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날강도 깡패짓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 WORLD 2025. 8. 24. 15:2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중국 추격에 동맹국 강탈로 대응하는 미 정부
뒷골목 깡패짓에 굴복 말하는 국힘과 족벌언론
신의 한 수였다는 MASGA, 새로운 족쇄될 수도

정상회담에서 더 많은 청구서 내놓을 트럼프
약육강식으로 가는 국제질서 속 새로운 길 찾기

 

지난 한미 관세 협상은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만이 아니라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강탈도 존재하며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이미 약소국에 대한 침략, 전쟁, 자원과 영토 강탈, 인디언 학살, 흑인 노예 수탈 등을 거치며 세계 최강대국 패권을 얻었던 미국은 오늘날 경쟁 대국인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지금 제조업의 침체와 무역수지와 연방 예산의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 속에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패권 상실의 위기를 다시 날강도 같은 강탈을 통해 벗어나려 한다. 패권을 과시하면서 이전 동맹국과 표적이 된 상대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관세 전쟁'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는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
 

장하준 교수는 트럼프 정권이 보호무역주의로 질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유치산업 보호는 어린 기업, 약한 기업을 보호하는 것인데 다 늙은 아들에게 다시 돈 대주겠다는 격이다. 그 아들이 그간 빌빌거린 이유는 사업도 제대로 안 하고, 기업에 투자할 돈 다 빼서 놀러 다녀서 그런 거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높은 관세를 강요하는 것은 "동네 깡패들이 가게를 뒤집어엎고 '그동안 내던 돈을 5배로 내라, 10배로 내라’면서 야구 방망이로 집기를 부수고 있는 상황"으로 비유했다. 미국이 이번 관세 협상에서 한국에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제조업 재건을 위해서 한국 제조업 생태계와 산업 기반, 식량주권의 훼손을 감수하라는 강요였다.

 

그리고 한국의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은 '큰형님 기분 상하지 않게 돈이든, 쌀이든, 쇠고기든 빨리 다 내주자'라고 난리였다. 형식과 내용 모두 뒷골목 깡패를 방불케 하는 미국 트럼프 정권의 무자비한 관세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데, 국내의 정치세력과 족벌언론들은 ‘깡패짓’에 대한 순응과 굴복을 설파했던 셈이다.

 

브라질이나 일본에서는 우익까지 '반미'로 돌아서며 정권을 지지하고 응원하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관세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비관적 예상들과는 달리 트럼프 정권에게 상대적으로 덜 뺏기고 쌀과 쇠고기까지 지켜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을 마무리하며 난데없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라는 입장까지 밝혔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협상 막전막후를 전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마스가 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2025.8.3. KBS뉴스 화면 갈무리

 

이것은 '트럼프가 곧 한국의 부정선거를 지적하며 이재명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있던 이 나라의 '윤어게인' 극우세력들에게 실망과 멘붕을 일으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가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마스가)' 제안이 중요했다는 게 많은 이들의 평가다.

 

MASGA라는 조선업 협력 패키지를 제안하고,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조선업 투자 계획을 제시하면서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국은 현재 대양 항해 선박을 1척도 만들지 못하는 처지다. 2023년에 중국은 3300만 톤 , 한국은 1800만 톤의 선박을 건조했지만 미국은 6만 4800톤에 불과했다.

 

MASGA는 이처럼 쇠락하는 미국의 해양 패권을 되살릴 수단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물론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당시에 트럼프는 '소아성애 성폭력 범죄자 엡스타인 리스트' 파문으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와 마가MAGA 진영의 분열에 직면해 있었다. 한국 협상팀이 그런 상황을 잘 활용했다면 현명한 대응이었다고 평가할만하다.

 

농업시장과 쇠고기 수입 개방을 압박하는 미국에게 한국 협상팀이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항의 시위'의 사진을 보여준 것도 매우 타당하고 효과적인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출범 한 달 만에 당시 이명박 정부를 퇴진 위기로 내몰며 한미동맹을 뒤흔든 역사적 투쟁이었고, 오늘날 '빛의 혁명'의 뿌리였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노 킹NO KING'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의 불길에 시달리고 있던 트럼프는 한국에서 그런 거대한 투쟁이 다시 벌어지고 미국까지 정치적 파장이 끼치는 것을 우려했을 법하다. 하지만 관세 협상은 끝이 아니었고 한미 정상회담이 코 앞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에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한반도 역외로 확장하는 '한미동맹 현대화', 국방비를 GDP 대비 5% 증액, 주한미군 분담금 100억 달러로 인상 등을 요구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관한 정상회담을 연 뒤에 가진 합동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2025.8.15. AFP 연합
 

트럼프의 이러한 '안보 청구서'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동참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에 더욱 종속될 것이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그것은 대중국 경제 협력에도 타격을 가하면서 후유증과 악영향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관세 협상에서 '신의 한 수'로 평가하는 MASGA 제안은 역설적으로 이미 거기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

 

MASGA 프로젝트에는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군함 유지보수 및 조선 공급망 재구축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통해서 한국은 미국의 군사 전략 및 방산 시스템에 더 깊숙이 편입되며 미국 국방 산업의 하위 파트너가 될 위험이 존재한다.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한국의 산업 역량이 동원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만든 선박이 미군 작전에 쓰일 경우 군사적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경고했다. 특히 MASGA 프로젝트의 주력 기업인 HD현대는 이미 미국의 첨단 방산 기업인 '팔란티어'Palantir와 협력하고 있는데, 팔란티어는 군함의 작전 운용과 군수 지원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팔란티어는 미국 세계 패권과 군사 전략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최근에는 AI·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악명 높다. 결국 한국의 조선 및 방위 산업이 팔란티어를 매개로 미군의 군사 전략에 종속되면, 그것의 부작용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감당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매우 힘겨운 고비로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국내에서 '이재명은 반미주의자'라고 낙인찍는 족벌언론과 국민의힘의 방해 속에서 막무가내로 날강도처럼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우기는 트럼프를 상대해야 한다. 국내외 정세가 만들어내는 틈을 최대한 이용하고, 모든 협상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최대한 덜 뺏기고 지키며, 조금이라도 더 얻어와야 할 처지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다른 무역 상대를 찾겠다고 답하는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 방송 화면 갈무리 

 

물론, '규칙에 기반한 세계 질서'나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간판과 신화마저 팽개치고 노골적인 강탈적 제국주의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트럼프의 시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유지될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트럼프가 바라는 미국 제조업 부흥, 쌍둥이 적자 해결, 중국 추격의 봉쇄가 아니라 미국 패권의 더 급속한 쇠락만 낳을 수가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관세 전쟁'에서 막상 중국에 대해서는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흥과 제품 공급망을 위한 핵심 요소인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제한 카드가 등장하자 곧바로 관세 압박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더욱더 힘없고 만만한 국가들에 대한 협박과 강탈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국제질서를 더욱 약육강식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보듯이 1차 대전 이전에나 있었던 무력을 통한 영토 강탈과 강대국들의 거래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트럼프가 결국 제국주의 시대의 부활을 꿈꾸며 타국을 침략하게 될지 모른다'라는 섬뜩한 예측까지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협상 기술만이 아니라 강대국들에 협박과 압박에 맞서는 국가들의 협력과 세계 남반구 민중의 더 큰 연대일 수 있다. 예컨대 남미의 대표적인 진보 정부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는 중요하지만 우리는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주권국가다.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맞서고 있다. 

 

올해 3월에 미국의 관세 압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조직하고 그것을 트위터에 게시한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그러면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유럽(EU–메르코수르), 브릭스BRICS, 기타 신흥시장(아세안 등)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려온 멕시코 진보정부의 여성 대통령인 셰인바움도 "대화는 하되 끌려다니지 않겠다"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셰인바움은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부르자'라는 트럼프에게 "미국의 국호를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꾸는 건 어떠냐"라고 응수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압박이 가장 심각했던 지난 3월에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형 광장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어서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20년 전 '반미 집회'의 사진을 보여주던 한국 정부 협상팀의 방식보다 한 발 더 나갔던 셈이다. 또한 캐나다나 중국 등과의 무역 연계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주도하던 '대서양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이제 파산하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막기는커녕 그것을 지원하고 묵인하면서 '민주주의와 인도주의'라는 명분과 가면은 벗겨지고 있었다. 트럼프 시대에는 그것의 마지막 유산까지 사라지고 있다. 이럴수록 과거의 동맹과 외교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롭고 대담한 접근이 필요해지고 있다.                                              < 전지윤 기자 >

 

13차례 방류 불구…오염수는 원전 폐로 때까지 끊임없이 발생

 

 
 
지난 2023년 8월24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관계자들이 바닷물로 희석한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해저터널로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교도통신 연합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오염수 10만여톤이 해양 방류 개시 2년 만에 바다로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수는 원전 폐로 때까지 끊임없이 발생하는 데다 이를 희석시키는 약품이 또다른 방사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 누리집을 보면, 제1원전 오염수는 지난 2023년 8월24일 첫 방류를 시작한 이후 2년 동안 10만1870톤이 바다로 흘러나갔다. 방류 첫해 3만여톤, 이듬해 5만5천톤, 올해 8월까지 1만6천여톤이 방류됐다. 도쿄전력은 주로 봄~가을에 한달여 간격으로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는, 지금까지 한차례 7800여톤씩 모두 13차례 방류를 완료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을 인체에 무해한 수준까지 제거해 바다에 방류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류 개시 2년이 지나도록 각종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선 한국과 중국 정부는 여전히 오염수 안전성을 우려해 일본 일부 지역의 수산물 수입을 차단하고 있다. 때마침 열린 한·일 정상회담 과정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를 포함한 8개 현의 수산물 수입 규제 조처 해제를 한국에 요구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 수산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며 선을 그었다.

 

원자로 안에서 오염수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누적량이 거의 줄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애초 후쿠시마 원전 내 저장탱크에 오염수는 해양 방출 개시 전 134만5천톤이었는데, 2년이 지난 뒤 5만6천톤밖에 줄지 않았다. 원전 내부에 880톤가량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핵연료 잔해(데브리)가 지하수나 빗물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면서, 매일 오염수가 70톤씩 발생하고 있다. 원전이 폐로되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원전 안에 오염수 저장용기 4768기 가운데 94%가 채워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애초 원전 최종 폐로 일정을 2051년으로 잡았지만,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오염수를 방류하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 또다른 오염물질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약품들이 불순물을 만들어 또 다른 ‘진흙 형태의 고농도 방사성 물질’(오염 슬러지)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쿄신문은 이날 “도쿄전력이 오염 슬러지 발생을 고려해 저장용기를 6백기가량 추가 설치하는 게 가능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기존 용기 자체도 이미 노후화해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일 환경단체들도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사요나라 원전 1000만인 액션’은 이날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집회를 열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2051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며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더는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한국에서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민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헌법소원변호단 등 단체들로 꾸려진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중단을 요구하는 방일투쟁단’이 이날 집회를 찾아 연대에 나섰다. 최예용 한국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한겨레에 “지난 23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의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 요구를 비껴갔지만 후쿠시마 핵폐수(오염수) 해양 투기를 멈추라는 논의를 못 한 점은 아쉽다”며 “한국 정부도 국제협력을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해결을 설득하고, 인류 공동의 미래이자 자산인 바다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 도쿄/홍석재 특파원 >

 

서방에 맹종하다 우크라이나 패전 이끈 젤렌스키
전쟁 범죄자에서 당당한 승자로 자리매김한 푸틴

우크라이나는 자력 회복 불가능한 심각한 피해
국제정세 오판한 호전적 리더십의 젤렌스키 탓

‘이길 수 없는 전쟁’ 고집해 피폐의 길로 이끌어
군복 아닌 정장 갈아입은들 정치 미래 불안할 뿐

지도자는 냉철한 현실인식, 전략적 사고 있어야
리더십 덕목은 무엇보다 국민에 대한 깊은 책임감

 

                                                                         장정수 편집위원, 전 한겨레 편집인

 

길고 처절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침내 종료의 문턱에 서 있다. 세계를 제3차 대전의 공포로 몰아넣으며 지구촌을 전율케 했던 이 참혹한 분쟁이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년 반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계속된 이 전쟁은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서서, 우리가 알고 있던 국제질서의 근간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포성이 멈춘 자리에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의기양양한 승자 푸틴, 국가 붕괴 수준 이끈 패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범죄자로 규정되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기소되고 체포영장까지 발부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제 전쟁의 승자로 부상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종전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개최된 트럼프-푸틴 정상회담은 푸틴의 이러한 위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는 종전 방안에 대해 푸틴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였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극적인 반전이었으며, 푸틴의 외교적 승리를 의미한다. 반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용감하게 저항해온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국의 장래를 결정할 미러 정상회담에 참석조차 하지 못하고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비극적인 패자로 전락했다.

 

트럼프-푸틴 회담 결과는 젤렌스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자력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4천만 인구 중 약 800만 명이 해외로 피난을 떠나 유민으로 떠돌고 있으며, 사망자는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선에서는 군인이 부족해 더 이상 러시아의 공세를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규모는 30% 이상 위축되었으며, 미국의 재정 지원 없이는 공무원 급여조차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재정이 파탄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나 유럽의 지원 없이는 국가적 생존이 불가능한 절망적 상황인 것이다.

 

러-우 전쟁 종전협상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환담하고 있다. 2025.8.25. 로이터 연합

 

젤렌스키의 외세 맹종, 국제정세 오판, 호전적 리더십

 

초강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지 못한 신생국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서방의 사주에 맹종하면서 대러시아 적대 노선을 추진한 대가는 참혹한 전쟁과 국가적 붕괴였다. 트럼프-푸틴 회담의 결과는 표면적으로는 초강대국의 외교가 약소국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실익을 위해 거래한다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참담한 현실을 단순히 러시아의 침공 탓으로 돌려 푸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현실을 망각한 호전적 리더십과 국제정세에 대한 오판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욱 강하다.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초보인 젤렌스키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무시하고 미국 네오콘들의 노선을 맹종하면서 초강대국 러시아를 자극하는 고강도 적대 정책을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젤렌스키는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군사적, 정치적으로 자극했다. 러시아가 국가 존망의 문제라고 인식하며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나토 가입을 공개적으로 추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미국의 대러시아 전진 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하고 나토 가입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경고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나토 가입을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나토와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이 대거 우크라이나에 들어와 전국 곳곳의 군사 요충지에 최첨단 무기를 배치하고 우크라이나군의 현대화 훈련을 실시했다. 서방의 첨단 무기들이 대량으로 우크라이나에 유입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현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군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군사력 증강을 러시아와의 전쟁을 전제로 한 군사화로 인식하고 침공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통령 당선 후 표변한 대러시아 정책이 부른 전쟁

 

그러나 젤렌스키가 처음부터 호전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는 '인민의 종'이라는 정당을 창당한 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 배경에 미국 CIA와 영국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의 정보기관 공작이 있다는 설도 있다. 2019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러시아와의 타협', '내전의 평화적 해결', '부패 척결과 민주주의 강화'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며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국민의 일꾼'에서 대통령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누렸던 젤렌스키는 평화의 슬로건으로 내전에 지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그는 그 바람을 타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대러시아 강경론자인 포로셴코를 약 70대 30이라는 압도적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젤렌스키의 러시아와의 타협 공약은 평화 공약과 함께 러시아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동부 지역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평화와 통합, 국가 단결을 강조하며 러시아와의 평화적 관계, 동부 분쟁 지역의 평화적 해결,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 사용자 간 통합, 국가적 단결 등의 슬로건이 동부 지역 주민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당선 후 이러한 평화 공약을 포기하고 호전적인 러시아 적대 정책으로 선회했다. 러시아와의 대화는 형식적으로만 진행하면서 나토 가입을 추진하며 미국 및 유럽의 군사 지원을 통한 군비 증강 노선을 택했다. 또한 대선 때 자신에게 몰표를 던졌던 러시아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동부 지역에서 주민들의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고 각종 차별 조치를 시행했다. 이에 분노한 동부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이 무장 반란을 일으키면서 정부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문제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자치권 확대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를 요구했으나 젤렌스키가 거부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고, 러시아가 이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마침내 러시아 무너뜨릴 기회 왔다고 착각한 서방 연합

 

젤렌스키가 이러한 대러시아 적대 노선으로 선회한 배경에는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했다. 우선 러시아를 쇠퇴하는 약체 국가로 평가하며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네오콘들의 분석을 맹신했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젤렌스키가 국내 극우 민족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견제를 통한 국가적 위상 제고라는 현실성이 부족한 구상에 매몰된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내심 환영했다. 마침내 러시아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제공한 첨단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초기 침공한 러시아군을 격퇴하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군은 전황 역전에 성공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이때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제안, 터키 이스탄불에서 양국 간 휴전 협상이 열렸다. 이 협상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나토 가입 포기, 현재 전투가 전개되는 전선을 기준으로 한 휴전을 제안했으며, 우크라이나도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서명 단계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때 영국의 존슨 전 총리가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젤렌스키에게 휴전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만남에서 존슨 전 총리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무제한 재정 및 군사 지원을 제공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전쟁을 계속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종전 말리고 전쟁 부추긴 서방의 장단에 놀아난 젤렌스키

 

젤렌스키는 이때부터 '영토 한 치도 내줄 수 없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거듭 표명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전황은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마침내 러시아가 동부 지역 대부분을 장악하고 주도권을 쥔 채 우크라이나 서부로 계속 진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젤렌스키의 선택에 대해 서방은 영웅적 투쟁으로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는 젤렌스키의 정치적 도박에 가까웠다. 러시아라는 군사 초강대국을 상대로 실질적 승리를 거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전황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의 압도적 우세로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휴전과 협상을 거부하고 강경 노선을 고집한 그 결정은 결국 자국민에게 더 큰 희생을 안겼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피폐해지고 인명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서방의 군사적 지원과 제재가 당장의 기대를 키워주었지만, 그것은 근본적 균형을 바꾸지 못하는 환상에 불과했다.

 

젤렌스키의 가장 큰 과오는 '승리 없는 전쟁'을 계속 이어간 점이다. 현실적인 힘의 불균형 속에서 협상과 절충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을 멈추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지도자의 책무다. 그러나 그는 '강경함'이 곧 애국심이라는 허상에 갇혀 타협을 외면했고, 결국 국민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총리가 러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장갑차가 전시된 키이우 거리를 함께 걷고 있다. 2022.8.24. EPA 연합
 

미국 퇴조와 초군사대국 러시아 확인한 트럼프-푸틴 회담

 

트럼프-푸틴의 알래스카 회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 국면으로 급전환한 것은 세계 패권국 미국의 퇴조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대리전을 통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면 곧바로 허약한 러시아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오판했다. 대규모 첨단 무기로 무장한 용맹한 우크라이나 전사들이 러시아군을 쉽사리 패퇴시켜 러시아를 항복시키고 푸틴을 제거하는 이른바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공산 체제 붕괴 후의 '종이호랑이'가 아니었다. 푸틴 체제 하에서 러시아는 핵무기와 미사일 및 대공 방위 체계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핵전력 면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초군사대국으로 거듭났다. 탱크와 포탄, 첨단 드론 등의 생산에서도 미국과 서방의 생산 능력을 압도했다. 미국의 각종 제재 하에서도 러시아는 자립 경제 체제를 구축하면서 유럽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경제가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과 유럽이 총력을 기울여 지원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다. 서방 미디어는 러시아의 패색이 짙다는 프로파간다를 전 세계에 전파했으나 프로파간다로는 전황을 뒤집지 못했다. 러시아 제재를 천명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발효 이틀 전에 알래스카에서 푸틴과 정상 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 종전의 밑그림에 합의한 것은 이러한 러시아의 승리를 배경으로 한다.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는 유럽과 젤렌스키가 주장하는 즉각적인 휴전을 포기하고 전쟁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는 처방, 즉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와 러시아 점령 영토의 러시아 귀속 인정 등 푸틴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푸틴의 극적인 외교적 승리였으며, 이는 젤렌스키에게는 치욕적인 최악의 결과였다.

 

군복 입었던 독재자, 정장 차림으로 건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역사적 회담에서 전쟁의 당사자인 젤렌스키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와 평화 공존, 그리고 경제 협력 쪽으로 세계 전략을 수정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뺀 것이다. 트럼프에게 젤렌스키는 이제 자신의 세계 전략에 걸림돌이나 다름없다.

지난 2월 백악관 회담에서 특유의 군복을 입고 나타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핀잔을 듣고 토론 중에 거세게 반발하다가 점심도 못 먹고 쫓겨났던 젤렌스키가 지난 8월 18일 정장 차림으로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만나 트럼프가 설명한 종전안에 대해 연신 고맙다며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이러한 변화된 현실의 반영이다. 정장 차림의 젤렌스키는 종전을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전은 그에게 정치적 재앙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을 배반하고 전쟁 노선을 걸으면서 나라를 폐허로 만들고 국민들에게 지옥 같은 생활을 강요한 젤렌스키가 정전 후 일상으로 돌아갈 경우 정치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전시 상황을 이유로 국가 권력을 독점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등 독재 체제를 구축했으며, 5년 임기가 끝난 2024년 5월 이후에도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대선을 거부하며 야권의 불만이 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젤렌스키를 "선거 없는 독재자"라고 비난한 바 있다.

 

젤렌스키는 또한 지난 7월 고위 공직자를 감시하는 독립적 반부패 기관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에 서명해 부패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자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전쟁 후 처음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민심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거리에서 경찰관이 그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2024.12. 20 AP 연합

 

냉철한 현실인식, 실용적 판단, 정책 일관성, 전략적 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 정치 지도자들에게 여러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현실적 힘의 균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중요성이다. 젤렌스키는 초강대국과의 대결에서 외부 지원에만 의존한 채 자국의 실제 역량을 과대평가했다. 정치 지도자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한 선거 공약과 집권 후 정책의 일관성의 중요성이다. 젤렌스키는 평화와 화해를 약속하며 당선되었지만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으로, 정치적 정당성의 심각한 훼손을 의미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협상 시점을 놓치지 않는 전략적 사고도 필요하다. 이스탄불 협상에서 나타났듯이, 때로는 '명예로운 타협'이 '파멸적인 승부'보다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지도자는 자존심이나 체면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장기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외부 세력의 선동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때 약소국 지도자는 냉정하게 자국의 실익을 계산해야 한다. 외부의 지원 약속이 항상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최종적으로는 자국민이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또한 겸손함과 깊은 책임감에서 나온다

 

또한 권력 집중의 위험성과 민주적 견제의 중요성이다. 젤렌스키는 전시를 이유로 독재 권력을 구축하고 야당을 탄압했지만, 이는 결국 잘못된 정책에 대한 견제 기능을 약화시켜 더 큰 재앙으로 이어졌다. 위기 상황에서도 민주적 견제 장치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평화를 열망했던 국민들의 기대가 어떻게 배신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정책이 어떻게 국가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진정한 리더십은 용기와 결단력뿐만 아니라 겸손함과 현실 인식,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에 대한 깊은 책임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인 관계 급진전은 미국 일본에겐 뼈아픈 반전
중국과 동남아, 인도와의 관계 급진전
가속화하는 브릭스 통합, EU와 일본의 접근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하기 위한 트럼프 관세전쟁
오히려 세계의 ‘탈미국’ 행보 가속
대미 의존 버리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동맹 찾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새로운 관세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4.2. AP 연합
 

‘트럼프 관세’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기존 자유무역체제를 해체하고 다시 미국 일극의 패권적 지배질서를 되찾게 해 줄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지지세력들은 확신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희생자들은 대응책을 모색하며 피해를 떨쳐 버리고 있고, 그 최대 수혜자(biggest winner)는 중국이라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일 기사(Trump’s trade victims are shrugging off his attacks-And China is gaining in the process)에서 지적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제1 표적이 중국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오히려 중국을 도와주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주의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트럼프 관세전쟁의 공격 포화는 주로 캐나다, 멕시코, EU 등 전통적인 친미국가들과 한국 일본 태국 등 미국 동맹국들을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 등의 동아시아와 멕시코 인도 브라질 등의 브릭스(BRICS)에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중국은 그 양쪽 모두에 속해 있으나, 트럼프 관세전쟁은 정작 중국을 그 최대 수혜자로 만드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수석고문이 8월 21일 워싱턴 D.C. 백악관 서관 앞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바로는 EU 무역 협정과 관세 관련 연준 회의에 대해 논의했다. 2025.8.21. UPI 연합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하기 위한 트럼프 관세전쟁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트럼프 라운드”라고 부르는 트럼프 관세협상은 미국의 패권(American primacy)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 관세의 창도자들 중 한 사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고문은 미국이 세계무역을 어떻게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 트럼프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농담이 아니라면, 거의 자아도취적 착각에 가까워 보인다. 그들은 미국에게 막대한 무역적자를 안기고 있는 자유무역체제를 허물기만 하면 미국이 누렸던 패권적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오히려 세계의 ‘탈미국’ 행보 가속

 

하지만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난 지금, 미국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세계가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탈미국’ 행보를 가속시키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이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오히려 세계의 중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은 21세기 초에 세계무역에서 전 세계 수입(imports)의 5분의 1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 수축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각국은 미국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관세협상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다른 대안을 찾았다. 이코노미스트가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얘기로 인용한 것은 어느 한국 관리(one South Korean official)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단계는 미국에 양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다른 곳을 찾는 것이다.”

 

지난 8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스타펜 인근 환적 컨테이너. EU산 제품 대부분에 15%의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품에는 50%의 특별 관세가 유지된다. 미국은 약 70개국에 대한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다. 스위스, 중국, 멕시코 등 다른 국가들은 현재 미국 정부와 각자의 관세율을 협상 중이다. 2025.8.7. EPA 연합

 

미국시장 의존 버리고 더 나은 대안 찾기

 

미국이 아닌 새로운 시장 찾기에 나선 국가들의 움직임들을 예시하면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경우 실제로 남아시아와 중동, 멕시코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썼다.

 

각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 보조금과 보호무역주의로 자국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고, 어떤 정부들은 한국과 싱가포르처럼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또 다른 나라들은 대담하게도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세계에는 미국의 패권에 복종하거나 그것이 무너진 뒤의 토머스 홉스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펼쳐지는 혼란에 빠지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트럼프 관세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자금 낭비와 시장 왜곡의 위험이 있음에도 세계 각국은 미국에 대한 복종이나 혼란 중의 양자택일이 아닌 나름의 단기 해결책과 장기적 대안들을 칮아가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은 재정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세금 감면과 국가구매 보증을 포함한 6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패키지를 발표했다. 캐나다도 목재산업 지원을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비슷한 정책을 발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무역부는 독점금지법을 피해가는 방식으로 운송비를 조율하고 인프라를 공동건설할 수 있도록 해 자국 수출업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다른 도구들도 동원하고 있다. 캐나다와 일본은 금속 수입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고, 인도는 ‘메이드 인 인디아’를 강화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5일 에너지에서부터 전투기까지 모든 분야의 자립을 강조했다. 이들 나라 중 트럼프 관세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한 나라는 아직 많지 않지만, 미국처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나라들이 많아지면서 세계 모두의 비용을 증가시킬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 찾기

 

그런 가운데 새로운 시장 찾기가 더 유망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고, 각국 정부는 수출 자금과 인센티브로 자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한국과 싱가포르 외에도 남아공 농부들은 중국으로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고, EU에도 감귤류 건강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갭이나 리바이스 같은 미국 기업들에 의존하던 레소토의 의류 생산업체들은 지역 바이어들에게로 눈을 돌려 아시아지역의 수요를 창출하려 하고 있다.

 

50%의 트럼프 관세를 맞은 브라질의 커피 수출업자들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한 판매량은 지난해에 5분의 3(60%)이나 증가했다. 그럼에도 브라질 커피 원두의 16%를 수입했던 미국시장을 대체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새로운 동맹 찾기

 

트럼프 관세전쟁 이후 가장 주목할 움직임은 새로운 동맹찾기다. 트럼프 고관세 직격탄을 맞은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함께 미국-캐나다-멕시코협정(USMCA)을 체결했으나 파트너인 미국의 신뢰도가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크게 떨어지면서 (캐나다, 멕시코는) 더 가까워지고 있다. 다음 달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멕시코를 방문해 공급망 회복, 항구간 무역, 에너지 및 인공지능 합작투자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내년의 USMCA 재검토를 앞두고 두 나라는 트럼프에 대항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을 찾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을 비롯한 11개 신흥 경제국들로 구성된 브릭스 국가들 다수가 트럼프의 관세전쟁의 표적이 됐다. 브라질과 인도는 50%의 관세폭탄을 맞았는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모디 인도 총리 등과 주로 전화를 통해 새로운 동맹 결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룰라 총리는 모디 총리와 미국 은행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디지털 결제 연계 방안을 협의했고, 나흘 뒤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브라질-중국 무역 심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 회담 뒤 시 주석은 브라질과의 관계가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질서. 브릭스 국가들의 수출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은 제자리 걸음이지만 브릭스 국가끼리의 수출 비중은 미국과의 거래 비중을 추월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8월 20일

 

트럼프 관세전쟁 이후 가속화하는 브릭스 통합

 

브릭스 국가들은 무역에서 대미 의존을 극적으로 줄여가고 있다. 예컨대 인도 수출품 중 미국이 수입하는 것은 6분의 1, 브라질 수출품의 경우 7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셈이다. 20년 전에는 브라질 수출품의 4분의 1이 미국시장에 갔다.

 

브라질, 인도뿐만 아니라 브릭스 국가들은 모두 미국보다 자기들끼리 더 많은 무역을 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거래보다 자기들끼리의 거래 비중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말하자면 트럼프 관세전쟁 이후 브릭스의 통합이 가속화하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12개국 이상이 브릭스의 파트너국 지위를 추구하거나 가입을 신청했다.

 

동맹 찾기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이 새로운 동맹찾기의 가장 큰 수혜자(biggest winner)는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저개발국 또는 신흥 경제국)에 대한 수출은 2015년 이후 2배로 늘었다.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중동 등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이들 지역에 대한 미국과 서유럽의 수출 합계보다 더 많다. 트럼프 관세전쟁은 이런 역전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올해 7월 중국의 대미 수출은 급감했지만 전체 수출은 지난해보다 7% 증가했다. 그에 앞서 6월에 시 주석은 아프리카산 수입품에 대해 거의 모든 관세를 없애겠다고 약속했고, 라틴 아메리카와 동남아 정상들과의 회담에 참석했다.

 

8월 1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회담에서 나렌드라 모디(오른쪽) 인도총리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왕이 외교부장은 인도를 이틀간 국빈 방문했다. 2025.8.19. EPA 연합

 

중국과 동남아, 인도와의 관계 급진전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올해 말까지를 목표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도와의 관계도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인도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과 전기차, 베터리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다. 8월 31일에는 모디 총리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19일 인도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당 중앙정치국원과 회담한 뒤 모디 총리는 “우리 관계는 상호 이익과 민감한 부분을 존중하는 자세로 착실하게 개선돼 왔다”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는 지역 및 세계평화와 번영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에 앞서 왕이 부장을 만난 수브라마냠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부장은 “양국관계는 곤란한 시기를 경험했으나 지금은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인 관계 급진전은 미국 일본에겐 뼈아픈 반전

 

중국과 인도는 2020년 유혈 국경충돌 이후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인도는 그 뒤 미국 호주 일본과 안보협력기구 ‘쿼드’(QUAD)를 결성했고, 미국 일본 등과 안보 및 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인도 내부에서는 주요 교역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소리들이 커지고 있었고, 지난해 10월에 시진핑 주석과 모디 총리가 5년만에 만나 회담한 뒤 양국관계가 ‘재출발’했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러시아산 석유 구입과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를 이유로 인도에 50%의 관세를 때린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인도의 대중국 접근과 탈미국 움직임을 가속시켰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이 큰 인도의 이런 방향 선회가 중국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대로 이는 경제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키워 온 중국 견제를 위해 중-인 국경분쟁 발발 이후 인도에 대한 접근 노력을 강화해 온 미국과 일본 등에겐 뼈아픈 반전이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교부장관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가 8월 18일 도쿄 총리실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5.8.18. 로이터 연합

 

EU와 일본의 접근

 

EU와 일본의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7월 하순에 일본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 등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 등 일본 수뇌부와 함께 트럼프 관세정책에 맞서 자유무역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외교, 경제 장관들간의 대화틀을 만들어 무역과 경제안보 등에 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EU와 일본의 이런 정상급 회담은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처음 열린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우주, 바이오, 디지털, 방위(국방) 분야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IT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안정적 조달방안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마이니치신문> 8월 17일)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12개 가맹국과 EU의 제휴 강화방안 모색이다. TPP는 트럼프 1기 정권이 출범한 2017년 1월 미국이 돌연 탈퇴했으나 지난해에 영국이 가입했으며 캐나다, 멕시코, 호주, 칠레에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연합 주요국들도 가담해 가입국이 12개국으로 늘었다. 한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다.

 

TPP와 EU 가입국들을 합하면 인구가 10억이 넘고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규모다. 미중 등 ‘슈퍼 파워’가 아닌 이들 ‘미들 파워’들의 결집은 트럼프 정권이 선도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는 유의미한 움직임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벌인 것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백악관 고문 피터 나바로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이 계속 세계무역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들의 뜻대로 굴러갈 것 같지 않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