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 비대면 성탄예배...구주 탄생 온라인 찬양

● 교회소식 2020. 12. 26. 12: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성탄절...교회들 온라인으로 예배와 찬양

다양한 축하행사, 이웃돕기 돌봄도 함께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기쁘다 구주 오셨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온 인류가 구세주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을 맞았으나, COVID-19 만연으로 인한 사회봉쇄 조치로 예배당 현장의 대면예배마저 중지되면서 교회들은 성탄축하 예배와 대부분의 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사상 유례없는 성탄절을 맞고 있다.

예년 같으면 칸타타, 뮤지컬, 성극 등 풍성한 크리스마스 행사로 성도들이 은혜를 나누는 축하분위기가 교회마다 가득할 성탄절기이다. 하지만 올해 각 교회는 지난 20일 성탄주일은 물론 25일 성탄절 예배와 찬양 등을 안타까움 속에 모두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참례하면서 코로나 재앙속에 맞는 예수 그리스도 강림의 의미를 새롭고도 경건하게 묵상하는 비대면 성탄예배 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 성탄주일을 전후해 일부교회는 성전 축하예배를 드리지는 못해도 드라이브인 성탄축하와 아동부 졸업행사, 그리고 온라인 성탄 가족 발표회로 기쁨을 나눴고(19일 토론토 영락교회: 담임 송민호 목사), 20일 성탄주일 예배를 드라이브인으로 드리면서 성도들이 차에서 인사를 주고받고 은혜를 축원하기도 했으며(토론토 강림감리교회: 담임 김주엽 목사), 예배 후 온라인 가족찬양제를 별도로 여는 등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 김치길 목사) 전례없는 비대면 성탄절 맞이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각 교회는 25일 성탄절 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리면서 축하 음악예배(밀알교회: 담임 노승환 목사), 찬양 축하예배(소금과 빛 염광교회: 담임 이요환 목사) 등과 성찬식, 세례식, 칸타타 등 영상 축하행사로 성탄의 기쁨을 나눈다.

이같은 전례없는 상황에 교회에는 영상송출을 위한 최소 인원만 모이게 되면서 예년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은 줄어들고 간소하며 다소 썰렁한 분위기까지 자아내고 있다. 이에 몇몇교회 목회자들은 성탄주간에 온라인을 통한 심방에 나서거나, 성도들의 집 앞까지만 찾아가 축복기도를 하는 문전심방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한편 다수 교회들은 자축행사 외에 그늘지고 소외된 불우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온정사역도 잊지 않고 있다. 성도들이 도네이션한 생필품과 장난감, 식품, 방역물품 등을 선교단체를 통해 전달하거나, 직접사랑의 패키기를 만들어 어렵게 사는 교인과 이웃, 노령층 등에게 배달해주고 있는 교회들이 많다.

다운스뷰 장로교회(담임 주교돈 목사)는 선물상자 ‘Shoe Box’130여개 만들어 가난한 나라 학생들에게 전달되도록 했으며, 본 한인교회(담임 고영민 목사)성탄 사랑나눔헌금으로 월드비전을 통한 볼리비아 어린이 53명을 후원하고, 지역사회와 선교지 등에도 사랑을 전했다. 밀알교회는 러브 토론토- 이웃사랑 나누기캠페인으로 생활용품과 식품·의류 등을 27일 주일까지 모아 SEA미션(대표 강범진 목사)과 함께 Jame&Finch 지역 주민과 도시빈민 등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이밖에 소금과 빛 염광교회는 크리스마스 햄퍼(Hamper) 도네이션으로 교회 이웃 불우한 가정에 물품박스를 전달하는 등, 교회들 마다 COVID-19로 위축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데 성도들이 정성을 모으고 있다.


[한마당] 망년에 사라져야 할 괴물들

● 칼럼 2020. 12. 26. 12: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마당] 망년에 사라져야할 괴물들

 

다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세월의 분기점을 맞는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유난히 답답하고 불안하고 초초했던, 강박 속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했던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연히 COVID-19 이야기로구나 하고 직감할 터이다. 하지만 그 것만을 거론하기엔 부족하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피곤하게 하고 상처를 준 것들이 어디 한 둘 이랴만, 그 중에도 코로나에 버금가는 다른 두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그들 역시 코로나 못지않게 비슷한 기질로 기승을 부리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지겨운 한 해를 넘기는 마당에 어서 사라줘졌으면 하는 강한 소망으로 오버랩된다.

아무래도 그들 세 군상은 곰곰 따져볼수록, 범위와 영향력은 다르나 정말 유별나고도 징그럽고 독한 물건들이라는 점에서는 묘하게도 닮은꼴들이 아닌가 하는 감이 든다.

먼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괴물은 다들 보고 듣고 겪은 그대로 일 것이다.

가까운 이웃에서 전염병 감염 소식을 들으면서 얼굴은 늘 마스크로 감싸고 끈을 단단히 조여야 했다. 요양원에서 죽어나가는 노인들 이야기가 TV에서 쏟아져 나올 때는 머잖아 다가올 인생말기에 다들 저런 취급을 당하겠구나 하는 실감이 스며들곤 했다. 일이 멈추고 수입이 막혀 나라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난감한 처지는 사람들을 속병이 들게 했다. 누구를 만나기도 겁나고,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도 없으니 이게 무슨 징벌이란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차단된 일상 속에서 마치 창살없는 감옥처럼 제한된 반복의 나날은 정신력과 삶의 역량을 불시 점검 당하는 인생 재수시험같은 감이 들 정도였다.

비단 어느 한 사람 뿐이랴. 현재까지 지구상의 220개 국가와 지역에 감염자를 내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내노라 하는 거대 선진국들이 속수무책으로 짓밟혔다. 8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걸려들어 병을 앓고, 그 중에 170여만 명은 목숨을 잃었다. 첨단과학을 동원해 만들어 낸 백신으로 기세가 꺾일려나 했더니 절묘하게도 변종으로 빠져나가려는 지능적이고 끈질기고 교활한 근성을 드러낸 존재.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그 기괴한 위력과 파장을 보면, 쩔쩔매는 인간을 향해 분명히 오만한 헛웃음을 치고있을 것이다.

 

대국 미국에서 기행을 일삼은 한 인물 때문에 미국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인이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금세 트럼프를 떠올릴 것이다.

그는 미국이 우선이라며 세계 각국을 압박하고 강짜를 부렸다. 동맹국이라면서도 갈취공갈수준의 예우를 일삼았다. 흑인을 죽인 백인경찰을 두둔하면서 항의시위를 폭동이라고 매도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범벅을 만들어 버리는 억지와 허언의 재주꾼.

그는 마침내 표로 결판이 난 선거마저도 부정·불복하는 막무가내 아집으로 여전히 몽니를 부리고 있다. 국력과 국격과 민주주의의 세계 최고인 나라 국가원수 함량이 그 정도라는 게 믿기는가. 그것도 집단지성이 택했다고 볼 수 있는 선거로 뽑힌 지도자다. 더구나 그런 꼴을 보고, 당하고 겪고 나서도, 미국인의 절반 가량은 여전히 그에게 환호하고, 그래서 그 걸 믿고 버티며 임기 말에 국정을 성깔대로 뒤흔들다니, 과연 미국은 죽어 가는가. 미국인들의 분별력도 그렇지만, 도대체가 공직자와 지도자의 덕목이란 찾아볼 수가 없는 그로인해 분열되어 신음하는 미국은 그리고 불안한 장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농락당한 그 이상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제 세 번째 대상, 한국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1년여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말고 나라와 민심을 뒤흔든 존재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좌우를 떠나 국론을 분열시켰고, 국정 최고책임자와 상급자에게 반항하여 공직의 기강을 무너뜨렸다. 국민 대표기관의 검증시스템을 무력화하여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했다. 국민이 선출한 임명권자에게 도전하여 문민통제를 위태롭게 한 그는 장관급 공직자다. 사상 유례없는 항명과 국정요동의 소란, 거기에 가족비리 의혹을 보는 국민적 원성 만으로도 진작 부덕의 소치로 물러나는 게, 구태여 목민심서를 들출 필요도 없는 상식이고 도리였다. 그런데 그는 이해가 맞아 떨어진 패거리들을 부추겨 자기만의 법치를 외치며 감찰도 거부했다. 입맛대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내로남불의 칼을 휘둘러 국가 사정기관을 사조직이나 정당처럼 만들었다. 마치 핍박받는 정의 투사 행세로 대선주자인 양 정치검찰의 상징이 된 그가, 지난 한해 나라와 국민들 가슴을 얼마나 후벼파고 불안케 했던가. 머잖아 트럼프는 퇴장할 것이다. 이제 남은 두 괴물, 제발 코로나 바이러스도, ‘검찰 두목도 망년과 함께 말끔히 사라져, 새해에는 세상에 평화가 충만할 지어다!.     < 김종천 편집인 >

[기쁨과 소망] B.C.와 A.C. 시대

● 칼럼 2020. 12. 26. 12:1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B.C.A.C. 시대 : Before Corona & After Corona Era

           

서기 202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연호, A.D.2020년의 기준은 예수님이십니다. 기원 전을 뜻하는 ‘B.C.’‘Before Christ’의 약자이고, 기원 후를 뜻하는 ‘A.D.’는 라틴어로 주의 해를 뜻하는 ‘Anno Domini’의 약자입니다. , 우리가 쓰는 A.D.2020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즉위하신지, 2020년이 되는 해“라는 의미입니다.

연호 A.D.525, 동로마의 수도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당시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아누스의 즉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했는데, 폭군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 예수님의 탄생 시점을 기준으로 연호를 계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역사적 기준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COVID-19)은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인류의 생활 양식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기준을 말합니다. 코로나(Corona) 이전을 뜻하는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를 뜻하는 ‘A.C.’(After Corona)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A.D.’(After Diseas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코로나 감염증(Corona Disease)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충격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물론 코로나(Corona)가 새로운 연호의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가져다 준 충격이 너무나 크기에, 코로나 사태 이후는 다른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벌써 교회의 예배의 형태가 바뀌고 있습니다. 기존에 지켜왔던 예배의 형식, 방법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그룹 모임 보다는 소그룹 모임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신앙생활이 단순히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모습이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선교도 바뀌고 있습니다. 매해 방문했던 선교지를 올해는 가지 못했기에, 새로운 선교의 방법을 구상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선교 현장을 방문하여 교회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전달하기 보다, 선교 현장의 사역자들, 현지인들에 의해 개발된 프로그램과 선교의 방법이 적용되어질 수 있도록 후원교회는 도와가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 시대와 코로나 이후 시대가 어떻게 달라지게될지 예견하기 쉽지 않지만,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를 통해 복음의 파급력이 더욱 강력하게 나타났던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오히려 이곳 저곳에서 더욱 강한 영적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고, 교회됨을 지켜가는 교회들이 더욱 많이 나타나고, 선교 현장마다 현지인 사역자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더욱 강력히 나타날 것을 기대해 봅니다.

빌라델비아장로교회 김치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