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한인 정치인 ‘연목구어’

● 칼럼 2014. 8. 18. 16:25 Posted by SisaHan
캐나다는 한인 동포들에게 정치 불모지나 다름없다. 지방정부에 시의원과 주의원이 한둘 이름을 올렸을 뿐 중앙정계에는 총리 지명으로 상원의원이 된 연마 마틴(Yonah Martin: 김연아) 의원을 제외하면 선출직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 인구가 많은 중국계는 물론 인도계, 베트남계도 연방의회와 정부에 진출했는데, 20만명을 헤아리게 된 한국계는 전혀 제 몫을 찾아먹지도, 다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모국의 국력이나, 이민 50년의 역사를 보나, 만만찮은 한국인들의 저력에 비춰보아도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여러 요인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정치에 무관심하고, 참여 자체를 멀리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 정확할 것 같다. 모국의 정치 동향은 일개 국회의원의 움직임까지도 일거수 일투족을 국내 있는 것 못지않게 꿰고 있으면서, 정작 살고있고 시민권도 가진 캐나다 정치에는 문외한인데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 현실 그대로다.
 
토론토 윌로데일에서 연방 하원의원 선거 자유당 후보경선에 나선 소니 조(Sonny Cho: 조성용) 씨는 요즘 경선투표에 참여할 한인 유권자 모집으로 날을 지샌다. 매일 모임이란 모임은 빠짐없이 쫓아가고, 단체 마다 찾아다니기에 발이 부르틀 지경이다. 기독교인이기도 한 그는 일요일에는 교회를 돌며 예배를 드리고 지역구내에 사는 성도들을 찾아내 입당원서를 내밀며 서명을 구걸하다시피 한다. 
9월말로 예상되는 경선을 앞두고 조 후보가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최소 2천명이 넘는 당원이 확보돼야 한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입당원서는 1천5백여장이다. 토론토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노스욕의 중심지에서 2천명의 도움을 받기도 벅찬 상황인 것이다. 그의 체험담으로는 10명 중 1~2명이 눈길을 줄 정도라고 했다. 입당원서를 받기 위해 대형 한인식품점 앞에서 캠페인을 벌였더니 슬슬 피하고 멀리 돌아서 다니더라는 얘기도 털어놓았다. 대부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태도라고 쓴 웃음을 짓는다.
 
많은 한인들이 “우리 정치인 한 사람 정도는 만들어야 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을 만들기 위한’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는 일은 꺼리고, 반면 정치인은 배출되기를 원하니, 결국은 내가 아닌 ‘남의 손으로’ 만들어지기만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풀기“요,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한다는 뜻)에 다름아닌 것이다. 따져보면 연아 마틴 의원이 그런 사례일 수 있겠으나, 과연 제2 제3의 연아 마틴이 언제 나올 수 있을까. 그런 기대조차 결국은 평소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요 선결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연아 마틴은 일찌감치 훈련된 시민활동가요 정치인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최근 한 동포 회계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고 공개적으로 떠들 일도 아니라는 전제하에, “심각한 불황에 처해있는 요즘 한인사회 상황은 1년에 1백개 정도의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 놀라운 쇠락지경”이라는 것이다. 부침이야 있을 수 있고 사업부진에 폐업소식도 듣긴 하지만, 1년에 1백개 안팎이라면 매월 10군데 가까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다.
 
마땅한 사업대안도 찾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 설상가상 한인 이민과 유학생이 급감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들을 한다. 한인 유입이 급격 줄어든 것은 바로 보수당 정부의 이민정책이 바뀐 때문이다. 연간 이민자 수는 큰 변동이 없는데 왜 한인 이민자에 대한 문턱은 높아졌을까. 자유당 연방의원에 도전하는 소니 조 후보는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유당의 이민정책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인들의 정책이 곧바로 우리 생활에 직결되는데, 그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적은 그간의 ‘업보’가 그대로 되돌아 오는 것을 깨달아 적극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캐나다인 평균을 보아도 선거참여율이 그다지 높지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를 논하기에 앞서 이민자들의 처지는 다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수 캐나다인들이야 소소한 정책변화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생활에 영향이나 불편 역시 소소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기반이 취약한 마이너리티인 소수민족 이민 커뮤니티는 하찮은 정책변화에도 생계까지 위협받을 수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 입장을 잘 알고, 대변하고, 방호하고, 나아가 정책을 입안할 우리 정치인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정치에 눈곱만큼 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정치인을 우리 손으로 만드는 일이 비록 서먹하고 귀찮아도 발을 벗고 나서야하는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야스쿠니와 세월호 특별법

● 칼럼 2014. 8. 18. 16:21 Posted by SisaHan
8월9일 도쿄에서 야스쿠니 반대 동아시아 촛불행동이 열렸다. 2006년 8월15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이후 9년째 지속되고 있는 동아시아 시민연대이다. 일본의 패망을 앞당긴 소련 참전의 날(‘반소 데이’)과 겹쳐 전국의 우익들도 대거결집했고,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의 경찰차량이 이들을 저지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일본의 우익은 왜 야스쿠니 문제만 나오면 반발하는 것일까? 야스쿠니의 어둠에 촛불을 들이대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하지만 진실을 감추고자 하는 것은 단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전쟁 미화 시설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야스쿠니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한국의 국립현충원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처럼 야스쿠니신사도 국가를 위해서 죽은 군인들을 추모하는 시설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일본 학생이 따지기도 한다.
 
먼저, 야스쿠니는 특정 시기 일본 천황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야스쿠니에는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 전후 천황제 탄생을 위해 죽은 군인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희생된 군인들 약 246만명이 합사되어 있다. 정확하게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 천황을 위해서 죽은 군인 및 군속을 위한 시설이다.
둘째, 야스쿠니는 추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추도 시설이라면 유족의 생각이 중요하다. 종교적인 또는 평화적인 이유로 야스쿠니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유족들이 있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는 합사된 246만명은 하나의 신이며, 한번 신으로 등록된 사람은 그 누구도 취소할 수 없다고 한다. 웃지 못할 일은, 죽은 줄 알고 합사했는데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있다. 물론 합사 취소는 안 된다. 한번 신은 영원한 신이다.
 
셋째, 야스쿠니신사의 식민지배는 영원하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한국 및 대만 출신의 군인 및 군속 등 약 5만명이 일본 이름으로 합사돼 있다. 당시 조선인은 일본인으로 죽었기에 일본인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군인 및 군속처럼 원호금 지급을 요구하면, 1952년 이후 조선인의 일본 국적은 취소됐기에 자격이 없다고 한다. 합사는 일본인, 보상은 조선인으로 취급한다.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죽은 영혼에 대한 식민지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스쿠니 문제는 일본인들에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패전한 국가의 병사들은 추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일본의 평화운동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기피하고 방치해왔다. 결국 전쟁에서 죽은 자의 위령 문제는 야스쿠니와 우익의 전유물이 됐다. 냉전 이후 확산된 일본인의 피해의식은 야스쿠니의 전쟁사관과 결합됨으로써 침략전쟁의 희생자들을 미화하고 영웅화하는 정치이데올로기로 재생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제로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서 젊은 군인들의 슬프고 비참한 죽음에 눈떴다. 야스쿠니에서 그들의 죽음이 위로받고 실제 영면하고 있다고 믿게 됐다. 하지만 그들이 왜 죽었고, 누가 죽였는가에 대해서 영화는 일체 말하지 않으며 보는 이들도 이에 눈뜨지 못한다.
 
야스쿠니신사는 가해자가 희생자를 영웅화함으로써 가해의 본질을 숨기는 시설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기쁨으로 인식하게 하고 가해자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하게 하는 연금술 장치이다. 유골이 돌아오지 않아도 야스쿠니에 신이 돼 있어서 내 아들은 개죽음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게 한다. 국가가 만든 모순 덩어리가 역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특별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중요한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우리들의 추모 방식이다. 하지만 올바른 추모를 위해서는 그들이 왜 죽었는가라는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 진상규명 없는 세월호특별법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베트남전쟁 희생자 위령비처럼, 가해자의 진실이 없고 희생자만 미화되는, 우리 안에 또 하나의 야스쿠니 시설을 만드는 법이 될 것이다. 야스쿠니의 어둠에도 세월호 사건의 어둠에도 진실의 촛불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 이영채 - 일본 케이센여학원대학국제사회학과 교수 >


‘28사단 윤아무개 일병 집단폭행 사망 사건’ 자체도 끔찍하지만, 군이 이 사건을 처리한 과정 또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비슷한 사건의 재발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허술한 보고다. 28사단은 윤 일병이 숨진 4월7일 곧바로 3군사령부와 육군본부, 국방부 등에 15쪽 분량의 첫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보고서에는 가래침을 핥게 하는 등의 엽기적인 가혹행위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를 토대로 1쪽짜리 문서를 만들어 8일 아침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상세한 보고를 받지 못해 사건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다면 조사본부가 핵심 내용을 빼고 보고한 게 된다. 이후 자세한 추가 보고가 국방장관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헌병의 조사와 군검찰의 수사도 부실했다. 헌병은 ‘(가해자들이) 입안에 만두를 가득 집어넣고 때렸다’는 진술을 윤 일병 사망 직후 확보했으나 폭행 사실만을 확인하고 ‘미필적 고의’ 등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 군검찰관도 이 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검찰관은 법무 경력이 전혀 없는 초급 장교였다고 한다. 세 차례 진행된 공판도 이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 미리 설정한 결론에 맞춰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재판에서 가해병사(공범) 변호사가 주범(이아무개 병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8일 뒤늦게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죄보다 살인죄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1심 재판장을 대령급에서 장성급으로 높이기로 한 것도 전형적인 뒷북치기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데는 인권 문제에 상투적으로 접근하는 군의 태도가 작용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몇 차례 병영문화 혁신이 추진됐으나 국방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제도로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다. 여러 해 동안 논의됐지만 군의 반대 탓에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국방 옴부즈맨’ 제도 도입은 더 늦출 일이 아니다. 또 군 사법체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군내 형사사건 처리를 일반 검찰과 법원이 맡도록 논의해야 한다. 국방부와 군이 자신의 불편함과 기득권 상실만을 걱정한다면 또다른 윤 일병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