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선비의 지조가 그립다

● 칼럼 2014. 10. 21. 15:50 Posted by SisaHan
“지난번에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는 했어도, 한순간 꿈처럼 짧아서 의견을 깊이 물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1559년 1월 58살의 퇴계 이황이 32살의 고봉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조선 지성사의 최대 사건으로 불리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의 시작이었다.
 
사단칠정 논쟁은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성리학의 종장인 퇴계가 26살 연하의 신참 유학자 고봉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의견을 구했다는 것도 유례가 없었고, 영남과 호남을 편지로 넘나들며 논쟁이 8년이나 지속됐다는 점에서도 유례가 없었다. 사단(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라는 마음과 칠정(희·로·애·구·애·오·욕)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성리학의 인간관으로 보면, 우리 본성은 본디 선하지만 그것이 욕망으로 분출될 때 세상사의 탁한 기운과 섞여 본래의 선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어떻게 하면 이 욕망을 다스려 본성의 인의예지를 바르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두 사람의 근본 관심사였다.
지난달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언들이 우리의 역사의식을 흔들었다. 이 이사장은 친조부 이명세의 친일 행위를 변호하는 중에 “할아버지는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며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보면 이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는 천황을 떠받드는 황도유학을 주창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찬양했다. 일제 말기 징병제를 환영하기도 했다. 이명세의 친일은 타협이 아니라 명백한 부역이다. 매국행위와 다를 바 없다. 더 곱씹어볼 것은 조부의 친일 행위가 ‘유학의 세’를 늘리려는 것이었다고 변명한 대목이다. 유학의 세를 늘릴 수만 있다면 일제에 충성하는 것도 괜찮다는 뜻일 터인데, 아무리 봐도 이것은 유학의 정신에 맞지 않는 말이다.
유학의 정신, 다시 말해 선비정신이란 게 뭔가. 인의예지, 더 줄이면 인과 의를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사단칠정을 놓고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것은 세상의 더러움에 휘말려 인과 의,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뜻이었다. 
독립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죽인 일제에 빌붙어 유학의 세를 키우려 했다니, 유학의 속을 파내버리고 껍데기를 키우겠다는 얘기다. 자가당착이고 언어도단이다. 유학자의 지조로 일제에 항거한 동농 김가진, 심산 김창숙 같은 분들을 농락하는 말이다. 이 뒤틀린 사고가 보여주는 건 ‘유학의 세’를 명분으로 삼아 자기 자신의 세를 키우겠다는 권세욕 아니겠는가. 퇴계가 “인욕(人慾)을 천리(天理)로 잘못 아는 병통”을 경계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사로운 욕망을 하늘의 뜻인 양 윤색하는 것이야말로 유학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이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경련 강연에서는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소련의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까지 했다. 한민족 절대다수의 염원이 한순간에 스탈린의 하명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브레이크 없는 망언의 폭주다. 친일 청산이 소련의 지령이면 스탈린과 손잡고 일제와 싸운 미국의 루스벨트도 소련의 지령을 받은 것인가. 광복군도 소련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것인가. 집안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당치도 않은 말을 끌어다 대는 것은 조상을 두 번 치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이다. 
퇴계는 고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참된 강직함과 진실한 용기는 기세를 높여 억지를 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의(義)를 들으면 바로 따르는 데 있습니다.” 선비의 지조가 그리운 시절이다. 
< 고명섭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칼럼] 이상한 북한이상설

● 칼럼 2014. 10. 21. 15:47 Posted by SisaHan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사라지면, 찌라시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지 40여일 동안 ‘김정은 이상설’을 실어 나르는 찌라시가 넘쳐났다.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에 김정은이 불참한 것을 ‘권력이상설’의 근거로 드는 전문가도 있었다. 과연 근거가 있을까? 지금까지 최고지도자는 반드시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진 않았다. 김정일의 경우, 불참한 적이 적지 않다. 참석을 권력 행사로 보고, 불참을 권력 이상의 근거로 보는 시각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북한 붕괴론을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권력 이상을 추측한다. 그러나 북한 정보에 대한 판단은 그 정도로 허접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의 공식 매체에 대한 징후적 독해, 주변국과의 정보 공유, 그리고 기술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이상 징후가 없다’고 판단한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궤변을 말하는 시대가 왔다. 예를 들어 인천에 온 북한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그럴 경우 한국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면 김정은이 남쪽 대표를 만나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 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그리고 당 고위직이 함께 북한을 방문하면, 김정은 면담이 100% 가능하다. 장담한다. 다만 우리 정부가 그럴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현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김정은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평양 북방 모처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왜 저 말은 믿지 않는가? 김정은 제1비서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북한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방송을 내보낸 바 있다. 그래서 다리 수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개인숭배 체제에서 지도자가 목발을 짚고, 혹은 깁스를 한 채로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임에도 그는 나타났다. 그는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권력 공백으로 이어질 정도의 건강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찌라시가 난무할 때마다, ‘접촉 제로’인 남북관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얼마 전 평양에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평양에 주재하는 중국의 신화통신과 일본의 교도통신은 곧바로 ‘평온한 평양 시내의 일상’을 전했다. 우리는 현재 평양에 통신사도, 정부 관계자도, 기업인도, 하물며, 인도적 지원단체도 없다. 평양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 수 있을 만한 아무런 접촉이 없는 현실,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북한 이상설은 또한 무능한 대북정책의 핑계이다. 삐라 문제를 보자. 올해 2월 남북 고위급 회담의 핵심 합의가 바로 ‘비방 중상 금지’다. 그러나 보수단체가 백령도에서 삐라를 날리면서, 남북관계는 대결 국면으로 전환했다. 북한은 최근에도 삐라를 살포하면, 군사적으로 공격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이 아니라, 예고된 충돌이다. 총질을 한 북한이 이상하다고 말하기 전에, 뻔히 그럴 줄 알면서 삐라를 보내는 것이 정상인가? 전쟁을 각오하고, 심리전을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을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부는 말한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이버 망명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그런 말은 또 얼마나 낯부끄러운가?
 
남북관계는 상호관계다. 거울 앞에 서 보면,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다. 웃어봐라. 그러면 거울 속 사람도 웃는다. 주먹을 들면 마찬가지로 그도 따라한다. 거울 앞에서 주먹을 들고, 욕을 하면서, 왜 거울 속의 사람이 웃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당신, 그러는 당신이 참으로 이상할 뿐이다. 
<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에볼라 불안 증폭, 각국 방역 비상

● WORLD 2014. 10. 21. 15:33 Posted by SisaHan

미, ‘완벽장비’불구‥ 자국내 감염 2번째 확진

에볼라 공포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세계로 번지면서,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보건당국이 바짝 긴장하며 검역과 질병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2일 댈러스에 있는 텍사스건강장로병원의 간호사 한 명이 에볼라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여성 간호사는 미국 내 두 번째 에볼라 환자이자 서아프리카가 아닌 미국 본토에서 에볼라에 전염된 첫 번째 사례다. 이 간호사는 지난 8일 사망한 미국 내 첫 에볼라 감염자 토머스 에릭 던컨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에볼라에 감염됐으며, 10일 밤부터 미열 증상을 보여 곧바로 격리조치됐다. 이로써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톰 프리든 CDC 소장은 회견에서 “해당 여성 간호사가 치료 과정에서 던컨과 여러 차례에 걸쳐 광범위하게 접촉했다”면서 “던컨 치료 과정에서는 가운과 장갑, 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완벽하게 갖춰 입었다”고 설명.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CDC와 텍사스 보건당국은 현재 던컨 치료에 관여한 텍사스건강장로병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에볼라 감염 여부를 정밀 조사중이다. 이런 가운데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인근의 브레인트리 소재 병원에서도 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온 에볼라 의심 환자가 발생해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스턴글로브가 12일 보도, 에볼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아프리카 밖에서 에볼라 전염자가 발생한 나라는 스페인에 이어 미국이 두 번째다.
미국 뉴욕의 JFK국제공항은 11일부터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들어오는 승객들의 체온을 재고 문진하는 입국검사를 시작했다. 미국 보건기관이 자국에 들어오는 승객을 대상으로 체온을 재는 입국검사를 시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오는 16일부터는 워싱턴, 시카고, 애틀랜타, 뉴어크 등 다른 대도시 국제공항으로 입국검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영국도 이번주부터 런던 히스로 공항과 개트윅 공항, 유로스타 고속철도 터미널 등에서 승객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페루와 우루과이도 에볼라 감염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항 입국검사를 하기로 했다.
올해 초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감염자가 처음 확인된 에볼라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는 여행 경로를 따라 확산되고 있다. 현재 유럽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4개 대륙에서 감염 확인 또는 의심 사례가 나온 상태다. 10일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8일까지 에볼라로 7개국에서 8399명이 감염돼 4033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유엔 에볼라 대책 조정관인 데이비드 나바로는 이날 유엔 총회에서, 에볼라 감염자가 3~4주마다 2배씩 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촉구했다.
 
유럽에선 환자를 돌보던 스페인 간호사 테레사 로메로의 감염이 확인된 뒤, 10일에는 그를 돌보던 간호사 3명까지 감염 의심환자로 추가됐다. 스페인 보건당국은 “테레사 로메로의 남편, 의사 5명과 간호사 5명을 포함해 추가 의심환자는 모두 16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에볼라 위기에 대응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에볼라 방역과 치료, 백신 개발 등을 위한 국제사회의 재정적 뒷받침도 구체화하고 있다.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는 에볼라 확산 억제를 위한 응급재원 4억달러(약 4280억원)를 조성하기로 했다.
< 조일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