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회서 취임선서식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는 동반자”
“필요하면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 개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통합과 공존”이었다. 문 대통령은 10일 국회 중앙홀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황교안 국무총리, 양승태 대법원장 등 5부요인과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취임선서식에서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며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전국 각지에서 골고른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해주셨다”며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으로서 수평적 소통 의지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며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한 최대 현안인 안보 위기 해결에 대한 의지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며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말했다. 또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다. 한편으로 사드 문제 해결을 위개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취임사 전문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두 어깨는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 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른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습니다. 한미 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 구조를 정착시킴으로써 한반도 긴장 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졌습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되어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 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 해주십시오. 저의 신념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세영 기자>


“위대한 인물 뒤엔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말하기를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한다. 그 기도가 항상 나를 따라 다녔고 평생 나와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링컨 대통령처럼 큰 업적을 세우거나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그러나 나의 인생에 엄청난 힘을 미쳤던, 제 어머니의 눈물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가 지금까지도 나의 길을 지켜 주었으며 헛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인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일입니다. 연말에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고 나면 3월에 중학교 개교하기까지 2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졸업시험도 끝났고 또 중학교 입학도 결정이 되고 나니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 보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친구라면 좋겠지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게 까지 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그동안 수고했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셨는지 별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계속 새벽에야 들어오는 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을 하시고 또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하고 노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만나면 좋은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화투놀이를 처음 배웠는데 그렇게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나 교회와 집 밖에 몰랐던 저로서는 친구들과 밤새 어울려 화투놀이를 하곤 하는 것이 스릴이 있고 흥분되고 재미가 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저의 일탈 행위에 드디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야단을 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야단맞을 때만 잠시 집에 있으면서 책을 읽는 척 하다가 또 유혹에 밀려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그 유혹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 나가면 친구들이 집 밖에 와서 고양이 소리를 내며 불러댑니다. 그러면 살그머니 또 나가서 새벽에야 들어오는 것입니다. 도저히 내 스스로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친구들과 못된 놀이를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벌써 몇 번째 아버지로부터 경고의 메시지를 받았던 터라 혹시 주무시지 않고 기다렸다가 매를 드시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 속에서 조용히 문을 열고 마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두움 속에 누군가 그 마루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저는 “드디어 오늘은 큰 일이 나겠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을 하고 있는데 “이제야 오니? 피곤하겠다. 어서 가서 자라”고 하시는데 어머니가 앉아 계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아, 다행이다. 매를 맞지는 않겠구나! 그런데 왜 어머니가 아직도 안 주무시고 앉아 계시지..?” 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제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마루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흐느끼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그 기도의 내용은 안 들렸지만 그러나 눈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그 소리가 얼마나 내 마음을 찔러대는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도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소리가 천둥처럼 제 양심을 울려대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저도 통곡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놀랍게도 더 이상 밤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친구들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고양이 소리를 내며 불러내어도 도저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 자신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지, 그 이후로 중학교 갈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대학생 형들이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생각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은 눅 23:28절에서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자녀들을 위하여 울며 기도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책망보다, 회초리보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강력한 힘이 되어 우리 자녀들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강성철 목사 - 우리장로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숨결이 바람 될 때

● 칼럼 2017. 5. 9. 19:28 Posted by SisaHan

첫 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살아서의 숨결이 죽음 후에는 한 줄기 바람이 될 뿐이라는 은유로 내 고요한 가슴에 잔 물결을 일으켰던 것이다. 고교 은사이신 H교장님이 지난 14년간 보내주신 130여 편의 독후감 중 가장 인상이 깊기도 하였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중인 친구에게 급히 카톡을 보내 공항에서 구입해 온 이 귀한 책,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를 거듭 두 번 읽었다.


저자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미국에서 태어난 인도인 2세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하여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과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케임브리지에서 다시 공부한다. 이어 예일 의과대학에서 의사의 길로 들어서며 졸업 후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뇌가 하는 역할을 알려고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한다. 허나 마지막 7년 차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고 있을 때 폐암말기를 진단받는다. 그는 겨우 서른 여섯 살. 최고의 의사로 뽑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제안받고 꿈꾸던 명성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마지막 고지에서 마주친 광풍이다. 장래가 촉망한 의사에서 갑자기 암환자가 되나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로 돌아가 모든 과정을 힘겹게 마치는 투혼을 발휘한다.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여긴 그는 자신이 떠난 후 혼자가 될 동료의사인 아내 루시를 생각하여 딸 아카디아를 낳으며 삶의 의지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이 책은 약 2년간 투병 중에 쓴 회고록이다. 갑자기 그가 떠나 미완성으로 남겨진 뒷부분은 아내 루시가 마무리하여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우리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으로 남겨질 책을 말이다.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죽음이 올 때가지 멈추지 마라’로 구성된 이 책은 속도를 내기 힘든 책이다. 간결하나 문학성이 뛰어난 문장이라 그 의미가 깊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매 문장마다 삶의 통찰력이 번뜩이며 깊은 철학적인 사고와 현실적 삶에 대한 솔직하고 따뜻한 진실이 담겨 있다. 글을 읽는 도중에 아니, 읽고 난 후에도 아름다운 영혼의 숨결이 나를 사로잡아 먹먹한 감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에서 만난 그는 의사, 작가, 철학자, 과학자였다. 특히 수술능력이 뛰어난 담당의사로 환자들을 친절하게 치료했던 매력적인 의사였다. 그런 그도 의사가 아닌 환자가 되기 전까진 불치병에 걸린 시한부 환자들의 구체적인 고통과 굴절된 욕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과 싸우는 위급한 환자를 위해선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게 되며,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줘야 함도 직접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 생의 늪에서 만난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 오로지 신뢰뿐이고, 병의 치유가 의학을 넘어선 신의 절대적인 영역임을 깨닫고 기독교인으로 되돌아가 평온을 찾기도 한다. 결코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36살의 젊음은 펜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거부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고백한다.


비록 이 책은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아내와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왔지만, 오히려 암이라는 병과 마주하며 그들은 다시 결속하여 서로를 돌봐주면서 사랑으로 똘똘 뭉친다. 오죽하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했을까. 무엇보다 독성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건강한 정자를 채취하여 후에 인공수정으로 아내에게 자식을 남겨줄 결심을 한 그와 이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루시가 보통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 같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책임지지 못할 자식을 낳을 수 있나 싶다. 그만큼 아내를 사랑했던 그는 아내와 딸에게 결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자신의 분신을 남겨주고 떠났다. 바로 이 책이 그것이다. 육신은 함께 하지 못해도 그의 정신은 언제나 살아서 가족과 함께 할 터이니 말이다.


생명연장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떠난 의사 폴 칼라니티. 모든 영광을 누릴 삶의 정점에서 떠나야 하는 분노, 허망, 절망을 수용하고 그가 남긴 글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하고, 언젠가 닥칠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깨달은 삶의 의미는 단연코 인간관계와 도덕적 가치를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통찰에 나도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생각과 올바른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1982년 봄으로 기억한다. 원주에서 같이 온 친구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기념으로 경복궁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버스를 잘못 내려서인지 경복궁 매표소 가는 지름길을 놓치고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고, 청와대 정문으로 향하는 경복궁 옆길을 따라서 경복궁 담을 쭉 돌아 한참을 걷게 되었다. 군사도시인 원주에서 무장한 군인도 늘 보고 자랐지만 그때만큼 무서운 순간은 없었지 싶다. 꽤 넓은 길 곳곳에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금지구역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고, 무서운 냉기와 체포당할 것 같은 공포에 친구와 벌벌 떨면서 그곳을 지났다. 경복궁을 본 기억은 전혀 없고 친구와 떨었던 느낌만 진하게 남아 있다.


2003년 미국에서 돌아와 정착한 곳이 우연히 청와대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그때 경험한 무지막지한 공포는 없지만 이제는 검문과 시위 진압에 시달리고 있다. 검문 방식은 대통령에 따라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청와대 옆이라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검문도 별로 없고 백악산(북악산)을 열어주어 산책길도 좋아졌다.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다시 검문이 강화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 가장 심했다. 골목골목 경찰이나 의경이 늘 배치되어 있고, 탄핵정국 때는 가방까지 열게 하고 차 뒷좌석까지 확인하는 상세검문을 하기도 했다. 느낌이지만 검문자들의 말투나 표정도 박 대통령 시절이 가장 권위적이었다. 박 대통령이 삼성동으로 돌아간 다음날 이제는 검문을 안 하려니 기대를 했다가 실망만 했다. “이제 없잖아요?”라고 약하게 항변을 하였지만 검문자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시위도 그렇다. 노 대통령 때는 시위 진압이 거의 없어 별 불편함이 없었다. 광우병 촛불시위부터 시위 진압의 강도가 세지면서 이후 계속 불편하다. 시위가 있는 날은 모든 길을 의경버스가 미리 메워버린다. 경복궁역에는 지하철이 안 서고 주변 대중교통도 다 차단되고 검문도 심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통 힘들지 않다. 지난 촛불시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덕분인지 경복궁역에도 지하철이 서고 청와대 근처 길도 법원 판결로 덜 막아서 나아졌지만 힘든 경우가 많은 것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청와대 밑 경복궁역 가까이 영추문 앞에 있는 작은 동네공원이 박 대통령 때문에 사라질 상황이다. 작년 말 청와대가 삼청동 쪽 경호시설 확보를 위해 주택을 취득하면서 이 작은 동네공원을 주택 소유자에게 대신 주었다는 것이다. 공원이 있는 그 거리는 4·19 때 21명이 사망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수년 동안 늘 엔진을 끄지 않은 채 대기하는 수많은 시위 진압용 버스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려 온 경복궁역 주변 주민들에게 박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 무척 고약하다.


앞으로 선거 결과에 따라 청와대의 운명도 달라질 것 같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청와대와 관련한 변화는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공간과 삶의 기획 속에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주민이 검문당하지 않을 자유도 고려사항이 되었으면 한다. 대통령 때문에 주민이 힘든 일은 많았지만 지역공간을 함께 나누는 주민들에 대한 배려 혹은 미안함 등을 느낄 기회는 전혀 없었다.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서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다움이 드러난 경우는 그나마 음식점이나 이발소 에피소드가 있는 노 대통령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깝게 지내는 이웃인 건축가 황두진씨는 이렇게 말한다. 취임식 첫날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기 전 통의동 마을마당에 들러, 주민이 건네주는 빗자루로 딱 1분만 공원을 쓸고 휴지도 줍고 나서 주민들에게 박수받으면서 가셨으면 한다고. 그래서 ‘이 동네의 새 주민’이 되셨으면 한다고. 일주일 뒤에는 ‘주민의 삶에 대한 배려’, ‘대통령의 지역 주민성 획득’을 인정하는 ‘일상이 있는 소탈한 대통령’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권인숙 - 명지대 교수, 여성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