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십번, 수천번 되풀이한 증언의 무게는 역사 속에 남을 것”
이용수 할머니가 14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7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마친 뒤고 이옥선 할머니 사진 앞에 헌화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언니야 잘 갔제? 다들 이렇게 우리 응원하고 있는데 잘 될 거야. 젊은 사람들이 꼭 사과 받아낼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 항상 봐주고 도와줘야 해. 알았제?”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 장소 한편에 마련된 이옥선 할머니의 추모 장소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던 이옥선 할머니가 3일 전 세상을 떠나고 맞이한 수요시위는 이날로 1700회에 이르렀다.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주간집회는 32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추모 장소가 된 이곳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는 꽃들이 쌓였다.
이날 집회는 이옥선 할머니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일본정부의 사과는 단지 배상이 아니라 폭력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임을 이옥선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십번, 수천번 되풀이한 증언의 무게는 역사 속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다음 대통령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할머니들은 점점 늙어 가고 있다. 다음에 대통령이 되는 분은 위안부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500여명의 시민들은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하라!”, “국회는 조속히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 보호법을 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위안부 문제의 조속 해결을 촉구했다.
14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7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고 이옥선 할머니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대통령 후보 중 유일하게 참석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법이 있지 않나.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를 모욕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다”며 “일본의 사죄도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사과와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받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해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해낼 것”이라 말했다.
한편 시위장소 건너편 인도에선 이날도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수요시위 반대단체가 집회를 열고 시위 내내 고성과 함께 할머니들을 향한 원색적 비난을 이어갔다. 발언 중에도 고성이 이어지자 권 후보는 “전쟁범죄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당신들은 양심을 가진 인간이 맞나”라고 외치기도 했다.
집회를 주최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극우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국회는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을 즉각 개정해 할머니들이 2차 가해로 고통받지 않게 해야 한다”며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받아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 정봉비 박찬희 기자 >
오랜 지론 대통령 4년 연임제, 결선투표제 제시 '정권 돌격대' 전락 감사원, 국회 소속으로 이관
대통령 '묻지 마 거부권'과 계엄선포 권한 제한도 총리 국회 추천…검찰총장 임명 국회 동의 필수
검찰 영장 청구 독점 폐지, 수사권 근거 무력화 대신 공수처‧국수본 수사 역량 대폭 강화할 듯
"내년 지방선거 또는 2028년 총선 때 국민투표" "4년 연임, 이번엔 적용 안 돼"…임기 단축도 일축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8일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조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혔다. 개헌안을 이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나 늦어도 202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맞춰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놨다.
그간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 후보가 개헌에 소극적이거나 논의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으나 이 후보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개헌 블랙홀'로 인해 전선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경계해왔다. 이제 고비를 어느 정도 넘기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든 만큼 대선 공약으로서 정리된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을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행 우리 헌법은 1987년 우리 국민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맞서 직접 쟁취한 승리의 증표였다. 하지만 지난 12‧3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는 철저히 유린됐다"면서 "위대한 국민들이 오만한 권력자를 단죄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더 막중한 과제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제 정당은 개헌의 일부 과제에 합의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과 계엄의 요건을 강화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라며 "하지만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와 같은 주요 의제는 합의에 닿으려 했으나 이뤄내지 못했고, 국민투표법 개정이라는 절차적 한계까지 맞닥뜨리며 개헌의 발걸음이 멈칫거렸다. 멈춰진 걸음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더 촘촘한 민주주의 안전망으로서의 헌법을 구축할 때다. 역사와 가치가 바로 서고, 다양한 기본권이 보장되며, 지방자치가 강화되고, 대통령의 권한이 적절히 분산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 후보는 가장 먼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을 꼽았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이에 합의했다. 민주주의의 산 역사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층 더 굳건하게 지켜나가자"며 "또 부마항쟁과 6‧10항쟁,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국민 승리의 역사가 헌법에 수록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서 유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2025.5.18. 연합
다음으로 오랜 지론인 대통령 4년 연임제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은 분산하자.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며 "아울러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집권 이후 '정권 돌격대'로 전락한 감사원의 헌법적 개혁 방안에도 중점을 뒀다. 이 후보는 "감사원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엄정한 감시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더 이상 '감사원이 대통령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의혹과 우려를 낳아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의 결산 및 회계감사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석열이 국회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해온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의 제한도 주요하게 거론했다. 이 후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슬러 '묻지 마' 식으로 남발돼 온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해야 한다. 본인과 직계가족의 부정부패, 범죄와 관련된 법안이라면 원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삼권분립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비상명령 및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대통령이 비상명령이나 계엄을 선포하려면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도록 하며, 긴급한 경우에도 24시간 내 국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해서 '아닌 밤중에 비상계엄'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임명과 관련해서는 국회 추천을 받아야만 총리를 임명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총리의 권한을 존중하도록 해 총리로서 맡은 바 직무를 더 든든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과 같이 중립성이 필수적인 수사기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중립적 기관장을 임명할 때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점도 제안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전날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다. 2025.4.9. 연합
특히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하자고 해 검찰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행 헌법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6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검사의 수사권이 천부의 권리인 듯 헌법상 권한이라고 강변하며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검찰 수사권 축소 또는 박탈(소위 검수완박) 시도에 극렬 저항해왔다.
이 후보는 헌법에서 이들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을 공소청으로 전환하는 한편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의 수사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적법한 권한을 가진 다른 기관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사기관끼리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며 "영장 청구부터 누구는 예외가 되는 현실, 불의한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해 그동안 영장 청구권 독점으로 무수한 농간을 벌여온 정치검찰에 직격탄을 날렸다.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국민 기본권 및 지방자치권 강화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 후보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안전권, 생명권, 정보 기본권 등 기본권 강화와 확대를 위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면서 "주민의 일상을 보살피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부 역할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자치와 지역분권 강화는 필수적이다. 최대한의 지방자치권을 보장하자"고 했다.
나아가 "이를 위해 대통령과 총리, 관계 국무위원, 자치단체장 등이 모두 참여하는 헌법기관을 신설해야 한다. 기능은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정책을 심의하고 위상은 국무회의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며 "법령에 위배 되지 않은 한, 자치법규 제정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지방자치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개헌 로드맵도 제시했다. 이 후보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자.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말씀드린 사항을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새로운 개헌을 완성하자"면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진다 해도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중요한 한 축이다. 논의가 국민의 뜻에 따라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그 뜻을 바탕으로 마침내 개헌이 실현되도록, 저 이재명, 맡은 바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새롭게 열리는 제7공화국, 위대한 우리 국민과 함께 진짜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이 후보는 이날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개헌 구상에 관한 보충 설명을 했다. 개헌 시 4년 연임이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에게 적용되는지 묻자 그는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두고는 "대통령 직위를 개인적 영예나 사익을 위한 권력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상"이라며 "국민을 위한 역사적 책임·의무라고 생각하면 그리 가볍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가 최종 책임자의 임기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안정과 민생 회복으로, 일과 국민 중심으로 보면 다음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이 늦었다는 취지의 질문에는 "1987년 체제 헌법의 효용이 다해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많고 역사적 당위성도 있었지만, 여러 상황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을 못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지난 4월 초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번 조기 대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한 일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합의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선과 동시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불가능했다"면서 "국민투표법을 빠르게 개정해 개헌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 측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각 후보가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고 누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약대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 국회에서 가급적 신속하게 개헌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개헌을 위해서는 구(舊)여권의 협조, 더 크게 보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순차적으로 개헌해 나가야 한다"면서 "무리하게 전면 개헌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기보다는 합의되는 것부터 하자"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개헌 공약을 두고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곧바로 호응했다. 종전부터 개헌의 당위성을 피력해왔던 헌정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헌정회가 추진해 온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과 맥을 같이하는 방안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 "특히 헌정회가 지난 16일 각 당 대선 후보들에게 '오는 21일까지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혀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이 후보가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화답한 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후보의 개헌안 입장 발표는 유력 후보의 공개적 제안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 통합이 필요한 시대정신과도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호평하며 "각 당 후보가 국민을 상대로 공식 공약 발표를 통해 개헌안 입장을 밝혀야 대선 이후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개헌 추진을 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식민지·독재체제 거치며 ‘주류’ 굳힌 ‘빽 있는 사람들’ 여러 번 정권 교체 성과에도 여전히 위축된 ‘비주류’ 천박한 물질주의 몰아내고 ‘주류 교체’ 위한 큰 승리를
전우용 역사학자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에게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계엄령 선포의 목적에서나,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계엄포고령의 내용에서나, 수많은 사람을 불법으로 ‘수거’하여 악랄하게 ‘제거’하려는 계획을 기록한 노상원 수첩에서나, 그와 그 일당의 정신은 독재자들의 망령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한동안은 군사쿠데타가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대중적 불안감이 남아 있었지만, 김영삼 정권이 군부 내 하나회를 척결하고 이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폭력으로 무너지리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인들은 ‘민주국가 국민’이라는 집단정체성을 확보한 듯했고, 스스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민주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란공범들
그러나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그 집단정체성과 자부심이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명료히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사실상 방해함으로써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 실행을 도왔을 뿐 아니라, 계엄 해제 이후에도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등 ‘민주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옹호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들은 ‘내란공범’이나 ‘내란종범’으로 지목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윤석열이 구속된 뒤에도 지귀연 판사는 사상 유례없는 ‘구속기간 시간 계산법’을 창안하여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으며, 심우정 검찰총장 역시 사상 유례없는 ‘즉시항고 포기’로 화답하여 그를 탈옥시켰다. 최근 대법원 판사 12명 중 10명은 고등법원이 무죄선고한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함으로써 6.3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아예 없애고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 또는 박탈하려고 했다. 이들은 ‘헌정질서 문란 범죄’를 처벌하려는 의지를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의힘 지지자 대다수는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될 만한 주장에 동조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가당착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윤석열 일당은 왜 내란을 획책했으며 한동안 ‘민주적이었던’ 한국 사회에는 왜 내란을 지지하는 세력이 이토록 거대한가? 내란 진압은 왜 이토록 더딘가? 우리가 역사의 무덤에 파묻은 줄 알았던 박정희 전두환 일당의 망령이 실제로는 여전히 살아서 활보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선거가 ‘독재망령’들을 영원히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천도재(薦度齋)’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이번 선거에 두 가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오른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왼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 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한 뒤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 2015.11.22. 연합뉴스 자료사진
90년 3당합당이 만들어낸 ‘보수’ 참칭 내란독재세력의 망령
첫째, 1987년 민주화운동이 다 풀지 못한 숙제를 완수하는 것이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승리’라는 말은 사실 ‘기억 조작’이다. 당시 내란독재 세력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세력과 타협했을 뿐이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은 양자 간 타협의 산물이자 일종의 ‘휴전협정문’이었다. 뒤이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정치세력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하지 못한 결과 12.12와 5.17 내란의 공동수괴였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노태우가 37%, 김종필이 8%, 김영삼 김대중 합계가 55%였다. 민주정치세력의 득표수가 더 많았지만, 정권은 내란독재세력이 차지했다.
1988년 총선에서는 내란정당인 민정당이 34%, 유신본당인 신민주공화당이 16%,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 합해서 4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정당이 제1당이 되기는 했으나, 내란독재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각각 2개의 정당으로 나뉘어 병립하는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 체제를 ‘인위적으로’ 파괴하고 내란독재세력 절대 우위의 양당체제를 만든 것이 1990년의 ‘3당합당’이었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218석을 차지한 초거대 정당이 되었다. 민자당의 주력은 내란독재세력이었으나 이들은 주류 언론들의 도움을 얻어 ‘보수대연합’을 자처하면서 민주정치세력을 진보좌파로 몰아부쳤다. 반민주 내란독재세력이 보수를 참칭하고 자칭 ‘개혁적 보수 정치세력’에게 진보 딱지를 붙이는, 국제 기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한국의 양당체제는 이 때부터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내란독재세력 대 민주정치세력의 대립을 ‘보수 대 진보’의 대립으로 분식(粉飾)한 한국의 양당체제는 국민 일반의 정치의식을 포획했다. 사람의 합리적 고민은 선택 가능한 영역 안에 머물기 마련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일시적으로 민주정당의 외피(外皮)를 썼던 민자당의 후계 정당들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공공연히 내란을 합리화하고 역대 독재자들을 미화하면서 내란독재세력의 진면목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보수 대 진보’의 ‘인위적’ 정당 체제를 ‘의식적’으로 바꿀 계기
독재정권 시절 특권을 얻고 그를 ‘기득권화’한 사회세력도 내란독재세력의 정치담론에 동조하는 성향을 내면화했다. 이들의 영향 때문에 반인간적 군사쿠데타와 반민주적 독재체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최근 한 여론조사업체는 한국인 중 14%가 ‘상황에 따라서는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그 비율이 24%라고 발표했다. 독재의 망령이 아직 저 세상으로 떠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물론 우리가 이룬 ‘민주적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를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1990년 220석에 육박했던 민자당의 의석 수는 경향적으로 줄어들어 최근 세 차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이 모두 제1당의 지위를 잃었으며, 특히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는 100석을 조금 넘기는 정도로 위축되었다. 윤석열 일당이 내란을 획책한 배경에는 내란독재세력의 지지 기반이 계속 축소되는 추세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1990년에 내란독재세력이 ‘인위적으로’ 만든 정당 체제를 시민들 스스로 ‘의식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기형적 정당체제가 87년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 실패와 90년 3당합당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 내란독재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지들이 다시 뭉쳐야 한다. 이번 선거가 독재세력 대 반독재세력, 반민주세력 대 민주세력, 헌정파괴세력 대 헌정수호세력의 재대결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내란독재, 헌정파괴세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또다른 내란의 위협을 소멸시키고 민주공화국을 반석 위에 올려 세울 수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큰소리치는 ‘사회적 권위’ 해체해야
둘째, 내란독재세력 지지가 갖는 오래된 ‘사회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진행되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래의 농촌공동체가 해체됨으로써 발생한 지역사회 내 ‘권위의 공백’을 한국인들이 자율적으로 메꿀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한 식민지 권력은 자기들이 부리기 쉬운 한국인들을 지역사회 내 유력자로 만들려 했다. 세계대공황으로 식민지 농민들의 삶이 파탄지경에 이른 1930년대부터, ‘뜻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던 ‘유지(有志)’라는 말이 ‘관청과 연결된 사람’, 시쳇말로 ‘빽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불린 자들은 한편으로 식민지 권력의 끄나풀 노릇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청을 상대로 한 지역민들의 로비스트 구실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식민지 지배체제와 별 차이 없는 독재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지역 유지’들의 존재 방식과 행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빽’이라는 말 자체가 ‘권력자와 연결고리가 있음’이라는 의미였다. 집권여당은 자유당에서 공화당으로, 다시 민정당으로 바뀌었지만, 지역사회 내 ‘유지(有志)’들은 늘 여당 당원이 됨으로써 자기들의 영향력을 ‘유지(維持)’하려 했다. 그들은 선거철이면 ‘부정 선거자금’을 지역주민들에게 배분하는 구실을 했고, 일상적으로는 시군구 단위에 만들어진 형식상의 ‘민간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곤 했다. 하다 못해 자동차 앞유리에 ‘○○구 청소년선도위원’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불법주차 단속’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웃과 시비가 붙거나 경찰의 단속을 당했을 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큰소리칠 수 있었다. 알량하지만 그래도 ‘기득권’이었다. 반면 독재정권 시절에 야당에 입당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경찰과 정보기관의 사찰 대상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자진해서’ 야당 당원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척이든 친한 친구든 빚쟁이든,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강권을 받고서야 “절대 비밀로 해 달라”는 말과 함께 입당원서에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야당 당원은 자기 당적을 숨겨야 했고, 그런만큼 ‘비주류’였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한덕수, 김문수, 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내란독재세력과 그 지지자들을 ‘소수’로 만드는 압도적 승리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는 ‘만년야당’을 일거에 ‘여당’으로 바꿔 놓았다. 과거 ‘준(準) 국사범’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비로소 자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면서도 그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나 지역사회의 ‘유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업체 대표와 임원, 판검사와 의사, 교회의 장로와 권사 등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정당 지지 성향은 유권자 평균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왔다. 서울 ‘강남 3구’의 투표 결과는 늘 한국사회의 ‘주류의식’과 ‘정치적 선택’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는 ‘기득권세력’이 아님에도 ‘한국사회에서 주류에 편입되려면 조선일보를 보고 보수정치세력(=내란독재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정치권력의 반민주성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적 행위’나 ‘성공한 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해석한다. 이런 현상도 ‘독재의 망령’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번 선거는 한국 사회에서 100년간 이어져 온 반민주적, 독재친화적 ‘주류의식’을 청산, 교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든 직장에서든 ‘끄나풀형 유지’들의 특권적이며 부패한 권위 대신에 주변 사람들의 신망(信望)을 토대로 한 ‘민주적 권위’가 새롭게 자리 잡아야 한다. 내란독재세력에 빌붙는 ‘천박한 물질주의’를 ‘비주류’의 지위로 몰아내고, 건강한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로 구성된 정치의식과 그를 체화한 사회세력이 ‘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내란과 독재를 추구하고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스스로 ‘소수이자 비주류’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독재의 망령이 다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다.
조희대가 이끄는 사법부가 최대 위기에 처했다. 원인은 간단하다. 조 씨가 주권자인 국민의 무시한 채 뜻을 거스르며 무리하게 판결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있다. 사법부의 권력도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조 씨는 사법부가 이어오던 오랜 관행과 절차를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권력 행사를 막으려 했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의 반국가범죄를 막고 나선 이재명 후보에 대한 요상한 상고심은 사법부의 구성원들조차 의구심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방씨조선일보의 논설실장 박정훈 씨는 대법원이 왜 민주당 반발을 무릅쓰고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선고를 강행했는지, 재판부는 명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고 쓰고 있다. 언론인의 본분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끈질기게 묻는 일이다. 박 씨는 대법원이 사건 배당과 동시에 전원 합의체에 회부해 전광석화처럼 2차 심리까지 마치고 선고 기일을 5월 1일로 지정하는 등 속도전을 펼쳤다고 전한다. 대법원이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을 벌였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인을 넘어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판결을 이처럼 무리하게 서두른 이유를 대법원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박 씨는 끝까지 묻고 그 까닭을 밝혔어야 했다.
조적조(朝敵朝)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의 가장 큰 적은 조선일보’라는 뜻이다. 방씨조선일보가 원칙보다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자들이기에 흔히 관찰되는 모습이다. 박정훈 씨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원칙주의자라고 하며 대법원이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원칙주의자가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을 했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광석화나 속도전이 원칙이라는 뜻일까? 박 씨는 대법원이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질문을 잃은 박 씨의 추측에 의하면 대법원이 선고를 대선 전에 하려 했으리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개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훈 씨가 조희대 씨를 원칙주의자라며 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조선일보 5월17일자 박정훈 칼럼.
국가 지도자를 뽑는 중요한 선거에 대한 판결일수록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과정과 절차를 거쳐 양심적으로 선고해야 마땅했다. 누군가에 쫓기듯 전광석화나 속도전처럼 판결을 해치운 대법원을 이해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사법부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오만은 또 어떤가? 윤석열의 내란 사태는 물론 극우 폭도들의 서부지원 침탈이나 추문에 휩싸인 지귀연의 윤석열 탈옥 허용에도 단 한마디 없던 사법부에 진실을 기대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희대의 오만이 사법부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윤석열의 임명을 받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지난날 서슬 퍼런 권력이 겁박할 때 사법부는 국민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다시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국민을 지켜주겠다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사법 절차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훼손하며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타격을 주었다. 대법원판결을 앞둔 시점에 내란 세력과의 우려스러운 행보에 대한 구체적인 풍문이 돌고 있다. 새삼 대법원의 뒤에 서슬 퍼런 권력의 겁박은 없었는지 묻게 된다.
조 대법원장은 또한 취임사에서 어떤 선입견이나 치우침 없는 판단을 강조했다. 또한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맞는 재판을 하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불공정하게 처리한 단 한 건이 사법부의 신뢰를 통째로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결같은 마음가짐과 자세를 갈고 다듬어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이쯤에서 조적조(曺敵曺)라는 말이 떠오른다. 조 대법원장이 조 대법원장에게 가장 큰 적이라는 뜻이다. 그가 취임사에서 한 말을 보란 듯이 스스로 뒤집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
박정훈 씨가 ‘조희대가 옳았다’라는 칼럼을 쓴 날, 방씨 조선일보 권순완은 ‘기자 수첩’을 통해 “이재명에 묻는다, 국회는 깨끗한가”라고 썼다. 박정훈 씨의 칼럼과 연결하니 묘한 생각이 든다. 마치 사법부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국회는 사법부에 “깨끗한 법정” 운운할 만큼 깨끗한지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헌법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며 유독 법관에게 양심을 요구한다. 지킬 수 있는 사람들에겐 무한히 자랑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참으로 끔찍한 저주처럼 들릴 말이다.
이제 조희대가 옳았다는 박정훈을 생각해본다. 그동안 방씨조선일보 지면에서 박 씨가 보여온 행적을 바탕으로 그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심의 직업인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묻는다. 최근 당신이 이끄는 사법부가 당신이 옳았다고 단정하는 박정훈 씨 말에 침묵할 만큼 양심적이었는지를 말이다. 내 생각에는 방씨조선일보의 논리나 주장은 틀려먹었고, 박 씨의 심보는 한참 글러 먹었다. 그리하여 다시 방씨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