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수상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팀이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피콕 시어터에서 열린 68회 그래미 어워즈 사전 행사에서 ‘골든’으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케이(K)팝 작곡가·프로듀서가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 그래미에서 처음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 ‘골든’이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1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그래미 어워즈 사전 행사에서 진행됐다.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은 영화·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 가운데 송라이터의 성과를 평가해 수여하는 상이다. 비록 주요 부문이 아닌 사전 행사 시상이지만, 가창자가 아니라 곡을 만든 작곡가와 프로듀서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엔지니어 황병준과 성악가 조수미가 그래미 상을 받은 바 있으나, 케이팝 창작진이 그래미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팀이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피콕 시어터에서 열린 68회 그래미 어워즈 사전 행사에서 ‘골든’으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
 

이번 수상으로 ‘골든’ 작업에 참여한 이재(EJAE), 테디, 24, 아이디오(IDO, 이유한·곽중규·남희동)는 모두 그래미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프로듀서 24는 수상 직후 “아쉽게 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저의 가장 큰 스승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이팝의 개척자’ 테디 형께 이 영광을 바친다”고 소감을 전했다.

 

‘골든’은 작품 흥행과 함께 글로벌 차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케이팝 장르 곡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를 같은 시기에 동시에 차지하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팀이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피콕 시어터에서 열린 68회 그래미 어워즈 사전 행사에서 ‘골든’으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
 

‘골든’과 함께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캣츠아이의 ‘가브리엘라’가 후보에 올라 관심을 모았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은 영화 ‘위키드’ 오리지널사운드트랙 ‘디파잉 그래비티’를 부른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수상했다.

 

한편, 이날 열린 본 시상식 오프닝 무대는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공연이었다. 그래미 오프닝 무대에 케이팝 가수가 공연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이정국 기자 >

텍사스주 상원 제9선거구 보궐 결선투표
트럼프, 히스패닉 확장 전략 ‘흔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
 

미국 상징적 텃밭이던 텍사스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14%포인트 차로 승리하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불과 1년 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7%포인트 차로 압승했던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지지를 선언하며 선거에 직접 개입했음에도 참패를 막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 자체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조기 레임덕’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치러진 텍사스주 상원 제9선거구(SD-9) 보궐선거 결선투표에서 민주당 테일러 레메트 후보가 57%를 얻어 공화당 리 웜스갠스 후보(43%)를 14%포인트 차로 눌렀다. 이 선거구는 공화당이 수십 년간 장악해온 ‘루비 레드(ruby red·핵심 텃밭)’ 지역으로 분류돼 왔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는 이곳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17%포인트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불과 1년 사이에 민심이 최소 31%포인트 이동한 셈이다. 시엔엔(CNN)은 “최근 수년간 미국 전역에서 치러진 보궐선거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대반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패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히 뼈아픈 이유는 그가 직접 선거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표 전날과 당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세차례 글을 올려 웜스갠스 후보를 “마가(MAGA) 운동의 강력한 전사”라고 치켜세우며 “완전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 댄 패트릭 부지사,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지도부까지 총출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텍사스 교외 지역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호소에 호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공개 개입이 중도층·무당층 이탈을 가속화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레메트 후보가 정당보다 생활 문제를 강조한 비전형적 민주당 후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노조 지도자 출신으로, 공교육·직업교육·생활비 부담 완화를 전면에 내세웠고, 중도·무당층과 일부 공화당 성향 유권자까지 흡수했다.

 

지난달 31일 텍사스주 상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 발언하는 테일러 레메트 주상원의원 당선인(민주당). 포트워스/AP 연합
 

이번 결과는 최근 민주당이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 켄터키·아이오와 보궐선거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말 플로리다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 28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것 역시 같은 흐름이다. 그동안 공화당은 일부 패배에 대해 ‘험지에서의 패배’라는 방어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두 자릿수로 이겼던 지역에서 31%포인트에 달하는 민심 스윙이 발생한 이번 사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화당이 지난 대선에서 성과를 자평해온 ‘히스패닉 확장 전략’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제이슨 비얄바 텍사스 히스패닉 정책재단 대표의 발언을 인용해 “공화당이 최근 텍사스 라틴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거뒀던 성과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며 “이는 텍사스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히스패닉 인구 비중이 높은 선거구에서 민주당으로의 표 쏠림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과 경제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즉각 성명을 내고 “트럼프가 17%포인트 차로 이겼던 지역에서조차 공화당이 패배했다면, 미국 전역에 안전한 공화당 의석은 없다”며 이번 선거를 중간선거의 분수령으로 규정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 댄 패트릭 텍사스 부지사는 “이번 결과는 공화당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 기자들과 만나 텍사스 선거 패배와 관련해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텍사스 지역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연방 하원 의석 지형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같은 날 열린 텍사스주 18선거구 연방하원 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 크리스천 메네피가 당선됐다. 해당 지역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곳으로, 메네피는 같은 당 어맨다 에드워즈 후보와의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 이 선거구는 민주당 소속이던 실베스터 터너 전 하원의원이 지난해 3월 별세한 이후 약 1년 가까이 공석이었다. 메네피는 터너 전 의원의 잔여 임기인 내년 1월까지 의원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번 선거로 연방 하원 의석수는 공화당 218석, 민주당 214석, 공석 3석이 되며, 양당 간 격차는 5석에서 4석으로 축소됐다. 공화당은 이제 소속 의원 2명만 이탈해도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초박빙’ 상황에 직면했다. 메네피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을 언급하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 김원철 기자 >

 

ICE에 체포된 5살 ‘토끼 모자’ 아이 석방…트럼프 겨눈 판사의 매서운 결정문

 

 

 
지난달 20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밸리뷰 초등학교 유아반(프리스쿨: 유치원에 해당)에 다니는 5살 난 리암 코네호 라모스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손에 가방이 붙들린 채 서 있다. 이 사진은 학교 관계자가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어린아이를 체포했다는 논란이 일자 트리샤 매클로플린 국토안보부 차관보는 23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우리 법 집행관들이 아이를 돌보고, 맥도널드도 사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도 들려줬다”고 항변했다.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규모 불법 이민 단속 과정에서 구금됐던 5살 어린이 리암 코네호 라모스와 그의 아버지 아드리안 코네호 아리아스가 억류 12일 만인 1일(현지시각) 석방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자택으로 돌아왔다. 당시 연방 요원들이 다른 가족 체포를 위해 아이를 ‘미끼’로 사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에이비시(ABC) 뉴스 등에 따르면 에콰도르 출신 망명 신청자인 코네호 라모스(5)와 그의 아버지 코네호 아리아스는 이날 텍사스주 딜리의 이민 구금 시설에서 석방되어 항공편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석방과 귀환 과정에는 텍사스주를 지역구로 둔 호아킨 카스트로(민주) 연방 하원의원이 동행했다. 카스트로 의원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파란색 토끼 모자를 쓰고 스파이더맨 백팩을 멘 코네호 라모스의 사진을 공유하며 “자신의 모자와 배낭을 가지고 집에 왔다”고 알렸다. 

 

텍사스주 출신 민주당 소속 호아킨 카스트로 연방 하원의원이 공개한 이 사진에는 31일(현지시각)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딜리 이민 구금시설에서 석방된 아드리안 코네호 아리아스와 그의 다섯 살 아들 리암 코네호 라모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AP 연합
 

코네호 라모스와 그의 아버지는 지난 20일 미니애폴리스 교외 자택 진입로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에게 체포돼 텍사스로 이송됐다. 당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연행되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관용 이민 단속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이번 석방은 프레드 비어리 텍사스 연방 서부지법 판사의 긴급 명령에 따른 것이다. 비어리 판사는 정부가 행정영장만으로 부자를 구금한 것은 헌법상 ‘불합리한 수색과 체포’에 해당한다며, 오는 3일까지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비어리 판사는 결정문에서 “이번 사건은 하루 단위 추방 실적을 맞추기 위한 부실하고 무능하게 집행된 정부 정책에서 비롯됐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를 트라우마에 빠뜨리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권력에 대한 왜곡된 집착과 잔혹함이 인간적 품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법치주의는 지옥에나 가라는 식”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을 비판했다.

 

부자가 풀려났지만, 체포 당시 상황을 두고는 단속국과 가족들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단속국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아버지가 단속 요원들을 보자 아이를 버리고 도주했다”며 “요원들은 아이를 보호했을 뿐 타겟으로 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족과 리암이 다니는 학교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아버지 아리아스는 “나는 내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며 절대 버리지 않는다”며 “집 앞 진입로에서 차를 세우자마자 요원들이 들이닥쳤다”고 설명했다.

 

당시 단속국이 아이를 ‘미끼’로 썼다고 가족들은 주장한다. 어머니 에리카 라모스는 엔비시(NBC) 뉴스에 “체포 당시 집 안에 있었으며, 창문을 통해 상황을 지켜봤다”며 “아들이 ‘엄마, 문 열어’라고 말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밖으로 나가면 체포돼 집 안에 있던 다른 자녀가 홀로 남을 것이 두려워 문을 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에리카 라모스는 요원들이 아들을 현관 앞으로 데려와 문을 열도록 유도한 것이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시도처럼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 가족은 2024년 에콰도르에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합법적인 망명 신청 절차를 밟고 있어 추방 명령 상태가 아니었다. 아버지 코네호 아리아스는 에이비시(ABC) 뉴스와 인터뷰에서 텍사스 구금시설 내 환경이 열악했으며, 아들이 아팠을 때 약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가족의 망명 심문은 이달 예정돼 있다.           < 김원철 기자 >

 

[전우용 칼럼]

살인적 고문 통해 간첩 조작한 독재 권력
검사는 묻지마 기소, 판사는 '판결 자판기'

지난 50년 간 어떤 판사도 사과하지 않아
법과 양심의 결합은 이 시대 인류의 공통 과제

고문 당하고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는 왜 그토록 가혹했던가?

 

지난 1월 19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이른바 ‘통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조직했다는 혐의로 1976년 사형당한 고 강을성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결과를 접한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이 참혹하게 억울한 수사, 기소, 판결을 한 경찰, 검사, 판사들은 어떤 책임을 지나요?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라고 썼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2025.12.5 [공동취재] 연합
 

살인적 고문으로 반국가세력, 간첩 조작

 

1972년 북한 김일성과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박정희는, 석 달 후 이른바 ‘10월 유신’이라는 반민주적 폭거를 자행하면서 ‘남북대화’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는 “만일 국민 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두는 바”라고 하여 전쟁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자극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진 유신체제는 한국인들이 1940년대에 이미 겪은 ‘전시 총동원체제’였다.

 

사람들은 박정희가 내세운 ‘남북대화와 평화’가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박정희 일당도 굳이 속셈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신체제가 ‘남북대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었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공세’의 일환일 뿐이며 그들의 남침 야욕은 여전하다는 것이 박정희 일당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들은 이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들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국민대중에게 제시했다.

 

당대의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의 독재정권들이 불의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쓴 수단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정치체제나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 행위’로 몰아가는 이데올로기 공작과, 대중에게 그 ‘실례’를 제시하기 위한 반국가세력 또는 간첩 조작이 세계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이나 반국가세력으로 조작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살인적 고문이 수반되었다. 1973년 봄부터 여름까지 중앙정보부(중정)와 육군 보안사령부(보안사)는 거의 매달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4월 제주 우도 간첩단 사건, 5월 일본 거점 귀화 간첩단 사건, 6월 기간산업 침투 간첩단 사건, 7월 귀화 일본인 간첩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남녀 바꾸는 일 빼고는 ‘무슨 짓이든 했던’ 중정

 

이 사건들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재심을 통해 밝혀졌다. 그 무렵 ‘남산에 끌려간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보다 더 공포스런 의미였다. 중정은 자타공인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되는’ 집단은 ‘무슨 짓이든 하는’ 법이다. 그해 8월, 전 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일본에서 납치되어 ‘수장(水葬)’되기 직전 살아돌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10월에는 서울법대 교수 최종길이 중정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받던 중 사망했다. 중정은 그가 ‘간첩 활동 사실을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옥상에 올라가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국민을 깨우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주장이었다. 중정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만큼 ‘공분(公憤)’도 깊어갔다.

 

퇴계로 쪽에서 바라본 남산 중앙정보부. 나무위키

 

12월 3일, 박정희는 중정부장 이후락을 해임하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신직수에게 부장직을 맡겼다. 언론사들은 ‘군 출신이 독점하던 부장직을 처음으로 검사 출신에게 맡긴 것은 중정 활동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중정과 검찰의 ‘유기적 관계’만 강해졌다. 1974년 상반기에만 2월의 ‘문인 간첩단 사건’, 3월의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 4월의 ‘민청학련 및 인혁당 재건위 사건’, 5월의 ‘여간첩 채수정 사건’, 6월의 ‘재일동포 유학생 김승효 간첩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들 사건 역시 대부분 재심에서 무죄로 판정되었는데, 이들 중 ‘민청학련 및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가장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해찬 등 학생ㆍ지식인에 ‘법적 테러’ 가한 긴급조치

 

1974년 1월 8일, 박정희 정권은 개학 후 대학가에 불어닥칠 유신 반대운동을 사전 차단할 목적으로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공포했다.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뿐 아니라 헌법의 개폐를 주장하거나 발의, 제안, 청원하는 행위까지 금지하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하여 징역 15년 이상에 처하도록 한 이 조치는 세계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법적 테러’였다. 이 직후, 종교인, 문인, 지식인 수십 명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일부는 간첩죄를 뒤집어 썼다. 3월 말, 유인태, 김병곤, 나병식, 이현배 등 대학생들은 연합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우고 「민중 민족 민주 선언」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만들었고 4월 3일,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10여 개 대학생들이 시가행진을 시도했다. 당국은 이를 ‘공산폭동’으로 규정했고, 시위의 배후에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불법 조직이 있다고 발표했다. 박정희는 이 시위를 빌미로 다시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하여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사형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이 조직을 만든 적은 없었고, ‘민청학련’이라는 이름도 중앙정보부에서 마음대로 붙인 것이었다.

 

‘민청학련’이라는 가상의 조직을 만들어낸 중정은 시위 관련자들을 체포, 혹독하게 고문하여 이를 실체화했다. 며칠 전 별세한 이해찬 전 총리도 이 때 잡혀가 사경(死境)에 이를 정도로 고문 당했다. 4월 25일, 1964년의 ‘제1차 인혁당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신직수는 “이른바 ‘민청학련’의 정부전복 및 국가변란기도 사건 배후에는 과거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민혁명당 조직과 재일 조총련계의 조종을 받은 일본 공산당원, 국내 좌파 혁신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또는 ‘제2차 인혁당 사건’이다.

 

민청학련 사건 수사 발표하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1974. 4. 25. 연합 DB

 

중정이 간첩 만들고, 검사가 기소하고, 판사는 사형선고

 

중정은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대학생들과 양심적 인사들의 반(反) 유신 활동을 ‘북한의 지시에 따른 체제 전복 활동’으로 몰아가려 했다. ‘인혁당’과 ‘민청학련’ 관련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고문과 협박은 피의자의 가족들에게까지 미쳤다. 중정 요원들은 허위자백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상부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 그냥 지장 찍고 검사 앞에 가서 허위 진술했다고 말하라”고 회유했다. 그 말에 따른 사람들은 검사 앞에서 더 심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검사들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피의자에게 “이 조서가 허위란 말이지? 그럼 돌아가서 다시 작성해 달라고 해”라고 말했다. “무능한 검사는 간첩이 잡히기를 기다리고, 유능한 검사는 간첩을 잡으러 다니며, 가장 유능한 검사는 간첩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유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결과는 ‘인혁당’ 관련자 8명과 ‘민청학련’ 관련자 7명 등 15명이 사형, 기타 수백 명이 징역형을 받은 것이었다. 법관들은 ‘판결문 자동판매기’에 지나지 않았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지 20시간만에 처형되었다. 이 사건 역시 후일 모두 ‘무죄’로 판정되었다. 중정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천여 명을 ‘검거’하는 커다란 성과를 내자, 보안사도 경쟁적으로 조작 사건을 만들어 같은 해 11월, ‘일본 거점 간첩단’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고 강을성 씨가 사형 당한 이른바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1975년 4월 9일 서대문구치소에 갇혀있던 인혁당 관련자 8명을 면회 갔다가 이미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는 가족들. 나무위키

 

김건희에 너그러운 판사, 간첩 혐의 피해자엔 왜 가혹한가

 

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에서는 ICE 대원들이 죄없는 시민을 사살하는 일이 두 차례 일어났다. 전 세계인이 지켜본 이 만행을 두고도, 미국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은 ‘좌파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불법 시위자들을 대상으로 정당한 공무집행을 했을 뿐’이라며 살인자들을 두둔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양심’까지 빼앗고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살인이 중정과 보안사, 검찰, 법원의 ‘협업’에 의해 연쇄적으로 이루어졌다. 고문 → 기소 → 판결 → 집행에 이르는 시간이 좀 더 길었을 뿐, 국가권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작년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재판장 우인성)은 1971년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서병호 유족들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 국가의 사과와 법원의 재심을 권고했지만, 재판부는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문 현장 사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며칠 전 김건희에게 고작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한 바로 그 재판부다.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을 덮은 검찰과 김건희·윤석열이 지시한대로 공천한 국민의힘에게는 이토록 관대한 재판부가, 고문 당하고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는 왜 그토록 가혹했던가?

 

윤석열 내란 사건의 1심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왼쪽)와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등의 1심 재판장인 우인성 부장판사

 

사과한 적 없는 법관들, 지금의 양심 수준은 어떤가

 

1987년 이후 중정과 보안사는 여러 차례 ‘개혁’ 대상이 되었지만, 검찰과 법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신원(伸冤)을 위해 진화위가 만들어졌지만, 가해자들이 사과조차 않는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인혁당 사법살인’만 하더라도 당시 중정부장 신직수, 검찰총장 김치열, 대법원장 민복기 어느 누구도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한 적 없다. 오히려 그들 모두 훈장을 받았고 후손들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노태우의 아들과 전두환의 손자는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했지만, ‘사법 살인자’의 후손들 중 대신 사과한 사람은 없다.

 

법으로 살해당하는 사람이 양산되던 시대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법관들은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양심의 수준이 과연 높아졌는가? 우리 사회의 평균적 양심 수준은 어떤가? 물질의 증가만이 ‘역사 발전’은 아니다. 인간의 양심 수준이 고양되는 것도 역사 발전의 한 부면을 이룬다. 법을 양심과 결합시키는 것이, 이 시대 인류의 공통 과제이다.                                                                               < 전우용 역사학자 >

 

민주당 “힐러리 꿈꿨던 김건희 국정농단, 엄중한 심판만이 답”

“제2의 힐러리 꿈꾸며 국정을 사익 편취의 장으로 전락시킨 김건희, 관용은 사치”

 
 
▲김건희 여사. 사진=대통령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1일 “윤석열은 총선 전 국민의힘 의원들을 소집해 김건희의 ‘광주 출마’ 가능성을 타진했고, 대통령실 참모진은 힐러리 클린턴을 모델로 한 별도 전략 보고서까지 수립했다는 증언이 흘러나왔다”며 “이는 김건희가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V0’로서 직접 권력을 행사하려 했던 노골적인 탐욕의 증거다. 이러한 권력욕은 막후에서의 추악한 국정농단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방송된 JTBC 특집 다큐 ‘김건희의 플랜’에서 JTBC 기자들은 “총선 전이었는데,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 몇 명을 불러 얘기하다가 ‘혹시 내 부인이, 광주에 출마하는 거 어떻게 보냐’라고 했다”, “강남을 해볼까라는 얘기까지도 당내에서 나왔다”, “강남에 여사가 나온다는 소문이 도니까 당은 난리가 났다”며 2023년 김 여사를 둘러싼 일명 ‘힐러리 프로젝트’의 실체를 공개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반클리프 목걸이와 금거북이를 대가로 고위 공직 자리를 거래했다는 매관매직 의혹부터, 특정 종교 세력을 동원한 입당 로비와 비례대표 약속으로 선거 시스템을 사유화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나토 목걸이’를 비롯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추가 청탁 의혹들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이처럼 국정농단의 증거들이 쏟아짐에도, 사법부는 지난 28일 국민 상식을 짓밟는 면죄부 판결을 내놨다”고 주장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주가조작 인식과 수익 배분 정황을 인정하고도 공범성만 부정하는 궤변을 늘어놓더니, 명태균 사건 역시 ‘계약서나 재산상 이득이 없다’는 기만적인 논리로 여론조사와 공천 거래 의혹에 면죄부를 사실상 상납했다”며 “제2의 힐러리를 꿈꾸며 대한민국 국정을 사익 편취의 장으로 전락시킨 이에게 관용은 사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를 향해 “남은 죄과를 낱낱이 파헤쳐 법의 엄중함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 정철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