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하여 사람인(人)자는 둘이 서로 기대어 버티고 선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한다. 글자의 뜻과 같이 우리는 가족을 포함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외로워 견디기 힘들 때도 있고, 근심과 절망에 쓰러질 때도 있다. 서로 의지하여야 하는 사람들이 절망을 안고 쓰러지고, 자기 혼자만의 성을 쌓고 외로워하는 것은 슬픈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 이라는 제목을 써놓고 보니, 이거 잘못 들어갔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일이 아닐까 해서다. 인간이 창조되고 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루었고, 그 답은 저마다 모두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니 나름대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우리들은 사람을 인간(人間)이라 하며 잘못된 사람을 향하여 “먼저 인간이 되라”고 훈계를 한다. 아직도 우리의 글에는 한자(漢字)가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이 있다. 사람을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한자가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人’자가 사람임을 표시하는데도 사이’間’ 자를 붙여서 그 뜻을 완성하였다.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가 형성될 때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 ‘인간’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을 인간이라 칭해야 되는데, 가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칭할 때 “아이구! 이 인간아!”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정말 인간이란 사람과의 관계형성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슬픔, 기쁨, 행복, 빈부, 화, 인내, 평화, 사랑, 이 모든 것이 관계가 없다면 무의미 해진다. 어떤 이는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 간섭하지 말라, 주는 것도 싫고 받는 것도 싫다.” 하면서 극히 자신을 공평한 사람으로 인식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부모와 친척, 친구, 선생님, 책을 쓴 저자, 각종 생활용품을 만드신 분들, 정치가에 이르기 까지 나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내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스스로 만들어 진 것이 하나도 없다. 가끔 서로의 신뢰가 깨어지는 아픔이 있다. 쌍방 모두의 손실이며 쌍방 모두의 오해와 관용의 부족으로 신뢰는 깨어진다. 이럴 때도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이들이 실리를 추구하거나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것을 잊음으로 인하여 오해가 생긴다.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조금 손해를 보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은 “사람이 가진 것이,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없는데 자기 손에 들어오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라고 하였다. 사람의 욕심에 대하여 일침을 하신 말씀이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매일을 서로가 힘들어 하며 사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서로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으로 알고 서로를 아끼며 사랑으로 사는 부부도 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얻게 하신다. 모두를 사랑하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삶 이다.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음이라고 하셨다. 믿음은 약속이며, 약속은 서로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이웃과의 믿음이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하여준 모든 것을 생각해 본다. 내가 남에게 기대어 서는 사람 인(人)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특별히 가정의 행복은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를 행복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여도 천국을 만들 수 있음을 믿고 나아가자.
<정훈태 장로 - 목민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