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족은 풍요속의 빈곤을 뒤뜰에서 체험한다. 나날이 검붉게 익어가는 이웃집의 체리들을 넘겨다보며 눈요기로 그 맛을 가늠하다가도 간간이 못가진 자의 속내를 풀어내기도 한다.
‘옆집 마리아네 체리는 나무는 고목이지만 알맹이가 좀 작아서 탈이야.’
‘어휴, 건넛집 체리는 얼마나 지 멋대로 생겼는지.... 나무 손질을 안 하니깐 뻔하지 뭐.’
‘올핸 저쪽 마리오네 체리가 제일 먹음직 해. 사시사철 뜰에서 살더니 저 정도는 되어야지.’
싱그러운 잎사귀 사이사이로 상큼한 열매를 물고 서 있는 이즈음의 체리나무는, 우리가족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마음이 조금 수그러질 것 같다. 일찍이 이식한 아기묘목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덕택이다.
올 봄, 작은 녀석이 튜울립을 닮은 아이와 혼례를 올렸다. 때마침 이른 봄철이라 새 식구를 맞아들인 기념으로 식수를 하기로 했다. 우리부부는 어떤 나무가 좋을지 궁리를 하다가 유실수 중에서 꽃은 물론 호흡이 긴 배나무를 권했다. 하지만 화사한 신혼부부는 이구동성으로 체리나무를 원했다. 그들의 분위기에 꼭 맞는 꽃과 열매를 소유한 나무라 더 바랄나위가 없었지만 한 번 실패한 전적이 있어 좀 망설여졌다. 이번 식목은 결혼기념수란 소명을 가진 만큼 되도록 거리낌이 없는 종으로 심고 싶었으나 주인공들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좋은 묘목을 찾아 화원을 전전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발길이 묶였다. 자연의 향취가 물씬거리는 주인 앞에 십여 그루의 묘목들이 얼기설기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에서 뽑아낸 듯, 매끈매끈한 나무들에서는 동하지 않던 마음이 제멋대로 자란 놈들을 만나자 선뜻 다가가서 요모조모 훓어 보게 되었다. 아마도 모양보다 내실을 기하라는 눈이 한 번의 실패에서 뜨였던 모양이다.
드디어 키는 겉 자랐으나 접목부문이 단단하고 이식하기에 적합한 수령의 묘목을 골랐다. 콩알만 한 체리 몇 개가 앙증맞게 매달린 묘목을 본 아들내외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식목은 온 가족이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서로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무를 심을 땐, 구덩이를 크고 깊게 판 다음 흙과 거름을 적당하게 섞어야 하며 식수가 끝난 다음에는 물을 충분히 주고 겉 자란 지점을 전지 해 주라’는 식목요령도 일러주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뒤뜰로 가니 조그마한 새 식구가 새초롬히 서 있었다. 생김새가 썩 신통하지 않았던 나무였는데 제 자리를 잡고 나니 모양도 단아하고 새로운 분위기가 들어 좋았다. 이번 식목은 의미를 담은 만큼 실패없이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전지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전지를 한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껑충하게 겉 자란 부분은 분명히 있는데 전체적인 균형미가 처음과 달라서 아이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엄마가 땅을 깊이 파라고 해서 1미터 넘게 파느라 어젯밤 늦도록 혼났어요.”
“세상에…그럼, 전지를 하랬더니 대신 파묻었단 말이야?”
“예. 다 판 다음 깊이대로 묻고 나니 잘라 낼 게 없어서 그냥 두었어요.”
뿌리가 쉽게 내릴 수 있도록 여분의 땅을 판 다음 적당한 지점에 심으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가 엉뚱하게 흘러버린 것이다.
이튿날 아침, 남편은 깊이깊이 파묻힌 묘목을 파내느라 또 한나절을 보냈다. 저희들 딴엔 잘 한답시고 야무지게 다져놓은 땅이 몇 시간만에 애비를 힘들게 할 줄 꿈엔들 생각했을까.
“어이쿠, 접목한 부분이 저 아래 있네.” 땅을 파 내려가던 남편이 실소를 한다. 그것을 본 새 아이가 “아버지, 저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옆에서 사진도 찍고 얼마나 즐거워했는데요.”
이론에는 밝지만 실전에 어두운 요즘 세대들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새내기 부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저 같은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른다. 한 번 실족할 때 마다 더 큰 깨우침을 얻고 일어나는 지혜로운 부부이길 빌어본다.
아이들이 열성으로 가꾸어 갈 우리집 체리는 언젠가 메리네 고목에다 마리오네 체리가 열렸으면 좋겠다.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에세이스트 신인상. 한국문단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