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차녀 조현민씨의 ‘물컵 투척’ 사건이 세간에 불거진 지난달 13일 이후 한달 동안 쏟아진 회장 일가의 비리 행태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업무방해, 폭행, 밀수,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에 필리핀인 가사도우미를 불법 채용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검찰과 경찰, 관세청, 국세청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까지 조사에 나선 배경이다. 회사 직원들까지 총수 일가 퇴진 운동에 나섬에 따라 조 회장은 리더십을 상실한 지경에 빠졌다. 조 회장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정부 당국의 전방위적인 조사 못지않게 조 회장 일가 쪽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내부 직원들의 공공연한 반발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지난 4일 1차에 이어 12일 저녁 2차 촛불집회를 열었다. 주말이고 궂은 날씨였음에도 300명 넘게 모여 총수 일가 퇴진을 촉구했다. 대한항공은 물론, 진에어와 한국공항, 인하대 등 한진그룹 여타 계열사 직원들도 가세해 외연은 더 넓어졌다.
외부 시민들의 호응이 커짐에 따라 직원들은 3·4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기업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왕의 행적만큼이나 경악스러운 것은 불거진 사태에 대한 조 회장 일가의 느슨한 인식과 태도이다. 조 회장은 지난 10일 한진 계열 중 가장 작은 덩치의 진에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나마도 사내이사직은 계속 유지하기로 해 ‘꼼수 사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한진그룹을 통해 내놓은 ‘대리 사과’도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영상으로 확인된 일부 폭행 사실만 인정했을 뿐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대한항공은 직원들의 땀과 정부 지원, 국민 성원 덕분에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했다. 조 회장 일가는 여러 이해당사자들 중 한 축(주주)의 일부일 뿐이다.
대한항공의 기업가치가 더 추락하기 전에 조 회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가가 모두 물러나고 독립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쇄신을 맡겨야 한다. 꼼수 사퇴로 당장의 난관을 피해 가려는 얄팍한 주판알 튀기기 식 태도 또한 버리는 게 더 큰 곤경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2선으로 잠시 후퇴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잠잠해진 여론을 틈타 다시 복귀하는 일은 선대 조중훈 회장 시절의 구태로 그쳐야 한다.


계약서의 중요성 - 2

협상 해결 드물고 소송 중재는 비용 막대‥ 철저 계약 최선

지난 컬럼에서는 계약서의 의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전에 계약서를 치밀하게 작성하여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고, 피치 못할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최대한 방어할 수 있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당부를 드렸습니다. 이제,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대로 ‘계약 불이행 또는 조항해석의 이견에 대한 해결방법’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일 예로, 한 회사가 특정 모양으로 된 젤리(Jelly)를 생산하도록 외주를 주었는데, 제품을 납품 받은 후에 몇 일이 지나면 그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주 회사에 수차례에 걸쳐 시정을 요구했지만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결국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발주회사는 제품의 모양이 변형되는 것이 계약 불이행 또는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외주회사는 처음부터 발주회사로부터 제공받은 제조방법(Recipe)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취할 수 있는 해결방법으로, 가장 먼저 협상 (negotiation)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양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원만한 피해보상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협상은 이해 당사자가 직접 하는 경우도 있고, 변호사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법적인 분쟁에서 자기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원만한 선에서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협상을 통해 분쟁이 해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소송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즉 상대방의 의중과 전략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협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분쟁의 경우에도 결국 협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소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번째 해결방법은 소송(litigation)입니다. 소송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상대방을 대상으로 법원에 구속력 있는 해결을 요청하는 것 입니다. 소송의 잇점은 자료 제출 (document production) 및 증인 신문 (examination for discovery) 등의 절차를 통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자료를 수집해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리한 증거를 소유하고 있는 상대방을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소송의 경우 법원의 일정과 상대방의 지연 전략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소송과 비슷하나 전혀 다른 세 번째 방법은 중재(arbitration)입니다. 중재는 계약서상에 양당사자가 이미 모든 분쟁을 중재로 합의할 것임을 명시한 경우에 가능합니다. 소송과 달리 중재는 시작부터 양당사자가 합의를 통해 진행 절차 (timetable)를 정하기 때문에 중재의 시작과 끝이 꽤 명확하고 지연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소송과 달리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다만, 중재인 (arbitrator)이 판사가 아니고 해당 분야의 정통한 변호사이기 때문에 판사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편견없는 공평성은 다소 부족 할 수 있고, 중재판결에 불복하여 법원에 항소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소송을 두번하는 것과 같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계약 불이행 또는 해석의 이견으로 인해 발생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이상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차들을 통해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통상 손해배상, 가처분, 또는 계약 이행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협상을 제외하고, 소송이나 중재의 경우에는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함께 시간도 길게는 수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는 물론 일상 생활에도 적지 않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아무리 이전에 좋은 관계였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를 쉽게 깨뜨릴 수 있는 것이 법적인 분쟁입니다. 그래서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대부분 ‘협상’을 시도하지만, 실제로 분쟁이 협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당부를 드린바와 같이, 처음부터 계약서를 작성할 때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잘 검토하며 작성하시어 법적인 분쟁의 발생과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박영신 변호사 - Marrianne Y. Pak 법률 사무소 >
문의: 647-216-3042


북, 고위급회담 연기 이어 남쪽 취재진만 방북 불허
남쪽에 대한 불만에 ‘북-미 정상회담 집중’ 작용한 듯
정부, 6·15공동행사 계기 남북관계 재진전 궁리 중

남북관계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 고위급 상호 방문을 밑돌 삼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까지 급가속 페달을 밟아온 남북관계가 ‘노란 신호등’에 걸려 급정지한 형국이다. 짧게 잡더라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기의 정상회담 때까지는 남북관계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기 어려우리라는 우려가 많다.

북쪽은 16일로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을 당일 새벽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한 데 이어, 22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북부핵시험장 폐기 행사’를 현장 취재할 남쪽 취재진한테 끝내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북쪽은 애초 풍계리 행사에 초청하겠다고 밝힌 한국·미국·중국·영국·러시아 5개국(12일 외무성 공보) 가운데 남쪽 취재진만 부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고위급회담 연기를 통보하며 밝힌 남쪽에 대한 ‘불만’ 표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북쪽 회담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16일 <조선중앙통신>(중통) 인터뷰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 난동”을 회담 연기의 이유로 제시했다. 앞쪽은 한-미 연합 ‘맥스선더’ 훈련을, 뒤쪽은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14일 국회에서 ‘반(反) 김정은’ 강연을 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리 위원장은 17일에도 <중통>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무지무능한 집단”이라고 이례적으로 강도높게 비난하고는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일엔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대변인이 <중통>과 인터뷰에서 2016년 4월 남쪽에 온 중국 닝보의 북한식당인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송환과 ‘책임자 처벌’을 공개 요구했다. 이쯤 되면 파상 공세에 가깝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남북의 정상이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 나가겠다”고 공언한 ‘4·27 판문점 선언’ 채택 직후인 만큼 정부가 역지사지하는 태도로 사려깊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 사정에 밝은 여러 전문가들은 북쪽의 고위급회담 연기 통보 직후 나온 ‘통일부 대변인 성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북쪽의 태도가 판문점 선언의 근본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유감’을 표하고 회담에 나오라고 ‘촉구’한 게 핵심 내용인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남북 상호 공방을 연상시키는 관성적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역지사지의 성찰이 필요한 때에 북쪽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반응이 불을 지른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정부 안에서도 ‘유감’이라는 표현을 쓸지를 두고 고민이 있었는데 우리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나름의 고충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최근의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22일 남쪽 취재진의 풍계리 방문 무산과 관련한 공식 반응을 따로 내지 않았다. 대신 ‘통일부 장관’ 명의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주목하며, 북한의 이번 조처가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위급회담 무산 때와 달리 공방을 피하려는 태도가 눈에 띈다.

다른 한편, 북쪽의 남북관계 ‘중지’ 조처엔 남쪽에 대한 불만 표시 말고도 임박한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해야 할 내부 사정이 작용했으리라는 분석도 많다.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 체제’의 명운이 걸린 역사적 승부처인데다 남북관계의 실무 총책임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대미·대중 외교의 전면에도 나선 터라 남북관계에서 가속 페달을 밟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6·15 공동선언 17돌을, 멈춰선 남북관계 전진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6·15 남북공동행사’를 위한 협의를 북쪽과 해야 한다”며 “6·15 공동행사를 잘 치르면 상황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한-미 외교장관 16일 전화통화
외교부 “오전 미쪽 요청으로”
고위갑회담 연기 등 의견교환
한 “판문점 선언 충실히 이행”

북쪽의 갑작스러운 16일 남북고위급회담 ‘중지’(연기) 통보에 한-미 외교장관이 전화통화를 하고 회담 연기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6일 오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요청으로 동인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남북고위급회담 연기 통보문제 등 상호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16일 밝혔다. 외교당국이 양자 관계에서 고위급 간 전화통화가 어느쪽의 요청으로 이뤄졌는지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부는 강 장관이 북쪽의 회담 연기 통보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에게 “우리 정부는 ‘판문점 선언’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북측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조속히 회담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우리 쪽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에 강 장관의 설명에 사의를 표하고 “미측으로서는 금번 북측의 조치에 유의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이)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룰 수 있도록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두 장관은 또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강 장관은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연 바 있다.

<김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