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수감중인 김경준씨가 이 사건에 대해 육성으로 증언하는 내용이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통해 최근 공개됐다. 2007년 당시 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 쪽이 아니라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쪽으로부터 입국을 권유받았고, 검찰이 가족에 대한 선처와 형량 축소 등을 미끼로 거짓 진술을 회유했다는 등 두가지가 핵심 내용이다. 그러면서 총선 뒤에 국정조사를 하면 출석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고 한다. 그의 육성이 공개된 건 처음인데다 친박 의원의 실명까지 거론하고 있어 진위를 가리지 않고 넘어가기는 힘들게 됐다.
그는 기획입국 논란에 대해 “저한테 와서 협상한 건 처음에는 박근혜 후보 쪽이었다”고 말한 뒤 ‘누구냐’는 질문에 “이혜훈 의원”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명박 후보 쪽의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이 오기 전에 박 후보 쪽이 먼저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원은 “만난 적 없다”며 부인하고 있는데, 방송만 들어서는 이 의원이 직접 왔다는 것인지 대리인을 보냈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김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반대편에 섰던 한나라당 인사가 ‘기획입국’ 공작을 꾸몄는데도 엉뚱하게 민주당에 뒤집어씌운 꼴이 된다.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 후보를 돕고 상대 후보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가짜 편지까지 조작한 것은 당 차원의 정치공작에 가깝다. 시점상 이와는 별개로 진행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획입국 자체에 이 의원이 관여했다면 박근혜 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진상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씨는 검찰이 압박하는 장면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누나(에리카 김)랑 처를 잡아온다고 해가지고 제가 너무 겁을 먹었어요. … 이렇게 하면 형도 줄여주고 (미국으로) 이송 가게 해준다고 했어요”라며 검찰이 거짓 진술을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검찰의 회유 주장은 사건 당시에도 가족들에 의해 ‘메모’ 형태로 공개된 바 있으나 이번에는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사실이 아니라며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2심에서 졌다. 김씨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증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검찰의 핵심 위치에서 중요한 수사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진위를 가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당사자인 김씨가 육성으로 증언한 이상 박 위원장 쪽과 검찰 모두 법적, 정치적 절차 이전에라도 당시의 진상을 스스로 공개해야 마땅하다.


지난해 11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이 국제경쟁투표가 아니라 케이티(KT: 한국통신) 전용회선을 통한 국내전화투표로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다. KT가 제주도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한테 비싼 국제전화 요금을 거둬 이 행사를 주관한 ‘뉴세븐원더스’라는 단체에 줬다는 것이다. 결국 뉴세븐원더스는 KT와 합작으로 큰 돈벌이를 했으며, 제주도는 이 단체로부터 ‘7대 경관’ 타이틀을 매수한 꼴이 됐다. 7대 경관 선정이 사실상 국제적 대국민 사기임이 드러난 이상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한 의혹은 처음부터 끊이지 않았다. 스위스에 등록된 뉴세븐원더스는 버나드 웨버라는 개인이 만든 재단인데 아직까지도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이 재단 운영은, 역시 버나드 웨버가 차린 ‘뉴오픈월드코퍼레이션’이라는 영리법인이 맡고 있다. 즉 공익재단을 내세워 돈벌이를 하는 곳이다. 유네스코는 뉴세븐원더스가 벌이는 사업에 대해 ‘비과학적이고 공정성이 없으며, 영리 목적의 개인적 투기성 사업’이라고 경고한 바도 있다.
7대 경관 선정과 관련해 뉴세븐원더스가 돈을 버는 방식도 간단했다. KT와 계약을 맺어 되도록 많이 전화투표를 하도록 유도하고 요금 수입의 일부를 챙기는 방식이다. KT는 이 투표에 필요한 단축전화번호까지 부여하고 최대한 투표 건수를 올리도록 했다. 문제는 KT가 투표용으로 제공한 전화번호가 자체 전용회선으로 연결한 국내전화였다는 데 있다. 제주의 7대 경관 선정이 국내전화투표 집계로만 이뤄진 것이다. 이 투표에 제주도청이 행정전화로 들인 비용만 수백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제주도청과 범국민추진위원회(위원장 정운찬)는 선정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근거 없는 흠집내기’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전화투표의 실체가 밝혀진 만큼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없어졌다. 이미 제주도의 7개 시민단체는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뒤늦게 KT의 국제전화 번호 사용 절차 등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실태조사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조사 결과 절차와 규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면 KT의 관련 임직원들은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제주도청과 범국민추진위원회도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에 결과적으로 동조한 데 대해 철저하게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 자연유산인 제주도의 명예를 회복하고 실추된 ‘국격’을 다시 세우는 길이다.


20대 전과자 몇명이 여당 국회의원 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중앙선관위 누리집을 공격하여, 재보궐 선거날 아침 2시간 반 동안 선관위 누리집이 접속장애를 겪었다는 것이 선관위·경찰·검찰의 입장이다. 디도스 공격이 있었고 범인도 잡힌 마당에 근거 없이 선관위 관계자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헌법기관의 신뢰성을 실추시키고, 엄정한 수사 당국의 법집행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괴담’이고, 허무맹랑한 ‘음모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사 발표에 대하여 적지 않은 불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80년대 군사정권의 고문치사 사건 수사 발표를 연상하게 한다는 비난이 비등하였지만, 디도스 공격이나 디도스 방어기제에 대한 기술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선관위 접속장애 사건 수사 발표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로 지난 2월 선관위가 마지못해 공개한 기술보고서는 사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선관위는 세개의 회선(KT 2회선, LG 1회선, 각 155Mbps 용량)으로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는데, 디도스 공격으로 유입 트래픽이 늘어나자 선관위는 KT 회선 두개를 스스로 다운시켜 남은 회선 하나로 트래픽이 몰려들게 했고, 그 결과 병목현상이 초래되어 통신장비(라우터)가 오작동을 거듭했음이 드러났다. 선관위는 이런 상태를 1시간 반가량 유지하다가 출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사이버 대피소로 이동하여(오전 8시32분) 그때부터 정상 접속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선관위는 디도스 방어장비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 장비가 선관위로 유입된 공격 트래픽을 가려내어 차단했으며, 오전 7시 이후에는 공격 트래픽이건 정상 트래픽이건 아예 선관위로 유입되지도 못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으므로 선관위의 접속장애는 디도스 공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기술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작년 11월26일에 작성되어 선관위와 수사당국에 제출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기술보고서의 내용과는 판이한 수사 발표를 올해 1월에 하였다. 검찰은 “디도스 공격 아이피(IP) 차단(6:25)”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지만, 실은 선관위가 KT에만 디도스 공격 아이피를 알려주고 그런 아이피에서 오는 트래픽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한 뒤, 막상 유입 트래픽이 줄어들자 KT 회선을 다운시키고 엘지 회선으로만 트래픽을 받는 괴상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숨겨 덮었다.
선관위가 “트래픽 우회 조치(6:58)”를 취했다고 검찰은 발표했지만, 실은 트래픽을 “우회”시킨 것이 아니라 트래픽이 선관위로 그대로 몰려오도록 해놓고, 회선 두개를 다운시켜 선관위 회선 용량을 3분의 1로 줄인 것이었다. 이것을 “트래픽 우회 조치”라고 돌려 말함으로써 검찰은 선관위의 이상한 행동을 숨겼다. 선관위에 디도스 방어 장비가 있었고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수사 발표에는 언급되지 않았고, 망사업자들 역시 디도스 공격을 자체 감지하여 자동 차단하는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을 2009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는 사실도 수사당국은 숨겼다.
 
디도스 공격이 들어오는데, 2시간 반이 넘도록 통신장비(라우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출근 시간이 다 될 무렵에 와서야 사이버 대피소로 이동했고, 그때는 공격도 이미 끝난 뒤였다는 것이 기술보고서에서 드러나는 선관위 접속장애 사건의 실상이다. 선관위는 디도스 대응 매뉴얼에 따라 대처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디도스 대응 매뉴얼 내용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도 드러났다.
해열제 한두알 먹고 양호실로 이동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될 환자를 그 자리에서 안락사시킨 의사가 “고의”는 아니었다며 일반인이 듣기에 그럴싸한 해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 해명이 대부분 거짓말이라면 그 의사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는가? 피해자에게 총상을 입힌 범인을 잡았다면서 수사 발표를 거창하게 했는데, 실은 피해자가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방탄유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수사당국이 알고서도 숨겼다면, 그런 수사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싸구려 공기총으로 방탄유리와 방탄조끼를 모두 돌파하고 상해를 입히는 기적을 믿을 수도 있고, 믿는 자에게 무한한 평온이 깃들 수도 있겠지만, 필자에게 그 정도의 신앙심은 없다.

<김기창 - 고려대학교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1500자 칼럼] 숨 고를 수 있어서

● 칼럼 2012. 3. 20. 17:24 Posted by SisaHan
남편의 끙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침이 시작된다.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새벽 5시 반이다. 반신장애로 살아온 그이나 그의 자립심은 아내인 나에게 한 번도 ‘옷 좀 입혀줘’ ‘양말 좀 신켜줘’ 하고 거의 도움을 요청해 본 일이 없다. 우리가 각방을 쓴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러나 내 귀는 항상 그이의 침실을 향해 열려있다. 마치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언제나 달려 갈 보초병과 같다고 할까. 
집 근처 팀 호튼스 커피숍에 무슨 사인할 일이 있는 사람 마냥 폭설이 내리거나 비가 쏟아지지 않는 한 출근하다시피 한다. 오래 전 목회할 때 새벽기도회의 습관이 잠재해 있다가 되살아 나서 그런가. 이 습관은 10년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 바람에 나도 아침형 생활 습관이 몸에 배이고 말았다. 배달된 신문들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신문 구석구석을 훑어 본 다음. 따끈한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이러노라 한 시간 정도 소모하며 즐기다 보면 밖에 나갔던 남편은 커피 한 잔과 베이글도 종종 아내를 위해 들고 온다.
이젠 루틴화된 시간표에 따라 일주일에 3일은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의 버라이어티 빌리지(Variety Village) 장애인 운동센터에 간다. 유치원 보내는 엄마 같은 심정으로 도시락을 싸고 간식과 신문을 챙겨 장애인용 스쿠터 바구니에 담아 보내고 나면 나 만의 하루도 시작된다. 그런데 참 고맙게도 가기 싫다거나 지루하단 불평하는 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토요일엔 성인장애인 공동체, 주일이면 교회에 출석한다. 운전 못하는 바보 아내를 둔 덕분에 함께 나갈 때도 교통수단은 장애인 전용 버스다. 당신의 행동반경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고 따라주는 남편이 고맙다. 사교엔 빵점인 그이다. 대화를 시도하나 단답형 대화는 더 이상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함께 사는 우리에겐 대화가 없어도 좋다.
 
한 집안에서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공존의 안심함이 있어 편안하다.  단순한 그의 움직임은 때론 어린아이같이 순진무구하나 그것이 답답함이 아니고 사랑스런 몸짓으로 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56, 그이는 57, 그런 나이에 우린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이탈되고 말았다. 이탈된 궤도이나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가며 살아온지 18년 째이다.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지만 나는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다. 
그가 장애인이 된 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우선 은퇴 이후 생활의 안정이다. 아이들은 중년에 이르자 우리들의 보호자 역할을 할 만큼 철이 들었다. 
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귀한 친구도 만났다. 이민 목회 20여년 동안, 진정한 신앙동지이며 우정의 결정체를 생산해 낸 그 열매가 C씨에게서 맺어졌다. 그래서 그이도 나도 외롭지 않다. 한 주에 한번 씩은 풍성한 밥상을 준비하는 재미가 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주는 우리들의 친구와 함께 함이 기쁨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이가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목회 현장을 떠나야 하는 아픔, 일생을 통하여 쌓아 놓았던 노력이 우르르 무너지는 꿈,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의 긴박한 상황에서 어둡고 긴 터널을 거쳐오는 동안 형벌처럼 다가왔던 그 두려움은 마침내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들 하나님의 손길이 지켜주고 있었다.
 
그이를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사람 같다. 내가 더 이상 그이의 간병사로 자격상실 판정되면 스스로 너싱 홈으로 가겠다는 심중을 때때로 토로한다. 내 건강을 챙기고 그이의 건강관리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생활을 깨뜨리고 싶지않아서 이다. 그이가 사경을 헤맬 때에도, 반신을 못쓰게 되어 너싱 홈을 찾아야 할 각오를 해야 했었을 때도, 이건 절대 불가하다는 나의 결심은 내 에너지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여 그이의 회복을 위한 사투(死鬪)도 마지않았던 것이다. 
지적인 기능은 점점 쇠퇴해 가는 그이나 나에게 열려있는 남편의 가슴은 따뜻하기만 하다. 
마음 것 날을 수 있도록 숨 고를 기회를 주고 있다. 그의 아내로서도 내 이름 석 자 달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줌이 그지없이 고맙다. 
                             
남편은 내가 정신적으로 깨어있게 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장거리 경주를 제대로 완주하려면 중간 중간 물도 마셔야 하고 숨도 고르며 달려야 끝까지 골인할 수 있다. 평생 간병사 역할을 해야 할 장애인가족은 마치 장거리경주 선수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