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세상의 흐름이 저 멀리 가 있어 순식간에 ‘물정 어두운’ 사람이 된다. 날마다 대형뉴스가 쏟아지니 어제 있었던 일 조차 까마득한 옛날의 일화 처럼 여겨질 정도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역사적 대좌에 신문과 방송이 도배되고, 세상 눈길이 온통 그쪽에 쏠려있어서 다른 뉴스들은 사람들 관심권에서 멀어지며 묻혀 버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엊그제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다.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어깃장을 놓고 싱가포르로 훌쩍 떠나버린 트럼프의 독불장군 행보가 상징적으로 싱가포르보다 못할 G7에 대한 관심도의 결말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떻든 어제의 대형 이벤트였던 G7과 그 파열음을 오늘의 북-미 정상회담이 삼켜버린 꼴이 됐다.
G7 못지않게 온타리오에 사는 우리에게는 6.7 온주총선 또한 대형 이슈였다. 주 정부 집권당이 무려 15년 만에 극적으로 바뀌는 선거결과가 나왔고. 한인사회로 보면 이민사 반세기 만에 2명의 주의원이 배출되는 큰 경사가 났다. 특히 우리들 한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초대형 뉴스가 나온다 해도 묻힐 수 없고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계기라고 봐야한다.


우리는 조성준·조성훈 두 후보의 주의원 당선을 경하하면서, 계제에 한인사회 발전과 한인 정치인들의 후속 배출, 그리고 정치력 향상을 기대해 보며 두 의원 당선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조 후보의 주의원 등극은 무엇보다 본인들의 노력과 수고의 결실일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당사자가 땀흘리고 고생한 보람을 얻었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토론토 시의원을 포함해 10선의 위업을 이룬 조성준 의원의 경우 선거구를 갈고 닦아온 그의 개인적 열정과 노고가 일등공신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주변의 조력, 한인사회의 성원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그의 당선 횟수가 많아지면서 개인적인 노력의 비중이 점증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진로를 적기에 선택할 줄 아는 판단력과 시운(時運)도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주정부 장관까지 넘보게 됐으니, 관록에 바탕한 그의 정치력 발휘를 기대해 본다.
정치 신인인 조성훈 당선자의 경우는 개인의 열의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한인사회의 열성적 지원이 뒷받침됐고, 특히 부친의 후광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유당 자멸로 나타난 정치적 시류가 압승의 대세를 이룬 사실도 분명하다. 자유당이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면서 거세게 분 정권교체론과 보수당 바람이 신인여부를 불문하고 영예를 안긴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는 여기서 캐나나 정치와 유권자들의 냉혹함과 철저한 실적주의를 보게된다. 집권당의 방만한 운영과 부실한 정책에 가차없이 매를 드는 정치수준의 표출이다. 인물보다는 당, 선전이나 구호보다는 가시적 성과물을 놓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주권자의 눈높이를 감지할 수 있다. 소위 거물 정치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은 바로 인물보다 당을 중시하는 정치풍토를 말해준다.
한인 정치사에 새 시대를 연 두 동포 정치인은 이같은 캐나다 정치풍토에서, 무엇보다 한인사회의 기대와 여망이 그만큼 크고 높아져 어깨가 무겁기에, 단단한 결심으로 의정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새 길을 열어간다는 자부와 함께 엄중한 소명감으로 배전의 열정을 쏟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이제 부터가 중요한 새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갓 입문한 조성훈 당선자에게는 이제 본격적인 정치인 수업을 해나가야 할 고행이 시작됐다는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이같은 관점에서 한인사회의 두 정치인에 거는 기대를 모아 몇가지 당부를 해두고자 한다.
우선 절대 자만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배우며, 내일 당장 선거가 있다는 가정 하에 주권자를 열심히 받들어 섬기는 정치인의 체질을 갖추기를 권한다.
둘째는 주 의원이 됐으니, 주 정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주 정부를 감시·견제·감독하며 온주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살피는데 최선을 다하는 의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셋째는 캐나다 사회가 다민족 복합문화 사회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한인 출신의 긍지를 품고 일하되, 한인사회에만 몰두하지 말고 타민족에게도 정성을 쏟는 다민족 대표 정치인, 나아가 연방의원과 캐나다 대표 정치인을 꿈꾸며 통 크게 달려가기를 주문한다.
넷째는 아무래도 혈육이요 뿌리인 한인사회를 암암리에 챙기는데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 주류사회에서 한인사회 인식을 호전시키고 위상을 높이며 한인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절대 개인적 영달에만 연연하지 말라는 충고다. 선출된 정치인, 곧 선량(選良)은 자신에게 표를 주었든 아니든 주민을 대표하는 대변자이며 대리자이다. 따라서 주민들과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고 본분이다. 선량의 직을 자신의 개인적 소유와 노획물로 여겨 사욕을 충족하는데 활용한다면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바람직한 정치인의 덕목은 무수히 거론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한인들의 여망을 안고 영광을 차지한 두 주의원에 거는 동포들의 기대치가 높기에, 단 몇가지 기본만이라도 충언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인사회의 명예를 빛내는 정치의 향도자들로 성공적 미래를 열어가기를 기도하고 소망해 마지않는다.


< 김종천 편집인 >


남북한 간 경제협력의 역사를 나무라고 한다면, 그 뿌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주도의 ‘소떼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꼭 20년 전인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진 1001마리의 소떼는 같은해 11월 금강산관광 사업 개시라는 오른쪽 줄기와 2003년 6월 개성공단 착공이라는 왼쪽 줄기로 뻗어나갔다.
 
소떼 방북을 역사의 망원경으로 조망하면 1개의 점처럼 보이지만, 넉달의 시차를 두고 마무리되는 동안 남북 사이에는 악재가 이어졌다. 북한 잠수정 동해안 침투(6월), 무수단 미사일 발사(8월), 첫 인공위성 궤도진입 발표(9월) 따위가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다. 당시 남한은 외환위기 사태를,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 와중에 2차로 소떼 방북이 이뤄지고 경협으로 발전했다는 건 지금 돌이켜봐도 경이롭다.
현대그룹 자료를 보면, 2008년 7월 사업 중단 때까지 10년 동안 금강산을 오간 관광객은 195만5951명에 이른다. 금강산관광의 줄기에서 이듬해엔 개성관광 개시와 백두산관광 합의라는 가지가 돋아났다. 금강산 사업은 육로관광 실현 뒤인 2005~2007년 3년 연속 영업이익을 거둬 수익성을 검증받기도 했다. 개성공단 조성 및 가동 또한 그 바탕에서 이뤄졌다. 금강산관광이 ‘작은 통일’의 시작이었다면 개성공단 조성은 ‘상생의 시대’를 연 전환점이었다. 2016년 2월 공단 전면 폐쇄 전까지 진출해 있던 남쪽 기업은 124개, 여기에 고용된 북쪽 노동자는 5만4천명에 이르렀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서 올해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12일엔 마침내 북-미 정상도 손을 맞잡음에 따라 절단된 남북 경협의 줄기가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해봄직하다. 이미 싹이 보인다. 이달 7일 북한의 협조로 ‘유라시아 노선’을 가진 국가들 모임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하는 숙원을 이뤘고, 8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이 방북해 개성공단 시설을 점검했다. 지금껏 이뤄진 경협에선 경제가 앞장서 닦은 길을 정치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면, 이번엔 정치적 해빙이 앞서 경제적 교류를 이끌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불거질 수 있는 게 통일비용 논란이다. 이미 시비를 일으킬 빌미가 제공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때 대북 지원과 관련해 “나는 미국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에선 ‘거 봐라, 우리는 봉 노릇만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적정한 비용은 쓰임새에 따라 투자가 된다. 소떼 방북의 주역 정주영 회장이 통일비용 논란에 대해 생전에 남긴 말이 있다. “왜 엄청난 분단비용은 생각 못해? 매년 늘려야 하는 국방비 부담과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군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해봐.”(<이봐, 해봤어?>, 박정웅 지음)


소의 평균수명이 15~20년이라고 하니 20년 전에 북으로 올라간 소떼 대부분은 생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후손들이 북한 어딘가에 남아 경협의 꿈을 잇고 있을지 모른다. 1차 소떼 방북 때의 암소 250마리 중에서 90마리가 임신한 상태였음을 확인했다고 하니 말이다.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프랑스의 기 소르망), ‘핑퐁외교에 견줄 황소외교’(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평을 들은 소떼 방북에서 비롯한 남북 경협의 길이 넓어지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 김영배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칼럼] 양승태의 실낙원

● 칼럼 2018. 6. 19. 17:02 Posted by SisaHan

창단 45년을 맞은 국립합창단은 남북 화해와 대결의 산물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 평양에 갔던 남한 인사들이 북쪽이 자랑하듯 보여준 대형 가무극에 압도된 듯하다. 북한에 질 수 없어 이듬해 국립합창단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예술의 우연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남북공동성명 이행이 어그러지자 합창단 예산이 끊길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합창단을 살린 것은 이번에도 북한이었다. 대남 비방 방송에 맞불을 놓는 대북 방송 녹음을 국립합창단이 맡았는데, 실세였던 JP(김종필)가 비교우위를 인정하며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하여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는 한반도 정세 대전환기에는 국립합창단 주요 레퍼토리인 하이든의 ‘천지창조’가 제격이겠다.

JP처럼 이니셜로 자신의 모든 걸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DJ(김대중), YS(김영삼)는 알파벳 두 글자로 일세를 풍미했다. 큰 꿈을 꾸는 후배 정치인들도 은근히 이니셜만으로 불리길 원했지만 그건 시대가 허락하는 일이다. 욕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대신 이니셜은 재벌가 코드명으로 자리잡았다. 삼성에선 한때 이건희라는 이름 대신 대문자 A를 썼다. A′(홍라희), JY(이재용), BJ(이부진) 등 총수 일가의 코드명이 승계와 의전 문건의 은밀함을 더했다. 황제의 이름을 감히 문장에 올리지 못했던 피휘(避諱)의 현대판이다. 최근엔 한진그룹 조현민의 코드명 EMQ가 화제다. 미국 국적인 그의 영문명(Emily)에 마케팅 여왕(Marketing Queen)의 앞글자를 땄다고 한다. 백두혈통 못지않은 신성가족, 그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후진성이 불법과 갑질, 특권의식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CJ와 VIP 면담으로 상고법원 입법추진 환경에 의미 있는 전환점 도래’.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피휘를 볼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CJ는 대법원장을 뜻하는 치프 저스티스(Chief Justice)의 약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지칭한다. VIP로 통칭되는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자연스럽게 재판장 중심으로 좌우배석 삼각편대를 이루는, 위계와 서열의 법원 조직 문화에서 ‘대법원장 양승태’는 감히 문서에 이름 석자 올리지 못할 존재였다.

대법원 비밀보호규칙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는 내용은 비밀로 분류하고, 특별히 보호해야 할 사항은 비밀에 준하는 대외비로 분류한다. CJ가 등장하거나 CJ 보고용으로 작성된 대외비 문건에는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벌인 은밀한 뒷거래 또는 그 시도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왜 비밀스럽게 감춰야 했는지 미뤄 짐작 가능하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의미가 없다”며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데는, ‘나는 2015년 여름 너희 대법원장이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기막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언론사 사장이 질문하는 분 컴퓨터에 뭐가 들어 있는지 다 알고 있을까요?” 양 전 대법원장은 문건 작성을 지시했냐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국의 치프 저스티스가 스스로를 사장에 빗대어 궁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대기업 총수처럼 수하를 부려 상고법원이라는 ‘인사권 강화’ 로비도 주저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재임 6년간 타락시킨 사법부는 그의 에덴이었다. 이제는 실낙원이다.

< 김남일 - 한겨레신문 법조팀장 >


St. Andrew’s 교회에서 열린 예멜의 연주회 장면.

한인석 지휘자 데뷔
바하·거쉬인 등 합창·중창·독창에 청중 매료

‘클래식의 명가’ 예멜이 2018 정기연주회를 열어 음악팬 들을 아름다운 화음의 밤으로 안내했다.
예멜합창단(이사장 유인. 단장 이재수, 지휘 한인석)은 지난 6월3일 저녁 다운타운의 고색창연한 St. Andrew’s Church에서 ‘여름밤으로의 초대 (Invitation to a Summer Evening)’라는 주제로 합창과 중창, 독창을 통해 바하(J.S.Bach)와 거쉬인(G.Gershwin) 등의 유명곡, 우리 가곡 등을 특유의 곱고 섬세한 화음으로 들려주어 예배당을 2층까지 채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이번 연주회는 특히 한인석 지휘자가 새로 예멜 지휘봉을 잡은 후 청중과의 첫 대면으로 기대 속에 연주, 무난하게 기량을 선보인 데뷔 무대로 평가받았다. 반주는 이슬기 피아니스트가 맡았고, 협연은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유가 이끄는 다니엘 유 챔버 그룹의 12인조 현악앙상블이 함께 했다.
연주회는 전반에 바하의 특별 모테트 예배곡인‘Jesu,meine Freude’ BMV 227 (예수는 나의 기쁨) 전곡을 합창으로 연주, 그리스도를 찬미하며 그 사랑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은혜를 화음으로 표현, 청중에게 감명을 주었다.


후반에는 이재수 소프라노가 아련한 정서를 불러일으킨 김성태 곡 ‘동심초’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 ‘달콤한 사월이 오면’을 청아하면서도 힘있는 성량으로 불러 환호를 들었고, 남성 중창팀이 ‘초원’, 여성중창은 ‘나 비록 검으나’를 역시 절제되면서도 잘 조화된 화음으로 들려주어 큰 박수가 쏟아졌다. 합창단은 이어 거쉬인의 ‘여름날’, 델리우스(F. Delius)의 ‘여름밤 강가에서’, 바하의 ‘여호와 참 목자 되사’ 등과 우리 곡 ‘한송이 흰 백합화’, ‘자장가’를 부른 뒤 김기훈 테너와 함께 ‘농부가’로 흥을 돋우며 마무리 했다.
청중의 박수가 그칠 줄을 모르자 상기된 표정으로 앙코르 연주에 나선 한인석 지휘자에게는 객석의 꽃다발이 이어졌다.


< 문의: 647-285-73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