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D 프린터와 총기 제작

● 칼럼 2013. 2. 8. 16:56 Posted by SisaHan
입체(3D) 프린터란 컴퓨터디자인(CAD) 프로그램으로 만든 설계도대로 입체적 물체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프린터 노즐에서 잉크 대신 합성수지를 분사해 얇은 막을 쌓아올리거나 레이저를 이용해 플라스틱, 금속, 콘크리트 등을 설계도대로 깎아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주로 산업용 모형 제작이나 교육용으로 활용되어왔는데 1000달러 안팎의 제품까지 나왔다. 
유튜브에는 플라스틱 모형을 비롯해 동력장치를 갖추고 비행하는 모형항공기에 이르기까지 입체프린터로 만들어낸 다양한 물체의 동영상이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입체프린터를 2012년 최고의 발명품에 포함시켰고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도 올해 주목받을 10대 국제 뉴스에 이를 선정했다. 인터넷에 많은 제품의 컴퓨터 설계도와 제조방법이 공개되어 있고 입체프린터를 이용해 누구나 설계도대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내공장(home fabrication)의 시대가 가능하다는 예측이다. 오픈소스와 입체프린터를 활용한 프로젝트 파브앳홈(www.fabathome.org)은 ‘모든 걸 만들어보자’는 게 구호다. 
마셜 매클루언은 일찍이 프린터의 등장을 보고 “구텐베르크는 만인을 독자로 만들었고 제록스는 만인을 발행인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누구나 매체의 발행인이 될 수 있도록 했다면 입체프린터는 누구나 원하는 것을 집안에서 손수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를 예고한다.

미국에선 입체프린터가 총기 규제 논란에 가세하고 있다. 지난해 입체프린터를 이용해 손수 총을 만든 사실이 알려진 뒤, 플라스틱 총기 제작 사례가 늘고 있다. 
실탄 발사 뒤 변형이 생기는 등 아직은 실제 총기와 성능 차이가 크지만,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손수 총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총기 규제 불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신기술은 항상 인문적·사회적 성찰을 요구한다.

< 구본권 - 한겨레신문 온라인 에디터 >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씨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번에는 김씨가 누리집에 올린 정치 관련 게시글이 80건 이상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김씨의 아이디를 이용해 댓글 작성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는 ㄱ씨가 경찰의 출석 요청을 거부한 채 잠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터져나오는데도 국정원은 정당한 ‘대북 심리전’ 활동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활동을 해왔을 가능성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지난해 대선 전까지 ‘오늘의 유머’ 등 3개 누리집에 158건의 정치적인 글을 쓴 행위는 국정원법 9조의 ‘정치관여 금지’ 조항에 명백히 위반된다. 김씨한테서 5개의 아이디를 받은 ㄱ씨는 적어도 30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오늘의 유머’에서 200여건의 게시글을 올리고 2000여회의 찬반표시를 하는 등 김씨보다 더 열심히 활동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국정원은 “간첩 잡고 싶어하는 민주시민”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잠적한 것을 보면 ‘공작’에 연루된 의혹이 짙다. 김씨가 누리집에 올린 글 가운데 4대강 홍보 등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80건 넘게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도 ‘대북 심리전’이란 국정원 주장의 허구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벌인 사건이라면, 어렵게 눈치보며 수사를 하고 있는 일선 경찰서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수사 주체를 격상하는 등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국정원이 심리정보국의 대북 심리전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상, 국회가 본격적으로 나서 국정원으로부터 심리정보국 활동상황을 보고받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정당한 활동이었다면 국정원이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국정조사를 요구해온 민주당은 이 사건을 ‘최악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위원회를 비대위 직속 당 차원 특위로 격상시켜 진상규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한다. 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면 정말로 국기문란 행위다. 민주주의 핵심인 공정선거가 훼손됐는데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면 야당 자격도 없다. 당운을 거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선거기간 김씨를 비호하며 민주당을 인권유린 한다고 역공격했던 새누리당이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스스로 떳떳하다면 국정조사 요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12월12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제재와 반발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위기 수위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관련국 모두 위기가 폭발하지 않도록 냉정과 자제가 필요한 때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그제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주재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강령적 지침으로 되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087호 채택 이후 북한의 격앙된 반응에 비춰볼 때, 제3차 핵실험의 단추를 누르기로 최종 결심했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되돌리기 어려운 궤도에 진입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긴장을 한껏 높임으로써 미국을 담판에 끌어내자는 속셈일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제재가 발표된 날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국방위원회는 다음날 미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예고했다. 철저하게 미국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하지만 상황이 북한의 의도대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안보리 결의 2087호를 채택하면서 이미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자동으로 ‘중대한 조처’를 취하도록 해놨다. 중대한 조처는 관련국들이 추후 논의하겠지만, 북한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금융 및 무역 제재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미국·일본 정부는 상호 조율을 통해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계속하면 중대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해 둔 상태다. 한-미 군사당국이 어제부터 미 핵잠수함과 이지스함 등이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시작한 것도 북한의 도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협상파의 입지를 좁히고 강경파의 목소리를 강화해주게 돼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도 싸늘해지고 있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이전과 달리,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공공연히 편다. 북한은 고립과 민생의 피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제3차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나라와 미국도 무조건 압박으로만 밀어붙일 게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한-미 연합 전력이 북한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아무리 압박을 강화해도 체제 위협에서 비롯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미 당국은 이런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최후까지 대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박근혜 당선인은 보고를 받을 때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외면할 때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보고하는 사람은 애가 탄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다시 부르면 합격이고, 다시 부르지 않으면 잘린 것이다.
사람을 쓰는 방식도 독특하다. 몇 사람을 몰래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능력이 있고 믿음이 간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기용한다. 개인적인 인연은 따지지 않는다. 당사자가 이유를 물으면 “당신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발탁된 사람은 감격에 겨워 충성을 다하게 되어 있다.
그는 이런 용인술을 청와대 시절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1963년 그는 11살이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퍼스트레이디’와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운명의 짐을 짊어진 1974년엔 22살이었다. 10대와 20대의 기억과 감수성은 평생을 지배한다. 박근혜 당선인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라 장관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다. 장관들은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 각 부 내부 인사권은 장관에게 준다. 재임 기간도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최근 당선인 주변과 새누리당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박정희 시절 그랬듯이 ‘장관의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박정희 이후 대통령들이 단기간에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을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키워 놓았다는 친절한 설명도 붙는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박정희 시절 장관이 막강했던 이유는 입법부의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지배했다. 법률이 필요하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국회는 통법부였다. 행정부 절대우위의 구조에서 장관의 힘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과거 장관의 재량이었던 영역은 대개 법률의 영역이다. 장관에게 필요한 능력은 입법부, 특히 야당에 대한 설득력이다. 대통령도 대국민, 대국회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커진 것은 여러 부에 걸치는 복잡한 현안이 늘어나면서 정책 조정 기능이 중요해진 탓이다. 청와대를 약화시키려면 총리실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행정부 절대우위의 구조’, ‘장관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과 경험만으로 국정을 밀고 가려 하면 파멸할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방식은 2010년대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한다. 다행히 그는 정치인으로서 아버지보다 우월하다. 1998년 이후 정치와 정책에서 수많은 좌절과 성취를 겪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여성이다. 여성적 리더십은 경청과 공감, 설득을 본질로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박정희 리더십과 박근혜 리더십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걱정이다.

과거회귀 현상은 야당에도 나타나고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한 민주통합당에서는 최근 ‘김대중 시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꿈틀거린다. 주말 워크숍에서 몇몇 참석자들은 “총재 같은 대표를 선출하고 최고위원들을 없애는 단일지도체제”, “대표와 당 5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부 체제”를 제안했다. 확고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일리가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정치적 지분을 가진 몇몇 세력의 과점을 뒷받침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에는 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리더가 없는데 느닷없이 독점체제를 도입하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워크숍에서 많은 참석자들은 모바일 투표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현장 투표에서 발생했던 조직 동원과 돈봉투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쩌자는 것일까?
과거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의 해법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창조적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다.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