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40명이 애용한 브랜드니만마커스·제이크루 이어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브룩스브라더스는 링컨, 케네디, 클린턴, 오바마, 트럼프 등 미국 대통령이 즐겨 입었던 브랜드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류 브랜드 중 하나인브룩스브라더스가 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CNBC방송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브룩스브라더스는 파산법 11(챕터11)에 따라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1818년 문을 연 브룩스브라더스는 202년 전통을 자랑하는 의류회사로 미 대통령40명과 유명 금융인들이 애용한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1986년 버튼다운식 폴로셔츠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과 임대료 부담 등에 경영난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지역에만 200개 이상, 전 세계에 50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브룩스브라더스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51개 매장의 문을 닫았다.

회사 대변인은 "전략적 검토를 통해 코로나19가 우리 경영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매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억만장자 클라우디오 델 베키오가 소유한 이 회사는 법원에 자산과 부채 규모가 510억달러 사이라고 보고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유명 소매업체가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명품 백화점 니만마커스, 의류업체 제이크루 그룹, 중저가 백화점 체인 JC페니 등이 이번 사태로 줄줄이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브룩스브라더스 코리아 홍보담당 '엠퍼블릭'

"파산 아닌 파산신청, 한국 시장내에서 영향없이 정상영업"

한편 이같은 보도에 대해 브룩스브라더스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엠퍼블릭측은 연쇄파산은 사실과 다르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파산보호신청으로 정정하는 게 맞다면서 브룩스브라더스 코리아는 그같은 과정에 영향을 받지않고 한국 시장내에서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엠퍼블릭보도된 내용은 브룩스브라더스가 현재 파산법 11(Chapter 11)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한 상황을 잘못 전한 것으로, 이는 비즈니스를 중단하는 의미가 아닌, 매각절차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찾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 미국본사의 Chapter 11의 과정은 미국본사의 일부 채무경감, 채무변제 기간의 연장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자구 노력의 일환이라고 지적, “기사 제목에 표기한 파산연쇄파산파산보호신청과는 단어의 뜻이 다르고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거듭 해명했다.

지난달 9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벨기에 왕 레오폴 2세의 흉상에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벨기에에서는 1885~1908년 중부 아프리카 민주콩고를 식민 지배하면서 원주민을 가혹하게 착취한 레오폴 2세의 동상을 없애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의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싶다. 그 고통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로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벨기에 필리프 국왕은 아프리카 중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DRC)의 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이날은 민주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지 꼭 60년째 되는 날로, 1885년부터 1960년까지 민주콩고를 식민 지배한 데 대해 완곡하게 사과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벨기에는 민주콩고를 가혹하게 침탈해,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원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콩고 독립 뒤 침묵의 전통을 지키던 벨기에 왕실은 왜 60년만에 식민 역사에 대한 사과에 나섰을까?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보듯이, 침략국 벨기에는 선택적 기억의도적 망각으로 역사를 조작했고, 이에 맞서 진실을 알리는 여러 폭로와 자성들이 100년 가까이 진행됐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은 민주콩고 역사상 벨기에로부터 받은 가장 훌륭한 서한이었다고 답했지만, 아직 벨기에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가 아니고, 국내외 여론에 떠밀려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의 제한된 사과라는 한계가 있다.

벨기에 왕실 누리집 캡쳐. 벨기에 2대왕 레오폴 2세에 대해 노예제를 반대한 것처럼 묘사했다.

콩고인 214살 노아의 외침히틀러 동상이 베를린에 있다면

벨기에에서 최근 불붙은 식민역사 청산 움직임은 지난 5월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비롯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철폐 운동은 대서양 넘어 유럽으로 건너갔고, 벨기에에서는 식민 역사를 반성하자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벨기에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1800년대 후반 아프리카 중부를 식민지로 개척해 가혹하게 통치했던 벨기에 왕국의 두 번째 왕, 레오폴 2세의 동상을 없애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도 없애자고 주장했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어두운 식민역사교육을 제대로 할 것도 요구했다.

콩고 출신 부모와 함께 벨기에 브뤼셀에 사는 14살 소년 노아도 이 운동의 영향을 받아 지난달 국제 온라인 청원 누리집 체인지에 레오폴 2세의 동상을 제거하자는 글을 올렸다. 레오폴 2세가 벨기에의 건축왕으로 추앙받는 현실을 문제 삼으며, “그는 대량학살의 왕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영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자였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마감된 청원에는 총 82679명이 참여했다. 목표치인 15만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필리프 왕의 사과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데 일조했다. 노아는 이것은 내 선조들의 이야기고, 그들은 수없이 죽었다레오폴 2세 동상이 브뤼셀에 있는 것은 히틀러 동상이 베를린에 있는 것과 같다<CNN>에 말했다.

이런 여론에 떠밀려 벨기에 의회는 민주콩코 등 식민 역사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꾸리기로 했고, 교육 당국은 벨기에 학생들에게 식민역사 교육을 하기로 했다.

벨기에는 19081960년 백인 남성과 식민지 흑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수천~수만 명을 강제로 가족에게 떼어내 보육원 등 시설에 수용했다. 벨기에는 혼혈 아동이 식민통치 원칙 중 하나인 인종분리 차별 정책을 약화한다고 여겼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해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진은 지난달 29 언론 인터뷰를 위해 모인 콩고 출신 혼혈 여성들로, 자신들을 가족과 강제 분리한 데 대해 벨기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기억과 망각 사이식민 통치로 아프리카 경제 발전 이뤘다는 벨기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덩치 큰 국가들에 가려졌지만, 벨기에는 19세기 후반부터 100년 가까이 아프리카 중부에서 어느 제국주의 국가보다 잔혹하게 식민 통치를 했다. 특히 왕실 23, 정부 52년 등 도합 75년을 지배한 민주콩고에서는 잔혹한 통치로 수십만 혹은 수백만 콩고인의 목숨을 빼앗았다. 하지만 벨기에는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아프리카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식의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일본이 한국에 관해 주장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지난해 초 벨기에의 인종차별 문제 등을 조사한 아프리카계에 대한 유엔 전문가 워킹그룹은 언론을 인용해 벨기에 고교 졸업생 중 4분의 1이 콩고가 벨기에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중등 교과 과정에 식민 통치 역사가 제대로 담겨있지 않고, 교육 내용도 교사 개개인의 관심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교과 과정도 식민 지배의 결과로 아프리카에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는 식민지 시대 선전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식민지 개척에 앞장선 레오폴 2세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선택적인 기억만을 한다. 레오폴 2세는 콩고를 식민 통치해 번 돈으로 브뤼셀에 공원과 궁전 등 여러 건축물을 세웠는데, 후손들은 그를 건축왕이라 부르며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따 거리의 이름을 짓고 있다. 그의 악행은 얘기하지 않은 채, 그가 한 선행만을 기리고 있다.

벨기에 왕실이 앞장 서서 이를 이끌었다. 벨기에 왕실 누리집을 보면, 레오폴 2세에 대해 “18907월 브뤼셀 국제회의에서, 노예무역에 반대하는 조약이 체결돼, 아프리카 노예제 반대의 기초가 됐다고 설명해, 그가 흑인 노예제를 반대하는 데 앞장선 것처럼 묘사했다. 19606월 민주콩고 독립 당시 벨기에 8대왕 보두앵 국왕은, 레오폴 2세에 대해 “‘정복자가 아닌 (문명을 전파한) ‘시빌라이저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레오폴 2세의 악행은 그가 사망하기 전인 1900년대 초 유럽 전역에 폭로돼, 1908년 그가 콩고에서 손을 떼게 되는 계기가 됐으나, 벨기에 왕실은 이를 외면한 채 계속 그를 추앙해 온 것이다.

이런 전통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필리프 국왕 동생인 로랑 왕자는 지난달 12일 레오폴 2세가 콩고에 가본 적도 없기 때문에잔학 행위에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브뤼셀 자유 대학 전 총장인 에르베 아스캥은 벨기에가 콩고에서 전파한 보건 제도와 사회기반 시설, 초등 교육 등을 열거하며 식민지화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벨기에를 조사한 한 유엔 워킹 그룹은 벨기에에 여전히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다며 식민지화의 진정한 범위와 부당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998년 애덤 호크쉴드가 쓴 <레오폴드 왕의 유령>. 레오폴 2세의 가혹한 통치를 널리 알렸다.

100년 전 시작된 폭로들모여모여 사과로

1998년 미국 작가 애덤 호크쉴드의 책 <레오폴드 왕의 유령>이 출판되면서 벨기에의 식민 지배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일어났다. 레오폴 2세가 아프리카 중부에서 저지른 잔혹 행위가 100년 만에 적나라하게 폭로되면서 식민 지배에 대한 벨기에 사회의 내부 토론이 이뤄지고, 국제사회에서도 널리 환기됐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2003년 번역 출판됐다.

이보다 100년 앞선 1900년대 초에는 훗날 언론인과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영국인 에드먼드 모렐이 아프리카에 공익사업을 펼치는 인도주의 지도자레오폴 2세의 가면을 벗긴다. 당시 화물회사 직원이었던 모렐은 콩고에 드나드는 무역 기록 등을 토대로, 레오폴 2세가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 중부를 개척해 인도주를 전파한다고 선전하면서, 실상은 원주민을 착취해 상아와 고무 채취에 나서 이익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다. 그의 활동과 더불어, 당시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여러 선교사들이 벨기에 군인에게 손이 잘린 원주민 사진을 공개하는 등 벨기에의 잔혹한 통치에 대해 폭로했다. 이런 노력이 모여, 레오폴 2세는 국제적 지탄을 받게 되고, 1908년 본인이 세운 콩고 자유국가에서 손을 떼게 된다.

이외에도 2001년 콩코 초대 총리이자 민족주의 지도자였던 패트리스 루뭄바의 1961년 암살에 대한 책 <루뭄바의 암살>이 출판되면서, 벨기에는 2002년 루뭄바 암살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루뭄바의 집권에 따라 콩고의 막대한 천연자원에 대한 벨기에의 지배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또 벨기에 정부는 지난해 민주콩고 식민통치 시기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수천 명을 부모로부터 납치해 분리·격리하고, 강제 입양시킨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벨기에 식민통치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인 인종 분리 차별정책에 따른 조처였다.

손이 잘린 콩고 자유국 원주민들. 레오폴 2세 식민 지배 당시 고무 수확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신체를 훼손하는 등의 학대가 이뤄졌다.

아프리카 중부 민주콩고에서 무슨 일이?

1865년 벨기에 2대 왕에 취임한 레오폴 2세는 야심가였다. 그는 당시 열강인 영국, 프랑스처럼 식민지를 건설해 자국의 부국강병을 이루길 원했다. 1885년 레오폴 2세는 아프리카 중부 지역 추장들로부터 땅 200여만를 빼앗아 콩고 자유국가로 이름 짓고, 스스로 왕이 됐다. 벨기에 의회가 식민지 경영에 반대해, 국가 차원의 점령이 아닌 레오폴 2세의 사적인 점령이 이뤄진 것이다.

당시 전 세계적인 고무 붐이 일면서 원주민들은 가혹한 수탈에 내몰렸다. 할당량을 채취하지 못할 경우 레오폴 2세가 보낸 군인들에 의해 손목이 잘렸고, 노동을 견디지 못한 채 도망가면 가족들이 살해됐다. 이런 가혹한 식민통치는 알려지지 않다가, 1900년 초반 영국 언론인과 그곳에 다녀온 선교사들의 고발로 알려졌다. 특히 손이 잘린 채 망연자실한 듯 눈을 뜨고 있는 원주민 사진 등이 공개되면서 잔학한 통치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레오폴 2세는 잔혹 행위가 드러나 국제적 비난을 사자 1908년 사유지였던 콩고 소유권을 벨기에 정부에 넘겼다. 당시 인구에 대한 구체적 통계가 없고, 증거가 인멸돼 정확한 사망자 수를 알 수 없다. 일부 역사가들은 레오폴 2세의 20여년 통치 기간에 희생된 콩고인을 최대 1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지만, 당시 아프리카 인구에 비춰 수십만명 선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은 민주콩고와 르완다, 브룬디는 훗날 내전을 치르거나 잦은 쿠데타 등 정치불안에 시달린다. 분쟁의 씨앗은 벨기에에 의해 뿌려졌다. 벨기에는 식민화 전 인위적인 국경을 그어 종족간 갈등을 만들었고, 식민 지배 때는 철저한 종족 차별정책으로 갈등을 심화했다. 르완다에서는 1994100만에 가까운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고, 민주콩고는 2차례 내전을 겪었다. < 최현준 기자 >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팔달구 보건소 관계자들이 건물 주변 방역을 하고 있다. 앞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는 신도 2명과 이들의 가족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개신교회의 정식 예배 외 소모임과 각종 행사를 전면 금지한데 대해 개신교계가 크게 반발했다.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이날 정총리는 한국교회를 코로나19 가해자로 인식하는가라는 성명서를 내어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은 이번 조치를 즉시 철회하고, 자발적인 방역지침 준수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교총은 중대본은 현재의 방역단계에서 모임이 문제가 아니라, 참여자의 방역지침 준수 여부임을 간과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단체는 중대본의 교회 내 소모임 금지 및 단체식사 금지 의무화 조치는 그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교회의 노력에 반하는 것으로서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미 한교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공동으로 교회 내 소모임과 여름 교육행사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한 상황에서 중대본의 이번 발표는 지극히 관료적 발상의 면피용 조치로 심히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정부의 교회 정규 예배 이외 행사 금지를 취소해주세요라는 청원에는 이날 오후 6시 현재 56천명이 동의했다.

기독교계의 이런 반발 움직임과 달리 가톨릭계는 정부의 조처에 화답했다. 한국가톨릭주교회의 소속 대전교구와 의정부교구는 이날 즉각 성직자와 교구민들에게 문서를 띄워 교구 각 본당에서 이뤄지는 모든 소모임과 행사를 별도의 교구 지침이 있을 때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 교구들은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두기가 어려운 식사 자리가 더 위험하듯이 신부들은 미사 외에 불필요한 모임과 식사 등은 가급적 자제하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 조현 기자 >


 한국성결교회 연합회 한기채 대표회장 목회자 윤리규정 추진

           

서울 종로6가 중앙성결교회의 담임 한기채 목사(62)가 지난 1일 한국성결교회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취임했다. 한 목사는 기독교윤리학자 출신답게 취임 일성으로 목회자 윤리규정을 제정하고, 사회책임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 목사는 더 싫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믿음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또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할 7가지 죄악을 발표했다. ‘1. 영적 힘의 남용, 2. 공적인 것을 사유화하는 짓, 3. 친목 과다 신드롬, 4. 걸핏하면 법정다툼으로 가는 것, 5. 한국교회 부흥의 공을 개인이 가로채는 것, 6. 대사회적 책임의 방기, 7. 무례한 기독교’. 8일 한 목사를 만나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선 이유를 들어봤다.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사에 없는 놀라운 부흥을 이뤄냈다. 선교사도 많이 파송해 다른 나라로부터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교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자 황금알이 탐나 거위를 잡아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목회자들이 신자들을 교회 부흥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면 회개해야 한다. 목회직이 성직자의 생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 목사는 전주의 미션스쿨인 신흥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성결교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성결교단은 한국교회의 주류인 장로교나 감리교와 달리 1907년 일본 유학을 다녀온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의 자생교단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단 본부가 미국 등에 있는 것과 달리 성결교단 본부는 한국이다. 한국에는 3천여개의 교회에 50만여명의 신자가 있다.

한 목사는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같은 마을의 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친여만은 아니다. 중앙성결교회가 자리한 종로에서 출마한 이낙연 의원이 당선 인사차 교회에 찾아왔을 때 그는 힘의 양이 아니라 힘의 질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더불어민주당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입법을 반대한다는 뜻도 전했다고 했다. 그 역시 변화 없는 목회자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결교단은 보수개신교연합체인 한기총을 오래 전에 탈퇴했다. 그런데도 전광훈 목사 등이 여전히 한기총 소속인 듯 공표하자 설결교단은 총회에서 한기총 탈퇴를 재차 선언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교인들이 사회참여를 할 수 있지만 목사가 나서서 그런 방식의 정치적 투쟁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보수와 진보까지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녀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가 함께 가야 하는데, 한국기독교를 한 쪽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 하다고 전 목사를 비판했다.

한 목사는 미국 밴더빌트대학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엘 고어 미국 전 부통령과 같은 교수 아래에서 동문수학했다고 한다. 1996년부터 서울신학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활동한 그는 김중기 전 연세대 부총장과 함께 초교파인 새사람교회에서 공동 목회를 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성결교단이 개신교의 주류교단이 아니고, 그의 교단 총회장 임기도 1년뿐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얼마나 파급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는 목회자 윤리규정‘7가지 죄악을 유튜브로 배포하고, 책으로도 내 계속 확산시킬 계획이다.

그는 일회성 발표보다 끊임없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본다. 교회의 갈등을 법정 소송으로 가져가는 관행에서 벗어나 기독교적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기독교화해중재원에서 그는 이전부터 이사로 활동해왔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해가자며 교회에서 한 달에 한 건의 실천을 하고 있다.

첫 달은 음식 남기지 않기로 시작해 그다음 달은 다 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로 담배꽁초와 휴지를 줍고, 그다음엔 교회에 대중교통이나 도보로만 오기등을 실천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우리가 변화할 기회라고 그는 생각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한 이후 교단 내 미자립교회 1200곳에 100만원씩을 지원한 한 목사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동안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 못하고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고, 자연 생태계를 돌보지 못한 것을 성찰하고,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라며 강제적인 안식이 주어진 만큼 너무 조급해하기보다는 잠시 멈춰 기존의 목회자 중심, 교회 중심 신앙을 가족과 일터와 실천의 신앙으로 바꿔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크리스천이 타 종교에 폭력적으로 행동한 것과 관련해 자신이 따르는 진리를 확신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의 믿음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 믿음도 소중하게 대해줘야 한다대화나 협력이 종교 간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