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합격자를 집중적으로 배출하고, 중앙의 청요직(淸要職)을 독점, 그러나...

강명관의 고금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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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1780년(정조 4년) 5월11일 사간원 정언 정익조(鄭益祚)는 정조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대저 밭에서 흘린 땀으로 거둔 곡식과 베틀에서 손가락이 찢어지도록 짜낸 옷감은 허망하게도 부호들이 독차지하는 물자가 될 뿐입니다. 이 때문에 한번 번곤(藩閫)을 거치면 곧 거창한 집을 짓고, 기름진 고을 수령을 하고 나면 농토를 광점(廣占)합니다. 지금 근기(近畿)에서부터 호남과 해서(海西)에 이르기까지 물길이 편리한 곳은 깡그리 경화거실(京華巨室)의 소유물이 되었고, 그 땅에 사는 백성은 밭을 갈고 그 반을 얻어먹는 데 불과합니다. 이것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까닭입니다.”

 

번곤은 관찰사와 병사·수사, 곧 지방 행정의 최고위직인 관찰사와 지역 병권(兵權)의 총책임자인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다. 관찰사와 병사·수사 아래에는 주(州), 부(府), 군(郡), 현(縣)을 다스리는 수백개 수령직이 있었다. 정익조의 말인즉 관찰사와 절도사, 수령을 거치면, 거창한 집을 짓고, 농토를 광점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던가? 이들이 민(民)의 생산물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였다. 그중 하나를 보자. 수령은 봄에 환곡을 높은 값으로 팔아 돈을 챙긴다. 그러고는 돈을 조금 남겨 가을에 곡식값이 쌀 때 채워 넣는다. 이것은 ‘입본’(立本)이란 방법이다. 입본은 하나의 예일 뿐이고, 환곡을 가지고 농민을 이중, 삼중으로 착취하는 방법은 허다하였다.

여러 곳의 수령을 지내고 관찰사와 절도사까지 역임하면 거창한 재산을 형성한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와, 수운(水運)이 편리한, 곧 곡식을 손쉽게 서울로 옮길 수 있는 호남과 황해도 바닷가 고을의 토지가 모두 ‘경화거실’의 소유인 것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관찰사와 병사, 수사 자리는 18세기 이래 예외 없이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의 거대한 사족가, 곧 ‘경화거실’의 독점물이었다. 이들은 흔히 벌열(閥閱)로 부르는데, 벌열은 과거 합격자를 집중적으로 배출하고, 중앙의 청요직(淸要職)을 독점하였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문음(門蔭)으로 지방 수령직을 차지했다.

 

이병정(李秉鼎)은 1766년 문과에 합격한 이래 설서(說書), 수찬, 응교, 부제학, 대사간, 대사성, 충청도 관찰사 등 청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1780년 7월3일 정언 홍주익(洪柱翼)은 이병정을 충청도 관찰사 재직 시의 부패 혐의로 탄핵했다. 조사에 의하면, 이병정은 소의 불법 도살에 대한 속전(贖錢, 벌금) 1876냥을 추징하여 사용했고, 고을과 역(驛)에 공문을 보내 자기 생일 잔치에 물품을 강제로 징수하였다. 찰방 홍창원(洪昌源)을 협박하여 자신의 전지(田地)를 이인(利仁) 역(驛)의 좋은 위전(位田)과 바꾸었고, 안면도의 금송(禁松) 16그루, 판재(板材) 70판을 베어낼 때 홍산(鴻山) 등의 백성 1600명을 품삯 없이 동원하였다. 또 부자 천광주(千光周) 등의 좋은 전지를 자신에게 강제로 팔게 하였다.

 

지방관들은 관찰사의 불법에 협조했다. 찰방 홍창원은 위협과 공갈에 겁을 먹고 땅을 바꾸어주었고, 수사 유진열(柳鎭說)은 안면도 금송의 벌채를 묵인했고, 남포 현감 이상현(李尙顯), 홍산 현감 서직수(徐直修), 비인 현감 이가환(李家煥), 청양 현감 이명우(李命瑀)는 이병정의 말을 듣고 백성을 돈 한푼 주지 않고 강제로 동원했던 것이다.

이병정을 단천부(端川府)에 정배하면서 정조는 탄식해 마지않았다.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는 가문’(世祿之家)이 예(禮)를 지키는 경우가 드물어, 조정에 서면 헌신하는 자세가 없고, 벼슬을 하면 제 잇속만 챙긴다는 비방이 있다. 불행하게도 2, 3년 이래 죄를 저질러 형벌을 받은 자는 탐오(貪汚)가 아니면 역적질을 저질렀다. 그 결과 조정이 텅 비어 일망타진된 것과 같고, 이와 같은 경우를 모면한 사람이 드물다. 아아,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찌 세신(世臣)만의 불행이랴. 곧 국가의 불행인 것이다.”

 

세록지가, 즉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는 가문’이 곧 ‘세신’이고 벌열이다. 18세기 이래 조선의 모든 관직은 수십개 벌열 가문의 독점물이었다. 벌열의 관심사는 관직의 독점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백성과 나라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권력과 치부(致富)를 위해 이들은 정조의 말처럼 역적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무슨 대학의 무슨 학과를 나와서, 무슨 고시에, 무슨 시험에 합격하고, 검사, 판사, 장관, 차관과 국회의원과 시장과 지사를 지냈거나 지금 그 자리의 명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자들은 내란을 내란이라 부르지 못하고, 폭동을 폭동이라 하지 않는다. 국민이 빈곤해지건 나라가 망하건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권력의 유지에 있을 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벌열이 아닌가?

 

아, 이병정은 어떻게 되었냐고? 귀양지에서 놀다가 돌아와 억울하다는 말을 늘어놓았고, 같은 패거리의 도움으로 다시 관로(官路)에 들어섰다. 사헌부 대사헌, 사간원 대사간, 홍문관 제학, 강원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거치고, 이조판서, 병조판서까지 올랐다. 과연 벌열이었다.

사족. 만약 대한민국에 개혁이 있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인문학 연구자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자택 급습한 경찰들에게 압수수색을 당하던 중 추락사

 
 
러시아 가수 바딤 스트로이킨. 바딤 스트로이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해온 러시아 가수가 경찰의 수사를 받던 중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러시아의 독립매체 모스코 타임스는 6일(현지시각) 현지 언론 폰탄카를 인용해 가수 바딤 스트로이킨(59)이 전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자신의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보도했다. 스트로이킨은 우크라이나군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던 가운데, 이날 자택을 급습한 경찰들에게 압수수색을 당하던 중이었다. 수색 과정에서 그는 잠시 물을 마신다며 부엌 쪽으로 갔다가 창밖으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스트로이킨의 사망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트로이킨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왔다. 지난 2022년 3월에는 “이 바보(푸틴)는 형제 국가뿐 아니라 자기 국민을 향해서도 전쟁을 선포했다. 그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그가 재판받고 감옥에 가길 원한다”고 적었다.

 

스트로이킨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저명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시베리아 최북단 교도소에서 수감 도중 의문사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에스엔에스에 푸틴 등 집권세력을 겨냥해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한겨레 김규남 기자 >

[윤석열 내란] "이재명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 COREA 2025. 2. 9. 04:5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이재명으로 시작해 이재명으로 끝나는 윤석열 정부의 공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의 증언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 제공
 


지난 2024년 12월 3일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두 달 남짓 동안 대한민국 곳곳이 목불인견의 난장판으로 변했다. 국회가 계엄군에 침탈당하고, 두 국가 기관인 경호처와 경찰이 충돌했으며, 급기야 법원이 폭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광장은 대통령 탄핵을 두고 두 쪽이 났고, 장삼이사들 사이에서 내전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마저 공공연히 떠돈다.

구속된 윤 대통령의 선동 발언에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던 극우 세력마저 사분오열되어 이젠 적과 동지의 구분도 모호해진 아수라장이 됐다. 와중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서로 악다구니 쓰는 모습이다. 혹자는 지금의 광장을 두고 '분노의 배설구'라고 단언한다.

집권 여당의 비호 아래 극우 세력들이 헌법재판소의 권능마저 조롱하고 겁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폭력을 앞세운 극우 세력의 난동에도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은 굳건하다. 조만간 윤 대통령은 파면될 테고, 동시에 무거운 형사 처벌이 뒤따를 것이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앞세운 그의 치세도 고작 2년 반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차기 대선 국면으로 본격 전환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 될 윤석열 정부의 공과를 냉정하게 성찰하는 일이다. 정면교사든 반면교사든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는 탄핵에 대한 찬반을 떠나 수개월 동안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분노'를 식히는 일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 2년 반에 대한 평가

언론의 계량화된 지표로 마주하는 여론과 직접 사람들을 만나 듣는 실상은 천양지차다. 탄핵에 대한 찬반과 여야의 지지율은 어금버금하다지만, 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목소리는 탄핵 반대 집회 현장 말고는 듣기 힘들었다. 솔직히 윤석열 정부의 2년 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한 윤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조차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법 리스크의 '반사 이익'임을 대체로 인정했다.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도 이구동성 '이재명이 싫어 윤석열을 찍었다'고 고백했다. 2년 반이 지난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다름 아닌 '이재명 구속'이었다. 이재명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이들에게 부러 물었다. 윤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업적이 뭐냐고. 이는 탄핵이 기각되어 그가 대통령직에 복귀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기도 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한미 동맹 강화, 일본과의 관계 개선, 대중국 굴종 외교 극복, 종북 좌파 척결, 그리고 이재명 기소는 그것들에 전가의 보도처럼 따라붙는 '기본 옵션'이었다.

적잖이 당황했다. 그것들을 과연 '업적'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어서다. 하나같이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전 분야에 걸쳐 우리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대표적인 '헛발질' 정책이었다. 질문은 '서술형'이었는데, 그들의 답변은 '단답형'이었다. 정작 그러한 정책들이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한미 동맹 강화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공이 오롯이 미국으로 넘어가 버렸다. '일방적이고 굴욕적인 퍼주기'라고 비판받는 대일 외교는 국가적 위상과 민족적 자존심에 큰 생채기가 났다. 실익 없는 윤 대통령 내외의 잦은 해외 순방을 두고 '부부의 기분 전환을 위한 나들이'였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G2'로 불리며 미국의 유일한 경쟁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중국과 대놓고 척지는 건 차라리 자해 행위다. 허울 좋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중국을 '기회비용'으로 삼아버린 외교적 패착은 우리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말았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북 정책의 운전대마저 놓아버려, 우리는 미국의 '호주머니 속 공깃돌' 신세로 전락했다.

뜬금없는 '종북 좌파 척결' 타령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수십 년 전으로 돌려놨다. '공산 전체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들이대며 '종북 좌파'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한 뒤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마저 흠집을 냈다. '봉오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빨갱이'로 치도곤당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조차 좌익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책이 버젓이 출간되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집회 현장에선 그들의 확신에 찬 답변에 일절 반박하지 못했다. 지질한 고백이지만, 해코지가 두려워서 그들의 주장에 맞장구치기까지 했다. 윤 대통령의 업적으로 손꼽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그들의 납작하고 게으른 인식에는 세대의 차이도 없었다. 모두 보수 언론과 극우 유튜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모양새였다.

기, 승,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 청사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


압권은 '이재명'이었다. 말 그대로, '기, 승, 전, 이재명'이었다. 정부의 정책이 난맥상인 것도, 국가의 신인도가 위태로운 것도,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도, 모두 이재명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한밤중에 무리수를 둬 가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이재명이 '입법 독재'를 주동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이재명은 지난 2년 반 동안 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물론, 보수 언론들까지 부화뇌동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조리돌림 대상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패장'인데도 그를 눈엣가시인 양 옥좼고, '입법 독재의 원흉'으로 몰아 비상계엄 선포 당시 가장 먼저 체포할 대상으로 적시했다.

적이 황당한 건,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선 이재명을 당장 체포 구속하고, 심지어 사형시켜야 한다는 막말까지 쏟아냈지만, 정작 그의 범죄 혐의를 정확히 아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이다. 다짜고짜 이재명이 싫다는 말뿐이었다. 그의 이름 뒤엔 '빨갱이', '친중파', '간첩' 등 근거도 맥락도 없이 혐오를 조장하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지난 설 연휴 때 만난 가까운 지인들조차 사법 리스크 때문에 대통령 당선이 쉽지 않을 거라면서도 정작 이재명의 범죄 혐의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저 수십 가지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을 받는 중이라고 두루뭉술 답했을 따름이다. 국민의힘을 극우 정당으로 규정하는, 비교적 민주당에 우호적인 이들인데도 그랬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면서 사법 리스크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되레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느냐'고 반문했다. 어떻든 검찰이 기소했고, 재판에 회부가 됐고, 모든 언론이 보도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다.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북 송금, 대장동 특혜, 위증교사,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 이재명의 '의혹'은 이미 여론에선 '유죄'로 확정판결 받았다.

만약 이재명의 '의혹'이 무죄 선고될라치면, 또다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난 몇 년 동안 검찰이 '씨 뿌리고' 언론이 '재배한' 이재명의 '의혹'은 강퍅한 여론에 의해 '수확될' 운명이다. 이재명은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기도 전에 여론의 광장에서 온 국민의 뇌리에 '흉악한 범죄자'로 각인된 최초의 정치인이 됐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집권한 윤 대통령의 치세는 미래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이재명으로 시작해 이재명으로 끝나는 상황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공과를 성찰해야 하는 지금, 여전히 이재명의 체포와 구속만 떠들어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럴수록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뒤 죽은 공명이 되살아는' 형국이 돼가고 있다. < 오마이 서부원 기자 >

 

김, 검찰 수뇌부와 비화폰 통화 후 '셀프 출석'..."검찰, 경호처 수사 그래서 막나"

 
 
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
 


검찰이 비상계엄의 스모킹건인 '비화폰(보안 핸드폰)'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비화폰을 써온 계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향한 경찰의 강제수사가 임박하자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나서 김 전 장관의 신병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서 확보하려 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방부 차관 "12월 6일 심우정 총장이 전화, 김용현 전 장관 연락 방법 문의"

국회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의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6일 경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검찰에 신청하자, 심 총장이 당일 저녁 김선호 국방부 차관에게 직접 전화해 김 전 장관에게 연락할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김 차관은 6일 국회 국조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심우정)검찰총장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해달라고 해서, 제가 (김용현)전 장관께 전화를 드렸다"라며 "전화번호를 주시면 제가 (심 총장에게)알려주겠다고 했고, (김용현)장관께서 번호를 알려주셨다"고 했다.

이때 김 전 장관이 일러준 번호는 그가 갖고 있던 비화폰 번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5일 면직됐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비화폰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이 번호로 김 전 장관에게 문자를 보냈고, 김 전 장관이 이 차장에게 전화를 걸면서 둘 사이 통화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김 전 장관은 검찰 쪽과 통화 후 하루 정도 뒤인 12월 8일 새벽 1시 30분께 검찰에 돌연 자진 출석했다.

이진동 차장은 6일 국회 국조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당시 김 전 장관 신병 확보가 제일 중요했다"라며 "수사팀에서 김 전 장관 설득이 잘 안 된다고 해서 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웠던 친윤 검사로 꼽힌다.

일각에선 이 차장과 김 전 장관간의 통화가 성사되기 전 윤 대통령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조특위에서 "(이진동·김용현 통화가 이뤄지기 전에)심 총장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소속)이찬규 부장검사에게 얘기해서 이찬규와 김용현과 통화가 됐는데, 김용현은 '대통령과 통화 후에 얘기하겠다'고 했다"라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에게 '김주현 민정수석과 협의하라'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국조특위에 출석한 김주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은 윤 의원 질의에 "김 전 장관의 출석과 관련해 전화 통화하거나 한 일은 없다"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출신인 김 수석은 비상 계엄 다음날 저녁인 12월 4일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열린 '법조 4인 회동' 참석자 중 한 명이다. 계엄 수사 대응 작전을 짠 것 아니냐고 의심 받는 이 회동에는 김 수석 외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이 참석했다. 판사 출신인 이 전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검찰 출신이다.

"윤석열, 검찰 출석 김용현에 '민정수석과 협의하라' 했다" 주장 나와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김 전 장관이 검찰에 '셀프 출석' 하기 전 검찰 고위층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검찰이 최근 경찰의 비화폰 수사를 일부러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더 커지고 있다. 검찰은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두 번 연속 반려한 바 있는데, 비화폰 통화 내역을 포함해 계엄 수사가 확대될 경우 검찰 수뇌부에게 그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직 경찰은 7일 통화에서 "김용현 출석 전 상황을 보면 정황상 김용현 쪽이 아닌 검찰 쪽에서 먼저 움직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라며 "아무리 엄중한 사건이라 해도 검찰총장까지 등판해 피의자의 전화번호를 구해다 주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국회 국조특위 관계자는 "검찰이 김용현 수사 때부터 이미 수사 범위를 관리하고 있었음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라며 "김성훈 차장 구속이 뭉개지고 늦어지는 것도 비화폰 수사가 본격화되는 걸 검찰이 꺼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김성훈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서, 비화폰 수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 전 장관 등 계엄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이 사용해온 비화폰은 경호처에서 관리하는데, 김 차장이 이끄는 경호처가 군사 비밀 등을 이유로 경찰의 비화폰 서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회 국조특위 관계자는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 공소장을 쓸 때도 '검찰'을 굳이 '수사기관'으로 표현해 애써 연관성을 차단하기 바빴다"라며 "검찰 입장에선 계엄 수사를 통제 관리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현재 김 전 장관이 비화폰을 사용해 검찰 쪽과 통화했던 부분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측은 김성훈 차장에 대한 세 번째 구속영장 신청 계획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 오마이 김석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