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돈봉투’ 파문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경선에서도 돈 쓰는 조직선거를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건넨 후보로 박희태 국회의장을 지목함에 따라 현직 입법부 수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통합당에서도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 후보가 영남권에서 돈봉투를 돌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돈 정치’의 오염상태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고승덕 의원이 받은 300만원은 빙산의 일각인 것으로 보인다. 고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박희태 후보 쪽 사람이 들고 온) 가방 속에는 같은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 있었다”고 말해 돈봉투가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도 무더기로 살포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박 후보 쪽의 서울 및 원외조직을 책임졌던 당협위원장이 서울지역 30개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원씩 돌리도록 소속 구의원들에게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당시 전당대회에 수십억원이 살포됐다는 정가의 풍문이 근거 없는 헛소문만은 아닌 듯하다. 
박 의장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으나 2008년 전당대회에서 청와대가 당 대표로 밀었다. 공천 탈락자를 당 대표로 기용하려는 것부터가 코미디였다. 명분이 부족한 인물을 당 대표로 만들려다 보니 무리수가 따른 것은 당연하다. 그가 살포한 자금의 출처와 관련해 친이계 핵심인사들의 역할이 주목되는 이유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전당대회 당시 뿌려진 돈의 전체 규모와 출처, 돈을 받은 의원들이 누구인지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박 의장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만 할 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검찰이 현직 입법부 수장을 조사하는 데 따른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당에서도 대구의 한 전직 원외지구당위원장이 전당대회 예비경선 이전에 특정 후보의 돈을 받아 대의원들에게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로 했다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만약 당 차원에서 진실 규명이 어렵다면 한나라당처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돈봉투 의혹은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체의 명운이 달려 있는 사안이다. 각 정당은 이번 기회에 해묵은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칼럼] 2012년에 그리는 새 세상

● 칼럼 2012. 1. 9. 15:28 Posted by SisaHan
새해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아, 드디어 2012년이 왔구나’ 했을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거의 끝나고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선거의 해이기 때문이다. 운명적으로 중요한 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도대체 우리에게 선거는 무엇인가? 정당이 자리를 바꾸면 나라가 좋아지는가. 집권하는 정당원들의 팔자야 바뀌겠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선거는 지루한 일상에 흥분을 주기 위해 치르는 것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들의 삶을 위해 하는 것이다. 새 집권당이 새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선거는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새해 벽두에 우리가 바라는 그 새 세상을 그려보자. 
새로운 경제구조를 그려본다. 재벌들이 몰아가던 국부를 국민들이 더 많이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 대기업이 오늘날 이만한 성장을 이룬 것은 해외시장 개척의 공도 있었겠지만 국내의 중소기업과 일하는 사람들의 몫을 지나치게 가져간 탓이 크다. 정부가 주는 각종 지원의 혜택도 단단히 보았다. 이제 새로운 사회에서 대기업은 사회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재벌은 중소기업에 정당한 가격을 주고,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훨씬 줄여서 훨씬 많은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건전하게 성장할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변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대해 올바른 규칙을 설정해 주지 않으면 경제도 발전하기 어렵다. 한동안 정부는 언제나 잘못을 범하는 존재이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바로 서지 못하면 시장도 비틀거린다는 것을 1998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를 통해 우리는 잘 알게 되었다. 정부가 실패하는 존재라면 시장 역시 실패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박정희식 독재정부가 아니다. 청렴하고 유능하며 절도 있고 민주적인 지도력을 원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 창의적인 교육의 기회가 유아에서 노인까지 폭넓게 주어져 모든 국민이 제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가정경제는 국가로부터 안정된 소득 보장을 받아야 한다. 가계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담당해 주어야 가계는 위기의 순간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 모든 개인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 보육, 교육, 훈련, 고용지원, 건강, 요양, 문화, 생활체육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유능해질 수 있다. 이것이 경제발전의 새 동력이다. 정부가 이 책임을 더이상 저버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양심에 충실할 권리, 탄압받지 않을 권리, 자유롭게 말할 권리,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정치적 대표성을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의무에도 충실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납세의 의무이다. 세금은 벌금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회원으로서 내는 회비 같은 것이다. 부자는 많이 내야 하고 가난하면 적게라도 내야 한다. 국민들이 세금을 회피하면서 경제가 발전하고 복지가 보장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핵심은 정치다. 현대적이며 유능하고 국민들과 소통하는 공공적 정당이 필요하다. 그런 정당이라야 좋은 정부를,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비전은 없이 정책에 무능하면서 분열이나 일삼고 표 계산에만 밝은 정당이라면 여야 막론하고 없어지는 게 낫다. 나라보다는 제 앞날을 먼저 챙기는 정치인이라면 정치를 그만두든지, 시작하지 말든지 해야 한다. 
2012년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김용익 - 서울대교수, 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의 근거가 돼온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선거법의 대의에 비춰 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그동안 수사기관들이 이 조항을 빌미로 선거 때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적극적인 선거참여를 제한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정치발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운동을 일체 제한받고 있어 기본권 제한이 지나치다”며 “정당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비판을 봉쇄해 정당정치 구현이라는 대의제의 이념적 기반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이 조항을 이유로 트위터나 인터넷 등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 자체를 막아왔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만 해도 중앙선관위가 유명인의 투표 인증샷도 불법이라며 ‘인증샷 10문10답’을 내놓았다가 여당 의원한테서까지 “투표율을 높여야 할 주무기관이 제정신인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선거운동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당으로부터 자제해 달라는 경고를 듣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헌재가 “인터넷은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저렴해 선거운동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정치공간”이라고 밝혔듯이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가능해지면 선거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선거 후보자의 누리집(홈페이지)에서만 허용되던 제한조건이 풀리면 정치 무관심층이나 젊은층의 참여가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야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금지와 규제 중심으로 복잡하게 규정돼 있는 현행 선거법을, 돈은 철저히 묶되 입은 대폭 푸는 방향으로 손보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해보기 바란다.
 
이번 헌재 결정은 방송통신심의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단속 강화에 나선 방통심의위의 조처가 법적 근거와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심의대상을 음란물·도박으로만 제한하자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절충안을 거부한 것은 사실상 정치심의도 하겠다는 것이어서 위헌 가능성이 크다. 방통심의위의 조직 신설은 재고돼야 한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우리 현대사의 암흑기에 온몸으로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일궈낸 투사였다. 그는 어려운 이웃과의 연대를 향한 열정을 한순간도 꺾지 않았다. 그는 곧 우리 사회 민주화와 희망의 뿌리였다. 
김근태 고문은 1967년 대학 재학 중 시위를 주도하면서 민주화투쟁을 시작했다. 이어 노동운동에 참여했고 전두환 정권의 폭압통치가 절정에 이른 1983년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해 의장을 맡았다. 어느 시기이든 반독재 투쟁의 선두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는 1950년대 영국의 한 언론인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이라고 한 말에 강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폭력으로 억압한다고 복종해버린다면 우리 모두가 패배자가 될 것임을 늘 경계했다.

전두환 정권은 그를 체포해 모진 고문을 가했다. 64살의 많지 않은 나이에 숨을 거둔 것도 독재정권의 고문 탓이 크다. 그러나 그는 인간성을 송두리째 파괴하려는 고문에 굴복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고문을 폭로하고 나섰다. 뒷날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고 세계의 양심수로도 선정되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해 온몸을 던져 저항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가를 평가한 결과였다. 
정치인으로서 김근태는 많은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권력정치나 세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공학적 기술에 능한 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무 진지해서 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대신에 그는 정치개혁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했다. 정치권에서 그는 진정성의 정치를 실천한 몇 안 되는 존재였다. 
생전의 그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들이 ‘근태형’ ‘근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정중하고 진지하게 후배들의 말을 경청했고 후배들한테도 존댓말을 썼다.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이 되고자 늘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민주주의를 몸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의 퇴행이 심각하다.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자리잡게 된 제도와 가치관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들이 만만찮다.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김근태가 그래서 더욱 그립다. 그동안 무겁게 짊어지고 왔던 민주화운동의 짐을 내려놓고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