마무리하는 가차 없는 공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압박 수위는 올라갔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26일 러시아 숨통을 조일 핵심 제재로 꼽혀온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의 러시아 주요 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독일도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동맹들의 결집을 재차 강조했다. 전세계 주요 도시에선 나흘째 전쟁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황준범 박병수 기자

 

키예프 총성 들으며 태어난 아기…“대피소에서만 80명 출산”

 

우크라이나인들 곳곳서 필사적 저항 의지

23살 여성, 대피 중에 지하철역서 출산해

도로설비 회사는 표지판 떼내 러시아군 교란

러시아군용 차량 수십대 막아선 ‘탱크맨’도

 

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가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압도적인 전력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침공을 개시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에 꺾이지 않는 결연한 저항 의지를 보이며 전 세계인에게 묘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에이치비>(HB)가 25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30초짜리 동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 탱크맨’의 모습이 등장한다. 빠르게 돌진하는 러시아 군용차로 보이는 차량 수십대 행렬 앞으로 한 남성이 돌진하듯 뛰어든다. 차량 행렬을 막으려는 듯 손으로 제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황한 군용차는 비틀거리며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1989년 6월 천안문 민주항쟁 때 시위 진압에 나선 인민해방군 탱크를 막아서며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인들의 뜨거운 열망을 전했던 원조 ‘탱크맨’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에이치비>는 이 영상과 함께 “우크라이나인이 점령군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적의 장비로 돌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영상이 찍힌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한 설비회사는 러시아군이 길을 잃게 하기 위해 도로 방향 표지판을 떼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도로 및 빌딩 유지 보수 업체인 우크라프토도로는 25일 페이스북에 “적들은 통신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들을 지옥으로 직행하게 돕자”는 글을 올렸다. 그와 함께 “꺼져라” “또 꺼져라” “러시아로 꺼져라”고 쓴 표지판 합성사진도 첨부했다.

 

우크라이나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러시아 군용차 앞을 막아서고 제지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에이치비>(HB)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중 한 장면.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우크라이나의 복싱 영웅이자 수도 키예프 시장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24일 영국 <아이티브이>(ITV)와 한 인터뷰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6일 키예프에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리는 등 키예프 상황 통제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립하며 국외를 떠돌다 지난달 귀국한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키예프에서 총을 들었다. 그는 25일 미국 <시엔엔>(CNN)과 키예프 거리에서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인터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영원히”라고 답했다. 그는 이튿날인 26일 영국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방탄조끼를 입고 인터뷰하며 “우리는 키예프 한복판에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공습이 이어질 때마다 지하철역 같은 임시 대피시설로 이동하며 항전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침공이 우크라이나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러시아군의 공격이 계속된 26일 키예프 지하철역에서 대피 중이었던 23살 여성이 ‘미아’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출산했다고 전했다. 출산 이후 이 여성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는 신생아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미아가 태어났다. 우리는 생명과 인간성을 수호한다. 키예프시에 따르면 이 아이는 지난 이틀 동안 대피소에서 태어난 아이 80명 이상 중 한 명”이라고 적었다. 26일 러시아 접경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루한스크)의 병원 지하실에서도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간에도 러시아군은 밖에서 포격을 하는 상황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인근에 있는 즈미니섬 국경 수비대원들이 러시아 군함의 항복 권유를 거부했다가 몰살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경수비대가 지난 24일 러시아 군함의 항복 요구를 받자 욕설과 함께 “러시아 군함, 꺼져라”고 답했다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 13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는데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즈미니섬의 우크라이나군 82명이 모두 항복했다고 발표했다. 조기원 기자

키예프 인근 바실키우에 로켓 공격

“동부에선 가스관 공격” 미확인 보도

 미국, “저항 강해 러시아 군 고전 중”

 러시아, 남부 해안 지역도 집중 공격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대한 집중 공세가 재개된 27일 새벽(현지시각) 키예프 인근 바실키우의 유류 창고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였다. 바실키우/EPA 연합뉴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로 접어든 27일 새벽(현지시각) 수도 키예프 인근에 두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야간 총공세에 다시 나섰다. 러시아는 전날 새벽에도 일부 병력을 키예프 시내로 투입해 교전을 벌이고 키예프 공항 주변을 집중 공격했으며, 우크라이나 군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낮 동안은 시내 진입 작전을 늦췄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이날 새벽 1시께 키예프에서 30㎞ 정도 떨어진 남서부 바실키우 지역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에는 대규모 군 비행장과 유류 저장 시설이 있으며 26일에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방송은 전했다. <비비시>(BBC) 방송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바실키우의 유류 저장소가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유류 저장소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가 치솟는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유류 저장소 폭격 이후 키예브 시 당국은 폭격 현장에서 유독 물질이 퍼질 수 있다며 창문을 굳게 닫는 등 철저히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앞서 이날 자정 즈음부터 공습 경고 사이렌이 키예프 전역에 울렸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야당인 ‘홀로스당’의 레시아 바실렌코 의원은 26일 밤 11시께 트위터를 통해 “앞으로 30~60분 사이에 키예프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대규모 공격을 당할 것”이라며 “러시아 군이 가진 무기를 총동원해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키예프 시 당국은 이날부터 오후 5시~아침 8시 야간 통행 금지를 실시해 한밤 공습이 재개될 때까지 거리는 고요했다.

 

북동부 지역 주요 도시인 하르키우에서는 가스관이 공격을 당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러시아가 군 기지를 첫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은 뒤 가스와 석유 시설을 두번째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군의 키예프 점령 시도가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는 등 러시아 군이 예상보다 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26일 브리핑에서 “우리가 관찰한 정보에 근거하면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우린 러시아가 특히 (수도 키예프를 노리는)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모멘텀을 얻지 못해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국방부도 짧은 성명을 내어 러시아 군이 “계획한 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며 “군수 물자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거세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은 키예프 외에 경제적으로 중요한 남부 해안 지역에서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러시아의 공격이 키예프와 함께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오데사, 남동부 마리우폴에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에서는 우크라이나 방위군이 바다를 통한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교량을 통제하고 있다.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도 두쪽은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미국 ‘전쟁학 연구소’(ISW)가 분석한 26일 오후 8시 현재 러시아 군 점령 지역(붉은색). 전쟁학 연구소 트위터 갈무리

 

미국의 ‘전쟁학 연구소’(ISW)는 26일 오후 8시 현재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 북쪽 외곽부터 벨라루스 국경까지를 점령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또, 하르키우 주변 등 북동부 러시아 국경 지역, 남부 크림반도 인근인 헤르손과 마리우폴 주변, 동부 돈바스 분쟁 지역도 러시아 군의 통제 아래 놓였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금까지 교전 과정에서 약 3500명의 러시아 군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우크라이나 민간인 198명이 사망하고 1천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시엔엔>은 26일 밤 서부 키예프에서 벌어진 교전 중 6살짜리 소년이 숨졌다고 현지 병원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년은 러시아 침공 이후 희생된 이들 가운데 가장 어릴 것이라고 <비비시>가 지적했다.

 

한편, 해커 집단 ‘어너니머스’는 27일 오전 러시아 내 체첸 자치공화국이 우크라이나 파병을 선언한 이후 공화국 정부 사이트를 공격해 마비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집단은 25일 러시아에 대한 ‘사이버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공식 사이트도 26일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맞설 ‘정보기술(IT) 군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의 해커들에게 중요한 기간시설 방어와 러시아 군에 대한 정보 수집에 협조해줄 것을 촉구했다. 신기섭 기자

 

미 국방부 “러시아, 예상보다 강한 우크라 저항에 좌절”

 

  지난 24시간 동안 전황 교착 상황인 듯

“러시아 장악한 도시 있다는 신호 없어”

 독일, 대전차·지대공 미사일 공급

 미국 “동맹과 함께 우크라 지원 이어갈 것”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26일(현지시각) 수도 키예프 외곽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키예프/EPA 연합뉴스

 

개전 나흘째를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예상 외로 고전 중이라는 미 국방부의 평가가 나왔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26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우리가 관찰한 정보에 근거하면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우린 러시아가 특히 (수도 키예프를 노리는)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모멘텀을 얻지 못해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계속 작동하고 있으며, 자국 영공에 러시아 항공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가 개전 직전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했던 병력 15만명 가운데 가운데 절반 가량이 우크라이나로 진입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격전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 키예프의 전황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피했지만, “오늘 상황으로 볼 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어떤 도시도 장악했다는 신호가 없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 정찰부대가 키예프에 진입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러시아군이 이 브리핑이 있기 전 지난 24시간 동안 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구성된 250발의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전역에 쏟아 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국자는 “미사일 타격으로 인해 민간 시설과 주택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24일 새벽 개전 직후부터 수도 키예프를 직접 노리는 북부 전선, 무력 분쟁이 이어졌던 동부 전선, 2014년 3월 합병한 크림 반도에서 국경을 넘는 남부 전선에서 동시에 전격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수도 키예프를 포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 의지가 예상보다 강해 고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개전 초기부터 키예프에 전력을 집중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을 볼 때 이번 전쟁의 목표가 친 서방 정책을 펴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참수(전복)하고 친러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항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26일 자신들이 3000여명의 러시아군을 사살했다고 밝혔지만, 진위를 판단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미국은 앞으로 동맹과 동반국들과 함께 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위 지원을 신속히 해 나갈 예정”이라는 뜻을 재차 강조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앞선 25일 오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고 3억5000만달러(4200억원)의 방위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독일이 26일 분쟁지역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휴대용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로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은 군용 헬멧 5000개뿐이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트위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환점으로 전 세계의 전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맞서 방어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적었다. 길윤형 기자

 

러 “우크라이나, 협상 거부”…우크라 “비현실적 조건 안돼” 맞서

 러 “25일 진격중지했다가 협상거부로 26일 재개” 주장

 우크라 “최후통첩식 수용못해”…미 “총구 들이댄 채 외교 안돼”

 

우크라이나 군인이 26일(현지시각) 키예프 바실키프 공군기지에서 임무를 하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협상 추진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거부했다”며 군사작전 재개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협상 조건이 비현실적”이라고 맞받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해 전쟁을 장기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아에프페>(AFP)가 보도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어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이 열리길 기대하면서 러시아군에 진격 중지를 명령했다”며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했기 때문에 오늘 오후 러시아군의 진격이 재개됐다”고 말했다.

 

전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세르기 니키포로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 시간과 장소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정전과 평화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양쪽은 협상 장소를 둘러싸고 입장이 엇갈려 논의가 더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하자고 주장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고 있다”며 거부하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이날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준비했지만, 러시아군이 공격 수위를 높이는 등 협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행동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강요하려는 것일 뿐”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최후통첩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 고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도 협상이 무산된 것은 러시아의 조건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중재자를 통해 전달한 조건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항복시키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안한 조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협상 제안이 “총구로 위협하며” 외교를 하려는 시도라며 푸틴 대통령이 협상에 진지하다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내가 필요한 건 피신이 아니라 탄약”…재평가 받는 젤렌스키

  수도 키예프에서 동영상 올리며 항전 의지, 국민 독려

  정치 경험 없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비판 잠재워

 “살아있는 모습 마지막일 수도”…유럽에 도움 호소

 “우크라의 조지 워싱턴으로 역사에 남을 것” 평가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6일 수도 키예프 시내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국민들에게 단합을 호소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트위터 화면 갈무리.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조지 워싱턴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미국 럿거스 대학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문가인 알렉산더 모틸 교수는 지난 26일 <엘에이 타임스>에 실은 기고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신을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이 정치 경험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재앙일 것이라고 비판해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보여주는 모습이 기존의 평가를 뒤집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4일 전쟁이 시작된 뒤 수도 키예프에 남아 지속적으로 동영상과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건재를 확인시키면서 자국민에게 항전을 독려하고 전세계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면도도 하지 못한 초췌한 얼굴에 티셔츠 등 평상복 차림이다.

 

그는 지난 25일 밤(현지시각) 키예프 밤 거리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30여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데니스 슈미갈 총리 등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서서 “우리 모두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키예프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허위정보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항전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26일 낮에도 키예프 시내에서 촬영한 동영상에서 “우리는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수도에 꼭두각시를 세우길 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우리는 우리의 영토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국민들 포함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로 돌아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돌아와달라.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모두가 영웅이다”라고 호소했다.

 

미 정보 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침공을 통해 우크라니아 정권 교체를 하려 하고 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제거 대상 1호로 꼽고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개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를 하나의 명분으로 내걸었는데,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 제거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의 탄압을 받은 유대계 후손이며, 언어도 러시아어를 쓴다.

 

생명의 위협에 놓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 정부는 피신을 권하면서 대피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 내가 필요한 것은 피신 차량(ride)이 아니라 탄약”이라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이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4일 밤 연설에서도 “적이 나를 첫번째 목표로, 내 가족을 두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며 “그러나 나는 키예프에 있을 것이고, 가족도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 전까지 보여온 혼선과 무기력과 대조된다. 그는 지난해 후반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병력을 증강하고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할 때, 위협이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러시아가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합류 관련해서도 가입 의지를 강하게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꿈 같은 얘기일 것”이라고 하는 등 혼재된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하자 수도를 지키며 단단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면서 ‘재평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언론의 편집장 올가 루덴코는 트위터에 “젤렌스키가 그동안 정말로 많은 나쁜 실수를 저질렀지만, 점점 자신이 국가를 이끌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적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저항 의사를 밝히는 한편 전세계에 ‘반러 연합’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그는 26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국, 인도, 이탈리아, 폴란드, 터키, 조지아, 체코 등 외국 정상들과 통화하고 지지를 약속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개전 첫날인 지난 24일 유럽연합(EU) 정상들과 전화 회의에서 “이게 당신들이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일 수 있다”면서 서방의 적극적인 대응과 지원을 촉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는 러시아 시민들에게도 전쟁 반대 목소리를 통해 푸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5년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역사 교사에서 대중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돼 개혁 정치를 펴는 역할을 맡았다. 개혁적 이미지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그는 2019년 대선에 출마해 70% 넘는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계속되는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세력의 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으나, 이제는 러시아의 대군을 서방의 간접 지원에만 의존한 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였다. 황준범 기자

 

유럽 각국 우크라 난민 수용…“15만명 국경 넘어”

 폴란드 11만명 이상, 몰도바·루마니아 2만6천명 이상

 유엔난민기구 “400만명 난민 발생할수도”

 

26일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 쉼터로 제공된 루마니아 북동부 시레트에 있는 호텔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이 국경을 열어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엔(UN)은 우크라이나 인구 4400여만명 중 400만명이 난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폴란드 내무부는 지난 24일(현지시각)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인 최소한 11만명이 폴란드로 들어왔다고 26일 밝혔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이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에도 입국을 허가하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폴란드 남동부 국경 마을인 메디카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서부 출신 헬레나(49)는 국경을 넘는 데 24시간이 걸렸다며 “지옥이었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는 27일 전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 1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나라이며, 전쟁 발발 뒤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가장 많이 향하는 국가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쟁 발발 뒤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15만명가량으로 추정하는데 3분의 2 이상이 폴란드로 간 셈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상황이 악화되면 400만명이 난민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떠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난민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가총동원령을 내리고 18~60살 남성은 출국을 금지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프랑스 일간지 <웨스트 프랑스>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 수만명 아니 수십만명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26일 말했다. 폴란드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출신 난민의 급격한 유입을 막기 위해 장벽을 건설 중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유럽 다른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나섰다. 유럽에서 가장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지도자로 꼽히는 빅토로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우크라이나 시민과 합법적 우크라이나 거주민은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26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인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서부에는 헝가리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이 주로 헝가리로 가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남쪽과 국경을 맞댄 몰도바와 루마니아로 각각 1만6000여명과 1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들어갔다고 <라디오 프리 유럽>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지 않은 독일에도 폴란드 등을 경유해 온 우크라이나 난민 일부가 도착했다. 독일 정부는 독일로 온 우크라이나 난민 숫자가 아직 소수이지만 앞으로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대비하고 있다. 조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