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특정 정보 암흑의 시대”

● 칼럼 2013. 7. 7. 19:50 Posted by SisaHan
요즘은 그야말로 광속 정보시대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 아프리카 오지나 중국의 서역 신장 위구르에서 벌어지는 소요사태도 실시간 전해진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 정보의 사각지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정보메신저의 발달로 다양한 정보들이 더 빨리, 더 폭넓게 전해지는 편리성의 혜택 또한 확산되고있다.
 
미디어를 능가하는 SNS(Social Net work Service)의 발달과 이용확산은 언론통제가 심한 공산권 국가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가령 중국의 경우 철저한 통제와 감시 속에서도 SNS를 통한 쇼킹뉴스들이 전해질 때가 많다. 고위공직자들의 부정과 탈선, 정부기관의 과도한 행정적 강압 등도 주민들의 SNS 고발로 실상이 드러나 지탄을 받는 사례가 흔하다. 
내전의 참화로 고통당하는 시리아에서도 폭격을 당한 현장에서 생생한 피해 참상이 화상으로 전세계에 전해진다. 이집트의 민주화 성지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모습도 마찬가지다. 세계인이 현장의 시민들과 함께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오간다. 이 때문에 독재국들이 인터넷까지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이 잦아졌지만, 인터넷을 활용한 SNS의 위력은 기존 언론의 벽을 뛰어넘는 대안 매체로서의 역할도 점점 확장해가고 있다. 전통적 미디어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기존의 전통 미디어가 맥을 못추는가. 머잖아 완전히 퇴조하고 SNS시대에 바톤을 넘겨줄 것인가. 하지만 아닌 것 같다.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 언론학적인 특성을 떠나 정보전달과 확산 측면에서만 한정한다고 해도 기성 언론의 영역을 초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엉뚱하게도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입증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과 정치공작 문제에 대해 SNS의 반응은 뜨겁다. 트위터와 카톡, 페이스북 등에 규탄과 처벌,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끓는다. 국내뿐이 아니다.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한인들의 비난 아우성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각 대학과 교수들, 종교단체, 시민단체의 시위소식과, 고교생까지 가세한 규탄대열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거기에는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소리는 소수이고 말을 꺼내도 금방 궁지에 몰린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소식들을 모르거나, 알아도 막연히 알면서 야당이 무책임하게 공세를 펴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NLL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포기했었다’고 받아들이고 있고…. SNS 안과 밖, 국내와 해외의 온도차가 너무 판이한데 놀라게 된다.
물론 이런 괴현상은 모국 주요 신문과 방송이 보도를 외면하고 축소·왜곡 전달한 때문이다. 방송은 국정원의 ‘국’자를 들먹이기를 꺼리고, 조중동을 중심으로 보수신문들은 정권의 동지가 되어 옹호하고 덮어주기에 바쁘다. 다가오는 종편 재허가에 덜미가 잡혀 권력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언론통제가 타율 혹은 자율적으로 행해지면서, 진실이 오도되고 묻히고 마는 ‘특정정보 암흑’의 시대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현실적으로 SNS는 여전히 특정계층에는 생소한 채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문이나 방송의 가시성, 접근성에 미치지 못하는 측면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라는 유무형의 기기를 활용해야 하고 거기에는 상당한 비용과 지식, 기술적 수준이 필요하기에 신문이나 방송의 가시성과 접근성에 미치지 못한다. 즉 고연령층이나 도시 이외의 지역 주민들에게 SNS는 멀고, 방송과 신문이 오히려 가깝다. 그런데 그 가까운 TV와 다수 신문들이 엉뚱한 정보만 전달하고 있으니, 그들은 21세기 광속 정보시대에 왜곡된 정보 혹은 정보 깜깜이로 살 수 밖에. 
그래도 이 시대 언론인이라면 옳고 그름, 합법과 불법, 진실과 왜곡은 분별할 터임에도 애써 눈을 가리고 권력만 쳐다보는 무지막지한 배짱들은 정말 기상천외다. 눈부신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과 다름없는 양심 실종이고 국민 무시의 패역이 아닌가. 
그러나 국민들을 그렇게 우매하게 본다면 오산이다. ‘아랍의 봄’은 트윗 하나로 시작됐었다. 일시적으로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를지 모르지만, 들끓는 SNS의 외침들은 얼마든지 함성으로 백일하에 터질 수 있다. 폭풍전야 처럼 짓눌려진 정보암흑이 오히려 공포요, 걱정스럽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안보 여론몰이의 한계

● 칼럼 2013. 7. 7. 19:48 Posted by SisaHan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남긴 말들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국민 여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괴벨스는 선전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다. 그는 국가 보조금을 풀어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급여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살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렀다. 그는 매일 저녁 7시 라디오 뉴스에 ‘오늘의 목소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총리 관저 르포를 하도록 했다. 나치스 지지 군중대회 실황도 전국에 생중계했다.
괴벨스는 하켄크로이츠와 제복, 웅장한 행사 등을 활용해 대중이 최면상태에서 파시즘에 젖어들도록 몰아갔다. 나치스 당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괴벨스는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로 유명했다. 괴벨스가 펼친 정치 연출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성은 필요 없다.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라”는 것이었다.

10.4 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 사건의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대화록 공개 행위의 불법·부당성은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주목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거짓 주장이, 괴벨스의 정치선전을 빼닮았다는 점이다. 그 주장은 무엇보다 사실이 무엇인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고, 영토 아닌 영토 논란을 일으켜 대중을 감정적으로 격동시키려 한 게 전부였다. 
보수 언론이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대변한 점도 괴벨스 시절과 비슷했다.

‘안보 여론몰이’는 한국 권위주의의 오래된 정치문법 중 하나다. 박정희 시대로부터 1980년대까지는 ‘좌경 용공’ 몰아붙이기가 성행했다. 근래 들어선 ‘종북 좌파’ 찍어내기가 주된 흐름이다. 과거에 북한의 위협과 공포를 부각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요즘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경제난이 부각되면서 북한을 ‘찌질한 존재’로 멸시해버리는 새로운 프레임이 떠오르고 있다. 어느 경우든 공격 대상 정치세력과 북한을 한 묶음으로 만들어 고립시키려는 그릇된 선동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권위주의 세력이 볼 때 좀 뜻밖의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갔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8일치 여론조사를 보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NLL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의견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행위는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우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덩달아 떨어졌다.

우리 정치에서 안보 여론몰이가 먹히지 않게 된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지표다. 이런 현상이 처음도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갖고 여론몰이를 펼쳤지만, 바닥 민심이 정반대로 조성되고 여당이 참패한 적이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괴벨스의 믿음이 아니라, 여론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 박창식 - 한겨레 신문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기록물 등 자료 일체의 열람과 공개를 요구하는 자료제출요구안을 의결했다. 국가기록원은 금명간 이들 자료의 열람과 공개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NLL) 발언 논란이 국회의 대화록 공개 요구로 또다른 풍파를 맞게 됐다. 국회가 비록 자료제출요구안을 통과시켰지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법적·정치적으로 문제가 많다.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열람, 사본 제작 및 자료 제출을 허용하고 있다. 일부에선 사본 제작 등을 들어 공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지만 법 취지는 꼭 확인이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용하는 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회의 공개 요구는 법이 정한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정치적으로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정보원의 대화록 전문 공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은 없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이제 와서 다시 대화록을 공개한다고 해서 더 명확하게 논란이 종식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소모적인 논란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야의 정략적 담합에 따라 대통령기록물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선 누가 후대를 위해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회의 요구로 실제 공개된다면 저급한 우리 정치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다. 국정원이 본분을 망각하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게 국회가 할 일이다. 국회가 오히려 국정원의 못된 짓을 인정하고 따라하는 형국이라면 곤란하다. 여야 지도부가 NLL 국면을 손쉽게 모면하려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담합했다면 위험천만하다. 국회 의결에 의한 대화록 공개는 앞으로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대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국회가 열람 및 공개를 요구했다고 국가기록원이 무턱대고 대화록을 공개해선 안 된다. 국가기록원은 현행법에 따라 열람은 허용하되 공개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우선 열람을 통해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과 차이가 있는지 살펴본 뒤 공개 여부를 추후 결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야 지도부는 이제라도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록 공개 문제를 재고하기 바란다.


미국이 우방국에 대해서도 불법적인 정보수집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 <가디언>과 독일 <슈피겔> 등의 보도를 보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우리나라 등 38개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에 대해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해왔으며, 유럽연합 본부의 전산망에 침투하기도 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유럽 나라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와 유럽연합 등은 미국을 비판하면서 조사 등을 요구했다. 특히 미국이 전화통화, 전자우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매달 5억건의 통신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나타난 독일의 분노는 크다. 독일 정부는 미국이 자신을 ‘냉전시대의 적인 소련처럼 다뤘다’고 비난했고, 연방검찰은 미국 정보기관을 기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추진중인 자유무역협정 협상도 영향을 받게 됐다. 유럽연합 쪽이 자신의 모든 정보가 미국에 노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 나라들은 기술적 대비책은 물론이고 관련 규정과 법률의 점검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사관이 도청당했다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손을 놓고 있다. 주미 대사관 쪽은 “보도가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 폭로에 의해 나온 것이므로 외교당국이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잘못된 태도다. 동맹국이라고 해서 불법 행위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진상 설명과 재발 방지책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도청 등을 피하기 위한 자체 점검도 필요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의 관방장관은 ‘미국 쪽에 확인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은 중앙정보국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의 불법 정보수집 실태를 폭로하기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으나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심지어 미국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은 30일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가 수집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외국 정보를 수집한다”고 변명했다. ‘당신들도 능력이 있으면 우리처럼 불법 행위를 해라’라는 식이다. 지구촌 지도국을 자처하는 나라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앞서 미국은 테러범, 극단주의자, 조직범죄자 등을 가려내려고 정보 수집을 한다고 했으나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외국 대사관 등에 대한 도청은 국제관계의 신뢰를 근원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진지한 반성을 전제로 세계가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관련 국제기구 등이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