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한동훈도 소집 요청, 같은 사건에 신청 4차례 이어져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가 13·언 유착의혹 사건 피의자인 이동재 전 <채널에이(A)> 기자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을 부의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이 사건의 피의자인 한동훈 검사장도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피해자), 이 전 기자(피의자), 민주언론시민연합(고발인) 등 검·언 유착 의혹 수사로만 소집 요청이 네 차례나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도 다소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의 신청으로 소집이 결정된 수사심의위 외에 심의가 여러 차례 열릴 가능성은 적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선 민언련 등 고발인은 소집 신청 권한이 없다.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은 고소인·피해자·피의자·기관고발인이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기관고발인은 통상 공정거래위원회 등 직무상 고발 권한이 있는 정부부처 등을 가리킨다.

고발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관계인들의 소집 요청도 병합돼 한꺼번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운영지침에서는 신청인 외의 사건관계인도 의견서를 작성하여 현안위원에게 교부”(13)할 수 있고, “의견서를 제출한 사건관계인이 현안위원회에서 의견진술을 원하는 경우, 주임검사 또는 신청인과 동일한 기회를 부여”(14)하게 돼 있다.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하지 않은 사건관계인도 심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절차가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도 부의위원회가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이 전 기자 쪽이 수사심의위에서 의견진술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전문수사자문단구성을 두고 벌어진 윤석열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갈등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로 일단락되면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검찰 수사는 수사심의위 절차가 마무리된 뒤에나 정상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환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검사장 등 피의자들은 수사심의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법리적 판단보다는 여론의 추이에 영향을 받는 수사심의위 결과에 따라서 수사의 정당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수사팀으로서는 부담이다. ‘·언 유착·언 유착이라는 주장이 맞붙는 상황에서, 현안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30쪽의 의견서와 논리를 짜내는 데 수사력의 일부를 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임재우 기자 >

[칼럼] 채널A 사건, ‘수사보다 중요한 일

"방송 구조와 언론 지형을 정상화수사보다 훨씬 중요, 방통위 결단해야"

지난 62일치 칼럼(‘채널A’, 사이비 권력들의 진실 은폐야합) 이후 6주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바로 그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채널에이(A) 법조팀장 등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며 적극 수사에 나선 이래 진실 은폐시도는 점점 실패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측근 감싸기에 나섰지만 결국 꼬리를 내렸다. 구차하게나마 자리를 보존한 덕분일까,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는 지켰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퇴임 뒤 지지율 오르면 (대권 주자)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니 그런대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검찰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특히 총장 스스로 손떼는 건 괜찮지만 장관이 손떼라는 건 위법이라고 기술까지 부려가며 윤 총장을 밀어줬던 검사장들은 ‘X망신을 했다.

윤 총장의 그간 행보는 측근 보호를 위한 것이겠지만 그것만으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보호 결의안까지 내며 자신을 밀어준 두 보수야당, 특히 보수언론들을 믿지 않았다면 그렇게 대놓고 저항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문화방송>·언 유착의혹을 처음 보도한 직후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권의 윤석열 때리기란 프레임을 짜놓고 시작했다. ·언유착의 진실 추적 대신 전과까지 들추며 제보자와 폭로언론을 공격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의 페이스북 글에서 작전의 냄새가 난다며 문화방송과의 ·언 유착프레임까지 들고나왔다.

일일이 반박할 필요까진 없겠다. 다만 대한민국 판사들이 검·언유착과 정·언유착도 구분 못하고 함부로 기자와 검사장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발부하지는 않는다는 정도의 법지식만 있으면 이해하기 쉽다. 밀실에서 대화·녹음해놓고, “없다고 말맞추고, 다시 지우고, 휴대전화 비밀번호까지 감추는 건 유착정황이지만,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글 올려놓고 하는 유착은 드물다는 상식 정도만 있어도 판단은 쉽다. 물론 문화방송 취재 이전에 이미 감옥으로 보내진 편지들과 이들이 미처 없애지 못한 녹음 파일들은 결정적 물증으로 남아 있다.

보수언론들이 윤석열 편들기에 올인한 데는 문재인 정부 공격 전선에 나란히 섰다는 동지의식이 컸을 것이다. 사건 당사자가 종편이라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기도 하겠거니와, 종편 재승인이 걸려 있다는 동병상련의 정서가 무리한 프레임을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4<채널에이(A)><티브이(TV)조선>에 대해 조건부로 재승인을 허가했다. 만일 채널에이 사건 수사에서 중대한 문제가 확인되면 재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 그러면 공정성합격 조건부로 재승인받은 티브이조선 역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런 순망치한의 절박감이 아니고는 그처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의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쳤을 리 없다.

여러 곡절은 있었으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다수의 중요 증거를 확보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심의위가 제지하지 않는다면 기소가 유력해 보인다.

그렇게 되면 방통위가 재승인 여부를 결단해야 한다. 그러나 방통위의 행보는 매우 조심스럽다. 탄핵 국면이긴 했어도, 박근혜 정부가 꾸린 방통위가 티브이조선 등에 과감하게 낙제점을 준 것과도 대조적이다. 자본금 불법 충당으로 방송법 위반 혐의를 받는 엠비엔(MBN)에 대해서조차 좌고우면할 정도로 소극적이다.

201112월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이 올해로 10년째. 티브이조선 등 4개 종합편성채널의 방송사업 매출액은 2263억원(2012)에서 8228억원(2019)으로 비약적으로 늘었다. 반면 <한국방송> 등 지상파의 매출액은 같은 시기 39572억원에서 35168억원으로 떨어졌고 매출액 점유율은 32.0%에서 19.9%로 급락했다. 지상파의 추락은 유튜브 등 뉴미디어 영향도 있겠으나 무리하게 허가한 종편 탓이 크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우리 광고 시장 규모에서 2개 이상은 무리라는 평가를 무시하고 허가를 남발한 결과다. 결국 한국방송 등은 쌓이는 적자로 구조조정 준비에 들어갔다. 방송이 수익에 휘둘리면 공공성이 위협받는다. 그래서 유능한 기자·피디들이 떠나면 공영방송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다.

기자와 검사의 빗나간 유착에서 시작한 채널에이 사건이 우리 방송 구조와 언론 지형을 정상화하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 김이택 한겨레신문 대기자 >

 


고 최숙현(22) 선수를 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팀 닥터안아무개(45)씨가 1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대구지방법원에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고 최숙현(22) 선수를 폭행한 경북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의 팀 닥터안아무개(45)씨가 13일 구속됐다.

강경호 대구지방법원 영장 전담 판사는 이날 오후 516분께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안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안씨는 고 최숙현 선수 등을 폭행하고 일부 선수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돈을 받고 불법 의료행위를 하며 선수들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도 있다. 경찰은 구속된 안씨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한 뒤 다음 주 그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앞서 안씨는 이날 오후 230분부터 40분 동안 대구지법 13호 법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경주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안씨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이날 오후 140분께 대구지법에 도착했다. 그는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피해자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폭행 등 모든 혐의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혐의 인정합니다라고 답했다.

안씨는 원래 경북 경산의 한 내과의원에서 물리치료사 보조로 일했다. 그는 의사나 물리치료사 면허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안씨는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 장아무개(32) 선수의 소개로 팀에서 팀 닥터로 일했다. 장 선수는 안씨, 김아무개(36) 감독 등과 마찬가지로 고 최숙현 선수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경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0일 안씨를 자택에서 체포한 뒤 경주경찰서로 데려왔다. 이후 이틀 동안 조사를 한 뒤 지난 12일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대구지방검찰청 트라이애슬론팀 가혹행위 특별수사팀‘(팀장 양성순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도 같은 날 폭행과 강제추행,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안씨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 전·현 선수 20여명을 조사했는데 이 가운데 10여명이 장 선수나 김 감독, 안씨 등에게 폭행 등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장 선수와 김 감독도 곧 소환할 계획이다. < 김일우 기자 >

 


서울시에 도움 청해도 시장 그럴 사람 아니다넘겨

사건 실체 밝히는 게 피해자 인권 회복의 첫 걸음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앞줄 왼쪽 둘째)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의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자료가 배포되는 동안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13일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쪽과 여성단체들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며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 일부를 공개했다. 여성단체들은 박 시장이 피해자를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초대한 사진 등 구체적 물증도 제시했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성추행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여성단체들은 수사가 아닌 방식을 통해서라도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시장의 죽음을 두고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만이 피해자 인권 회복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늦은 밤 속옷 사진 등 4년여 성추행·희롱

여성단체들은 이 사건은 전형적인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이고 고위공직자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 여성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8일 오후 430분 서울지방경찰청에 통신매체 이용 음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형법상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박 시장을 고소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와 피해자는 자정을 넘겨 이튿날 새벽 230분까지 1차 진술조사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지난 2017년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에 일하는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추행 피해를 당했고 이후 다른 부서로 발령 난 뒤에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지난 512일 김 변호사를 찾아 상담을 진행했고, 이후 법률 지원을 받아왔다.

김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피해가 주로 이뤄진 곳은 시장 집무실과 집무실 내 침실 등이다.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김 변호사는 상세한 방법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셀카를 찍을 때 신체를 밀착하거나 집무실 내 침실로 불러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말했다. 또 김 변호사는 “(박 시장이)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초대해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음란 문자와 속옷을 입은 사진 등을 보내는 등 성적으로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박 시장과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갈무리한 화면과 피해자의 텔레그램을 포렌식(증거분석)한 결과물을 경찰 조사 당시 증거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점점 가해의 수위는 심각해졌고, 부서 변경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개인적 연락이 지속됐다인구 1천만명의 대도시인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위력 속에서 어떠한 거부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특징을 보였다고 말했다.

시 내부에선 무마하거나 축소의혹

피해자는 이런 피해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차례 호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서울시 내부에서 이런 상황을 무마하거나 축소해왔다는 게 여성단체의 주장이다. 이들은 고소 당일 피고소인인 박 시장 쪽에 모종의 경로로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고도 비판했다.

이미경 소장은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고 일컫거나, 피해를 사소화하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고 한다.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 역시 피해자가 친구, 동료 공무원, 알고 지내던 기자 등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적이 있다. 성적 괴롭힘에 대해서 피해자는 비서관에게 부서를 옮겨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국회 진상 규명 나서야

박 시장의 장례가 마무리된 이날 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신속한 진상 규명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2차 가해로 인해 피해자는 혼자 시베리아 벌판에 선 듯한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숨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다. 이 때문에 여성단체들은 경찰은 고소인 조사와 일부 참고인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피고소인이 숨진 상황에서 고소 내용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단체들은 서울시는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히고, 정부와 국회는 인간이길 원했던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고 책임 있는 행보를 위한 계획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여성단체들은 다음주부터 진상 규명을 위한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다음주에 이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피해자에게 가해지고 있는 2차 가해와 관련해서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 엄지원 강재구 채윤태 기자 >

서울시, 피해자쪽 진상규명촉구에 조사 방법 논의할 것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자 쪽이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서울시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진상조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가 된 박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에 따라 지난 10일 경찰은 해당 고소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 고소건에 대한 형사사법 절차가 종결돼 피고소인의 방어권 등이 확보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상규명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여성단체들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 차원의 진상규명과 함께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요구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 사건은 전형적 직장 내 성추행 사건임에도 피고소인이 망인이 돼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 고소를 진행 못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좀 더 직접적으로 경찰은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말한 뒤, “서울시는 본 사건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 입었던 직장이다. 규정에 의해 서울시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장례 마지막날에 열린 기자회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여성단체의 기자회견 도중에 이뤄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직 장례식 하관도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의견을 발표하고 정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해당 사안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인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는 진상조사 방법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전에 서울시 여성권익담당관이나 인권담당관에 접수된 사항이 아니라 (서울시도) 언론을 보고 인지를 하게 된 사항이었다오늘 기자회견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에 조사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자가 여성권익담당관이나 인권담당관에 신고를 하게 되면, 시민인권보호관이 조사를 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시는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신고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고,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섣부르게 먼저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동료들에게 박 시장의 성추행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권담당관이나 여성권익담당관을 통해서 접수된 사실은 없었다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시는 진상조사 방법에 대해 기존 시스템에 따라서 할 건지, 다른 방법을 검토할 건지 조사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서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자기변호권이나 항변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전한 의미의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변호사는 우선 사법적 조사는 끝이 났고 시 차원의 진상조사를 하더라도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의 항변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 일방의 주장만을 청취하게 돼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내다봤다. < 서혜미 기자 >

성추행 고소보안 요청에도박 시장에 유출 논란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피소건이 고소 직후 박 시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증거인멸 등이 우려돼 경찰에 각별한 보안을 요청했었다고 밝히면서 수사 기밀이 어디서 샜는지를 두고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와 여성단체 등은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하고 난 뒤 박 시장 쪽에 유출된 사실을 비판했다. “고소 당일에 수사 상황이 전달돼 피고소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피해자가 더한 고통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목도했다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소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성희롱 의혹이 제기된 만큼 증거 확보가 중요해 절대 보안을 요청했다는 게 변호인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고소를 하고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해야 했다. 담당 수사팀에 절대 보안 유지를 요청했고 그런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하고 정보가 나가지 않도록 그날부터 조사를 시작해 새벽까지 조사를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 상부인 경찰청에 고소 접수 사실을 보고했다. 이후 경찰청 쪽 역시 청와대에 박 시장에 대한 고소장 접수 사실을 보고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광역자치단체장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에 대한 고소 사건이 접수됐다는 보고를 받고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보고했다. 대통령령에 청와대비서실 업무 등에 관한 규정이 있어 각 부처의 중요 사건은 보고한다며 통상적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청와대가 서울시에 고소 사실을 흘렸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이날 “‘박원순 시장이 9일 새벽 청와대 통보로 피소 사실을 알게 됐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며 청와대는 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 채윤태 성연철 기자 >

여당 최고위원들 박원순 사건머리숙여성찰·대책 필요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이 13일 마무리되면서, ‘애도기간임을 이유로 성추행 진상규명 요구에 소극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대응 기조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피해자 쪽 대리인과 여성단체가 피해자의 주장과 호소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도 민주당이 입장 표명을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피해자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4개의 단문으로 구성된 이해찬 대표의 사과 메시지는 이날 오후 피해자 쪽 기자회견 직후 열린 고위전략회의에서 나왔다. 이 대표의 메시지는 시정 공백에 대한 사과 피해 호소 여성에 대한 위로 상황 관리 미숙에 대한 사과 재발 방지 약속으로 구성돼 있다. 박 시장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이 이런 4가지 기조에 따라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다. 진상규명 및 피해자에 대한 사과에 머무르지 않고 집권 후반기 느슨해진 당내 기강과 문화에 대한 대대적 쇄신으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민주당 안에선 당 차원의 성찰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피해자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이 대표가 성추행 고소인을 피해자라 지칭하지 않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표현한 데서도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사실판단은 유보하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앞서 이날 오전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선 지도부 차원의 첫 공개 사과 발언이 나왔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수도 서울이 예상치 못하게 권한대행 체제에 돌입하게 됐다당의 일원으로 서울 시민과 국민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향후 당 소속 고위공직자가 불미스러운 일을 하지 않도록 당 차원의 성찰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고소인에 대한 공격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고소인에 대한 도 넘은 공격과 비난은 멈춰져야 한다아마 제가 아는 박 시장이라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석 최고위원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무분별한 신상털기, 가짜뉴스 양산 등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자제해주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의 전략기획위원장이자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인 진성준 의원은 박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직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으로 치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례식 자체를 시비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배경이라고 이야기되는 고소 사건을 정치적 쟁점화하기 위한 의도이자, 온라인 분향소에 참여한 100만명의 시민에 대한 모독이자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원철 기자 >

'박원순 의혹'에 입 뗀 서지현 검사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47·사법연수원 33) 검사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며 고뇌를 털어놨다.

서 검사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오신 고인과 개인적 인연이 가볍지 않아 견뎌내기 힘들었다""그런데 개인적 슬픔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메시지들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 했고,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 냈으니 책임지라 했다""한 마디도 입을 뗄 수 없었고,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서 검사는 2018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는 이후 사회 각계로 확산한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서 검사는 "정치인도 국가기관도 아닌 제가 감당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다""한마디도 할 수 없는 페이스북은 떠나있겠다"고 밝혔다.

윤준병 "순수한 박원순, 미투 진위 상관없이 미안함 느꼈을 것"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와 관련, "미투 고소 진위에 대한 정치권 논란과 그 과정에서 피해자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죽음으로서 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윤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박 시장이 이제 고인이 돼서 직접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추론만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도 성 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이었다""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분이 자신이 고소됐다는 소식을 접하신 후 얼마나 당혹스럽고 부끄럽게 느꼈을까. 순수하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 고소된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주변에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죽음을 통해 주는 숨은 유지는 '미투와 관련된 의혹으로 고소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부끄럽고 이를 사과한다. 더는 고소 내용의 진위 공방을 통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지 마라'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고인의 명예가 더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러나 비정한 정치권은 피해자의 2차 피해 여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에서의 득실을 생각하면서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 같다"고 했다.

윤 의원은 이날 고소인 측의 피해 사실 기자회견 내용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그는 "행정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피해자를 보아왔고,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침실, 속옷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고인은 부끄러움의 깨달음과 부끄러움의 결단과 함께 사과의 순수한 죽음과 함께 걸어가셨다""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일제 시기 굴곡된 삶, 창씨명 백천의칙윤봉길이 죽인 일본대장 같아

간도특설대 대게릴라전 한국인 토벌비난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생각

        

10일 타계한 한국전쟁의 영웅백선엽은 일제 시기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단죄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도특설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지금껏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공백은 최근까지 학계에서 백선엽의 창씨명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납니다.(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2009년 보고서에도 그의 창씨명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던 백선엽의 창씨명이 밝혀진 것은 <한겨레> 대기자를 지낸 김효순이 2014년 저서 <간도특설대>를 펴낸 뒤였습니다. 이 책에서 김효순은 백선엽의 상사였던 옌지 헌병분단장 소네하라 미노루의 회고록을 인용해 그의 창씨명이 백천의칙(白川義則)이었다고 밝혀냅니다.

백천의칙을 일본어 이름을 읽는 관행대로 읽으면,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됩니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요?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19324월 상하이 훙커우(홍구, 지금은 루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맞아 죽은 상하이파견군 사령관입니다. 둘의 이름이 한자까지 똑같이 일치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순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무언가 깊은 곡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1920년에 태어나 평양사범학교를 나온 영명한백선엽이 당시 동아시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윤봉길의 의거와 그 희생자의 이름을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백선엽이 왜 자신의 이름을 백천의칙으로 바꿨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100살의 나이로 숨지는 순간까지 백선엽은 자신의 창씨명은 물론, 창씨명을 그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 철저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의해 숨졌다. 관동군 사령관, 육군 대신 등을 역임했다.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9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백선엽은 이듬해 만주국 장교가 될 수 있는 만주 펑톈군관학교에 입교합니다. 당시 똑똑한 조선인 청년에게 일본군 혹은 만주국 장교가 된다는 것은 신분상승을 의미했습니다. 박정희는 신징군관학교 입교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는 편지까지 썼습니다. 박정희도, 그보다 세살 어렸던 백선엽도 매우 출세지향적 인물이었던 셈입니다.

1941122년제인 펑톈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42년 만주국군 보병 제28단에서 견습사관을 거쳐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1942년부터 19431월까지 만주 북부의 자무스에서 신병훈련소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19432월 만주 간도성에 있던 항일독립군 탄압부대인 간도특설대에 배치됐습니다.

백선엽은 이후 여러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대 시절 생활에 대해 짧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선인(본문에선 한국인)으로 여러 민족적 모순을 느끼면서도,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던 젊은 시절 백선엽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느낄 수 있습니다.


펑톈 만주군관학교를 마치고 42년 봄 임관하여 자무스 부대에서 1년간 복무한 뒤 간도특설대의 한인부대에 전출, 3년을 근무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그동안 만리장성 부근 열하성과 베이징 부근에서 팔로군과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간도특설부대에는 김백일, 송석하, 김석범, 신현준, 이용, 임충식, 윤충근, 박창암 등과 함께 근무했다.

나는 4589일 소-만 국경을 돌파해서 만주의 중심부로 진격하는 소련군을 만나 무장해제를 당했다.<백선엽 회고록 군과 나>(1989)

 

간도성 옌지현에 있던 간도특설대는 조래의 국경감시대를 모체로 하여, 193812월에 창설되었다. 당초에는 보병 1개 중대와 기관총, 박격포를 장비한 기박 1개 중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중에 보병 2개 중대로 증강되어 대대 규모가 되었다. 부대장과 간부 일부가 일계 군관이고 나머지 전부는 한국계 군관이었다. 간도성 일대는 게릴라(동북항일연군 등 항일무장독립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치안작전을 수행하느라 바빴는데, 간도특설대의 본래 임부는 잠임, 파괴공작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특수부대, 스페셜 포스로서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의 훈련이 자주 행해졌다. 만주국군 중에서 총검대회, 검도, 사격 대회가 열리면 간도특설대는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중략)

 

내가 간도특설대에 착임하였던 1943년 초두에는 게릴라의 활동은 거의 봉쇄되어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대단했다고 한다. 관동군 독립수비대와 만주국군은 193910월부터 41년 봄까지 여기 동부만주에서 대규모의 게릴라 토벌작전을 수행하였다.(김일성이 포함된 동북항일연군은 19409~11월 사이 관동군과 만주군의 토벌 작전에 못 이겨 고난의 행군을 거쳐 소련 영토로 피신했다-편집자 주) 최전성기의 관동군의 위신을 걸고 철저하게 시행된 작전이었다. 그 중에서도 항상 대서 특필할만한 전과를 올렸던 것은 간도 특설대였다.<젊은 장군의 조선전쟁, 백선엽 회고록>(2000, 일본어판)

 

19393월에 촬영한 간도특설대 간부 사진.


(간도특설대는)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던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패배했는가>(1993, 일본어판)


일부 시민단체에서 백선엽은 대한민국 국립현충원이 아닌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야스쿠니신사는 1868~1869년 보신전쟁 이후 일본 내외의 여러 전쟁에서 일왕을 위해 숨진 이들을 모시기 위해 만든 신사입니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일왕의 이름으로 수행된 여러 전쟁에서 숨진 이들이 합사돼 있습니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이들은 2466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21000여명이 조선인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백선엽은 자연사했으니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 대상이 아닙니다. 재미 있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순직한 자위대 대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성격의 신사인지 잘 보여줍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일왕의 이름으로 수행한 여러 침략 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이런 시설에 전후 순직한 자위대원들이 들어올 자리는 없습니다. < 길윤형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백선엽 현충원 안장 금지' 가처분 신청

13일 오후 대전 서구 대전지법 별관 2층 민사신청과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관계자가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금지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는 고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금지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준비했다고 13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오후 대전지법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신청서에서 "수많은 독립군을 사살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없다""헌법 전문에 규정된 3·1운동 정신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친일행위자들의 묘가 (현충원에서) 이장되더라도 국민들이 느낀 정신적 고통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민족정기를 훼손하지 않도록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다만, 가처분 신청자 적격성 문제 때문에 실제 신청서 접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런 내용의 가처분을 신청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다. 대전지법 관계자는 "신청 당사자를 누구로 할지에 대한 부분 때문에 곧바로 문서가 받아들여지진 않았다"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문서 보완을 마무리하는 대로 가처분 신청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백선엽 장군 안장식은 15일 오전 1130분 대전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된다.

6·25 전쟁에 참전한 백 장군 현충원 안장 자격에 문제는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그의 친일 행적을 이유로 현충원 안장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14일 오후 2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광복회 대전충남지부·독립유공자유족회 대전지부 주관으로 백선엽 장군 대전현충원 안장 반대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안장식 당일인 15일 오전 10시에는 대전현충원 앞에서 시민대회가 예정돼 있다.

15일 육군장대전현충원 안장, 문 대통령 조화, 노영민 실장 조문

보수 쪽 “6·25 영웅 냉대하나친일파 이장 법안 두고도 대립할 듯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가운데)12일 오후 서훈 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10일 밤 세상을 떠난 백선엽씨는 대한민국에 공을 세운 친일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두고 우리 사회를 양분해놓았다. 백씨의 장지는 대전현충원으로 결정됐다. 다만 국회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의 묘를 강제 이장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어, 법안 처리가 시도될 경우 극한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백씨가 숨진 지 하루 만인 11일 자료를 내어 “‘6·25 전쟁영웅백선엽 장군이 10일 밤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영결식은 15일 오전 7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리며, 안장식은 1130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한다고 밝혔다. 관심을 모았던 매장지는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다. 유족은 부인 노인숙씨, 아들 남혁·남홍씨, 딸 남희·남순씨 등이고,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유족은 대전현충원도 대한민국이라며 만족한다고 밝혔다.

백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정치권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1일 백씨를 진정한 국군의 아버지라 이르며 백 장군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인가라고 되물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도 12일 정부가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고 발표한 데 대해 영웅의 마지막 쉴 자리조차 정쟁으로 몰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종철 정의당 대변인은 백선엽씨는 일본이 조선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세운 간도특설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장본인이라며 현충원 안장 자체를 반대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냈고,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192011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난 백씨는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에서 특이한 삶의 궤적을 남겼다. 1940년 만주 봉천군관학교 9기로 입교한 백씨는 이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의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행적을 문제 삼아 2009년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단죄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뒤인 1950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해 8월 국군 제1사단장으로 낙동강의 다부동 전투등에서 공을 세웠고, 10월 한·미 양국군을 합쳐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다. 새로 부임하는 주한미군 사령관은 최근까지 백씨를 찾아가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추어올렸고, 보수세력은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왔다. 백씨를 둘러싼 이런 인식 차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19458해방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으려는 세력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향한 이승만의 결단과 그 결과물인 19488건국에 두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씨는 생전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죄나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없다. 1993년 일본에서 펴낸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경력에 대해 한국인이 독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책략에 그대로 끼인 모양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논란은 백씨의 사후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친일파 파묘등의 내용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 처리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길윤형 기자 >

       

군인권센터 친일 백선엽현충원 안장 철회해야

백선엽 갈 곳은 현충원 아닌 야스쿠니정의당도 거들어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광복 전 간도특설대로 독립군을 토벌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는 고 백선엽 육군 예비역 대장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에 올랐던 고인은 10일 밤 11시께 세상을 떠났다.

군인권센터는 12일 논평을 내어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등 의전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센터는 한국 독립을 꿈꾸는 세력을 절멸시키는 것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이 조선인 일본군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숱한 세월이 지나도록 친일 행적에 대해 사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비판했다. 백 장군은 1943년부터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중위로 복무한 바 있다. 간도특설대는 친일 활동 중에서도 중대한 반민족 행위로 꼽힌다.

이를 두고 센터는 대한민국 정부와 군이 이런 사람을 현충원에 묻어 전 국민이 자손대대로 그를 추모하고 기억할 것을 강요한다. 일제 침략 전쟁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 믿었던 백 씨가 갈 곳은 현충원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육군참모총장에겐 육군장을 중지하고 조기 게양을 중단할 것을, 국가보훈처엔 현충원 안장 계획을 백지화할 것을 촉구했다.

정의당도 현충원 안장에 반대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철 대변인은 앞서 논평을 통해 일부 공이 있다는 이유로 온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일제의 주구가 되어 독립군을 토벌한 인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과연 앞서가신 독립운동가들을 어떤 낯으로 볼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이번 조치에 큰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 엄지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