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의 ‘정치적 유언’ 인용한 시진핑의 연설

침묵하던 관영매체들 보름 뒤 일제히 보도
공청단 등 덩샤오핑 노선의 반격 효과?

중국공산당과 군 내부 세력관계 변화
군부 내 측근들 실각으로 시진핑 입지 약화
첨단기술산업 분야 부진도 시진핑 지반 약화 요인

차이나 브리프  6월 21일 기사 '관영매체에서 시진핑의 중심적 지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중국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을 맞이하는 시진핑 주석.

 

“중국 관영매체에서 시진핑의 중심적 지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Xi Jinping’s Central Position in Official Media Starts to Erode)

 

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파운데이션’의 간행물 <차이나 브리프>가 지난 21일 온라인에 띄운 제25권 12편 글의 제목이다. 이 글은 최근 <인민일보>나 <신화통신>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 권위있는 관영언론매체에서 시진핑 주석의 이름이 거론되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절대적이었던 그의 권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를 들었다. <차이나 브리프>는 시 주석이 자신이 발탁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 핵심멤버들이 최근 잇따라 실각하는 등 군부 내 그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는데다, 대규모 투자를 계속해온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등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등 경제 난국을 뚫고 나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이 시 주석 권력 약화의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보는 듯하다.

 

공청단 등 덩샤오핑 노선의 반격?

 

이에 따라 이른바 중국혁명 원로들의 후예인 ‘태자당’ 중심의 시진핑 일극 권위주의 중앙집권체제 강화 이후 밀려났던 후진타오와 리커창 등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 나아가 장쩌민 ‘상하이파’ 그리고 더 멀리는 덩샤오핑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혁개방, 민주집중 집단지도체제 지향 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당과 군부를 장악해 가고 있고, 장차 시진핑을 실권 없는 국가주석직만 유지하게 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공산당 강령에 따라 2027년의 제21차 중국공산당대회까지 시 주석의 공식직함은 유지되겠지만 그가 실권을 잃을 수도 있으며, 그의 3기 연속집권이 끝난 뒤 덩샤오핑이 틀을 짠 2기 연속집권의 집단지도체제가 부활하면서 중국공산당이 미국과의 전면적인 패권경쟁 노선을 버리고 경제 및 민생 위주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는 7월 말이나 8월 초에 열릴 가능성이 있는 중국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 또는 전현직 당 원로들의 비공개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 뒤에 그런 움직임들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진타오의 ‘정치적 유언’ 인용한 시진핑의 연설

 

차이나 브리프의 6월 11일 기사가 나오기 전인 지난 5월 28일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내보낸 “후진타오 '유언' 뜻밖의 부활, 시 주석이 지시한 과학과 민주의 정체” 제목의 기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최근 시진핑 체제 내부의 정치 군사 사정의 변화를 상당히 밀도있게 추적했다.

 

예컨대 이 기사는 시 주석이 지난 4월 30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15차 5개년계획’ 관련 좌담회에서 공산당 유력 간부들을 앞에 두고 “과학적인 정책결정, 민주적인 정책결정, 법률에 근거한 정책결정을 견지하라”고 한 연설은, 그가 2022년의 제20차 공산당대회 때 인민대회당의 공개석상에서 쫓아내다시피한 후진타오 전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한 마지막 활동보고 연설에서 한 말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연설 당시에는 보도되지도 않았다가 보름이 훨씬 더 지난 5월 19일에야 <신화통신>과 <CCTV>에서 보도되고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그 발언을 1면 머릿기사 제목으로 달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23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뽑힌 장여우샤(중앙)와 허웨이둥(왼쪽), 그리고 국방장관에 임명된 리샹푸가 선서를 하고 있다..   시진핑이 발탁한 이들 중 허웨이둥과 리샹푸는 비리혐의 등으로 이미 실각했다.  일본경제신문  6월 18일

 

중국공산당과 군 내부 세력관계의 변화?

 

이례적인 ‘사건’의 해석을 둘러싸고 몇 가지 ‘설’들이 유포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시 주석이 정적관계라 할 수 있는 공청단의 후진타오 전 주석 얘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내부 조율을 거쳐 공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과 군 내부의 세력관계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것도 유력한 ‘설’의 하나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내고 <닛케이> 중국총국 국장을 거쳐 편집위원 겸 논설위원직을 맡고 있는 다카자와 가쓰지라는 중국 연구자가 쓴 기사 중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내의 세력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국의 장군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전장이 아니라 No.2의 실각’(6월 11일)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설’들 때문인지 최근 중국의 정치권력 변화에 관한 분석과 전망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상당수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전문가들조차 팩트를 확인하기 어려운 중국사회 특성 때문에, 전혀 근거없는 관측들도 난무하고 있는 듯하다.

 

차이나 브리프와 닛케이 보도를 중심으로 몇 가지 중국 내부변화들에 대한 최근의 관측과 해석을 정리한다.

 

시진핑과 그의 사상 보도 줄이는 주요 관영매체들

 

차이나 브리프에 따르면, 미국과의 중요한 무역협상,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발표, 리창 총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국가 헌법에 대한 충성 맹세 행사 등을 전한 주요 보도들에서 시 주석이나 그의 이념(eponymous ideology)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 주석은 군부와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군부에서는 그가 발탁한 고위급 간부들이 숙청당해 그의 지지기반이 약화됐고, 산업분야에서는 반도체 산업 자금지원을 위한 세 번째의 대형 펀드를 출범시켰으나 성과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차이나 브리프는 최근 중국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환영하는 ‘가족 연회’에 하버드대를 졸업한 시 주석의 딸 시밍쩌가 등장한 것을 두고 시 주석이 ‘부분적인 은퇴’를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중국 정치에는 권력자가 자녀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한때 권위적이었던 아버지가 적어도 부분적인 은퇴(partial retirement)를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며, 마오쩌둥 이래 최고권력자들 중에 자녀를 공개행사에 참석시킨 예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난 13일 덩샤오핑과 함께 중국을 이끌었던 천윈 탄생 120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장여우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오른쪽)    일본경제신문  6월 18일 

 

군부 내 측근들 실각으로 시진핑 입지 약화

 

처이나 브리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시 주석이 발탁한 장성들이 잇따라 퇴출당하면서 군부 내에 시 주석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고, 시 주석에게 불리한 흐름이 형성됐다. 최근 해임된 측근들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서열 2위인 허웨이둥, 군 인사 및 사상검열 책임자인 먀오화, 그리고 동부전구사령부 린샹양 사령관 등이다. 모두 2월 말 이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닛케이 보도(6월 11일)에 따르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들 중의 한 사람인 허웨이둥(68)이 6월 8일 일요일 베이징 바바오산(팔보산) 장례식장에서 열린 쉬치량 전 부주석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4명의 중앙정치국위원(정치국 상무위원 7명 포함) 중에서 유일하게 조화도 보내지 않아, 3월 11일 전인대 폐막식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실각이 확인됐다.

 

중국군(인민해방군) 최고의사 결정조직인 중앙군사위원회는 국가주석이자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주석을 맡는데, 허웨이둥은 시 주석이 발탁한 사람으로, 2년 전까지 부주석을 지낸 뒤 지난 2일 병사한 쉬치량(75)의 장례식에 참석했어야 할 인물이다.

 

이로써 후진타오 전 주석 재임 말기부터 지금의 시 주석 체제까지 모두 6명의 군 출신 중앙군사위 부주석들 가운데 3명이 실각했다. 허웨이둥에 앞서 궈보슝 부주석이 비리사건 적발로 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이고, 쉬차이허우 부주석 역시 비리사건 적발로 구속 중에 암으로 사망했다. 리샹푸 국방장관 역시 비리혐의로 물러났다.

 

지난 1월 17일 열린 은퇴한 원로 군인들 위로회에 참석한 쉬치량(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일본경제신문 6월 4일

 

권위주의 일극 마오쩌둥 시대 허룽 실각과 닮은꼴

 

허웨이둥의 실각은 현역 군 출신 중앙군사위 부주석들 중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혁명 초기인 1967년 당시 인민군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불린 허룽 부주석이 감금당해 고초를 겪다가 비참하게 죽은 사건과 닮은 구석이 있다. 마오쩌둥의 권위주의적 일극지배체제 때 과거 난창 무장봉기를 지휘한 인민군 창시자의 한 사람인 허룽이 실각한 것과, 덩샤오핑의 집단지도체제를 버리고 마오쩌둥식의 권위주의적 일극지배체제를 밀어붙인 시진핑 체제 군 내부 측근의 실각은 일극 권력자의 약체화를 야기하고 그 뒤의 지도체제 노선 수정을 불렀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유추해낼 수 있다. 10년간 지속됐던 중국 문화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종언을 고했고, 마오의 권위주의적 일극 집중체제는 장칭 등의 과도기적 보수강경 4인방체제를 거쳐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린 현대 중국의 압축적 성장이 거기서 시작됐다. 

 

거액 뇌물 및 부정축재 사건으로 실각한 궈보슝(2016년)과 쉬차이허우(2014년) 부주석은 장쩌민 전 주석이 발탁한 장군들이었고, 2017년에 비리사건으로 자택감금 중 자살한 장양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과, 같은 시기에 군 규율문제로 조사받았던 중앙군사위 통합참모부 참모장 팡펑휘는 후진타오가 장군자리에 앉힌 사람들이었다. 그들 모두 시진핑의 부패청산 캠페인의 희생자들이 됐다.

 

그런데 2022년 제20차 공산당대회 뒤인 2023년, 2024년에 시 주석이 발탁한 현역 군 출신 국방장관 리샹푸, 그 전임 국방장관 웨이펑허가 잇따라 비리사건으로 실각했고, 그 뒤부터 시 주석이 발탁한 중앙군사위 고위관리들을 시 주석 자신이 잘라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전기가 된 것이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 먀오화가 중대한 규율위반으로 2024년 11월에 정직을 당하고 2025년 5월 말에 중앙군사위 공식명부에서 갑자기 이름이 사라진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정직당한 뒤 실각한 먀오화 전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  일본경제신문 6월 4일

 

시진핑을 빼면 지금 중앙군사위에서 그와 동년배의 유일한 생존자는 장여우샤 부주석뿐이다. 일극의 권력집중에 성공한 시진핑도 ‘붉은 귀족’으로 불리는 홍2대(紅二代) 홍3대(紅三代)의 ‘태자당’의 단결과 지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태자당 출신 장여우샤의 권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통제범위를 벗어났다는 그가 시진핑 이후 집단지도체제가 부활할 경우 군부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당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왕양, 정부(국무원) 총리는 정협 부주석을 지낸 후춘화 등 공청단파 인사들이 맡게 될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2022년 제20차 공산당대회를 거쳐 새로 구성된 중앙군사위 위원들은 모두 7명이었으나 지금까지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4명이다. 이들 중 시진핑을 예외로 하면 군 출신 위원은 3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당대회 뒤 3년도 지나지 않아 중앙군사위원 절반 가까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들 외에 군 내에서 시진핑파 핵심인물로 간주되고 있던 동부전구사령부 린샹양 사령관 등 각 전구 사령부 사령관, 정치위원 등의 요직을 거친 다수의 다른 장군들도 잇따라 행방불명 상태인데, 정식으로 발표되진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25년 6월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회담에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여름 다보스'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신흥 강국 연례 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이다. 2025.6.27. EPA 신화 연합

 

첨단기술산업 분야 부진도 시진핑 지반 약화 요인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시 주석 체제하의 국가주도 투자계획이 계획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점도 시 주석 권력 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정부는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전기 자동차, 친환경 기술과 같은 첨단기술 분야 개발에 수백억 달러를 투입했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예컨대 2024년 중반에 시 주석은 반도체 등 특정 기술분야에 450억 달러를 투자하는 ‘빅 펀드 3’을 승인했다. 이는 2014년과 2019년에 승인된 두 차례의 펀드 설립에 이은 세 번째 펀드였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소련식 산업정책'(Soviet-style industrial policy)의 부활은 기대했던 돌파구를 열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돈을 보고 몰려든 자들의 부패가 만연했다. 대형 반도체회사 칭화유니그룹의 자오웨이궈 전 회장이 지난 5월 부패와 횡령죄로 사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자오웨이궈는 정부가 조성한 대형 펀드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회사들의 대형 부패사건들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그 많은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중국 반도체 기술이 여전히 외국 기술에 지속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정부가 올해 초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는 조치가 발동되기 전에 200억 달러 이상의 칩을 수입하려고 아우성을 치며 경쟁을 벌인 사실로도 입증된다.

 

전기자동차(EV) 분야도 비슷한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기술개발보다는 당국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격심한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EV업계에서는 2018년 이후 400개가 넘는 EV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이는 EV회사의 80%가 파산해 사라졌다는 얘기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투자, 그리고 가혹한 경쟁과 도태라는 대가를 치르며 살아남은 극소수의 기술 또는 기업이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중국을 최종 승자로 만들 것이라는 중국공산당의 전략은 지나치게 낙관적일 뿐만 아니라, 다수 인민의 이익을 희생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공산당, 공청단파 주도 개혁개방으로의 회귀?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 지도부가 덩샤오핑이 주창하고 후진타오 전 주석과 리커창 전 총리가 이끌었던 공청단파가 주도하는 개혁개방 정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차이나 브리프는 썼다. 당 지도부가 ‘전반적인 우경화’(overall shift to the right)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마오주의 '좌파' 시 주석의 위상이 추락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차이나 브리프는 짚었다.

 

지난 10일에는 인민일보가 첨단기술 기업인 화웨이의 창립자이자 CEO인 런정페이의 글 ‘국가가 개방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国家越开放,会促使我们更加进步)는 글을 실었다. 이 기사에서도 시 주석이나 그의 사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를 개방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는 시 주석의 일극집중 통제체제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사 표시로 보인다. 런정페이의 그런 생각보다는 런정페이의 그런 생각을 인민일보 1면에 제목으로 뽑아 실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내부 기류 변화가 더 주목할만하다.

 

런정페이의 인민일보 1면 기사는 2015년 8월 11일 인민일보가가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글을 1면에 실은 이후 유명기업의 오너 기사를 1면에 실은 첫 기사였다. 2020년에 자신의 엔트그룹을 상하이, 홍콩에 상장하려던 마윈이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공개비판했다가 엄청난 벌과금 등의 제재를 당하고 비즈니스 무대 전면에서 사라져야 했던 사실에 비추면, 통제 아닌 개방을 외치는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CEO 런정페이 기사를 인민일보 1면에, 시 주석과 그의 사상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싣게 한 것은 최근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노선 변화를 짐작하게 하는 인상적인 사례일 수 있다.

 

후진타오 ‘유언’의 반대방향으로 질주한 시진핑

 

닛케이 5월 28일 기사에 나온 “과학적인 정책결정, 민주적인 정책결정, 법률에 근거한 정책결정을 견지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4월 30일 제15차 5개년계획 좌담회 발언은 앞서 지적했듯이 원래 후진타오 전 주석이 2012년 11월 8일 제18차 중국공산당대회 활동보고 연설에서 한 발언이었다. 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공식회의에서 한 마지막 연설이자 공산당원들에게 보낸 일종의 ‘유언’으로, 그는 과학과 민주를 강조한데 이어 “공산당 내의 권력 감독(감시)” “여론에 의한 권력감독”을 강조하면서 “인민이 권력을 감독하게 하라” “권력은 양광(햇볕)에 쪼이면서 공개적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18차 공산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뽑혀 새로운 권력자가 된 사람이 시진핑이다.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그 뒤 파행을 예건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사를 쓴 나카자와 위원은 시진핑 시대인 지금 이 13년 전 후진타오의 “확고하게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전진해 샤오캉사회의 전면적인 실현을 쟁취하자”는 보고문을 다시 읽으니 격세지감이 든다고 했다.

 

지금의 시진핑 시대는 여러 면에서 후진타오 보고서 내용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시진핑식의 권위주의적 ‘톱다운’식 설계,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는 방식 등에서 보듯, 권력의 일극집중은 후진타오가 남긴 정치적 유언의 정반대 쪽으로 향하고 있다.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대회 퍠막일에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시진핑 주석과 후딘타오 전 주석.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후진타오 ‘유언’으로 시진핑 노선 비판한 중국공산당

 

그런데 이런 상황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시진핑이 상하이에서 열린 제15차 5개년계획 관련 좌담회에서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 차세대 공산당을 떠맡게 될 간부들을 상대로 그런 제목의 연설을 한 것은 지난 4월 30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보름이 훨씬 지난 5월 19일이었다. 그날 신화통신과 CCTV가 “일전에(최근에)”라는 구체적인 날짜 불명상태로 제15차 5개년계획에 관한 시 주석의 ‘중요지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 다음날인 20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공산당의 직접적 통제를 받는 주요 관영매체들이 보름이 넘도로 아무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정책결정, 법률에 입각한 정책결정 견지라는, 원래 후진타오가 한 ‘정치적 유언’을 일제히 제목으로 뽑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의도된, 매우 계획적인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비록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유언을 강조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시진핑체제의 권력 일극집중을 후진타오의 그 유언을 빌려 비판하고 민주적 분권과 인민의 권력감시를 강조하기 위한 기획보도들이었고, 기획의 주체는 바로 공산당 지도부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22년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인사정책에 항의하다 인민대회당에서 끌려 나가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난처한 표정의 후진타오 주석과 리커청 당시 총리.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인민대회당서 끌려나간 후진타오가 반격의 기점?

 

후진타오가 권좌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지난 지난 2022년의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은 3기 연임을 확정했다. 덩샤오핑의 집단지도체제 전통에 따랐다면, 시진핑은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대회를 2번 거친 2기 10년(1기=5년) 집권 뒤에 후계자에게 총서기직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1기 5년 집권이 끝난 시점에서 후계자를 내정하고, 다시 5년이 지난뒤 그 내정자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집단지도체제 관례를 거부하고 연속 3기 집권을 했고, 이를 위해 주석직 연임제한 규정까지 바꿨다.

 

그 20차 당대회 때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공산당원들이 모인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전 총서기이자 존경받아야 할 중국공산당 장로는 그들과 세계의 유력 매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진핑 인사정책에 항의하다 두 팔을 붙잡힌 채 끌려 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이 생중계됐다. 그 뒤 공개된 20차 당대회 결정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인사는 공청단파와 상하이파 등 경쟁세력들을 완전히 배제한 시진핑 태자당 일색의 인물들로 채웠다.

공청단파 등이 반격의 날을 벼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인지도 모른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정치적 유언’을 되짚게 한 제15차 5개년계획(2026~2030년)은 2027년의 제21차 공산당대회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기간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기간 중에 열리는 21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영구집권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그가 4기 연속집권하려면 21차 대회에서 다시 형식적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미국 추월 목표 10년 앞당긴 ‘초장기 목표 2035’

 

그가 자신의 정책방향에 반하는 후진타오의 유언을 공식행사에서 발설한 것은 반대세력까지 아우르려는 절대권력자의 여유와 자만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변해버린 당내 역학관계에서 다시 힘을 회복한 공청단과 상하이파 등 반대세력과의 타협 내지는 압박 또는 양보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 서방쪽 관찰자들 시각이다. 즉 시진핑은 남은 3기 집권을 무난하게 마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이는 추측일 뿐 확실한 근거가 있는 얘기가 아니다. 여러 정황상 그럴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2030년까지의 5년은 시진핑이 2017년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한 ‘초장기 목표 2035’ 달성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다. 2035년은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목표년이다. 원래 그 목표년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인 2049년으로 설정돼 있었다. 그런데 시진핑이 2017년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그 목표를 15년 앞당긴 2035년에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식 ‘중국 죽이기’의 출발점

 

2017년이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해다. 그 제1기 트럼프 정권(트럼프 1.0) 때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시진핑의 ‘초장기 목표 2035’와 그 2년 전에 발표된 '중국제조 2025'였다. 트럼프는 불과 18년 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한 시진핑 중국의 야심을 엄청난 도전과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늘의 미중 패권경쟁이 그때부터 본격화됐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이 당파를 초월해 중국을 견제하고 거세해야 할 제1의 경쟁상대로 인식하면서 추가관세 등 거의 무차별적인 보호주의 공세를 펴면서 ‘타도 중국!’을 외치고 있는 것이 거기서 비롯됐다고 보는 건 지나친 단순화일까.

 

덩샤오핑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회귀

 

그런 미국의 ‘과잉 대응’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국 국내정책 실패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시진핑의 대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압축성장 노선이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보고 수정하려 하고 있다고 보는 외부 관찰자들이 있다. 이것은 이른바 기대섞인 ‘서방의 시각’일 수 있다. 하지만 차이나 브리프나 닛케이의 지적대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부동산경제 붕괴 이후의 중국은 깊어가는 난관을 벗어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까지 받고 있다. 중화주의 ‘중국몽’을 단기간에 실현하겠다는 첨단기술 개발과 수출 중심의 조급한 성장전략과 군비확장보다는 민생과 인민의 복지 증대를 통한 국내소비 확장도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고,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최근 변화 조짐은 바로 그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시각들이 있다.

 

최근 후진타오, 리커창의 공청단 계열 또는 독립파로 간주되는 원자바오 전 총리, 나아가 장쩌민 시대의 주룽지 전 총리 계열,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 더 크게 뭉뚱거리면 덩샤오핑의 실용주의계열의 왕양, 후춘화 등 시진핑 일극체제에서 소외당했던 인사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고 그들이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다는 관측이 있다. 이 또한 ‘서방적 시각’이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겠지만, 달리 중국 내부사정에 접근하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 한승동 기자 >

트럼프의 “다음주 대화” 발언에 선 긋기
하메네이, 휴전 후 첫 연설 “미국에 승리”

 
 
22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51차 이슬람협력기구(OIC) 외교장관회의에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AFP 연합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미국과의 협상과 관련해 어떤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날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다음 주 이란과 대화”가 합의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26일(현지시각) 이란 국영 이란이슬람공화국방송(IRIB)의 채널인 이린(IRI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핵 협상을 재개할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 재개에 대한 어떠한 합의나 약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그들이 협상을 배신한 불편한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우리의 향후 결정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협상을 재개하는) 결정은 이란 국민의 복지에 기반한 것이며 감정이나 피상적이거나 일시적 고려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방송 영상을 공유하며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까지 협상 계획이나 의제는 없고, 협상 대표단도 구성되지 않았다”라며 “5차 간접 회담에서 그들은 우리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제안을 제시했다. (중략) 우리는 이 제안이 수용될 수 없고 다음 회담에서 우리만의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알렸다”며 “우리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지속과 제재 해제라는 두 가지 핵심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게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오만의 중재로 지난달 23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5차 핵 협상은 농축 우라늄 등을 둘러싼 양국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합의를 이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이후 이달 15일 6차 회담 개최를 이틀 앞둔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 공격하며 12일 동안 교전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핵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란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26일(현지시각)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슬람 공화국의 창시자인 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초상화가 걸린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26일 휴전 이후 처음으로 이란 국영 이란이슬람공화국방송(IRIB)에 등장해 “미국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란-이스라엘 교전에) 개입했다”며 “하지만 미국은 이 전쟁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이슬람공화국(이란)은 승리를 거뒀고 미국에 엄청난 모욕을 안겼다”고 말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 등을 공습하고 주요 군 지휘관을 암살해 양국 교전이 시작된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하 비밀 장소 등에 은신해왔을 것이라고 서방 언론들은 추정해왔다. 교전이 계속되고 있을 당시인 지난 19일 이란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영상 연설을 했다.   < 최우리 기자 >

 

이스라엘 국방장관 “하메네이 암살 시도…깊이 숨어 기회 없어”

“제거에 미국 허가 필요하지 않아”

 
 
지난해 11월 7일 이스라엘 카츠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이스라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하메네이 사살 관련해 미국의 승인을 구했는지 묻는 말에 ‘미국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26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채널13과의 인터뷰에서 카츠 장관은 “하메네이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면 우리는 그를 제거했을 것”이라며 하메네이의 위치를 많이 수색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보도했다.

 

카츠 국방장관은 칸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우리의 시야에 있었다면 그를 데리고 나갔을 것”이라며 그를 죽일 계획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하메네이가 이를 알고 지하로 매우 깊숙이 들어가 우리에게 발각된 군 지휘부와도 연락을 끊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카츠 장관은 하메네이를 죽이는 작전에 대해 미국의 승인을 받았는지 묻는 말에 “이런 일에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카츠 장관은 이스라엘 내각 내 극우파 중 한 명으로 이번 충돌 과정에서 하메네이 제거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하메네이를 ‘현대판 히틀러’라고 부르며 “(그는) 더는 존재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휴전을 한 뒤인 26일 채널13과의 인터뷰에서는 하메네이를 사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휴전 전과 후는 차이가 있다”면서도 하메네이에게 “벙커 깊숙한 곳에 머무르길 바란다”며, 지난해 이스라엘이 지하 은신처를 폭파해 제거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마지막과 비유했다. 휴전 이후 직접 공격 대상으로 삼지는 않더라도,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25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이란 대사관 밖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휴전을 기념하기 위한 집회에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깃발을 든 지지자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왼쪽)와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의 사진을 들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하메네이를 언급하며 “최고지도자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쉬운 표적이지만, 그곳에서는 안전하다. 우리는 적어도 지금 그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는 며칠 뒤 입장을 바꿔 정권 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카츠 장관은 또 이스라엘이 필요한 경우 공습을 통해 이란의 핵 또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이후 레바논을 공습하며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킨 상황과 비교했다.  < 최우리 기자 > 

댄 케인 미 합참의장 “패트리어트 부대들 한국과 일본에서 파병된 미군”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26일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펜타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알링턴/AP 연합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26일 브리핑을 열고 이란 핵시설을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했다는 행정부의 평가에 의문을 제기한 미국 언론을 비판하며 여론전을 벌였다. 그는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됐다’고 강조했지만 새로운 평가보고서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날 브리핑에선 이란이 미군 기지를 향해 발사한 미사일 요격에 참여한 부대 중 일부가 순환 배치된 주한미군의 패트리어트 포대라는 점도 확인됐다.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은 이날 국방부 브리핑에서 이란이 알우데이드 미군기지를 향해 14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의 요격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 패트리어트 부대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파병된 미군”이라며 “이들은 중부사령부 책임구역 내에서 가장 우수한 미사일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배치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한미는 주한미군 패트리어트 포대 일부를 중동에 순환재배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패트리어트는 요격 고도가 15~40㎞에 이르는 지대공 미사일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40~150㎞) 및 천궁-Ⅱ(15~20㎞)와 함께 한미 연합 방공 체계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케인 의장은 이란의 공격 조짐이 감지된 이후 대부분의 병력은 기지에서 철수했고, 약 44명의 미 육군 병사와 2개 패트리어트 포대가 기지 방어를 담당했다고 전했다. 당시 이들은 이란이 발사한 14발 중 13발을 성공적으로 격추했다. 케인 의장은 “이번 작전은 미군 역사상 단일 작전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패트리어트 교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란이 공습 며칠 전 포르도 지하 시설로 통하는 환기구들을 콘크리트로 덮으려 했다는 점도 소개했다. 케인 의장은 “우리는 그 콘크리트 덮개의 정확한 크기까지 알고 있었다. 첫번째 폭탄이 이를 제거했다. 이후 후속 폭탄들이 통로로 진입해 초속 1000피트 이상의 속도로 지하 복합시설 내부로 내려간 뒤 임무 구역에서 폭발했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에서 헤그세스 장관은 전날 공개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존 랫클리프 등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란의 핵 능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주요 핵시설은 수년간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우리는 새롭게 수집된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언론을 향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실패를 바라는 유전자가 언론에 내재해 있다”며 “반쪽짜리 진실과 왜곡된 정보를 기반으로 사실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추가로 공개한 평가내용은 없었다. 케인 의장은 “우리는 전투를 수행할 뿐 결과를 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다. 평가는 정보기관의 몫”이라며 답하지 않았다.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임무 성공을 주장하면서도 이란이 미국의 공습 전 고농축 우라늄을 다른 데로 옮겼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실히 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본 것(정보) 중에 우리가 그런 장소에서 타격하기를 원했던 것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했다고 시사하는 내용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재차 확인을 요청하자 “내가 검토한 정보 중에 물건들(표적들)이 옮겨졌다거나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는 내용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기지 근처에 있던 차와 트럭들은 환기구를 콘크리트로 덮으려는 작업자들 용이었다”라며 “어떤 것도 시설 밖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무거워서 옮기기 힘들다”고 적었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추모 행진 집회 과정 중 경찰과 충돌
증세반대 시위 60명 희생 1년 만에 또

25일 케냐 나이로비 중심업무지구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고 있다. 이번 시위는 국회의사당 난입으로 이어졌던 ‘Z세대 시위’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EPA 연합
 

동부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증세 반대 반정부 시위에서 60여명이 희생된 지 꼭 1년 만이다.

 

25일(현지시각) 에이피(AP)통신, 영국 가디언, 케냐 매체 ‘케이티엔(KTN) 뉴스 케냐’ 등 외신에 따르면 수도 나이로비를 비롯한 주요 도시 곳곳에서 세금 인상 반대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지난해에 이어 또 일어났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최소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400명이나 속출했다.

 

이날 집회는 지난해 국회의원들의 세금 인상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의회를 습격했다가 목숨을 잃은 시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열렸다. 지난해 6~7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면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최소 60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위는 케냐의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했다.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평화롭게 거리를 행진하던 시위대에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거나 곤봉으로 시민들을 때렸고, 시민들은 정부 비판 목소리를 키우며 거리에 불을 지르거나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사회 각 분야의 단체들이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케냐 법조협회(LSK), 경찰개혁실무그룹, 케냐 의사협회는 “케냐가 직면한 정치적 난국에서 벗어나 대화와 해법을 찾을 수 있길 기도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페이스 오디암보 엘에스케이(LSK) 법조협회장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이미 목숨을 잃 사람들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는 국민이 또 목숨을 잃는 역설이 발생했다”며 “경찰의 만행과 과잉 진압으로 희생된 모든 분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올리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케냐에서는 실업, 정부 과잉 행정, 물가상승 등 다양한 정치 사회적 문제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진 상태였다. 특히 한 교사가 이달 소셜미디어에서 고위 경찰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가 사망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이 이 시위에 참여한 상인을 근거리에서 쏴 죽인 사건이 알려지면서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더 많은 시민이 결집했다.             < 윤연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