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나긴 팬데믹 목록에 하나 더해진 것뿐

과도한 행동면역체계가 타자 혐오·배제로 이어진다는 점 인식해야

 

14세기 벨기에 지방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의 삽화로 1349년 흑사병 유행 시기의 유대인 학살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을 모아 불에 태워 죽이고 있다. <감염병인류>는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 타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더 강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창비 제공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를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주 소환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마지막 대목이다.(<감염병 인류>에서 재인용)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아직 ‘결정적인 승리’는커녕 일시적 승리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백신과 항생제가 등장하고 영양과 위생조건이 개선되면서 인류는 한때 감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도 매년 150만명이 결핵으로, 70만명이 에이즈로, 40만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감염성 질환은 전체 사망의 25%를 차지한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이 공저한 <감염병 인류>는 인류가 감염병과 어떻게 싸워왔는지, 또 이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다룬다. 설명의 틀은 진화인류학과 진화의학, 인지종교학이다. 저자들은 감염병과의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신석기혁명, 즉 농경과 목축 생활 이후로 본다. 구석기 시대에도 감염병이 존재했지만 100여종이 채 되지 않았다.

                      감염병 인류: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나 {박한선·구형찬 지음/창비}

수렵채집 생활이 정착생활로 바뀌면서 인류를 찾아온 불청객이 감염병이었다. 농경과 함께 ‘도무스(라틴어로 농장과 농장 주변을 의미) 복합체’가 형성되고, 여기에 인간과 가축의 분변과 각종 쓰레기가 쌓인다. “쥐와 모기, 파리가 찾아오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동거를 감행한다. 인류가 맞닥뜨린 현실은 말 그대로 시궁창이었다.” 특히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물과 감염균을 나누게 된다. 이른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수많은 질병이 새로 생겼다. 콜레라, 천연두, 홍역, 볼거리, 인플루엔자, 수두 등 전통적 감염병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다. 홀로세(현세) 내내 인류를 괴롭힌 감염균의 종류는 약 1400종인데, 그중 800종이 인수공통감염병이다.역사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감염병의 위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서기 541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로마제국을 덮쳤다. 절정기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만 매일 5000명이 죽었고,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었던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은 페스트균이었다. ‘제1차 구세계 팬데믹’으로 불린다. 14세기께, 또다시 흑사병으로 유럽인 세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제2차 팬데믹’이다. ‘제3차 팬데믹’은 19세기 인도를 시작으로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 등으로 퍼져나간 아시아 콜레라다.

 

20세기 초반에는 스페인 독감이 최대 2억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1948년 창설된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공식적 팬데믹은 1968년의 홍콩 독감, 2009년의 신종플루, 2019년의 코로나19, 세 번이다. 결핵과 발진티푸스, 매독, 장티푸스, 천연두, 한센병, 말라리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등 ‘공식적인 팬데믹’으로 취급하지 않는 수많은 감염병 역시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서 살아왔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팬데믹에 낯선 목록이 하나 더해진 것뿐이다.”

 

인류가 감염병의 공격에 ‘손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선천면역과 획득면역이라는 정교하고 복잡한 신체면역체계가 수억년 전부터 진화해왔다. 하지만 저자들이 중점을 두어 설명하는 것은 ‘행동면역체계’라는 개념이다. 행동면역체계는 감염 이전에 감염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미리 피하는 것이다. 인간은 “행동 도메인에서 회피(avoidance)를 보이고, 감정 도메인에서는 역거움(disgust)을 보인다.” 역겨움은 더러운 음식, 배설물, 해로운 곤충, 감염된 사람이 보이는 기침이나 구토, 설사, 부자연스러운 행동, 피부 발진 등을 대상으로 생긴다. 역겨움은 회피 행동을 유발한다.

 

더 나아가 “성관계에 대한 도덕적 기준, 음식에 대한 금기, 외국인 터부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등도 행동면역체계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문제는 역겨움과 회피행동이 “금세 분노와 배척의 문화적 코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신체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알레르기나 자가면역반응이 생기듯이, 행동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 차별의 행동반응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외국인 혐오가 대표적인 예다.

 

정확한 의학지식이 없었던 과거에는 과민한 행동면역체계가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새로운 문화나 질서를 꺼리는 태도 탓에 혁신적인 보건의료 개선을 거부하거나, 외향성과 개방성이 낮아져 글로벌 시대에 부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쉽게 일어나는 것은 우리 안에 과거의 행동면역체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활보하는 원시인”이라는, 이런 우리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중세시대까지 의사들은 ‘미아즈마’, 즉 냄새나는 나쁜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이고, ‘프네우마’, 숨을 쉴 때 몸으로 들어오는 우주의 기운이 건강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저자들은 “급속한 도시화와 환경 파괴, 공장식 사육, 무분별한 세계화로 인한 물자와 인원의 급격한 이동, 충분한 의료자원을 비축하지 않는 적시공급시스템, 집중화된 대형병원에 의존하는 의료시스템 등”을 현대의 미아즈마라고 표현한다. 사실상 지구 전체가 “하나의 도무스 복합체”이고, 현대사회는 “신종 감염병을 배양하는 배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앞에서 인류의 온 신경이 백신과 치료제에 쏠려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미아즈마를 좀더 맑고 건강한 프네우마로 바꾸지 못하면 새로운 코로나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안선희 기자

박완주 의원에 104대 65표로 압승... 결선투표 없이 당선

 

전임 김태년 원내대표와 함께 승리 인사하는 윤호중 대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4선의 윤호중(58·경기 구리) 의원이 선출됐다.

윤 의원은 16일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3선인 박완주 의원을 누르고 새 원내 사령탑의 자리에 올랐다.

윤 의원은 1차 투표에서 169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104표를 획득하면서 결선 투표 없이 바로 당선됐다. 박 의원은 65표를 얻었다.

윤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해서 유능한 개혁정당, 일하는 민주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앞으로 야당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협력적 의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4·7 재보선 참패로 한 달 가량 일찍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윤 의원이 압승을 거두면서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개혁노선에 탄력이 예상된다.

다음 달 2일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원장도 겸하는 원내대표로 윤 의원을 선택하면서 당내 의원들의 구심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청 관계도 원팀 기조에 따라 유기적 협력 체제가 모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에 대해서도 대화를 토대로 협력을 모색하되 필요할 때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강경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독식하고 있는 상임위원장 재배분 문제에 대해서도 "협상 권한이 없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윤 원내대표는 정견 발표에서 "개혁의 바퀴를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면서 "속도 조절, 다음에 하자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많은 국민들께서 염원하는 개혁 입법을 흔들리지 않고 중단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민생 입법과제로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경제 대책 마련 ▲ 소상공인·자영업자 소급 손실보상 추진 ▲ 1가구 1주택을 원칙으로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 확대 및 금융·세제 지원 검토 등을 강조했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윤호중 누구? 대야 ‘강경 기조’ 유지 전망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는 1963년생으로 경기도 구리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춘천고 출신으로 서울대(철학과 81학번)에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학생운동을 했다. 1987년 평화민주당 기획조정실 기획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한광옥 의원 비서관, 민주당 부대변인 등을 지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18대에는 낙선하고 19대, 20대, 21대에 당선한 4선 국회의원이다. 당내에서는 이해찬 전 대표와 가깝다.

그의 원내대표 압도적 당선은 21대 총선 당시 사무총장으로 초선의원들의 공천에 관여하며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후보가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윤호중 원내대표 체제에서 여야 관계는 강 대 강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원내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개혁과 협치의 우선순위에 대해 윤호중 원내대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개혁이다. 협치는 우리가 선택할 대안이 아니다. 일종의 협치 계약이 있지 않은 한 협치는 불가능하다. 적당히 상임위를 나눠 가진 뒤 발목잡기 하는 것은 협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검찰총장의 대통령 인사권 침해”로 명확히 규정했다. 따라서 윤호중 원내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은 김태년 전임 원내대표 때와 마찬가지로 강경한 대야 관계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성한용 기자


윤호중 "새 지도부와 협의해 검찰개혁 추진절차 결정"

취임 일성 "철저히 반성·혁신…대선에서 국민 사랑받겠다"

"2030 민심 확인하고도 변하지 못해"…강성지지층에 "인신공격 삼가달라"

 

인사하는 민주당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윤호중 원내대표(왼쪽)가 함께 경쟁했던 박완주 의원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16일 취임 일성으로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해 유능한 개혁정당, 일하는 민주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21대 국회 2기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력 의회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개혁과제와 관련, "이미 제출된 법안이 많이 있고, 앞으로 제출될 것도 있다"며 "검찰개혁 법안은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 협의해서 추진 절차를 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현장 점검이 우선이다. 어떤 효과를 내고 부작용이 있는지부터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주택정책 템포를 조절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현재 진행되는 것은 그대로 진행하고, 제도를 미세조정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국민권익위에서 진행 중인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여부 전수조사에 대해서는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도덕 기준에 대한 요구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며 "조사 결과를 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조국 사태'에 대한 질문에는 "지난 총선에서 2030 세대 청년들이 공정 문제에 관심이 많고 민감하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스스로 변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우리 안에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

당내 강성 지지층을 향해서는 "당원들이 의원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숙고해 판단하고, 인신공격이나 폄하 발언 등 부적절 표현은 서로 삼가달라는 요청을 반복해 드린다"고 당부했다.

 

윤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원구성 재협상 요구에 대해 "2년차 원내대표는 원구성 협상 권한이 없다. 이미 작년에 원구성 협상이 마무리됐고, 본회의에서 상임위원장 선출이 모두 이뤄졌다"며 "더이상 그 문제로 여야 관계가 파행할 이유가 없다"고 국회 원구성 재협상 관측을 일축했다.

현재 국회 법사위원장인 그는 후임자 인선과 관련해 "당내에서 적임자를 찾겠다"고 언급했다.

윤 원내대표는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 함께 혁신 작업이 계속되도록 해서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개입·연방기관 해킹 등에 대응
러 외교관 10명 추방, 32개 개인·기관도 제재
바이든 “비례적 대응일 뿐 긴장 사이클 원치 않아”
“대화와 외교 필요”…올여름 정상회담 희망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5일 미 대선 개입과 연방기관 해킹 사건 등과 관련해 외교관 10명 추방 등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제재를 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발표 뒤에 “이제는 긴장을 완화할 시간”이라며 미-러 정상회담 의사를 거듭 밝히는 등 긴장 조절에 나섰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선거에 개입하려 한 러시아 16개 기관과 개인 16명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러시아 정보당국의 사이버해킹을 지원한 6개 기업도 제재 대상에 들었다. 또한 워싱턴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일하는 10명의 러시아 당국자도 추방했다. 이 10명에는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들이 포함됐다. 미 금융기관이 오는 6월14일부터 러시아 중앙은행과 재무부, 국부펀드가 발행하는 신규 채권을 매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도 포함됐다.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의 대선 개입과 국무부·국방부 등 연방기관에 대한 해킹과 관련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러시아 야권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와 관련해 러시아 개인과 기관을 제재했다. 이번 제재는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군을 증강해 긴장을 높이는 가운데 나왔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어 “바이든 대통령의 명령은 러시아가 불안을 초래하는 국제적 행동을 지속하거나 확대한다면 미국이 전략적이고 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대가를 부과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제재 발표 뒤 긴장 완화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조처가 해킹과 대선 개입에 대한 “비례적” 대응이라며 “미국은 러시아와 긴장 고조 및 갈등의 사이클 시작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재를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균형을 맞췄다면서, “러시아가 우리 민주주의에 계속 개입하면 나는 추가 대응 조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려 깊은 대화와 외교적 과정”이 필요하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올여름 유럽의 제3국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도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백악관이 밝힌 바 있다. 이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 계획을 미리 알렸을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기자들에게 “푸틴과 통화에서 나는 우리 둘 사이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이 더 효과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밝혔고, 푸틴도 그 점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날 제재에 대해 러시아 외교부는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밝히지 않은 채 “대응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항의의 뜻으로 존 설리번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주 베를린 일본대사관, 박물관 쪽에 요청
가토 “일본 입장과 안맞아, 신속 철거 노력”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주립민속박물관 전시장 안쪽에 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설치 됐다.

 

독일 공공박물관에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독일 드레스덴 공공박물관에서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전시되기 시작했다”며 “베를린 일본대사관이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동상의 전시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나 지금까지 노력과 맞지 않는 것”이라며 “신속한 철거를 위해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나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연합은 이날부터 오는 8월1일까지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두 개의 소녀상이 전시됐다. 전시장 안에는 2017년 서울 시내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전시장 바깥 마당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놓였다.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 박물관연합 총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의 이야기는 아직 독일 사회에서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전시회가 개개인의 ‘자전적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베를린 일본대사관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며 박물관 쪽에 유감을 표시하고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계속 설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일본 ‘10cm 소녀상’도 안된다?…더 커지고 많아진 독일 소녀상

드레스덴 주립박물관, 4월16일부터 8월1일까지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 기획전시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주립민속박물관 일본궁전 안뜰에 소녀상이 놓였다.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1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곱게 수놓은 걸개 그림이 관객들을 맞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군이 여자와 아이들을 베고 찌르고 집단 강간하는 잔인한 장면들이다. 필리핀 레메디오스 필리아스 로라가 일일이 수를 놓은 손바느질 작품 <나의 전쟁 경험>이다. 그 뒤로는 일본 사진작가 야지마 츠카사가 찍은 한국 문필기, 배춘희 할머니 등 6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 전 중 일본군 ‘위안부’ 주제전시실의 풍경이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독일인들에겐 낯선 이 야만의 풍경이 16일부터 8월1일까지 독일 관람객들을 만난다.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주립민속박물관 전시장 안쪽에 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설치 됐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 안팎에 자리한 소녀상이다. 전시장 안에는 2017년 서울시내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전시장 바깥 마당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놓였다. 1년을 준비해온 이번 전시에서는 애초 가벼운 버스 소녀상만 설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베를린 소녀상 설치과정의 진통을 지켜본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쪽은 이번 드레스덴 전시에서 베를린과 같은 소녀상을 전시장 밖에도 설치하자는 독-한 단체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박물관 내 소녀상은 이번 전시가 종료된 뒤에도 내년 4월15일까지 존치된다.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 및 작센주 박물관 총괄대표.

 

2019년 독일 라벤스부르거 전시회에서 10cm 미니소녀상이 전시됐다가 일본 영사관 항의로 철거된 것을 생각하면 두 개의 소녀상은 커다란 변화다. 드레스덴 및 작센주 박물관 총괄대표인 마리온 아커만 관장(56)은 일본 쪽 압력을 예상하면서도 소녀상 전시를 수용하고 나섰다. 15일 전시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일본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동시에 일본문화를 존중하고 일본정부와 계속 대화할 것”이라면서도 “홀로코스트 역사를 철저히 교육받고 자란 세대로서 나 또한 우리 사회가 전쟁 피해자를 잊지 않도록 늘 상기시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며 소녀상 전시는 관장으로서 자신의 책무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커만 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할머니들이 부르는 “사공의 노래”와 할머니들의 사진들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는 작품이 아니라 기록물이지만 피해자가 그후의 세월을 살아낸 표정이 쌓여있다고 했다. 그는 또 “더 이상 박물관은 외딴 섬이 아니라 활동가, 일반 시민, 피해자, 가해자 등을 연결하고 대화를 촉발하는 연결지점이자 매듭”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은 탈식민지라는 주제로 미술을 통해서 역사적 반성과 사회참여를 담당해왔다.

 

                    레온티네 마이에르 판 멘쉬 주립민속박물관 관장.

 

전시는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 독일제국이 저지른 헤레로-나마 집단학살 등 여성에 대한 다양한 전쟁범죄를 다뤘지만 그 중심은 한국 ‘위안부’ 문제다. 주립민속박물관 레온티네 마이에르 판 멘쉬 관장(48)은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침묵을 깬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데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하며, 상실을 극복해온 사례는 상징과도 같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전시를 적극적으로 기획, 추진한 이유를 밝혔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왜 드레스덴에 전시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관장의 답은 분명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폭력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이 와서 전시를 보고 침묵을 깨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두 명의 여성관장 및 드레스덴 박물관 큐레이터 바바라 회퍼,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 등 여성들의 강력한 의지가 만들어낸 전시라는 평을 얻는다.

 

                   한정화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대표.

 

한편으로는 또 최근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독일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전시를 함께 한정화 대표는 “나치 청산과는 달리 독일은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비판과 성찰이 많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해자-패전국인 일본의 정서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소녀상을 계기로 일본정부가 예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시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레스덴/ 남은주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