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살에 불과한 김장미가 권총을 잡은 지 5년 만에 금빛 표적을 맞혔다. 얼굴을 총에 갖다붙이는 소총 선수로 시작했다가 ‘덧니’ 때문에 자세가 나오지 않아 권총으로 바꾼 김장미는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따냈다. 33살 노장 송대남이 선수 은퇴까지 고민한 방황을 딛고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메쳤다. 81㎏급에서 90㎏급으로 체급을 바꾸는 고통을 참아낸 결실이다.
김장미, 화약 권총 사상 첫 금
결선서 1위 내줬다 극적인 승리
여자사격 올림픽 20년만에 쾌거
“꿈에서도 금메달 따는 생각했다”
■ 김장미
사격대표팀 막내 김장미(부산시청)가 1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그리니치파크 왕립포병대기지 사격장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201.4점을 쏴 본선(591점)과 합쳐 합계 792.4점을 기록하며 한국 선수단에 대회 네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여자 사격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 여갑순,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강초현 이후 세번째이며, 화약 권총에서는 사상 처음이다.
극적인 승부였다. 2위보다 5점이나 앞서며 본선을 1위로 통과한 김장미는 본선 20발 가운데 첫 5발에서 2위와의 격차를 5.2점으로 더욱 벌렸다. 그러나 결선에 3위로 올라온 천잉(중국)이 거세게 추격하며 10발까지 2.7점의 불안한 리드를 지켰고, 마침내 15발 때 0.8점을 뒤지며 역전을 허용했다.
이제 남은 횟수는 5발. 재역전의 희망을 품은 김장미는 18발에서 10.9점 만점을 쏘며 9.3점에 그친 천잉을 다시 앞섰고, 19번째 10.3점, 마지막 20번째 발 10.1점으로 마무리하며 승부를 매조지했다. 천잉은 합계 791.4점으로 김장미한테 1.0점 뒤지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김장미는 “꿈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생각을 했다”며 “본선에서 점수 차가 많이 나서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결선 무대에서 서니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그는 “10m 공기권총에서 결선에 나가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25m 권총에서 더 욕심이 났다”며 “롤 모델인 진종오 오빠처럼 올림픽 2연패도 가능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장미는 2010년 유스올림픽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따내 가능성을 알렸고 올해 1월 성인 국제무대 데뷔전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0m 공기권총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어 지난 4월 프레올림픽으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런던월드컵사격대회 이 종목에서 796.9점으로 7년 만에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상에 올랐다.
김장미는 이날 본선에서 올림픽 신기록인 591점으로 본선 상위 8명이 겨루는 결선에 1위로 진출하는 겁없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송대남, 유도 22년만에 기쁨
강한 경쟁자 탓 올림픽 첫 출전
세계12위 누구도 우승 예상못해
결승 연장 11초 ‘벼락같은 우승’
■ 송대남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경기 도중 퇴장을 당한 정훈 감독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송대남(남양주시청)이 이날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90㎏급 결승에서 쿠바의 아슬레이 곤살레스를 누르고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장 시작 11초 만에 절반을 따내면서 ‘골든 스코어’로 우승을 결정지었다. 서른셋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올림픽에 출전한 세계랭킹 15위인 그가 금메달을 따내리라고 점친 이는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도를 시작한 지 22년 만에 꿈을 이룬 ‘인간승리’였다. 81㎏ 세계랭킹 1위였던 송대남은 2006년 한국마사회(KRA)컵 국제오픈유도대회 남자 81㎏급 금메달, 2009년 파리그랜드슬램유도대회 남자 81㎏급 우승 등 승승장구했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권영우에게 밀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체급을 바꾸고 올라온 김재범한테 밀려 출전권을 잃었다. ‘복병’ 김재범이 등장한 뒤로 줄곧 2인자였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뒤 큰 충격을 받아 6개월간 매트를 떠나 은퇴를 결심할 정도로 방황했다. “은퇴를 결심하고 도복을 입지 않았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무릎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고 싶은 욕망이 그를 일으켜세웠다. 2009년 1월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올림픽을 위해 서른두살인 지난해에 체급을 90㎏으로 바꾸는 모험을 강행했다. 1년 동안 하루 5끼, 보통 운동선수의 4배인 2만㎉를 먹으며 체중을 불렸다. 한끼에 스테이크만 13장을 먹은 날도 있다. 모두 근육으로 만들려고 체중이 하루에 3~4㎏이 빠질 정도로 운동했다. 그는 “너무 힘들었지만 올림픽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 김지연
여자 펜싱의 ‘숨은 진주’ 김지연(24·익산시청)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지연은 2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를 15-9로 꺾고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로써 김지연은 한국 여자 펜싱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현희(31·성남시청)에 이어 두번째 메달을 획득했다. 김지연은 또 한국 남녀 선수를 통틀어 사브르 종목에서도 처음 나온 메달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업적을 이뤘다.
김지연은 이날 경기 시작 4초 만에 첫 포인트를 내줬지만 이후 13초 동안 4점을 연달아 뽑으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6-5로 쫓긴 상황에서도 거침없는 콩트라타크(역습)를 시도하며 10-5까지 달아났다. 김지연은 11-9로 쫓긴 2세트 20초부터 6초 동안 연달아 콩트라타크와 콩트르 파라드(막고 찌르기)로 3점을 올리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김지연은 14-9에서 벨리카야와 한 차례 동시 포인트를 주고받은 뒤 2세트 28초에 번개같은 역습 공격으로 몸통을 찔러 15점째를 얻으며 금빛 환호성을 질렀다.
최대 고비는 올해 2전 전패로 밀리던 세계랭킹 1위 마리엘 자구니스(미국)와의 준결승이었다. 김지연은 경기 초반 상대에게 연거푸 실점하며 5-12, 7점 차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10점을 따고 상대 실점을 1점으로 막는 기적같은 역전극을 펼치며 15-13으로 이겨 결승에 올랐다.
김지연은 경기 뒤 “국제대회 첫 우승이 올림픽 금메달이 됐다”며 “로또 맞은 기분이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준결승에서 크게 뒤지고 있을 때 “3-4위전으로 밀리기 싫다는 생각으로 ‘제발 이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점수를 따라붙고 나니 ‘상대가 말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남자 에페 개인전에 출전한 정진선(28·화성시청)은 3-4위전에서 세스 켈시(미국)를 12-11로 물리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진선은 이로써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상기에 이어 12년 만에 남자 에페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선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