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버지가 있는 마을

● 칼럼 2013. 6. 9. 19:20 Posted by SisaHan
서울 도심부에 있는 작은 마을의 진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이 상영중이다. 어린 소년이 뿌리가 드러난 작은 나무를 도닥거려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남자도 참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적 영역이 가정영역을 압도해 측은지심의 재생산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공공영역이 아버지들을 독점하고 어머니들까지 포섭해, 마침내 개인의 가장 친밀하고 원초적인 호혜공간인 가정영역이 사라지게 되면 그 사회는 망하고 만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 최악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아버지와 절반이 넘는 어머니들이 경제 생산 활동에 참여하며 숨가쁜 일터의 속도에 몸을 맡긴 채 자녀를 시장에 ‘외주’ 주어 키우고 있다. 그나마 바깥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전업주부들도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두고 달리게 되며 직장인들 못지않게 성과와 효율성에 집착하게 되었다. 가정이 남편의 투자와 아내의 정보력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란 친밀한 관계를 키워 가는 곳이기에 아버지가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한들 함께 나누는 시간을 내지 못하면 설 땅을 잃게 된다. 
투자하는 금액에 비례해서 경제적 동맹자로서 예우를 받기는 하겠지만 아내가 만들어낸 친밀한 ‘자궁가족’에 끼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들의 투자 능력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지 않은가? “주말부부가 되려면 3대가 공을 들여야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남편은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기러기 가족’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성공적인 가족인 듯 간주되는 현실이다. 이를 간파한 영리한 남자들은 독신의 삶을 선택하고, 돈 잘 버는 중년의 가장은 가정에서 겉돌다 딸 또래 젊은 여성의 뒤를 밀어주는 원조교제형 연애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버지 표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춤추는 숲>에는 표류하지 않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어린이집 페인트칠을 하고 대안학교를 만드는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아기가 태어날 때 아내와 함께 진통을 겪으며 지켜보았고 아기 기저귀를 채우고 목욕을 시키고 이유식을 먹이며 아이와 깊은 정을 쌓아간 남자들이다. 이들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밀려오는 사랑의 감정을 우주의 축복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아기가 도마뱀처럼 쏜살같이 기어다닐 때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아이가 원숭이처럼 어디건 올라가려고 발버둥칠 때 기어오를 나무가 되어주고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아이보다 더 자랑스러워했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부가 가정의 소비를 줄여가기도 했다.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직장을 옮기거나 동네 안에서 해볼 일거리를 만들어낸 아버지들도 있다. 
이들은 아이들의 주요 놀이터인 동네 숲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공사 현장에 텐트를 치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포클레인과 대치해 싸운다. 어처구니없는 싸움의 와중에 지역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은 부모 중 한명을 구의원에 출마시키기도 한다. 세상일이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러주려고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산에 올라 숲을 지켜달라는 정성스런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노찾사’의 노래와 비틀스의 ‘렛 잇 비’, “냅둬요”를 부르는 100인 합창공연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아이들과 노래하는 유쾌한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남자들을 본 것이다.
 
아버지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아버지들은 더는 사악한 공공영역에 목매지 말고 아이들 편에 서서 선한 공공영역을 만들어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아이는 잉여인간이나 좀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는 ‘폭력이 구조화된 학교’를 바꾸어내기 위해 마을을 ‘발견’할 때가 온 듯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가정과 공공의 경계에서 아버지들이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우선 주민자치회관에서 <춤추는 숲>을 모여 보면 어떨까? 

< 조한혜정 -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


한국현대사학회의 고교용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학회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모임으로 일부는 지난 2008년 전경련 후원으로 대안교과서를 발간한 바 있다. 당시 책자엔 일제 병탄기를 근대화 역량 축적기로 설명하고, 김구 선생을 항일테러리스트로 기술하는가 하면, 이승만과 박정희 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이번 집필자의 성향이 대안교과서 집필자와 다르지 않아 새 교과서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 쪽은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현대사 뒤집기에 총공세를 펴고 있다. 며칠 전 <조선일보> 후원으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이들은 일제히, 그러나 앵무새처럼 다른 교과서의 사실과 다른 ‘좌편향 문제’를 트집잡고 나섰다.
 
현대사학회에는 역사연구보다는 정치적 역사해석에 치중해온 비전공자가 많이 참여한다. 이들의 빗나간 주장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근거가 희박한 주장, 편향된 극소수 정파적 시각을 교과서 내용으로 용인했다면, 국사편찬위의 심의 자세는 비난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검정 교과서의 취지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담는 것은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독재체제 미화, 이를 위한 사실왜곡 등까지 용납할 순 없다. 위원회는 다른 교과서에 대해서는 김활란씨 관련 서술이나 임시정부의 구성 문제에 대해 공지의 사실까지도 수정하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위원회가 관변 학자들의 정치적 도발에 멍석이나 깔아주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교과서 집필자 가운데 한 사람은 기존 교과서에 대해 “보편적 헌법 가치 대신 특정 사상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 친일·반일, 민주·파쇼라는 가공적 대립을 역사관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최고의 헌법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국가가 굳건해야 하는 이유도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국권을 강탈하고 국민을 노예로 삼은 일제의 침략과 약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독재정권에 대해 교과서가 어떻게 기술해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그러나 이들이 요구하는 관점은 엉뚱하게도 긍정적 정체성 심어주기다. 병탄이건 반민주건 긍정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것일까. 역사가 사실과 달리 특정 목적에 따라 기술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술하는 것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그건 역사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국사편찬위는 역사를 관변 학자, 자본과 권력의 시녀 학자가 농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종 심사는 저들 말대로 헌법적 가치가 구현되는 쪽으로 해야 한다. 위원회가 역사왜곡의 들러리가 되지 않길 바란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황교안 법무장관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한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보고하자 공직선거법은 적용하지 말라며 영장 청구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장관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할 권한은 있으나 정식으로 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는 지휘권 발동 여부를 따지기 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장관이 일선 수사팀의 수사 결과와 검찰총장의 견해까지 무시하고 핵심적인 선거법 위반 혐의를 빼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지난 대선의 승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과잉충성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검찰’ 행태 때문에 조직이 사실상 망가졌다가 이제 겨우 명예회복을 시도하려는 차에 법무장관이 외압을 막아주는 방패는커녕 정권 앞잡이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으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법무장관의 이런 ‘외압’은 법적으로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사실상 불법행위다. 만약 검찰 수사에 이견이 있다면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서면으로 지휘권을 발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검찰 인사권 등을 무기로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이는 명백히 직권남용이다. 황 장관은 이것이 검찰조직을 확실하게 망가뜨리는 행동임을 자각하고 억지 논리를 고집하는 일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알려진 원 전 원장의 혐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와 의회정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헌정파괴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과 ‘반값 등록금 허구성 전파 문건’으로 드러난 정치공작에다 심리정보국을 통해 야당 대선후보를 흠집 내는 정치댓글 공작을 벌인 걸 보면, 국가정보원법상의 정치관여죄뿐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해당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세종시와 4대강 홍보 등 그의 ‘지시’ 내용까지 종합해보면 종북세력 색출을 위한 대북 심리전이라는 사건 초기 주장이 새빨간 거짓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황 장관의 배후로 청와대나 여권이 지목되고 있다. 이들의 압력이 없다면 장관이 굳이 검찰총장과 수사검사들의 의견까지 무시하며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직전 이 사건에 대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밝힌 이래, 최근에는 청와대 선임행정관까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니 황 장관의 행동이 박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