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대통령” 그 뒤 5년‥

● Hot 뉴스 2012. 8. 26. 12:06 Posted by SisaHan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60)이 20일 당의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박 후보는 노 전대통령 재임시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대척점에 섰으며, 생전 화해한 바 없다.



이번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축구팀이 올림픽 사상 최초 동메달을 따는 쾌거가 있었다. 특히 3위 4위가 결정되는 일본과의 한 판은 독도 문제로 시끌시끌한 와중에 거둔 완승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번 올림픽 남자 축구팀이 8강전에서 홈팀 영국을 꺾고 4강에 진출한 것은 참으로 높이 평가할 만 했다. 우리가 조별 예선에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비긴 멕시코가 올림픽 축구결승에서 브라질팀을 누르고 우승했으니 우리 한국 축구도 이제 세계 정상에 가까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 축구팀이 이번에 거둔 성적이 있기까지 그동안 지나온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할 만한 생생한 교훈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조직력이다.
한국팀은 이번 대회를 위해 3년 전부터 홍명보 감독을 중심으로 조직력을 다져 왔다. 아시다시피 축구에 있어서 수비수와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의 유기적인 조직과 플레이는 생명과도 같다. 이번 영국전에서 본 것처럼 영국 선수들은 모두가 세계적인 명문 클럽에서 엄청난 몸값과 개인 경기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급조된 탓에 한국팀의 조직적인 수비에 막혀 이렇다 할 공격을 펼치지도 못했다.
교회의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은사에 따라 유기적으로 잘 협력하여 하나님을 섬기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하다 할지라도 팀으로 뭉쳐진 교회는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신감이다.
한국팀은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브라질팀과 맞섰을 때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반과 후반 시작되자 말자 한국팀은 자신감을 갖고 강력한 공격을 시도했다. 브라질 언론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국팀이 패널티킥을 받아야 할 찬스에서 패널티킥을 받고 득점을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했었다. 한국팀의 이러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조기 교육과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주영 선수는 청소년 시절 이미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고, 기성용 선수는 어릴 때 호주에 축구 유학을 했었고, 지금은 두 선수 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유명한 프로축구 클럽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독일. 프랑스 축구 리그에서 현역 프로 선수로 뛰고 있는 여러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팀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해 본 경험들이 있어서 어느 팀을 만나도 당당하게 경기를 풀어 갈 수 있었다.
교회에 있어서도 우리들의 2세들을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진리와 말씀으로 훈련시키고, 세계 각국에 주의 이름으로 훌륭하게 사역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일하는 경험을 쌓게 해 주면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셋째, 지도력이다.
이번 한. 일전에서 박주영의 선제골은 승리를 가져오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환상적인 드리볼에 이은 골 결정력으로 그 때까지 팽팽하던 분위기를 한국 쪽으로 완전히 돌려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홍 감독이 병역문제로 홍역을 치르던 박주영을 위해 기자회견에 함께 동석하고, 부진했을 때에도 그를 믿고 선발로 기용해준 점이다.
우리가 교회건 어떤 선교 단체건 간에 지도력이 중요하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결단과 추진력이 그가 속한 단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회에서도 지도자를 믿고 지도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협력해 나갈 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 남자 축구가 한국과 세계에 흩어져 사는 온 한인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 준 것처럼 우리가 속한 교회와 신앙단체들이 그들이 보여준 모범사례와 여러 가지 교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면 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장 24절).

< 임수택 목사 - 갈릴리 장로교회 담임목사, 교회스포츠선교회 대표 >



20기 가을학기 9월3일까지 등록


‘인생의 새 날을 아름답게 경험하며, 황혼에도 춤추고 감사할 수 있는 가보고 싶은 명소’ 캐나다 에녹대학이 제20기 가을학기를 오는 9월6일(목) 오전 10시 개강을 앞두고 참가희망자 예비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해마다 1백명 이상이 참여하는 성황과 인기리에 진행되는 서부장로교회(담임 박헌승 목사: 3637 Grand Park Dr.Mississauga) 부설 에녹대학은 이번 가을학기도 반편성과 교재 준비를 위해 전화로 예비등록을 받아 오는 9월3일(월) 등록을 마감한다.
9월6일 개강해 11월1일까지 9주 동안 진행하는 에녹대학은 이번 학기 주제를 ‘은총의 사람들’로 정하고, 8개의 합동강의와 12개의 선택과목을 통해 노년학생들에게 다양하고 유익한 문화·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웃음과 기쁨이 넘치는 이벤트들을 함께한다.
 
합동강의는 찬양과 천국교실, 명곡교실, 건강태권도. 문학교실, 시조교실. 한문교실, 역사교실 등이며, 선택과목은 초·중급 생활영어, 수채화반, 리빙아트, 워쉽댄스, 라인댄스, 한국무용, 국악교실, 하모니카 및 리코더 반, 서예반, 전통공예, 기초골프, 에어로빅 등 희망과 기호에 따라 다채롭게 참여해 즐길 수 있다. 생일잔치와 행복이벤트, 수학여행 등도 마련한다. 교재와 점심식사는 학생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서부장로교회 ‘천사팀’에 의해 무료로 제공된다.
서부장로교회 김경예 전도사는 “에녹대학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영원한 청춘을 노래할 수 있는 웃음과 가쁨이 넘치는 곳”이라며 “이번 학기에도 많은 분이 참여해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바란다”고 전했다.

< 등록 및 문의·자원봉사: 905-803-8800, 김경예 전도사 416-993-3134 >


[1500자 칼럼] 손 편지의 숨소리

● 칼럼 2012. 8. 20. 16:59 Posted by SisaHan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마음까지 축축한 듯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전주에 와서 <혼불>의 작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며 들른 문학관이었다. 날씨를 핑계 삼아 아늑한 곳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나 마셨으면 하는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밝게 웃는 커다란 사진이 우리를 맞이했다. 최명희는 1990년대에 한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알게 된 작가였다. 
당시 나는 도서실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도서실에 상주하며 자연스럽게 신간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다. 도서실에서는 학생들뿐 아니라 마음이 맞는 교사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은 후에 이따금씩 감상을 나누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기억도 아득한 일이지만 그때 만난 책이 <혼불>이었다. 요즈음과는 달리 그때만해도 대하소설이 꽤 읽히던 때라 열 권이라는 부피가 그리 부담스러운 줄 모르고 읽던 시절이었다.
 
실은 최명희 문학관에 들어서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여느 문학관처럼 비슷한 형태로 작가 소개와 작품, 원고지 등을 전시해놓았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혼불>을 연구한 논문들이 유리 진열장 아래 한 줄로 놓여있고 정면에 간단한 약력이 적혀있었다. 그 보다는 전시실 중앙에 작가가 누군가에게 보낸 엽서에 더 관심이 가서 그 앞을 서성이는데 바로 옆 진열장에서 뭔가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게 있었다. 옛 선비들이 서신용으로 주고받던 둘둘 말린 한지를 길게 펼쳐 놓은 듯한 종이의 염력(念力)에 아마 나도 모르게 끌렸나 보았다. 
조금 바랜 듯한 하얀 종이에 왼편에서 시작해 세로로 써 내려간 글, 그건 작가가 친구에게 육필로 쓴 편지였다. A4 용지만한 크기의 종이를 2미터 이상 늘어놓은 길이인데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게 아니라 온전한 한 장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긴 종이를 구했는지 몰라도 모나지 않은 글씨들이 정스럽게 조근조근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예민한 필체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부드럽고 편안한 글씨체였다. 어떤 마음으로 썼기에 그렇게 긴 글을 한결 같은 필체로 이어갈 수 있었을까. 단숨에 썼을까, 며칠을 두고 썼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그 앞에서 발이 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원고지 위에서 사각거리던 만년필 소리가 들려오고 종이에 배어든 잉크 냄새가 나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작가 바로 곁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 긴 종이에 끝도 없이 조용조용 풀어놓았을 작가의 마음이 만져지는 것 같아 나는 감히 발을 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문득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내 다음 다음 세대쯤 되는 작가의 문학관은 어떤 광경일까, 펜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로 글을 쓰는 차세대 작가의 타이핑한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면 관람객의 마음에 어떤 파장이 일까 상상해보았다. 친필이 아닌 인쇄된 편지를 보고도 내가 느끼는 것처럼 작가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듯한 착각으로 가슴이 뛸 수 있을까 싶었다. 
요즈음은 전화도 음성보다는 문자를 선호하는 세대이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기계문명에 기대어 문화 성향이 음성에서 문자로 바뀌어간다는 것은 주관보다는 객관에, 감성보다는 이성에, 이해보다는 책임 쪽으로 무게가 더해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육필도 육성도 사라져가는 문명 사회에서, 희미해져 버린 아날로그적 흔적을 그리워하며 한쪽 귀퉁이가 무너진 듯한 불균형을 느끼는 것이 비록 나 한 사람뿐일까. 기계문명의 편함을 누리는 대신에 어쩌면 우리는 그 이상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손으로 쓴 편지에서는 세월이 지나도 숨결이 느껴진다. 영혼의 숨결이 스며든 살구빛 체온을 글자마다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체온이 묻어있는 편지를 받은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였을까. 작가가 쓴 문학적인 글이라서 감동을 받은 게 아니기에 내용이 어땠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편지에 배어있던 살 냄새를, 그 따스한 숨결을 오래 기억하고 싶을 따름이다.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