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목적에 합당한 사명 감당”

● 교회소식 2014. 5. 10. 13: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유상범 감리사(오른쪽)와 취임 문답하는 김주엽 목사.

강림교회, 김주엽 담임목사 취임예배 드려

토론토 강림교회(53 Madawaska Ave., North York, M2N 2R2)는 5월4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 김주엽 담임목사 취임 예식을 거행했다. 
김주엽 목사 인도로 드린 예배는 온 성도가 새 담임목사로 취임한 김 목사를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일꾼이 되도록 은총을 베풀어달라’는 중보기도와 서정순 장로의 회중기도에 이어 진행됐다.
 
유상범 감리사(엠마오감리교회 담임목사)가 집례한 취임예식은 박정민 권사의 담임목사 학경력 소개에 이어 유 감리사가 김주엽 목사에 대해 취임 문답하고 교우들을 대상으로 문답하여 서로 섬기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다짐으로 마쳤다. 
취임식에 이어 박선주 집사와 설욱 청년 및 성도들이 차례로 성경 이사야서 43장 1~7절과 누가복음 15장 11~24절, 요한복음 15장 1~14절을 봉독하고, 성가대가 특별찬양을 한 뒤 나구용 목사가 성구를 바탕으로 ‘인생의 목적’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강림교회를 향한 목적이 있으셔서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신앙으로 무장한 김주엽 목사를 담임으로 세우셨다”고 축하한 나 목사는 시편 97편을 인용,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실 목적으로 창조하셨다”면서 하나님 뜻에 맞게 밝고 기쁘게 살아 복을 받으라고 전했다. 이어 “복받는 자는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죄를 깨달아 회개하며, 이웃을 위해 살게 된다”고 강조, “모든 성도가 이같은 사랑의 열매로 30배 60배 결실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한편 강림교회에서는 캐나다지방 춘계 저녁집회가 5월14일(수) 오후 7시30분 정진호 목사(서울 세현성결교회)를 강사로 열리며, 이에 앞서 오전 11시 역시 정 목사가 인도하는 세미나가 ‘나는 제자훈련에 미친 목사이다’는 주제로 진행된다. 
강림교회는 또 브라질 아마존에서 사역중인 김철기 선교사 초청집회를 5월18일 주일 오전 11시와 오후 7시30분에 개최할 예정이다.
 
< 문의: 416-221-7550 >


[기쁨과 소망] 나는 세월호 선장이었다

● 교회소식 2014. 5. 10. 13: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기적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내 몫으로 알고 나를 돌아보며 속죄하자

한 인간이 남에게 상처를 입게 되면 가면을 하나 덮어 쓰게 된다. 이는 상처 입은 나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한 보습을 감춘다. 상처가 깊을 수록 가면은 많아진다. 인간의 사회생활이란 바로 가면무도회이다. 거기서 만나는 이웃은 선한 이웃이 될 수 없다. 무엇인가에 의해 내면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있다. 이처럼 많은 인간이 가면을 쓰고 자유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가면이 벗겨지는 때가 있다. 세월호 선장처럼 위기를 만나면 ‘원래의 나’로 돌아간다. 알고보면 선장 역시 상처입은 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려 함이 아니라, 상처는 중독성이 강해 스스로 벗지 못함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만나면 우리가 쓴 가면을 스스로 벗게 된다. 그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바로 어머니의 품이다. 그곳엔 예수님의 마음인 ‘긍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사람은 자기를 받아주는 따뜻한 사람을 찾는다. 주님은 친구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주님께 데려왔을 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다. 그토록 고민하며 해결할 수 없던 문제가 주님 안에서 풀리자 그는 침상을 들고 걸어 갔다. 인간이 쓴 위선과 죄악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이는 직업적인 종교인인 제사장이나 레위인 속에는 없었다. 참된 이웃인 선한 사마리아인 속에 있었다. 결국 긍휼이 없는 자는 자신도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되지만, 긍휼히 여기는 자는 심판을 이기고 공동체를 구하게 된다.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아이들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죽었다. 세상은 배에 남아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고 달아난 선장을 정죄하고, 늦장 대처한 해경을 비난하며, 관련된 관원에게 책임을 묻는다.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내가 세월호 선장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내가 중1학년 때로 기억한다. 여름방학에 동생들과 함께 시골 할머니댁을 찾았다. 더위에 사촌들과 함께 호수에 물놀이를 나갔다. 여동생이 물장구를 치다가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팔을 다친 상태였고 수영을 배운 적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냥 물에 뛰어 들었다. 내가 동생보다 키가 크므로 동생을 쉽게 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동생이 나를 잡고 늘어지자 우리 둘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이러다간 모두 죽겠구나! 둘 중에 하나만 살 수 있다면, 하나님께 동생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내가 힘을 빼게 되었다. 이런 판단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의지는 내가 먼저 살려고 했다. 당시 나는 ‘살신성인’을 생각할 만큼 성인이 못 되었고, 너그러운 인격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성령님께서 긍휼의 마음을 내게 주신 것을 확신한다. 그러자 동생은 나를 밟고 물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1시간이나 지난 후에 내가. 깨어나 보니 둘 다 물밖에 구조되어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청년이 여동생을 먼저 건졌고, 20분이 지난 후에 하수구로 나가는 통로에 박혀 있는나를 건져 인공호홉을 시켰더니 서서히 깨어났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살다가 위기를 맞은 세월호 승객과 같다. 그때마다 참 좋은 선장을 만나 건짐을 받았기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주님은 선한 선장이시다. 성령님이 내게 그런 마음을 주지 않았더라면 내와 내 가족은 함께 무너졌을 것이다.
 
서로를 불신하고 정죄하는사회는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치유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사랑은 나처럼 되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먼저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검사요 판사이다. 죄인은 없어 보인다. 먼저 나를 돌아보며 속죄하자. 선한 사마리아인 처럼 그것을 자신의 몫으로 알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는 자리로 나아가자. 당신은 언제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가? 누군가가 자신도 다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짐을 내게 떠넘기며 의롭게 살라고 강요당할 때이다. 그들 자신은 십자가로 말미암는 고난을 면하고, 오히려 남의 희생으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상처를 받게 된 것은 외적인 요인도 강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나의 내면에 특정한 자극을 상처로 받아들이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처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나만의 기계장치 시스템을 가졌다.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 주님은 그의 병이 오래된 사람인 줄 아셨다. 그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다. 이는 당연한 질문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오랜 된 병자 중에 상처를 즐기며 병 낫기를 바라지 않는 환자도 있다. 특히 장기 환자인 경우는 상처가 치유되기 보다 상처를 되씹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찾아와도 그것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인간이 치료하기 위해 주신 십자가를 잡기보다 그냥 과거의 삶에 주저앉아 있다. 잘못된 신앙인은 죄책감만 씻고 자신은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다. 죄의 쓴 뿌리는 너무나 깊어 내가 죽을 때만 죄도 죽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이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었다. 나는 세월호 선장이 되어 승객이 물에 빠져 죽는 데 일몫을 했다. 나는 죽지 않고 교회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우리 민족이 치유공동체가 되려면 판단을 중지하고 상처를 품어야한다.우리 모두는 서로 한 몸으로 연결 된 지체이다.

< 박태겸 목사 -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목사 >


어린이 주일인 5월 4일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게임을 즐기는 모습.

5월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정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구나 한국에서 들려오는 안타깝고 슬픈 소식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더 많이 갖게 된다. 만일 침몰된 배 안에 있었던 학생들이 우리들의 자녀였다면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그들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때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쉬움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이 땅에 자녀들을 위해 이민을 온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의 실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침몰되고 있는 배 안에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닐까! 승승장구하며 이민의 어려운 상황의 물결을 잘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풍파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가고 있는 현실은 아닐까!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기만 하고, 빨리 구조원들이 와서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이 주님의 은혜로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14년의 5월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좀 더 굳게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을 해야 할 것이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절박감을 가지고 강하게 전해야 한다. 이제는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언제 우리 자녀들에게 위험의 순간이 다가올지 모른다. 그리고 더 심각하게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아쉬운 결말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소용이 없다. 아쉬움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다.
 
< 토론토 한인장로교회 손명수 담임목사 글 >


[기쁨과 소망] 더 아파해야 합니다

● 교회소식 2014. 5. 5. 18:0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 비극,비정상, 근본적 성찰·변화 이뤄야
생명·진실·정의 되살려 거듭날 기회로

어떤 분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침묵하며 기도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왜 우리가 침묵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지, 무엇을 누가 회개해야 하는지’ 도리어 묻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기독교 핵심 교리를 철저하게 믿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처참한 사고 앞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이렇게 쉽게 말해 버리면,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책임소재를 흐릿하게 만들고, 책임져야 할 악의 대상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고, 더 나아가 진실한 회개와 개혁이 이루어 지지 않게 됩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도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침묵해야 할 때가 아니라 외쳐야 할 때입니다. 이사야처럼 예레미야처럼 민족을 보며 아픈 가슴으로 찢어지는 가슴으로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절대 비극 앞에서 근본적 성찰과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환골탈태의 길로 가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온 국민이 슬픔과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며, 심지어 자발적으로 일어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조차 비기독교적이라고, 사탄적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300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을 당했는데, 고작 며칠 아파해서 되겠습니까? 그냥 300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한 생명, 한 생명인데, 누구의 아들로 누구의 딸로, 누구의 동생으로, 누구의 언니로 살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생명들인데 그들을 위해서 30일, 아니 300일은 못 아파하겠습니까? 그래서 국가의 능률이 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만난 이 비극은 지난 세월 우리가 진실과 정의보다 능률과 속도를 지나치게 숭상한 결과가 아닙니까? 온 나라가 비정상인데 그것을 아파하고 분노하는 것이 왜 비정상입니까? 살짝 아파하고 반창고 하나 붙이고 괜찮다고 넘어가는 것이 비정상이지.’

저는 지난 토요 새벽기도회 때에 ‘믿음의 우정으로 극복한 질투’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이야기하면서, 설교의 마지막에 이 시대에 진정한 우정을 보여준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 때에 제가 교우들에게 소개한 사람은 양온유라는 자매입니다. 온유는 17살짜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온유의 꿈은 다윗처럼 음악치료사가 되는 것입니다. 음악으로 세상과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온유의 꿈입니다. 온유는 꿈만 가진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음악적 재능이 많아서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중학교 때부터는 새벽기도 반주도 하고, 공부도 잘하고, 반장에 학년 대표까지 하는 리더십이 강한 학생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넉넉지 않는 집안 형편 때문에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방과 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온유는 그냥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아니고,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입니다. 그리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서 친구들과 배를 탔는데, 그 배의 이름이 세월호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할 때에 다행스럽게도 온유는 갑판위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유는 끝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온유 양의 아버지 양봉진 씨는 온유가 다른 아이들처럼 선실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해서 죽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양 씨는 지난 20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찾아온 구조된 딸의 친구들을 통해서 뜻밖의 소식을 듣습니다.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온유는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계속 갑판에 남아 있었다면 다른 구조된 학생들처럼 분명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져 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온유는 다시 선실로 내려갔고, 결국 차디찬 시신으로 부모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3일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아버지 양봉진 집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애는 그럴 줄 알았어. 친구들이 배 안에 있는데 그냥 나올 애가 아니어서…” 결국 평소의 모습이 위기 때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설교 시간에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온유의 숭고한 우정을 전하면서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와서 더 이상 설교를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펑펑 울면서 글을 씁니다. 희생자의 가족도 아닌 저도 사고 발생 이주일이 지났는데 수시로 눈물이 나오는데, 하물며 온유 양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온유 양과같이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을 가진 300명의 부모님들의 심정을 어떻겠습니까? 이들의 눈물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쉽게 잊어서도 안 되고, 쉽게 덮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세월호 사건, 며칠 떠들다가 끝낼 사건이 절대 아닙니다. 단순히 안전사고가 아닙니다. 단순히 정치적인 사건만도 아닙니다. 총체적인 사건입니다. 사회 구조적인 사건입니다. 정신사적 사건입니다. 철저하게 책임을 규명하고 철저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랫동안 깊이 성찰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돈, 돈, 돈’ 하면서, ‘경제, 경제, 경제’ 하면서, ‘빨리, 빨리, 빨리,’ 하면서 희생시킨 ‘생명, 진실, 정의’를 다시 되살리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국민소득만이 아니라 국민정신으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가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먼 훗날 이 사건이 진정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한 사건으로 기록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한국의 역사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지게 하는 역사의 분수령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더 아파해야 합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