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교단 총회‥ KAPC, 내주 토론토서

● 교회소식 2014. 5. 21. 14:5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총대 3백여명 모여 회무처리… KPCA, 13~15일 LA서

미주지역 양대 한인교단인 미주 한인 예수교장로회(KAPC)와 해외한인장로회(KPCA)가 2014년 정기총회 시즌을 맞았다. 특히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는 5월20일(화)부터 23일(금)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38회 총회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해외한인장로회는 5월13일(화) 미국 LA의 훌러톤 장로교회에서 제39회 총회를 개막, 15일(목)까지 열고 있다. 
각 교단 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을 새로 선출하고 목사안수식이나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회무처리와 함께 교단의 발전과 새로운 목회 및 선교전략을 모색한다.
 
정관일 목사 총회장 선출예정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총회장 엄민영 목사)는 20일부터 토론토 에어포트 메리어트 호텔(901 Dixon Rd.,M9W 1J5)에서 3박4일간 미주 각 지역 목회자와 장로 등 총대 3백여 명이 모여 회무를 협의한다. 모처럼 토론토에서 열리는 이번 총회에서는 현 부총회장인 정관일 목사(가든교회 담임)를 새 총회장으로 선출할 예정이다. 총회는 첫날인 20일 오후2시부터 총대 등록을 시작하고 5시부터 저녁식사를 한 후 7시부터 개회예배와 성찬식를 거행한다. 앞서 오전 10시에는 공천부 회의가 먼저 열린다. 신임 총회장 선거 등 새 임원진은 예배 후 개회되는 총회 첫날 회무처리 일정에서 선출된다. 
총회는 둘째날과 셋째날 회무처리와 선교의 밤, 친선사절 인사 및 관광 등을 진행하며, 23일 아침 폐회예배를 드리고 총회를 마치게 된다. 
이번 총회를 앞두고 호스트인 캐나다노회(노회장 최영철 안디옥교회 담임목사)는 직전 노회장 이상일 목사(베리소망교회 담임)를 위원장으로 하는 총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부터 행사준비에 임해왔다.
 
캐나다 동노회 40여명 참석
한편 5월13일 LA 훌러톤장로교회에서 ‘빛의 자녀와 빛의 열매’(엡5:1~14)라는 주제로 개막한 해외한인장로회 총회는 첫날 회무처리에서 총회장에 노진걸 목사(훌러톤장로교회, 서중노회)를 선출하고 부총회장에는 목사 부총회장에 후보로 나선 이승재 목사(은혜교회, 동북노회)와 김종훈 목사(뉴욕예일장로교회, 뉴욕노회) 가운데 투표로, 장로 부총회장에는 단복 입후보한 박순태 장로(얼바인열린교회, 서남노회)를 각각 선출한다. 총회는 이어 23일까지 주요 회무처리와 경건회, 세미나, 선거보고 등 일정을 소화한 후 폐회할 예정이다.
LA 총회에는 캐나다동노회(노회장 고승록 참좋은 복된교회 담임목사) 에서 40여명의 목사와 장로 등 총대들이 참석했다.
해외한인장로회는 이번 총회를 앞두고, 서북노회가 총회의 재판과 행정지시를 거부하는 등 총회 헌법 권위에 명백히 불복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규정, 총회 접수를 받지 않고 총대로도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성도 토론토서 총회열어
이에앞서 미주성결교회는 제 35회 총회를 지난달 4월21일부터 23일까지 토론토에서 개최, 새 총회장으로 김병곤 목사(토론토 새순교회)를, 부총회장에는 조종곤 목사(사우스베이 선교교회)와 최대현 장로(시온성교회)를 각각 선출했다. 김병곤 목사는 서울신대와 고려대 대학원, 토론토대와 맥마스터대학을 나왔으며, 전북대학생선교회 대표간사, 기성 미주 동부지방회장, 캐나다지방회장, 미주총회 서기 등을 역임했다.


어버이 주일‥ "어르신들 주안에서 강녕하세요"

● 교회소식 2014. 5. 20. 16:3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각 교회들은 지난 5월11일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며 예배를 드렸다, 청년·학생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부모 가슴에 달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예배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선물을 전하며 평강의 여생을 축원했다. 사진은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김경진 담임목사가 기도하는 모습과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학생과 성도.

 
< 문의: 416-444-1716 >

 

[기쁨과 소망] 생명

● 교회소식 2014. 5. 20. 14:5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주 교회 뒷 마당에 있는 140년 된 나무 세 그루를 자르는 큰일이 있었다. 지난 겨울 아이스 스톰으로 인해 나무 곳곳이 피해를 입은 터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역시 140년 세월의 무게만큼 나무를 자르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 10톤이 넘는 나무 쓰레기가 말해 주듯이 엄청난 일이었다.
 
높이를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넘어지는 순간 모두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쓰러지는 나무 중 한 그루에서 들고양이의 새끼들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다섯 마리나...!!!! 가지가 부러져 빗물에 썩은 곳에 그리 작지 않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곳에 어미 고양이의 출산이 있었던 것이다. 어미는 나무 자르는 소리에 놀라 도망갔고... 아직 탯줄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눈도 뜨지 못한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만 남아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때부터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가져다가 키우자니... “다섯 마리를... 그것도 아직 눈도 뜨지 않은 베이비들을...”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아이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동물 구조단체를 검색해 약 1시간 이상 운전하여 찾아 갔다. 그들의 답은 간단했다. 너무 어린 고양이인 고로 발견한 곳에 다시 갔다 놓으면 엄마 고양이가 찾아 갈 것이라는 답이었다.
 
다시 돌아와 여러 겹의 박스를 만들고 입지 않는 두툼한 옷을 깔아 고양들을 담아 발견했던 나무 근처에 갔다 놓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가 오는 것을 본 아이들이 밤이 새도록 걱정과 근심을 나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직 했으면 그날 밤 고양이 꿈을....^^. 다음 날 새벽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새벽예배를 따라 나섰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지체없이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최근에 고국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가르친 경험이 없는 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능인 것을 알게 되었다. 미물의 ‘생명’이지만, 그 어떤 ‘생명’이든 귀하며 소중하다는 것은 설명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 몸과 마음에 있어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고, 소중한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다. 사고가족은 아니지만 살아보려고 애를 썼던 아이들의 모습들이 생각날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책임자들에 대한 아쉬움 또한 몰려온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새벽에 일어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또 지체 없이 달려가는 ‘최소한의 본능적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기에 더욱 더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다. 또 조직의 이익 논리가 ‘생명’을 향한 인간의 최소한의 본능을 마비시킨 듯 보여 참담하기 그지없으며, 이것이 온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 중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아기고양이 이야기로 돌아가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결국 세 마리는 엄마 손에 구조된 듯하고 (구조된 것으로 믿기로 했다.)... 다른 두 마리 아기고양이는 이틀 남짓 동안 온 가족이 살려보려는 의지를 가기고 노력했지만 차가운 밤바람과 비로 약해진 건강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들이 죽는 순간 우리 온 가족은 함께 울었다. 
‘생명’을 잃은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함께 우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내 자녀를 잃은 것 같이.. 아니 ‘같이’라는 단어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지만... 그러나 최선의 진심을 담아 울어 주는 모습... 이 진심이 나라를 책임지는 자들로부터 시작해 온 국민에게 흘러나와 유가족들에게 전해 질 때 비로소 오늘의 아픔을 치유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 민경석 목사 - 한울교회 담임목사 >


[평신도 글마당] 입(口)

● 교회소식 2014. 5. 10. 14: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람의 모든 기관중에 어느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것이 없다. 그런데, 그 모든 기관들이 ‘입’ 이라는 기관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선 먹여 주어야 온 몸이 살 수 있다. 사람의 손과 발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사실은 입이 일을 해 주어야 뜻이 통하여 일을 할수 있다. 생각을 잘 정리 하여 입을 통하여 그 생각이 전달된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표현하는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입들이니, 바로 가족이 아니겠는가. 
선박, 즉 큰 배를 일컬을때의 ‘선(船)’ 이라는 한자를 보면 기가막힌 글자 모양이다. 배 주(舟)변에 여덟팔(八)자와 입구(口)가 합하여 이루어 졌다. 배 한척에 여덟개의 입(가족)이 함께 하였으니, 이는 노아의 방주(方舟)를 말함이다. 나는 ‘방주가 네모일것이다’ 라고 글을 쓴적이 있다. 왜냐 하면 방주가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앞, 뒤가 필요 없을터이고, 빨리 갈 필요가 없었으니 유선형이 필요 없었을것이고, 면적 활용과 짓는데 더 유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주의 ‘방’자도 ‘모 방’ 으로 네모를 상징 한다. ‘방주교회’ 라는 글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음기회에 또 한번 올려 드릴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한자를 만들면서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 냈는지는 나에게 풀리지 않는 중요한 수수깨끼다.

아무튼 이 입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가운데를 일컷는 가운데 중(中)자도 가운데 있는 입을 반으로 나누어 그 중심이 되는부분이라는 뜻이 있다. 또 있다. 충성 충(忠)자도 마음을 입의 가운데에 두었음을 뜻한다. 함부로 주님께 충성 한다고 입에 올리기가 부끄럽게 만드는 글자 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것은 모두 깨끗하지만 온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은 더럽다고 하셨다. 특별히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말씀 하신 것이지만, 실재로, 배설하는 것이나, 땀, 콧물 등 냄새까지도 몸에서 나오는 것들은 깨끗하지 못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입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싶다.
 ‘역사’ 라는것은 세상 만물이 살아가고있는 현실을 통 털어서 말한다. 영어로는 History 즉 He’s story 의 준말로, 그분의 이야기 이다. 주님의 이야기가 바로 역사다. 그런데 한자의 표현이 아주 흥미롭다. 역(歷)은 지나온 것을 뜻한다. 사(史)는 ‘역사 사’ 자이지만 그 모형이 입구(口)에 사람인(人)을 그려 놓았다. 사람이 입으로 말해온 것이 역사이고, 사람이 입으로 먹었던 일들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정치와 권력은 사람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집단 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보호하기위한 방법에서 태어 났지만, 그것들이 도덕과 양심 보다는 인간의 입이 호사를 하기위한 욕망으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백성의 입을 기쁘게 해 주었던 권력은 망하지 않았으나, 입에 먹을 것이 없이 백성의 입이 굶주렸던 모든 권력은 역사속에 사라졌다. 사람의 입은 그래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입을 벌려서 혀를 움직이면 말이 된다. 그래서 한자에서는 ‘말한다’라는 뜻의 글자가 왈(曰) 이다. 공자왈, 맹자왈, 할 때의 그 ‘왈’이, 공자가 말 하기를, 맹자가 말하기를, 이런 뜻이다. 입을 벌렸을 때 혀가 보임을 글자화 한 멋있는 표현의 그림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생각을 말함이다. 글자가 만들어 졌기에 입으로 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하는데, 사실은 자기의 입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 생각은 이미 정리가 되었다고 안심하였는데 입에서는 이미 다른 말이 나와 버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나와버린 말은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입은 말을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부터 그 중요성을 알았기에 많은 속담이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값는다. 말이 사람을 죽인다. 혀를 잘 다스리는자가 세상을 다스린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제일 다루기 힘든것이 사람의 혀 이다. 성경에도 혀의 중요함을 많이 강조 하였다. 입구(口)자가 닫혀져 있지 않고 네모나게 벌리고 있음도 시사하는바가 크다. 입이 벌려져야 사람이 살 수 있기때문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입에서 나오는 것이 좋은 것들만 많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랑과 감사와 기쁨과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소원해 본다. 『호흡이 있는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 / 시편 150편 6절』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