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막힌 전봉준투쟁단 트랙터전봉준투쟁단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리는 '윤석열 즉각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하려는 트랙터들이 경찰에 의해 서울시내 진입이 막힌 채 주차되어 있다. ⓒ 이정민
 

"나라가 어렵고 힘듭니다. 이럴수록 빠르게 정부가 안정되어야 합니다. 무슨 농사, 무슨 농사 해도 '정치 농사'부터 제대로 돼야 국민들이 살 거 아닙니까!"
-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체감 온도 19도의 따스한 날 오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트랙터를 몰고 남태령고개에 도착한 농민들은 오늘이 "농사하기 좋은 날"이라고 했다. 동시에 "윤석열 파면을 바라는 주권자들이 투쟁하기 또한 좋은 날"이라고 했다.

전국농민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등이 참여하는 '전봉준 투쟁단'은 25일 오후 서울과 경기 과천 경계에 있는 남태령고개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위한 '서울 재진격'을 진행했다.

애초 전봉준 투쟁단은 이날 오후 3시 결의대회를 마치고 트랙터 행진을 벌이려 했으나 오후 6시 30분 현재 남태령고개에서 멈춘 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의 저지 때문이다. 전봉준 투쟁단은 행사 이틀 전인 지난 22일 서울특별시경찰청에 옥외집회(행진) 신고를 했으나 경찰과 법원은 이들이 집회 준비물로 제시한 트랙터의 사용을 불허했다.

해당 소식에 분노한 농민들은 행사 당일 예정보다 더 많은 트랙터 60여 대를 끌고 나타났다. 이 트랙터들은 현재 남태령고개에서 과천 방향으로 늘어서 있다. 경찰은 행진을 못 하도록 트랙터 사이사이 바리케이드(경찰 저지선)와 경찰차 등을 배치했다. 이에 더해 맞불 집회를 벌이는 극우 세력과 전봉준 투쟁단 사이에 경찰 버스를 배치해 양측을 분리했다.

농민 분노에 마음 보탠 시민들 "사회 구성원의 책임"

전봉준투쟁단, "윤석열 파면하라!"전봉준투쟁단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평화시위 보장과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먼 걸음을 했다. 제주에서 양파, 대파 등 채소 농사를 짓는다는 전농 소속 고봉희(58)씨는 "오전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엉망이고 내란이 터졌는데도 언제 대통령이 파면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오늘 집회에 참석했다"라고 했다.

전남 화순에서 온 전여농 소속 구경남(70)·화옥기(76)씨도 손에 '쌀값 보장'이라는 리본이 달린 호미를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두 사람은 "트랙터 못 들어오게 하면 우리는 호미라도 들고 와야제", "농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들고 온 거여"라고 했다. 이들은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남태령 일대를 직접 찾아 "트랙터 시내 진입 절대 불가"를 밝힌 것을 두고 "오메, 미쳐블겄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그 발언은 오 시장이 잘못한 것"이라며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농민들이 평화롭게 떠든다는데 그걸 막나"라고 비판했다.

전봉준투쟁단, "윤석열 파면하라!"전봉준투쟁단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평화시위 보장과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전봉준 투쟁단의 '서울 재진격' 소식에 반응한 건 농민만이 아니었다. SNS 등으로 소식을 들은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만난 휴학생 호두(활동명, 21)씨는 "지난 12월 21일에도 연대하기 위해 남태령을 찾았다. 광장에 나오며 사회 구성원의 책임을 배웠다"라면서 "유튜브와 트위터 등에서 전봉준 투쟁단의 투쟁 소식을 듣고 또다시 남태령에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던 대학생이었는데, 지난 12월부터 국가 폭력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분노해서 연대하러 나오게 됐다. 또 최근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한 일에도 분노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민 김아무개(27)씨도 "농민이 (행진에) 당연히 트랙터를 보낼 수 있는 건데, (경찰이) 무슨 나라를 망칠 무기라도 되는 것마냥 막으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도 지연되는 상황에서 공권력이 분명하게 한쪽(내란 세력)의 편만을 들어주는 것 같다. 전농 집회엔 제한 통고를 하고, 극우 집회는 전농보다 늦게 신청했는데도 집회를 받아주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우리를 남태령에 막아 세운 건 경찰"

경찰에 막힌 전봉준투쟁단 트랙터전봉준투쟁단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리는 '윤석열 즉각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하려는 트랙터들이 경찰에 의해 서울시내 진입이 막힌 채 주차되어 있다. ⓒ 이정민


오후 2시부터는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농민들은 "농민이 최고/농사가 최고/우리가 최고야"라는 노랫말에 율동을 얹어 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트럭 위 간이 무대에 오른 하원오 전농 의장은 "3월 중순이 넘어가면 농가는 파종 준비 등으로 바쁘다"면서도 "그럼에도 오늘 농민들이 많이 참석했다는 건 윤석열 탄핵을 농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 의장은 윤 대통령과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 겸 권한대행을 향해서는 "그간 농민들을 위한 법에 거부권을 너무 많이 행사했다"라면서 "정치 농사부터 제대로 돼야 국민들이 살지 않겠나"라고 외쳤다. 또 현장을 막고 있는 경찰을 향해서는 "우리는 지난 12월 21일~22일에도 남태령에서 밤새워 투쟁할 생각이 없었다. 우리를 막아 세운 건 경찰"이라며 "오늘 오후 7시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트랙터를 끌고 참석할 수 있도록 길을 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오마이 박수림 기자 >

경찰에 막힌 전봉준투쟁단 트랙터전봉준투쟁단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리는 '윤석열 즉각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하려는 트랙터들이 경찰에 의해 서울시내 진입이 막힌 채 주차되어 있다. ⓒ 이정민관련사진보기


정치인들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원택·문대림·윤준병·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민주당 의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등이 참석했다.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인 이원택 의원은 "경찰은 농민들의 평화 행진을 보장해야 한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직권남용, 직무 유기, 불법 행동 등이 있으면 두고두고 국회의원들이 따져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외에도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이 참석해 힘을 보탰다.

전봉준 투쟁단은 이날 오후 3시께 결의대회를 마치고 트랙터 행진을 벌이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집회 참석자들은 오후 6시 30분 현재까지 남태령고개에서 멈춘 채 릴레이 발언을 진행 중이다. 경찰은 이날 오후 6시경 인근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던 극우 세력과 전봉준 투쟁단 사이에 대형 경찰 버스를 배치해 두 집단을 완전히 분리했다.

경찰에 막힌 전봉준투쟁단 트랙터전봉준투쟁단 주최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리는 '윤석열 즉각파면과 내란세력 청산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하려는 트랙터들이 경찰에 의해 서울시내 진입이 막힌 채 주차되어 있다. ⓒ 이정민

“고위공직자도 헌법과 법률을 안 지키는 데 국민에게는 지키라고 할 수 있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상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 것을 놓고 시민들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탄핵소추 사유 중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불임명)’에 대해 헌재가 다수 의견으로 “위헌·위법하지만 파면 사유는 아니다”라고 결정한 것 등을 놓고 “헌법을 어겨도 적당히만 어기는 건 괜찮다는 얘기냐” 등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24일 헌재의 한 권한대행 탄핵심판 기각 결정 이후 일부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헌재 결정을 지켜본 직장인 윤경인씨(42)는 “헌법을 어겼다는 결정이 나온 것 같은데 파면 등 그 죄는 묻지 않겠다는 이상한 결정으로 보였다”면서 “고위공직자도 헌법과 법률을 안 지키는 데 국민에게는 지키라고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도 “오늘 내 업무를 부작위해도 해고 사유는 안 되는 거 맞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란 얘기냐” 등 조롱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이 같은 반응이 나온 데에는 전날 헌재 결정이 헌법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봐도 석연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전날 결정에서 재판관 8인 중 4인(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이 한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사유 중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에 대해 “헌법 66조, 111조 및 국가공무원법 56조 등을 위반했다”면서도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한 권한대행이 국회 선출 몫 재판관 3인의 임명을 거부한 것이 헌재를 무력화시킬 정도의 목적이나 의사는 없었다고 본 것이다.

 

역시 기각 의견을 낸 김복형 재판관은 “위헌·위법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아예 각하 의견을 내면서 이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정계선 재판관만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내고 재판관 불임명이 파면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앞서 헌재는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 이후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아 조한창·정계선 재판관만 임명하고 마은혁 후보자는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한 권한대행 탄핵심판에서는 위헌이라고 보면서도 그 중대성에 대해서는 심각하지 않다고 본 것이라 ‘자기 모순’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헌재의 이 같은 결론은 한 권한대행이 향후에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등을 하지 않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이지만 파면까지 될 위중한 사안은 아니니까 임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 권한대행은 야당의 마 후보자 임명 촉구에도 이날까지 명확한 임명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업무를 하고 있다. 헌 권한대행은 이날 치안관계장관회의에서 “헌재 결정이 어떤 결과로 귀결되더라도 우리 사회가 분열과 대립을 넘어 하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 만들어진 ‘헌법 위반의 중대성’ 기준을 너무 높게 해석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반 공무원은 업무 수행 때 조금만 잘못해도 징계 대상이 되는 것과 달리 고위 공직자에 대해선 국정 안정 등의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관대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경향 김정화 기자 >

 

 

25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가 불타고 있다. 연합

 

경북 의성 산불이 거세게 번지면서 경북도가 주민대피를 위한 행정명령을 내리고, 경북 안동과 청송에도 주민대피명령이 내려졌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25일 오후 6시께 ‘주민보호 비상대응 총력행정체계 특별지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지사는 “현재 초속 20m 이상 초대형 강풍이 지속하며 산불이 크게 번지고 있다. 각 시·군에서는 주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행정력을 가동해 주시기 바란다”며 “특히 안동시 일직면·남후면·수상동·수하동·풍천면, 예천군 호명읍, 청송군 파천면·청송읍, 진보면 주민 등을 대피시켜 주시기 바란다. (지금부터) 주민 보호 총력 행정 체계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정명령 발령은 주민대피 안내 과정에서 강제성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다.

 

안동시는 이날 오후 5시3분 재난문자를 보내 “산불이 우리 시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으니 전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이들은 앞서 이날 오후 4시57분 하회마을이 있는 풍천면 하회리 주민들에게도 재난문자를 보내 광덕리 저우리마을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안동시 풍천면에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있어 당국은 더욱 긴장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산불은 하회마을과 직선거리로 10㎞가량 떨어진 곳까지 번졌다.

 

청송군도 이날 오후 5시44분 재난문자를 보내 “전 군민은 산불과 멀리 떨어져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란다”고 대피명령을 내렸다.  < 김규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