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과제 ‘상고심 개혁’

 

이재명 대통령 취임 뒤 ‘대법관 증원’이 사법개혁의 첫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대법관 1인의 사건 부담이 큰 상황에서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상고제도 개혁은 법조계의 해묵은 과제였다. 그만큼 폭넓은 동의를 바탕으로 논의가 필요한 제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전 대법원이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둘러 처리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법관 증원 법안을 우후죽순 발의하면서 논의는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 임기 첫날인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대법관 증원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결국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보복성 법안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법조계에서는 상고제도 개혁에 더욱 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법관 늘리면 전원합의체는 어떻게?

 

상고심 개혁은 국민이 충실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시급한 과제다. 대법관 한명이 연간 3천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게 되면 사건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징역 등 개인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형사 사건은 물론이고 민사 사건 또한 피해의 유형이 다양화되는 만큼 세심한 심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법원행정처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법원은 2023년 처리한 민사 사건 가운데 70%를 별도의 심리 없이 사건을 마무리(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주심 대법관이 나름의 검토 끝에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대법원 소부에서 본안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건의 판결이 충실한 심리 없이 확정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처럼 미국(9명), 영국(12명), 일본(15명)도 소수의 대법관이 상고심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경우 상고허가제 등을 통해 법률 해석이 쟁점인 사건들만 처리해서 선별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법관처럼 과도한 업무부담을 짊어지지 않는다. 미국 대법관 9명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 수는 100여건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지난 4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처리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서는,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까지 늘리도록 했다. 1년에 4명씩 총 4년간 16명을 증원하며, 법안이 공포된 뒤 1년간은 시행을 유예한다는 내용의 부칙이 담겼다. 그러나 대법관이 2배 이상 늘어난 상황에서 전원합의체를 어떻게 운영할지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 전원합의체에서는 판례 변경이나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주요 사안에 대해 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대법관 전원이 논의해 결론을 내린다.

 

법원의 가장 권위 있는 결정인 동시에 치열한 논쟁의 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전원합의체 판결은 13건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수만 늘리는 것은 전원합의체를 오히려 부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 30명의 전합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고 나뉘어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관련 논의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며 “실제로 한 사람당 3천건의 사건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해서 대법관들이 사건 기록을 일일이 볼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법관 증원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려면 엄청난 보조인력과 재정 투입도 필요하다. 현재 대법관을 도와 사건 검토 업무를 수행하는 재판연구관은 근무연수가 14년차 정도 된 판사들이 주로 맡는다. 현재 기준으로만 법관 출신 재판연구관 101명이 근무하는데 대법관 증원이 2배 이상 된다면 산술적으로 재판연구관도 같은 비율로 늘어나야 원활한 재판이 가능하다.

 

지금 당장 100명이 넘는 연구관을 증원하려면 하급심 법원에서 차출해야 한다. ‘상고심 충실화’라는 대법관 증원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상고심이 권리구제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고법 판사는 “재판연구관이 있어야 대법관이 늘어나도 업무의 질이 유지된다. 밑에서부터 구조를 만들어서 적당한 대법관 수를 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특위 구성해 입법하는 방식으로”

 

대법관 증원 논의 과정에선 최고법원(연방일반법원)에 130여명의 판사가 근무하는 독일 사례가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독일 연방일반법원의 경우 민사부와 형사부가 나뉘어 있으며, 이들 사이에 쟁점 등이 있을 때는 민사연합부, 형사연합부 등을 꾸려 사건을 심리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민사·형사 재판부를 합친 대연합부에서 논의해 판결하면서 재판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독일은 연방일반법원 외에도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등 분야별로 상고심 담당 법원이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 숫자만 독일 사례를 따를 게 아니라 각 전문 분야를 분리하는 제도도 같이 도입해야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며 “혹은 상고법원을 만들고 대법관이라는 개념보다 ‘대법원 판사’ 느낌으로 기록을 볼 만한 다수의 판사들이 100여명 들어오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 상고심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가면 처리에 몇년씩 걸리는 현 상황을 생각하면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분명하다”며 “이를 계기로 우리도 더 전문화된 제도를 구축하고 분야를 나누는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앞선 사법개혁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사법개혁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를 중심으로 당시 국무총리와 법조계 재야인사, 행정 각부 장관과 학계·재계 등 민간위원까지 포함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공판중심주의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등의 성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2005년 사개추위 기획추진단장을 맡았던 김선수 전 대법관은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과제에 대해 “국회 내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단기·중단기·중장기 개혁 과제로 구분해 단기는 6개월 내에 입법을 완성하고, 중장기 과제는 6개월이나 1년을 더 연장해 22대 국회에서 그간 미진했던 사법개혁 부분을 종합적으로 완성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짚었다. 김 전 대법관은 “특위를 구성하고 과제를 선정하며 공청회 등을 병행해 의견 수렴할 기간을 갖는다면 법원도 더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김지은 기자 >

 

대법-헌재, ‘재판소원’ 도입 놓고 최고법원 지위 기싸움

대법 “사실상 4심제”-헌재 “기본권 강화”

 
 
                                    헌법재판소. 연합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법원의 재판 결과를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평가와 사법체계 혼란을 부를 4심제 도입이라는 우려가 맞선다.

 

재판소원은 법원 재판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재판소원을 도입하면 법원의 판결도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

 

재판소원 제도는 최고법원 지위를 둘러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경합과 맞물리면서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졌다. 헌재는 1995년 11월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 기준으로 부과하도록 한 소득세법 조항이 조세법률주의와 헌법의 포괄위임 금지 원칙에 위반된다며 ‘한정위헌’(법률조항 자체는 그대로 두고 특정한 해석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1996년 4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고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확정판결을 내렸고, 헌재는 대법원 판결이 위헌이라고 선언하며 정면충돌했다.

 

해묵은 갈등이 잠복해 있던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 상고심 뒤 더불어민주당이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재판소원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13일에는 법인세 부과의 정당성을 두고 대법원과 견해가 갈린 케이에스에스(KSS)해운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헌재는 헌재법 개정안이 발의된 뒤인 지난달 15일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헌재는 의견서에서 독일·대만·스페인 등 국제적 재판소원을 예시로 들며, 헌법소원 남발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재판소원 대상을 ‘확정판결’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 도입이라며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률 분쟁을 장기화할 수 있다고 본다.

 

재판소원의 필요성을 두고 법조계의 찬반 의견도 극명하게 갈린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설령 4심제가 되더라도, 재판이 기본권과 재판 청구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헌법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김승대 변호사도 “중대한 헌법적 결함이 있는 판결을 내린 경우, 헌재를 최종 판단 기관으로 다퉈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상고심까지도 이미 오래 걸리는데, 재판소원 이후 법률 관계 확정까지 불안정한 시간이 훨씬 길어지고 소송 비용도 늘어나게 돼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판결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며 “인력 문제를 감안할 때, 재판소원 제도가 남발될 시 헌재가 마비되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 장현은 기자 > 

법조계 “수사 범위 풀어야” “기소권 줘야” 의견
“수사·기소 가능해지면 ‘제2의 검찰’ 돼” 지적도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7일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은 조기 대선이 확정된 지난 4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대폭 강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사법체계 혼란을 해소하고, 공수처 수사권은 검찰·경찰에 이관하겠다”며 공수처 폐지를 주장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공수처에 대해 거대 양당 대통령 후보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공수처는 약 30년 전부터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깰 수 있는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꼽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추진됐지만 검찰의 강력한 반발에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손을 잡고 신속처리 안건 형식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을 힘겹게 통과시키면서 출범할 수 있었다.

 

힘겹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공수처법에는 허점이 적지 않았다. 공수처는 대통령, 대법관, 헌법재판관, 국회의원, 장관, 판검사, 장성급 장교 등 고위 공무원 범죄를 수사할 수는 있지만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만 기소할 수 있다. 수사만 가능하고 기소는 검찰이 해야 하는 구체적인 절차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다. 이런 법률적 미비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12·3 내란 수사다.

 

공수처법에서는 고위 공직자의 가장 중대한 범죄인 내란죄 수사권을 명시하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 이후 공수처는 직권남용 혐의의 관련 수사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내란 수사를 개시했다. 대통령은 또 공수처가 수사는 가능하나 기소할 수 없는 대상이어서 공수처는 수사 뒤 사건을 검찰에 넘겨야 했다.

검찰은 경찰에서 송치받은 사건에서 그랬듯 추가 수사를 위한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랴부랴 윤석열 전 대통령을 기소해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법률적 미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공수처의 수사 자체가 불법이라며 저항했고 결국 내란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이런 상황을 모두 고려해 윤 전 대통령 구속을 취소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공수처는 만성적인 인력난에도 시달려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연루된 채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의 검사 연임안을 지난해 12월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100일 가까이 재가하지 않았다. 공수처에서 검사로 일했던 한 변호사는 “우선 기소권·수사권을 일치시켜야 공수처의 책임도 강화된다”며 “검사 정원도 늘리고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공수처 검사의 임기(3년씩 3연임 가능)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공수처 강화에 대한 법조계 의견은 다양하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자만 제한하고 수사 범위는 풀어야 한다”고 했고,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소권을 동시에 주는 방식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공수처를 직접수사와 기소가 동시에 가능한 기관으로 만들면 제2의 검찰이 돼버린다. 공수처를 무조건 강화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현시점에서 공수처의 역할을 강화할 것인지, 권력기관화 방지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따라 처방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적·물적 제한을 뒀는데, 이러한 제한을 없애려면 공수처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 곽진산  정혜민 기자 >

대통령기록관 “특검팀이 요청하면 제출 가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기록관리단체협의회,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4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들머리에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정아무개씨의 대통령기록관장 임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달 대통령기록관장 채용 절차를 중단했다. 김혜윤 기자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골프 시설로 검토됐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내 미등기 유령 건물 자료를 대통령 경호처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해 대통령기록관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료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경호처장의 뇌물 혐의 수사에 필요한 것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유령 건물 존재를 처음 밝혀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 건물 공사 자료 일체(계약서, 시방서·견적서, 구매 물품 목록 및 가격표, 예산·지출 내역)를 제출해 달라고 경호처에 요구했다. 경호처는 17일 윤 의원실에 “지난 정부 자료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현재 경호처가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경호처는 윤석열 정부 시기 생산한 전자·비전자 기록물 527만4966건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임기 5년을 꽉 채운 문재인 정부 경호처가 47만5310건을 이관한 것과 비교하면 11배 이상 많다. 윤 의원실은 “경호처가 미등기 건물 자료 등을 5월9일부터 6월3일까지 일반기록물로 분류해 이관했다고 한다. 민주적 통제 등 자체 개혁안을 만든다고 홍보하던 시기에 대통령 직무와 무관한 공사 자료까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해 이관한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월 미등기 유령 건물 공사비 일부가 대납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고,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윤석열·김용현 두 사람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이전 및 공사 관련 불법 행위는 민중기 특별검사팀(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록관은 한겨레에 “일반기록물의 경우 경호처가 비공개로 분류했더라도 특검팀에서 요청하면 제출 가능하다”고 했다. 국회는 특검법을 만들 때 열람 조건이 훨씬 까다로운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경우 압수수색 영장 발부 기준을 완화(고등법원장→지방법원장)한 바 있다. 한국기록학회·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이 모인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지난 16일 “그간 경호처에 대해 기록물 폐기 등 증거인멸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며 “열람 요건 완화로 특검 압수수색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대통령기록관이 기록물 목록조차 공개하지 못한다면, 내란 등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윤 의원실은 12·3 내란 모의가 있었던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 리모델링 관련 자료도 요구했지만, 경호처는 이 역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 ‘개 수영장’ 의혹이 제기된 관저 내 시설물 공사 자료에 대해서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 김남일 기자 >

 

윤석열 부부, 국정원에 ‘공천 탈락’ 김상민 검사 자리 만들어줬나

국정원장 법률특보 ‘위인설관’ 의혹
검찰, 윤석열 직권남용 가능성 조사

 
김건희 여사가 2024년 9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공천 배제된 김상민 전 부장검사가 총선 뒤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된 과정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수사 중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은 최근 김 전 검사가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된 배경과 절차를 확인 중이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김 전 검사 공천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데 이어 국정원에 자리까지 만들어줬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김 전 검사는 김영선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 의창구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건희 여사가 김 전 의원 대신 김 전 검사를 이 지역구에 공천하려 했다는 게 공천 개입 의혹 중 하나다.

 

명태균씨 쪽은 지난해 2월16∼19일 사이에 김 여사로부터 “김상민이 의창구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가 김 전 의원에게도 “김상민 검사가 당선되도록 지원하면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얘기했다는 게 명씨 쪽 주장이다. 다만 총선 당시 윤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을 빚으며 김 전 검사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 전 검사는 공천에서 배제된 뒤인 그해 8월 국정원장 법률특보에 임명됐다.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도 김남우 국정원 기조실장이 검찰 출신인 상황에서 김 전 검사를 법률특보로 임명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은 법률특보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한 김 전 검사 임명을 위해 신설된 자리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위인설관 인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수사팀은 이런 인사가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가 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국정원 인사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김 전 검사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웅동학원 채용 비리 사건을 맡아 수사했다. 김 전 검사는 총선 출마 선언 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부인 빈소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윤 전 대통령이 “상민이 초임 때 부장으로 같이 근무하며 지켜봤는데 일도 잘하고 센스도 있어 어떤 일도 잘할 것”이라며 격려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명태균 수사팀은 김 여사의 도움으로 2022년 6월 지방선거의 경선 기회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김진태 강원지사도 지난달 말에 조사했다. 김 지사는 5·18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2022년 4월14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배제됐으나 ‘대국민 사과’를 조건으로 경선 기회를 부여받아 공천을 받았다. 김 지사는 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여부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건희 특검’을 이끄는 민중기 특별검사는 이날,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김 여사의 대면 조사와 관련해 “수사가 이뤄지리라고 생각한다”며 “(조사 방향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특검보 임명이 되면 차츰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배지현  김지은  이나영 기자 >

 

“그쪽서 주가 관리” 김건희 육성 나왔다…‘시세조종 인식’ 정황

검찰, 김건희 녹음 파일 수백개 확보
‘수익금 40% 과도 요구’ 취지 발언도

                        김건희 씨와 도이치모터스 건물 이미지 사진. 연합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김 씨가 주가조작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할 만한 녹음파일 수백개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김 씨의 계좌에서 주가조작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김 씨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으면 주가조작 범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17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고검 형사부(부장 차순길)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하고 김 씨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롭게 확보했다. 이 녹음파일에는 ‘그쪽에서 주가를 관리하고 있다’, ‘계좌 관리자 쪽에서 수익금을 40%가량으로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취지의 김 씨의 발언이 담겼다고 한다. 정상적인 수준보다 높은 수익금 배분을 약정하는 경우는 계좌를 제공한 ‘전주’(돈줄)가 시세조종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가 된다.

 

앞서 법원은 김 씨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컨트롤타워로 꼽히는 미등록 투자자문사 블랙펄인베스트에서 운용했다고 판단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시기 ‘주포’ 이아무개씨도 검찰 조사에서 2009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자신에게 “주식 수익의 30~40%를 주겠다”고 말할 당시 김 씨가 동석했다고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선 ‘현장에 김 씨는 없었다’고 말을 바꾼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
 

또 검찰은 김 가 자신 명의 증권 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등이 적힌 ‘김건희 엑셀 파일’을 미래에셋증권 직원에게 보낸 뒤 이를 함께 검토하는 내용의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블랙펄인베스트 압수수색을 통해 파일명 ‘김건희’라고 적힌 엑셀 파일을 확보했는데, 주가조작에 동원된 계좌 현황을 김 가 증권사 직원과 점검하는 대화가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씨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김 여사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은 최근 김 여사 쪽에 출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혜민 기자 >

 

윤 정부, 대통령실 홈페이지 자료 옮기면서 김건희 사진 싹 지웠다

“다른 자료 어떤 게 추가로 지워졌는진 알 수 없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2024년 10월9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나온 라오스 쪽 인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홈페이지 데이터를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겨 열람할 수 없게 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씨의 사진 등 일부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17일 대통령실이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대통령실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하며 “함께 있던 자료 중 어떤 자료가 추가로 삭제됐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실 홈페이지와 관련된 데이터, 홈페이지를 구동하기 위한 소스코드 등을 모두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같은 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된 이상 명확한 사유가 없으면 열람할 수 없다”며 “지금은 홈페이지 구동 매뉴얼만 열람 허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홈페이지를 만든 업체와 협업해 사이트를 복원하는 중”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현재 임시 홈페이지 리뉴얼을 완료한 상태로, 이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관계자는 “며칠 동안 날밤을 새며 완성했다. 급하게 완성한 만큼 오류가 생겨 국민께서 실망하실지 걱정되지만, 우선은 임시 홈페이지 상태로라도 공개하려고 한다”고 했다. 또 “복구 방안을 찾은 덕에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수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 정부 기조대로 (적은 돈으로) 기존 홈페이지를 잘 살려보겠다”고 했다. < 고경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