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암살 신호탄으로 본격화하는 미국식 파시즘

● WORLD 2025. 9. 23. 12:0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증오의 정치학 - 비극을 이용하는 극우의 선동
언론 장악 시도와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까지

좌파 척결 선포와 '안티파' 테러단체 지정 시도
국경을 넘는 극우 연대와 국제적 반동의 흐름

저항 구심점이 되기 힘든 미국 민주당의 문제
놀라운 유사성 보이는 윤석열과 트럼프 행보

 

월트 디즈니가 소유한 ABC 방송이 트럼프 정부의 위협으로 인해 '지미 키멜 라이브' 방송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인 2025년 9월 18일 시민들이 뉴욕 월트 디즈니 본사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
 

최근 벌어진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붙잡힌 타일러 로빈슨의 정치적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방 수사 당국은 로빈슨과 좌파 단체와의 연계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불분명하고 어지러운 정보들 속에서 '정치적 반대자라기보다는 개인적 불만에 따른 독자적 행동으로 보인다'는 평가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진실은 아직 저 너머에 있지만, 이미 거대한 정치적 폭풍이 미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트럼프와 미국 극우 세력은 진실이 규명되기도 전에 '급진 좌파의 테러'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들에게 증거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서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진 좌파의 증오에 찬 수사가 결국 이런 끔찍한 테러를 낳았다"고 선언하며, 이 비극을 정치적 무기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극우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좌파'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극우 선동가 스티브 배넌은 "이 악마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국외로 몰아내는 것이지 중간 지점은 없다"고 선언했다. 억만장자 극우 인사인 일론 머스크는 "선택은 싸우거나 죽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커크의 죽음은 슬퍼할 비극이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가 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 상황을 "우리 시대의 제국의회 방화 사건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경고한다. 1933년 독일 제국의회 방화 사건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정적을 탄압하고 독재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찰리 커크의 죽음을 이용해 '좌파 척결'을 선포한 트럼프 - 관련 방송 갈무리 

 

지금의 반응과 대응은 수년간 미국의 극우 진영이 공들여 구축해 온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그들은 사회적 갈등이나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적을 악마화하는 데 활용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의 선동에 올라타서, 지금 상황을 '미국을 파괴하는 좌파 세력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전면적 탄압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는 "이 잔혹한 행위에 이바지한 모든 이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조직까지 하나하나 찾아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트럼프 재집권 전에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해 준비한 '프로젝트 2025'의 본격적 실행을 위한 완벽한 명분이 되었다.

 

'프로젝트 2025'는 단순히 공화당 행정부의 정책 제안서가 아니었다. 대통령에게 연방 정부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독립적인 사법부와 행정기관을 무력화하며, 비판적인 언론을 통제하고 말살하려는 치밀하게 설계된 권위주의적 전체주의 체제를 위한 청사진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칼날은 언론을 향하고 있다.

 

ABC 방송의 심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멀이 커크의 죽음에 대한 트럼프의 잘못된 대응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당 방송이 무기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는 "나에게 나쁜 보도만 하는 방송사들의 면허를 취소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프로젝트 2025'에는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장악하여 비판적인 언론사에 대한 보복과 장악을 실현할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공화당은 의회에서 '찰리 커크 추모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그의 기일을 '미국 애국자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는 커크를 국가적 순교자로 신격화하고, 그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반애국적 행위'로 규정하려는 시도다. 백악관에서는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행정부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의회의 견제 없이 군대를 동원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조치다. 이것은 행정부를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이들로만 채워서 법무부, FBI 등 권력 기관들을 완전히 사유화하려는 계획과도 연결돼 있다. 또한, 국내 법 집행에 군대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반란법'의 적극적인 활용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비판 이후 방송이 무기한 중단된 지미 키멀 쇼

 

이미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부터 이민자 단속, 시위 진압 등의 명분으로 경찰력뿐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해왔다. 지난 8월부터 LA와 워싱턴 DC에 1만 명 이상의 주방위군을 투입해 '이민자와 범죄 단속' 명분으로 사용했다. 멤피스와 시카고에서도 "거리의 군사화"가 진행 중이다. 연방 판사는 이것이 "국내 법 집행에 군 사용 금지 원칙 위반"이라고 판결했으나, 트럼프는 아랑곳이 없다.

 

커크 암살 사건을 계기로 '좌파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이러한 군사력의 국내 투입이 더욱 노골화되고 정당화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티파(Antifa)'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려는 시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찰리 커트 암살과 '안티파'가 연결돼 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에게는 그것도 역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사실 '안티파'는 명확한 조직이나 지도부 없이, 파시즘에 반대하는 다양한 개인과 그룹을 아우르는 추상적 개념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그러한 추상성과 모호함을 이용해서 반대파 전체를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활동을 '테러'로 규정하여 탄압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의 파장은 미국 국경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극우 세력에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위한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며, 국제적 결집과 연대의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헝가리의 극우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 영국의 극우 인종주의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프랑스의 신나치 마린 르펜 등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은 찰리 커크를 애도하면서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좌파의 폭력성'을 규탄했다. 이는 각국에서 이민자, 소수자, 급진좌파 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다.

 

실제로 영국 런던에서는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인 10만 명 이상의 극우 시위대가 결집해서 행진하며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국제적 극우의 결집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어게인', '스탑 더 스틸'을 외치며 재기를 노리던 한국 극우 세력은 트럼프의 방식을 모방하여 찰리 커크를 추모하면서 반격과 결집의 기회로 삼고 있다.

 

결국 커크 암살 사건은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극우적 반동의 길로 치닫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막아 세울 힘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미국 민주당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저항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는 34%에 불과했다.

 

무당층의 지지율은 27%까지 떨어졌다. 민주당이 미국 시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폭주에 대해 원론적 비판을 내놓고 있지만,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고 실질적 저항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들의 대응은 종종 법적 절차와 의회 내 협상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  

 

다가오는 뉴욕 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민주적 사회주의' 조란 맘다니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것은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트럼프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하고, 민주당이 기득권 엘리트 정당이라는 이미지만 강화하며,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 특히 젊은 층과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민자 추방은 민주당 정부에서도 진행됐던 일이고, NAFTA 같은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앞장서 도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됐던 일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트럼프 비판은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민주당과 월가의 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통해서 망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퓰리즘적 선동으로 그 빈틈을 파고든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반트럼프 저항 운동의 실질적 동력은 민주당 안팎의 왼쪽에서 더 잘 찾아볼 수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하원의원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트럼프와 그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급진적인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언론 인터뷰, 소셜 미디어, 대중 집회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를 끊임없이 폭로하고 비판하며 노동자, 청년, 이민자, 소수자 등 기존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을 조직하며 저항의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있다. 지미 키멀의 방송 중단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민주당 주류가 제시하지 못하는 명확하고 날카로운 반대 논리와 대안을 제시하며, 트럼프 시대의 암울한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의 무기력함은 역설적으로 민주당 안팎의 저항 세력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미국 정치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미국인이 42%에 달했으며,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74%까지 치솟았다. 이는 냉전 시대의 유물인 '사회주의=악'이라는 낡은 등식을 넘어, 불평등과 기업의 탐욕에 지친 많은 미국인이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 속에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도 있는데, 그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바로 다가오는 11월 뉴욕 시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뉴욕주 하원의원 조란 맘다니다. 우간다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33세의 맘다니는 '집세는 너무 비싸고, 봉급은 너무 적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로 뉴욕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미 곳곳에 군대를 투입해 온 트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관련 방송 갈무리 

 

그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뉴욕의 거리 곳곳을 누비며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치솟는 임대료와 부족한 보육 시설 문제를 지적하고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캠페인은 트럼프의 증오와 분열의 정치에 맞서, 연대와 희망의 정치가 승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와 극우 세력의 집중적 공격도 받고 있다.

 

현재 2위 후보를 20%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고 있는 조란 맘다니가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시장으로 당선된다면, 이는 반트럼프 저항 운동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반동적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민주당 주류의 어설픈 중도 노선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급진적 변화의 약속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지금 보이는 모습들 -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언론 장악 시도, 법치주의의 무력화, 군과 경찰을 동원한 공포 분위기 조성 - 은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걸어갔던 길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 두 사람은 민주적 절차에 대한 경멸, 비판 세력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통치 방식을 공유한다.

 

윤석열은 집권 이후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뉴스'로 매도하며 압수수색과 고발을 남발했고, 방송통신위원회를 동원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시도했고, 노동조합을 '건폭'으로 규정하고, 시민단체를 '이권 카르텔'로 몰아세우며 사회 곳곳의 반대 목소리를 짓밟았다. 윤석열 12.3 쿠데타 이전에 4년 전 미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가 있었다.

 

윤석열이 '종북 반국가 세력'을 들먹였듯이 트럼프는 '안티파'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려 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통치 방향은 국경을 넘어 놀랍도록 닮았다. 이것은 만약 트럼프의 시도가 성공할 경우, 한국 사회가 마주할 미래를 암시하는 불길한 전조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성공은 '윤어게인'을 외치는 한국의 극우 세력에게 엄청난 용기를 줄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지금 한국에 '25%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감수하거나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날강도 같은 깡패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앞에서 한국은 언제든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결국, 트럼프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한 나라의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린 시험대이다.

 

한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윤석열의 쿠데타에 맞서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빛의 혁명'의 경험은 미국 시민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서 서로의 경험을 배우고, 서로의 투쟁을 지지할 수 있다. 우리의 싸움은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연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전지구적 투쟁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                                                              < 전지윤 기자 >

 

 

미국 방조에 두 번 폭격 맞은 동맹 카타르 선택지
미국 신뢰 직격타…"카타르, 어떤 형태든 보복 고민"

이스라엘, 이란도 카타르도 '협상 중에' 불법 공격
"이스라엘, 거절 힘든 협상 제안받기 전 시점 선택"

알타니 카타르 총리, 15일 백악관서 트럼프와 회동

 

"이란은 워싱턴과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을 준비 중일 때, 그리고 카타르는 하마스가 트럼프의 가자 휴전 제안을 숙고 중일 때 공격당했다. 최근 미국 외교의 목적은 주요 당사자들을 모이게 한 뒤 이스라엘이 그들을 더 쉽게 죽이도록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미국 해군 출신인 제임스 더르소 국제평론가는 '카타르, 미국의 안보 우산 재고'란 16일 자 <유라시아리뷰> 기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무법적인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선제공격(6월 13일)과 휴전 중재국 카타르(9월 9일) 폭격을 '묵인' 또는 방조'하고 사후엔 '지지'하는 패턴을 이렇게 논평했다.

 

이스라엘은 9일 오후 하마스 정치국원들이 거주해온 카타르 도하 카타라 지구의 주거용 건물을 폭격했다. 2025. 09. 09 [로이터=연합]

 

​​​​​​​카타르, 수년간 미국에 온갖 호의 베풀고도
트럼프 방조로 두 차례 공격받는 굴욕당해

 

더르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부 제거를 구실로 또다른 동맹국 카타르를 공습하는 걸 '사전에 통보받고도' 묵인한 행동이 카타르에 깊은 내상을 입히고 미국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주요 비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MNNA)이자 미국 방산 장비의 주요 고객이다. 더르소에 따르면, 카타르는 최근 몇 년간 △ 미국과 이스라엘의 묵인하에 하마스에 재정 지원 △ 미국-탈레반 평화 회담 중재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재정착 시설 제공 △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 중재 △ 세계 최대의 해외 미 공군 주둔 기지인 알우데이드 공군 기지 제공과 업그레이드 △ 임시 미 대통령 전용기로 트럼프에 보잉 747-8 항공기 선물 △ 보잉 항공기 210대와 GE 에어로스페이스 엔진 400개 이상 구매 합의 △ 최소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 교류를 창출할 협정 체결(백악관 추산)을 포함해 미국에 온갖 호의를 베풀었다. .

 

카타르에 돌아온 건 무엇인가? 굴욕뿐이었다는 게 더르소의 생각이다. 지난 6월 21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 내 알우데이드 공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 그리고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 등 불과 지난 3개월간 두 차례 공격당했고 미국의 안전보장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트럼프가 '유감'을 표하고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카타르와 방위 협력 협정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이스라엘이 다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지만, 카타르 측이 보기에 '사후약방문'일 뿐이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15일 "하마스가 어디에 있든 면책 특권은 없다"고 트럼프의 말을 즉각 부인하면서 트럼프는 체면을 구겼다. 이와 관련해 카타르는 지난 8월 이스라엘과 미국에게서 카타르 내 하마스 요원들을 표적으로 삼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 마이크 허커비,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 그리고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왼쪽부터)가 14일 예루살렘 구시가에 있는 유대교의 가장 신성한 기도 장소인 통곡의 벽을 방문했다. 2025. 09. 14 [AFP=연합]

 

카타르 공격, 굳이 왜 이 시점이었나?
"거절 힘든 휴전 협상 제안받기 전에"

 

더르소는 이스라엘은 카타르 도하에 거주하는 하마스 정치국 지도부에 대한 기습 공격을 왜 이 시점에 감행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하마스가 트럼프의 가자 휴전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커지자 극우 유대 광신 네타냐후 정권이 휴전을 막고 무한 전쟁을 지속하고자 그 시점을 택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S. 라자랏남 국제관계대학원의 제임스 도르시 교수는 "지난 6주간 하마스는 중재자들인 카타르, 이집트, 미국의 제안에 대부분 동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르소는 "이것이 이스라엘이 공격을 감행하도록 부추겼을 수 있다.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받기 전에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더르소는 전 이란 외무장관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의 "평화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실존적 위협"이란 발언을 인용하며 네타냐후는 이 지역에 미국이 계속 관심을 갖게 하려면 지역에 긴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풀이했다. 네타냐후에게 휴전은 10·7 하마스 공격 허용 책임과 개인 비리 혐의로 인한 법정 출두를 뜻하기 때문이다.

 

더르소는 이번 사태로 "워싱턴은 공모했거나 무능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뭔 짓을 하든 지지하겠다는 걸 세상에 주입함으로써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네타냐후는 가자 휴전 협상을 죽이고 미국의 안보 보장을 무의미하게 만들 준비가 돼 있으며, 자신의 미국 내 시온주의 공모자들이 트럼프를 올바른 길로 계속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게 네타냐후의 정치연합을 보호하고 미국 무기도 계속 지원받겠지만,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오랫동안 끝날 공산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가운데)가 15일 수도 도하에서 열린 아랍-이슬람권 긴급 정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5. 09. 15 [QNA=로이터=연합]

 

"안보 보장국으로서 미국 신뢰성에 직격타"
인남식 "카타르, 어떤 형태든지 보복 고민"

 

카타르 공격은 예배 중인 하마스 지도부를 "참수"하려는 것이었지만 실패했다. 이에 더르소는 "이스라엘은 이 지역의 안보 보장국으로서 미국의 신뢰성을 직격했다. 이스라엘은 전술에선 탁월하나 전략에선 무능함을 입증했다. 하마스는 이제 미국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에 미국이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만, 카타르는 당장 워싱턴과의 관계를 끊고 다른 안보 파트너를 찾거나 가자의 휴전 협상 중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카타르가 이대로 당한 채 가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더르소는 보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도 10일 자 페북 글을 통해 "가자와 테헤란이 아닌 이번 도하 공습은 그 부정적 여파가 작지 않을 것이다"라며 "카타르는 여타 걸프 국가와 달리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세력을 움직이고 동원할 수 있는 여력과 네트워크를 가진 나라다. 탈레반과 하마스, 무슬림 형제단 등을 포용하는 유일한 걸프 국가다. 어떤 형태든 보복을 고민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카타르는 아랍에미리트(UAE)에 텔아비브의 대사관 폐쇄를 요청했으며, 카타르의 모하메드 빈 압둘라만 알타니 총리 겸 외무장관은 "네타냐후가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알타니 총리는 1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참석해 "허세 가득한 극단주의자들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어떠한 경계나 한계도 넘어섰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비난하며 국제사회의 긴급 행동을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영국 에일즈베리에 있는 영국 총리 별장인 체커스에 도착했다. 2025. 09. 18 [EPA=연합

 

카타르 총리, 15일 백악관서 트럼프 회동
이스라엘 옹호 일관 때 카타르 선택지는?

 

그리곤 12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예전과는 달리 카타르 공격 규탄 안보리 규탄 성명에 동참했지만 '이스라엘' 이름 명시를 막았으며, 트럼프는 평소와 달리 알타니 총리와의 회동에 대한 '트윗'을 자제했다. 이에 더르소는 "급기야 트럼프가 카타르 공격의 진짜 (부정적) 결과를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더르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이스라엘 옹호 일변도로 계속 갈 경우 카타르의 선택지로 △ 상업용 항공기와 엔진 거래 시 에어버스와 유럽 엔진 제조업체에 개방 △ 중국의 영향력이 큰 상하이협력기구(SCO)와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 가입 고려 △ 하마스 재정 지원 합의와 미국·이스라엘의 역할 관련 기록 공개 △ 보유하고 있는 미 재무부 채권 청산과 금 매입 △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이집트, 튀르키에 등 다른 안보 파트너 물색 △ 미국-카타르 전략적 파트너십 재검토 △ 알우데이드 공군 기지의 미군 주둔 재검토 등을 제안했다.

 

더르소는 "트럼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아브라함 협정은 물 건너갔고, 그의 임기 동안 중동 평화 협정은 없을 것이며, 그는 노벨 평화상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네타냐후에 '끌려다니는' 트럼프를 비판했다.                              < 이유 기자 >

 

 

미국 승인 등에 업은 듯 이스라엘, 지상전 감행
20분간 37건 공습…“불의 띠 도시 가로질러”

1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를 떠나 남쪽 지역으로 피난을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이 국제사회가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며 비판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시티 지상 작전을 강행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지지와 승인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떠난 뒤인 15일 심야부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고, 이후 가자시티 중심부인 알잘라 거리에 이스라엘 탱크들이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아파치 헬리콥터가 도시 상공을 맴돌면서, 연달아 사격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팔레스타인 목격자들은 20분 동안 37건의 공습이 이뤄졌으며, 도시 북서쪽을 가로질러 ‘불의 띠’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가자시티 작전에 앞선 15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부 고위 인사들은 루비오 장관과 회동했으며, 네타냐후 총리는 이 회담에서 가자시티 침공에 대한 미국 정부의 동의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이스라엘 관료들을 인용해 “루비오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상작전을 지지하지만, 가능한 한 신속히 실행해 끝내길 원한다고 네타냐후에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날 이스라엘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들을 땅굴에서 가자시티 지상의 주택과 천막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공격은 그대로 진행됐다. 한밤중의 습격에 놀란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잠든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와 가재도구를 실은 수레를 끌고 급히 피난길에 올랐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특별보고관은 가자시티 공세를 두고 “가자지구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이라고 비판했다.

 

1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서 이스라엘군이 파괴된 건물 위로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AP 연합
 

이스라엘군은 지난 5월 가자지구 점령을 뼈대로 한 ‘기드온의 전차’ 작전을 시작해, 가자지구 75% 이상을 점령했다. 지난달 20일부터 가자시티 점령을 목표로 한 ‘기드온의 전차 2’ 작전도 개시했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 외곽 지역을 공격하며, 중심부 고층건물을 연달아 파괴해 가자시티의 100만 주민들에게 피난을 떠날 것을 압박해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점점 커지자 최근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도 비판 여론이 커져왔다. 오는 23일 유엔 총회에서 프랑스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벨기에 등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하겠다며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내각은 국제사회 우려뿐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내각 일부와 군의 반대에도 휴전 협상의 판을 깨고 인질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가자시티 점령과 협상 중재국 카타르 공습을 강행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서유럽 국가들의 비판 여론 증가 등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이 국제적 고립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슈퍼 스파르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이스라엘로 미국 50개 주 주의원 250명을 초청해서 연 ‘50개 주-1개 이스라엘’ 콘퍼런스에서 “이건 일종의 고립이다. 자급자족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앞으로 수년간 우린 아테네나 슈퍼 스파르타가 될 것이다.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다. 스파르타는 강한 군사력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자급자족 경제를 꾸리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다.

                                                                         < 김지훈 기자 >

 

가스관 진입해 전기 스쿠터와 바퀴를 달아 개조한 들것 타고 약 4일 동안 가스관 통과

 

 
 
지난 1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코스탼티니우카의 주거용 건물이 러시아 공습을 받아 파괴된 모습. AP 연합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주의 요충지 쿠퍈스크에 지하 가스관을 타고 침투했다. 이 도시가 러시아 손에 떨어지면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와 남동부 도네츠크 등이 더욱 크게 위협 받는다.

 

13일(현지시각)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분석하는 우크라이나 기관 ‘딥스테이트’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러시아군은 쿠퍈스크에서 동쪽으로 8km 떨어진 점령지 리만 페르쉬이에서 가스관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쿠퍈스크 북쪽 마을 라드키우카까지 우크라이나군에 들키지 않고 관을 타고 이동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군은 쿠퍈스크와 리만 페르쉬이를 가르는 자연 방어선인 오스킬강을 땅 속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이날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은 가스관에 진입해 전기 스쿠터와 바퀴를 달아 개조한 들것을 타고 약 4일 동안 가스관을 통과했다”고 전했다.

 

라드키우카에서 관 밖으로 나온 이들은 쿠퍈스크 외곽 삼림지대를 통해 이 도시 및 주변 철도 노선으로 진격한 상태다. 이들은 이미 쿠퍈스크 내부에 드론 조종 은신처까지 세워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쿠퍈스크와 외곽 지역은 우크라이나군의 통제 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쿠퍈스크 북쪽에 집결한 러시아군이 늘면서 도시 외곽 전투가 치열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퍈스크는 수도 키이우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하르키우(하르키우주의 주도)로부터 동쪽으로 104km 떨어져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러시아군에 점령됐다가 그해 9월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바 있다. 이곳이 재차 러시아군에게 넘어가면 하르키우가 받는 군사적 압박이 커진다.

 

또 쿠퍈스크 남쪽으로는 이 전쟁의 격전지인 도네츠크주의 크라마토르스크·슬로우얀스크가 있다. 우크라이나가 쿠퍈스크를 뺏기면 도네츠크주는 남쪽·동쪽에 이어 북쪽으로도 러시아군에 포위된다.

 

한편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무인기)를 피해 ‘지하 침투’를 늘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군은 앞서 2024년 1월 도네츠크주의 요새화된 도시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할 때도 지하 하수도를 타고 방어선 뒤쪽으로 침투한 바 있다. 지난 3월 쿠르스크주 수자에서도 지하 파이프라인으로 잠입을 시도했다.

 

전쟁연구소 보고서는 “파이프라인을 통한 침투 전술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발달에 직면한 러시아 부대들이 현장에서 전술적 혁신과 적응을 한 결과”라며 “파이프라인은 러시아군에게 은·엄폐를 제공해 전진을 가능케 한다”고 분석했다.                    < 천호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