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스토세 말 멸종사태로 많은 털매머드 등 대형 초식동물이 사라졌다. 그 직접적 결과로 대규모 화재가 잦아졌다. 마우리시오 안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후변화로 세계가 대규모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플라이스토세 후기 대멸종 사태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형 초식동물이 잇따라 사라지자 대륙에 걸쳐 들불이 급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5만년부터 6000년 전 사이 털매머드를 비롯해 코끼리 크기의 땅늘보, 거대한 들소, 원시 말 등 초원을 지배하던 거대한 동물들이 대거 멸종했다. 앨리슨 카프 미국 예일대 박사후연구원 등은 26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대형 초식동물의 멸종사태가 지구 차원의 화재 증가를 낳았다”고 밝혔다.
초원에서 풀, 덤불, 관목 등을 다량 섭취하던 대형 초식동물이 사라지자 초원에 마른 풀이 쌓이고 나무가 들어섰고 여기에 큰불이 자주 일어났다. 화재는 호수 바닥 퇴적층에 검은 재를 남겼다. 퇴적층의 재 함량을 비교하면 수백∼수천 년 단위로 화재가 얼마나 자주 어떤 규모로 났는지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은 전 세계 410곳의 호수 퇴적층에서 활성탄(숯) 기록과 대형 초식동물의 멸종실태를 비교해 멸종이 초원에 대형 화재를 불렀다는 결론을 얻었다. 화재로 막대한 면적의 초원이 불탔고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화재가 지구기후에 끼치는 영향은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논문은 밝혔다.
남미의 멸종한 고대 아르마딜로 도에디쿠루스. 갑옷으로 무장한 거대 초식동물로 무게는 1400㎏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 기간 동안 초원에서 풀을 뜯던 대형 초식동물이 가장 많이 멸종한 곳은 남미로 83%에 이르렀고 이어 북미가 68%로 많았다. 오스트레일리아(44%)와 아프리카(22%)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연구자들은 “대륙마다 멸종 양상이 달랐기 때문에 멸종사태가 화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지구 차원의 실험을 한 셈”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비교 결과 대형 초식동물이 가장 많이 멸종한 남미에서 화재가 가장 크게 늘었고 이어 북미가 뒤따랐다. 호주와 아프리카에서는 초원 화재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형 초식동물이 사라지면서 초원에 마른 풀과 덤불, 키 작은 나무 등이 들어차 화재에 땔감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마스토돈이나 자이언트땅늘보처럼 숲에서 나뭇잎을 뜯어먹던 대형 초식동물도 멸종했지만 그곳의 산불 증가는 미미했다고 밝혔다. 초원의 화재는 땔감이 좌우하지만 산불은 수분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미의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 자이언트땅늘보의 상상도. 길이 6m 무게 4t의 코끼리 크기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대형 초식동물은 생태계 엔지니어로 불린다. 이들의 멸종은 당장 포식자의 몰락을 초래하고 초식동물이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뜨리던 식물을 곤란에 빠뜨린다.
카프 박사는 “대형 초식동물의 멸종은 산불을 포함한 연쇄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며 “이를 통해 초식동물이 오늘날 지구 생태계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과거 멸종한 대형 초식동물 자리는 대부분 가축이 차지했다. 연구자들은 “가축과 풀을 뜯는 야생동물이 화재 억제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앞으로 연구할 과제”라고 밝혔다. 조홍섭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가 지난 23일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내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휴양지 낸터킷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 공영방송 <엔피알>(NPR)과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폴이 지난 16~19일 성인 10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해 25일 발표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2%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 조사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엔피알>은 물가 상승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경제적 우려’를 묻는 질문에 인플레이션을 꼽은 대답이 3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금(18%), 노동력 부족(11%), 주거비용(9%), 실업(9%) 등이 꼽혔다. 지난 4월에는 ‘경제를 잘 다룬다’는 평가(52%)를 받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42%로 떨어졌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18일 발표된 퀴니피액대 조사에서는 36%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유가 억제를 위해 한국·중국·일본·영국·인도와 전략 비축유 방출 방침을 밝혔으나 유가 하락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8일까지인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인의 수천만달러짜리 저택에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구설수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지난 23일부터 매사추세츠주의 휴양지인 낸터킷에 있는 저택에서 아들, 딸, 손주 등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 저택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인인 투자회사 칼라일그룹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소유한 것으로, 가격이 약 3000만달러(약 35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 저택을 5박6일 빌려 사용하는 데 얼마를 지불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는 성명을 내고 미국인이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호화로운 휴가를 보내고 있다며, 위선적 진보주의자를 의미하는 “리무진 리버럴”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중국이 대만 대표처 설치를 허용한 리투아니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대사관을 ‘대표처’로 격하시켰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외교부는 26일 자로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외교 기구를 리투아니아 중화인민공화국 대표처로 개칭하기로 한 결정을 리투아니아 외교부에 정식 통보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해외 주재 외교 기구 중 가장 높은 것은 대사관, 그 다음이 공사관이며 대표처는 가장 낮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중국의 이번 조치는 리투아니아가 중국의 주권을 훼손한 데 대한 정당한 반격이며 책임은 전적으로 리투아니아에 있다”며 “중국 인민은 모욕당할 수 없으며,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은 침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투아니아도 중국 주재 외교 기구의 명칭을 상응해서 변경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리투아니아도 대사관의 격을 대표처로 낮추라고 요구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 8월 리투아니아가 수도 빌뉴스에 ‘대만 대표부’ 개설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직후부터 외교적 압박을 강화해왔다. 중국 수교국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외교공관 명칭을 ‘대만’ 대신 수도인 ‘타이베이’를 앞세워 ‘타이베이 대표부’ 등으로 표기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대사 소환 등 전방위적 공세에도 리투아니아 주재 ‘대만 대표처’가 지난 18일 공식 개관해 업무에 들어가자, 중국 쪽은 21일 양국 관계를 대사관급에서 대표부급으로 격하시키는 등 보복 대응 수위를 높였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대만’ 이름을 사용한 외교 공관 개설을 허용한 것은 리투아니아가 처음이다.
앞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리투아니아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을 묻는 말에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앞으로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해 국가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고, 핵심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친중국-친대만’ 갈림길…솔로몬 제도 ‘폭동’ 온두라스 ‘대선 과열’
친중·친대만 세력 치열한 경쟁
26일 솔로몬 제도 수도 호니아라의 차이나타운이 시위대의 폭동으로 파괴돼 있다. 호니아라/AP 연합뉴스
친중국이냐, 친대만이냐?
남태평양의 솔로몬 제도와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가 중국 문제를 놓고 치열한 갈등을 겪고 있다.
솔로몬 제도의 수도 호니아라에서 25일 머내시 소가바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가 경찰서를 불태우고 차이나타운 일부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동 양상으로 번지면서, 오스트레일리아가 70여명의 진압 경찰을 파견했다.
이번 사태는 2019년 총리에 취임한 소가바레의 친중국 행보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가바레 총리는 취임 뒤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등 친중국 정책을 지속했다. 대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지방 세력들은 이에 반발해 왔다. 특히 솔로몬 제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말라이타 섬이 친대만 세력의 중심으로, 이번 시위대에 말라이타 섬 사람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말라이타 섬과 수도가 위치한 과달카날 섬이 자원배분을 놓고 벌이는 오랜 갈등도 이번 폭동의 주요 원인이다.
남태평양 국가들은 오랫동안 대만의 경제 원조를 받으며 최근까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지원이 크게 늘면서 중국과 손을 잡는 경우가 많아졌다. 솔로몬 제도도 2019년 9월 미국 정부의 제재 예고를 무릅쓰고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중미 국가 온두라스도 28일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온두라스는 대만과 수교 중인 15개국 중 하나인데, 유력 야당 후보인 시오마라 카스트로 후보가 당선되면 중국과 수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기자회견에서 “대선에서 승리하면 즉시 중국과 외교·교역 관계를 열겠다”고 말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카스트로 후보가 여당 후보 나스리 아스푸라를 약간의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오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만이 몇 안 되는 수교국 중 하나인 온두라스마저 잃게 되면, 외교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대만은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한 뒤 중국의 압박으로 이미 7개국과 수교 관계가 끊겼다. 최현준 기자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렸다. 유족을 비롯한 5공화국 인사 등이 참석한 영결식에서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사과의 대상을 밝히지는 않았으며, 전씨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5·18과 관련한 사과가 아니라고 말했다.
영결식은 이날 아침 7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층 영결식장에서 40분 동안 진행됐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영결식장 내에는 48개의 좌석이 마련됐고, 이순자씨를 비롯한 유족과 종교계 인사 등이 참여했다. ‘2인자’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전씨 사자명예훼손 재판 법률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민정기 전 비서관, 박철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5공 인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를 제외한 정치인은 보이지 않았다.
영결식 시작 5분 전, 전씨의 장남 전재국씨의 아들이 전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뒤이어 이순자씨와 전씨의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재용씨 부인 박상아씨 등이 영결식장에 들어섰다. 장례 내내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빚은 전씨 지지자와 유튜버 등 시민 수십명은 이날도 몰려들었다.
영결식에서는 전씨 부인 이순자씨가 유족 대표로 소회를 밝혔다. 그는 “돌이켜보니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나시고 저희는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하며 전씨의 과오를 대신 사과했다.
이씨가 3분20초가량 읽은 추도사에서 ‘대리사과’는 15초 분량, 한 문장에 그쳤다. 전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비통한 심정을 밝히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는 “남편은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기억 장애와 인지 장애로 고생하던 중 금년 8월에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암 선고까지 받게 됐다”며 “힘겹게 투병 생활을 인내하고 계시던 11월23일 아침 제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갑자기 쓰러져 저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6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부로서 함께했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하직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이씨는 남편의 유언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편은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또 화장해서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뿌려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닥친 일이라 경황이 없던 중 여러분의 격려와 도움에 힘입어 장례를 무사히 치르게 됐다”며 “이제 남은 절차에 대해서는 우선 정신을 가다듬은 후 장성한 자녀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눠 남편의 유지를 정확하게 받들겠다”고 밝혔다.
전씨 측근들은 영결식에서 전씨를 추어올렸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전씨의 약력을 읊으며 “경제성장의 토대를 구축하고 서울 올림픽을 유치해 올림픽 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평화적 정부 이양의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전씨의 퇴임 이후를 “모진 핍박의 시대”라고 표현하며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청와대를 죽어서 나오지도 않고, 임기 도중에 나오지도 않고, 임기를 마친 뒤 스스로 제 발로 걸어온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은 추도사에서 “전두환 대통령님은 나라 사랑과 선진조국 창조라는 국가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해오셨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아침 8시14분, 전씨의 주검이 장례식장 밖에 세워진 검은 리무진 차량으로 옮겨졌다. 운구차 주변에 몰린 전씨 지지자들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사랑합니다”, “편안히 영면하세요”, “전두환은 발포 명령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함성을 외쳤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40분 동안 화장이 진행됐다.
장지가 정해지지 않은 전씨의 유해는 오후 1시1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유가족과 도후스님 등이 들어간 자택에서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유해는 장지를 정할 때까지 자택에 임시 안치될 예정이다.
한편 전씨 측근은 이씨의 사과의 대상에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화장장인 서울추모공원에서 기자들에게 “기사를 보니까 5·18 단체들이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데 재임 중이라고 (추도사에) 썼다. 5·18에 대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5·18이 전씨가 취임한 1980년 9월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므로 ‘재임 중’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재임 중 벌어진 일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시위하던 학생들이 고초를 겪고, 경찰 고문 사건도 있고 여러 가지”라며 “직접 책임은 없지만 대통령이니까”라고 말했다. 또한 “처음 사죄했다는건 젊은 기자들이 몰라서 그렇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다”며 전씨 쪽의 사과가 처음이 아니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우연 고병찬 기자
뇌물에 “우국충정” 전두환…빈소 채운 재벌 2 · 3세의 조화
보수야당 정치인도 잘 찾지 않는 전두환 빈소에
이재용 · 최태원 · 정의선 · 김승연 등 조화 보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옆에 놓인 재계 인사들의 근조화환. 왼쪽부터 최태원 대한 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기업인들이 돈을 낸 것은 기업인들의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96년 2월26일 대통령 재임 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서울지법(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앉은 전두환씨가 김성호 당시 서울지검(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검사의 신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씨는 1982년부터 대통령에서 물러난 1987년까지 삼성과 현대, 에스케이(당시 선경)와 한화(당시 한국화약) 등 43개 기업으로부터 2259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다.
25년 뒤인 2021년 11월26일, 사망한 전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는 당시 뇌물을 준 재벌 총수 2·3세들의 근조화환이 차례로 놓였다. 현직 정치인들 대부분 조문을 꺼리고, 조화를 보내지 않는 빈소에 기업인들이 보낸 조화는 도드라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재벌을 키우고, 재벌은 대가로 돈을 건넸던 과거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조화에 드리운다.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권력형 부정 축재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보면, 전씨는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1983년 12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8차례에 걸쳐 2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금융·세제 운용 등 기업 경영과 관련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삼성그룹을 선처해달라는 취지였다. 전씨는 마찬가지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1982년 12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220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이외에도 최종현 선경 회장으로부터 150억원, 김승연 한국화약 회장으로부터 70억원을 챙겼다. 다만 기업 총수들은 5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2면
전씨는 1996년 열린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전씨는 검찰 신문에 “(대통령) 취임 당시에는 기업인들을 잘 몰라 돈을 주겠다고 하면 돌려보냈는데 기업인들이 오히려 밤잠을 못 잘 정도로 불안해했다”며 “이렇게 되니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경제 부작용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있는 곳에 정치자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문 도중 재벌 총수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다. 1996년 2월27일치 <한겨레> 4면(‘전씨 공판정 채벌총수 인물평’)을 보면 정주영 전 회장에 대해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찾아와 나랏일에 쓰라고 돈을 줄지언정 개별적인 청탁을 하면서 돈을 주겠는가. 정 회장은 그렇게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병철 전 회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도 만나기 힘들었다.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고 주로 일본에 가 있어서 재임 중 몇 번 만나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속문제로 다투던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교육 차원으로 부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에스케이의 뿌리인 선경은 전두환 정권에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부풀렸던 기업이다.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최종건 전 회장이 창립한 선경직물회사는 1980년 11월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매출액 10배에 달하는 유공을 인수한 선경은 재계 순위 10권 밖에서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라는 전씨의 회고를 전하기도 했다. 전씨는 앞선 뇌물 사건 공판에서 최종현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분이 (노태우씨와) 사돈 관계이기 때문에 선거자금하라고 정치자금조로 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엠앤엠 (M&M) 사장은 25일 빈소를 방문해 조문한 뒤 전씨에 대해 “훌륭한 일도 많이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유족에게 상 잘 치르시라고, 기운내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에도 전날 귀국한 전씨의 삼남 재만씨를 만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최 사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알던 사이인 전재만씨를 못 만나서 오늘 얼굴 보고 손 한번이라도 잡아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전씨 빈소에 조화를 보낸 한 그룹의 관계자는 “(기업에서)전직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들에게 의례적으로 조화를 보내는데, 이번에도 그 차원일 뿐이다”고 말했다. 이우연 장현은 이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