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측이 ‘더 빨리, 더 빨리’ 압박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이 중재 중인 종전 협상과 관련해 영토 문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8일 밝혔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최근 진행한 종전 협장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다며 기대감을 키웠으나, 여전히 ‘핵심 쟁점’을 두고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블룸버그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각자의 구상이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돈바스에 대해 통일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러시아는 루한스크주 대부분과 도네츠크주 4분의 3을 점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현재까지 차지하지 못한 돈바스 지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받아내야 종전 합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과 동부 지역 통제권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포함한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안보를 보장받기 위한 별도의 합의를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몇시간 전까지도 제안을 읽지 않았다는 것에 조금 실망스럽다”고 발언한 이후 나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지난 4~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종전 협상을 진행한 뒤 새 종전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AFP 통신에 “미국 측이 ‘더 빨리, 더 빨리’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국 런던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할 예정이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회동할 예정이라고 AFP는 전했다.                     < 조문희 기자 >

한국과 일본 향해 ‘제1도련선 방어 위해 국방비 증액해야 ’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워싱턴의 미국평화연구소에서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및 펠릭스 치세케디 콩고민주공화국(DRC) 대통령과의 평화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경제, 군사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전략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이 5일 공개됐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향해 ‘제1도련선 방어를 위해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능력을 키워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라는 뜻이다. 대만을 둘러싼 분쟁 억제가 아시아에서의 우선순위라고 명시해 대만을 둘러싼 입장 변화 논란에도 선을 그었다.

 

이날 백악관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29쪽 분량의 국가안보전략 문건에서 미국은 “제1도련선 내 어디서든 침략을 거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축할 것이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혼자서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며 “동맹국들은 나서서 비용을 지출해야 하며, 더 중요하게는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1도련선은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가상의 선으로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차단하는 군사적 경계선이다. 한때 미국이 제1도련선의 전력을 대거 제2도련선(일본 혼슈∼괌∼사이판∼팔라우) 너머로 옮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제1도련선 보호에 기여할 핵심 동맹국으로 꼽았다. 미국은 “제1도련선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미군이 자국 항구와 기타 시설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자체 방위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침략 억제를 목표로 하는 능력에 투자하도록 압박하는 데 외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힌 뒤 “일본과 한국에 적을 억제하고 제1도련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능력(새로운 능력을 포함하여)에 초점을 맞춰 국방비를 늘리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만을 둘러싼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아시아에서의 우선순위라고도 명시했다. 미국은 “전 세계 해운의 3분의 1이 매년 남중국해를 통과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미국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대만을 둘러싼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대만에 대한 오랜 선언적 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미국은 대만 해협의 현상에 대한 어떤 일방적인 변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도록 설득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대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북한’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2017년 12월 트럼프 1기 정부가 발표한 68쪽 분량의 국가안보전략에는 ‘북한’이 17번 언급됐다.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북한이 세 차례 언급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약 1년 만에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되면서 미 국방부의 최상위 전략지침서인 국방전략(NDS)도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전략에 따라 전 세계 미군 자산의 배치를 검토하는 글로벌 병력배치검토(GPR)가 발표되는데, 주한미군 감축·재배치 등이 여기에 담길 수 있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미 국가안보전략에서 빠진 북한…‘대화 전조’일까 무관심일까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6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D.C.) 국무부에서 열린 제48회 케네디 센터 명예메달 시상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한’과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이 나왔다.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의도적 조처’라는 관측과 ‘북한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맞선다. 국가안보실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기술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지침서는 2022년에 이어 발간됐는데, 그때와 비교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미국 차원에서 국가안보전략이 변화한 만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언급 자체가 빠진 것에 주목했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는 북한이 17차례, 조 바이든 정부 때인 2022년에는 북한이 3차례 등장한 것과 비교하면 언급 자체가 안 된 것이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이날 한겨레에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북한을 넣게 되면 ‘비핵화’와 ‘북한 위협’을 언급할 수밖에 없어서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 이슈를 ‘공백’으로 둔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등 북-미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전략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반면 북한 문제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비핵화가 빠진 것은 미국이 상대적으로 북한 문제에 관심이 없고, 미국 국익과 크게 상관없다고 본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미국의 전략 구상에서 서유럽이나 중동 등에 견줘 우선순위가 밀렸음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하지만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혀 다른 관측을 내놨다. 위 실장은 이날 대통령실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이번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북한 비핵화 언급이 없는 것은 작성의 기본 방침이 2022년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중심으로 기본 방침을 기술해 구체적인 지역 분쟁이나 주요 현안을 세부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 실장은 “북한 이슈는 앞으로 작성될 하위 문서에서 다뤄질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를 두고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다거나, 미-북 대화 재개에 관심이 없다고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북-미 대화 재개 여부는 현재 시점에선 전망하기 어렵고, 긍정·부정적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는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이 중국과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도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결부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성배 원장은 “중국을 위협으로 보아 꺾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전반적인 톤을 조정해 ‘재조정’이라는 말을 썼다”며 “미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중국과 관계를 조정해나간다는 것이지, 싸워서 이기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 서영지 기자 >

 

“중국은 잠재적 파트너, 유럽은 문명 소멸”…미, 이익 중심 고립주의 공식화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 공개   ‘북한 비핵화’ 언급 없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6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시미 밸리에 위치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기념관에서 열린 레이건 국방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시미 밸리/로이터 연합

 

“미국이 아틀라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처럼 전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

 

4일 공개된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미국 우선주의’를 외교·경제·군사 분야 전략으로 공식화했다. 특히 냉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유일 초강대국 지위’ 유지 목표를 폐기하고, 국익에 기반해 각 지역의 힘의 균형을 인정하는 ‘현실주의’ 노선으로 회귀했음을 명확히 했다. 이를 위해 본토 앞마당인 서반구에 힘을 집중하며, 2순위로 밀려난 ‘중국 억제’는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들의 힘을 모아 달성하겠다고 했다. ‘대만 방어’를 천명하면서도, 중국은 ‘경제적 경쟁자’이자 ‘잠재적 파트너’로 묘사됐다. 반면 유럽에 대해선 문명이 소멸하고 있다며 정치 세력 교체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략서의 핵심은 서반구, 즉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 지배권 강화다. 전략서는 1823년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선언한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 수정안’을 공식화했다. 전략서는 “미국은 서반구에서 미국의 우위를 회복하고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먼로 독트린을 재확인하고 집행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서반구 내에서 중국, 러시아 등 비서반구 경쟁자가 군사력을 배치하거나 전략 자산을 통제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요새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6일 레이건 국방포럼 연설을 통해 이러한 기조를 더욱 선명히 했다. 그는 “자칭 공화당 매파들이 말하는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는 재앙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냉철한 현실주의’를 통해 평화를 회복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전 지구적 개입을 줄이고 각 지역의 강대국이 해당 권역을 책임지는 ‘다극 체제’를 사실상 용인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대중국 전략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전략서는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로 보면서도 ‘진정으로 상호 유익한 경제 관계’라며 잠재적 파트너로도 묘사한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가치 충돌’이 아닌 ‘이익 경쟁’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을 미국의 가장 큰 도전으로 규정했던 지난 수년간의 기조와 결별한 유화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직접적인 패권 경쟁을 벌이기보다, 제1도련선 방어와 같은 구체적 목표에 집중하되 이조차 동맹국에 안보 부담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전략서는 “제1도련선 내 어디서든 침략을 거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축할 것이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혼자서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며 “동맹국들은 나서서 비용을 지출해야 하며, 더 중요하게는 집단방위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1도련선은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가상의 선으로,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차단하는 군사적 경계선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을 핵심적으로 기여할 동맹국으로 꼽았다. 전략서는 “제1도련선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미군이 자국 항구와 기타 시설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자체 방위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침략 억제를 목표로 하는 능력에 투자하도록 압박하는 데 외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힌 뒤 “일본과 한국에 적을 억제하고 제1도련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능력(새로운 능력을 포함하여)에 초점을 맞춰 국방비를 늘리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썼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이스라엘, 한국, 폴란드 등을 미국의 국방비 지출 확대 요구에 부응한 ‘모범 동맹들’로 칭하고서 “우리로부터 특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열린 국무부 케네디 센터 아너스 메달 수여식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전략서는 대만 점령 시도를 ‘거부’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을 명시하고, 미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일본·인도의 안보협의체인 ‘쿼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전통적인 외교정책 기조도 일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에 대한 입장이 ‘반대한다’에서 ‘지지하지 않는다’로 완화됐다.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제시카 첸 와이스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종합적으로 볼 때,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이번 새 문서를 미국의 전략이 자신들에게 비교적 유리한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전략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중국을 ‘미국의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으로 지명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라이언 페다시욱 연구원도 “미국이 대만 문제에 있어 ‘반대한다’에서 ‘지지하지 않는다’로 입장을 완화한 것에 대해 베이징이 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전략서는 유럽이 이민자들과 주류 지도자들로 인해 ‘문명적 소멸’에 직면해 있다고 묘사하며, 현재 유럽 주류 정치 세력을 교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전략서는 “유럽의 문제는 단순한 국방비 지출 부족이나 경제 정체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이민 정책이 대륙을 변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하고 있으며, 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국가 정체성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특정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몇십 년 안에 대다수가 비유럽인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과연 미국과 같은 가치를 공유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유럽의 현 주류 지도자들을 “현실성 없는 기대를 가진 불안정한 소수 정부”라고 깎아내리며, 이들이 “민주적 원칙을 짓밟고 야당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유럽 내 ‘애국주의 정당’의 부상을 환영하며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략서는 “미국의 목표는 유럽이 현재의 궤적을 수정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유럽 국가 내에서 현재의 궤적에 대한 ‘저항’을 육성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유럽 각국의 우파 포퓰리즘 세력을 지원해 정권 교체를 유도하겠다는 내정 간섭적 선언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가치 동맹’ 복원 기조를 완전히 폐기하고, 유럽을 ‘개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대서양 동맹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전략서와 달리 ‘북한’, ‘북한 비핵화’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는데,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지 않는 한 북한 문제도 한국과 일본이 해결해야 할 ‘지역 문제’로 치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

32층 높이 아파트 8개 블록에 2000가구 이상 거주

45명은 위중.. ‘과실치사’ 혐의 건설사 직원 3명 체포

 

 
 
2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홍콩 고층 아파트. AFP=연합
 

홍콩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의 사망자가 44명으로 늘었다. 실종자도 279명으로 집계돼, 30여년 만에 홍콩에서 일어난 최악의 화재 참사로 전해지고 있다. 홍콩 경찰은 과실치사 혐의로 건설 회사 직원 3명을 체포했다.

 

27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북부 신계지구 타이포구에 있는 주거용 고층 아파트 단지인 왕푹 코트에서 난 불로 소방관을 포함해 최소 44명이 숨졌다. 45명은 위중한 상태이며 279명이 실종 상태다. 소방 당국은 밤새 진화 및 구조 작업을 펼쳤으나, 32층 높이의 아파트가 8개 블록에 걸쳐 20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규모 탓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빌딩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통신은 전했다.

 

앞서 이날 새벽 홍콩 행정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현장의 화재는 기본적으로 통제됐다”며 “화재로 최소 36명이 사망하고 279명이 실종됐다”고 말했다. 불이 난 7개의 동 가운데 4개 동에서 불이 진화됐으며, 현재까지 3개 동은 진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8개의 대피소에 900여명이 피신해 있다.

 

26일 밤 홍콩 북부 타이포구의 고층 아파트에서 난 불을 대피한 주민들이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인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
 

화재의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불은 보수 공사가 진행되던 건물에 설치된 가설 구조물인 대나무 비계에서 시작돼 공사용 안전망으로 옮겨붙으면서 퍼졌다. 홍콩 건설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대나무 비계는 안전 문제로 지난 3월부터 단계적 폐쇄 방침이 세워졌다고 통신은 전했다. 경찰은 건물이 화재 기준에 미달하는 안전망과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었고, 이에 더해 한 건물의 창문은 건설 회사가 유지 보수 작업을 진행하면서 설치한 폼 소재로 밀봉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건물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

 

홍콩 경찰은 “회사 책임자들이 중대한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고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와 관련해 보수 공사 업체 책임자 3명이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화재 진압과 사상자 및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고 중국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전했다.

 

이 주거 단지는 1983년 완공됐고 8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 2000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 경보는 전날 처음에는 낮은 단계인 1급으로 분류됐으나 오후 3시34분께 4급으로 격상됐고 저녁 6시22분께 가장 높은 5급으로 다시 올랐다. 홍콩 화재 경보는 1급부터 5급으로 분류되는데 5급이 가장 높은 단계다. 5급 경보는 4명이 숨지고 55명이 다친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 이후 처음이다.                                                        < 김지은 기자 >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 위협, 부활한 '총포외교'

● WORLD 2025. 11. 18. 01:5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미국의 뒷마당' 라틴 아메리카에 군사적 개입
미 제국의 역사: 몬로 독트린부터 쿠데타까지
볼리바르 혁명의 도전과 마두로 정권의 문제점

트럼프 1기의 정권교체 측면 지원과 경제 제재
트럼프 재집권과 '마약 전쟁'이란 허구적 명분
콜롬비아, 브라질, 멕시코 압박과 대중적 반발

침략과 전쟁으로 향하는 무모한 시도 막아서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해군 순찰선이 2025년 10월 24일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카베요에서 카리브해 연안을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미국 트럼프 정권의 '미국 우선주의'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신제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나며 위험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베네수엘라를 '테러 국가'로 규정하며 노골적인 군사 개입을 위협해 왔지만 최근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트럼프는 CIA의 비밀 작전을 승인하면서 카리브해에 항공모함, 핵잠수함, B-52 폭격기 등 '죽음의 함대'를 전진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기만극 아래 포장되어 있다. 그 실상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모든 움직임을 말살하려는 야욕이다. 특히 좌파 정권이 집권한 콜롬비아, 브라질 등에서 관세 폭탄, 이민자 추방, 정치적 공갈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쇠퇴하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현재의 위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정책에 내재한 제국주의적 뿌리와 본성을 직시해야 한다. 19세기부터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간주되어 왔다. 1823년 선포된 '몬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은 그것을 분명히 한 외교정책 선언이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침략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외신 기사 화면 갈무리 

 

그 역사는 군사적 개입과 강탈로 점철되어 있다. 1850년대 니카라과 정복 시도부터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 운하 지대를 강탈한 것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팽창주의는 거침이 없었다. 이러한 전통은 20세기 냉전 시대에 더욱 강화되었다.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피그만 침공을 통해 쿠바 혁명을 무너뜨리려 했다.

 

1973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칠레의 국민이 선출한 사회주의 정부인 살바도르 아옌데(Allende) 정권을 전복시키는 쿠데타를 지원하여 피노체트를 우두머리로 하는 피의 군사독재를 탄생시켰다. 1983년 그레나다 침공 이후 대규모 직접 군사 개입은 줄어들었으나, 라틴 아메리카를 무대로 한 CIA의 은밀한 공작과 경제적 종속과 강탈 시도는 멈춘 적이 없다.

 

1999년 휴고 차베스가 이끈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은 이러한 미국의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석유 자원의 국유화와 사회주의적 실험은 미국의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볼리바르 혁명, 특히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아래에서의 혁명 과정은 내부적 모순과 심각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많은 좌파적 비판가들이 지적하듯, 마두로 정권은 차베스 시대의 급진적 민주주의와 노동자 참여의 이상에서 후퇴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관료주의가 심화하였고, 부패가 만연했으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타협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더욱이, 정권에 비판적인 노동운동가와 좌파 활동가들마저 탄압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은 혁명의 성과를 스스로 좀먹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은 이러한 베네수엘라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미국의 목표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반미 정권의 전복과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권 확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부터 쿠데타 시도, 친미 우파 야당 지원과 조종, 잔혹한 경제 제재를 통해 이 목표를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2017년 베네수엘라 석유 수입 금지 및 금융 시장 접근 차단 조치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700만 명 이상의 대량 이민 사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 1기 정부는 후안 과이도(Guaidó)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노골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베네수엘라 민중은 그러한 외세의 난폭한 개입을 거부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며 미국을 규탄하는 집회 - 출처: 트위터(X)

 

하지만, 2025년에 재집권한 트럼프는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며 제국주의적 개입과 정권교체 시도를 다시 시작했다. 미국 패권의 쇠퇴를 받아들이며 곳곳에서 후퇴하는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미국의 뒷마당'에서만은 군사적 개입주의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제국주의적 "총포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9월 초, 미국은 베네수엘라 민간 선박을 타격해 11명을 사살했다. 이는 마약 밀수의 명확한 증거 없이 이루어진 무차별 공격이고 민간인 살상이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나아가 10월 15일, 트럼프는 1만 명의 해병대와 항공모함을 카리브해에 배치하며 "우리는 가서 그들을 죽이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의 초법적 전쟁 선포이지만, 그 명분은 완벽한 허구다. 베네수엘라는 펜타닐 생산국이 아니며, 미국 내 마약의 90%는 태평양 경로를 통해 유입된다. 트럼프가 마두로 정권에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며 제기한 마약 범죄 연루 혐의와 '솔레스 카르텔(Soles cartel)' 의혹도 실체가 의심스럽고 아무 근거가 없다. 

 

이러한 위협은 베네수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을 "마약상"이라고 매도하며 관세 및 비자 중단을 위협하고, 브라질에는 쿠데타를 시도한 극우 정치인을 석방하라면서 50%의 관세 부과를 협박했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에게는 '미국의 극우적 동맹인 밀레이를 지지하지 않으면 달러 지원을 끊겠다'라며 노골적 정치 개입을 자행했다.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초래하는 인도주의적 피해는 끔찍한 수준이다. 경제 제재의 결과로 민생과 의료보건 체계가 붕괴하면서 식량 부족과 물가 폭등, 영양실조로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들의 건강 악화와 사망률의 폭증이 이어졌다. 최근 카리브해에서 민간 선박 공격으로 어부 6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콜롬비아 연안에서도 미군의 무차별 사격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미국이 실제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한다면 이는 대재앙을 낳은 이라크 전쟁의 재현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대외 정책은 미국 내 이민자 탄압과도 연결돼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마약 갱단원'이라고 낙인찍고 대규모 추방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폭력적 갱단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은 ICE(이민세관단속국)이다. 

 

엡스타인 파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전쟁으로 시선을 돌리려 한다는 외신의 풍자 만평 - 출처: 트위터(X)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노골적인 도발은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세력을 결속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2025년 트럼프의 위협이 본격화하면서 브라질 룰라, 콜롬비아 페트로, 멕시코 셰인바움 등 좌파 지도자들의 지지율이 반미 정서와 함께 급등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트럼프의 압박에 "브라질은 그 누구의 후견도 받지 않는다"라며 맞섰다.

 

콜롬비아의 페트로 대통령 역시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정권을 정면 공격하고 흔들림 없이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멕시코의 셰인바움 대통령은 트럼프 정권의 압박에 일부 타협하면서도 수출 다변화 등을 통해서 실리를 챙기는 정책으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는 좌파 세력도 미국의 압박에 함께 맞서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베네수엘라 및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위협은 쇠퇴하는 제국주의가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면서 다시 전 세계적 개입을 위한 힘을 키우려는 시도이다. 역사적 침략의 전통, '마약 전쟁'이라는 기만적 명분, 그리고 이미 시작된 인도주의적 재앙은 이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위협은 무고한 민중의 피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국내에서 지지율이 추락하고, 엡스타인 파일 문제로 궁지에 몰리고, 마가(MAGA) 진영 내부의 분열까지도 번져가는 상황 자체가 트럼프 정권의 무모한 시도를 낳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보수적이고 부패한 정권일수록 내부적 위기를 대외적 침략과 전쟁을 통해서 돌파하려고 했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군 철수, 모든 개입 중단, 베네수엘라의 자결권 존중을 함께 외쳐야 한다. 이 투쟁은 라틴 아메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서 집단학살과 강대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투쟁과 연결되어 있으며,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반트럼프 투쟁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적 관심과 연대만이 트럼프의 '죽음의 함대'가 침략과 전쟁이라는 위험천만한 시도로 향하는 것을 막아설 수 있다.                                               < 전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