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최종진술 “거대 야당이 북한 지령 받아 탄핵 선동”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인 25일 저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마지막까지 태도 변화는 없었다.

25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1만9000여자 가까이 되는 최종진술의 대부분을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점과 야당을 비판하는 데 썼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야당’을 48번이나 언급하며 거대 야당 의원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행동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적발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만 봐도, 반국가세력의 실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직접 지령을 받고, 군사시설 정보 등을 북한에 넘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심지어 북한의 지시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대선 직후에는 ‘대통령 탄핵의 불씨를 지피라’면서 구체적인 행동 지령까지 내려왔다”며 “2022년 3월26일 ‘윤석열 선제 탄핵 집회’가 열렸고, 2024년 12월 초까지 무려 178회의 대통령 퇴진 탄핵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언론노조 등이 참여했고, 거대 야당 의원도 발언대에 올랐다. 북한의 지령대로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간첩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체제 전복 활동으로 더욱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북한, 중국 러시아 편에 서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은 핵심 국방 예산을 삭감하여 우리 군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며 “거대 야당은 전체 예산의 경우 0.65% 깎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0.65%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마치 사람의 두 눈을 빼놓고, 몸 전체에서 겨우 눈알 두 개 뺐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서울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리다 구속된 청년들을 향해선 “미안하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 기각 이후’에 대한 ‘구상’도 펼쳤다. 그는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87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한다”며 저는 이미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임기 중반 이후에는 개헌과 선거제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해 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개헌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윤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에서 임기 단축 개헌을 꺼내 든 것이다.   < 서영지 기자 >

 

윤석열 몰락 임박…‘현실 자각’ ‘극우층 지지’ 사이 내몰린 국힘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11차 변론 방청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 종결을 앞둔 25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헌법재판소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당 안팎에선 ‘탄핵소추 인용’을 대비해 모드 전환에 들어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강성 지지층이 여전히 ‘탄핵 반대’를 강하게 주장하는 탓에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다고 해도 곧바로 거리두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당내의 중론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날 비상대책위원회에 이어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헌법재판소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권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헌법재판소는 단심이기 때문에,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탄핵 인용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중도층 표심을 고려해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지도부의 ‘절제 모드’와 달리 영남이 지역구이거나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둔 중진들은 메시지와 행보를 여전히 강성 지지층의 정치적 선호에 맞추는 모습이었다.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김기현·나경원·추경호 의원 등 10여명이 그런 경우였다. 김기현 의원은 “헌재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재판 진행 때문에 불행을 겪지 않도록 헌재가 법리와 증거에 따라 탄핵을 기각해줄 것으로 저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도 “150시간의 계엄과 939일 동안 야당의 국정마비에 대해 우리는 헌법재판을 통해 많이 알게 됐다. 어떤 것이 더 위헌적이고 어떤 것이 더 국민에게 해로운 것인지 많은 국민이 보게 됐다”며 “계엄의 헌법 위반 여부, 또 그것이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에 이르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당내에선 윤 대통령과 당장 거리두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우리가 윤 대통령과 당장 거리두기를 한다고 해서 믿겠냐”고 말했다. 친한동훈계 의원조차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오면 지지층이 흥분할 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이 선제적으로 나서 선 긋기에 나설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은 여론 추이를 보면서 윤 대통령과의 거리를 조절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갑자기 항로를 변경하면, 오히려 배가 침몰할 수 있다. 여론 추이를 봐가면서 입장을 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당분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공격에 집중할 것이란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선거법 위반사건 1심에서 이 대표가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만큼 다음달로 예정된 2심에서 유죄가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사법리스크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겠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대로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중도층도 많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말 바꾸기 등을 겨냥한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한겨레  서영지  전광준 기자  >

한국이 “망국적 위기”와 “국가비상사태”에 처해있었다고 주장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최후 진술에서 무려 25번에 걸쳐 ‘간첩’을 언급하며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을 비롯한 외부 주권 침탈 세력과 우리 사회 내부 반국가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진술 내내 한국이 “망국적 위기”와 “국가비상사태”에 처해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증거조사로 시작한 탄핵 심판은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과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종합 변론만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한 윤 대통령은 증거조사를 마치고 국회 측 종합 변론이 진행 중이었던 오후 4시 30분경 헌재에 도착했다. 소추위원단장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은 발언 직전인 오후 9시 3분에야 재판정에 들어섰다.

 

A4 용지 총 77쪽 분량의 문서를 꺼내 들고 재판관 앞에 선 윤 대통령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후 84일이 지났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날들이었지만 감사와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7일 국회의 탄핵소추 1차 표결을 앞두고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며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게 불안과 불편을 끼쳤다. 많이 놀라셨을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저는 이번 계엄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러나 이날 탄핵 심판 최후진술은 윤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체포 전 내놓은 영상 메시지와 체포 직후 공개한 ‘국민께 드리는 글’, 이후 탄핵 심판 변론 기일에서 줄곧 주장한 내용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사과 대신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강성 지지층에게 ‘결집하라’는 식의 옥중 메시지를 내서 분열을 부추기는 방식은 마지막 변론에서도 그대로였다.

 

윤 대통령은 1시간 7분간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며 계엄 선포를 정당화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과거의 부정적 기억도 있을 것이다.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악용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며 “이번 계엄은 윤석열 개인을 위한 게 아니었다. 국민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나서달라는 호소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이미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 가장 편한 길은 사회 여러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임기 5년을 안온하게 보내는 것”이라며 “일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치열하게 싸울 일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자리에서 국정을 살피다 보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서서히 끓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다”며 계엄 선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거대 야당에 홀로 맞서야 하는 ‘피해자’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주장도 그대로였다. 윤 대통령은 “간첩들이 가짜뉴스, 여론조작, 선전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들이 북한의 지시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반복했다.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은 2022년부터 178회에 걸쳐 열린 대통령 퇴진 집회였다. 윤 대통령은 “이 집회에는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언론노조 등이 참여했고 거대 야당 의원들도 발언대에 올랐다. 북한의 지령대로 된 것”이라며 “간첩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체제 전복 활동으로 더욱 진화했다”고 했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현 상황에 대한 진솔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총 1만4811자에 이르는 진술 중 국민들에게 사과한다거나 사죄한다는 등의 표현은 단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 특히 ‘청년’에 대한 호소를 이어갔다.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동 사태에서는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며 오히려 이들의 폭력·범법 행위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오는 이들을 겨냥한듯 “저의 진심을 이해해주시는 국민,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론’에 대한 주장도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북한에게 해킹당하고도 점검에 응하지 않았고,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짜 투표용지” 등을 예로 들면서 계엄 당일 군을 선관위에 투입한 데 대해 “어떤 부분이 내란이고 범죄라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당일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축소했다. 윤 대통령은 “정말 계엄을 하려 했다면 고작 280명의, 실무장도 하지 않은 병력만 투입했겠느냐”며 “계엄 해제 요구 결의 이전에 국회에 들어간 병력은 106명에 불과하고, 본관까지 들어간 병력은 겨우 15명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데 대해서는 “자신들의 근무 위치가 본관인데 입구를 시민들이 막고 있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불 꺼진 창문을 찾아 들어간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정치인·법조인 등 체포 지시 의혹에 관해서도 “터무니없는 주장”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준비된 치밀한 작전 계획이나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혼선과 허술함도 있었다”며 계속해서 계엄이 ‘대국민 호소’였다고 말했다. 그간 탄핵 심판에 출석한 증인들이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는 것과 같은 허황된 것”이라고 했다.   < 경향 김정화 김나연 기자 >

 

“마음 아프고 미안하다” 서부지법 난동 폭도들에게만 사과한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에 출석해 12·3 비상계엄에 대해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의원 체포 지시를 받았다는 군·경 지휘부 여럿의 증언에도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를 일으킨 폭도들을 향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총리에게 내치를 넘기고 개헌을 통한 ‘87년 체제’ 개선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기일에서 당사자인 윤 대통령의 최후진술을 들었다. 변론 절차가 끝난 것은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84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헌재에 접수한 지 73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고 구속된 현 상황과 관련해 “국민께서 일하라고 맡겨주신 시간에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송구스럽고 가슴이 아팠다”며 “많은 국민들께서 여전히 저를 믿어주고 계신 모습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이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함께 나서달라는 절박한 호소”라고 주장했다. 극우세력의 ‘계몽령’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부상당한 군인들은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은 단 한 명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야당의 내란 주장은 “어떻게든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정략적인 선동 공작”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출입도 막지 않았고 국회 의결도 전혀 방해하지 않은 2시간 반짜리 비상계엄과,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줄탄핵, 입법 예산 폭거로 정부를 마비시켜 온 거대 야당 가운데 어느 쪽이 상대의 권능을 마비시키고 침해한 것이냐”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에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놓고는 “지금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시대”라는 주장도 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들과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했다. 현 상황이 “전시·사변에 못지않은 국가위기상황”이란 억지 주장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적법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세운 행위는 인정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대통령 한 사람 체포하겠다고 대통령 관저에 3000~4000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장악을 시도한 행위는 “선관위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군 현장 지휘관들의 소극적 저항으로 계엄이 실패한 것을 두고는 “계엄 선포후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질서유지 병력이 도착했다”고 변명했다.

 

이날 11차에 걸친 변론이 마무리되면서 헌법재판관 평의와 평결(표결)을 거쳐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선고하는 절차만 남았다. 전례에 비춰보면 3월 중순 선고가 유력하다.    < 경향 정대연  김나연 기자 >

 

8회 직접 출석, 68분 일장 연설···‘윤석열 탄핵심판’ 73일 총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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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총 13회의 준비절차와 변론을 거쳐 25일 마무리됐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파면의 결정권을 쥐게 된 지 73일 만이다.

 

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윤 대통령은 ‘버티기 전략’을 펼쳤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6일 헌재가 사건 접수를 통보한 후 10일 넘도록 헌재 서류를 받지도, 보내지도 않으며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 1차 변론준비절차를 5시간여 앞두고 대리인 3명의 소송위임장을 내는 것으로 처음 반응했다.

 

심판 초기부터 윤 대통령 측은 변론을 지연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1차 변론준비절차에서 배진한 변호사는 재판관들에게 “헌재에 계류 중인 탄핵 사건들이 많이 있는데 이 사건을 제일 먼저 심리하는 근거가 있냐”고 물었다. 헌재가 변론기일을 일괄 지정했을 때엔 “의견을 묻지 않고 고지해 공정성에 의심이 간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헌재법이 규정한 최장 심리 기간인 180일을 꽉 채워 변론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일 변경과 재판관 기피를 신청하는 등 심판 절차를 일일이 문제 삼았다.

 

윤 대통령은 3차 변론부터 직접 심판정에 나왔다.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심판에 출석한 헌정사 첫 사례다. 그간 윤 대통령 의견 진술 중 최후진술을 제외하고 가장 길었던 것은 8차 변론 때로, 윤 대통령은 약 18분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증인신문 내용을 반박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증인신문 때는 윤 대통령이 질문하기도 했다. 헌재는 심판 막바지에 “국정 최고책임자여서 증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의 직접 신문을 제한했다.

 

헌재에 출석한 증인은 총 16명이다. 윤 대통령 측은 37명 넘는 증인을 무더기 신청했고 헌재는 그 중 10명만 증인으로 채택했다. 홍 전 차장은 두 차례 출석해 ‘체포조 메모’에 대해 진술했다. 김 전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 내란 가담자로 기소된 증인들도 다수 출석해 윤 대통령과 대면했다.

 

헌재 재판관 문제도 탄핵심판 절차상 쟁점 중 하나였다. 헌재는 1차 변론준비절차 때까지 재판관 6인 체제로 운영됐다. 6인 체제에서 심리를 넘어 결정까지 내릴 수 있을지 논란이 됐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해 12월31일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올해부터 두 재판관이 심리에 합류했다. 앞으로 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추가로 임명하지 않으면 이번 탄핵심판 결정은 8인 체제에서 나올 전망이다.

 

최종변론에서 윤 대통령은 1시간8분 동안 최후진술을 했다. 윤 대통령은 약 1만4800자 분량의 최후진술서에서 ‘간첩’ 25번, ‘호소’ 9번, ‘청년’ 7번을 언급하며 “비상계엄의 목적은 망국적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 경향 김나연 기자 >

 

야당 의원 등 피해자들, 헌법재판소에 탄원서 제출

 

 
지난해 12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공식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2·3 내란 당시 ‘노상원 수첩’에 ‘수거’ 대상으로 적시된 야당 의원 등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에 “계엄을 못 막았으면 체포돼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고민정·김용민·서영교·윤건영·이성윤(더불어민주당)·황운하(조국혁신당) 의원과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 등 이른바 노상원 수첩에 수거 대상으로 이름을 올린 피해자들은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에 윤 대통령 탄핵 인용을 촉구했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 500여명의 수거 대상 목록이 적힌 노상원 수첩을 거론하며 “만약 계획이 실현되어 유혈사태로 참극이 빚어졌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밝혔다.

 

송곳,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방망이, 망치 등 비상계엄 선포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조가 준비한 도구. 검찰 특별수사본부 제공

 

이들은 헌재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탄원인들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이 시행됐을 경우 우선적으로 체포, 수거돼 생명, 신체에 위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던 피해자들”이라며 “피청구인과 내란 일당의 끔찍한 계획이 실행됐을 수도 있다는 점과 노상원 수첩에 기재된 수거 방법의 잔혹성 등을 접하면서 억누르던 공포심이 하루하루 되살아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만약 피청구인이 직무에 복귀한다면 이번에 실패한 수거 계획(내란 목적 살인)을 다시 실행할 것”이라며 “이번 탄핵 재판은 탄원인들의 목숨이 달린 중차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어 “하루 빨리 피청구인을 파면해 대한민국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탄원인들이 마음 편히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반드시 피청구인을 파면 결정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한겨레 엄지원 기자 >

검찰이 내란의 주요 증거 확보하려는 강제수사 막아선 셈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에 출석하고 있다. 김 차장은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도를 저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대통령경호처 실무자들이 증거인멸 우려까지 나타내며 김성훈 경호처 차장의 비화폰 데이터 삭제 지시를 거부한 문건까지 확보됐는데도 검찰이 김 차장 구속영장을 무리하게 기각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영장 기각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내란의 주요 증거를 확보하려는 강제수사를 막아선 모양새여서 비판이 거세다.

 

23일 한겨레 취재와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인한 내용을 종합하면, 경찰은 김 차장 구속영장을 세번째 신청하면서 경호처에서 확보한 ‘처(處) 보안폰 보안성 강화 방안 검토 결과’ 문건을 첨부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하면서 “김 차장의 보안 조치 강화 주장에 일부 부합”한다는 사유를 밝혔다. 문건 제목과 마지막 문장(“단말기 보안성 확보를 위한 추가 방안 다방면 지속 검토 중”)에 ‘보안성 강화’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며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목과 문구는 김 차장의 지시를 실무자가 완곡하게 거부하기 위해 삽입한 내용으로 보인다. 경찰도 이런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차장에게 유리하도록 문건 내용을 검찰이 거꾸로 해석한 것이다. 나아가 문건에는 김 차장의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가 증거 인멸에 해당해 위법할 수 있다는 ‘검토 사항’(“형법 155조 증거인멸 관련 문제 소지”)이 명확히 담겼다. 그런데도 검찰은 김 차장에게 유리한 대목만 떼어내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다.

 

검찰은 또 김 차장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에 형소법 110조 등 예외가 부기되는 등 논란이 있어 특수공무집행방해의 범의(범죄의 고의)가 있는지 다툼이 있다’고 했다. 한겨레가 이런 내용을 보도하자 검찰은 “체포영장의 적법성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니다”라고 추가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경찰과 영장 재신청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법조인들에게 물어보니 영장에 형사소송법 제외 조항을 넣은 것은 문제라고 하더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영장 집행 저지는 공무집행 방해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경호처 내부 문건도 경찰이 확보해 제출했지만 검찰의 김 차장 구속영장 기각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김 차장은 앞서 국회에서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국회 내란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비화폰 서버 관리자에게 삭제 지시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김 차장은 “없다”고 답했다. 단말기 삭제 지시는 숨긴 것이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의 ‘체포 저지 지시’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윤 대통령이 김 차장에게 이를 지시한 문자메시지가 확인되기도 했다.

 

검찰의 무리한 영장 기각이 이어지다 보니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한 경정급 경찰은 “검찰의 영장 불청구 사유가 얼토당토않다 보니, 비화폰 서버를 열면 검찰에 불리한 내용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고 했다. 한 총경급 경찰은 “법원의 판단까지 가로막으며 검찰이 영장을 뭉개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건영 의원은 한겨레에 “여러 사람이 증언하는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는 애써 외면하고 ‘보안성 강화’라는 김 차장 쪽의 궤변만 인정하는 검찰의 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검찰도 이들과 한편이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라고 밝혔다.  < 한겨레  이지혜  정환봉 기자 >

 

이틀에 한번씩, 윤석열 ‘내란 증거’들이 삭제되고 있다

 
지난 20일 탄핵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수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이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의 구속영장을 세차례나 기각하면서 내란의 핵심 증거가 사라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12·3 내란사태를 수사 중인 경찰이 비화폰 서버 기록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경호처가 이를 번번이 막아섰고 그 정점에 김 차장이 있기 때문이다.

 

비화폰은 통화 내용이 녹음되진 않지만 경호처가 관리하는 서버에 통화 기록은 남아 있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과 통화했다. 윤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전화해 주요 인사를 체포하고 국회에 모여든 의원들을 국회의사당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게 검찰의 수사 결과다. 통화 기록이 확인된다면 윤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경찰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다섯차례나 비화폰 서버 기록 확보에 나선 이유다.

 

그러나 김 차장이 지휘하고 있는 경호처는 ‘군사·공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의 압수나 수색은 책임자 승낙이 있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조항(110·111조)을 들어 이를 모두 거부했다. 검찰이 김 차장 구속영장을 세차례나 기각해 경호처를 지키게 함으로써, 비화폰 서버의 빗장이 열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비화폰 서버 기록은 이틀 간격으로 자동 삭제되고 시간이 지나면 여러번 삭제와 덮어쓰기가 반복되면서 복구가 어려워진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인데 비화폰 서버 기록을 살려내지 못하면 윤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의 주역들이 누구와 통화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다.

 

한 경찰 간부는 “압수수색과 신병 확보는 초동수사의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검찰의 영장 기각으로 비화폰 서버를 틀어쥐고 있는 경호처 수사를 사실상 개시도 못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경호처를 장악하고 있는 김 차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검찰 영장 기각으로 경호처 내부자의 진술을 오염시킬 시간을 벌어준 꼴”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서울고검에 영장심의를 신청하는 등의 불복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장심의위는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지 않고 기각했을 때, 검찰 처분의 적정성을 관할 고검에서 심사하는 기구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고등검찰청에 설치된 영장심의위에도 검찰의 통제력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 한겨레 이지혜  정환봉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